[시즌 결산]한국 프로야구 19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 및 선수 프로필 / 나에게 남은 해태 타이거즈의 기억...
작성자시나브로작성시간13.02.08조회수2,667 목록 댓글 0
한국 프로야구 19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 및 선수 프로필 / 나에게 남은 해태 타이거즈의 기억...
1982년 새해 벽두,
37년 만에 통금(야간통행금지)이 해제되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 집권한 전두환 정부는 프로야구창설을 기획했다.
이미 MBC 방송사가 프로야구 창단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상주 교육문화 수석, 이용일 , 이호헌 씨가 프로야구 창단 준비를 하게 된다.
서울은 MBC 청룡, OB 베어스는 3년 후, 서울 연고지로 이전을 약속 받고 충청지역, 삼성은 대구 경북, 롯데는 부산 경남, 인천 경기는 주인을 찾지 못하다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의 용단으로 삼미 슈퍼스타스로 출범, 해태 타이거즈는 전남,북을 연고로 탄생.
처음에 금호그룹과 삼양사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고사하는 바람에 해태가 박건배 회장이 김동엽 감독을 끌어들여 창단을 하게 됨.
해태 타이거즈 창단시 멤버는 16명에 불과했다.
투수 : 신태중(전남고) , 강만식(광주일고), 김용남(군산상고), 김성한 (군산상고), 이상윤(광주일고,한양대 중퇴), 방수원(광주일고, 영남대 중퇴)
포수 : 박전섭 (군산상고), 김용만 (경북고)
내야수 : 김봉연(군산상고), 차영화(광주일고), 차정득(군산상고), 최영조(광주상고=동성고, 연세대 중퇴),
외야수 : 김우근(군산상고), 김준환(군산상고), 김종모 (광주상고=동성고), , 김종윤 (군산상고),
*** 굵은 글씨는 창단식에 참가한 선수 14명 ***
| 연도 | 감독 | 코치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
| 1982 | ![]() 김동엽 |
조창수 유남호 백기성 |
김용남 김성한 이상윤 방수원 강만식 신태중 김현재 황기선 엄평재 주동식 |
박전섭 조종규 김무종 |
김봉연 김일환 차영화 임정면 조충열 서정환 양승호 장진범 |
김우근 김종윤 김일권 김종모 김준환 송일섭 | |||||||||||||
선수부족은 일당백의 현실로 나타났다. 김성한이 투수와 타자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동국대를 졸업한 그는 타자를 원했지만 팀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직구하나는 일품이었던 투수의 능력을 버리기도 아까웠다. 김성한은 경기 후반에 나서서 팀내에서 유일하게 10승 투수가 됐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례없는 10승과 타점왕을 동시에 차지한 인물이다. 그는 모두 26경기에 등판해 완봉 포함 완투 3회, 방어율 2.88을 기록했다.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해 후반에는 투수로 나섰다. 어떤 경우에는 처음부터 선발발투수 겸 3번 타자로 나서기도 했고, 1루를 맡기도 했다. 말이 좋아 팔방미인이지 마당쇠나 다름 없었다.
해태는 6명의 투수로 80경기를 치렀다. 투수들이 태부족했으니 그들의 근성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야수들은 아프면 바로 공백이 생겼기에 아프면 이를 악물고 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경기 일정이 1주일에 4경기 정도여서 그나마 여유가 있었던 점이 다행이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야구부가 있던 학교에 재학하게 되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가까이에서 보고, 응원하고 지켜보던 나는 고교야구를 끔찍히도 좋아하여,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리시버를 끼고, 고교야구 중계를 듣게 되는 마니아층으로 진화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만화와 함께, 지금까지 이러한 취미를 버리지 못하게 된다....
비록 정치적인 기획으로 인해 민심을 돌리기 위한 타개책으로 출범했다고는 하지만, 가슴에 한을 품고, 피멍이 든 이념을 어딘가에는 풀어야 했는데, 사회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분출구가 되는 프로야구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1983년에 발간된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이슈화가 되었을 때, 해태 타이거즈가 저렇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우리 운동장에서 매일 보던 야구선수들( 초등학교 선, 후배 선수들)이 프로선수가 되어 매일 매일 경기를 하고, TV에서 경기를 중계하고, 프로라고는 하지만 16명의 선수에 모구단은 150원짜리 부라보콘에 100원짜리 맛동산을 팔아서 선수단을 운영하는 가난한 구단에, 김봉연의 연봉을 2400만원은 줘야 하는데, 연봉을 1800만원 주었던가??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이듬해인 1986년에 최재성(까치)과 이보희(엄지)가 주연으로 영화화 됩니다.
그리고, 한국프로야구의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나타나게 될 "해태 타이거즈"도 1983년에 기적을 일으키게 됩니다.
1982년 프로야구가 태동되던 시기,
그 때부터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고 줄곧 타이거즈를 응원하던 팬의 한 사람으로서, 해태 타이거즈에 대한 기억을 써 보려고 한다.
1975년!
광주일고가 제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경북고와 대결에서 차영화 강만식 김윤환 선수의 쓰리런 홈런 등으로 우승했을 때, 광주 시내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TV 앞에서 광주의 아들들이 우리들의 한을, '우승'이라는 멋진 모습으로 치유해주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 바람대로 광주일고의 야구선수들은 우승을 이루어냈고, 그 이후로 광주의 시민들은 광주에 연고를 둔 야구팀들의 실력에 눈과 귀를 집중하기 시작했고, 고교 야구의 팬들을 많이 생산한 것으로 기억한다. 광주에 야구의 붐이 일어난 것은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고교야구대회 지역예선부터 눈과 귀가 집중되었고, 전국대회에 출전할 경우에는 TV중계가 있는지 찾아보고 관심을 가졌다. 물론 그 이전부터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로서는 많은 사람들이 야구를 좋아해주니까,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1980년 5월 1일 서울에서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결승 경기는 광주의 야구팬들에게는 잊지 못할(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광주 고교야구 팀들의 맞대결! 선동열, 차동철, 허세환이 있던 광주일고와 김태업, 이순철, 윤여국이 있는 광주상고의 맞대결이었고, 누가 이겨도 상관없었던 정말 재미있었고,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던 경기였다. 결과는 8:2 광주일고의 승리. 최우수 선수는 선동열. 중앙 무대에서 스타로 떠오른 계기가 된다. 결승전이 끝나고 광주로 와서 광주일고와 광주상고 야구선수들은 금남로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한다.
해태 타이거즈가 프로야구 원년에 기록했던 여러 가지 기록들은 그 당시에 스포츠 신문을 통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우리들의 삶 속에 녹아들었고, 1980년에 있었던 광주 5월의 아픔과 함께 가슴 속의 응어리로 남았다. 금남로에 나가면 뿌연 최루탄 가스로 눈을 뜰 수 없었고 젊은이들이 모여 있으면 어른들이 빨리 집에 가라고 조심하라고 하셨다.
비록 해태 타이거즈 팀의 모기업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팬들 모두의 마음 속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부자이고, 타이거즈의 선수들은 마치 우리 모두의 가족처럼 느껴져서 자랑스럽고, 멋지던 시기였다.
그 당시에 어쩌다가 비행기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탑승할 시각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트랩의 앞 쪽으로 가고는 했다. 그 이유는 각종 신문들이 무료로 배부되었지만, 스포츠 신문은 가장 먼저 오른 탑승객들의 손에 의해 사라지고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거리에 가판되는 신문 중에서도 늦게 가면 구입할 수 없는 것이 스포츠 신문이었다. 다른 지역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광주에서는 프로야구가 광주 시민들 생활의 중심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1979년부터 프로야구 창단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올 때 1975년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던 광주일고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1981년 말쯤 신문에 조금씩 해태타이거즈 창단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에 오르내렸다. 드디어 1982년 초, 해태타이거즈는 창단되었고, 선수가 부족한 만큼 그들은 더욱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1982년부터 2001년까지 해태 타이거즈는 나의 머리와 가슴에 그냥 "해태" 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야구장에서 외치는 응원가들은 그냥 그 것만으로 좋았다. 이기면 이기니까 좋았고, 가끔식 경기에서 지더라도, 그래 그럴수도 있지. 하면서 나의 생활로 돌아오고는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울 타이거즈의 선수들은 지는 것 보다는 이기는 경기가 많았고, 그만큼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기쁨도 많이 주었었다.
1983년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그 해에 해태 타이거즈는 우리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기쁨을 선사해주었고, 그 때부터 해태 타이거즈의 팬들은 마치 "1등은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 이후로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승을 가져왔고, 1997년 IMF 시기가 도래하기까지 해태 타이거즈는 우리의 우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생활 속에서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을,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이루어주었고, '이번에는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그런 때(1996년, 1997년)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가져오면서, '나도 나의 생활 속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하는 채찍질의 역할 까지도 해주었던 것이다.
1982 한국프로야구 요약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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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 및 선수 프로필
< 사진 및 자료 - KIA 타이거즈 제공 >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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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는 81년 12월 11일 KBO 창립 총회를 열고 광주를 연고로 하는 해태 타이거즈, 서울의 MBC 청룡,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 대전의 OB 베어스, 인천의 삼미 슈퍼스타즈 등 6개 구단으로 산뜻한 출발을 하게 된다. 위의 사진은 OB 윤동균 선수가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사진 및 자료 - KIA 타이거즈 제공 >
[1982년 팀별 성적]
<한국 프로야구 1982년 최우수 선수(MVP) 수상자 명단>
<정규시즌 MVP, 올스타, 한국시리즈 MVP, 신인상 수상자 명단>
< 한국 프로야구 1982년 골든글러브 수상자 명단>
역대 < 골든글러브 > 수상자 명단
=== http://cafe.daum.net/j61934605/KAen/280 한국 프로야구 19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 및 선수 프로필 / 나에게 남은 해태 타이거즈의 기억... http://cafe.daum.net/j61934605/KAen/281 한국 프로야구 1983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의 기적... http://cafe.daum.net/j61934605/KAen/282 한국 프로야구 1984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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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85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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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88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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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90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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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92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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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93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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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94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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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95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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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96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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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97년 해태 타이거즈 활약상 및 선수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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