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쪽明倫堂重修記 해석문
堂以明倫名者 欲明其五常之倫也 明之曷以 曰忠 曰孝 有序有別 無非明也
이 당(堂)을 ‘명륜당(明倫堂)’이라 이름한 것은 오상(五常)의 윤리(人倫)를 밝히고자 함이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밝히는가? 충(忠)을 행하고 효(孝)를 실천하며, 질서가 있고 구별이 있어 각자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니, 이 모두가 곧 인륜을 밝히지 않은 것이 없다
居聖人之敎 皆所以明倫也 堂必建於夫子廟之前者 其義焉
성인의 가르침은 모두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명륜당을 반드시 공자를 모신 사당 앞에 세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上自國都 下之州縣 莫不有是堂敎之 以明倫之道 則其爲風化之所關也
위로는 나라의 수도에서부터 아래로는 모든 주와 현에 이르기까지 명륜당이 없는 곳이 없으니, 사람들을 인륜을 밝히는 도리로 가르치기 위함이다. 이는 명륜당이 백성의 풍속을 바로잡고 교화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詎不警乎 大歟惟我校是堂建立 己久漸至 頹圯(퇴이)瓦毁 而雨璧破 而風棟其撓矣 榱(최)亦折矣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뜻이 참으로 크도다. 그러나 우리 학교의 이 명륜당은 세워진 지 오래되어 점차 퇴락하게 되었다. 기와는 부서져 비가 새고, 벽은 허물어져 바람이 스며들며, 들보는 휘어지고 서까래마저 부러지게 되었다
春秋將享之時齋宿之 乏其所章甫講討之際 團會之無其處 則其爲士林之歉(겸)且嘆也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려 할 때에는 재계하며 머물 장소가 부족하였고,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토론할 때에는 함께 모일 곳이 없었다. 그러니 이는 사림에게 매우 유감스럽고 탄식할 만한 일이었다
第緣歲饑 時屈事巨力綿常 以重修之未盖己久矣 遑爲病幸 今士人 吳勁 姜渭尙 文致明 等
다만 해마다 흉년이 들어 때로는 형편이 어렵고 일은 큰데 비해 힘은 항상 부족하였다. 이 때문에 명륜당의 중수를 끝마치지 못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이를 어찌 근심만 하고 다행이라 여기기만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선비들 오경, 강위상, 문치명 등이
迺(내)能奮意 於修廢狀聞于太守申侯以衡維時 申侯下車屬耳 以敦聖敎明 人紀爲首 務函命董工
이에 (선비들이) 뜻을 분발하여 폐허가 된 명륜당을 수리하고자 그 사정을 태수 신후에게 아뢰었으며, 때에 맞게 일을 헤아려 처리하였다. 마침 신 태수가 부임하여 이를 듣고는, 성인의 가르침을 돈독히 하고 인륜을 밝히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아, 공사를 감독하도록 명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하였다
且給廩(름)粟二三子 亦彈力營募 公不費於官 私不厲於民 不多日功告 訖譆目 今聖敎煥人紀
또한 모두가 힘을 다해 경비를 모으고 공사를 추진하였으며, 관에서도 일부 사람들에게 곡식을 지급하였다. 그리하여 관청의 비용을 낭비하지도 않고 백성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았으니, 오래지 않아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아! 이제 성인의 가르침이 인륜을 밝게 드러내게 되었다
斁(두)其不至 於冠裳 而禽犢者無幾矣 於是焉 玆堂適成 則今日之擧 非欲使 旣熄者 重煽已斁 者 更修也
오늘날 인륜의 기강이 해이해져 사람다운 도리를 잃고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지경에 빠지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러한 때에 명륜당이 완성되었으니, 오늘의 사업은 이미 완전히 사라진 도를 새로 일으키거나 아주 무너진 것을 복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이어져 오던 성인의 가르침을 더욱 밝히고 인륜을 바로 세우려는 데 있다
歟非直爲觀美 於輪奐者審矣 役其完 姜友渭 尙屬余作文 而記之顧余辭短者也 固不足壽其傳 而然念昔在 丙戌歲移建是校也
아! 이는 단지 건물을 크고 아름답게 꾸며 볼거리를 삼으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공사가 끝나자 강우위상이 나에게 글을 지어 이를 기록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나는 문장이 졸렬하여 실로 그 사실을 길이 전할 만한 재주가 없다. 그럼에도 생각건대, 지난 병술년에 이 향교를 옮겨 세웠을 때를 돌이켜보면
我進士 曾王父 記其蹟逮 癸亥 重修是堂也 我生員 從祖考 又序其事 玆堂之廢興成毁 惟我家最獨詳 而且不勝 天竺之感 不敢辭 而庸記焉
예전에 나의 증조부이신 진사께서 이 향교의 연혁을 기록하셨고, 계해년에 명륜당을 중수했을 때에는 나의 종조부이신 생원께서 다시 그 일을 글로 남기셨다. 이 명륜당의 건립과 훼손, 쇠퇴와 중흥의 내력에 대해서는 우리 집안이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고 있다. 더구나 선조들의 자취를 떠올리는 감회를 억누를 수 없었으므로, 차마 사양하지 못하고 마침내 이 글을 짓게 되었다
掌議 吳勁 有司 姜渭尙 文致明 成造別有司 姜渭尙
丁未十月日
成均館 生員 文德觀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