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116
투표소를 떠난 민심의 행선지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민주주의의 꽃이 시들었다는 비판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견제받지 않는 조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갈등비용이 발생하는지를 목도하고 있다.
혹여 패자의 분루가 있더라도 승패는 갈렸다. 그러나 정치의 시간이 지나가도 경제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방송사 스튜디오의 개표 화면에 촘촘히 박히던 정치의 숫자들이 사라지고 나면서 그 자리를 민생의 숫자들이 채우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마트 영수증에 찍히는 숫자, 공항 환전소 게시판에 걸린 숫자, 자영업자가 재료비 명세서를 들여다보며 마주치는 숫자, 주식 자산평가에 오르내리는 숫자들이다.
물가는 시민이 맨 먼저 체감하는 경제 지표다. 통계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가격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6년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로, 전월의 2.6%보다 0.5%포인트 상승했다. 수치만 보면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이 0.5%포인트 상승이 의미하는 바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정부의 물가 관리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달 사이 물가 압력이 그만큼 빠르게 커졌다는 뜻이다.
KDI는 수요 측 물가 상방 압력이 누적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으로 공급 측 물가 압력도 상당폭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동시에 물가를 밀어 올리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의 선의와 시장의 반응은 일치하지 않는다. 각종 현금성 지원 정책은 수요 측 물가 압력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대규모 현금이 일시에 풀려 시중 유동성이 증가할 때 그것이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소비 지출로 직결된다면 수요 측 물가 압력은 더욱 커진다.
계란 한 판이 7,000원을 넘었다. 작년보다 1,000원이 넘게 올랐다. 한번 오른 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이것은 경제학적 명제이기도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해 온 생활의 진실이기도 하다. 외식비가 오르면 비싸졌다는 원성이 나오지만 내렸다는 뉴스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가공식품 가격이 오를 때는 ‘원재료값 상승’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지만, 원재료가 안정되어도 제품 가격이 다시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다.
환율 상승 역시 심상치 않다. 2026년 6월 5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559원대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지난 12개월 사이 원화 가치가 14% 넘게 하락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에너지 수입만이 아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곡물, 사료, 산업 원자재의 수입 비용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밀가루와 옥수수, 대두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돼지와 닭을 키우는 사료 역시 수입 곡물에 의존한다. 환율은 외환시장의 숫자에 불과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식탁과 지갑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결국 기업은 생산비 증가를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고, 환율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가계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환율을 안정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기준금리를 미국 수준에 맞춰 인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금융통화위원회도 하반기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대출에 기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서민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새로 선출된 단체장들의 구호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물가 상승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 않는다.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물가 상승은 일정 부분 자산 가치 상승으로 상쇄된다. 그러나 월급과 연금에 의존하는 계층에게 물가 상승은 구매력의 직접적 감소다. 저소득층일수록 식료품과 주거비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물가 상승은 세금 고지서처럼 모든 사람에게 날아오지만, 그 부담의 무게는 같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재료비와 임차료, 공공요금이 동시에 오르는데 손님을 잡기 위해 가격을 마냥 올릴 수도 없는 처지다.
생활의 시간은 이제 다시 시작되었다. 일반 시민이 바라는 것은 화려한 정치 구호가 아니다. 안정된 물가와 예측 가능한 환율,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작은 희망이다. 정치는 선거로 평가받지만, 경제는 생활로 평가받는다. 승자로 호명된 이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득표율이 아니라 마트 영수증과 자영업자의 재료비 명세서다. 표를 던진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연설이 아니라 결과다.
최근 금융소득으로 웃고 있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주식이 다락같이 오른들 계란 한 판 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그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코스피 지수가 몇 포인트 올랐다는 뉴스는 월세 걱정에 잠 못 드는 사람의 밤을 따뜻하게 해주지 않는다. 숫자의 온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숫자를 보고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한숨을 쉰다. 경제 지표가 개선되었다는 말이 모든 사람의 삶이 나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평균의 뒤편에는 언제나 평균에 닿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주가도 사실 반도체 산업과 몇몇 대형 수출기업이 끌어올린 숫자다. 그 숫자가 골목 식당의 매출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날에도 동네 세탁소는 문을 닫는다.
숫자의 의미는 방향이다.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누구의 물가를 먼저 잡을 것인가. 누구의 부담을 먼저 덜어줄 것인가. 선거가 끝난 자리에서 그 질문이 시작된다. 정치의 계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생활의 계절이다. 계란 한 판 가격에 한숨 쉬는 사람들 앞에서 승자의 축배는 오래갈 수 없다. 민심은 투표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장바구니 앞에서 다시 시작된다. 투표소를 떠난 민심의 다음 행선지는 명확하다. 자신들의 지갑을 지켜주고 삶의 무게를 덜어줄 생활 정치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