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식의 역사와 이론적 배경
1. 방정식의 역사
문자가 들어있는 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방정식이다. 방정식의 종류는 여러 가지 있는데 최고차항의 계수에 따라 1, 2차 방정식이라 부르고, 여러 방정식을 동시에 고려할 경우 연립방정식이라 한다. 이들 방정식과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일이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실제 문제를 푸는데 미지수를 사용하여, 즉 어떤 수라는 말 대신 문자를 사용하여 푸는 효과적인 방법을 도입한 사람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그리스인으로 당시의 수학의 대가로 알려진 디오판토스(Diophantos: 246 - 330)이다. 그는 대수학을 정상에 올려놓았고,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수론"은 대수학에서의 "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처럼 비유되고 있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비문은 그가 생각해낸 미지수를 이용한 일차방정식의 풀이로써 그 해답을 쉽게 구할 수 있다. " 디오판토스는 일생의 1/6은 소년이었고 1/12후에 수염이 자랐고, 1/7이 지나자 결혼하였다. 5년후에 낳은 아들은 아버지 나이의 꼭 반을 살았고 아들이 죽은지 4년후에 세상을 떠났다. "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를 구하여 보라.
식 1 : ( 1/6 + 1/12 + 1/7 )의 공통분모가 그의 나이가 된다.
= ( 14 + 7 + 12 ) / 84
식 2 = 33 + 5 + 42 (아들의 나이는 84의 1/2) + 4 = 84
당시 디오판토스는 방정식의 해를 정수나 유리수로 한정시켜 생각했기 때문에 수론에서는 방정식의 해를 묵시적으로 정수해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날 정수해를 구하는 방정식을 디오판토스의 방정식으로 부르는 것도 이에 연유하고 있다.
2. 국가별 역사
유럽 이탈리아에서 이차방정식과 사차방정식의 해법이 얻어졌는데, 오차방정식의 해법은 좀처럼 얻을 수가 없었다. 그 해법을 얻기 위해 약 300년간에 걸쳐 유럽의 많은 수학자가 도전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풀 수가 없었다. 그 후 오차 이상의 방정식은 그 일반적인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프랑스의 갈루아와 노르웨이의 아벨이 증명하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에서는 학문 연구의 세계에도 올림픽 정신을 도입해서, 수학계에서는 방정식 해법 경쟁이 생겼다. 이로 인해, 삼차, 사차방정식도 풀 수 있게 되었다.
[수메르] 지금부터 4000년 전, 수메르에서는 간단한 일차, 이차, 삼차방정식을 풀었다고 한다.
[그리스] 기하학의 왕국인 그리스에서는 많은 기하학자가 배출되었으나, 대수학자(방정식 연구가)는 희귀했다. 디오판토스는 희귀한 대수학자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산학' 13권을 저작했으며, 기호에 의한 방정식을 최초로 풀었다.
[이집트] 피라미드가 건설된 것은 기원전 2800년경이다. 피라미드의 건설에는 고도의 수학이 필요한데, 방정식을 사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제로,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수학서인 '아메스의 파피루스'에는 미지수를 hau로 한 방정식이 보인다.
그것은 일차방정식과 이차방정식이다.
[아라비아] 아라비아의 수학은 인도의 대수와 그리스의 기하 등을 받아들여 이것을 정리 발전시켜 유럽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 아라비아도 인도와 같이 수학자는 천문학자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산술이나 방정식 분야에 치중했다.
특기할 것은 9세기의 저명한 수학자 알콰리즈미의 연구이다. 그는 '알제브로 발르 아카라바'라는 방정식에 관한 저작을 하였는데 이 책의 al-gebr 부분은 오늘날의 대수 algebra의 어원이 되었다.
12세기의 카얌은 삼차방정식을 풀었다.
[중국]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방정식이 다루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세기경에 쓰여졌다는 명저 '구장산술'이다. 이 책은 9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 8장은 '방정'의 장에 오늘날의 연립방정식이 나온다.
우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정식'의 어원도 여기에서 나왔다.
이런 것들을 통하여 볼 때, 방정식은 옛날부터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인도] 고대 인도의 수학은 천문학자에 의해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그리스와는 반대로 기하학의 발달은 별로 없었고, 대수학(산술이나 방정식 등)이 왕성하게 발달했다.
6세기의 아리아바타는 이차방정식을 풀었으며, 12세기의 바스카라는 처음으로 이차방정식에서 음의 근과 무리수의 근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인도 수학의 가장 큰 공적은 0과 음수의 발견, 자릿수 기수법에 의한 수의 사용인데, 이것은 현대 수학의 토대가 되었다.
[미국과 영국] 오차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할 수 없다는, 즉 대수적으로 풀 수 없다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19세기의 젊은 수학자인 노로웨이의 아벨과 프랑스의 갈루아이다.
이들은 증명 과정에서 '군'의 개념을 생각해 내었다. 이리하여 방정식의 해법에 관련된 수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군(群)'이 탄생하였는데, 이 군의 이론은 20세기 수학의 추상주의의 계기가 되어 수학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나아가 군의 이론은 고차방정식 외에도 삼각방정식, 대수(對數)방정식, 벡터방정식, 미분방정식, 적분방정식 등 수학의 여러 분야에 관련되었다.
한편,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과 영국에서 OR(operations research, 작전 연구)가 탄생하였는데, OR에는 수학의 방정식과 부등식이 도입되었다. 처음 군사적 목적에서 발전한 선형계획법은, 그 후 여러 방면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가까운 예로서, 햄, 소시지나 화학 비료등을 만드는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이용되어 왔다.
현재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미지수가 수천 개나 되는 방정식, 부등식의 해도 구할 수 있다.
5+□ = 8, 3×□=21 등과 같이 일상적인 필요에서 나타난 방정식은, 오늘날의 고도의 방정식 이론으로 발전하기까지 5000년 이상을 인간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 왔다.
16세기에는 일종의 놀이로서, 19세기에는 순수 학문으로서, 그리고 20세기에는 사회 과학이나 인문 과학과도 관련을 가지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계속 발전해 가고 있다.
누가 발견했다기 보다는 생활의 필요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나온 개념이지만,
문자로 수식화해서 풀었다는 디오판토스나 , 미지수의 개념을 등장시킨 파피루스 라는
책의 연대를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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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판토스(246?~330?)
250년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수학자.
대수학 연구로 유명하다.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11세기 비잔틴 학자 미카엘 프셀로스의 편지로 추측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밖에 불확실하기는 하나 유일한 정보로서 산술 풍자시의 해설이 있는데, 이것에 따르면 그는 33세에 결혼하여 84세에 죽었고, 그가 죽기 4년 전에 42세의 나이로 죽은 아들이 1명 있었다고 한다.
디오판토스 이전에는 연산과 논리, 그리고 해를 포함한 모든 대수학 문제를 기호없이 표현했으나, 그는 그리스 대수학에 최초로 기호를 사용했다. 미지량(未知量)에 대해서는 아리트모스라는 오직 한가지 기호를 사용했는데, 그 기호는 정의되지 않은 수를 가지는 단위의 특징을 나타낸다. 하나 이상의 미지항이 있는 문제에서는 가능하면 그들 가운데 하나로 모든 미지항들을 표현하여 혼동을 피했다. 그가 사용한 오직 하나의 대수기호는 뺄셈기호이며, 이 기호는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인 헤론(1세기에 활동)도 사용했다. 또한 〈산학〉은 그곳에 진술되거나 가정된 부정설제 이외에 정수론의 명제들에 대해서도 가치가 있다. 그는 8n+7(n은 음이 아닌 정수)꼴의 수는 3개의 제곱수의 합이 될 수 없음을 알았으며, 또한 2n+1이 2개의 제곱수들의 합이 되려면 'n은 홀수가 아니어야 한다'(즉 4n+3이나 4n-1 꼴의 수는 두 제곱수들의 합이 될 수 없음)라고 기술했고,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드 페르마가 제시한 조건인 '(그것을 측정하는 가장 큰 제곱으로 나눌 때) 1이 증가된 n의 2배는 4n-1 꼴의 소수로 나누어져서는 안 된다' 가운데 괄호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밝혔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사용된 고도로 발달된 대수적 방법의 발견에 비추어보면, 그의 연구는 그리스 수학의 퇴보한 모습을 더이상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에 영향을 받았음이 명백하다. 그에 관한 권위있는 전기로는 히스가 쓴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그리스 대수학사 연구 Diophantus of Alexandria:A Study in the History of Greek Algebra〉(1885)가 있다.
아리스메티카는디오판토스가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면서 기존에 있었던 문제와 다시 만들어진 문제를 종합하여 꾸며진 논문집이다. 열세권으로 이루어 졌으나 무지했던 중세 암흑기를 거치면서 반 이상이 소실되어 페르마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의 수학자들에게 전수된 것은 이들 중 여섯 권뿐이었다. 하지만 이여섯권도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그후 일어난 폭동과 전쟁으로 거의 소멸의 위험을 당하지만 다행히도 지식을 옹호하는 클레오파트라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게 된다. 그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계각지에서 수집된 진귀한 서적들로 계속 쌓여갔으나 서기 389년 갑자기 들이닥친 종교전쟁으로 이 도서관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당시 로마 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수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테오필루스에게 이교도들의 사원을 모두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불행히도 재건된 도서관은 세라피스 사원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테오필루스이 공격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 몇 명의 뜻있는 학자들이 6세기 동안 보관되어 온 지식의 보고를 지키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들 역시 기독교도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 되었다. 중세의 암흑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기독교도들의 무자비한 공격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들은 복사본의 형태로 살아남아, 지식을 추구하는 학자들은 계속해서 알렉산드리아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뒤에 터진 또한번의 종교전쟁으로 말미암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모든 책들은 아궁이 속으로 던져졌고,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화형에 처해졌다.그리고 이때 디오판토스의 책들도 함께 소실되었다. 이토록 끔찍한 분서갱유가 자행되던 와중에 열세 권의 <아리스메티카>중 여섯권이 살아남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다각수(多角數)에 관해 다룬것의 일부가 〈산학〉에 있다. 이 저작에 있는 세 보조정리(lemma)는 부정설제(不定設題:정리의 계)에 대한 연구를 일부 언급하고 있다. 이 보조정리들은 정수론에 관한 명제들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두 유리수의 세제곱의 차는 어떤 두 유리수의 세제곱의 합과 같다'(). 그가 제시한 여러 가지 문제에는 4변수까지 가질 수 있는 1차 정방정식, 2차 정방정식, 1변수 이상인 1차 부정방정식 등이 있다. 부정방정식은 변수들 가운데 하나를 임의의 값으로 놓아 정방정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는 항상 정수해로 제한하지 않고 유리해로 만족했다. 그의 업적은 주로 2차 부정방정식으로 귀착되는 것인데, 이런 문제들은 대개 1변수 x에 대한 1개나 2개(그 이상은 아님)의 선형 또는 2차 함수에 적당한 x값을 찾아 넣으면 유리제곱수가 되는 형식을 가진다. 몇몇 문제들은 3차와 4차 부정방정식으로 이끄는 것이고, 이밖에 쉬운 6차 부정방정식으로 이끄는 문제도 있다. 문제는 1차, 2차 때로는 3차로 표현된 여러 식들에 넣으면 제곱 세제곱 부분제곱 부분세제곱 …… 등이 되는 2, 3, 4의 수를 찾는 것이다. 제6권에는 요소(면과 면적들)에 대한 여러 함수들의 제곱이 되는, 변의 길이가 유리수인 직각삼각형을 구하는 문제들이 있다.
디오판토스 방정식
부정방정식이란 미지수의 개수보다 방정식의 개수가 적은 (연립)방정식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미지수가 2개인 일차방정식'도 부정방정식이다. 이와 같은 부정방정식은 그대로는 풀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해를 구하는 것 이 아니라 '유리수해' 또는 '정수해' 또는 '자연수해'만을 구하라는 조건이 붙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부정방정식 가운데 특히 정수해만을 구하는 것을 디오판토스방정식이라고 한다.
디오판토스는 그리스 말기의 수학자로서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특히 수학의 정수론과 대수학에 공헌이 큰 수학자로 대수에서 미지수를 문자로 쓰기 시작하였고, 디오판토스 해석이라는 일종의 부정방정식 해법을 연구하였는데, 산학'Arithmetica" 13권에서는 수사미지수, 계산 기호 등을 사용하여 대수학을 만들어 일차, 이차방정식 및 연립방정식을 풀고 있다.
또, 부정방정식 중 '주어진 제곱수를 두 개의 제곱수로 나누어라'라는 문제로 페르마에게 큰 여향을 주어 다음과 같은 유명한 "페르마의 정리" 가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n이 3 이상인 자연수에 대하여 xn+yn=zn 을 만족하는 자연수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