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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책임 없는 상왕(上王)과 과두제의 그림자

작성자jamesha|작성시간26.06.08|조회수18 목록 댓글 0

정치는 언제나 공식적인 권력과 비공식적인 영향력 사이의 긴장 속에서 움직인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택한 대통령과 정당 지도부, 그리고 언론과 지식인, 여론 주도층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영향력이 책임과 균형을 벗어나 소수에게 집중될 때 발생한다.

 

독일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이를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조직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소수의 지도층과 영향력 있는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 역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권력과 부가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가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우리 정치에서도 이러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집권 이후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안정과 외연 확장을 추구하는 반면, 당 지도부는 지지층 결집과 선명성을 강조하면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어느 정권에서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긴장 관계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공식적인 권한과 책임을 지지 않은 외곽의 스피커들이 정당과 권력 구조에 과도한 영향을 행사할 때 시작된다.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 팬덤 정치가 확대되면서 일부 방송인이나 논객, 지식인들의 발언이 당내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정당의 대표나 최고위원들이 국민 앞에서 토론하기보다 특정 방송에 출연해 정치적 메시지를 조율하고, 당의 방향이 공식 회의보다 외부 여론 주도층의 입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이는 결코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영향력은 행사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공식 권력보다 비공식 권력이 더 강해지는 순간은 국가와 조직이 병들기 시작하는 징후였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가 그러했고, 로마 제국 말기의 궁정 정치가 그러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권력 집단이 정당과 정부를 좌우하게 되면 국민이 행사한 주권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당 밖의 언론인과 지식인, 시민사회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와 비판을 통해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최종적인 결정과 책임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정당, 그리고 국회가 져야 한다. 영향력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상왕 정치'가 반복된다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는 특정 개인이나 팬덤, 외곽 스피커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공적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한 목소리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느냐이다.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충성이나 단일한 목소리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의견이 제도 안에서 경쟁하고, 권력이 분산되며, 누구도 견제받지 않는 위치에 서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서 비로소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그런 그림자를 경계해 왔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마태오 20,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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