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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기득권이 된 율법주의자들과 광장의 메시아

작성자jamesha|작성시간26.06.09|조회수23 목록 댓글 0

진보 진영 내부의 신·구 대결

 

최근 정치권과 출판계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서사를 종교적 은유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단순한 팬덤 정치의 산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밑바탕에는 한국 진보 진영 내부에서 진행되는 세대 교체와 권력 이동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과 권위를 독점하던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해석하고 공동체의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권위는 점차 제도와 형식 자체를 지키는 데 집중되었고, 민중의 삶과 고통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예수는 바로 그런 시대에 등장했다. 그는 성전 밖 광장에서 병자와 세리, 창녀와 가난한 이들을 만나며 율법의 문자보다 사람을 우선했다. 그의 가르침은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위험한 이단으로 보였고, 결국 성전의 기득권 세력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한국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이와 유사한 긴장을 읽어내려는 시각이 존재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진보 진영의 도덕적·지적 권위를 형성해 온 세력은 절차적 정당성과 정치적 올바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규범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조국 사태와 부동산 정책 실패, 정권 재창출 실패 등을 거치며 많은 지지자들은 이러한 가치만으로는 자신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좌절을 경험했다.

 

그 틈에서 등장한 것이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실용주의와 강한 전투성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에게서 흠 없는 성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강한 지도자를 본다. 상처를 입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인물로 인식하는 것이다반대로 기존 진보 지식인들에게 이재명식 정치와 강한 팬덤 문화는 불안한 현상으로 비친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숙의, 절차와 품격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이다.

 

결국 오늘날 진보 진영 내부의 갈등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기보다, 엘리트 중심의 도덕주의와 대중 중심의 실용주의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적·정치적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다만 역사는 한 가지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어제의 개혁 세력은 내일의 기득권이 될 수 있으며, 광장의 혁명가 역시 권력을 잡는 순간 또 다른 성전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진보 성전의 기득권을 이렇게 분류해 본다.

 

1. 성전의 율법학자:

절차적 정당성과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고결한 율법을 수호하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율법주의는 정작 민중의 삶을 바꾸는 데 무력했거나(부동산 실패 등), 조국 사태처럼 자신들이 세운 엄격한 율법의 잣대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며 대중에게 깊은 환멸을 안겼다.

 

2. 성전의 대변인이자 예언자:

진보의 교리를 대중에게 해설하고, 무엇이 참된 진보인지를 판별해 주던 강력한 스피커들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거대한 담론의 성전 안에서 대중의 생각과 흐름을 통제하고 규정하려 한다는 점에서 기성 권위주의적 바리사이의 속성을 공유한다.

 

3. 학문적 공론장의 바리사이:

미디어 Literacy와 비판이론, 의사소통 합리성이라는 정교하고 세련된 학문적 법전을 들고 공론장의 수질을 관리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의 분석은 정교하지만, 당장 생존을 위해 싸우는 거친 광장의 열망(이재명 팬덤) 앞에서는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이고 냉소적인 먹물들의 잔소리로 비쳐지기 쉽다.

 

4, 성전 문지기와 행동대장:

제도권 정치와 대중 미디어를 연결하며 성전의 영향력을 확장해 온 이들 역시, 기성 시스템 안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수가 비판했던 것은 특정 집단이 아니라 권력과 결합한 위선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성경에서 읽어야 할 교훈은 누가 예수이고 누가 바리사이인가를 가려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누구의 손에 있든 그 권력이 권력자 자신을 향하는지 아니면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견제하는 데 있을 것이다.

 

성경은 특정 정치인을 신격화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권력과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며, 시대를 성찰하게 하는 나침반이다. 정치가 성경을 이용하는 순간 우상숭배가 되지만, 성경이 정치와 사회를 성찰하는 기준이 될 때 우리는 시대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성전을 지키는 데만 몰두한다면, 역사는 언제나 광장과 광야에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만들어 왔다.

 

2천 년 전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광야에서 시작되었고, 예수의 복음은 성전이 아니라 민중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예루살렘의 기득권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변화를 두려워했고 그 변화의 주동자를 색출하고 제거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다시 회복한듯 했다. 오늘의 정치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성전이 아니라 광장(야)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어제의 개혁 세력이 오늘의 기득권이 되고, 광장의 열망마저 또 다른 권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역사는 끊임없이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진영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찰과 견제, 그리고 시대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살아 숨 쉰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위기와 도전을 극복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유례없는 나라가 되었다. 국민의 저력과 성숙함은 이미 그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정치가 그 수준을 얼마나 따라갈 수 있느냐에 있다대한민국이 단군 이래 다시 한번 위대한 나라로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권력보다 국민이, 이념보다 사람이, 진영보다 공동체가 우선되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며,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이 땅의 정치와 사회 속에서 구현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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