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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사과, 화해, 용서가 없는 정치

작성자jamesha|작성시간26.06.18|조회수17 목록 댓글 0

정치는 본래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기술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가장 희귀한 것은 정책도, 인재도, 예산도 아니다. 바로 사과와 화해, 그리고 용서다.

 

정치인들은 상대를 향해 날카로운 비난을 쏟아내지만, 자신이 잘못했을 때는 좀처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과는 곧 패배이고, 양보는 굴복이며, 화해는 배신으로 여겨진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 아니라 적을 제거하는 전쟁이 되어 버렸다.

 

과거에는 정권이 바뀌어도 일정한 선에서 갈등을 봉합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이 바뀌면 이전 세력을 철저히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반대로 야당은 현 정권의 실패를 기다리며 극한 대립으로 맞선다. 승자는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구조 속에서, 화해와 용서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정치적 적대감은 국회를 넘어 시민사회와 가정, 교회와 직장까지 침투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진영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대화보다는 단절을 선택한다. 서로를 설득할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공동체도 복수와 응징만으로 오래 지속된 적은 없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깊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세웠고, 전쟁과 독재를 경험한 여러 나라들도 처벌과 함께 용서와 통합의 길을 모색했다. 정의가 필요하지만, 정의만으로 공동체는 유지되지 않는다. 정의를 넘어서는 화해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 사회의 한계를 일찍부터 통찰했다.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라고 말씀하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기도하셨다. 복음이 말하는 용서는 죄를 덮어버리는 값싼 관용이 아니라,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다.

 

물론 용서는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책임과 처벌만 있고 용서와 화해가 없다면, 정치는 끝없는 보복의 수레바퀴를 돌게 된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고, 오늘의 피해자가 내일의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은 계속될 뿐이다.

 

국가의 품격은 상대를 얼마나 철저히 무너뜨렸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르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승리는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를 인정하고, 잘못을 사과하며, 용서를 통해 다시 공동체를 세우는 데 있다.

 

사과할 줄 아는 용기,

화해할 줄 아는 지혜,

용서할 줄 아는 관용.

 

이 세 가지가 사라진 정치에서 국민은 희망을 잃는다. 반대로 이 세 가지가 살아나는 순간, 정치는 다시 공동체를 위한 봉사가 되고 민주주의는 비로소 성숙해진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더 강한 권력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여라"(마태 18,22)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정신인지도 모른다. 정치가 복수의 언어가 아니라 사과와 화해의 언어를 회복할 때, 대한민국은 승자와 패자가 공존하는 나라를 넘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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