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길
성경은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종교적 교훈집이나 도덕책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거대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罪性과 더불어 인간 안에 자리 잡은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며, 동시에 그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이다.
성경은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욕망과 경쟁, 질투와 두려움 속에서 서로를 해치고 희생양을 만들어 내는 존재인지를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 폭력의 연쇄를 끝내기 위한 하느님의 길을 제시한다.
⭗첫 번째 살인, 카인과 아벨
인류 최초의 범죄는 절도가 아니라 살인이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한 나머지 들로 데리고 가 죽인다. 창세기는 인간의 폭력이 거대한 사회적 구조나 정치적 이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질투와 비교,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느님은 살인자인 카인조차 죽이지 않으신다. 오히려 "카인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창세 4,15)라고 말씀하시며 복수의 악순환을 막으신다. 성경은 이미 첫 장면부터 폭력에 대한 또 다른 폭력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선언한다.
⭗노아 홍수 이후의 교훈
홍수 이전 세상에 대해 창세기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하느님 앞에서 타락하였고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창세 6,11) 인간 문명의 몰락 원인은 단순한 성적 타락이나 우상숭배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뒤덮은 폭력이었다. 그러나 홍수 이후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바벨탑 사건과 민족 간의 갈등은 계속된다. 성경은 인간이 제도와 문명만으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희생양이 된 요셉
형제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시기한다. 처음에는 죽이려 하고, 결국 노예로 팔아버린다. 그러나 요셉은 권력을 얻은 후 복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분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세 50,20)라고 말하며 폭력의 사슬을 끊는다. 성경은 정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복수의 무한 반복을 넘어서는 길을 보여 준다.
⭗예언자들의 외침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단순히 우상숭배만 비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권력자들의 억압과 약자에 대한 폭력을 고발했다. 이사야는 말한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이사 2,4) 폭력의 도구가 생명의 도구로 바뀌는 세상이 하느님 나라의 비전이었다.
⭗예수와 희생양 메커니즘의 폭로
복음서에 이르러 인간의 폭력성은 절정에 이른다. 군중은 예수를 환호하며 맞이하지만 며칠 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친다. 종교 지도자와 정치권력, 그리고 군중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 사람을 제거하는 데에는 놀라운 일치를 이룬다. 십자가는 단순한 처형이 아니다. 인류가 평화를 얻기 위해 얼마나 자주 무고한 희생양을 만들어 왔는지를 폭로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예수는 폭력으로 폭력에 맞서지 않으셨다. 칼을 든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라고 말씀하시고, 십자가 위에서조차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기도하신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하느님의 방식이었다.
⭗부활, 희생양 메커니즘의 패배
놀랍게도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복수하지 않으셨다. 배신한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도망친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신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부활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를 통한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었다.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비전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묵시록 역시 궁극적인 평화를 노래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묵시 21,4) 폭력과 죽음의 역사가 끝나고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21세기 인간은 놀라운 기술과 문명을 이루어 냈지만, 여전히 카인의 후손으로 살아가고 있다. 전쟁과 테러, 진영 갈등과 혐오, 인터넷상의 마녀사냥과 희생양 만들기, 정치적 적대와 사회적 분열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고대인의 신화집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의 폭력성을 가장 정직하게 고발하는 책이며, 동시에 폭력을 또 다른 폭력으로 제거하려는 유혹을 거부하고 사랑과 용서, 화해와 연대를 통해 악순환을 끊으려는 하느님의 위대한 실험이다.
결국 성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것일 것이다. 인간은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하느님은 사랑으로 폭력을 끝내신다. 그리고 십자가는 그 사랑이 얼마나 연약해 보이면서도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 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랍고도 혁명적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