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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마리와 한 마리

작성자jamesha|작성시간26.06.05|조회수14 목록 댓글 0

한국 천주교회는 오랫동안 신자들의 친교와 신앙 성장을 위해 소공동체 모임, 성경 공부, 문화 강좌, 합창단, 성지순례, 다양한 취미 모임 등을 운영해 왔다. 이러한 모임들은 신자들이 단순히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넘어 서로를 알고 삶을 나누며, 교회 공동체를 살아가는 중요한 공간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근래 일부 본당에서는 소공동체나 각종 프로그램에 일정한 회비를 받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를 둘러싼 고민이 적지 않다.

 

교재 구입비, 강사료, 다과비, 봉사활동 경비 등 실제 비용이 발생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적절한 수준의 회비는 공동체 운영을 위한 책임 있는 참여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회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공동체의 문턱이 되어 버릴 때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은총의 공동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은 상품이 아니며 신앙생활 역시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회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신자 한 사람이 소공동체나 문화 프로그램 참여를 망설이고, 심지어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교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 아닐 것이다.

 

루카가 전하는 초대 교회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필요한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였다. 공동체의 정신은 각자가 똑같이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형편에 따라 서로를 배려하고 부족한 부분을 함께 메우는 데 있다. 여유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부담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맡겨두는 것이 오히려 복음 정신에 더 가깝다.

 

특히 노년층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자들에게 소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외로움과 고립을 극복하게 하는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회비가 암묵적인 참여 조건이 되고, 회비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눈치를 보거나 스스로 물러나게 된다면 공동체는 친교의 장이 아니라 또 다른 배제의 공간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문화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가 제공하는 문화 활동은 단순한 취미 생활을 넘어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성을 풍요롭게 하는 봉사의 성격을 가진다. 물론 적정한 비용 부담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운영의 효율성과 수익성이 우선되는 순간 교회는 세상의 문화센터와 크게 다를 바 없어질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신자들 역시 가입비나 월 회비를 큰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세속의 동호회와 친목 모임 문화에 익숙해진 나머지, 교회 안에서도 회비 문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는 세상의 조직과 구별되는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당은 이미 신자들이 정성껏 봉헌하는 교무금과 헌금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교회의 재정은 소공동체와 신앙 교육,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나눔에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활성화가 개인들의 추가 부담에 의존하게 된다면 결국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될 위험이 있다.

 

교회 안의 어떤 단체나 활동도 개인적인 추가 납부를 사실상의 전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필요한 비용이 있다면 공동체 전체가 함께 책임지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욱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복음의 정신에 부합한다.

 

회비를 내는 사람과 내지 못하는 사람, 참여하는 사람과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기는 순간, 공동체는 이미 본래의 모습을 잃기 시작한다. 공동체는 회비로 유지되는 조직이 아니라 관계와 나눔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걷느냐가 아니라 누구도 돈 때문에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낼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루카 15,4-7)라고 말씀하셨다.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의 안전에 만족하지 않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 하느님 나라는 효율이나 다수의 편의가 아니라, 단 한 사람도 잃지 않으려는 자비와 사랑에 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공동체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가가 아니라, 혹시 소외되고 있는 한 사람이 없는가를 먼저 살피는 데 있다. 공리주의적 계산이나 평균의 논리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바로 그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결정은 단순히 다수의 편의나 효율성에 머무르지 않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서 완성된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이유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먼저 품으려 하기 때문이다. 소공동체와 문화 프로그램이 진정한 복음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먼저 드러나야 한다. 다소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아흔아홉 마리의 만족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기쁨, 바로 거기에 교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하느님 나라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 안에서도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라는 엠마오의 고백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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