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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는 누구를 위한 기쁜 소식인가?

작성자jamesha|작성시간26.06.06|조회수14 목록 댓글 0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들리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는 해방과 희망의 소식이지만, 부와 성공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질문과 회개의 요구로 다가온다.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며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선언하셨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려 한다." (루카 4,18)

 

복음서, 특히 루카 복음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드러낸다.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죄인들, 세리들, 여성들, 사마리아인들, 이방인들이 예수 안에서 존엄을 회복하고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는다. 그들에게 복음은 실제로 "기쁜 소식"이었다. 반면 예수께서는 부와 권력, 종교적 특권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날카로운 경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너희 부유한 사람들아,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24)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해 재물에 대한 집착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수 있음을 경고하셨다.

 

그러나 복음은 부자나 성공한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세리 자캐오의 집에 들어가셨고, 부유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도 제자로 받아들이셨다. 문제는 부 자체가 아니라, 부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게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복음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부자들에게는 쓴약이 된다. 그러나 쓴약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독약이 아니라 병을 고치기 위한 약이다.

 

복음이 부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난해지라는 명령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절대화하지 말고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라는 초대이다. 마리아의 찬가가 노래하듯 하느님께서는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신다"(루카 1,53). 이는 부자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뒤집힌 세상을 바로 세우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표현한 것이다. 결국 복음은 소외계층만을 위한 선언도, 성공한 사람들을 향한 저주의 메시지도 아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다. 다만 자신의 빈곤과 한계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기쁜 소식으로 들리고,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내려놓음과 회개를 요구하는 쓴약으로 들릴 뿐이다.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배려 속에서 시작되지만, 그 문은 부자들에게도 열려 있다. 다만 그 문은 재물이 아니라 회개와 나눔, 그리고 겸손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복음은 가난한 이를 위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부유한 이들을 위한 치료제이다. 기쁜 소식은 상처 입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쓴약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쓴약은 먹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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