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후지산자전거여행01 - 날개가 돋아나는 여행의 시작

작성자권 오 중|작성시간26.06.09|조회수40 목록 댓글 4

 


태풍을 기다리는 것보다 맞이하러 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예정했던 날보다 하루 먼저 길을 나섰다.
급한 결정이었지만 여행 전날 밤, 필요한 것들을 챙기며 마음도 함께 정돈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 비가 내리는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우비를 걸치고 자전거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서는 순간의 느낌은
마치 낯선 행성에 첫발을 디딘 탐험대 같았다.
익숙한 일상은 공항 문 안에 남겨 두고
문밖에는 비와 어둠, 그리고 아직 알 수 없는 여행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주변 도로는 차량들의 불빛 행렬이 쉼 없이 흘러갔다.
빗물을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들은 거대한 짐승처럼 맹렬한 소리를 냈고,
그 옆 도로 가장자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우리는 마치 떠돌이 강아지처럼 작고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초라함 속에도 안도감은 있었다.
우리에게는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오늘 밤 묵고 갈 안식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변에 이르렀을 때 커다란 붉은 토리이가 눈에 들어왔다.
비에 젖은 어둠 속에서도 그 존재감은 선명했다.
멀리 하네다 공항 활주로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고,
강변에는 비바람이 넓은 공간 위를 휘젓고 있었다.
토리이 한가운데에는 '平和(평화)'라는 이름이 크게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세계 평화를 위한 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하네다(羽田)라는 이름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羽는 '날개'를 뜻한다.
수많은 비행기가 날아오르고 내리는 공항의 이름으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글자가 있을까.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는 이곳을 통해
평화 또한 날개를 달고 오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거대한 붉은 토리이를 세웠을지도 모른다.
 
문득 토리이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 신사의 입구를 알리는 토리이(鳥居)는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새가 머무는 자리'이다.
새는 오래전부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우리 민속의 솟대 위에 앉은 기러기가 하늘의 뜻을 전하는 상징이었던 것처럼,
토리이 또한 인간과 신성한 세계를 이어주는 경계의 표식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세 개의 글자가 하나의 메시지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토리이의 '鳥(새)', 평화를 뜻하는 '平和', 그리고 하네다의 '羽(날개)'.
후지산을 향한 이번 자전거 여행은 단순히 길을 달리는 일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풍경을 만나고, 몸을 움직이고,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동안
내 안에도 보이지 않는 날개가 조금씩 자라날 것이다.
새가 먼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듯, 오래된 생각들은 털어내고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마음들이 깃들 것이다.
 
 
비 내리는 하네다 공항의 밤은
후지산 라이딩 여행의 첫 번째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풍경은 마치 여행이 건네는 첫 인사처럼 들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프란 | 작성시간 26.06.09 이번
    "일단 뛰어내려
    날개는 그 담에 펼쳐"식
    후지산 라이딩.

    펼칠 날개가 있을까? 했는데,
    날개가 될 배아줄기세포가
    내면에 있었군요


    잊지못할 이야기 한 줄
    남기셨어요.
  • 작성자김덕규 | 작성시간 26.06.09 드디어 시작된 후기

    과연
    몇편까지
    이어질지 궁금합니다~~ㅎ
  • 답댓글 작성자nodazy114114 | 작성시간 26.06.09 아마도 5박6일이라 열댓편은 분량을 뽑을수 있지 않을까요?
  • 작성자디아나 | 작성시간 26.06.10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 여행!
    후지산 자전거 여행!!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까?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