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다 공항 인근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 전철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신주쿠.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와구치코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전철이 신주쿠역에 도착하자 문이 열리고
순간, 아주 잠깐 공포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신주쿠역은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거대한 도시 자체이고,
여러 번 와 본 사람에게도 늘 새로운 출구와 통로를 만들어내는 미로 같은 공간이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밀려오고 흘러간다.
전광판은 끊임없이 정보를 쏟아내고, 각기 다른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들은 거대한 강물처럼 합쳐졌다 흩어진다.
세번째의 방문에도 정신이 없다.
16kg에 달하는 자전거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등에 멘 배낭에는 소주 여섯 병이 들어 있었고,
한 손에는 옷가지와 여행용품을 담은 가방까지 들고 있었다.
여행자라기보다는 작은 이삿짐을 옮기는 사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남쪽 출구를 찾아야 한다.'
'버스터미널 방향 표시를 놓치면 안 된다.'
하지만 신주쿠역은 그런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는 것 같다.
한참을 걸었는데 다시 익숙한 듯한 간판이 보인다.
분명 앞으로 갔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장소가 다시 나타나는 느낌이 찾아온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연결통로를 지나고,
사람들을 피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방향 감각이 흐려진다.
거대한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다.
문득 잡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미니벨로를 10kg 이하로 바꿔야 하나."
"아니면 결국 브롬톤인가."
브롬톤의 가벼움과 3단 접이식의 편리함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가격표를 떠올리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값비싼 장비는 여행을 편하게 만들어주지만, 때로는 자유롭게 굴리기 어려운 부담도 함께 안겨준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가다 멈추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버스터미널에 들어섰을 때 작은 산 하나를 넘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원래 계획은 정오 전에 도착해 1시나 3시 무렵 버스를 타고
가와구치코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비가와도 가벼운 비라면 가볍게 호숫가를 한 바퀴 돌며 라이딩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매표소 직원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매진 ."
남아 있는 것은 오후 5시 30분 출발 좌석 세 장뿐이었다.
그마저도 누군가 취소한 표가 우연히 나온 것처럼 보였다.
순간 일정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대기 시간.
비만 오지 않았다면 자전거를 타고 도쿄를 둘러보기에 좋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도심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혼자라면 무작정 빗속을 헤매며 돌아다닐 수도 있겠지만,
일행이 있는 여행에서는 오히려 산만하고 번거롭기만 하다.
자전거를 맡길 곳을 찾는 일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덕규님의 특유의 무데뽀 정신에 기대 보기로 했다.
버스터미널 에어컨 뒤편 구석에 자전거를 세워두었다.
맡긴다는 표현보다 방치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일.
주사위를 던져버리니 빈손에 가까워진 몸으로 도쿄 거리로 향했다.
바스타 신주쿠(バスタ新宿)는 서울의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도쿄 각지뿐 아니라 일본 전역으로 향하는 버스들이 쉼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후지산, 하코네, 마쓰모토, 나고야, 센다이….
행선지 이름들을 보고 있자니 또 다른 여행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를 벗어나 일본의 또 다른 풍경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그런데 먼저 신주쿠역이라는 거대한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
무거운 짐과 함께 그 미로가 얼마나 복잡한지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신주쿠역은 여행자에게 일본이라는 나라의 규모와 밀도를 실감하게 되는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다가온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김 원기 작성시간 26.06.10 잼나네
무대뽀 덕규와 헐레벌떡 다지님을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
작성자nodazy114114 작성시간 26.06.10 빗속에서라도 도쿄도청사전망대와 메이지신궁을 구경하고 가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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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권 오 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0 도쿄타워는 아니고 도쿄도청사 전망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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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nodazy114114 작성시간 26.06.10 권 오 중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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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디아나 작성시간 26.06.10 세상에…
자전거 정식 보관이 아니라 터미널 구석에
숨겨두고 시내를 다녀오셨네요.
김덕규님은 호연지기가 있는 천재시네요.!
그러니 비싼 수제 브롬톤 자전거는 아니되겠네요…
그리고 소주 6병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