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후지산자전거여행06 - 비 내리는 메이지의 숲에서

작성자권 오 중|작성시간26.06.11|조회수35 목록 댓글 1

 


도쿄도청사 전망대에서 흐린 도쿄를 내려다본 뒤
다시 비 내리는 거리로 돌아왔다.
 
가와구치코로 향하는 버스 시간까지는 아직 세 시간 남짓.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잠시 고민했다.
연인과 함께였다면 아마 신주쿠고엔의 정원을 걸었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비를 맞으며 요요기공원을 1시간 가량 천천히 달린 뒤 목욕탕으로 향했을 것이다.
친구 셋이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비 오는 숲길을 걷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메지지신궁으로 향했다.
 
신궁 입구를 지나 한 걸음 숲속으로 들어서니 조금 전까지의 도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신주쿠의 인파도, 전광판의 빛도, 끊임없이 울리던 차량 흐름과 소리도 멀어졌다.
대신 빗방울이 나뭇잎을 두드리는 소리와 젖은 흙냄새와 새소리가 숲을 채웠다.
마치 복잡한 현재를 떠나 깊은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숲은 울창했다.
비에 젖은 나무들은 더욱 짙은 녹색을 띠었고,
숲은 깊어 음습하다고 느껴질 만큼 깊이와 암연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수백 년, 어쩌면 천 년은 된 숲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숲은 의외로 젊다.
1920년 신궁이 창건될 때 전국 각지에서 기증받은 십만여 그루의 나무들로 조성된 인공림이다.
백 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며 숲은 스스로 자라고 번성하여 이제는 자연림처럼 보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천 년의 시간을 경외하지만, 천 년 역시 어느 날 시작된 백 년의 연속일 뿐이다.
지금의 메이지 숲도 100년 전에 일본 열도 각지에서 모여진 나무들에서 시작되었다.
백 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라 천 년으로 향하는 첫 번째 세대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메이지신궁은 이름 그대로 메이지천황을 모시는 신궁이다.
그러나 이곳을 걷다 보면 한 개인을 기리는 공간이라는 느낌은 크지 않다.
오히려 일본이라는 나라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거대한 전환의 기억을 담아 놓은 정신적 기념비처럼 느껴진다.
 
본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붉은 칠을 하지 않은 거대한 원목 토리이가 서 있다.
교토의 헤이안신궁에서 보았던 주홍의 거대한 토리이와는 전혀 다른 인상이다.
헤이안신궁의 붉음이 천 년 수도 교토의 화려함과 귀족 문화를 상징한다면,
메이지신궁의 원목 토리이는 담담하고 절제된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의 표정처럼.
 
본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잔자갈이 깔려 있다.
걸을 때마다 자갈이 자그락 소리를 냈다.
자그락거리는 단조로운 발걸음 소리따라 마음속 먼지가 털어지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잡함을 조금씩 벗겨내는 과정 같았다.
교토 헤이안신궁이 넓은 마당과 붉은 건물들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면,
메이지신궁은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교토의 헤이안신궁이 일본 고대국가의 완성과 천 년 수도의 기억을 상징한다면,
메이지신궁은 그 시대를 마무리하고 근대국가로 향하는 출발선에 서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웅비하기 직전의 힘.
밖으로 분출되기 전 안으로 응축되는 에너지.
비 내리는 숲길에는 그런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길 한편에는 전국 사케 양조장들이 봉납한 술통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수백 개의 술통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밤이 찾아와 불을 밝히면 더욱 도드라지고 아름다울 것이다. 
양조장들은 새해 첫 술을 신에게 바치며 풍요와 평안을 기원한다.
신앙과 산업, 전통과 홍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풍경으로 보였다. 
술통들을 보며 문득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과연 술통 하나를 봉납하는 데 얼마를 낼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신궁 가운데 하나인 이곳은 기업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장소일 것이다.
더하여 광고 이상의 가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국가라는 공동체의 전통을 지탱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
메이지신궁을 걸으며 느낀 또 하나의 인상은 '아름다움과 함께하며 관리되는 신앙'이었다.
신궁은 기부를 받고, 결혼식을 열고, 각종 행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나에겐 그것이 상업적으로 보이기보다 하나의 문화와 미학으로 승화되어 다가온다. 
작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아름다운 전통 혼례가 진행되는 모습도 보았다.
사람들이 기부하고, 공간은 유지되며,승화 변모되고 그 공간은 다시 사람들에게 기억과 의미를 돌려준다.
선순환의 구조였다.
 

문득 우리나라 사찰들의 기와불사가 떠올랐다.
좋은 뜻으로 기와에 이름을 적어 기부와 함께 올리지만,
때로는 그 흔적들이 정돈되지 못한 채 마당 한쪽에서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위치에서 방치된 듯한 모습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의미는 훌륭하지만 아름다움이 부족하면 감동도 의미도 반감된다.
결국 문화는 의미와 아름다움이 함께 갈 때 오래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숙소로 돌아온 뒤 신궁에서 보았던 메이지천황의 5개조 서약문을 찾아 정리해보았다. 
그 핵심은 단순했다.
 
공론의 정치 
국민 통합 
신분제 해체 
나쁜 관습 혁파 
세계 지식 수용
 
일본이 중세적 봉건국가에서 근대국가로 넘어가기 위해 내세운 방향들이었다.
물론 그 이후 일본의 근대화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라는 그림자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당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정리하고 함께 하려 했다. 
 
비 내리는 메이지의 숲을 걸고 온 뒤 글로 정리를 하며 하나의 질문을 품게 되었다.

" 우리는 조선이라는 중세를 과연 완전히 넘어섰는가?" 

대한민국은 눈부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혈연과 학연, 지역주의와 신분의 그림자,
권위주의적 문화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도는 근대화되었지만 의식은 얼마나 근대화되었을까.
공론은 충분히 살아 움직이는가.
능력보다 배경이 앞서는 일은 없는가.
전통은 지키되 혁신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메이지의 숲 산책 뒤 그런 질문들이 남겨졌다.
 
근대란 단순히 철도와 빌딩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질문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 질문은 지금의 일본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nodazy114114 | 작성시간 26.06.11 메이지신궁을 구경하고 나니 머리에 남은 것은 술통만 기억나요. 같은 루트를 돌았어도 깊이 있는 지식이 없이 눈으로만 스캔하니 알록달록만 남아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