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후지산자전거여행07 - 메이지의 숲에서 다케시타 거리로

작성자권 오 중|작성시간26.06.11|조회수45 목록 댓글 1

 


하라주쿠(原宿)는 오래전부터 일본 젊은이들의 거리로 알려져 왔다.
패션과 유행, 개성과 실험이 뒤섞이는 공간으로 
그 중심에 다케시타 거리(竹下通り)가 있다.
 
지난 3월 도쿄마라톤을 위해 도쿄를 찾았을 때는
다케시다 거리 입구 건너편을 지나며 이름만 바라보며 지나쳐 
언젠가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가와구치코행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주어졌다.
몇 시간 남짓한 여유을 갖고 다케시타 거리로 향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직전까지 내가 있었던 곳이 메이지신궁이었다는 점이다.
불과 몇 분 거리인데도 두 공간은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메이지신궁의 숲길을 걸을 때는 빗소리와 자갈 밟는 소리만 들렸다.
백 년 동안 자라난 숲은 도시의 소음을 삼켜버리고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반면 다케시타 거리는 전혀 달랐다.
화려한 간판들, 개성 넘치는 옷차림, 음악 소리, 음식 냄새,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조금 전까지 숲속 성역에 머물렀던 사람이 순식간에 젊음과 소비의 거리로 옮겨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성(聖)과 속(俗)을 한 번에 경험하는 시간 속에 있는지 모른다고.
신성함은 세속의 삶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일상과 단절된 거룩함은 공허해지기 쉽다.
반대로 세속적인 욕망과 소비만 남게 되면 삶은 쉽게 피로해지고 불안해진다.
 
메이지신궁과 다케시타 거리가 바로 옆에 존재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균형 때문일지 모른다.
근대 일본의 정신을 상징하는 숲이 있는가 하면,
그 곁에서는 젊은 세대의 상상력과 놀이가 끊임없이 피어난다.
국가와 역사, 전통과 정신이 한쪽에 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유행과 취향, 개성과 자유가 꿈틀거린다.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B급 문화의 생명력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질서만으로는 숨이 막히고, 자유만으로는 방향을 잃는다.
메이지의 숲과 다케시타 거리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으면서도 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거리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사진과 영상에서 보던 인파의 물결은 아니었다.
덕분에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상점들도 눈에 들어왔다.
캐릭터 상품점, 개성 강한 의류 매장, 체험형 공간들.
시간이 충분했다면 하나하나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후지산이 기다리고 있다. 
그저 거리를 따라 걸으며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눈에 담아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시 신주쿠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
도쿄의 또 다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철길이다.
도쿄를 걷다 보면 철도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도시의 골격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서울의 중심이 도로라면 도쿄의 중심은 철도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수많은 노선이 도심으로 뻗어 들어오고, 서로 교차하고, 다시 갈라진다.
그래서인지 도쿄에는 건널목이 많다.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차단기가 내려오고,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린다.
철길 아래로 난 작은 통로들도 자주 만난다.
낡은 콘크리트 벽, 기차가 지나갈 때 울리는 진동, 어둑한 조명.
처음에는 불편해 보이지만 어느새 그것이 이 도시의 개성으로 다가왔다. 
서울은 철길을 지하화하거나 입체화해 흔적을 감추려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도쿄는 철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힌 도시처럼 보인다.
오래된 건널목 옆에는 최신식 빌딩이 서 있고,
수십 년 된 철길 아래에는 세련된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고 일상을 쉬고 가는 선술집들도 많이 보였다.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않고 현재 위에 덧씌우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몇 번의 도쿄여행에서 만난 매력 중에 
도쿄는 거대한 세계도시인데도 동시에 오래된 지방도시 같은 정취가 남아 있다.
최첨단과 낡음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도쿄는 새로움을 만들고 있지만,
그 새로움은 오래된 시간 위에 조심스럽게 덧그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거대한 도시가 화려함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 남아 있는
오래된 철길의 진동과 젖은 숲의 냄새가 함께 기억되기 때문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nodazy114114 | 작성시간 26.06.11 버스 보다는 전철이 주 교통수단인거 같았어요. 허름한 딋골목 길을가다 계단만 올라가면 바로 전철플랫폼이 나오더군요. 여기서 기억에 남는것은 애완용 새끼돼지카페가 있어 가족, 연인들이 모여 새끼돼지를 안고 털을 그루밍하고 있어서 우리나라도 곧 돼지를 주무르는 카페가 생기려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