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의 숙소를 예약할 때 가성비를 찾는다고 해서 무조건 싼 곳만 찾는 것은 아니다.
후기를 읽고, 주변 로드뷰를 살펴보고, 그 공간에서 맞이할 아침을 상상한다.
아침 산책을 할 만한 길이 있는지, 산책 뒤 커피 한 잔 마실 가게는 있는지,
잠시 머물며 영혼을 쉬게 할 종교적 공간은 있는지 살핀다.
더하여 숙소 내부에 마음을 움직일 만한 감성의 결이 있는지도 찾아본다.
가와구치코에서 이틀을 머물 카게로우 호스텔도 그렇게 선택했다.
리뷰는 좋았다. 창밖으로 후지산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호스텔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이 그래 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다만 저렴한 가격에 답답함이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사진 속 공간이 편안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실제로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출입문의 감촉이었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럽게 열리는 문.
문 하나에도 안과 밖을 분명하게 나누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문을 지나자 마치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세계가 펼쳐졌다.
현실과 여행 사이의 경계가 그 문턱에서 자연스럽게 바뀌는 느낌이었다.
공간의 분위기는 묘했다.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경쾌했다.
최근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처럼 묵직한 바순과 콘트라베이스가 전체 분위기를 잡고
그 위로 바이올린 선율이 가볍게 흐르는 듯했다.
공간은 사람을 말없이 환영하고 있었고,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10인실 도미토리도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고, 공간은 적당히 나뉘어 있어 답답함이 없었다.
창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자는 자유를 얻는다.
저녁에는 호스텔 마당에서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했지만
초라함이 아닌 낭만이 넘쳤다.
정원이 아름다운 집의 마당에 앉아 저녁을 맞이하는 듯했다.
시원한 밤공기가 깔리고 여행의 피로가 천천히 녹아내렸다.
음식보다 공간이 식사를 더 맛있게 만드는 밤이었다.
떠나는 날 새벽,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한 뒤 차분한 호스텔 내부를 사진으로 담았다.
좋았던 느낌을 기록하고 싶었다.
사진은 공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붙잡는 일이다.
언젠가 흐려질 기억을 위해 그 시간의 결을 저장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카게로우'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카게로우 陽炎(かげろう).
열기에 의해 공기가 흔들리며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현상을 뜻한다.
그 의미를 읽는 순간,
뜨거운 스페인 고원을 걸어가는 돈키호테의 모습이 떠올랐다.
먼 곳에 무엇인가 있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져 버리는 풍경.
어쩌면 여행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만나기 위해 떠나지만, 결국 찾고자 했던 것은 뚜렷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후지산 자전거여행을 왔지만 후지산은 버스 창밖에서 잠시 얼굴을 보여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은 실패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행의 본질은 그렇게 선명하지 않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지랑이 같은 경계 속을 걸어가며,
예상하지 못한 풍경과 사람을 만나고, 내가 가진 생각의 굳어져가는 단선들을 조금씩 허물고 돌아오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경과 인연, 맛과 감정은 모두 순식간에 지나간다.
붙잡을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답고, 사라지기에 더욱 오래 남는다.
'카게로우'
뜨거움이 만들어내는 흔들림.
그리고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잔상.
이번 여행에서 나는 '여행의 의미'를 '뜨거움과 잔상'이라는 말로 새롭게 정리하게 되었다.
카게로우 호스텔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공간은 한편에 마련된 가미다나(神棚)였다.
일본의 집이나 마을 골목길, 가게 등에 작은 신사처럼 꾸며진
그 공간에서 일본인들은 신성과 연결하는 장소이다.
우리네 거주 공간에도 오래전 조왕신, 성주신을 모시던 공간이 있었고 비슷한 흐름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카레로우 호스텔 가미다나(神棚) 아랫단에는
그 아래에는 지역 문화와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의 흔적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영화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말이 떠올랐다.
"무스비(結び)." 인연.
사람과 사람을 잇고, 시간과 시간을 잇고,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는 힘.
가미다나 위에서는 하늘과 땅이 연결되고, 아래에서는 여행자와 지역이 연결된다.
신성과 일상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모습은 마치 여행 자체를 상징하는 듯했다.
결국 좋은 여행은 멀리 가는 여행이 아니다.
땅과 연결되고, 사람과 연결되고, 머무는 공간과 연결되는 여행이다.
그 안에서 무스비, 인연의 흐름이 생겨난다면 그 여행은 충분히 아름답다.
여행 중 마음에 드는 숙소를 만나면 마음 한구석에 작은 씨앗 하나가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곳을 떠올리게 된다.
가와구치코의 카게로우 호스텔도 그렇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지나간 시간.
하지만 오래도록 남아 있을 잔상.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한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찾아올 거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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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nodazy114114 작성시간 26.06.15 숙소는 도미토리 치고는 편하게 숙박할수 있도록 구조가 독립적으로 배려를 많이 한 흔적이 보였다. 나는 아지랭이, 신기루, 인연, 신성, 잔상 등 아무것도 안보이고 사물함에 놓고온 팩킹백만 자꾸 생각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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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권 오 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5 기부인가 고미인가?
헤깔릴 듯^^ -
작성자김덕규 작성시간 26.06.17 2틀이나 묵은 숙소 근처
중화 소바를 못먹은게
아쉽습니다.
맛집인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