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TyYcNtnD6g?si=gvtsFEsTyzQ1fvR0&t=663
가와구치코는 후지산 북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카게로우 호스텔에서 이틀을 머문 뒤, 후지산 남쪽에 있는 이즈반도를 향해 길을 나섰다.
최종 목적지는 슈젠지 온천마을.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후지산의 서쪽 자락을 돌아 후지노미야까지 내려가야 했다.
지도를 펼쳐보면 이 길은 후지산을 한 바퀴 도는 여정의 절반쯤에 해당한다.
후지산 북쪽에서 서쪽을 지나 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후지산을 향해 오르는 길이 아니라 곁을 따라가는 길이다.
- 11분 이후 영상
해발 1,000m 안팎의 산록도로를 달리다가 후지노미야를 향해 길게 내려가는 코스다.
높이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후지산의 품 안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71번 도로는 기대 이상이었다.
산록도로라고 해서 힘겨운 오르내리막을 예상했지만 길은 숲속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졌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낙타등 같은 길이었지만 약한 낙타등이라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리듬감이 있었다.
기분 좋게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르고,
다시 내렸다.
스치는 푸르름이 만들어주는 박자에 맞추어 페달을 밟는 기분이었다.
유월의 숲은 가장 싱그러운 계절의 한가운데 있다.
나무들은 경쟁하듯 짙은 녹음을 펼쳐 보였고, 숲은 아낌없이 그늘을 내어주었다.
바람이 스치면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작은 파도 소리를 냈고,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면 반겼다.
빛을 따라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충만해왔다.
후지산은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여행 내내 그랬다.
이른 아침 산책에서는 구름 뒤에 숨어 있다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고는 다시 사라졌다.
그러다 후지산 산록도로를 달리다 목장 부근의 개활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후지산이 나타났다.
거대한 산체가 구름을 비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을 따라 계속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오래 머물러 주지도 않았다.
마치 아쉬움에 가득한 떠나는 여행자를 향해 잠시 손을 흔들어 주듯 짧은 만남이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담았다.
후지산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모든 것을 보여주기보다,
아주 조금만 보여주며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셋째날 라이딩은 먼 길을 가야 했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간단히 빵과 음료만 먹고 출발했다.
가는 길에 목장에서 운영하는 가게를 구글지도에서 보았다.
직접 만든 치즈피자와 커피가 좋다는 이야기를 보고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여행에는 늘 이런 작은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다른 즐거움이 채워준다.
가는 길에 들려보기로 한 시라이토 폭포에 도착 뒤
폭포 입구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사들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폭포 위쪽 숲에 자리를 잡고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편의점에서 산 간단한 먹거리뿐이지만
숲과 물소리, 시원한 공기가 함께하는 식탁은 어떤 레스토랑보다도 훌륭했다.
여행에서 가장 좋은 식사는 비싼 음식이 아니라
좋은 풍경과 함께 좋은 사람과 하는 식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라이토 폭포를 지나 후지노미야로 향하는 길은 또 다른 선물이었다.
후지산이 평퍼짐하게 펼쳐지는 땅에 따라 이어지는 작은 마을길이다.
논과 밭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오래된 집들이 조용히 길가를 지키고 있었다.
관광지가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풍경.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왔다.
길은 평화롭게 다가왔고 지금 이 시간은 느리게 달려가고 싶었다.
후지산을 향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후지산보다 이 마을길이 더 좋았다.
관광안내에는 나올 수 없는 그저그런 풍경들이다.
지도에서는 이름 없이 지나가는 길들.
하지만 그런 길에서야말로 때론 여행자에게 예상하지 못한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후지노미야에 도착해서는 후지산을 신처럼 모시는 센겐신사를 찾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후지산을 바라보며 품어왔을 경외심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신사를 둘러본 뒤에는 후지노미야역에서 전철을 탔다.
이즈반도 입구인 누마즈의 가타하마역까지 이동한 후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슈젠지.
후지산 곁을 따라 이어지던 길은 이제 바다와 온천의 땅, 이즈반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와구치코에서 후지노미야까지의 길은 후지산을 보는 여행이라기보다
후지산 곁을 여행하는 시간이었다.
초록이 넘실거리는 숲길.
몸을 기분 좋게 흔들어 주던 부드러운 업다운.
잠시 모습을 드러낸 후지산의 인사.
그리고 산자락 마을들이 보여준 평화로운 풍경.
그 모든 것이 이어져 하나의 길이 되었다.
후지산은 끝내 자신을 모두 보여주지 않았지만,
대신 그 산이 품고 있는 숲과 바람,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