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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자전거여행 14 - 후지산의 물길과 사무라이의 활시위: 역사를 잇는 자전거 여행

작성자권 오 중|작성시간26.06.17|조회수23 목록 댓글 1

 


후지산 자락을 따라 내달린 자전거의 페달링이 잦아들 무렵,
마을 길의 정겨운 공기를 가르며 후지노미야역 인근에 닿았다.
그곳엔 오랜 세월 후지산의 영험함을 품어온
후지산 본궁 센겐 대사(富士山本宮浅間大社)가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물을 것이다.
일본 여행길에서 왜 그리 자주 신사를 들르냐고.
잡신을 모시는 기복 신앙의 공간 아니냐는 냉소 섞인 시선도 있다.
내게 일본의 신사는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최고의 지리적 미학이 머무는 공간이자,
흩어진 역사의 조각들이 이야기로 하나로 꿰어지는 인문학적 정거장이다.


 
이번 여행의 도착지인 센겐 대사는 그 정점에 있었다.
후지산을 신격화하여 받드는 전국 센겐 신사의 총본산답게 그 위용은 남달랐다.
습한 공기 탓에 토리이 너머 본전 뒤로 보여야 할 후지산은 몸을 숨겼지만,
'미야(宮)'라는 발음이 도시 이름 '후지노미야'의 뿌리가 되었음을 상기하니
이 공간이 지닌 지역적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야기의 꼬리로 연결시켜 이끈 것은 신사 입구에서 마주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기마궁술상이었다.
작년 봄 자전거여행 중, 큐슈에서 혼슈로 넘어오며 마주했던 시모노세키의 붉은 아카마신궁이 떠올랐다.
1185년 단노우라 해전에서 패배한 다이라 가문의 비극과 어린 안토쿠 천황의 넋을 기리던 그 슬픈 바닷가.
그 비극을 딛고 승리자가 되어 일본의 중세를 열어젖힌 인물이 바로 미나모토노 가문의 요리토모였다.
올봄 도쿄 마라톤을 마치고 다녀온 가마쿠라는 그가 세운 막부의 심장부인 도시였다.
시모노세키에서 가마쿠라로, 그리고 이곳 후지산 아래 센겐 대사까지.
나의 여행 궤적은 일본 중근세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의 출발과 맞물리고 있었다.


 
요리토모가 이곳 센겐 대사에서 말을 달리고 활을 쏘는 '야부사메(流鏑馬)'를 거행한 것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을 것이다.
후지산 자락의 광활한 평원은 제주도를 연상케 하듯 말을 기르고
군사를 훈련하기에 최적의 요새였을 것 같다. 
자전거로 후지산 산록을 내려오면서 그런 느낌들이 전해왔다. 
 
교토의 귀족들이 시와 예술이라는 관념의 세계에 머무를 때,
요리토모는 이곳의 물리적 환경을 장악하며 새로운 힘을 키웠다.
 
흔히 막부 정치를 사무라이의 무력 통치로만 치부하지만,
그 이면에는 물질과 도구, 공간을 통제하는 '기술 관료적(Technocracy)' 혁신이 숨어 있었다.
귀족 문화가 정신의 세련됨을 추구했다면,
막부의 문화는 토목, 건축, 군사 등 실용적 시스템의 효율성을 지향했다.
이는 세상을 물리적으로 개조하려 했던 물질적 기술 문명의 새로운 실험과 도전이었던 셈이다.


 
신사 한편에 자리한 와쿠타마이케(湧玉池) 연못은 이러한 기술적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했다.
후지산의 눈 녹은 물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암반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이 용출수 연못은
하루에도 수십만 톤의 맑은 물을 내뿜는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명수처럼, 요리토모가 구축한 실용주의적 토대는
일본의 역사를 700여년을 가르며 지배하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었다.
 
문득 비슷한 시기 우리 고려의 무신 정권이 떠올랐다.
만약 몽골의 침략이라는 외부적 변수가 없었다면,
최충헌 일가가 꿈꿨던 새로운 동력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 꽃을 피웠을까?
일본은 태풍과 지리적 이점 덕에 몽골의 침략을 막고 막부의 실용 문화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다시 왕과 귀족의 관념적 문화로 회귀해야 했던 역사의 갈림길이 못내 아쉽게 다가왔다.
 
자전거 여행은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력을 허락한다.
후지산은 보이지 않았지만,
센겐 대사의 맑은 용출수 소리와 요리토모의 말발굽 소리가 우리의 미니벨로의 달리는 소리와 겹쳐  맴돈다.


 
지리적 배치가 주는 아름다움에서 시작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사유하게 하는 것,
이것이 내가 계속해서 길 위로 나서는 이유이자 다음 여행을 설레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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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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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nodazy114114 | 작성시간 26.06.17 멋진 신사였어요. 일본의 인물을 역사 속에서 유추해 보고 우리의 지나간 동시대 역사와 비교해 보면 흘러간 역사기 때문에 아쉬움만 남죠. 만약 내가 그 역사적인 순간에 결정권이 있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선택하는데는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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