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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동곽리(東郭履)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4|조회수387 목록 댓글 0

 

동곽리(東郭履)

동곽의 신발이라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비유한 말이다.

東 : 동녘 동(木/4)
郭 : 성곽 곽(阝/8)
履 : 신발 리(尸/12)

 

출전 :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효무제(孝武帝) 때 제(齊)나라 사람 동방 선생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삭이라 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책을 좋아하고 경술을 사랑하며 경사 외의 전기나 잡설도 두루 읽었다.

효무제 때 대장군 위청(衛靑)은 위(衛)나라 황후의 오빠로 장평후(長平侯)에 봉해졌다. 그는 종군하여 흉노를 무찌르고 포로들을 잡아 공을 세웠다. 그가 돌아오자 황제는 조서(詔書)를 내려 황금 천근을 내렸다.

위청이 궁궐을 나서자, 그 당시 공거(貢擧; 조정의 공문과 신하나 백성들의 상소문을 처리하는 부서)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던 동곽선생(東郭先生)이 수레를 가로 막고는 절을 하며 말했다.

동곽왈, “왕 부인께서는 새로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만 그녀의 집이 가난합니다. 지금 장군께서 황금 천근을 받았으니, 부디 왕 부인의 부모님께 그 절반을 주십시오. 황제께서 이 일을 들으면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이는 매우 기이한 것으로 실행하기도 편리한 계책입니다.”

위청은 감사의 말을 하고는 동곽선생의 말대로 황금 오백 근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주었다. 며칠 후, 이 소식을 들은 왕부인은 위청의 행동에 감사하며 무제에게 말 했다.

그러자 무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대장군은 이런 일을 할 줄 모른다.” 그리고는 위청을 불러 이런 계책을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물었다.

위청은 말했다. “조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곽선생에게 받았습니다.” 이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동곽선생을 부르고 군(郡)의 도위(徒尉)로 임명하였다.

동곽선생은 오랫동안 공거(貢擧)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빈곤하여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으며, 옷은 해지고 신발도 온전치 못해서 눈 속을 걸어가면 신발이 위만 있고 바닥은 없어서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

길 가던 사람들이 동곽선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를 쥐고 웃자 동곽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신을 신고 눈 속을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볼 때 그 위는 신발이지만 아래는 사람의 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소?”

동곽리(東郭履)는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운 동곽선생의 신(履)이 닳고 달아 신의 윗면만 있고 밑면은 없어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가난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예로부터 선비는 가난을 미덕으로 삼았다.

이 동곽선생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청빈한 선비의 모습을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지혜를 덜어 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도 복록이 미치고 그 복록의 힘으로 스스로의 영예까지 걺어쥐는 지혜를 살필 수 있다.

즉, 지혜의 번짐을 넓고도 크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으려면 사심을 버린 도량이 필요하다. 계산속에서 이런 지혜가 나올리는 만무하다.

 

정치인의 구두밑창

 

어떤 정치인이 자신의 벌어진 구두밑창 사진을 공개했다. '선거에 임하는 그의 절박함이 오롯이 녹아 있다'는 설명 문구 중 절박함이란 단어가 눈길을 잡는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숱하게 써 먹어 이젠 식상한 구두밑창 홍보가 다시 등장한 것을 보니 절박하긴 한가보다. 상대당에서는 이를 두고 '조작된 이미지'라 논평했다. '그의 떨어진 구두를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비서실의 설명이 안쓰럽다 못해 민망하다'며 정치는 진정성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인들의 낡고 벌어진 구두 밑창 사진 중 가장 이슈가 됐던 컷은 서울시장 후보 시절 인사의 사진이었다. 그의 구두 뒤축은 지나치게 찢어져 금방이라도 밑창이 떨어져 나갈 상태였다. 사진 작가는 '가끔 렌즈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킬 때도 있다'며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그의 구두 사진은 빠르게 확산되며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의 검소함을 칭송하던 여론이 시간이 지나며 연출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변해갔다. 형편없이 훼손된 구두 뒤축은 오래 신어 닳은 것이라기 보다 개가 물어뜯은 듯 함부로 뜯긴 모습이었다. 뒤창에 비해 지나치게 생생한 구두 외관도 어색했다. 이에 대해 후보 캠프의 홍보전략 담당자는 후보의 낡은 구두가 좋은 선거전략 자원이 될 수 있어 사진을 찍은 것뿐이며 따로 연출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애들레이 스티븐슨 2세'는 그가 신은 낡은 구두 사진이 화제로 떠올라 주목받은 최초의 정치인이다. 1952년 9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와 겨루게 된 민주당의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버거운 상대와 힘든 유세를 치러야 했다.

 

스티븐슨이 미시간주의 플린트 시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 노동자 대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현장에서 후보사진을 건지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더 플린트 저널'의 '윌리엄 M. 갤러거' 기자는 다리를 꼬고 앉은 스티븐슨 후보의 신발 밑창에 뚫린 구멍을 발견했다.

 

신문에 보도된 구멍 난 구두 사진 덕분에 대통령 후보였던 스티븐슨은 청렴한 정치인으로 큰 지지를 받았고, 사진을 건진 갤러거 기자는 이듬해인 195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스티븐슨은 구멍 난 구두 이미지를 그의 근면과 청렴을 상징하는 선거 운동용 옷핀으로 만들며 열심히 유세를 펼쳤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익살맞고 재미있는 일화를 모아놓은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신발의 밑창이 다 닳아 없어져서 거의 맨발로 다닐 만큼 몹시 가난했던 동곽 선생의 이야기가 전한다. 동곽 선생의 신발 일화가 유명해지다 보니 동곽의 신발이라는 의미인 동곽리(東郭履)가 몹시 가난한 형편을 일컫는 성어가 되었다.

 

동곽 선생은 가난을 오히려 희화하는 해학과 영민한 계책으로 전한(前漢)의 황제인 무제(武帝)의 인정을 받아 벼슬자리에 오른 제(齊)나라 사람이다. 벼슬을 얻기 전 동곽 선생의 행색은 남루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는 누더기와 밑창이 다 닳아 없어진 신을 걸치고 다녔는데 눈 속을 걸으면 신발의 밑창이 거의 없어 발바닥이 맨 땅에 닿았다.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딱하다 걱정했지만 동곽 선생은 태연히 웃었다. '나 말고 세상 어떤 사람이 눈 덮인 길을 걸으며 위는 신발인데 아래는 맨발이 보이게 할 수 있겠는가'

 

동곽 선생처럼 멀쩡한 신을 구할 형편이 되지 못해 밑창 떨어진 신발을 신는 사람은 요즘 대한민국엔 없다. 너덜거리는 신을 끌고 다닌다면 아마 구멍 나고 찢어진 패션인 '디스트레스트 룩(distressed look)'을 멋으로 연출한 것일 게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느라 모르는 사이에 벌어졌다는 정치인의 구두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자신의 승리가 아닌 절박한 민생을 위해 구두 밑창이 벌어질 만큼 뛰어다닐 수 있을까.

東(동녘 동)은 ❶상형문자로 东(동)은 간자(簡字)이다. 東(동)의 옛 모양은 전대에 물건을 채워 아래 위를 묶은 모양인데, 나중에 방향의 東(동)으로 삼은 것은 해가 떠오르는 쪽의 방향이 동이므로 같은 음(音)의 말을 빈 것이다. 옛 사람은 東(동)은 動(동; 움직이다)과 같은 음(音)이며 動(동)은 봄에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春(춘; 봄)은 동녘과 관계가 깊다고 결부시켰던 것이다. ❷상형문자로 東자는 ‘동쪽’이나 ‘동녘’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東자는 木(나무 목)자와 日(날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해(日)가 떠오르며 나무(木)에 걸린 모습으로 해석하곤 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東자가 보따리를 꽁꽁 묶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東자의 본래 의미는 ‘묶다’나 ‘물건’이었다. 그러나 후에 방향을 나타내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동쪽’이나 ‘동녘’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다만 東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여전히 보따리와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보따리에는 곡식의 씨앗이 가득 들어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니 東자가 쓰인 重(무거울 중)자나 種(씨 종)자, 動(움직일 동)자, 量(헤아릴 량)자, 衝(찌를 충)자는 모두 곡식이 든 보따리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東(동)은 (1)동쪽 (2)동가(東家)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동녘 ②동쪽 ③오른쪽 ④주인(主人) ⑤동쪽으로 가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녘 서(西)이다. 용례로는 동쪽 방면을 동편(東便), 동쪽을 향함을 동향(東向), 동쪽의 땅을 동토(東土), 동쪽 지방을 동방(東方), 동쪽의 바다를 동해(東海), 어떤 지역의 동쪽 부분을 동부(東部), 동쪽으로 옮김을 동천(東遷), 동쪽으로 난 창을 동창(東窓),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동풍(東風), 동쪽에 있는 이웃을 동가(東家), 동쪽을 향함을 동향(東向), 동쪽에서 옴을 동래(東來), 동쪽 마을을 동촌(東村), 동쪽의 땅을 동토(東土), 동쪽에 있는 나라를 동방(東邦), 봄철에 농사를 지음 또는 그 농사를 동작(東作), 동쪽 방면이나 동쪽 편을 동편(東便),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동쪽을 묻는 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동문서답(東問西答), 동쪽으로 뛰고 서쪽으로 뛴다는 동분서주(東奔西走), 동쪽과 서쪽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동서불변(東西不變), 동에서 번쩍 서에서 얼씬한다는 동섬서홀(東閃西忽) 등에 쓰인다.

郭(둘레 곽/외성 곽)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우부방(阝=邑;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둘러싼 성벽의 망루(望樓)를 나타내는 享(향, 곽)으로 이루어졌다. 주민을 지키는 '바깥 울타리'의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郭자는 '둘레'나 '가장자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郭자는 享(누릴 향)자와 邑(고을 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享자는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는 사당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郭자를 보면 단순히 성벽과 출입구만이 그려져 있었다. 고대의 성곽은 동서남북이나 남북방향으로 출입구가 있었다. 그래서 갑골문에서는 성벽과 출입구를 그려 성의 외곽을 뜻했었다. 이후 소전에서는 邑자가 추가되었고 해서에서는 성곽을 享자로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의 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郭(곽)은 (1)성(姓)의 하나 (2)도성의 외곽을 둘러싼 토벽(변해서 모든 것의 외곽을 말함) 등의 뜻으로 ①둘레 ②가장자리 ③성곽(城郭: 도읍을 둘러싼 성) ④외성(外城: 성 밖에 겹으로 둘러 쌓은 성) ⑤외위(外圍: 바깥 둘레) ⑥가죽, 피부(皮膚) ⑦칼집(칼의 몸을 꽂아 넣어 두도록 만든 물건) ⑧성(姓)의 하나 ⑨벌리다 ⑩뻗어 퍼지다 ⑪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둘레 곽(廓). 용례로는 어떤 구역의 안을 곽내(郭內), 어떤 구역의 밖을 곽외(郭外), 내성과 외성을 아울러 일컫는 말을 성곽(城郭), 하나의 담으로 막은 지역을 일곽(一郭), 안쪽 테두리를 내곽(內郭), 높이 우뚝 솟아 벽같이 된 산을 산곽(山郭), 마을과 도시를 방곽(坊郭), 책장의 사주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선을 광곽(匡郭), 남곽이 함부로 분다는 뜻으로 학예에 전문 지식도 없이 함부로 날뜀을 두고 이르는 말을 남곽남취(南郭濫吹) 등에 쓰인다.

履(밟을 리/이, 신 리/이)는 ❶회의문자로 尸(시; 사람)와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뒤져올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部(둘 다 걸어감)와 舟(주; 나막신의 모양; 본자의 구성자)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신고 다니는 것의 뜻이 전(轉)하여 밟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履자는 ‘밟다’나 ‘행하다’, ‘겪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履자는 尸(주검 시)자와 復(돌아올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고문(古文)에 나온 履자를 보면 舟(배 주)자와 正(바를 정)자, 頁(머리 혈)자가 겹쳐진 모습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배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소전에서는 모습이 크게 바뀌게 되었지만 履자는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밟다’나 ‘행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履(리/이)는 ①밟다 ②(신을)신다 ③행(行)하다 ④겪다 ⑤지위(地位)에 오르다, 자리에 나아가다 ⑥신, 신발 ⑦괘(卦)의 이름 ⑧복(福), 복록(福祿: 복되고 영화로운 삶) ⑨행실(行實), 행하는 바, 행동(行動) ⑩밟는 땅, 영토(領土) ⑪예(禮)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약속이나 계약 등을 실제로 행하는 것을 이행(履行), 지금까지 학업이나 직업 따위의 경력을 이력(履歷), 학문의 과정을 순서를 밟아서 닦음을 이수(履修), 약속이나 계약 등을 실행함 또는 이행함을 이천(履踐), 사람이 다니는 발자국 소리를 이성(履聲), 그해의 첫머리를 지내고 있다는 뜻으로 정월을 이르는 말을 이원(履元), 얇은 얼음을 밟음을 이빙(履氷), 품행이 고상함을 이상(履尙), 범의 꼬리를 밟는다는 뜻으로 위험한 일의 비유한 말을 이미(履尾), 새로운 것을 밟는다는 뜻으로 신년을 달리 이르는 말을 이신(履新), 밟은 발자국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다닌 자취를 이르는 말을 이종(履蹤), 나막신을 목리(木履), 흙으로 구워 만든 신을 토리(土履), 가죽으로 지은 신을 혁리(革履), 흰 빛깔의 가죽신을 소리(素履), 신을 신음을 섭리(躡履), 짚신을 달리 이르는 말을 망리(芒履), 깨끗한 행실을 청리(淸履), 실천함으로 몸소 이행함을 천리(踐履),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다는 뜻으로 이승에서 살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대리(戴履), 이익을 늘림을 식리(飾履), 마음으로 지키는 지조와 몸으로 행하는 행실을 조리(操履), 계약을 맺을 때에는 갚을 능력이 있었으나 나중에 갚을 수 없게 되는 일을 이행불능(履行不能), 마른 날에는 신으로 신고 진 날에는 나막신으로 신는다는 뜻으로 모든 일을 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음의 비유한 말을 이극구당(履屐俱當),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뜻으로 몹시 빨리 걸어 감을 이르는 말을 족불리지(足不履地), 봉황을 수 놓은 관과 꽃무늬를 놓은 신이라는 뜻으로 여자의 잘 차린 단장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봉관화리(鳳冠花履),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엷은 얼음을 밟듯이 세상의 처세에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박빙여리(薄氷如履), 관과 신발을 놓는 장소를 바꾼다는 뜻으로 상하의 순서가 거꾸로 됨을 두고 이르는 말을 관리전도(冠履顚倒), 애꾸가 환히 보려 하고 절름발이가 먼 길을 걸으려 한다는 뜻으로 분에 넘치는 일을 하다가는 오히려 화를 자초함을 이르는 말을 묘시파리(眇視跛履), 옷은 헤어지고, 신발은 구멍이 났다는 뜻으로 빈천한 차림을 이르는 말을 의리폐천(衣履弊穿), 깊은 곳에 임하듯 하며 얇은 데를 밟듯이 세심히 주의하여야 한다는 말을 임심이박(臨深履薄)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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