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안룡(獨眼龍)
애꾸눈 용이란 뜻으로, 눈이 하나뿐인 장애를 딛고 용맹을 떨쳤거나 공을 세운 사람을 일컫는다.
獨 : 홀로 독(犭/13)
眼 : 눈 안(目/6)
龍 : 용 룡(龍/0)
출전 :
오대사(五代史) 당기(唐記)
당서(唐書) 이극용전(李克用傳)
애꾸눈의 용이란 뜻으로, 한 눈을 가지고도 용맹한 사람을 말한다. 오대사(五代史) 당기(唐記)와 당서(唐書) 이극용전(李克用傳) 등에 나오는 말이다.
당(唐)나라는 말기에 이르러 안에서는 환관의 전횡이 심하고 밖에서는 각지의 절도사들이 발호하여 국정이 몹시 어지러웠다. 농민들은 정권의 부패로 과도한 세 부담에 시달렸는데, 여기에 기근이 겹치자 농토를 떠나 유적(流賊)이 되었다.
9세기 후반, 희종(僖宗) 때 소금 암매상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와 함께 이런 농민들을 이끌고 난을 일으켜 수도 장안을 점령하였다. 그러고는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국호를 대제(大齊)라 하였다. 희종은 난을 피해 촉의 성도(成都)로 몽진했다. 그 곳에서 희종은 돌궐족 출신의 맹장 이극용(李克用)에게 황소군의 토벌을 명하였다.
이극용은 일찍이 방훈(龐勛)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절도사(振武節度使)로 임명된 이창국의 아들로 젊어서부터 용맹을 떨쳤다. 그는 4만여 명의 군사를 직접 지휘하며 반군과 싸웠는데, 이때 그의 군사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갈가마귀 군사[鴉軍]라고 불리었다. 이극용의 군대는 용맹하여 반군들은 이들을 보기만 하여도 벌벌 떨었다 한다.
희종은 난 중에 죽고, 소종(昭宗)이 즉위한 884년 이극용은 허난[河南]에서 황소를 패사(敗死)시켜, 이 공으로 진왕(晉王)에 책봉되었다. 황소의 난을 평정한 후 이극용은 같은 시기에 동평군왕(東平郡王)에 책봉된 주전충(朱全忠)과 하북 3진(鎭)을 놓고 다투었다. 주전충이 하중(河中)을 제압하자 실의에 차 있다가 병사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절개를 지키며 당에 충성을 다하려는 이극용을 높게 평가했는데, 이극용의 한쪽 눈이 아주 작아 거의 감겨 있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독안룡이라 불렀다. 이와 같이 독안룡은 본래 애꾸눈의 용맹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후에는 애꾸눈이지만 덕이 많은 사람까지도 지칭하게 되었다.
독안룡(獨眼龍)
애꾸눈 용이란 뜻으로, 눈이 하나뿐인 장애를 딛고 용맹을 떨쳤거나 공을 세운 사람을 일컫는다.
당나라 희종(僖宗) 때 천재지변으로 농사가 황폐해지자, 산동 출신의 야심가 황소(黃巢)가 굶주린 백성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황소는 곳곳에서 관군을 깨뜨리고 세력을 점차 불려 나가, 5년 뒤에는 마침내 도성인 장안에 입성하여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국호를 대제국(大齊國)이라고 바꾸었다.
난을 피해 성도로 몽진한 희종은 맹장 이극용(李克用)에게 황소의 난을 진압하라고 명했다. 이극용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에다 애꾸눈이라는 약점을 딛고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여 당대 최고의 장수라는 칭송을 듣는 인물이었다.
황명에 감읍한 그는 휘하의 4만 병력을 이끌고 출진했는데, 이때 그의 부하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무서운 기세로 적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 군사(鴉軍/ 아군)'가 왔다고 벌벌 떨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이아아(李鴉兒)' 또는 '독안룡'이라고 불렀다.
불우한 황제 희종은 좋은 세상을 끝내 못 본 채 888년 봄에 죽었고, 뒤를 이어 소종(昭宗)이 등극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야 황소의 난은 완전히 진압되어 세상에는 평화가 돌아왔다. 이극용은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농서군왕(隴西郡王)에 책봉되었다.
이때가 그의 인생 절정기였으나, 같은 무렵에 동평군왕(東平郡王)에 책봉된 주전충(朱全忠)과 권력을 다투면서 급작스럽게 불운에 접어들게 되었다. 주전충은 원래 황소에게 붙었다가 태도를 바꾸어 관군을 이끌고 반란군 진압에 뛰어들어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주전충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이극용은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다가 죽었고, 라이벌 제거에 성공한 주전충은 승승장구하여 실권을 장악한 뒤 급기야 애종을 폐하고 스스로 보위에 올라 후량(後梁)을 세워 당나라의 명맥을 끊어 버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李存勗)이 후량을 멸망시키고 후당(後唐)을 세워 초대 황제인 장종(莊宗)이 되었다.
이극용(李克用: 856 ~ 908년)은 당나라 말기 돌궐(突厥) 사타부(沙陀部) 사람이다. 이아아(李鵶兒). 눈 한 쪽을 잃어 독안룡(獨眼龍)으로도 불렸다. 후당(後唐)의 태조로, 주사적심(朱邪赤心)의 아들이다. 젊을 때부터 용맹해 운주(雲州)를 거점으로 하며 유후(留后)라 자칭했다.
당나라 군대에 패하자 달단(韃靼)으로 달아났다.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 장안(長安)이 함락되었을 때 황명을 받아 사타족을 이끌고 와 대주자사(代州刺史)에 임명되었다. 황소군을 대파하고 장안을 탈환했다. 하동절도사로 진왕(晉王)에 봉해졌다.
다음해 하남(河南)에서 황소를 무찔러 죽게 하여 공적이 제일 컸지만, 주전충(朱全忠)과 이무정(李茂貞)도 절도사로 등용되어 정립(鼎立)하게 되었다. 주전충과 앙숙이어서 그가 당나라를 멸하고 칭제(稱帝)했지만 여전히 당나라를 정통으로 섬겼다. 나중에 태원(太原)에서 포위되어 위협을 받던 중 병사했다. 그 후 아들 이존욱(李存勗)이 후량(後梁)을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하여 후당을 세우자 태조에 추존되었다.
독안룡(獨眼龍)
애꾸눈의 영웅, 애꾸눈의 용맹한 장수, 애꾸눈의 고덕(高德)한 사람 등을 나타낸다. 당나라 말에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극용(李克用: 후당의 태조)은 눈 한쪽이 몹시 작아 거의 감겨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 당(唐)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 873~883) 때의 일이다.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 지 5년 만에 10만여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 856~908)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며 심히 두려워 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 883~903)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벌되었고 황소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농서(隴西: 甘肅省/ 감숙성)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 852~912,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귀순한 뒤 황소 토멸에 공을 세워 동평군왕이 됨)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 903~907)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後梁: 907~923)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後唐/후당의 초대 황제인 莊宗/장종)에게 멸망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해 오대사(五代史) 당기(唐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 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이라고 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한 기록이 자치통감(資治通鑑)에도 있다. "시용(李克用)의 나이 28세에 여러 장수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나 황소의 난을 진압하고 장안을 회복하여 공이 제일이었다. 군세가 가장 강력하여 여러 장수들이 그를 모두 경외하였다. 시용의 한쪽눈이 어두워서 그 때의 사람들이 독안룡(獨眼龍)이라 했다(克用時年二十八, 於諸將最少, 而破黃巢, 復長安, 功第一 兵勢最强. 諸將皆畏之, 克用一目微, 時人謂之獨眼龍)."
▶️ 獨(홀로 독)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蜀(촉, 독)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蜀(촉, 독)과 개(犬)는 모이면 싸우므로 한 마리씩 떼어 놓은 데서 홀로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獨자는 ‘홀로’나 ‘혼자’, ‘외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獨자는 犬(개 견)자와 蜀(애벌레 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蜀자는 나비의 애벌레를 그린 것으로 ‘애벌레’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애벌레와 개의 조합이 왜 ‘홀로’나 ‘혼자’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개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의미가 명확히 전달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獨자에 쓰인 蜀자는 단순히 ‘촉→독’으로의 발음역할만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獨(독)은 (1)다른 말 위에 붙어서 혼자, 홀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3)독일(獨逸) 등의 뜻으로 ①홀로, 혼자 ②어찌 ③다만, 오직 ④장차(將次) ⑤어느 ⑥그 ⑦홀몸, 홀어미 ⑧외로운 사람 ⑨외발 사람, 월형(刖刑: 발꿈치를 베는 형벌)을 받은 사람 ⑩외롭다 ⑪전단(專斷)하다(혼자 마음대로 결정하고 단행하다), 독재(獨裁)하다 ⑫개가 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홑 단(單), 외로울 고(孤)이다. 용례로는 남의 힘을 입지 않고 홀로 섬을 독립(獨立), 다른 것과 견줄 것이 없을 만큼 특별하게 다름을 독특(獨特), 혼자서 중얼거림을 독백(獨白), 혼자서 모두 가지거나 누리는 것을 독점(獨占), 남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자기 혼자의 의견대로 결단함을 독단(獨斷), 모방하지 아니하고 자기 혼자 힘으로 처음으로 생각해 내거나 만들어 냄을 독창(獨創),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믿고 객관성을 생각지 아니하고 행동하는 일을 독선(獨善), 저 혼자 또는 자기의 한 몸을 독자(獨自), 혼자서 먹음 또는 이익을 독차지 함을 독식(獨食), 제 마음대로 쥐고 흔듦을 독천(獨擅), 외짝 다리나 하나 뿐인 다리를 독각(獨脚), 혼자서 거처하는 방을 독방(獨房), 혼자서 거처하는 방을 독실(獨室), 혼자서 노래함을 독창(獨唱), 혼자서 삶 또는 홀로 지냄을 독거(獨居), 형제 자매가 없는 사람 흔히 독자를 이름 또는 배우자가 없는 사람을 독신(獨身), 스승이 없이 또는 학교에 다니지 아니하고 혼자서 배움을 독학(獨學), 혼자서 추는 춤을 독무(獨舞), 단 하나 또는 단 한 사람을 단독(單獨), 오직 홀로를 유독(唯獨), 주위에 마음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혼자 동떨어져 있음을 느끼는 상태를 고독(孤獨),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감을 독(愼獨),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하는 것을 독자적(獨自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따로 자립하려고 하는 성향이나 성질을 독립성(獨立性),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생각해 내거나 처음으로 만들어 내는 모양을 독창적(獨創的), 남에게 의존하지 아니하고 따로 제 힘으로 해 나가는 모양을 독립적(獨立的), 절대 권력을 가지고 독재 정치를 하는 사람을 독재자(獨裁者), 혼자서 찍은 사진을 독사진(獨寫眞), 남이 따를 수 없을 만큼 홀로 뛰는 모양을 독보적(獨步的), 남을 배척하고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모양을 독점적(獨占的), 독자적으로 창조하거나 창안할 수 있는 재주나 능력을 독창력(獨創力), 혼자서는 장군을 못한다는 뜻으로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독불장군(獨不將軍), 빈방에서 혼자 잠이란 뜻으로 부부가 서로 별거하여 여자가 남편없이 혼자 지냄을 독수공방(獨守空房), 홀로 푸르다는 뜻으로 홀로 높은 절개를 지켜 늘 변함이 없음을 독야청청(獨也靑靑),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 총명을 독견지명(獨見之明), 외손뼉이 올랴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맞서는 이가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독장불명(獨掌不鳴) 등에 쓰인다.
▶️ 眼(눈 안, 눈 불거질 은)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눈목(目=罒; 눈,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艮(간, 안)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眼자는 ‘눈’이나 ‘눈동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眼자는 目(눈 목)자와 艮(그칠 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艮자는 허리를 구부린 채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보다’라는 뜻만을 전달하고 있다. 眼자는 눈을 강조해 그린 艮자에 目자를 결합한 것으로 ‘눈’이나 ‘눈동자’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目자도 눈을 그린 것이긴 하지만 주로 ‘보다’라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眼자는 신체기관의 일부인 ‘눈’을 뜻하기 위해 별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참고로 眼자와 유사한 글자로는 眠(잠잘 면)자가 있으니 혼동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眼(안, 은)은 ①눈, 눈동자 ②구멍 ③안광(眼光), 시력(視力) ④요점(要點) ⑤어린 싹 ⑥거품 ⑦기수사(基數詞; 수량을 셀 때 쓰는 수사), 양수사(量數詞; 기수사) ⑧보다, 만나다 그리고 ⓐ눈 불거지다(은) ⓑ눈 불거진 모양(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눈 목(目)이다. 용례로는 사물을 분별하는 견식을 안목(眼目),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범위를 안계(眼界), 눈을 보호하거나 시력을 돕기 위해 쓰는 기구를 안경(眼鏡),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시력을 높이어 일컫는 말을 안력(眼力), 눈알로 척추동물의 시각 기관인 눈구멍 안에 박혀 있는 공 모양의 기관을 안구(眼球), 늙어서 시력이 나빠진 눈을 노안(老眼), 어떤 일을 눈여겨 보아 그 일을 성취할 기틀을 잡음을 착안(着眼), 먼눈이나 눈먼 사람을 맹안(盲眼), 핏발이 선 눈이나 어떤 일을 이루려고 애가 달아 기를 쓰고 있는 상태를 혈안(血眼),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사람됨이 교만하여 남을 업신여김을 이르는 말을 안하무인(眼下無人), 눈 속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정든 사람이나 늘 생각하며 만나 보기를 원하는 사람을 안중지인(眼中之人), 눈은 높으나 손은 낮음이란 뜻으로 눈은 높으나 실력은 따라서 미치지 못한다는 안고수비(眼高手卑), 눈빛이 종이의 뒤까지 꿰뚫어 본다는 뜻으로 독서의 이해력이 날카롭고 깊음을 안광지배(眼光紙背) 등에 쓰인다.
▶️ 龍(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은 ❶상형문자로 竜(룡)의 본자(本字)이다. 머리 부분에 辛(신) 모양의 장식이 있는 뱀을 본떠 용의 뜻을 나타냈다. 몸체(月=肉)를 세우고(立) 꼬리를 흔들어서 날아 오르는 용의 모양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龍자는 ‘용’이나 ‘임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용은 소의 머리와 뱀의 몸통, 독수리 발톱과 같이 다양한 동물들의 신체를 조합해 만든 상상의 동물이다. 용은 신비의 동물이자 신성함을 상징했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용을 신비의 대상으로 삼아 수많은 신화나 전설을 만들어냈다. 龍자는 바로 그 전설의 동물을 문자화 한 것이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龍자는 용의 머리와 몸통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문자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다양한 글자가 조합되었다. 따라서 龍자에 쓰인 立(설 립)자나 月(달 월)자는 단순히 용의 모습을 한자화한 것일 뿐 글자가 가진 의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래서 龍(룡, 롱, 망, 총)은 ①용(龍: 상상의 동물) ②임금, 천자(天子) ③임금에 관한 사물(事物)의 관형사 ④비범한 사람 ⑤훌륭한 사람 ⑥명마(名馬) ⑦별의 이름 ⑧파충류(공룡) 그리고 ⓐ언덕(롱) 그리고 ㉠얼룩(망) 그리고 ㊀은총(恩寵)(총)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입신 출세의 관문을 용문(龍門), 옛날 임금이 타던 수레를 용거(龍車),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물받이로 되어 있는 깊은 웅덩이를 용소(龍沼), 용의 아들을 용자(龍子), 용의 형상을 새긴 종을 용종(龍鐘), 전설에서 말하는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용왕의 궁전을 용궁(龍宮), 용의 꼬리를 용미(龍尾), 용이 소리를 길게 뺌을 용음(龍吟), 숨어서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은 용을 잠룡(潛龍), 누워 있는 용을 와룡(臥龍), 애꾸눈인 용이라는 독안룡(獨眼龍), 용문에 오른다는 등용문(登龍門), 머리는 용이고 꼬리는 뱀이라는 용두사미(龍頭蛇尾), 누운 용과 봉황의 새끼를 이르는 말을 와룡봉추(臥龍鳳雛), 하늘에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는 말을 항룡유회(亢龍有悔), 용을 죽이는 기술이라는 말을 도룡지기(屠龍之技),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는 말을 용호상박(龍虎相搏), 장승요가 벽에 그린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즉시 용이 하늘로 올라 갔다라는 말을 화룡점정(畵龍點睛)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