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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노당익장(老當益壯)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5|조회수573 목록 댓글 0

 

노당익장(老當益壯)

늙을수록 더욱 굳세다는 뜻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짐 또는 그런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老 : 늙을 노(老/0)
當 : 마땅히 당(田/8)
益 : 더욱 익(皿/5)
壯 : 씩씩할 장(士/4)

(유의어)
노익장(老益壯)

출전 :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늙었지만 의욕이나 기력은 점점 좋아짐의 뜻으로 늙어서도 기력이 왕성하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이 다운 패기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명장 마원(馬援)은 어려서부터 큰뜻을 품고 글을 배우고 예절을 익혔으며 무예에도 정통하여, 그의 맏형 마황(馬況)은 그를 대기만성(大器晩成)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형이 젊은 나이로 죽자 마원(馬援)은 상례(喪禮)를 정중히 모셔 치른 후 예(禮)를 다하여 형수를 받들었다.

그 뒤 마원(馬援)이 부풍군(扶風郡) 독우관(督郵官: 감찰관)이란 벼슬에 있을 때 명을 받들어 많은 죄수(罪囚)들을 압송(押送)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에 못 이겨 애통하게 부르짖는 것을 보고는 동정심이 우러난 나머지 모두 풀어주어 제각기 제 살길을 찾아가도록 하고 자신도 북방(北方)으로 달아났다.

마원은 북방으로 가서 소, 말, 양 따위를 놓아 먹이면서 지냈다.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수년간 정성껏 가축을 길러 그 규모가 수천 두까지 이르렀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많은 돈을 벌게 되자 가까운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고, 자기는 오히려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등 근검(勤儉)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항시 친구에게 말하였다.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견장(堅壯)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 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 그리고 또 "가멸(家滅)지더라도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수전노(守錢奴)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세상이 혼란스럽게 되자, 마원은 평범한 삶을 버리고 농서의 외효 밑으로 들어가 대장이 되었다. 외효는 공손술(公孫述)과 손을 잡기 위해 마원을 그곳으로 파견하였다. 마원은 공손술의 오만한 행동에 크게 실망하고 의례적인 인사만을 하고는 곧장 돌아왔다.

그 후 마원은 광무제(光武帝)를 만나게 된다. 광무제는 마원을 만나자 예절을 다해 대접하였으며, 각 부서를 데리고 다니며 조언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마원은 이러한 후한 대접에 감동되어 외효에게 돌아가지 않고 광무제의 휘하에 있기로 결심하였다. 광무제는 마원을 복파장군(僕波將軍)에 임명하여 남방의 교지(交趾: 越南 북부)를 평정하게 하여 성공한다.

 

얼마 후, 동정호(洞庭湖) 일대의 만족(蠻族)이 반란을 일으키자, 광무제가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전멸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마원이 자신에게 군대를 달라고 청하며 나섰다. 광무제는 그가 너무 늙었으므로 주저하자 마원이 말하기로, '소신의 나이 비록 예순 두살이나 갑옷을 입고 말도 탈 수 있으니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고는 말에 안장을 채우고 훌쩍 뛰어올랐다.

광무제는 미소를 지으며, "확삭(矍鑠)하도다, 옹(翁)은 확삭재시옹야(矍鑠哉是翁也)"이라며 출정을 허락하였다. 결국 마원은 군대를 이끌고 정벌길에 올랐다. 그 후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평정하고 흉노 토벌에 큰 공을 세움으로써 그의 형이 말한 대로 대기만성(大器晩成)을 이루었다.

 

노당익장(老當益壯)

 

늙을수록 더욱 굳세다는 뜻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짐 또는 그런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좀 나이든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해 보라 하면 “내가 이 나이에 해서 무엇 하겠어요?”라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한문을 공부해 보라고 하면 잊어버릴 것부터 먼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말하는 ‘몸이 늙기 전에 마음이 먼저 늙어 버린 것’이다.

 

후한(後漢) 초기에 마원(馬援)이란 장수가 있었는데 친구들에게 늘 “대장부는 뜻을 갖기를 곤궁해도 마땅히 더욱 굳세어야 하고 늙어도 마땅히 더욱 씩씩하게 해야 한다(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고 했다.

 

흔히 사람은 곤궁하면 뜻이 더욱 약해지고 늙으면 더욱 병약해진다. 그러나 마원은 정반대로 말했고 그의 일생은 그의 말처럼 늙어갈수록 더욱 좋아졌다. 사람의 일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 된다.

 

마원은 문무를 다 익혔으나 별 하는 일 없이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 뒤 마원은 부풍군(扶風郡) 독우(督郵)라는 낮은 벼슬에 임명되었는데 죄수를 압송하는 일을 맡았다. 압송하는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에 못 이겨 울부짖는 것을 보고 동정심이 발동하여 모두 풀어주어 제 살 길을 찾아가도록 했다. 자신도 벼슬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가 숨어 지냈다. 숨어 지내면서 소, 말, 양, 가축을 잘 길러 수천 마리에 이르렀다. 부유해지자 주변 사람들에게 재물을 베풀어 주었다. 자기는 여전히 근검한 생활을 했다.

 

당시 외척 왕망(王莽)이 한(漢)나라를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웠는데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나 한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했다. 마원은 후한(後漢)을 중흥한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만나게 되었다. 그를 도와 후한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워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었다. 그뒤 동정호(洞庭湖) 일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광무제가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려했으나 전멸하였다.

 

이에 마원이 출정을 자원했다. 광무제는 그가 너무 늙었으므로 말렸다. “비록 예순두 살이나, 갑옷을 입고 말도 탈 수 있으니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말에 날쌔게 뛰어올랐다. 보란듯이 반란을 시원하게 평정하고 돌아왔다. 그뒤 북쪽 흉노(匈奴) 토벌에도 큰 공을 세웠다. 그 뒤 그의 딸이 황후가 되었다. 정사에 개입하지 않고 검소하게 산 모범적인 황후였다. 마원의 ‘노당익장’의 말이, 그의 생애를 점점 발전하게 해 주었다.

 

최근 말레이시아 국적의 양자경(楊紫瓊)이 62세 나이로 제95회 아카데미상 주연상을 받았다.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다. 62세는 배우로 활동하기도 어려운 나이다. 마침 마원과 나이가 꼭 같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하지 못 하게 하세요”라 했다. 그는 이 상을 40년 기다렸다고 했다. 그녀와 같이 홍콩에서 이름을 날리던 여배우들은 지금 흔적 없이 사라졌다. “늙을수록 당연히 더욱 씩씩해야 한다”란 말을 양자경이 21세기에 다시 증명해 주었다.

 

 

노당익장(老當益壯)과 득롱망촉(得隴望蜀)

 

노당익장(老當益壯)이란 말은 후한서 마원전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명장 마원(馬援)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글을 배우고 예절을 익혔으며 무예에도 정통하여, 그의 맏형 마황(馬況)은 그를 대기만성(大器晩成)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형이 젊은 나이로 죽자 마원은 상례(喪禮)를 정중히 모셔 치른 후 예를 다하여 형수를 받들었다.

 

그뒤 마원이 부풍군(扶風郡) 독우관(督郵官:감찰관)이란 벼슬에 있을 때 나라의 명을 받들어 많은 죄수들을 압송하게 되었다.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에 못 이겨 애통하게 부르짖는 것을 보고는 동정심이 우러난 나머지 모두 풀어주어 제각기 제 살길을 찾아가도록 하고 자신도 북방으로 달아났다.

 

마원은 북방으로 가서 소·말·양 따위를 놓아먹이면서 지냈다.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수년간 정성껏 가축을 길러 그 규모가 수천 두까지 이르렀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많은 돈을 벌게 되자 가까운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고, 자기는 오히려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등 근검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항시 친구에게 말하였다.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 그리고 또 “가멸차더라도(넉넉하더라도)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수전노(守錢奴)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노익장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세상이 혼란스럽게 되자, 마원은 평범한 삶을 버리고 농서(西)의 외효 밑으로 들어가 대장이 되었다가 광무제를 만나게 된다. 광무제는 마원을 만나자 예절을 다해 대접하였으며, 각 부서를 데리고 다니며 조언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마원은 이러한 후한 대접에 감동되어 외효에게 돌아가지 않고 광무제의 휘하(麾下)에 있기로 결심하였다.

 

광무제는 마원을 복파장군(僕波將軍)에 임명하여 남방의 교지(交趾:베트남 북부)를 평정하였다. 마원의 노익장이 과시되었다. 얼마 후, 동정호(洞庭湖) 일대의 만족(蠻族)이 반란을 일으키자, 광무제가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전멸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마원이 자신에게 군대를 달라고 청하며 나섰다.

 

광무제는 그가 너무 늙었으므로 주저하자 마원이 말하기로 “소신(小臣)의 나이 비록 예순두 살이나 갑옷을 입고 말도 탈 수 있으니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하고는 말에 안장을 채우고 훌쩍 뛰어올랐다. 광무제는 미소를 지으며, “확삭(노인의 기력이 정정하고 몸이 재빠름)하도다, 옹은(확삭재시옹야)”이라며 출정(出征)을 허락하였다. 결국 마원은 군대를 이끌고 정벌 길에 올랐다. 그후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평정하고 흉노(匈奴) 토벌에 큰 공을 세움으로써 그의 형이 말한 대로 대기만성, 노익장을 과시했다.

 

득롱망촉(得隴望蜀)이란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을 말한다. 광무제는 한나라를 빼앗았던 왕망을 멸하고 후한을 세워 한(漢) 왕조를 재건한 인물이다. 농서의 외효가 죽고 그 아들이 항복하여 농서를 손에 넣은 뒤 다시 촉(蜀)이 탐난다고 한 광무제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농서지방은 백성들이 어려웠으므로 합병한 것이 잘되었지만 촉을 정벌한 것은 백성과 관계없이 순전히 욕심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왕성해져서 건강을 과시하는 것은 좋으나 득롱망촉의 욕심, 노욕(老慾)을 부려서는 안 될 일이다. 노욕은 노망으로 손가락질받게 된다. 과일은 썩어가면서 더 진한 향기를 풍긴다. 향기를 풍기는 노인이 되고 싶다.

 

 

사마중달의 노당익장(老當益壯)

 

유송(劉宋)의 학자 범엽(范曄)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는 ‘노당익장(老當益壯)’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하더라도 나이에 상관없이 늘 청년과 같은 패기를 품고 와신상담(臥薪嘗膽; 고난을 견딤)해 대업을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서기 1세기 무렵 후한 초대황제인 광무제(光武帝) 시기에 반란이 발생했다. 예순이 넘었던 노장 마원은 갑주 걸치고 창을 비껴든 채 말에 올라 휘하병력에 진군을 명령했다. 2000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 시대상 예순이면 상당히 노쇠한 춘추였다.

 

마원이 패할까 내심 걱정했던 광무제는 “그대는 너무 늙었소. 진압은 젊은 장수에게 맡기고 집에서 편히 쉬시오”라며 만류했다. 이에 마원은 당당하게 “신(臣)의 머리가 이미 희끗희끗하지만 기력은 젊은이 못지않으니 늙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출정을 윤허해 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마원은 평소 입버릇처럼 주변에 “장부위지(丈夫爲志; 대장부가 큰 뜻을 품었으면) 궁당익견(窮當益堅; 곤궁할수록 더욱 굳세야 하고) 노당익장(老當益壯; 늙을수록 더더욱 기백이 넘쳐야 한다)”이라고 강조해 왔다. 감탄한 광무제는 출진을 허가했고 마원은 보란 듯 대승을 거뒀다.

 

후한 말기 인물로서 서진(西晉)을 실질적으로 개창한 추존황제 사마의(司馬懿)도 와신상담하며 노당익장(老當益壯)을 과시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유년시절을 수도 낙양(洛陽)에서 보낸 사마의는 역적 동탁(董卓)의 천도(遷都)로 대혼란이 빚어지자 인근 하내군(河內郡)으로 피신했다. 여러 제후(諸侯)들이 천자(天子)의 조서를 받들어 공격해오자 동탁은 시내에 불을 지르고 황릉(皇陵)을 도굴하는 등 낙양을 초토화했다. 대민약탈은 기본이었고 천자마저 납치해 장안(長安)으로 달아났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사마의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당대의 명사(名士)였던 최염(崔琰)은 그를 두고 “총명, 성실, 영특하고 강단 있으니 누구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참고로 최염은 대기만성(大器晩成) 고사의 주인공이다. 그의 사촌동생 최림(崔林)은 당초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염은 “큰 종이나 솥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으니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림은 훗날 위(魏)나라 삼공(三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사마의는 201년 무렵 군(郡)으로부터 천거돼 미관말직으로 출사했다. 조정에서 사공(司空) 벼슬을 지내던 조조(曹操)는 사마의를 눈여겨보고서 그를 제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하지만 사마의는 칭병(曹操)한 채 두문불출했다. 마침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승상(丞相)이 돼 천자를 손바닥 위에서 갖고 놀던 조조는 다시 사람을 보내 사마의를 불렀다. 그리고는 “따르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사마의는 어쩔 수 없이 조조를 섬겼다.

 

조조는 사마의를 곁에 두면서도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경계했다. 일설에 의하면 조조는 어느 날 말(馬) 세 마리가 한 구유에서 먹이를 먹는 꿈을 꿨다. 그러자 대뜸 장남 조비(曹丕)를 불러 “사마의는 신하 자리에 머물 인간이 아니다”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을 지시했다. 사마의는 형 사마랑(司馬朗), 동생 사마부(司馬孚)를 두고 있었다.

 

이후 사마의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실 위나라에서의 사마의의 역할은 지대했다. 제갈량(諸葛亮)과 손권(孫權) 등의 북벌을 막아내는가 하면 보급도 어려운 머나먼 요동(遼東)의 맹주 공손연(公孫淵)의 반란도 성공적으로 토벌했다. 특히 제갈량의 북벌 때는 항장(降將) 맹달(孟達)의 거사를 막아내 망할 뻔한 위나라를 기사회생시켰다.

 

맹달은 촉한(蜀漢)에서 위나라로 투항한 후 위촉 접경지대 수비를 위임받는 등 중용된 인물이었다. 이후 권세가 위태롭게 되자 제갈량과 은밀히 내통해 위나라를 결딴내려 했다. 만약 맹달의 대군이 낙양을 기습했더라면 위나라는 3대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터였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대우는 없었다. 조조, 조비, 조예(曹叡) 등은 겉으로는 사마의를 존중하는 척 하고 그의 계책을 상당수 받아들이며 제후직 등도 제수했다. 하지만 사마의는 조진(曹眞) 등 더 큰 실권을 쥔 이들의 그늘에 의도적으로 가려져야만 했다. 조씨 일가는 사마의를 조정이라는 새장 안에 항시 가둬놓으려 하고 끊임없이 지켜봤다. 사마의의 재능을 철저히 이용해먹고 필요 없어지면 바로 버리는 패로 여겼다.

 

픽션이 가미된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드라마 신삼국(新三國) 등에서 사마의의 삶은 한층 비참하게 그려진다. 조조는 사마의에게 선심 쓰듯 미인을 시집보냈지만 이 여인은 사실 조조의 스파이였다. 조씨 일가는 제갈량의 북벌이 있을 때만 마지못해 사마의에게 병부(兵符)를 주고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빼앗으며 한직을 떠돌도록 했다. 조진 등은 사마의의 일부 실책들을 쉴 새 없이 꼬투리 잡아 그를 척살하려 들었다. 사마의의 자식들도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덧 사마의는 백발의 노인이 다 되고 일모도원의 처지에 놓였지만 끝내 노당익장을 발휘했다. 그는 조씨 일가의 경계심을 늦추기 위해 임종이 임박한 것처럼 드러누우면서 한편으로는 측근들을 은밀히 소집했다. 사마의의 높은 신망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던 터였다. 249년 사마의는 평생에 걸쳐 자신을 핍박했던 조씨 일가가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도성을 비운 사이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거병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신삼국에는 사마의의 와신상담을 상징하는 명대사가 나온다. 그는 조진의 아들로서 권력을 오로지했던 조상(曹爽)의 어깨를 밟은 채 이같이 말했다. “검은 한 번 휘둘렀지만 나는 그 검을 십수년 동안 갈아왔다” 사마의는 거사 직전 갑주를 걸친 자신의 모습에 아들이 놀라며 “위중하신 것 아니셨습니까”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외쳤다. “난 수십년 동안 위중했다!” 사마의는 거짓칭병을 자식들에게마저도 숨겼다.

 

마침내 평생의 한을 씻은 사마의는 제위에만 오르지 않았을 뿐 사실상의 황제로서 통치했다. 훗날 당(唐)태종 이세민(李世民)이 “문(文)으로 다스리고 무(武)로써 위세를 떨쳤다”고 평가할 정도로 사마의는 그의 생전에 치세(治世)를 열었다. 후대도 경각심을 갖도록 했다.

 

신삼국의 대미에는 사마의가 어린 손자 사마염(司馬炎)에게 당랑규선(螳螂窺蟬)을 외우도록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고사성어 내용은 “사마귀는 눈앞의 이슬 먹는 매미만 노릴 뿐 등 뒤에 참새가 있는 줄 몰랐다”였다. 사마염은 265년 서진을 건국하고 조부를 추존황제에 추숭(追崇)했다.

 

 

노익장(老益壯) 

 

한(漢)나라 때 왕성한 활동을 선보였던 마원(馬援)은 나이 들어서도 더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는 노익장(老益壯)의 성어를 낳은 인물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이빨이 어느덧 흔들린다. 기미가 생겨나며, 얼굴에는 주름이 접힌다. 이런 현상이 내게 일어난다면, 바로 나이를 꽤 많이 먹었다는 얘기다.

 

10년을 단위로 연령(年齡)에 관해 매긴 호칭이 거저 생긴 것은 아니다. 나이 삼십에 이립(而立)하고, 사십에 불혹(不惑)이다. 오십은 지천명(知天命)이고, 육십이면 이순(耳順)이다. 서른에 뜻을 세우고, 마흔에는 아무 것에나 끌리지 않으며, 쉰이면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안다. 예순이면 같잖은 의견이라도 흘려들을 줄 아는 여유를 지닌다.

 

그럼에도 나이를 먹으면서도 생물적 연령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는 한자로 그를 노익장(老益壯)이라 표현한다. 문물의 수준이 여러 모로 뒤떨어졌던 과거에는 이런 노익장이 꽤 드문 존재였다. 그러나 요즘엔 사정이 다르다. 라식 등 각종 안과 수술에, 철심을 넣고 받치는 임플란트, 첨단 레이저로 지져 없애는 수술 등으로 눈 침침, 이빨 흔들, 주름 첩첩은 다 아스라이 스러져간 옛날의 그 무엇에 불과하다.

 

이 노익장을 낳은 고사 속의 주인공은 마원(馬援)이라는 인물이다. 동한(東漢)의 명장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사람이다. 매우 뛰어난 전투력으로 반평생을 변경의 전쟁터에서 보냈으니 훌륭한 장수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를 표현하는 말이었을까. 후한서(後漢書)에는 “궁핍할수록 더욱 견고해지며, 나이 먹을수록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자로 적으면 ‘窮當益堅(궁당익견), 老當益壯(노당익장)’이다. 우리가 흔히 잘 쓰는 ‘노익장’이라는 단어의 원전인 셈인데, 뜻은 조금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는 ‘노익장’은 나이 들어서도 왕성한 능력과 자태를 뽐내는 사람에게 쓰는 찬사(讚辭)에 가깝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궁핍한(窮) 상황에 놓이더라도 마땅히(當) 더욱(益) 단단해지고(堅), 나이 들어서도(老) 마땅히(當) 더(益) 왕성하게(壯 또는 젊게) 가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두 마디 앞에는 ‘丈夫爲志(장부위지)’라는 말이 있어, “사내가 뜻을 다짐에 있어서는…”이라는 전제(前提)가 등장한다. 따라서 ‘노익장(老益壯)’의 원전이 품은 의미는 바로 ‘마음가짐’에 관한 ‘권유’다. 늙더라도 마음만은 젊게 유지하라는 뜻인데, 혹여 그를 곡해해 젊은 사람들이 올라서야 할 ‘현직’에 지나치게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나이 들어 늙어감에는 나름대로의 처연(悽然)한 미학이 있다. 부풀렸던 욕심을 줄이고, 벌렸던 관심사를 줄인다. 부귀와 명예를 멀리 하며, 한곳에 오로지함으로써 깊이를 지닌다. 단단한 결실(結實)로 원숙(圓熟)을 선보이고, 이로써 그 씨앗을 남과 나누면 그만이다.

 

요즘은 장수하는 시대다. 직장에서 은퇴를 했다고 해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고령화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새겨야 할 말이 노익장(老益壯)이다. 자연스레 더 활기가 보태질 리는 없다. 늘 스스로를 단련하고 연마하는 일이 중요한 시대다.

 

 

강요된 노익장(老益壯)

 

청빈(淸貧)은 청백하여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 가난하다는 뜻이다. 청렴이 가난의 원인이 될 때만 그 가난을 청빈이라고 한단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청빈이 강요되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로부터 강요된 청빈은 비참하고 씁쓸함도 묻어난다. 선택을 강요당한 청빈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청빈과 그 뜻이 천지 차다.

 

노익장(老益壯)은 늙었지만 의욕이나 기력은 점점 좋아진다는 뜻이다. 후한 광무제 때 명장 마원(馬援)이 등장했다. 만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마원은 왕에게 토벌을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나이 62세였다. 왕이 그가 늙었다는 이유로 토벌을 맡기길 주저하자, 마원은 “소신이 비록 예순두 살이지만, 무거운 갑옷을 명주처럼 걸치고 젊은 장수보다 말을 더 잘 타는데 어찌 늙었다고 하십니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장부가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궁해질수록 굳세야 하고 늙을수록 씩씩해야 합니다(窮當益堅 老當益壯)”라면서 훌쩍 뛰어올라 기량을 뽐내고 큰 공을 세웠다. 노익장은 마원의 ‘노당익장’에서 왔다.

 

우리는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한 70대를 두고 ‘노익장을 과시했다’라고 한다.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만의 특징은 ‘일하는 어르신’이 다른 나라에 견줘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분석한 ‘2023 고령자 통계’를 보면, 국내 65살 이상 고용률은 지난해 기준 36.2%로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고령자 고용률은 2021년 기준 OECD 회원국 38개국 평균(15.0%)에 견줘 2배 이상 높다.

 

이게 한국 어르신들이 기운이 펄펄 넘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거라면 바람직한 일이다. 바야흐로 ‘이구백(20대 90%는 백수)’과 ‘장미족(장기 미취업자)’이 넘쳐나고 청년들이 ‘삼일절(31세 넘으면 취업 불가)’에 절규하는 시대이자,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중규직(비정규직의 처우를 받는 정규직)’과 ‘88만원 세대(20대 비정규직 평균 월급 88만원)’가 신음하는 시대 아니던가.

 

그런데 일하는 어르신의 속사정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일하는 어르신이 유독 많은 이유로 미흡한 국내 노후 소득 보장 제도가 꼽힌다. 65살 이상 고령자 중 공적연금을 받는 수급자 비율은 지난해 57.6%에 그친다. 이는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는 공적 부조 성격의 기초연금 수급자를 제외한 수치다. 대다수 일하는 어르신들은 쉬자니 앞으로 먹고살기가 막막해서 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요된 청빈처럼 우리의 노익장에도 씁쓸함이 묻어난다.

 

 

▶️ 老(늙을 노/로)는 ❶상형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머리카락이 길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모양을 본떴다. 또는 毛(모)와 人(인)과 匕(비)의 합자(合字)이다. 다른 글의 부수로 쓰일 때는 耂(로)만 쓰는 경우가 많다. ❷상형문자로 老자는 '늙다'나 '익숙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예로부터 오랜 경험을 가진 노인은 공경과 배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노인을 그린 老자는 '늙다'나 '쇠약하다'라는 뜻 외에도 '공경하다'나 '노련하다'와 같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老자의 갑골문을 보면 머리가 헝클어진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금문에서부터는 匕(비수 비)자가 지팡이를 표현하고 있으므로 老자에 쓰인 匕자는 의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래서 老(노/로)는 ①늙다 ②익숙하다, 노련하다 ③숙달하다 ④대접하다 ⑤노인을 공경하다, 양로하다 ⑥오래 되다 ⑦늙어 벼슬을 그만두다 ⑧생애를 마치다 ⑨쇠약하다 ⑩거느리다 ⑪굳게 하다 ⑫어른, 부모 ⑬늙은이 ⑭노자(老子)의 학설 ⑮신의 우두머리 ⑯항상, 늘 ⑰접두사(接頭辭) ⑱접미사(接尾辭)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적을 소(少), 어릴 유(幼), 아이 동(童), 길 장(長)이다. 용례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어떤 일에 대해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익숙하고 능란함을 노련(老鍊), 늙은이와 어린아이를 노소(老少), 오래 삶을 노수(老壽), 늙어진 뒤를 노후(老後), 늙은 나이를 노령(老齡), 늙은 어머니를 노모(老母), 늙은 나이를 노년(老年), 생물 또는 물질의 기능이나 성질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쇠약해지는 현상을 노쇠(老衰), 늙은 몸을 노구(老軀), 노쇠해서 생긴 병을 노환(老患), 노인이 윗사람에게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을 노생(老生), 늙어서 부리는 망령을 노망(老妄), 늙은이와 약한 이를 일컫는 말을 노약자(老弱者), 늙은 부부를 일컫는 말을 노부부(老夫婦), 마을 노인들이 모여서 즐길 수 있게 마련한 집이나 방을 이르는 말을 노인정(老人亭), 남의 일에 대하여 지나치게 염려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노파심(老婆心),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짐을 일컫는 말을 노당익장(老當益壯),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똑같으니 변함없이 효도를 해야 한다는 말을 노래지희(老萊之戱),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즐김을 일컫는 말을 노소동락(老少同樂), 늙은 말의 지혜를 일컫는 말을 노마지지(老馬之智), 늙은 말이 갈 길을 안다는 말을 노마식도(老馬識途), 늙은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으로 글을 쉽게 쓰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노구능해(老嫗能解), 늙은 준마가 마구간 가로목에 엎드렸다는 뜻으로 재능 있는 인물이 나이가 들어 뜻을 펴지 못하고 궁지에 빠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노기복력(老驥伏櫪), 노인들이 늘 하는 이야기란 뜻으로 노인들의 고루한 이론이나 평범한 의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노생상담(老生常談), 늙은 방합에서 구슬이 나온다는 뜻으로 총명한 아들을 둔 사람에게 그를 기려 축하하는 말 또는 부자가 모두 영명을 가졌음을 이르는 말을 노방생주(老蚌生珠), 부부가 서로 사이좋고 화락하게 같이 늙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해로(百年偕老), 남자와 여자와 늙은이와 젊은이 곧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을 남녀노소(男女老少), 부부가 한평생을 같이 지내며 같이 늙고, 죽어서는 같이 무덤에 묻힌다는 뜻으로 부부 사랑의 굳은 맹세를 뜻함 또는 부부의 금실이 좋아서 함께 늙고 함께 묻힘을 일컫는 말을 해로동혈(偕老同穴), 많은 전투을 치른 노련한 장수란 뜻으로 세상일에 경험이 많아 여러 가지로 능란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전노장(百戰老將),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었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은 벼슬자리라도 얻어서 어버이를 봉양해야 한다는 말을 가빈친로(家貧親老), 불교에서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네 가지 고통으로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의 고통을 일컫는 말을 생로병사(生老病死), 봄 추위와 노인의 건강이라는 뜻으로 모든 사물이 오래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춘한노건(春寒老健), 노인이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반로환동(返老還童) 등에 쓰인다.

▶️ 當(당할 당)은 ❶형성문자로 当(당)과 통자(通字), 当(당)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밭전(田; 밭)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尙(상, 당)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尙(상, 당)은 높은 창문에서 연기가 나가는 모양에서 위, 위에 더하다, 충당하다란 뜻을 나타낸다. 田(전)은 논밭의 뜻으로, 當(당)은 이 밭과 저 밭이 서로 포개어 맞추듯이 꼭 들어 맞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當자는 ‘마땅하다’나 ‘균형 잡히다’, ‘맡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當자는 尙(오히려 상)자와 田(밭 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尙자는 지붕 위로 무언가가 올라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當자는 본래 밭과 밭은 ‘대등하다’라는 뜻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한(後漢) 시대 학자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면 當자에 쓰인 尙자는 ‘상→당’으로의 발음요소일 뿐이고 田자는 밭은 서로 ‘대등하다’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언뜻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當자에 19개의 서로 다른 뜻이 있는 것을 보면 초기에는 ‘균형 잡히다’나 ‘대등하다’를 뜻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후에 다양한 의미가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當(당)은 (1)명사 앞에 붙어서 그 바로 그 이 지금의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2)어떠한 말 뒤에 붙어서 앞에 마다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어 (3)그 당시의 나이를 나타내는 접두어 등의 뜻으로 ①마땅 ②밑바탕, 바닥 ③저당(抵當) ④갚음, 보수(報酬) ⑤갑자기 ⑥이, 그 ⑦마땅하다 ⑧임무, 책임을 맡다 ⑨당하다, 대하다 ⑩주관하다, 주장하다 ⑪필적하다, 짝하다 ⑫균형되다, 어울리다 ⑬때를 만나다, 당면하다 ⑭저당하다 ⑮막다, 지키다, 방어하다 ⑯비기다, 비교하다⑰벌주다, 단죄하다 ⑱마주 보다 ⑲곧 ~하려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땅 의(宜), 마땅 해(該)이다. 용례로는 그 사건에 직접 관여함을 당사(當事), 그 시대의 세상을 당세(當世), 어떤 일을 만난 그때 그 자리를 당하(當下), 어떤 곳의 꼭 가운데가 되는 곳을 당중(當中), 바로 그 시각을 당각(當刻), 당면한 이제를 당금(當今), 사람의 한 평생살이를 당대(當代), 어떤 한 곳이나 일에 닿아서 이름을 당도(當到), 말로써 어찌하라고 단단히 부탁함을 당부(當付), 일이 생긴 처음을 당초(當初), 지금 바로 이 자리를 당장(當場), 일이 생긴 그때를 당시(當時),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무슨 일을 당하여 정신이 헷갈려서 처치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함을 당혹(當惑), 도리 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당연(當然), 당선과 낙선을 당락(當落), 이 세상에서는 어깨를 겨눌 사람이 없음을 당금무배(當今無輩), 부모를 명당에 장사하여 그 아들이 곧 부귀를 누리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당대발복(當代發福), 앞으로 마땅히 닥쳐 올 일을 당래지사(當來之事), 상례에 따르지 아니하고 특별히 논하여야 마땅하다는 당이별론(當以別論) 등에 쓰인다.

▶️ 益(더할 익, 넘칠 일)은 ❶회의문자로 물 수(水=氵, 氺; 물)部와 皿(명)의 합자(合字)이다. 그릇 위로 물이 넘치고 있는 모양으로, 넘침의 뜻에서 더함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益자는 '더하다'나 '넘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益자는 '더하다'나 '유익하다'라고 할 때는 '익'이라 하고 '넘치다'라고 할 때는 '일'로 발음한다. 益자는 皿(그릇 명)자와 水(물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지금은 水자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갑골문에 나온 益자를 보면 皿자 위로 水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물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益자의 본래 의미도 '(물이)넘치다'였다. 그러나 넘치는 것은 풍부함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후에 '더하다'나 '유익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益자가 이렇게 '더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다시 水자를 더한 溢(넘칠 일)자가 '넘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益(익, 일)은 (1)익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더하다 ②이롭다, 유익하다 ③돕다, 보조하다 ④많다 ⑤넉넉해지다, 풍부해지다 ⑥진보(進步)하다, 향상(向上)되다 ⑦상으로 주다 ⑧가로막다 ⑨이익(利益) ⑩괘(卦)의 이름 ⑪성(姓)의 하나 ⑫더욱, 한결 ⑬점점, 차츰차츰, 그리고 ⓐ넘치다(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로울 리(利), 더할 가(加), 더할 증(增), 더할 첨(沾), 더할 첨(添),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덜 손(損), 떨어질 락(落)이다. 용례로는 갈수록 더욱 심함을 익심(益甚),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된 것을 이익(利益),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이익을 거두어 들임을 수익(收益), 이롭거나 이익이 있음을 유익(有益), 실제의 이익을 실익(實益), 사회 공중의 이익을 공익(公益), 뺄 것을 빼고 난 나머지의 이익을 차익(差益), 더하여 늘게 함을 증익(增益), 이익을 얻음을 수익(受益), 편리하고 유익함을 편익(便益), 갈수록 더욱을 거익(去益), 이롭거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음을 무익(無益), 보태고 늘여 도움이 되게 함을 보익(補益), 중생을 도의 길로 이끌어 이롭게 함을 화익(化益), 덧붙이거나 보탬을 부익(附益), 이익을 골고루 나누어 받음을 향익(享益), 이익이 되지 않음을 불이익(不利益), 총이익 중에서 영업비나 잡비 등 총비용을 빼고 남은 순전한 이익을 순이익(純利益),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는 겸수익(謙受益),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 짐을 빈익빈(貧益貧), 부자일수록 더욱 부자가 됨을 부익부(富益富), 이익을 얻은 사람을 수익자(受益者), 수익한 돈을 수익금(收益金), 이익으로 남은 돈을 이익금(利益金), 환율이 변동할 때 생기는 이익을 환차익(換差益), 나이는 들었으나 기력은 더욱 좋아짐 또는 그런 사람을 노익장(老益壯), 사람이 좋아하여 유익한 세 가지 곧 예악을 적당히 좋아하고 남의 착함을 좋아하고 착한 벗이 많음을 좋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익자삼요(益者三樂), 사귀어 자기에게 유익한 세 부류의 벗이라는 뜻으로 정직한 사람 친구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익자삼우(益者三友),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말을 다다익선(多多益善),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짐을 이르는 말을 노당익장(老當益壯), 책을 펴서 읽으면 반드시 이로움이 있다는 뜻으로 개권은 책을 펴서 읽는 것으로 독서를 권장하는 말을 개권유익(開卷有益), 나이는 들었으나 기력은 더욱 좋아짐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을 노익장(老益壯), 곤궁해 질수록 그 지조는 더욱 굳어짐을 이르는 말 또는 나이가 들었어도 결코 젊은이다운 패기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함을 이르는 말을 궁당익견(窮當益堅),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건국 시조인 단군의 건국 이념을 이르는 말을 홍익인간(弘益人間), 롭기만 하고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백해무익(百害無益), 말을 하여 보아야 소용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언지무익(言之無益), 윗사람에게 해를 끼침으로써 아랫사람을 이롭게 함을 일컫는 말을 손상익하(損上益下) 등에 쓰인다.

▶️ 壯(장할 장)은 형성문자로 壮(장)의 본자(本字), 壮(장)은 통자(通字), 壮(장)은 간자(簡字), 壵(장)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비 사(士; 선비, 남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爿(장)으로 이루어졌다. 爿(장)의 음은 將(장; 크다)에서 유래한다. '큰 남자, 씩씩한 남자'의 뜻이 전(轉)하여 '왕성하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壯(장)은 ①장(壯)하다(기상이나 인품이 훌륭하다) ②굳세다 ③기상(氣像)이 훌륭하다 ④씩씩하다 ⑤크다 ⑥기세(氣勢)가 좋다 ⑦젊다 ⑧견고(堅固)하다 ⑨웅장(雄壯)하다 ⑩단단하다 ⑪성(盛)하다(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⑫매우 갸륵하다 ⑬찜질 ⑭음력(陰曆) 8월 ⑮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하는 말을 장담(壯談), 많이 오는 눈을 장설(壯雪), 훌륭한 광경이나 굉장하고 볼 만한 광경을 장관(壯觀), 과거에서 갑과에 첫째로 급제함을 장원(壯元), 씩씩하고 열렬함을 장렬(壯烈), 기개와 골격이 굳센 사람을 장사(壯士), 나이가 젊고 한창 힘을 쓰는 건장한 남자를 장정(壯丁), 씩씩한 담력을 장담(壯膽), 의기양양한 말을 장언(壯言), 장엄하고 화려함을 장려(壯麗), 장년의 남자를 장부(壯夫), 중대한 사명을 띠고 떠나는 길을 장도(壯途), 기운 좋고 큼직하게 생긴 골격 또는 그러한 사람을 장골(壯骨), 건장하고 왕성함을 장성(壯盛), 장년에 이른 사람을 장자(壯者), 장대한 포부를 장지(壯志), 몸이 튼튼하고 씩씩함을 장건(壯健), 기운이 씩씩하여 한창 활동이 활발한 시기 또는 그런 사람을 장년(壯年), 으리으리하게 크고도 굉장함을 웅장(雄壯), 나이가 젊고 혈기가 왕성함을 소장(少壯), 퍽 크고 훌륭함을 굉장(宏壯), 슬프면서도 마음을 억눌러 씩씩함을 비장(悲壯), 몸이 튼튼하고 기운이 셈을 건장(健壯), 아주 두꺼운 장판지를 각장(角壯), 너르고 훌륭함을 광장(廣壯), 노년과 장년을 노장(老壯), 뼈대가 강하고 혈기가 왕성함을 강장(强壯), 장담하고 큰소리 침을 장언대어(壯言大語), 웅장하기는 하나 세밀하지 못함을 장이불밀(壯而不密), 나이는 들었으나 기력은 더욱 좋아짐 또는 그런 사람을 노익장(老益壯),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짐을 노당익장(老當益壯), 혈기가 한창 씩씩함을 혈기방장(血氣方壯),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을 큰소리로 자신 있게 말함을 호언장담(豪言壯談)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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