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자야심(狼子野心)
이리 새끼는 사람이 길들이려고 해도 본래의 야성 때문에 좀체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흉폭한 사람이나 신의가 없는 사람은 쉽게 교화시킬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狼 : 이리 랑(犭/7)
子 : 새끼 자(子/0)
野 : 들 야(里/4)
心 : 마음 심(心/0)
(유의어)
인면수심(人面獸心)
자(子)는 어린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심(心)은 심장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서, 마음은 심장에서 우러나온다 하여 생각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리 새끼는 작아도 흉포한 성질이 있어 길들이기가 어렵다. 이리 새끼는 아무리 길들여도 야수의 성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흉포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본래 신의가 없거나 비뚤어진 사람은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도 끝내는 배신한다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도자를 국민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와 자신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로 구별하고 후자를 인간을 가장한 괴물, 늑대라고 표현했다.
낭자야심(狼子野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투자문(鬪子文)은 약오(若敖)씨의 후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태어난 직후 들(野)에 버려졌는데 호랑이가 주워다가 길렀다고 한다. 나중에 그를 발견한 사람이 “이 아이에게는 복(福)이 있다”며 데리고 갔다. 투자문(鬪子文)은 뒤에 초(楚)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사람 됨됨이가 공정하며, 법 집행도 엄정 공명했다.
한번은 그의 친척이 법을 어긴 일이 있었으나 담당 관원이 체면을 생각하여 그를 석방했다. 그것을 안 투자문(鬪子文)은 즉시 담당 관원에게 말했다. “국가가 법률을 만들고 담당기관을 설치 했는데, 법 집행자가 법을 무시하고 죄인을 석방하면 안 된다. 비록 나의 일가붙이 일지라도” 그리고 그를 넘겨 주어, 공평한 심리를 하든가 아니면 자해를 시키든가 하라고 명하여 백성의 비난을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담당 관원은 그 사람을 법에 따라 처벌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초(楚)나라의 성왕(成王)은 즉시 그의 집을 찾아가서 경의를 표했다. 초(楚)나라 백성들도 그 말을 듣고 저마다 말했다. “모두가 투자문(鬪子文) 같다면, 초(楚)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무엇을 걱정하랴.”
투자문(鬪子文)의 아우로 병부상서 자량(子良)의 아들 월초(越椒)를 보러 간 투자문(鬪子文)이 말했다. “저 애를 어서 죽여라. 자라서 틀림없이 우리 약오(若敖)씨에 화(禍)를 가져 올 것이다. 낭자야심(狼子野心)대로다.” 그러나 자량(子良)은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걱정한 투자문(鬪子文)은 죽는 자리에서 가족에게 유언했다. “월초(越椒)가 권력을 장악하거든 도망쳐라.”
그는 장래에 월초(越椒)가 일족을 수중에 넣고 전멸시킬 것을 염려했다. 그가 죽은 뒤에 아들 반(般)이 재상이 되고, 월초(越椒)도 아버지의 대신하여 병부상서가 되었다. 기원전 626년에 성왕의 아들 상신(商臣)은 부왕을 시해하고 왕이 되어 목왕(穆王)이라 칭했다. 반(般)은 알고 있었으나 발설하지 않았다.
월초(越椒)는 이 기회에 재상 자리를 빼앗으려고 목왕에게 반(般)을 중상(重傷)했다. 목왕은 월초(越椒)와 위가(爲賈)의 말을 믿고, 반(般)을 죽이고 월초(越椒)를 재상에, 위가(爲賈)를 병부상서에 각각 발탁했다. 월초(越椒)는 20년간 재상직을 보았다. 그 사이에 목왕(穆王)은 죽고 장왕(莊王)이 즉위했다. 그는 장왕(莊王)을 내심 경멸하면서도 왕이 위가(爲賈)를 중용하여 그의 권력을 삭감하려는 것을 원망하여 모반을 꾀하였다.
월초(越椒)는 장왕(莊王)이 외국으로 원정 나간 틈을 타 약오(若敖)씨 일족을 이끌고 위가(爲賈)를 습격하여 그를 체포하여 죽여 버렸다. 그것을 안 장왕(莊王)은 투(鬪)씨의 역대 공적을 생각하여 월초(越椒)에게 사죄시켜 사태를 수숩하려고 월초(越椒)의 아들을 인질로 내놓으라고 제의 했으나 그는 거부했다.
다음 해 7월경, 월초(越椒)와 장왕(莊王) 양군이 교전하여 장왕(莊王)은 약오(若敖)씨의 일족을 몰살시켜 버렸다. 월초(越椒)의 낭자야심(狼子野心)은 마침내 여기까지 발전하여 투자문(鬪子文)이 염려한 대로 약오(若敖)씨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 주었다. 이때부터 낭자야심(狼子野心)은 ‘늑대 새끼는 흉포한 성질이 있어 길들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흉포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시키기 어렵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성정을 다스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다. 능력없이 세상의 명리를 쫓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세상 경영에 뜻이 있다면 먼저 자신을 다스릴 일이다. 그것이 바로 낭자야심(狼子野心)의 교훈일 것이다.
낭자야심(狼子野心)
이리 새끼의 거친 마음이라는 뜻으로, 이리 새끼는 아무리 길들이려 해도 야수의 성질이 사라지지 않듯이 흉포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하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낭자야심은 중국 춘추시대에 초나라(楚) 사람 투자문(鬪子文)이 속담을 인용해 갓 태어난 조카를 죽이려던 고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전에 초나라 사마(司馬) 자량(子良)이 아들 월초(越椒)를 낳자, 자량의 형 자문이 자량에게 말하였습니다. “반드시 이 아이를 죽여라. 이 아이는 모습은 곰과 호랑이를 닮고 목소리는 승냥이와 이리를 닮았으니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 약오씨(若敖氏)를 멸망시킬 것이다. 속담에 ‘이리 새끼는 야수의 성질이 있다[狼子野心]’고 하니, 이 아이가 바로 이리 새끼다. 이런 아이를 기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자량이 듣지 않자 자문은 크게 근심하였습니다. 자문은 죽음을 앞두고 일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유언하였습니다. “나중에 월초가 국정을 맡거든 속히 도망가서 화를 피하도록 하라.” 눈물을 흘리며 또 말하였습니다. “귀신들도 먹을 것을 구함은 마찬가지인데, 약오씨의 귀신은 장차 굶주림이 크겠구나!”
영윤(令尹) 자문이 죽자 그의 아들 투반(鬪般)이 그 자리를 물려받아 영윤이 되고 자월(子越, 월초를 말함)은 사마가 되었으며 위가(蔿賈)는 공정(工正)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위가가 장왕(莊王)에게 투반을 참소해 투반이 죽자, 자월이 영윤이 되고 자신은 사마가 되어 군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자월은 위가를 미워해 기원전 605년 약오씨 종족을 거느리고 요양(轑陽)에서 위가를 잡아 죽였으며, 마침내 증야(烝野)에 주둔하고서 장왕을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장왕은 화해를 위해 왕실 사람을 인질로 보냈으나 자월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군사를 이끌고 장수(漳水) 강변에 진을 쳤습니다.
7월에 장왕이 약오씨와 고호(皐滸)에서 전투를 벌일 때 백분(伯棼, 월초를 말함)이 장왕을 향해 활을 쏘았는데, 화살 한 발은 장왕이 탄 수레의 끌채와 북 받침대를 지나 징에 박혔고, 또 한 대의 화살은 끌채를 지나 수레 덮개에 꽂혔습니다. 이를 본 군사들이 겁을 먹고 후퇴하자, 장왕이 사람을 보내 진영을 돌면서 이렇게 말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선군 문왕(文王)께서 식나라(息)에 승리하면서 세 대의 화살을 얻었는데 백분이 두 대를 훔쳐 이번에 다 써버렸다.” 화살이 장왕이 탄 수레까지 날아오자 장왕이 기지를 발휘한 것입니다. 동요하던 장왕의 군사들은 진정되었고, 마침내 북을 치며 진격하여 약오씨를 무너뜨렸습니다.
약오씨는 본래 춘추시대 초나라의 명문가입니다. 조상은 초나라 군주 웅의(熊儀)로 약오는 그의 시호인데 그의 후손들이 약오를 족칭으로 삼았으며, 그 안에서 다시 투씨(鬬氏)와 성씨(成氏)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약오씨는 웅의의 증손인 무왕(武王) 때부터 군정의 요직을 맡았는데, 기원전 632년부터 수차례 반란을 일으키면서 왕실과 위험한 동행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605년 장왕이 월초의 난을 평정한 후 약오씨의 지위는 급격히 떨어졌고 초나라 정국은 비로소 안정되었습니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본성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습니다. 본래 비뚤어진 사람은 아무리 좋게 대해도 쉽사리 성질이 바뀌지 않으므로 끝내는 다른 사람을 해치기 쉽습니다.
낭자야심(狼子野心)
이리 새끼는 들에 마음을 둔다는 뜻으로 흉포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춘추시대 초(楚) 나라에 투자문(鬪子文)이라는 영윤(총리대신)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투자문은 태어난 직후 들에 버려져 호랑이가 젖을 먹여 키웠는데 나중에 그를 발견한 사람이 “이 아이에게는 복이 있다”며 데리고 가서 길렀다고 한다.
그는 사람 됨됨이가 공정하고 법 집행도 엄정했다. 한 번은 그의 친척이 법을 어긴 일이 있었으나 담당 관원이 투자문의 체면을 생각하여 그를 석방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투자문은 관리를 불러 크게 꾸짖었다. “국가가 법률을 만들고 담당 기관을 설치하고 있는데 법 집행자가 법을 무시하고 죄인을 석방하면 안된다. 비록 나의 친척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직접 그 친척을 잡아 넘겨주며 공평한 심리를 하든가 자해를 시키라고 명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초나라 성왕(成王)은 즉시 투자문을 찾아가서 경의를 표했고 백성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투자문의 동생으로 사마(국방상)의 직위에 있던 투자량(鬪子良)에게 월초(越椒; 또는 자월)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투자문이 동생에게 “반드시 이 아이를 죽여라. 이 자식은 곰과 범의 형상을 하고 승냥이와 이리의 소리를 내니 죽이지 않으면 우리 가문이 망할 것이다. 속담에 낭자야심(狼子野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 아이는 이리인데 어떻게 기를 수 있겠느냐” 하였다.
그러나 자식을 죽일 수 없었던 투자량은 월초를 장성하도록 길렀다. 이를 걱정한 투자문은 임종하는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이렇게 유언하였다. “월초가 권력을 장악하거든 도망쳐라.”
투자문이 죽은 뒤 그의 아들 반(般)이 총리가 되고 월초는 국방상이 되었다. 이무렵 성왕의 아들 상신(商臣)이 부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라 목왕(穆王)이라 칭했다. 월초가 위가(爲賈)와 함께 반을 중상모략하자 목왕은 반을 죽이고 월초를 총리대신에, 위가를 국방상에 임명했다. 13년 뒤 목왕이 죽고 장왕(蔣王)이 즉위했다.
장왕은 월초를 싫어하여 위가를 앞세워 그를 몰아내려 하고 있었다. 위기를 느낀 월초는 장왕이 외정(外征)을 떠난 틈을 타 친족을 이끌고 위가를 습격하여 죽였다. 이에 장왕이 분노하여 손수 북을 울려 전투를 독려하니 월초는 장왕을 겨냥하여 두 개의 화살을 쏘았다. 첫 번째 화살은 왕의 수레 위를 지나 북을 달아매는 대 위에 꽂혔고 두 번째 화살은 왕을 보호하는 큰 갓의 왼쪽을 뚫고 지나갔다.
군사들이 당황하여 후퇴하려 하자 장왕이 말하기를 “월초는 종묘의 신시(神矢; 신묘한 화살) 두 개를 훔쳐냈다. 이제 두 개 다 쏘았으니 두려울 게 없다” 하며 군사들을 격려하였다. 이윽고 다시 북소리가 울리고 장왕의 군사들은 용감하게 출격하여 월초의 군사들을 쳐부수었다. 싸움에서 이긴 장왕은 투씨 일족을 몰살시켜 버렸다.
투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남은 자는 월초의 반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나라의 친선사절로 제(齊)와 진(秦)에 가있다가 돌아온 투자문의 손자 투극황(鬪克黃) 뿐이었다.
[용례] 1496년 (연산군 2) 3월 3일
화라온(火剌溫), 올적합(兀狄哈), 임대(林大)가 일찍이 중추(中樞)의 직을 받았다고 사칭하므로 예조(禮曹)가 그 정상을 염탐하여 알고서 이에 사맹(司猛)의 직을 제수하여 이날 폐사(陛辭)하였다. 승지(承旨)가 고신(告身)을 나누어 주는데, 임대(林大)는 성내며 받지 않고 팔을 내두르며 기를 부리고 주먹으로 사령(使令)을 때렸으며, 외정(外廷)에 나와서는 패도(佩刀)를 뽑아서 사람을 찌르려 하였다.
승지들이 아뢰기를, “이 사람의 횡포가 이에 이르렀으니, 비록 감사(監司)나 절도사(節度使)의 영(營)에서 일지라도 오히려 이렇게 하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전정(殿庭)임에리까. 마땅히 금부(禁府)에 내려 국가의 위신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성종조에 장기대(將其大)라는 자가 함흥군(咸興郡)에 당도하여 칼을 뽑아 사람을 찌르니 성종께서 명하여 금부(禁府)에 가두고 여러 날 동안 곤욕을 보여서 보냈습니다. 이 오랑캐도 역시 징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원상(院相)들에게 의논하라”하매, 윤필상(尹弼商), 노사신(盧思愼), 윤호(尹壕), 신승선(愼承善), 어세겸(魚世謙)이 의논드리기를, “이 무리들은 비록 이리 새끼처럼 길들지 않은 것들이나(狼子野心) 그 무례가 너무도 심하므로 불가불 위엄을 보여야 하겠사오니, 마땅히 의금부에 내려 추국(推鞫)해서 법을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치죄(治罪)하여서는 안되옵니다”하니, 그대로 따랐다.
낭자야심(狼子野心)
이리는 본래의 야성이 있어 좀처럼 길들여지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신의가 없는 사람은 쉽게 교화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낭자야심(狼子野心)은 늑대의 새끼는 야생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본성이 포악하고 교활한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다. 더러는 타고난 사람의 본성이 쉽게 바뀌지 않음을 강조할 때 주로 인용하곤 하는데, 공자가 꿈에도 뵙기를 원했을 만큼 훌륭한 인물로 칭송받고 있는 주나라 시대의 주공과 관련 있다.
주공은 그의 형님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이 통치를 시작할 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늑대의 새끼는 본래 야생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길들여도 그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릴 때는 사람의 본성을 잘 파악하고 다스려야 한다." 주공은 어린 무왕이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고 써야 한다는 것을 충고했던 것이다.
이 고사는 모든 조직과 모든 관계에 다 적용 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타고난 본성과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온화하고 착한 척을 하지만 본성은 아주 악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잘 모르다가도 이익과 관련된 문제 앞에서 이리의 본성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판단할 때는 단순한 이력서나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를 놓고 많은 철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이 수천 년간 고민해 왔지만 누구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라는 질문은 정말 쉽지 않은 질문이며 앞으로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적으로 선한사람도 없고 또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악한 면이 조금씩은 있게 마련이고 또 아무리 악한 사람도 일정부분은 선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성상근야(性相近也) 습상원야(習相遠也)라고 했다.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생활 습성에 따라 서로 현저히 달라진다’는 뜻인데, 아마 교육으로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에 공자의 주장 역시 쉽게 무너질 것이다. 답이 쉽지 않은 이유는 사람은 상황적인 동물이라 ‘선하다’ ‘악하다’를 한마디로 딱 잘라서 정의 내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인격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그가 남긴 각종 sns의 댓글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품을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글은 그 사람의 본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거울인 셈이다. 그러므로 댓글을 남길 때도 깊이 생각하고 남겨야 한다. 댓글 하나 우습게 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어느 기업에서 면접을 보기 전에 그 사람이 sns에서 어떻게 활동해 왔는가를 면밀하게 살핀 후 직원을 채용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현명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를 보면 대충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 하여튼 수시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면서 꾸준히 인격을 갈고 닦는 것 밖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지 싶다.
▶️ 狼(이리 랑/낭)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良(량, 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狼(랑)은 ①이리(늑대. 갯과의 포유 동물) ②짐승의 이름 ③별의 이름, 천랑성(天狼星: 시리우스) ④사납다, 거칠고 고약하다 ⑤어지럽다 ⑥허둥지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리 패(狽)이다. 용례로는 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움을 낭자(狼藉), 이리처럼 욕심이 많고 도리에 어긋남을 낭려(狼戾), 옛날 전쟁 때 신호로 쓰던 불을 낭연(狼煙), 이리의 똥을 태워서 그 연기로 올리는 봉화를 낭봉(狼烽), 이리의 똥을 낭분(狼糞), 화포의 한 가지를 낭기(狼機), 족제비의 꼬리를 낭미(狼尾), 족제비를 낭서(狼鼠), 사납고 모짊을 낭완(狼頑), 멀리 떨어진 변방을 낭황(狼荒), 성미가 워낙 고약하여 쉽게 뉘우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낭질(狼疾), 이리와 같이 배부른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꾸 욕심을 냄을 낭탐(狼貪), 성질이 이리처럼 거칠고 마구 덤벼들기를 잘 함을 낭항(狼抗), 계획하거나 기대한 일이 실패하거나 어긋나 딱하게 됨을 낭패(狼狽), 이리는 뒤를 잘 돌아본다는 뜻으로 경계하려고 또는 무서워서 뒤를 돌아봄을 낭고(狼顧), 이리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인정도 없고 탐욕만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낭심(狼心), 난감한 처지에 있음을 낭패불감(狼狽不堪), 이리 새끼는 사람이 길들이려고 해도 본래의 야성 때문에 좀체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낭자야심(狼子野心), 이리같이 탐내고 범처럼 노려봄을 이르는 말을 낭탐호시(狼貪虎視), 흉악한 무리들이 모략을 꾸미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낭패위간(狼狽爲奸) 등에 쓰인다.
▶️ 子(아들 자)는 ❶상형문자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아들을 뜻한다. 지금의 子(자)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글자가 합쳐져 하나가 된 듯하다. 지지(地支)의 첫째인 子와 지지(地支)의 여섯째인 巳(사)와 자손의 뜻이나 사람의 신분이나 호칭 따위에 쓰인 子가 합침이다. 음(音)을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첫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양팔과 머리만이 그려져 있다. 고대에는 子자가 ‘아이’나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중국이 부계사회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남자아이’를 뜻하게 되었고 후에 ‘자식’이나 ‘사람’, ‘당신’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子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아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子(자)는 (1)아주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어 (2)신문(新聞), 잡지(雜誌) 따위 간행물(刊行物)의 어느 난을 맡은 기자(記者)가 자칭(自稱)할 때 쓰는 말 (3)십이지(十二支)의 첫째 쥐를 상징함 (4)자방(子方) (5)자시(子時) (6)글체에서, 그대의 뜻으로 쓰이는 구투(舊套) (7)글체에서, 아들의 뜻으로 쓰이는 말 (8)민법상에 있어서는 적출자(嫡出子), 서자(庶子), 사생자, 양자(養子)의 통틀어 일컬음 (9)공자(孔子)의 높임말 (10)성도(聖道)를 전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가(一家)의 학설을 세운 사람의 높임말, 또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학설을 말한 책 (11)자작(子爵) 등의 뜻으로 ①아들 ②자식(子息) ③첫째 지지(地支) ④남자(男子) ⑤사람 ⑥당신(當身) ⑦경칭(敬稱) ⑧스승 ⑨열매 ⑩이자(利子) ⑪작위(爵位)의 이름 ⑫접미사(接尾辭) ⑬어조사(語助辭) ⑭번식하다 ⑮양자로 삼다 ⑯어리다 ⑰사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어머니 모(母),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아들과 딸의 높임말을 자녀(子女), 며느리 또는 아들의 아내를 자부(子婦), 아들과 사위를 자서(子壻), 아들과 손자 또는 후손을 자손(子孫), 아들과 딸의 총칭을 자식(子息), 남의 아들의 높임말을 자제(子弟), 십이시의 첫째 시를 자시(子時), 밤 12시를 자정(子正), 새끼 고양이를 자묘(子猫), 다른 나라의 법률을 이어받거나 본떠서 만든 법률을 자법(子法), 모선에 딸린 배를 자선(子船),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자막집중(子莫執中),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자모지심(子母之心), 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을 일컫는 자성제인(子誠齊人),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자위부은(子爲父隱) 등에 쓰인다.
▶️ 野(들 야, 변두리 여, 농막 서)는 ❶형성문자로 埜(야)는 고자(古字), 墅(야)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마을 리(里;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予(여, 야)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予(여, 야)는 물건과 물건을 강제로 떼어놓는 일이나 침착하여 초조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里(리)는 사람이 사는 곳, 野(야)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 넓고 넓은 곳을 나타낸다. 도시의 언저리를 郊(교)라고 하고 郊(교)의 언저리를 野(야)라 한다. 옛 글자체는 숲(林)과 흙(土)을 합(合)한 것(埜)이며 나무가 난 곳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野자는 ‘들판’이나 ‘교외’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野자는 里(마을 리)자와 予(나 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予자는 실을 감는 ‘실패’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여→야’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런데 野자의 갑골문을 보면 土(흙 토)자와 林(수풀 림)자가 결합한 埜(들 야)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흙과 나무가 많은 곳을 표현한 것으로 숲이 우거져 있는 ‘들판’이나 ‘교외’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소전에서부터는 里자가 교외 지역의 의미를 대신하게 되었고 予자는 발음역할을 하게 되면서 지금의 野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野(야, 여, 서)는 먼저 들 야의 경우는 ①들, 들판(야) ②민간(民間: 일반 백성들 사이)(야) ③문밖, 마을, 시골(야) ④성(城) 밖, 교외(郊外)(야) ⑤구역(區域), 범위(範圍)(야) ⑥별자리(야) ⑦야생(野生)의(야) ⑧질박하다(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야) ⑨촌스럽다, 꾸밈새가 없다(야) ⑩길들지 않다(야) ⑪서투르다, 익숙하지 못하다(야) ⑫거칠다(야) ⑬등한하다(무엇에 관심이 없거나 소홀하다), 사리에 어둡다(야) ⑭비천하다(야) ⑮미개하다(야) ⑯방종하다, 자유분방하다(야) 그리고 변두리 여의 경우는 ⓐ변두리, 교외(郊外)(여) 그리고 농막 서의 경우는 ㉠농막(農幕: 농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집)(서)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침 조(朝), 더불 여(與)이다. 용례로는 지능이 미개하고 문화가 극히 뒤떨어진 상태를 야만(野蠻), 들에서 나는 나물을 야채(野菜),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을 야망(野望), 산이나 들에 저절로 나서 자람을 야생(野生), 마을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들을 야외(野外), 들 가까이에 있는 나지막한 산을 야산(野山), 야망을 이루려는 마음을 야심(野心), 농사를 짓는 사람을 야민(野民), 야심을 품은 욕심을 야욕(野慾), 들에서 하는 싸움을 야전(野戰), 성질이나 행동이 야하고 비루함을 야비(野卑), 좋지 못한 목적 밑에 서로 어울림을 야합(野合), 들에 친 진영 또는 거기서 하는 생활을 야영(野營), 교양이 없고 거친 사람을 야인(野人), 어떤 갈래에 달린 범위나 부문을 분야(分野), 여당과 야당을 여야(與野), 눈의 보는 힘이 미치는 범위를 시야(視野), 지표면이 평평한 넓은 들을 평야(平野), 아득하게 너른 벌판을 광야(廣野), 나무가 무성한 들을 임야(林野), 초야에 파묻혀 있음을 재야(在野), 현명한 사람이 모두 등용되어 민간에 인물이 없음을 야무유현(野無遺賢), 기름진 들판이 천 리에 달한다는 뜻으로 끝없이 넓은 기름진 들판을 옥야천리(沃野千里), 산과 들에 가득히 뒤덮임을 만산편야(滿山遍野), 끝이 없이 넓은 들을 무변대야(無邊大野), 두 다리의 여우라는 뜻으로 마음이 음흉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양각야호(兩脚野狐), 이리 새끼는 사람이 길들이려고 해도 본래의 야성 때문에 좀체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낭자야심(狼子野心) 등에 쓰인다.
▶️ 心(마음 심)은 ❶상형문자로 忄(심)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고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다. 말로서도 心(심)은 身(신; 몸)이나 神(신; 정신)과 관계가 깊다. 부수로 쓸 때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로 쓰이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心자는 ‘마음’이나 ‘생각’,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心자는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心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위치에 따라 忄자나 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心(심)은 (1)종기(腫氣) 구멍이나 수술한 구멍에 집어넣는 약을 바른 종이나 가제 조각 (2)나무 줄기 한 복판에 있는 연한 부분 (3)무, 배추 따위의 뿌리 속에 박인 질긴 부분 (4)양복(洋服)의 어깨나 깃 따위를 빳빳하게 하려고 받쳐 놓는 헝겊(천) (5)초의 심지 (6)팥죽에 섞인 새알심 (7)촉심(燭心) (8)심성(心星) (9)연필 따위의 한복판에 들어 있는 빛깔을 내는 부분 (10)어떤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마음, 뜻, 의지(意志) ②생각 ③염통, 심장(心臟) ④가슴 ⑤근본(根本), 본성(本性) ⑥가운데, 중앙(中央), 중심(中心) ⑦도(道)의 본원(本源) ⑧꽃술, 꽃수염 ⑨별자리의 이름 ⑩진수(眞修: 보살이 행하는 관법(觀法) 수행) ⑪고갱이, 알맹이 ⑫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물(物), 몸 신(身), 몸 체(體)이다. 용례로는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심정(心情), 마음의 상태를 심경(心境), 마음 속을 심중(心中),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심취(心醉), 마음에 관한 것을 심적(心的), 마음의 속을 심리(心裏), 가슴과 배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를 심성(心性), 마음의 본바탕을 심지(心地),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심심상인(心心相印),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을 심기일전(心機一轉), 충심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심열성복(心悅誠服),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을 심광체반(心廣體胖),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지인(心腹之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