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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낙불사촉(樂不思蜀)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5|조회수373 목록 댓글 0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樂 : 즐거울 락(木/11)
不 : 아니 불(一/3)
思 : 생각 사(心/5)
蜀 : 나라 촉(虫/7)

출전 : 삼국지(三國志)

 

즐거운 나머지 촉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반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본래 자신의 고국을 간절히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말기에 촉(蜀)나라의 황제(皇帝) 유비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선(劉禪)이 뒤를 이었다. 제갈량(諸葛亮) 등 중신마저 세상을 떠난 뒤, 무능한 유선(劉禪)은 나라를 보전하지 못하였다. 위(魏)나라가 침공하자 스스로 손목을 묶고 성문을 열어 투항하였다. 위(魏)나라 왕은 유선(劉禪)을 안락공(安樂公)으로 봉하고, 위(魏)나라의 도읍에 살게 하였다.

하루는 위(魏)나라의 대장군 사마소(司馬昭)가 연회를 열어 유선(劉禪)을 초대하고는 촉(蜀)나라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다. 유선(劉禪)을 수행한 촉(蜀)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 음악을 듣고 고향 생각에 애틋한 기색이 역력하였으나, 유선(劉禪)만은 전혀 슬픈 기색이 없이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사마소(司馬昭)가 그 모습을 보고 수하인 가충(賈充)에게 “사람이 저리도 무정하니, 설령 제갈량이 살아 있더라도 오래 보좌할 수 없겠거늘 하물며 강유(姜維) 정도야 말해 무엇하겠나”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사마소(司馬昭)는 마냥 즐거워하는 유선에게 고국 촉(蜀)나라가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선(劉禪)은 “이렇게 즐거우니 촉(蜀)나라는 생각나지 않습니다(此間樂,不思蜀)”라고 대답하였다. 유선(劉禪)을 수행한 극정(郤正)이 이 말을 듣고 남몰래 유선(劉禪)에게 “만일 다시 물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선친의 묘가 멀리 촉(蜀) 땅에 있으니 서쪽만 바라보아도 슬퍼져서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대답하셔야 합니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유선(劉禪)이 자리로 돌아오자 사마소(司馬昭)가 다시 촉(蜀)나라가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유선(劉禪)은 극정(郤正)이 일러준 대로 말하고는 억지로 눈물을 흘리려고 하였으나 눈물이 나오지 않아 눈을 감아 버렸다. 사마소(司馬昭)가 “어찌하여 극정(郤正)이 하는 말과 똑같은 거요?”라고 말하자, 유선(劉禪)이 흠칫 놀라 눈을 뜨고 사마소(司馬昭)를 바라보며 “참으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 후세 사람들이 탄식하여 시를 지었다.

追歡作樂笑顔開[추환작락소안개]
不念危亡半點哀[부념위망반점애]
快樂異鄕忘故國[쾌락이향망고국]
方知後主是庸才[方知後主是庸才]
환락을 좇으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여
망국의 슬픔이란 한 점도 보이지 않는구나
타국에 잡혀와 쾌락에 취해 고국을 잊으니
후주 이리 못난 사람인 줄을 알았도다

이 고사는 삼국지(三國志)의 촉서후주선전(蜀書後主禪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낙불사촉(樂不思蜀)은 눈앞의 쾌락이나 향락에 젖어 자신의 본분이나 처지를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성어다.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운 나머지 촉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반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본래 자신의 고국을 간절히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263년 위나라가 촉나라에 쳐들어갔다. 촉나라의 황제 유선(劉禪)은 순순히 항복하고, 촉나라는 멸망했다. 위나라에서는 그에게 안락공(安樂公)의 벼슬을 내리고, 위나라 수도 허창(許昌)에서 살게 했다. 유선은 아비 유비(劉備)와 달리 포부도 없었다. 허창에서도 그는 여전히 놀기를 즐겼다.

 

사마중달의 아들 사마소(司馬昭)는 유선을 불러 자주 술을 마셨다. 사마소는 연회를 열고 촉나라 사람에게 촉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유선을 따라온 촉나라 관리들은 눈물을 흘렸다. 사마소가 유선에게 물었다. "촉나라 생각이 안 나시오?" 유선은 "지금 즐겁기만 하오. 고향 생각이 안 나오"라고 했다. 사마소는 더 이상 유선을 감시하지 않았다. 즐거워서(樂) 촉나라(蜀)를 생각하지 않는다(不思)는 낙불사촉(樂不思蜀)의 유래이다. 현재의 생활을 즐기며 고향이나 조국을 잊어버리는 사람이나 그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유선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조조에게 쫓겨 어린 유선은 아비와 사별할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장수 조운(趙雲)이 목숨을 걸고 유선을 구출해 유비에게 바쳤다. 유비는 아기 유선을 팽개치며, "아이 때문에 유능한 장수를 잃을 뻔 했소"라고 했다. 유선은 황제가 되어서도 제갈량과 같은 권신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데 포로로 위나라에 와서는 시름을 놓고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적국에서 안락한 삶을 찾은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현재 한국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 한반도를 떠났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많이 돌아오고 있다. 1940년 통계를 보면 당시 한반도 인구의 10% 정도가 해외에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후손이 고향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결혼 이주여성을 비롯해 많은 외국인들도 정착하고 있다. 우리에겐 그들을 낙불사촉하게 하는 너그러움과 지혜가 있을까.

 

어리석은 아두 [樂不思蜀]

 

촉한이 멸망한 뒤에도 후주 유선은 줄곧 성도에 있었다. 그러다가 종회, 강유의 병란이 일어나자 사마소는 유선을 성도에 두었다가는 또 시끄러운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낙양으로 데려왔다. 유선은 우매하고 무능한 인간이었다.

 

제갈량이 촉한의 군정 대사를 다스릴 때는 그래도 제갈량의 말을 들으며 매사에 조심하여 큰 실수가 없었지만, 제갈량이 죽은 다음에는 그렇지 못했다. 장완, 비위(費褘), 강유 등 문무대신들의 보필을 받았음에도 조정의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를 못했다. 게다가 환관 황호(黃皓)를 총신하여 촉한은 더욱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촉한이 멸망하고 강유가 병란 속에서 죽자 대신들은 죽을 사람은 죽고 달아날 사람은 달아났다. 유선을 따라 낙양으로 간 관리는 지위가 낮은 관원인 극정(郤正)과 유통(劉通)뿐이었다. 유선은 아무것도 모르는 위인이었으며 사람들과의 교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일거일동을 모두 극정이 가르쳐 줘야만 했다.

 

유선을 낙양으로 데려온 사마소는 원제의 이름으로 그를 안락공(安樂公)에 봉하고, 그의 자손과 촉한 대신들 50여 명에게도 후작을 봉해 주었다. 사마소가 이렇게 후하게 대해 준 것은 민심을 농락하여 촉한 지역의 통치를 튼튼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유선은 태산 같은 은덕이라며 감지덕지해했다.

 

어느 날 사마소가 유선과 촉한 대신들을 연회에 초대했는데, 연회 중에 가녀들이 촉나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촉한의 가무를 본 촉한의 대신들은 망국의 슬픔이 되살아나 모두 눈시울을 붉혔지만 오직 유선만은 입을 헤 벌리고 정신 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몰골은 예전에 자신의 궁궐에서 궁녀의 가무를 구경하던 때와 별 다름이 없었다.

 

유선의 그런 한심한 꼴을 곁눈질로 훔쳐보던 사마소는 연회가 끝난 후에 심복인 가충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선은 정말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군. 제갈량이 지금 살아 있다고 해도 저런 임금을 모시고서야 촉한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망할 수밖에 없지.”

 

며칠 후에 사마소는 유선을 접견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직도 촉한을 생각하시오?” 그러자 유선은 헤헤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가 좋은데 촉한을 생각할 리 있사옵니까.” 여기서 낙불사촉(樂不思蜀)이란 말이 나왔다. 이는 향락에 젖어 지난날이나 혹은 잊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을 잊어버리는 소행을 비유하는 말이다.

 

곁에서 그 말을 듣던 극정은 한심해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다음 유선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왕(晉王, 사마소)께 그런 대답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대답을 하란 말이오?” “앞으로 진왕이 또 그런 식으로 물으면 눈물을 흘리시면서 ‘조상의 무덤이 촉에 있는데 하룬들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래야 우리는 돌아갈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촉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합니다.” “알았소. 그렇게 말하겠소.”

 

후에 사마소가 유선을 불러 또 물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는데 아직도 촉을 생각하시오?” 유선은 극정이 가르쳐 준 대로 말하면서 애써 슬픈 양을 보이려고 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그저 눈만 끔벅거렸다. 그 꼴을 보고 사마소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극정이 그렇게 말하라고 하였소?”

 

그러자 유선은 흠칫 놀라며 눈이 동그래져서는 사마소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사마소는 너털웃음을 웃었고, 좌우의 시종들도 크게 웃었다.

 

그후 사마소는 유선이 여간 모자란 게 아니므로 자신한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선을 죽이지 않았다. 이 유선의 애명이 ‘아두(阿斗)’여서 후세 사람들은 아둔하고 무능한 사람을 가리켜 ‘일으킬 수 없는 아두[扶不起的阿斗]’라고 했다.

 

 

유비의 아들 유선의 생존술

 

낙불사촉(樂不思蜀)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어지간한 식자라도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표현일 텐데 문자 그대로는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데 그 유래는 의미심장하다.

 

동양의 고전이라는 '소설 삼국지'에 유비의 아들 유선 이야기가 더러 나온다. 장판파 전투에서 상산 조자룡이 조조의 백만대군 사이를 누비면서도 품안에 지켜냈던 '아두'가 바로 그 유선이다. 유비가 세상을 뜨면서 제갈공명에게 후사를 부탁하며 왕재가 시원찮거든 대신 대권을 쥐라고 당부했던 문제의 인물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유비가 세웠던 촉은 서기 263년 위나라 원제 사마소의 군대에 의해 멸망한다. 이후 부분은 '소설 삼국지'에서 그다지 조명받지 못하는 부분인데 여기서 문제의 '낙불사촉(樂不思蜀)'이 나온다. 사마소는 촉한 지역의 안정을 위해 인심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망국의 황제 유선을 안락공(安樂公)에 봉하고 촉의 중신 50여 명을 제후에 봉하는 등 우대했다.

 

그 사마소가 하루는 유선과 촉의 신하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는 가희들에게 촉 지방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했다. 이를 본 촉의 중신들은 망국의 슬픔에 눈물을 흘렸지만 유선만은 마치 예전 자기 궁전에 있는 듯 즐거워했다. 며칠 후 사마소가 유선을 만나 "촉나라가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유선은 쾌활한 모습으로 "이곳의 생활이 매우 즐거워 촉한이 그리운 줄 모르겠습니다"라 답했다나.

 

여기서 나온 '낙불사촉(樂不思蜀)'이 눈앞의 쾌락이나 향락에 젖어 자신의 본분이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비유로 쓰이게 되었다. 물론 유선은 능력은 없으면서 오로지 핏줄로 권좌에 오른 암군(暗君)의 대명사가 되고.

 

한데 중국사의 수수께끼를 파고든 '중국역사 암호 44'(허이 지음, 은행나무)의 지은이는 이견을 제시한다. 유선이 영민하고 능력 있는 군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약하고 무능하기만 한 군주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보통 사람 수준의 머리는 갖추었다는 사례를 여럿 제시하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오랜 통치기간이다.

 

유선은 서기 223년 제위에 올라 위에 투항할 때까지 40년간 권세를 누렸다. 곧 삼국 시대의 여러 군주 중 가장 '장수'했던 황제란 이야기다. 그저 아둔하기만 했다면 군웅이 할거하고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그 시대에 그토록 오랫동안 집권이 가능했을까. 물론 여기엔 제갈공명이 보조한 덕이라는 추론이 있을 수 있는데 공명은 234년 세상을 떠났으니 유선은 그 후로도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로 반증한다.

 

같은 처지였던 오나라의 손호가 사마소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 반면 유선은 안락공으로 8년을 지내고 천수를 다했다. 그러니 '낙불사촉(樂不思蜀)'은 생존을 위한 '보통 사람' 유선의 지혜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태도였는가는 둘째 치고 말이다.

 

 

제갈량 사후 유선이 30년이나 촉한을 통치할 수 있었던 이유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을 얘기하면 세상사람들은 모두 멸시한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의 눈에 유선은 '도저히 안되는 아두(阿斗)'이기 때문이다. 심한 사람은 그를 '망국(亡國)의 혼군(昏君), 상방(喪邦)의 용인(庸人)'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실한 유아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유비가 백제성에서 병사한 후, 유선은 촉한의 황제가 된다. 그는 모두 41년간 황제로 있었다. 삼국시기의 각국 황제들 중에서 재위기간이 가장 긴 황제이다. 그중 제갈량은 유선을 11년간 보좌했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은 후, 유선은 30년이나 더 황제로 있었다. 군웅이 할거하던 동란의 시대에 멍청한 그가 어떻게 이렇게 오랜기간 황제로 있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천여년이래로 세상사람들은 유선을 오해했고, 유선의 진면목을 몰라봤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선은 도대체 어떤 남모르는 뛰어난 점이 있었을까?

 

첫째, 유선은 대용약겁(大勇若怯)했다.

유선은 황제에 등극했을 때 나이가 겨우 17살이었다. 유비는 임종때 특별히 당부한다: "너는 승상과 일하면서 부친처럼 모셔라!" 그 뜻은 유선으로 하여금 제갈량을 부친처름 여기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유선에게 "정무를 볼 때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모두 제갈량에게 결정하도록 하라"고 한다. 즉 모든 일은 한가지 원칙을 따르라는 것이다. 승상께서 말씀하시는대로 해라. 그래서 당시의 제갈량은 대권을 손에 움켜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통이 큰 유선도 확실히 모든 일에 겸양하며, "부친으로 보셨다" 황제로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중에 유선의 나이가 점점 들면서, 왕조의 통상적인 법도에 따라, 제갈량은 당연히 권력을 점차로 유선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유선이 순조롭게 '전정(轉正)' 즉 진정한 황제가 되도록 해야 했다. 나중에 제갈량은 북벌을 주장한다. 유선은 비록 찬동하지 않지만, 그래도 제갈량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유선은 '군주와 신하가 불화하면, 반드시 내부에 변고가 생긴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비의 가르침과 어른에 대한 존중을 엄격하게 이행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내부의 지도부를 단결시켜서 통치집단의 안정을 꾀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비는 대지약우(大智若愚)했다.

유선은 집정기간 동안 사람을 잘 골라서 썼다. 처음에는 전권을 제갈량에게 맡겼다. 이것은 그의 총명한 점이다. 제갈량은 나라를 잘 다스렸다. 제갈량이 죽은 후에도 유선은 여전히 제갈량의 방침을 따른다. 심지어 제갈량이 선발해 놓은 후보들을 기용한다. 동시에 그는 정치적 두뇌가 있었다.

 

제갈량이 죽은 후, 유선은 승상제도를 폐지하고, 비위를 상서령 겸 대장군으로 삼고, 장완을 대사마로 삼는다. 두 사람은 권력이 서로 교차했고, 서로 견제했다. 다만 각자 치중하는 면은 있었다. 장완은 정무를 위주로 하며 군사를 겸했고, 비위는 군사를 위주로 하면서 정무를 겸했다. 궁정과 내정의 대권을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새로운 정치국면은 유선이 절대로 다시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승상 한 사람이 결정하도록 하여 자신이 대권을 쥐지 못하는 난감한 국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완이 죽은 후, 유선은 더 나아가 스스로 국사를 처리한다. 그가 직접 촉한의 정권을 장악해서 처리한 기간이 19년에 달한다.

 

이 일련의 조치와 배후의 치국이념은 모두 유선이 절대로 IQ낮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더더구나 혼군은 아니다. 오히려 대지약우의 총명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은 후주 유선에 대한 평가를 8자로 개괄했다: 연약무능(軟弱無能), 현우불변(賢愚不辨). 그중 주요한 이유는 바로 유선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서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했으며 포로로 잡힌 후에는 낙불사촉(樂不思蜀) 했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유선이 위나라에 투항한 후, 사마소가 연회를 베풀어 촉국의 군신을 접대한다. 그때 특별히 촉 지방의 음악을 연주하게 한다. 이를 통해 유선의 반응을 관찰하고자 한 것이다. 촉나라의 옛 신하들은 고국음악을 듣고는 비통한 모습을 보인다. 오직 유선만이 슬퍼하지 않고 웃음을 보이며, 기뻐했다. 사마소는 당시에 옆에 앉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심간(心肝)이 없어도 어찌 저 정도일 수 있는가."

 

나중에 사마소는 유선에게 물어본다. "촉국이 그립지 않느냐"고. 유선은 즉시 6글자로 대답하여, 후세인들에게 욕을 먹는다: "차간락(此間樂), 불사촉(不思蜀)" 바로 이런 이유로 "낙불사촉"이라는 성어는 유선을 철저히 체면도 없고 기개도 없는 멍청이로 규정짓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을 결합해서 살펴보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유선의 '낙불사촉'은 그가 연약하고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가 능굴능신(能屈能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조위는 성도를 포위했고, 유선은 쌍방의 실력을 고려한 후, 분명하게 알았다. 자기가 죽어라 저항하면 병사들에게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고, 아마도 조위는 도성(屠城)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렇게 되면 백성들에게 해가 미친다. 심사숙고를 거친 후, 유선은 문을 열고 투항한 것이다. 그후 포로가 되어 낙양으로 끌려갔고, 안락공에 봉해진다.

 

그렇다면, 이것을 가지고 유선이 겁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백성들이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게 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에 나라는 멸망하더라도, 자신은 포로로 잡혀서 여전히 낙불사촉할 수 있다. 그러나 유선은 스스로 투항하여 매국이라는 오명을 얻는다. 그러면서 백성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켜주었다.

 

망국 이후, 유선은 자신의 생명도 다른 사람에게 장악되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하여, 유선은 반드시 바보인 척 해야 했다. 매번 자신의 재능을 감추어야 했다. 그래서 '차간락, 불사촉'이라는 6글자는 바로 자신을 보전해주고 선종(善終)할 수 있게 해준 법보가 된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思(생각 사, 수염이 많을 새)는 ❶회의문자로 田(전; 뇌)와 心(심; 마음)의 합자(合字)이다. 思(사)는 '생각하다'의 뜻이다. 옛날 사람은 머리나 가슴으로 사물을 생각한다고 여겼다. ❷회의문자로 思자는 '생각'이나 '심정', '정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思자는 田(밭 전)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소전에서는 囟(정수리 신)자가 들어간 恖(생각할 사)자가 '생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囟자는 사람의 '정수리'를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정수리에는 기가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囟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니 恖자는 머리(囟)와 마음(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깊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囟자가 田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思(사, 새)는 성(姓)의 하나로 ①생각, 심정(心情), 정서(情緖) ②의사(意思), 의지(意志), 사상(思想) ③뜻 ④마음 ⑤시호(諡號) ⑥성(姓)의 하나 ⑦어조사(語助辭) ⑧생각하다, 사색하다 ⑨그리워하다 ⑩슬퍼하다, 시름 겨워하다 그리고 ⓐ수염이 많다(새) ⓑ수염이 많은 모양(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생각할 륜(侖)이다. 용례로는 돌이키어 생각함을 사고(思顧), 생각하고 궁리함을 사고(思考), 사유를 통하여 생겨나는 생각을 사상(思想), 정을 들이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함을 사모(思慕), 마음으로 생각함을 사유(思惟), 여러 가지 일에 관한 깊은 생각과 근심을 사려(思慮), 생각하여 헤아림을 사료(思料), 생각하여 그리워함을 사련(思戀),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간직함을 사복(思服), 생각하고 바람을 사망(思望), 사물의 이치를 파고들어 깊이 생각함을 사색(思索), 서로 엉킨 많은 생각이나 생각의 실마리를 사서(思緖), 정의의 길을 그려 생각함을 사의(思義), 한 시대의 사상의 일반적인 경향을 사조(思潮), 마음 먹은 생각을 의사(意思), 생각하는 바를 소사(所思),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을 묵사(默思), 고통스러운 생각을 고사(苦思), 깊이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을 심사(深思), 묘한 생각을 묘사(妙思), 객지에서 갖는 생각을 객사(客思), 지나간 뒤에 그 사람을 사모함을 거사(去思), 곰곰이 잘 생각함을 숙사(熟思), 생각이나 느낌이 많음을 다사(多思), 저녁 때의 슬픈 생각을 모사(暮思),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사무사(思無邪), 어떠한 문제를 생각하여 해석이나 구명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을 사고방식(思考方式), 사모해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사모불망(思慕不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생각과 사물을 제 분수대로 각각 나누어서 가름을 일컫는 말을 사려분별(思慮分別),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평안할 때에도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잊지말고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한 때일수록 위험이 닥칠 때를 생각하여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안거위사(安居危思),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너무 깊게 함 또는 애쓰면서 속을 태움을 일컫는 말을 노심초사(勞心焦思),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함 또는 신중을 기하여 곰곰이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심사숙고(深思熟考), 능히 보고도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보통의 이치로는 추측할 수 없는 일을 이르는 말을 능견난사(能見難思),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또는 눈앞의 즐거움에 겨워 근본을 잊게 될 때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몹시 뒤섞이고 착잡하여 어수선하게 생각함 또는 그 생각을 일컫는 말을 호사난상(胡思亂想),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리지 못할 생각이나 평범하지 않는 생각을 일컫는 말을 비이소사(匪夷所思), 낮에 생각하고 밤에 헤아린다는 뜻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깊이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주사야탁(晝思夜度), 물을 마실 때 수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음수사원(飮水思源), 일을 하면 좋은 생각을 지니고 안일한 생활을 하면 방탕해 진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노사일음(勞思逸淫) 등에 쓰인다.

▶️ 蜀(나라이름 촉)은 회의문자로 나비 애벌레의 상형(象形)과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의 합자(合字)이다. 그래서 蜀(촉)은 (1)촉한(蜀漢) (2)중국 사천성(四川省)의 옛 이름 (3)전촉(前蜀) 등의 뜻으로 ①나라의 이름, 촉(蜀)나라 ②고을의 이름 ③나비의 애벌레 ④제기(祭器)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촉으로 통하는 험난한 길이라는 뜻으로 인정과 세로世路의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촉도(蜀道), 촉나라에 이르는 험난한 길이라는 뜻으로 거친 인생 행로를 이르는 말을 촉로(蜀路), 끝을 뾰족하게 만든 칼을 촉도(蜀刀), 삼국지의 일부로 진晉나라의 진 수陣壽가 지은 촉한蜀漢의 역사서를 촉지(蜀志), 중국 원元나라 조맹부趙孟腐의 글씨체를 촉체(蜀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인 제갈공명을 이르는 말을 촉상(蜀相), 수수로 볏과의 한해살이 풀을 촉서(蜀黍), 수수로 볏과의 한해살이 풀을 촉출(蜀秫), 소쩍새를 촉백(蜀魄), 소쩍새를 촉조(蜀鳥), 접시꽃을 촉규(蜀葵), 한 가지 소망을 이루고 나서 다시 그 밖의 것을 바란다는 말을 망촉(望蜀), 접시꽃의 갓 나오는 연한 잎을 데쳐 물에 헹구어 썰어서 소금과 기름에 묻힌 나물을 촉규채(蜀葵菜), 아주 흰빛의 모피로 흔히 옥토끼의 가죽을 촉묘피(蜀貓被), 접시꼿의 잎을 넣어서 끓인 토장국을 촉규탕(蜀葵湯), 촉나라의 개는 해를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해만 보면 짖는다는 뜻으로 식견이 좁은 사람이 선하고 어진 사람을 오히려 비난하고 의심한다는 촉견폐일(蜀犬吠日), 옥수수를 맷돌에 타서 까부른 다음 물에 담갔다가 곱게 갈아서 쑨 묵을 옥촉서유(玉蜀黍油),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롱망촉(得隴望蜀), 촉 땅을 얻고 싶어 하는 탄식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망촉지탄(望蜀之歎),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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