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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귤화위지(橘化爲枳)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5|조회수982 목록 댓글 0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탱자가 되었다.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 귤나무 귤(木/12)

: 될 화(匕/2)

: 할 위(爫/8)

: 탱자나무 지(木/5)

 

(유의어)

남귤북지(南橘北枳)

 

 

중국 고대 잠언집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는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성어 근주자적근묵자흑(近朱者赤近墨者黑)이 나온다. 붉은 물감을 가까이하면 붉어지고, 검은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환경과 가까이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이 좀 부정적인 의미라면 긍정적인 뜻을 담고 있는 성어도 고전에는 많이 실려 있는데, 순자(荀子)에 실려 있는 마중지봉(麻中之蓬)이 대표적이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곧아진다로 직역되는 이 말은, 사람이 좋은 환경이나 선량한 사람과 사귀면 그 영향을 받아 선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좋은 환경을 찾아서 거처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사귀라는 가르침을 많은 고전에서 주고 있는데, 환경과 습관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실려 있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가 재미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안영(晏嬰)은 중국 역사상 드물게 보는 명재상이다. 세 명의 왕(靈公, 莊公, 景公) 밑에서 재상을 지냈지만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고,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 대답하되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품행을 조심하였다. 또한 유창한 달변과 임기응변으로도 유명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나라의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하였다. ()나라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하필 경()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초나라 왕은 당시 제나라를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이런 심한 농담을 함부로 해댔다.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하였다.“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안영의 능수능란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화가 끓어올랐는데, 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 밝힌 다음,“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군.”

 

안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嬰聞之橘生淮南則爲橘生于淮北爲枳葉徒相似其實味不同所以然者何水土異也.).”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성인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이 오히려 부끄럽군요.”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영의 명성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로 강대국이었던 초나라 왕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안자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가장 탁월했던 재상으로 정치외교적인 능력은 물론 재치 있는 언변도 갖추고 있었다. 또한 학식이 깊은 학자로서 삶의 지혜와 통찰도 깊은 인물이었다.

 

다음은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실려 있는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와의 일화다. 어느 날 안자(晏子)를 방문했던 증자가 먼 길을 떠나려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자 안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무릇 군자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수레를 선물하는 것이 좋은 말 한마디를 해주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였소. 제가 수레를 하나 선물할까요, 아니면 좋은 말 한마디를 선물할까요?”

 

그 당시의 수레는 지금의 자동차와 같은 값비싼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보는데 소위 군자를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차마 수레를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증자는 군자답게 한마디 말을 부탁했고, 안자는 증자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충고한다.

 

산 위 곧은 나무도 장인이 불에 달구어 수레바퀴를 만들면 다시 펴지지 않고, 민간에 묻혀 알려지지 않았던 화씨의 옥은 훌륭한 옥공이 다듬자 나라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귀한 보물이 되었소. 따라서 군자는 자신을 어떻게 수양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곧은 나무일지라도 한번 굽혀지면 다시 펼 수가 없고, 나라간에 전쟁을 일으킬 만큼 귀한 보물도 다듬어지지 않으면 산속의 돌에 불과하다. 즉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나쁜 환경 또는 습관에 의해 잘못된다면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이 말의 결론으로 안자는 습속이성(習俗移性), 즉 습관과 풍속이 사람의 본성을 바꾼다고 말했다. 안자의 가르침은 우리 후손에게 좋은 환경과 훌륭한 풍속을 만들어 물려 주어야 할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귤화위지(橘化爲枳) 

 

작금의 여의 섬 사파리동물원 주변의 어느 위정자 우두머리와 그를 따르는 무리로 인해 세상은 시끄럽고 어지럽다. 세상은 꽃 피고 푸름을 뽐내는 계절인데 정치는 제 잇속 챙기기에 바쁜 듯 실망을 자아내어 생뚱맞게 어떤 것이 정치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되거나 바른 정치인지 생각한다. 왜 거기만 가면 세상을 좌로 읽고 옳고 그름을 모르고 저절로 내로남불, 견강부회, 아전인수, 책임 전가가 당연하고 떳떳한 표현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거기 우두머리가 충·효·인·의·예·지·신의 우국충정, 상부상조, 환난상휼을 바탕으로 5천년 유구한 역사와 문화로 계승·발전한 홍익인간 백의민족의 후예에서의 돌연변인가. 언변은 청산유수인데 행동이 기대 이하라 씁쓸히 그지없다. 거기 땅에는 물이 나쁜가. 땅이 나쁜가. 생각하다가 ‘환경에 따라 삶이 변질된다’는 의미의 귤화위지의 어원을 찾아 함께 깨달음을 갖고자 펼쳐 본다. 

 

춘추시대에 제(齊) 나라에는 안영(晏嬰)이라는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명재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유창한 달변과 더불어 임기응변으로도 유명한 자로. 어느 해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하였다. 초나라의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 나라에는 사람이 그렇게도 없소? 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하며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을 하였는데,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하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우리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안영의 능수능란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아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바로 화를 낼 수 없는 군왕의 체통으로 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 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 밝힌 다음 “제 나라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 군”이라고 하였다.

 

이에 안영은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백성들 중 제 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寡人)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바로 이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귤화위지(橘化爲枳)인데 이 말의 의미는 귤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맛이 달라지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의미 있는 말이다.

 

같은 상황에 있으면서 어떤 사람은 희망을 보고 어떤 사람은 절망을 보고 어떤 사람은 걸림돌로 보고 어떤 이는 디딤돌로 여기게 된다. 누구를 만나고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서 행복한 삶을 살 수 도 있고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다. 희망을 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희망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불행을 예측하는 통찰력으로 불행을 미리 대처해 피하는 삶도 있다. 작금의 어느 위정자처럼 제 잇속에 열일 하지 말고 멀리 보는 정치가 그립다.

 

좋은 친구, 좋은 인연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자신이 먼저 좋은 생각과 바르게 처신을 해야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이어갈 수 있다. 귤과 탱자를 만드는 방법은 모두 내 안에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삼밭에 자라는 쑥처럼 품종은 다르더라도 불행을 행복으로 승화하여 타의 기쁨이 되고 모범이 되는 인향만리(人香萬里) 즐거운 삶이길 소원해 본다.

 

 

귤화위지(橘化爲枳)

 

9월은 탱자가 노랗게 익어가는 때다. 감귤처럼 생긴 탱자는 향기는 좋지만 먹지는 못한다. 식물학적으로 둘 다 운향과에 속하지만 하나는 식용으로 쓸모가 많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는 이 두 가지 열매를 두고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었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재상인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러자 초나라 왕은 제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와서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고 힐책했다. 이에 안영이 귤화위지에 비유하면서 제나라에 사는 사람 중에는 도둑이 별로 없는데,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도둑질을 많이 한다면 이는 초나라 풍토의 문제가 아니겠느냐며 반론을 펼쳤다.  

 

기후와 토양이 바뀌면 정말로 귤나무에서 탱자가 열릴까? 필자가 청소년기에 이 한자를 처음 접했을 때는 제주도 귤나무를 가져와 서울에 심어보고 이게 정말인지 알아봐야겠다고 맘먹은 적이 있었다. 말의 참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귤화위지는 생물학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도·환경의 차이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추구하는 목표와 행동, 선택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현상을 비유한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다.

 

어찌 보면 동·식물은 자연환경에 적응적 진화하는 데 애를 쓰는 반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의 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속성이 많다. 예컨대 일 잘하는 사람을 제대로 보상하고 해악을 끼친 사람을 적절하게 제재하며, 귤과 탱자를 혼동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누구나 성실하게 일하려는 유인이 있다.

 

그러나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예측 불가능하고, 내가 부린 재주에 다른 사람이 공을 채가는 조직에서는 힘 있는 자와의 친분 맺기 정치를 앞세워 비정상적인 잇속을 챙기려는 탱자족이 우세하게 마련이다. 탱자족에 끼지 못하는 대다수 구성원들은 냉소주의에 빠지면서 조직의 파망(破網)을 재촉할 것이다. 어느 조직, 어느 사회든 탱자족과 귤족 중 누가 우대받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제도에서 비롯된다. 국가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영국의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멤버였던 이사벨라버드 비숍은 조선을 방문, 탐사하고는 '한국과 이웃 나라들'이란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비숍은 조선인에 대한 첫 인상이 지저분하고 게으르고 가망 없다고 느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시베리아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만나서 그들이 근면성실하게 일하고 재산을 모은 것을 보고는 생각을 바꾼다. ‘조선에서 농부들이 양반과 관료들의 가혹한 세금 등으로 이익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만 경작하고’, 시베리아 정착민들도 ‘그대로 조선에 있었으면 똑같이 근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비숍의 결론이었다.

 

지금도 기업조직을 포함한 도처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잘되는 음식점은 맛만 좋은 게 아니라 누가 주인이고 종업원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다들 열심히 일하는 특징이 있다. 노력과 보상의 연계에 대한 주인과 종업원 사이의 신뢰가 남다른 협력과 고객 응대로 표출되는 것이다.

 

시골에 가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는 노란 열매를 혹시라도 보게 되면 한번쯤 자문해 보시라. 우리 회사는 탱자가 잘되는지 아니면 귤이 잘되는지.

 

 

귤화위지(橘化爲枳)와 조직문화

 

귤화위지(橘化爲枳)는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이 그 처해 있는 곳에 따라서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된다는 말이다. 즉 사람이나 사물이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 성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비유한다.

 

귤나무는 남쪽의 따뜻한 강남(江南) 지방에서 자라면 맛있는 귤이 열리지만, 강북(江北) 지방으로 옮겨 심으면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신 맛의 탱자가 열린다고 한다. 이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람의 성격, 행동, 능력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나의 조직이 갖는 독특한 문화는 구성원들의 태도 변화를 가져오게 하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유래는 춘추시대 말기, 제나라에 ‘안영’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어느 해 ‘안영’이 초나라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초나라 ‘영왕’은 ‘안영’이 재능에 비해 키가 작고 외모가 볼품없음을 비꼬아 말했다. "당신 같은 인물을 사신으로 보내는 걸 보면, 제나라에는 인재가 없소?" ‘안영’의 키가 너무 작은 것을 비웃는 ‘영왕’의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우리나라는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냅니다." 즉, 초나라를 작은 나라라고 돌려 말한 것이었다.

 

얼마 있다가, ‘영왕’은 절도죄를 저지르고 잡혀가는 제나라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오?" ‘안영’이 말했다. "회남의 귤나무를 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죠. 잎사귀는 비슷하지만 열매의 맛은 너무나 다릅니다. 바로 물과 토양의 차이 때문이죠. 저 사람은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는 것을 보니 이 나라의 풍토가 좋지 않은가 봅니다"라고 맞받아쳤다는 유래이며 이 일화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훈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SBS 모기자는 중국 취재 파일에서 '외국 기업이 유독 중국에서 자리 잡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라는 글에서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에서 단서를 찾았다. ”중국은 외국 문물을 단순히 베끼는 차원을 넘어서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것을 창출해 왔습니다. 최근 문호를 개방한 후부터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선진국의 기술을 열심히 받아들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무섭게 굴기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려면 지금까지의 경제적, 정치적 접근과는 다른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라는 의견을 내었다.

 

이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최근 화두는 우리나라 기업의 히든챔피언 육성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해외 사례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한국사회가 수십 년간 반복해온 실패를 답습하는 일이다. ‘강남의 귤을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는 중국 속담처럼 역사도 문화도 다른 외국의 정책이나 성공사례가 한국에서 원래 모습대로 잘 정착될 리 없다. 한국사회가 외국과 다른 이상, 정책을 위해 삶의 방식까지 모두 바꾸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철저한 한국화는 히든챔피언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성공의 선결 조건일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적용 사례를 세 가지로 설명해보면 첫째, 교육적 부분은 좋은 교육 환경과 스승을 만난 학생은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는 재능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사회생활 부분은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직장 환경에서는 직원의 성과가 좋아지지만, 부정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서는 능률이 떨어질 수 있다. 셋째, 개인생활 부분은 건강한 생활 습관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환경은 사람의 성격과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사적인 관계에서도 좋은 평판 유지를 위해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며, 되도록이면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언행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귤화위지(橘化爲枳) 탱자맛

 

보이는 들녘은 모두 조금조금 비워져 가고, 이른 아침은 눈부시게 밝아온 햇살 속에서도 조용하기만 하다. 옛날처럼 탱자나무가 울타리 역할을 넉넉히 감당하고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인지 도대체 그 많던 참새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붕에 내린 햇살도, 뜰에 가득 쌓인 아침 빛에도 울안은 그저 조용한 눈부심뿐이다. 참새들이 사라진 탓이다.

 

집을 둘러싼 탱자나무가 시멘트 벽돌담에 밀려난 뒤에 울안의 아침은 봄이고 여름이고 더더구나 가을이고 간에 참새의 목소리로 넘쳐나는 일이 없다. 그저 몇 마리 습관처럼 날아와 빈 감나무 가지에 앉았다가 잠시 소란을 뿌려놓기가 무섭게는 훨훨 날아가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탱자나무가 울타리로 무성하게 자라 울안을 철저하게 둘러쌌을 때는 그야말로 참새들이 우르르르 떼 지어 몰려와서 왁자지껄하는 바람에 아침잠은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서 일찌감치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탱자나무 밑 장독 위에 올려있는 정화수 맑은 물이 참새들 떼창소리에 저절로 흔들린 정도라면 지나치다 할까.  어린 시절의 탱자나무 울타리는 하늘에 떠 있는 매들의 유영으로부터 참새들의 유일한 피난처가 된다.

 

하늘의 날던 매들이 시시각각 지상을 노려보며 아무리 참새를 찾아보아도 소리만 높이 울려올 뿐이지 단 한 마리의 참새 모습조차 발견할 수 없다. 보이지 않아 그저 하늘의 날기에도 지쳐 한동안 맴돌다가 매조차 그만 사라져버릴 지경이 이르곤 한다. 사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이르는 동안 무성해지고 나면 참새들은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매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매가 탱자나무 울타리에 짙은 그림자를 내려 겁을 주어도 참새들은 왼쪽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가시가 뻗어 있어서 매의 날카로운 발톱이나 부리는 고사하고 가벼운 깃털 하나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참새들은 그림자로만 스쳐 지나가는 하늘의 매를 조롱하듯이 일제히 소리를 높여갈 뿐이다. 그야말로 탱자나무는 참새떼를 지켜주는 경계에서 울타리 구실을 철저히 다하였던 것이다.

 

역시 탱자나무의 가장 비극적인 쓰임은 위리안치(圍籬安置)라 할 수 있다. 옛날 나라의 죄인을 귀양 보냈을 때 주된 주거지를 제한하는 형벌의 하나로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출입을 못 하게 하였다지 않았던가. 길게는 수십 년을 넘어 때로는 최후에 이르기까지 탱자나무에 갇혀 지내야 했을 것이거니와 그사이 애꿎은 탱자나무만 제 가시에 제 몸을 콕콕 찔러대듯 하였을 것이다.  

 

탱자나무는 다 자란 나무의 키가 2~4m 정도의 자그마한 나무에 불과하다. 중국 양쯔강 상류가 원산지라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알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중부 이남에서 주로 울타리로 심겨 있는 가시나무의 대표적인 나무이다. 탱자나무라 하면 우선 짙푸른 가시가 떠오른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이나 될까, 날카로운 가시가 가지마다 빈틈없이 돋아나 있다.

 

약간 모가 난 초록색 줄기는 길고 튼튼하며, 험상궂게 생긴 가시가 쉽게 접근을 거부하는 듯한 모습에는 자못 겁박하는 듯한 위엄이 시퍼렇게 서려 있다. 가지의 색깔이 초록이라서 갈잎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 앙상하게 보이기는커녕 얼핏 늘푸른나무처럼 푸르싱싱하기만 하다.

 

늦봄에 새하얀 꽃이 향기를 피워 올리고, 가을에 열리는 동그랗고 노란 탱자 열매는 별 볼 일 없는 모양새와는 다르게 친근하고 도탑기만 하다. 먹거리가 항상 부족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노랗게 익은 둥그런 탱자는 절로 굵은 침을 흘리게 한다. 지독한 신맛은 얼굴을 찡그려 가면서도 한두 개는 먹어치웠던 시절이 절로 떠오른다.  

 

탱자나무라 하면 무엇보다도 중국의 고전인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이야기를 져버릴 수 없다. 제나라 재상 안영이 초나라의 영왕을 만나러 갔을 때 안영의 기를 꺾기 위해 도둑질을 한 제 나라 사람을 잡아놓고는 “제 나라 사람들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는 버릇이 있습니까?”하고 비아냥거리며 물었다나?

 

그러자 안영은 자리를 피하며 말하기를,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귤은 회수의 남쪽에서 자라면 귤이 되지만, 회수의 북쪽에서 자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단지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일의 맛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백성들이 제나라에서 자라면 도둑질을 하지 않다가도 초나라에 들어가면 도둑질을 합니다. 이는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이 이야기는 바로 사람은 주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귤화위지(橘化爲枳)의 모습 그대로 요즈음의 정치권에서 참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이념이 어떻고 간에 국민복지를 위하여 이념과 신념의 자존심으로 살아가겠다는 선량들이 일단 여의도에 입성하기만 하면 작심삼일도 안 되어 오직 탱자 맛 같은 아귀다툼뿐이다. 결국 회수를 넘어 탱자로 변해버린 채 국민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귤나무 귤)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 나무)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 )로 이루어졌다. ()은 귤나무의 열매이며, 동글납작한 액과(液果)로 물이 많고, 맛은 시면서도 달콤 쌉쌀하다. 껍질은 등황색(橙黃色)이고, 껍질을 벗겨 살을 먹거나 쥬스, 향료(香料) 따위에 쓰고, 껍질은 말려서 약으로도 쓴다. 감귤(柑橘), 귤포, 밀감이라고 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귤 감()이다. 용례로는 귤나무의 잎을 귤엽(橘葉), 귤과 유자를 귤유(橘柚), 귤 속을 까서 넣거나 또는 귤껍질을 썰어 넣고 빚은 술을 귤주(橘酒), 귤의 껍질을 귤피(橘皮), 귤피의 안쪽에 있는 흰 부분을 벗겨낸 껍질을 귤홍(橘紅), 귤나무의 꽃을 귤화(橘花), 의사나 의원을 달리 이르는 말을 귤정(橘井), 바둑을 두는 즐거움을 이르는 귤중지락(橘中之樂),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 등에 쓰인다.

 

▶️(될 화)는 회의문자로 (), ()의 고자(古字)이고, ()는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모양을 바꿔 다른 사람()이 된다는 뜻을 합()한 글자로 되다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고칠 개(), 바꿀 역(), 고칠 경(), 변할 변(), 가죽 혁()이다. 용례로는 다른 것으로 변하여 간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르는 화거(化去), 죽은 사람을 화자(化者),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화상(化像), 둘 이상의 물질이 결합하여 본디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새로 특유한 성질을 가진 물질이 되는 일을 화합(化合), 성질을 변하게 함을 화성(化性), 마음을 변하게 함을 화심(化心), 얼굴을 곱게 꾸밈을 화장(化粧), 지질시대에 살았던 동식물의 유해 또는 그 흔적이 퇴적암 같은 바위 속에 남아 있는 화석(化石) 등에 쓰인다.

 

▶️()는 상형문자로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양을 본떴다. ()하여 '하다, 이루다, 만들다, 다스리다'의 뜻으로 삼고 다시 전()하여 '남을 위하다, 나라를 위하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 옮길 사(), 옮길 반(), 흔들 요(), 옮길 운(), 들 거(), 옮길 이(), 다닐 행(), 구를 전()이 있다. 용례로는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 다른 것에 앞서 우선하는 일이라는 위선(爲先), 정치(政治)를 하는 사람을 위정자(爲政者), 임금 노릇하기도 신하 노릇하기도 어렵다는 위군난위신불이(爲君難爲臣不易),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된다는 위어육(爲魚肉), 나라를 위한 충성스러운 절개라는 위국충절(爲國忠節) 등에 쓰인다.

 

▶️(탱자나무 )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 나무)와 음()을 나타내는 ()가 합()하여 이루어졌다. ()는 탱자나무, 가지에서 전()하여 막다, 저지하다의 뜻이 있다. 나무로 만든 악기를 지어(枳敔), 벼슬길이 막힘을 지색(枳塞), 어린 탱자를 썰어서 말린 약재를 지실(枳實), 썰어 말린 탱자를 기각(枳殼), 금강산의 다른 이름을 지달산(枳怛山),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은 사는 곳의 환경에 따라 착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남귤북지(南橘北枳)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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