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어지탄(車魚之歎)
수레와 고기가 없음을 탄식한다는 뜻으로,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車 : 수레 거(車/0)
魚 : 고기 어(魚/0)
之 : 어조사 지(丿/3)
歎 : 탄식할 탄(欠/11)
(유의어)
계학지욕(溪壑之慾)
계학지욕(谿壑之慾)
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
득롱망촉(得隴望蜀)
장협귀래호(長鋏歸來乎)
차청차규(借廳借閨)
욕심에는 한이 없음을 이르는 말로, 맹상군(孟嘗君)의 식객(食客) 풍환(馮驩)이 칼을 어루만지며 '밥상에 생선이 없다'고 투덜거렸고, 생선이 나온 다음에는 '드나들 때 수레가 없다'고 탄식하였다는 옛일에서 온 말이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고사이다.
중국 전국시대 때의 일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맹상군은 현명하고 학식이 깊어 그의 문하생이 되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때문에 그는 수천명의 유능한 식객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식객 중에 풍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풍환은 하는 일도 없이 늘 빈둥거리며 지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이에 주위의 사람들은 그를 피해 다녔으나 맹상군은 그를 아껴주었다.
어느 날 풍환은 생선이 없다고 투덜거렸다. 맹상군은 곧바로 생선을 올려 주었다. 며칠 후에는 자신이 타고 다닐 수레가 없다고 탄식했다(車魚之歎). 맹상군은 그를 위해 수레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에도 풍환은 많은 불평을 했지만 맹상군은 그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들어주었다. 결국 웃날에 풍환은 맹상군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
이때부터 거어지탄(車魚之歎)은 '수레와 고기가 없음을 탄식한다'는 말로, 사람의 욕심에는 한(限)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거어지탄(車魚之歎)
수레와 물고기가 없다고 한탄한다는 뜻으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다.
거어지탄(車魚之歎)은 중국 전국시대의 제나라(齊) 왕족인 맹상군(孟嘗君)의 식객 풍훤(馮諼)이 식사할 때 생선이 제공되지 않고 외출할 때 수레가 제공되지 않자, 칼을 두드리며 탄식조로 돌아가겠다고 노래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제나라 사람 풍훤은 가난하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게 되자, 아는 사람을 통해 맹상군에게 문하에서 기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맹상군이 풍훤을 만나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오?" "저는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맹상군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잘하오?" "저는 잘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에 맹상군은 풍훤의 사람됨을 아는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하였습니다.
맹상군의 수하들은 맹상군이 그를 천하게 여긴다고 생각했으므로 거친 음식만 주었습니다. 머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풍훤은 기둥에 기대어 자신의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칼아, 돌아가자! 음식에 생선이 없구나." 수하가 이 광경을 고하자 맹상군이 말하였습니다. "생선을 먹게 하고 문하의 식객들과 똑같이 대우하거라."
그렇게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칼아, 돌아가자! 외출할 때 타고 다닐 수레가 없구나." 수하가 모두 비웃으며 고하자 맹상군이 말하였습니다. "그에게 수레를 타게 하고 문하에서 수레를 타고 다니는 식객들과 똑같이 대우하거라."
이에 풍훤이 수레를 타고서 그의 장검을 든 채 친구들 옆을 지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맹상군이 나를 최상의 문객으로 대우하고 있다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칼아, 돌아가자! 가족을 부양할 수 없구나." 수하 모두 그를 미워하면서 탐욕스럽고 만족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여겼습니다.
맹상군이 이 이야기를 듣고 물었습니다. "풍훤에게 어버이가 계시느냐?" "노모가 있다고 합니다." 맹상군이 사람을 시켜 노모에게 음식과 생활용품을 제공하여 궁핍하지 않게 해 주었더니, 그제야 풍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풍훤은 이후 맹상군이 조카인 제나라 민왕(湣王)에게 버림당하였을 때 기묘한 계책으로 민왕을 설득하여 맹상군을 제나라 재상으로 만들었으며 아주 작은 재앙조차 겪지 않고 수십 년간 영화를 누리도록 도왔습니다.
거어지탄(車魚之歎)은 이처럼 맹상군의 식객인 풍훤이 칼을 두드리면서 외출할 때 타고 다닐 수레가 없다고 투덜대거나 밥상에 생선이 없다고 투덜대며 자신의 바람을 충족시켰던 고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성어입니다.
거어지탄(車魚之歎)
수레와 고기에 대한 탄식이라는 뜻으로 끝이 없는 욕심을 일컫는 말이다. 맹상군(孟嘗君)의 식객(食客) 풍환(馮驩)이 칼을 어루만지며 ‘밥상에 생선이 없다’고 투덜거렸고, 생선이 나온 다음에는 ‘드나들 때 수레가 없다’고 탄식하였다는 옛일에서 온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편에 다음 고사가 전해진다. 제(齊)나라에 풍훤(馮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살림이 궁핍하여 생계를 꾸릴 수가 없자 아는사람에게 부탁해 당대 권력가이자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던 맹상군(孟嘗君)에게 그의 식객으로 받아주기를 청했다.
이에 맹상군이 말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풍훤이 대답했다.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맹상군이 다시 물었다. '그럼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풍훤이 대답했다. '잘하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이에 맹상군은 웃으며 그를 받아주었다.
다른 식객들은 맹상군이 그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 생각하고 변변찮은 음식(가장 하급 식객 대우)을 주었다. 얼마 지나 풍훤이 기둥에 기대 칼을 두드리며 이렇게 노래 불렀다. '장협아, 돌아가자! 밥에 생선 하나 없구나(長鋏歸來乎, 食無魚)' 다른 이들이 이를 알리자 맹상군이 말했다. '주어라. 고기 먹는 식객(중급 식객) 대우를 해주어라.'
또 얼마 지나서 풍훤이 칼을 두드리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타고 나갈 수레도 없구나(長鋏歸來乎, 出無車)' 이를 알리자 맹상군이 말했다. '주어라. 수레 타는 식객(상급 식객) 대우를 해주어라.'
얼마 후 풍훤이 또 칼을 두드리며 노래했다. '장협아, 돌아가자! 가족을 먹여 살릴 것이 없구나.' 이에 다른 이들이 탐욕스러워 만족할 줄 모른다고 못마땅해 했지만, 맹상군은 그에게 노모가 있음을 알고 일용할 양식을 보내주어 노모가 궁핍함이 없도록 해주었다. 그 후로 풍훤은 다시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여기서 전하여 거어지탄(車魚之歎)은 현재의 분수나 처지에 만족할 줄 모르고 한없이 욕심 부리는 행태 또는 그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같은 뜻으로 '말을 타면 노비를 거느리고 싶어 한다'는 뜻의 기마솔욕노(騎馬欲率奴),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어 한다'는 뜻의 득롱망촉(得隴望蜀), '마루를 빌려 쓰다 안방까지 차지한다'는 뜻의 차청차규(借廳借閨) 등이 있다.
욕심을 불교용어로 욕(欲)이라 한다. 욕(欲)은 탐욕(貪欲)의 줄임말로서, 탐(貪)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해서 바른 노력 없이 쉽게 얻으려는 욕구, 즉 탐(貪)의 마음작용이 욕심이며 바라고, 구하고, 하고자 할 때 동반되는 것이어서 지나치면 반드시 화(禍)를 부른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이런 욕심을 악욕(惡欲)이라 한다. 사실 욕심에는 악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한 욕심도 있다. 이런 욕심을 선욕(善欲)이라 한다. 이는 자신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욕심은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해서 '사악한', '나쁜', '그릇된' 등등의 못된 표현도 동반된다. 그 속에는 돈 등 타인의 재물공적, 명예 또는 지식을 빼앗거나 가로채 도용함으로써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구가 숨어있어 더욱 그렇다.
지금 세상에는 욕심이 가득하다. 또 최고 권력자부터 정치권에 속한 여·야 모두 욕심은 욕심대로, 질투는 질투대로 다하면서 좋은 결과를 바라고 있다. 국민들을 볼모로 말이다. 민생이 요즘 어떤데.
거어지탄(車魚之歎)
수레와 고기가 없음을 탄식하는 뜻으로,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다. 만족할줄 모르는 인간의 지나친 욕망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권력가 맹상군(孟嘗君)의 이야기이다. 맹상군(孟嘗君)이라면 대단한 수의 식객(食客)들을 거두고 잘 대접한 것으로 유명하다. 맹상군(孟嘗君)은 권력을 잡고 세도를 부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나 기거할 곳 없는 지사 등 재주 있는 자들을 마다하지 않고 식객(食客)으로 받아들였다.
식객(食客) 중에서 자질이 뛰어난 이도 많아서 그 자체로 그의 명망을 높이고 자산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풍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짚신에 다 헤어진 옷차림이었다. 누추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그의 허리에는 긴 칼 한 자루가 채워져 있었다. 맹상군(孟嘗君)은 그를 전사라고 하는 3등 숙소에 머물게했다.
열흘 후 맹상군은 풍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풍환은 그의 칼자루를 두드리며 "돌아갈거나 장검이여...이곳의 밥상에는 생선이 없네"라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 말은 들은 맹상군(孟嘗君)은 풍환을 현 숙소보다 한 단계 위인 행사라는 2등 숙소로 옮겨 주어 머물게 했다. 이 숙소에서는 밥상에 생선이 나왔기 때문이다.
닷새 후에 맹상군(孟嘗君)은 풍환이 어찌 지내는지 궁금했다. 현재 숙소에서는 밥상에 생선이 올라가니 만족하겠지 생각하며 물었다. 그러나 풍환은 또다시 칼자루를 두드리며 "돌아갈거나 장검이여... 출입을 하려해도 수레가 없네"하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맹상군(孟嘗君)은 풍환을 다시 가장 좋은 대사라는 1등 숙소로 옮겨 머물게했다.
진(秦)나라에서 맹상군(孟嘗君)을 두려워해 실각시키고자 유언비어를 퍼트린다. 식객(食客)이 늘어나고 위세가 날로 커져가는 것에 불안을 느낀 제(齊)나라 임금은 맹상군(孟嘗君)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그러자 그간 대접을 받던 식객(食客)들은 의리도 없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
그러나 식객(食客) 중 진(秦)나라와 제(齊)나라의 역학관계를 꿰뚫어보고 있는 풍환이라는 사람이 맹상군(孟嘗君)을 복위시킨다. 제(齊)나라 임금 역시 맹상군(孟嘗君)을 쫓아낸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다시 불러들여 복권을 시키니 떠나갔던 식객(食客)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핵심 참모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아침이면 시장으로 모여들고 저녁이면 모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가는 것은 사람들이 아침시장(朝市)을 특별히 편애하고 저녁시장(夕市)을 유달리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저녁시장(夕市)에는 필요한 물건이 이미 다 팔리고 없는 지라 떠나갈 뿐입니다. 주군이 권세를 잃자 떠나간 것이고 다시 되찾자 모여들 뿐이니 이는 자연스런 것입니다. 속으로 원망은 되겠지만 저들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모두 주군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거어지탄(車魚之歎)이다. 거어지탄(車魚之歎)이란 수레와 고기가 없음을 탄식하는 뜻으로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음을 이르는 말로, 만족할줄 모르는 인간의 지나친 욕망을 가리키는 말이다.
화중지왕(花中之王) 거어지탄(車魚之歎)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이맘때면 따라부르고 싶은 '모란•동백' 첫 구절이다. 원곡자 이제하 작가의 투박한 목소리도 좋고, 조영남 가수의 담담하며 깨끗한 소리도 좋다. 청순한 아가씨 같기도 하고 성숙한 귀부인 같은 모란. 매년 봄 그 속에 감춰진 요염함과 우아한 자태에서 풍기는 향기에 흠뻑 빠져든다.
모란이 소임을 다할 무렵, 모란을 닮은 작약이 피고 있다. '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이란 말이 실감나는 계절이다. 서있으면 작약처럼 우아하고 앉으면 모란처럼 예쁘다는 말이다.
모란은 작약과의 낙엽관목으로 그 꽃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며 중국 북서부가 원산이다. 함박꽃이라 불리는 작약은 모란과 비슷하지만 나무인 모란과 달리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래서 모란은 겨울에 가지가 눈을 맞고 있지만, 작약은 뿌리만 남긴채 시들었다 봄이면 새싹이 돋는다.
옛부터 서양에서는 장미를 사랑했다면, 동양에서는 모란이다. 중국에는 수나라 때부터 모란의 품종명이 문헌에 등장한다. 당나라 시인 유종원(劉宗元)의 용성록(龍城錄)에 의하면, 당시 품종개량이 시작되어 현종 때는 이미 수십 종의 모란을 가꿨다.
이때 송선보(宋單父)라는 모란 전문 원예사가 있었는데, 양귀비에 푹 빠진 현종은 그를 불러 장안 여산에 모란을 1만주나 심었다고 하며 꽃의 색깔도 다양했다고 한다. 지금의 산동성 하택시(荷澤市)에는 400여종 80만주의 모란이 심어져 있는 조주모란원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진평왕(565~632) 때 당태종이 모란 그림과 모란씨 석 되를 보냈다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이때 덕만공주(후에 선덕여왕)가 모란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을 것이라 단정해 씨를 심었더니 과연 향기없는 꽃이 피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현재의 엄청난 품종개량을 거친 모란과는 달리 원시품종 중에 향기가 약한 것을 보낼 수도 있다. 그리고 당나라 때 모란도에는 동물이나 벌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래서 그런 일화가 전해지지 않았을까.
중국에서 모란은 옛부터 '모든 꽃 중의 왕', 즉 화중지왕(花中之王) 또는 백화지왕(百花之王)으로 추앙받아왔다. 신라의 설총(薛聰)도 모란을 왕으로 의인화하여 화왕계(花王戒)라는 글을 지을 정도였다. 그후 명나라 이시진(李時珍)이 '본초강목'에서 모란을 '화왕(花王)'이라 못박았다.
또한 당나라 이정봉의 시에서 유래한 향기를 품은 미녀를 지칭한 천향국색(天香國色), 측천무후의 미움을 사 낙양으로 쫓겨나 낙양화(洛陽花),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서 유래한 부귀화(富貴花), 초본인 작약과 비교한 목작약(木芍藥) 등으로도 불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여타 꽃들은 오래 못가지만 백거이가 모란은 20일 동안 피고지고 한다고해 이십일초(二十日草)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태종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부귀화라는 별명으로 만족했던것 같다. 그러니 진평왕에 보낸 모란도에는 모란뿐 다른 소재가 없었다. 그러다 부귀로는 양이 차질않고 '사회적인 지위'까지 더한 부귀영화(富貴榮華)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우리 속담에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비유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에 맹상군(孟嘗君)이란 현명한 재상이 있었다. 그의 식객 중에 풍환이라는 사람은 늘 불평이 많아 다른 이들은 피해 다녔으나 맹상군은 그를 아꼈다.
어느 날 풍환이 밥상에 생선이 없다고 투덜거리자 맹상군은 곧 생선을 올려주었다. 며칠 후에는 타고 다닐 수레가 없다고 탄식하자, 맹상군은 수레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에도 그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었다. 이런 대우를 받은 풍환은 훗날 맹상군을 위해 큰 공을 세운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수레와 고기가 없음을 탄식한다'는 '거어지탄(車魚之歎)'이란 성어가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전국책(戰國策)과 사기(史記)에 실려있는 일화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까지 갖고 싶어 한다'는 말인 '득롱망촉(得隴望蜀), '한 치의 땅을 얻으면 더 얻고 싶어한다'는 뜻인 '득촌진척(得寸進尺)' 등이 있다.
사람들은 부귀영화로도 모자라 장수(長壽)까지 원하게 되어 고양이와 나비까지 넣어 모질도(耄耋圖)를 그렸다. 중국어로 고양이 묘(猫)자는 70세를 뜻하는 모(耄)자와 나비 접(蝶)자는 80세를 뜻하는 질(耋)자와 발음이 같아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로 모란과 함께 머리가 하얀 새인 백두조(白頭鳥)를 더하기도 한다.
진평왕 당시 신라에서는 이러한 그림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 모란꽃에는 향기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모란씨를 심었더니 정말 향기가 없더라는 말은 호사가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 선조들도 모란꽃을 사랑했다. 붉은색은 액을 막아준다고 믿었고, 모란의 만개 모습은 풍요로움의 상징이 됐다. 통일신라시대 막새기와에 모란 문양이 처음 등장한 이후, 고려시대 청자는 말할 나위 없고, 조선시대에는 더욱 많은 생활용품에서 모란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귀한 신분의 호사스런 옷은 물론 반짓고리, 베개, 이불, 병풍 등 생활용품의 장식으로 쓰였다. 지금도 베갯잇에는 물론 담요와 앞치마 등 일상용품은 물론이고 가톨릭의 미사포에서도 모란무늬를 찾아볼 수 있다.
모란병풍은 민간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았다. 궁중에서처럼 민간의 혼례 때도 마당에 모란대병(牡丹大屛)을 설치했다. 평소에는 현실로 이루어지기 불가능한 꿈같은 일이지만, 혼례 날만큼은 모란병풍을 두르고 임금처럼 대접을 받았다.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할 때도 모란을 사용했다. 상여 곳곳을 모란으로 장식했고, 제사 때 모란병풍을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사찰에서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명부전에 모란병풍을 설치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종이로 만든 모란꽃을 들고 여러 신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모란은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서로운 꽃이다.
선덕여왕은 그림에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걸 보고 모란에 향기가 없다 했다. 그러나 모란에는 분명 향기가 있다. 모란은 화왕이라는 별명답게 크고 예쁘다. 사람들은 모란을 꽃 중의 꽃으로 여길지 모르나 벌과 나비의 생각도 과연 그럴까.
▶️ 車(수레 거, 수레 차)는 ❶상형문자로 수레의 모양을 본떴다. 车(거/차)는 간자(簡字)이다. 부수로서는 수레에 관한 글자의 의미로 쓴다. 수레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서, 임금이 타는 수레를 의미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임금의 거동을 뜻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車자는 '수레'나 '수레바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참고로 車자에는 '차'와 '거'라는 두 가지 발음이 있다. 車자는 물건이나 사람을 싣고 다니던 '수레'를 그린 것이다. 수레는 무거운 짐이나 사람을 쉽게 이동하게끔 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갑골문에 나온 車자를 보면 당시의 수레가 잘 묘사되어 있었다. 갑골문에서는 양쪽에 큰 바퀴와 상단에는 차양막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후에 한자가 세로로 쓰이게 되면서 양쪽에 있던 수레바퀴는 단순하게 획으로 그어졌고 짐이나 사람을 싣던 곳은 田자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車자는 수레를 세로로 그린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車자는 수레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수레'나 '전차'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車(거/차)는 (1)바퀴를 굴려서 나아가게 만든 운수 수단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기차(汽車), 자동차(自動車), 전차(電車) 등을 말함 (2)장기짝의 하나로 車자를 새긴 것으로, 한 편에 둘씩 네 개가 있다. 차 치교 포 친다. 제 마음대로 이리저리 마구 휘두름을 이르는 말.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수레 ②수레바퀴 ③수레를 모는 사람 ④이틀(이가 박혀 있는 위턱 아래턱의 구멍이 뚫린 뼈) ⑤치은(齒齦; 잇몸) ⑥장기(將棋)의 말 그리고 ⓐ수레(거) ⓑ수레바퀴(거) ⓒ수레를 모는 사람(거) ⓓ이틀(이가 박혀 있는 위턱 아래턱의 구멍이 뚫린 뼈)(거) ⓔ치은(齒齦; 잇몸)(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수레 가(軻), 수레 로/노(輅), 수레 량/양(輛), 가마 련/연(輦), 수레 여(轝)이다. 용례로는 임금이 타는 수레를 거가(車駕), 수레와 말을 거마(車馬), 물품 따위를 수레에 실음을 거재(車載), 수레 바퀴를 거륜(車輪), 비나 볕을 가리기 위해 수레 위에 친 우산 같은 덮개를 거개(車蓋),여러 가지 수레의 총칭을 차량(車輛), 차가 다니도록 마련한 길을 차도(車道), 차량의 사람이 타게 된 칸을 차간(車間), 도로를 주행 방향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 놓은 선을 차선(車線), 승객이나 화물을 싣는 부분을 차체(車體), 차량을 넣어두는 곳을 차고(車庫),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오르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수레와 말의 왕래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 즉 행렬이 성대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거수마룡(車水馬龍), 차윤이 개똥벌레를 모았다는 뜻으로 가난한 살림에 어렵게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차윤취형(車胤聚螢), 차윤의 반딧불과 손강의 눈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서의 면학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차형손설(車螢孫雪), 수레에 싣고 말斗로 될 수 있을 정도라는 뜻으로 인재나 물건이 아주 많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거재두량(車載斗量), 수레와 고기가 없음을 탄식한다는 뜻으로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거어지탄(車魚之歎), 수레의 말은 살찌고 몸의 의복은 가볍게 차려져 있음을 이르는 말을 거가비경(車駕肥輕), 경험이 없는 말로 수레를 끌게 하려면, 먼저 다른 말이 끄는 수레 뒤에 매어 따라다니게 하여 길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작은 일에서부터 훈련을 거듭한 뒤 본업에 종사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거재마전(車在馬前),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라는 뜻으로 수레나 말을 타고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노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거철마적(車轍馬跡) 등에 쓰인다.
▶️ 魚(고기 어)는 ❶상형문자로 漁(어)의 고자(古字), 鱼(어)는 통자(通字)이다. 물고기 모양을 본뜬 글자로, 한자의 부수로서는 물고기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글자이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대로 그린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魚자를 보면 물고기의 주둥이와 지느러미가 잘 묘사되어 있었다. 이후 해서에서 물고기의 몸통과 꼬리를 田(밭 전)자와 灬(불 화)자로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의 魚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활용될 때는 주로 어류의 종류나 부위, 특성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魚(어)는 성(姓)의 하나로 ①물고기 ②물속에 사는 동물의 통칭(通稱) ③바다 짐승의 이름 ④어대(魚袋: 관리가 차는 고기 모양의 패물) ⑤말의 이름 ⑥별의 이름 ⑦나(인칭대명사) ⑧고기잡이하다 ⑨물에 빠져 죽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생선을 가공해서 말린 것을 어물(魚物), 물고기 잡는 그물을 어망(魚網), 물고기를 잡거나 기르는데 쓰이는 항아리 모양으로 만든 유리통을 어항(魚缸), 물고기의 알을 어란(魚卵), 물고기와 조개를 어패(魚貝), 생선 파는 시장을 어시장(魚市場), 물고기의 종류를 어종(魚種), 낚시로 고기잡이하는 데 쓰는 배를 어선(魚船), 물고기를 기름 또는 기른 물고기를 양어(養魚), 말린 물고기를 건어(乾魚), 미꾸릿과의 민물고기를 추어(鰍魚),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청어(靑魚), 멸치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행어(行魚), 퉁가리과의 민물고기를 탁어(馲魚), 은어과의 물고기를 은어(銀魚), 가오리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홍어(洪魚), 가물치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흑어(黑魚), 학꽁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침어(針魚), 멸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약어(鰯魚), 동자개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종어(宗魚), 잉어과의 민물고기를 타어(鮀魚), 철갑상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심어(鱘魚), 제사 상을 차릴 때에 어찬은 동쪽에 육찬은 서쪽에 놓음을 이르는 말을 어동육서(魚東肉西), 어魚자와 노魯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몹시 무식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로불변(魚魯不辨), 물고기와 물처럼 친한 사이라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의 친밀한 사이 또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친(魚水之親),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이 매우 친근한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교(魚水之交), 고기 대가리에 귀신 상판때기라는 뜻으로 괴상 망측하게 생긴 얼굴을 형용하는 말을 어두귀면(魚頭鬼面), 고기가 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목숨이 붙어 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비유하는 말을 어유부중(魚遊釜中), 잉어가 용으로 화한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 양명함을 이르는 말을 어룡장화(魚龍將化), 물고기의 눈과 연산의 돌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가 옥과 비슷하나 옥이 아닌 데서 허위를 진실로 현인을 우인으로 혼동함을 이르는 말을 어목연석(魚目燕石), 물고기는 대가리 쪽이 맛이 있고 짐승 고기는 꼬리 쪽이 맛이 있다는 말을 어두육미(魚頭肉尾), 물고기 떼나 새 때가 흩어져 달아난다는 뜻으로 크게 패망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어궤조산(魚潰鳥散),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 뜻으로 어릴 적에는 신통하지 못하던 사람이 자란 뒤에 훌륭하게 되거나 아주 곤궁하던 사람이 부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어변성룡(魚變成龍), 글자가 잘못 쓰였다는 뜻으로 여러 번 옮겨 쓰면 반드시 오자誤字가 생긴다는 말을 어시지혹(魚豕之惑), 용과 같이 위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옳은 듯하나 실제는 그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질용문(魚質龍文)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歎(탄식할 탄)은 ❶형성문자로 叹(탄), 嘆(탄)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하품 흠(欠; 하품하는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만히 참는다의 뜻을 가지는 부수를 제외한 글자 (난)으로 이루어졌다. 크게 숨쉬고 정신상의 커다란 자극을 참는다는 뜻으로 한숨 쉬다, 근심하며 슬퍼하다의 뜻에서 널리 감탄하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歎자는 '탄식하다'나 '한탄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歎자는 難(어려울 난)자의 생략자와 欠(하품 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歎자는 이렇게 '어렵다'나 '근심'이라는 뜻을 가진 難자에 欠자를 결합해 근심 걱정에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탄식하다'는 뜻은 口(입 구)자가 들어간 嘆(탄식할 탄)자가 있기도 하지만 주로 歎자가 쓰이는 편이다. 그래서 歎(탄)은 ①탄식하다 ②한탄하다 ③읊다, 노래하다 ④화답하다 ⑤칭찬하다 ⑥탄식 ⑦한숨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탄식할 차(嗟), 한숨 쉴 희(噫), 한 한(恨)이다. 용례로는 한숨쉬며 한탄함을 탄식(歎息), 탄식하는 소리를 탄성(歎聲),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도와주기를 몹시 바람을 탄원(歎願), 감탄의 말을 탄사(歎辭), 한탄하며 하소연함을 탄소(歎訴), 탄복하여 크게 칭찬함을 탄미(歎美), 감탄하여 마음으로 따름을 탄복(歎服), 탄식하여 마음이 상함을 탄상(歎傷), 탄복하여 크게 칭찬함을 탄상(歎賞), 한탄하며 애석히 여김을 탄석(歎惜), 감탄하여 우러러 봄을 탄앙(歎仰), 의분이 북받쳐 탄식함을 개탄(慨歎), 원망하거나 또는 뉘우침이 있을 때에 한숨짓는 탄식을 한탄(恨歎), 몹시 탄식함 또는 그런 탄식을 통탄(痛歎), 어떠한 대상을 대단하다고 여겨 감탄함을 찬탄(讚歎), 감동하여 칭찬함을 감탄(感歎),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탄식함을 자탄(自歎), 슬퍼하며 탄식함을 비탄(悲歎), 목소리를 길게 뽑아 심원한 정회를 읊음을 영탄(詠歎), 매우 감탄함 또는 몹시 놀라 탄식함을 경탄(驚歎),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망양지탄(亡羊之歎),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일컫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넓은 바다를 보고 탄식한다는 뜻으로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함을 일컫는 말을 망양지탄(望洋之歎), 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이라는 뜻으로 고국의 멸망을 탄식함을 일컫는 말을 맥수지탄(麥秀之歎)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