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이치를 구명하여 자기의 지식을 확고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格 : 이를 격(木/6)
物 : 만물 물(牛/4)
致 : 이를 치(至/4)
知 : 알 지(矢/3)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린다는 수신제가(修身齊家)는 보통 사람이라도 지켜야 하는 덕목이다. 더 큰 뜻을 펼치려는 평천하(平天下)할 사람은 더욱 먼저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이처럼 좌우명 이전의 기본인 이 말이 유교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상식이 됐다.
원래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가 지었다고 하는데 관혼상제와 일상의 예절이 담긴 예기(禮記)에서 독립시킨 것으로 분량은 아주 적다. 대학이 오늘날 학제의 대학은 당연히 아니고, 큰 뜻을 배우고 닦는 글이란 의미로 주희(朱熹)가 저술한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연구가 집중된 데서 왔다고 본다.
대학의 수신제가 다음으로 알려진 말이 실제적 사물을 통하여(格物) 그 이치를 연구하고 온전한 지식에 이른다(致知)는 이 성어다. 격치(格致)라 줄여 써도 같다. 유학의 전문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깊이 다뤄 온 깊은 뜻을 쉽게 알 수는 없으나 와 닿는 설명들을 종합하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기본이 되는 것이라 했다.
대학의 구성은 공자의 가르침인 경(經) 1장이고 증자를 비롯한 제자들이 해설한 전(傳) 10장으로 되어 있고, 제일 첫머리 삼강령(三綱領)에 이어 등장한다. 삼강령은 자신의 밝은 덕성을 밝히는 명명덕(明明德), 백성을 자기 몸처럼 아끼는 신민(新民), 지극한 선의 경지에 머무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이다.
부분을 보자. 제가나 치국 등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 수신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신을 수양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자신의 뜻을 성실하게 하며(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욕수기신자 선정기심 욕정기심자 선성기의), 뜻을 성실하게 하려면 먼저 지식을 넓혀 사물의 이치를 깨치는데 있다(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욕성기의자 선치기지 치지재격물).’
주희는 이처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캐 들어가면 통달하게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명(明)의 왕양명(王陽明)은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 가치의 도덕적 실천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라 했다.
삼강령과 함께 팔조목(八條目)이 되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은 수신(修身)을 위한 자신의 수양이 되고, 이후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외적 확산의 과정이 된다.
전문적인 것을 모를지라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실력을 닦으면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도 성공적으로 이를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욕심이 앞서 무턱대고 나서기만 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밑천이 들통 난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格物) 지식을 넓히는 것(致知)이다.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는 사서 중의 하나인 대학에서 밝힌 대학의 도를 실천하는 팔조목에 속한다.
정주학파(程朱學派)에서는 격물(格物)의 목적은 영원한 이치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데 있다고 하면서 치지(致知)가 격물(格物)보다 먼저라고 생각하였으나, 육왕학파(陸王學派)에서는 오히려 격물(格物)이 치지(致知)보다 더욱 먼저라고 하였다.
주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영특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하에는 이치를 담지 않은 사물도 없으나, 그 이치를 다 궁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지식 또한 다 밝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대학은 처음 가르칠 때 학생으로 하여금 이 세상의 사물을 이미 자기가 아는 이치에 따라서 더욱 추구하여 그 끝에 이르도록 해야 하며, 꾸준히 노력하면 어느 날 통달하여 모든 만물이 정교하거나 거칠거나 표면적인 것이거나 이면적인 것이거나 두루 미치어 자기 마음의 전체에 그 모습이 밝혀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왕양명은 지식을 넓히는 것은 사물을 바로 잡는 데 있다(致知在格物)고 하였다.
대학 격물치지 개념의 맥락
물(物)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사(事)에는 종시(終始)가 있으니, 선후를 가릴 줄 안다면 도(道)에 가깝다. […] 천자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수신(修身)이 근본이다. 근본[本]이 엉망인데 말단[末]이 잘된 경우란 없다. 중시해야 할 것을 경시하고 경시해야 할 것을 중시하고서 잘된 경우란 아직 없었다. 이러한 이해가 바로 근본을 ‘아는 것’[知本]이고, 바로 ‘올바른 앎이 이르렀다’[知之至]는 말의 의미이다.
이것이 '대학'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논의되는 맥락이다. 여기서 ‘중시해야 할 것’이 근본(本)이고 ‘경시해야 할 것’은 말단(末)이다. 무엇이 근본이고 말단임을 헤아리는 것이 곧 격물(格物)이다. 어떤 것[物]에 대해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말단인 것인가를 헤아리는 것이 격물(格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은 “천자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수신(修身)이 근본이다. 근본[本]이 엉망인데 말단[末]이 잘된 경우란 없다. 중시해야 할 것을 경시하고 경시해야 할 것을 중시하고서 잘된 경우란 아직 없었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말단인가를 헤아리는 것이 격물(格物)이다.
또 이처럼 격물이 올바로 이루어져야 그것[物]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치지(致知)이다. 즉 어떤 것에 대한 근본을 아는 것이 곧 그것을 아는 것이 된다. 따라서 '대학'은 “이러한 이해가 바로 ‘근본을 아는 것(知本)’이고, 바로 ‘올바른 앎이 이르렀다(知之至)’는 말의 의미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의미가 '대학'에서 설명되지 않았다고 여기고 그 의미를 새로 설명하겠다고 나선 학자들이 바로 정이(程頤)와 주희(朱熹)였던 것이다.
격물치지 개념 논쟁의 중국 철학사에서의 의미
격물치지(格物致知)는 한대(漢代)의 유학자 정현(鄭玄)이 최초의 주석을 낸 이후 몇 백년 간 거의 논급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당대(唐代)에 한유(韓愈)가 원도(原道)편에서, 도교와 불교의 도와 대비되고 유도(儒道)를 대표하는 것으로 '대학'의 구절을 제시한 이후, 도교·불교에 맞설 수 있는 유가적 형이상학 건립의 요구가 더욱 절실해진 송대(宋代)에 이르러, 마침내 '대학'은 주희에 의해, 유가의 핵심적 이론 기반을 담지한 중요한 책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유가의 수신(修身)-치국(治國) 이론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격물치지(格物致知)란 개념의 함의가, 당시 도교와 불교의 형이상학과 구별되는 유가적 형이상학 건립에 중요한 이론 기틀의 하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문제는, 정이를 거쳐 주희에 이르면, '대학' 경전상의 그 본의가 무엇이냐는 문제를 떠나, 이미 고도의 철학 문제로 발전했다.
정주(程朱)에게 있어서 '대학' 격물론은 그들의 철학적 관심을 고도로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주제였던 만큼, 그만큼 더욱 후대의 관심과 쟁론을 야기했던 것이고, 마침내 그것은 중국철학사상 최대로 관심 있는 문제의 하나로 부각되었다.
주희의 격물치지 학설의 의미
주희는 ‘격’(格)을 ‘지’(至)로 해석한 정자(程子)의 해석을 수용 발전시켜 격물치지를,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탐구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뭇 사물의 모든 측면과 내 마음의 온전한 원리와 크나큰 작용을 전부 깨닫는 ‘활연관통’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격물보전(格物補傳, 格物致知補亡章)으로 대표되는 주희의 체계적이고 세밀한 해석은 그 후 수많은 학자들의 상이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중국의 경우든 조선의 경우든 마찬가지였다. 성리학자뿐 아니라 거의 모든 유학자가 각인각색의 설을 제시한 셈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처럼 하나의 고전 문구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수세기 동안 계속된 경우는 세계철학사상 그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온갖 격물설이 지닌 의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또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본의에 대한 탐구는 현대 학자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으나, 여전히 현격한 의견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당군의는 그 문제를 800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공안(公案)이라고 불렀다.
정주(程朱)에 의해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성리학적 해석이 정립된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다른 각도에서 그 해석을 보충하거나 반대하는 해석이 제시되었는데, 그 일은 아직까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격물치지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야기한 근원에는 바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주희가 너무도 체계적인 격물치지론을 제기한 바로 그 사실 때문이었던 것이다.
역대 격물치지 학설에 대한 현재의 평가
역대 격물치지 학설에 대해 중국 현대 철학자 임계유(任繼愈)는 다소 부정적으로 이렇게 평가했다. “격물설을 내놓은 학자마다 자기 설이 성인(대학 작자)의 뜻에 부합한다고 여겼으나 그것은 사실상 자기학설을 발표하기 위한 구실의 의미가 더 컸으므로 본래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양향규(楊向奎)는 “주희의 이해는 주희의 사상체계요, 왕양명의 이해는 왕양명의 사상체계다. 그들이 어떻게 이해했느냐의 문제는 처음부터 '대학'의 본의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고, 강광휘(姜廣輝)는 “후세 경학자들은 늘 옛것에 가탁해 중언(重言)의 방법으로 자기 관점을 논증해 왔다. […] 따라서 사상사 연구 측면에서 볼 때, 꼭 어떤 종류의 글자로 뜻풀이한 해석이 더 원문에 부합하는지를 따질 필요는 없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뜻풀이에 의탁하여 발표한 주장의 합리성 여부에 있다”고 말한다.각 격물설마다 각 학자의 독특한 사상이 반영되어있는 만큼, 고전 원의와 부합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정현의 격물치지론
대학의 격물치지에 대해 최초의 해석을 남긴 이가 정현(鄭玄)이다. 그에 따르면, 격(格)은 도래한다[來]는 뜻이고, 물(物)은 사(事)와 같다. 선에 대한 지식이 깊으면 선한 사물이 도래하고, 악에 대한 지식이 깊으면 악한 사물이 도래한다. 일은 인간이 좋아하는 대상에 인하여 도래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격물을 치지의 결과로 여긴 것인데, 원래 대학의 격물은 치지의 방법이지 결과가 아니다.
사마광의 격물치지론
사마광(司馬光)에 따르면, 격은 막다[扞], 방어하다(御)는 뜻이다. 외물을 막아낼 수 있어야 최고의 도를 알 수 있다. 사마광은, 사회적 모든 일탈 행위나 죄악적 행동은 모두 ‘외물의 유혹과 압박’에 말미암아 조성되고, 일체의 비행은 물욕에 유혹되어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진정한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욕에의 탐닉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의, 유학적 군자상을 지향한 체계적인 공부 과정의 단초인 격물을 ‘물욕의 제거’로 풀이하였다. 정현이나 사마광의 격물치지론은 기본적으로 정치윤리적인 관점에 서 있다.
정이의 격물치지론
인식론과 도덕론의 통일이라는 각도에서 격물치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최초의 인물은 정이였다. 그의 격물치지론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정이는 물[物]을 리(理) 개념을 매개하여 이해했다. 그에 따르면, 눈앞의 모든 것들이 바로 '대학'에서 말한 격물(格物)의 물인데, 그러한 사물 사물마다 각기 리가 있다.
예컨대 불이 타는 까닭, 물이 어는 까닭, 그리고 군신 부자 사이의 행위 방식 등이 모두 리이다. 그리하여 사물마다에 존재하는 그 리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격물의 격을 ‘궁구하다’[窮]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격은 궁구[窮], 물은 리와 같은즉, 격물이란 그 이치를 궁구한다는 의미이다. 또 격물의 물에 그 자체의 리가 존재하듯이, 격물을 통해 달성되는 치지의 지는 내 본심에 고유한 것이다.
따라서 격물 즉 궁리(窮理)란, 사물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우리의 심에 고유한 천리에 대한 인식을 뜻한다. 치지(앎의 확장, 깨달음)가 격물에 달려있으나, 그 앎은 바깥으로부터 내게 주입된 것이 아니고 내게 본디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가 외물에 이끌려 변하여서 판단력을 잃고 지각하지 못하므로 천리가 인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리를 궁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이에 따르면, 인간은 날 때부터 본디 천리가 있었으나, 우리가 외물에 가려져 판단력을 잃고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천리는 인멸된 셈이다. 따라서 격물치지란, 물욕에의 유혹 배제를 통하여 인심이 천리를 회복하는 과정, 즉 일종의 내성(內省) 공부이다. 이처럼 그의 격물치지는 윤리학의 명제이다.
그에 따르면, 하나의 사물은 저마다 각각의 리가 있으니, 그 리를 궁구하여 밝혀야 한다. 물론 리를 궁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즉 책을 읽어서 도리를 밝히는 일이라든지, 고금의 인물을 의론하여 잘잘못을 변별하는 일, 일상의 사건 사물을 맞았을 때 합당하게 대처하는 일등이 모두 궁리이다.
그리하여 정이의 격물치지론은 신비주의적 내지 철학적인 인생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의 추구로 귀결되었다. 격물이란 사물마다 하나하나 궁구하는 것도 아니고, 또 한 사물만 궁구하면 일체의 리를 모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오늘 한 건 궁구하고, 내일 또 한 건 궁구하여 그러한 습관이 누적된 뒤라야 활연히 관통하는 경지가 저절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즉 정이가 말한 격물, 치지, 궁리는 객관 사물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만물은 모두 일리(一理)에서 나왔음을 체득하고, 체인하려는 것이 된다. 이점은 그가 유추의 개념을 도입한 문맥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격물궁리란 천하의 모든 사물을 모조리 궁구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하나의 일을 철저히 궁구한다면 기타의 것은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구하는 일이 가능한 유일한 까닭은, 만물은 모두 하나의 리이며, 아무리 사소한 사물 사건에도 모두 바로 그 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격물치지의 궁극적 단계로 그가 묘사한 ‘활연관통’ ‘탈연유오’(脫然有悟), ‘활연유각’(豁然有覺) 따위는 사실상 불교의 돈오나 각오(覺悟)와 표면상 구별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정이의 이와 같은 격물 해석, 즉 격물의 대상, 범위, 방법, 순서 등에 관한 이론은 마침내 주희의 종합 발전을 거쳐 송대 유가적 지식인들의 정신 수양의 기본 방법이 되었다.
육구연의 격물치지론
육구연(陸九淵)도 격물을 공부의 출발점으로 보고 ‘사물의 이치에 대한 연구’로 이해했다. 그러나 육구연은, 내 마음이 우주의 본원이고 마음 속에 만물의 리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본심을 알면 그만이고 바깥으로 구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구연은, 주희의 격물궁리나 광범한 관찰과 독서 따위의 지식과 학문 추구의 방법은 지리한 일에 불과하고, 스스로 자기 본심을 보존하는[自存本心] 공부 방법이야말로 간명한 공부라고 주장했다. 그가 호언한 간명한 공부는 마음을 세우고 마음을 보존하고 달아난 본심을 불러들이고 본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육구연은 ‘만물이 다 내게 구비되어 있다’[萬物皆備於我]는 전제 하에 사물은 마음의 산물이요 사물의 리 역시 내 마음의 산물인즉 마음을 다하기만[盡心] 하면 그 리를 궁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육구연의 격물은 외물을 격(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잡는 것[格心]이고 마음을 다하는 것[盡心]을 뜻하므로, 외물의 인식과는 무관한 순전한 도덕 수양론이다.
설선의 격물치지론
설선(薛瑄)은 오로지 정주학에 근거하여 궁리의 문제를 매우 상세히 논구했다. 그는 인간의 리와 사물의 리를 모두 궁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궁리란 인간과 사물의 리를 궁구하는 것이다.
사람의 리로는 하늘이 내려준 도리인 본성[性]이 있고, 사물의 리로는 수· 화· 목· 금· 토의 성(性)이 있으며 또한 만사만물에는 저마다 각기 합당한 리가 있다. 이러한 온갖 리를 그 극점까지 모조리 궁구하여 추호의 의심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 바로 궁리이다. 또 주희의 사상에 근거하여 물과 격물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설선에 따르면 격물이 포괄하는 범위는 광범하다. 우선 내 몸부터 보자면 이·목·구·비·신이 모두 물이니, 귀의 경우 청력의 리를 올바로 궁구하고, 눈의 경우 시력의 리를 궁구하며, […] 또 천지만물도 역시 모두 물이니, 천지의 경우 그 건순(建順)의 리(음양의 이치)를 궁구하고, 인륜의 경우 충·효·인·경·지·신의 리를 궁구하고, 귀신의 경우 굴신변화의 리를 궁구하고, 초목조수곤충의 경우 저마다 특징적인 리를 궁구하며, 나아가 성현의 글, 육예의 문장, 역대의 정치 등도 모두 ‘물’이니, 각각 그 의리의 정조본말과 시비득실을 올바로 궁구하는 것 등이 모두 격물이다.
이처럼 리학에서의 궁리는 지식지향적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실험수단을 통한 실제 실천적인 연구가 아니라, 천지초목에 관해 이미 획득된 지식을 학습하고 종합하는 공부를 말한다. 따라서 설선은 치지격물은 대부분 독서를 통해서 획득된다고 명확히 주장했다.
왕수인의 격물치지론
왕수인(王守仁)은 젊은 날 주희의 격물설에 관심이 많았으나 ‘격죽’(格竹) 체험을 계기로 그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주희가 말한 격물론의 요점은 즉물궁리(사물에 접촉하여 이치를 궁구함)에 있는데, 즉물궁리란 모든 일과 사물에 나아가 주희가 말한 정리(定理)라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왕수인이 보기에 이것은 내 심을 가지고 일과 사물 속의 리를 구하는 것이므로, 심과 리를 둘로 쪼개는 일이다. 그에 따르면 일과 사물에서 리를 구한다 함은 예컨대 효의 리를 부모한테서 구한다는 말이다. 즉 리가 과연 부모의 몸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내 마음의 효의 리도 없어진다는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다.
또 주희는 격물을 천하의 사물을 궁구하는 것이라고 풀었는데, 왕수인은 반문하기를 어떻게 천하의 사물을 다 궁구할 수 있겠는가? 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리가 있다고 했는데 그런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궁구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설령 풀과 나무를 궁구했다손치더라도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돌이켜 자기 자신의 뜻을 참되게[誠意]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했다.
왕수인이 이해한 주희의 해석의 내재적 모순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물에 나아가 궁리한다는 것은 심과 리를 둘로 쪼개는 일이다. 둘째, 천하의 사물을 모두 궁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셋째, 초목에 대한 궁리는 자신의 뜻을 참되게[誠意] 하는 일과 전혀 무관하다. 즉 그러한 궁리관은 대학의 원의에 벗어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려고 왕수인 치량지(致良知) 설을 내세웠다. 그에 따르면, 치지격물이란 내 마음의 양지(良知)를 모든 일과 사물에 확충하는[致] 것을 뜻한다. 내 마음의 양지가 곧 소위 천리이다. 내 마음의 양지인 천지를 모든 일과 사물에 확충하면 모든 일과 사물은 모두 그 리를 획득하게 된다. 내 마음의 양지를 확충하는 것이 치지요, 모든 일과 사물이 저마다 그 리를 획득하는 것이 격물이니, 심과 리는 하나로 합쳐진다.
왕수인은 마음 밖에 사물도 없고 마음 밖에 이치도 없고 마음밖에 일도 없다고 했다. 즉 심은 ‘허령불매’(虛靈不昧)한 본체로서 모든 리를 갖추고 만사를 표출하는 것이므로, 모든 리는 내 마음 바깥에 있지 않는 것이다. 만물과 만물의 리는 모두 내 마음 속에 갖추어져 있으며 모두 내 마음의 산물이므로, 치지는 내 마음의 양지를 확충하는 것이고, 격물은 모든 일과 사물이 저마다 그 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치지격물은 내 마음의 양지인 천리를 모든 일과 사물에 확충하는 것을 말한다. 또 모든 일과 사물이 모두 내 마음의 리를 획득하는 것이 치량지이다. 왕수인에 따르면 일을 맞이하여 자신의 양지를 확충하는 것이 곧 격물이다. 그러므로 격물은 사물 위에 적용된 치량지로서 주관 의식을 객관 사물에 가하는 것이지 객관 사물에서 그것의 지(知)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격물은 일을 바로잡는 것[正事]이다.
왕수인에 따르면 격물의 물은 일이다. 뜻이 발동하는 곳에 반드시 일이 있으니, 뜻이 머물러 있는 그 일이 바로 물이다. 격(格)이란 바로잡는 것[正]이니, 부정한 바를 바로잡아 바른 상태로 돌려놓는다는 말이다. 부정한 바를 바로잡는다 함은 악을 제거한다는 말이고, 바른 상태로 돌려놓는다 함은 선을 도모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격(格)의 의미이다. 이처럼 왕수인의 격물치지는 본래 외물의 인식을 통한 지식의 추구가 아닌, 일종의 도덕적 수양 공부, 즉 명덕을 밝히고[明明德] 선을 추구하고 악을 제거하는 수양론이다.
담약수의 격물치지론
담약수(湛若水)는, 왕수인처럼, 격을 바로잡는다, 물을 생각(의견)으로 보아, 격물을 생각을 바로잡는 것으로 풀이하면, 격물은 『대학』의 다른 조목인 성의(誠意) 정심(正心)과 중복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격물설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격은 이름[至]의 뜻이고, 물이란 천리이니, ‘언유물’(言有物) ‘순 임금이 모든 사물에 밝았다’ 할 때의 물로서 곧 ‘도’를 지칭한다. 격은 조예(造詣)의 뜻이니 격물은 바로 조도(造道)의 의미이다. 정주의 사상에서 지물(至物)은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궁구함[卽物窮理]을 뜻했는데, 담약수의 경우 지물은 사물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에 도달하는 것[造道], 즉 도와 리를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그에 따르면, 격물은 그 리에 도달하는 것이고, 그 리에 도달한다 함은 천리를 체인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격물이란 천리를 체인하여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담약수의 경우, 예컨대 독서와 수양 정진 등은 항상 천리를 체인하여 함양하려는 것이므로, 격물이 곧 함양이고, 경(敬)이 곧 격물 공부가 된다. 그러므로 격물은 물리의 궁구가 아닌 심신 함양 공부이다.
나흠순의 격물치지론
나흠순(羅欽順)은 정주의 격물치지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그는 격물의 물을 일[事]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했고, 격물을 마음 속의 사물을 바로잡는다고 해석한 왕수인의 관점도 반대하였다. 나흠순에 따르면, 격물의 의미가 응당 만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람의 심 역시 물론 하나의 물이다. 그러나 격물을 오로지 이 마음을 바로잡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격물의 격은 바로 완전히 통달한다는[通徹無間] 의미이다.
공부가 지극해지면 완전히 통달하게 되어, 나는 곧 사물이고 사물은 곧 내가 되는 혼연일치가 되므로, 굳이 합한다는 말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격물을 중시하는 까닭은 바로 하늘과 인간, 사물과 내가 원래 하나의 리임을 통찰해야 자기의 본성을 다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흠순의 경우, 격물은 구체적 분수(分殊)의 만물에서부터 착수하여 차츰 만리(萬理)가 하나로 귀착함을 체인하여 사물과 내가 혼연일체로 되는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을 말한다.
또 나흠순은, ‘내 마음의 양지의 확충이 치지요, 모든 일과 사물이 그 리를 획득하는 것이 격물이다’는 왕수인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나흠순은 왕수인의 견해가 옳다면 대학은 ‘격물재치지(格物在致知)’라고 했어야지 ‘물격이후지지(物格而後知至)’라고 해서는 안되었다고 말했다.
나흠순은 치지가 먼저이고 격물이 나중인 왕수인의 견해는 순서가 뒤바뀐, 따라서 대학의 본뜻에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의 격물치지론은 격물이 우선이고 치지가 나중이므로, 주관이 객관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주관을 억지로 객관에 부가한다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리하여 그는 왕수인의 격물치지론을 안으로 돌이켜 자신의 성찰만을 추구하는, ‘안에만 갇혀 밖을 버리는’[局內遺外] 선학(禪學)으로 규정했다.
왕정상의 격물치지론
왕정상(王廷相)에 따르면, 격물은 대학의 첫째 과제로서 성명(性命)의 이치와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게 추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왕정상은 정주(程朱)의 격물설을 비판했다. 격물 해석에서 정주는 격(格)을 모두 지(至)자로 풀었다. 그리하여 정자는 격물하여 사물에 이른다고 했는데, 왕정상은 이것은 중첩이니 말이 되지 않고, 또 주희는 궁구하여 사물의 리에 이른다 라고 했는데, 왕정상은 이것은 지(至)자에 궁(窮)자를 첨가한 것이라고 여겼다.
왕정상에 따르면, 대학을 지은 성인의 말은 단순 명쾌한 법이니 결코 정주와 같은 해석이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격(格)은 ‘바로잡다’[正]는 글자로 풀이하는 것만 못하다. 격물이란 정물(正物: 사물을 바로잡음)이다. 물이 저마다 실제로 합당한 상태에 있으면 바르게 된 것이다. 사물마다 바르게 된 경우, 어찌 지극하지 않은 앎이 있겠는가?
왕정상이 이해한 격물은 사람이 이목 등의 감관을 통해 객관 세계의 만사만물의 발생 발전 변화의 원인과 법칙에 접촉하여 관찰·탐구하는 것을 지칭한다. 격물의 물은 일월성신 산천 강하, 동식물의 생태, 금속광물 등 이목이 미치는 대상이지 우주 바깥에 관한 무한한 상상이 아니며, 학습과 관찰의 대상이지 학습할 수 없고 관찰할 수 없는 대상이 아님을 강조했다.
왕정상은 치지도 정주(程朱)나 육왕(陸王)과 다르게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도를 밝히는 방법은 치지가 제일이다. 한갓 논구만을 앎으로 볼 수는 없다. 인간 만사의 관계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치지의 실제 모습이다. 군자의 학문에서, 널리 읽고 힘써 기억하는 것은 바탕을 쌓으려는 것이고, 예리한 문제의식과 명확한 논변은 회통을 추구하는 것이고, 깊은 사색과 연구는 자득하려는 것이니, 이 세 가지를 다 발휘해야 치지의 도가 얻어진다는 것이다.
왕정상의 경우, 치지의 목적인 도를 밝히는 것은 객관 사물에 고유한 법칙성을 탐구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치지란 후천적으로, 널리 읽고 힘써 기억하며, 예리한 문제의식과 명확한 논변으로 깊이 사색하고 연구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객관 사물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왕간의 격물치지론
왕간(王艮)의 격물설은 이른바 회남격물설(淮南格物說)로 불려져 왔다. 그는, 격물의 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자신과 천하, 국가는 하나의 사물이고, 하나의 사물인 까닭에 거기에 본말이 있다고 대학은 말한 것이다. 즉 천지만물이 하나의 사물이며 그 가운데에 근본과 말단이 있다는 말이다. 왕간은, 한결같이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한 대학의 구절에 근거하여, 몸[身]이 천지만물의 근본이고 천지만물은 말단이라고 하였다.
왕간에 따르면, 격(格)은 재어보고 헤아린다는[絜度] 뜻이다. 본말 사이를 헤아려서 ‘근본이 혼란되고서 말단이 잘 다스려진 경우는 없음’을 아는 것이 바로 격물이다. 격은 격식(格式)의 격으로서 혈구(絜矩: 자로 잼)를 뜻한다. 내 몸은 하나의 자[矩: 직각자]요 천하국가는 하나의 직각체이다. 자로 잰다고[絜矩] 했으니 지각이 바로잡히지 못함은 자가 바르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직 자를 바로잡으려고 해야지 직각을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 자가 바로잡히면 직각이 바르게 되며, 직각이 바르게 되면 격식은 완성되므로, 물격(物格)인 것이다. 근본이 서야 말단이 다스려질 수 있다고 보고, ‘안신’(安身)을 천하의 대본(大本)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안신의 구체적 내용은, 자신을 반성하여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이라고 보았다. 왕간에 따르면, 격물이 되어야 자기를 반성할 줄 안다. 자기 반성이 곧 격물 공부이다. 어떻게 반성하는가? 자기를 바로잡을[正己] 따름이다. 자기의 인(仁)을 돌이켜 경(敬)에 힘쓰는 것이 자기를 바로잡는 일이다. 자기 몸이 바르게 되면 천하가 귀의하므로, 자기를 바로잡으면 사물이 바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하면 몸이 편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왕간은 몸을 만물의 근본으로 여겼으므로 나아가 존신(尊身)을 제창하였다. 몸[身]과 도는 원래 한 물건이니, 지극히 존귀한 사물이 도요 지극히 존귀한 것이 몸이다. 몸을 중시하면서 도를 중시하지 않으면 몸을 받든다 할 수 없고, 도를 중시하면서 몸을 중시하지 않으면 도를 중시한다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왕간의 격물론은 한마디로 안신(安身)에 귀결된다.
왕부지의 격물치지론
왕부지(王夫之)에 따르면, 격물은 정주처럼 하나의 리를 전제하고 사물을 궁구하는 것도 아니고 왕수인처럼 마음을 바로잡는 것도 아니며, 외물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며, 방이지가 말한 질측의 학문[質測之學]을 일컫는 것이라고 하였다. 격물이란 사물에 나아가 리를 궁구하는 것인데 그것은 오직 질측(質測)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질측의 학문은 당시 명대 말엽에 수입된 서양의 실험 과학을 지칭하며, ‘질측’이란 직접적 관찰에 바탕한 원인 규명 따위를 말한다. 즉 왕부지는 격물을 객관 사물에 대한 깊은 관찰과 실험이라고 규정했다.
또 왕부지에 따르면, 치지는 왕수인처럼 영명한 마음을 공허하게 지키는 것도 아니고, 불교처럼 면벽하여 마음을 보는 것도 아니고, 만물 본연의 리와 사회상의 치란 득실과 순리와 역리의 법칙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연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왕부지의 격물치지론의 최대 특징은 격물과 치지를 인식 과정의 상이한 두 단계로 보아 이 둘은 혼동해서도 분리시켜도 안 된다고 본 점에 있다. 그는 이 두 개념을 측량 도구[規矩]와 기교(巧)에 비유하였다. 맹자는 말하기를 “목수나 장인들이 남에게 측량 도구를 전해줄 수는 있어도 남을 기교스럽게 만들지는 못한다” 하였다.
왕부지에 따르면, 격물과 치지는 상호 보완적이며 상호 근거가 되는 관계에 있는데, 객관 사물 가운데 그 자체의 발전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 격물이고, 사물의 허상과 심중의 편견 등을 배제하고 사물에 내재한 본질과 법칙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치지이다.
박세당의 격물치지론
조선의 학자 박세당(朴世堂)은 사변록(思辨錄)에서 먼저 사물(物)과 일(事)의 구별을 주장했다. 사물은 천하, 국가, 심, 뜻, 앎, 사물을 지칭하고, 일은 평(平), 치(治), 제(齊), 수(修), 정(正), 성(誠), 치(致), 격(格)을 지칭한다. 사물과 일은 참으로 분별이 있어야 하며 뒤섞을 수 없다. 예컨대 천하·나라·집안은 사물이지 일이 될 수 없으며, 평(平)·치(治)·제(齊)는 일이지 사물이 될 수 없다.
박세당에 따르면, 주희가 명덕(明德)을 근본, 신민(新民)을 말단으로 본 것은 사물과 일을 뒤섞은 것이다. 덕과 민은 사물이고 밝히고 새롭게 하는 것은 일이니 이치상 하나로 뒤섞을 수 없다. 그에 따르면, 격물의 격은 법칙[則]과 올바름[正]의 뜻이다.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다. 사물에 법칙(格)이 있기 때문에 그 법칙을 구하여 올바름을 획득하기를 기약하는 것이다.
치지가 격물에 달려 있다 함은 내 앎이 해당 일[事]의 당연성을 파악하여 철저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요령은 오직 해당 사물의 법칙을 탐색하여 그 올바름을 획득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격물은 치지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격물과 치지는 하나의 일이다. 또 사물의 법칙을 구하여 그 올바름을 획득하여야 비로소 사물의 당연성은 파악되고 의구심이 없어질 수 있다.
안원의 격물치지론
안원(顔元)은 익혀서 행한다는 실학의 관점에서 격물치지를 해석하였다. 안원에 따르면, 격물의 격은 역사책에 나오는 ‘수격맹수(手格猛獸 : 손으로 맹수를 침)’의 격, ‘수격살지(手格殺之 : 손으로 쳐죽임)’의 격과 같이, 손을 움직여 치고 때리고 문지르고 만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격물은 손을 움직여 그 일을 실제로 해보는 것이고, 몸소 직접 그 사물에 부딪치는 것을 뜻하므로, 입으로만 논하고 독서나 사변에 그치며 실제로 행하지는 않는 것은 치지가 아니라고 하였다.
맹수를 격살(格殺)하는 격처럼 실제로 격(格)해야 실질적 앎[實知], 참된 앎[眞知]을 획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소(菔蔬 : 약용 무우)는 똑똑한 학자나 노숙한 농부라 할지라도 그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며, 또 모양만 보고 먹을 수 있겠다고 짐작했다고 하여도, 그 맛이 매운지 어떤지는 모른다. 반드시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어 봐야 그 맛이 맵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직접 그 사물에 부딪쳐 본 다음에야 앎이 이를 수 있다[手格其物而後知至]는 것이다.
홍량호의 격물치지론
조선의 홍양호(洪良浩)는 격물의 격을 박(薄)으로 풀이하였다. 그에 따르면, 격이라는 글자는 두 개의 나무가 서로 맞부딪치는[薄] 것을 상징한다. 군자의 경우 격물이란, 마치 견고한 나무를 치듯이 맹수를 공격하듯이 정성스럽게 노력을 기울이면 정신이 저절로 투명해져 외부에서 부딪쳐오면[薄] 내부에서 감응하여 모든 사물이 궁구되고 모든 리가 통달된다는 것이다. 대저 만물은 서로 부딪치지[薄] 않고 서로 감응할 수 있는 경우는 없고, 따라서 치지의 도는 나의 심령이 사물에 부딪쳐 물리의 오묘함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니, 이것이 즉 격물이 이루어져 앎이 이른 경우이다.
정약용의 격물치지론
정약용(丁若鏞)은 대학의 “사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시종이 있다”[物有本末, 事有終始]는 구절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사물은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有物有則]는 구절의 사물과 같은 의미이다.
사물이란 뜻, 마음, 몸, 가, 국, 천하이고, 일이란 참되게 하고, 바르게 하고, 닦고,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근본과 처음은 먼저 해야할 것이요, 근본과 끝은 나중에 해야할 바이다. 뜻과 마음과 몸이 근본이고 가·국·천하는 말단이다. 그러나 또 수신은 성의가 근본이고, 평천하는 제가가 근본이니 본말 가운데 각각 또 본말이 있다.
참되게 하고 바르게 하고 닦은 것은 시작이고 다르리는 것들은 끝에 속한다. 이 종시(終始) 가운데 각각 또 종시가 있음은 본말의 경우와 같다. 또 치지는 격물에 달려 있다 함은, 정약용의 해석에 따르면, 치(致)는 이르게 함[至之]이고, 격(格)은 재보고 헤아리는[量度] 것이다. 선후의 내용을 완전히 아는 것이 치지이다. 또 사물에 본말이 있음을 헤아리는 것이 격물이다.
엄복의 격물치지론
엄복(嚴復)은, 주희가 격물치지를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탐구함으로 해석한 점은 옳지만 독서를 궁리로 여긴 것은 그르다고 보았다. 그는, 한갓 독서만하여 송학, 고증학, 사장학(辭章學) 따위의 구학을 고수하는 것은 국가와 민생에 무용하니, 유용한 신학(新學)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양의 자연과학적 인식방법인 귀납법[內導]과 연역법[外導]을 격물치지론에 흡수시켰다.
당재상의 격물치지론
당재상(唐才常)은 중국철학사상 해묵은 논쟁인 격물치지론을 총정리하여, 한당(漢唐) 이래 격물치지를 논한 사람은 110명이라고 말했다. 당재상에 따르면, 그 가운데 사물에 근거한 이치의 탐구[卽物窮理]라는 주희의 풀이가 가장 심오하고 지극히 완벽하다. 기화(氣化)를 탐색한 주희의 업적은 수많은 학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니 황당한 유자들은 그의 발 밑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나아가 당재상은 주희의 격물설에 이미 서양 격치(格致)의 리가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즉 당재상은, 주희의 '어류'를 인용하며, 주희의 이론 속에 이미 서양의 천문학 지리학 역학 물리학 화학·광물학·전기학·광학·음성학 등의 자연과학적 내용이 있다고 주장했다.
곽말약의 격물치지론
곽말약(郭沫若)은 십비판서(十批判書)에서 격물치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격물치지 두 조목은, 대학의 새로운 발전인 것처럼 보이지만, 관자 심술편에서 논한 “자기를 버리고 사물을 근본으로 삼는다”[舍己而以物爲法]는 사상을 채용한 것이다. 맹자도 비슷한 논조로 “자기의 그른 점을 버리고 남의 옳은 점을 받아들여 흔쾌히 남의 옳은 점을 흡수하여 선을 행한다”[舍己從人, 樂取於人以爲善]는 말을 하고 있다.
또한 고서에는 격(格)과 가(假) 두 자가 통용된 예는 아주 많다. 격물이란 ‘가물’(假物) 즉 사물에 의거한다, 사물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사람의 심은 단지 ‘한 장의 백지’일 뿐이니 사물에 의거해야 지식을 가질 수 있고 그 지식 역시 극점에 도달할 수 있는데, 지식이 극점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치지이고, 지식이 극점에 도달한 것이 지지(知至)이다. 이 때에 이르면 곧 ‘만물은 모두 내게 갖추어지게’[萬物皆備於我] 되는 것이다.
서복관의 격물치지론
서복관(徐復觀, 1903~1982)은 중국인성론사-선진편(1962년 초판)에서 자신의 격물치지론을 제시했다. 서복관에 따르면, 격물의 물이 일[事]을 지칭한다는 것은 고금 주석가들 간에 거의 이견이 없다. 대학의 중요 구절을 보건대 대학에서 말하는 물은 천하, 국, 가, 신을 지칭한다. 또 격은 금문상서 28편 속에 19개 격 자가 있는데 과거에 ‘지(至)’로 풀이한 곳을 만약 감통(感通)으로 바꾸어서 풀이하면 뜻이 아주 잘 통한다. 논어의 ‘유치차격’(有耻且格), 맹자의 ‘격군심지비’(格君心之非)의 격 역시 ‘감통’으로 풀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 격물의 원의는 ‘물에 감통하다’라고 풀어야 한다. 그러므로 서복관에 따르면, 격물은 즉 천하· 국· 가· 신에 감통하는 것, 즉 천하· 국· 가· 신에 효력을 발생하는 것, 평(平)· 치(治)· 제(齊)· 수(修)의 일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대학은 어째서 치지는 격물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했는가?
서복관의 설명에 따르면, 전국시대에는 이미 말장난을 일삼는 궤변학파가 출현하여 그들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변설 역시 ‘치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치지’는 꼭 천하·국·가·신 방면에 귀결된 것이 아니었던 만큼 유가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무용한 앎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은 치지는 격물에 있다고 밝힘으로써, 치지의 방향·목표를 바로잡고 동시에 치지는 그처럼 실천상의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요구한 것이다.
서복관에 따르면 순자의 진륜(盡倫) 개념은 수신·제가와 동일하고, 진제(盡制) 개념은 치국·평천하와 사실상 동일하다. 치지는 진륜·진제에 머무는 데 있다. 즉 치지란 천하·국·가·신이라는 사물에 감통하여 평(平)· 치(治)· 제(齊)· 수(修)의 일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치지의 목적을 이렇게 정하면 변자들의 사사로운 길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치지는 격물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당군의의 격물치지론
근래의 학자 가운데 당군의(唐君毅)는 대학 장구의 해명에 가장 열의를 보였다. 그는, 중국철학원론(상)(1966년 초판)에서 격물치지의 근원을 탐구한 두 장에서, 주희의 대학장구 등의 모순을 지적하고 대학의 장구를 개편하면서, 격물치지론을 체계적으로 밝혔다고 자신하였다.
당군의에 따르면, 사물의 본말이란 예컨대 천하의 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본은 가에 있다는 것 따위이다. 본말의 물이 모두 물이다. 또 일[事]의 종시란 예컨대 치국은 평천하의 시작이고 평천하는 치국의 끝이며, 제가는 치국의 시작이고 치국은 제가의 끝이며, 성의는 정심의 시작이고 정심은 성의의 끝이다. 나아가 당군의는 물과 사는 구분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주희가 명덕은 본이고 친민이 말이다고 한 것은 물은 사와 같다고 여긴 데서 비롯된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당군의에 따르면, 덕과 민은 물이라고 할 수 있으나, 명덕과 친민은 사이지 물이 아니다. 또한 물유본말(物有本末)의 물은 가, 국, 천하 등을 지칭하므로 제가, 치국, 평천하의 사와 같지 않다. 맹자도 천하의 본은 나라에, 나라의 본은 가에, 가의 본은 몸에 있다고 말했다.
대학은 덕이 있으면 사람이 생기고, 사람이 있으면 토지가 생기고, 토지가 있으면 재물이 생기는 즉, 덕이 근본이고 재물은 말단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덕·사람·토지·재물의 순서는 사물의 본말의 순서인즉, 덕·사람·토지·재물은 모두 물이다. 따라서 대학의 물은 내적 외적인 각종 구체적인 물을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당군의에 따르면, 『대학』의 물유본말(物有本末), 사유종시(事有終始)의 구절의 표현은 물·사의 본말·종시가 상호 관련됨을 말한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 사이에는 본말 관계가 있으니 우리가 그것들에 대한 일을 진행할 때에는, 근본을 먼저 일[事]하고 말단을 나중에 일해야 한다. 먼저 해야 할 일의 대상이 되는 사물은 나중에 해야 할 일의 대상이 되는 사물의 근본이고,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중에 해야할 일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몸은 가·국·천하의 근본이고 뜻과 심은 몸의 근본이며, 수신 역시 제가·치국·평천하의 근본이고 성의·정심은 수신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당군의는 애초에 비판한 주희의 말을 다시 인정하여, 이렇게 보면 주희는 명명덕의 일을 신민의 근본으로 여긴 것이었다고는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사물에 대해서 본말을 적용하고 일에 대해서 시종을 적용한 본래의 입장에서 후퇴했다.
당군의에 따르면, 우리가 근본을 먼저 일하고 말단은 나중에 일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근본을 아는 것’[知本]이고, ‘앎의 지극함’[知之至]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여기서 사물의 본말과 일의 종시를 확실히 알고 아울러 선후의 대상을 알아서, 근본으로부터 말단에 이르고, 시작으로부터 끝에 이르고,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고,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에 이르러, 스스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혀서 천하에 명덕을 밝히며, 또 근본·시작이 없으면 말단·끝을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말단·끝을 알아서 근본·시작을 갖추는 일, 이것이 근본을 아는 것이고 앎의 지극함이며 앎이 이른 것이기도 하다.
풍우란의 격물치지론
풍우란(馮友蘭)은 중국철학사신편Ⅲ(1985년 초판)에서 격물치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격물의 격을 […] 래(來)로 풀이하든 지(至)로 풀이하든, ‘지물(至物)’이나 ‘래물(來物)’ 모두 외재 사물과의 접촉을 뜻하고, 격물을 『대학』은 치지의 첫째 조건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순자의 사상이다라고 풍우란은 주장했다.
풍우란은, 순자가 논한 관물(觀物), 정물(定物), 견물(見物), 지물(至物) 등은 외물과 접촉한 뒤에야 비로소 정확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므로, 이것이 곧 대학에서 말한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에 달려 있다는 말의 의미라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대학에서 가장 중용한 지식이 근본을 아는 것[知本]인데, 그것은 ‘천자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말한다. 또 앎의 지극함(知至)이란, 근본을 알 수(知本) 있으면 완벽한 지식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오직 근본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용한 지식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지게 되면, 일체의 지식은 모두 수신을 위해 제공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격물’을 ‘수신’과 연결하여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대학은 3강령 8조목을 제시하고 ‘수신이 근본이다’라고 귀결지었는데, ‘수신’이란 자기를 수양하여 하나의 ‘완인(完人)’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은 가·국·천하를 떠나 홀로 ‘완인’이 될 수 없다. 가·국·천하를 떠나서 홀로 수양할 수 없을뿐더러 존재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은 가·국·천하 속에 살면서 가·국·천하의 사무 속에 투신하여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소위 격물, 치지, 성의, 정심 등의 공부 역시 가·국·천하의 사무를 떠나 그것만을 추구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사무가 곧 사물[物]이다. 그러므로 우선 이러한 사물에 접촉해야[格] 비로소 치지, 성의, 정심 등의 공부가 기반을 가지게 된다고 풍우란은 설명한다.
임계유의 격물치지론
임계유(任繼愈)가 주편한 중국철학발전사-진한편(1985년 초판) 역시 풍우란과 마찬가지로 수신이 3강령 8조목의 근본이라고 여긴다. 그에 따르면, 수신이 근본이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뿐 아니라 제가, 치국, 평천하도 말단이다. 이 본말 관계는 도치될 수 없는 것이니, 만약 이 도리를 이해하면 그것이 바로 근본을 아는 것[知本]이다. 왜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이 수신에 대해서 말단인가? 왜냐하면 이 4조목은 단지 수신의 방법으로서 수신의 목적에 종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왜 제가, 치국, 평천하가 수신에 대해서 말단인가? 왜냐하면 유가의 최고 정치적 이상이 천하에 명덕을 밝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르게 하여야[正己] 비로소 남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므로, 수신이 근본이다. 만약 수신을 잘못하면 제가·치국·평천하할 수 없다.
임계유에 따르면, 매우 뚜렷하게도, 그것은 유가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덕치(德治) 사상으로, 대학의 공헌은 이러한 덕치사상을 세련되게 공식화하여 일련의 논리적 순서를 엮어 그 가운데 일종의 본말 관계가 존재함을 지적한 데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본의는 유가의 정치철학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여 수신이 덕치의 근본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장대년의 격물치지론
장대년(張岱年)은 량(量)과 탁(度)이 격물의 격의 본의에 가깝다고 여겼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학 격물의 의미에 대해 고금의 주해가 분분하나, 모두가 그 본지를 얻지 못한 것들이다. 대학에는 소위 격물에 대한 해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바른 의미를 밝히려면 오직 고대의 훈고에서 구해야 했다. 격자를 정현, 주희, 왕수인 등도 모두 고훈에 의거하여 각각 래(來), 지(至), 정(正) 자로 풀었다. 그러나 격 자에는 또 하나의 고훈이 있다.
즉 문선 이소원(李蕭遠)의 운명론(運命論)의 이선(李善)주에 “창힐편(倉頡篇)에 격은 헤아리는 것이다”[格量度之也]는 말이 있는데, 창힐편은 사실상 가장 오래된 자서(字書)였던 만큼, 이 훈고는 아주 근거가 확실했다. 여기에 의거하여 격물의 격을 해석하면 실로 완전 명백하게 해석되어 조금의 의문점도 없어진다. 이것이야말로 격물의 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격물이란 곧 사물을 헤아리는 것이다[量度物]. 사물을 헤아린다 함은 즉, 사물을 자세히 가늠하여 그 본말선후를 분석하고 변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은 사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선후가 있으니 선후를 인식할 줄 알면 도에 가깝다고 말했고, 또 그것이 바로 근본을 아는 것이고 앎의 지극함이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른바 치지란 곧 근본을 아는 것[知本]을 뜻한다.
즉 사물 가운데 어느 것이 근본이고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상하간의 문맥을 참조하면 대학 격물의 의미는 의심의 여지없이 너무 명백해진다. 창힐편은 오래 전에 없어졌지만 문선의 이선 주에 보존된 이 조목 덕분에 대학 격물의 본의를 밝힐 수 있게 된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장대년은 역설하였다.
장대년은 격물을, 주희 이래 사물 탐구로 풀이한 것과 달리, 사물 가운데 어느 것이 근본이고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헤아리는 일이라고 풀었고, 치지를 근본을 아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장대년 역시, 예컨대 8조목 중 어느 것은 근본이고 어느 것은 말단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팔조목(八條目)으로 된 내용 중, 처음 두 조목을 가리키는데, 이 말은 본래의 뜻이 밝혀지지 않아 후세에 그 해석을 놓고 여러 학파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주자학파(朱子學派) 程伊川, 朱熹 등과 양명학파(陽明學派) 陸象山, 왕양명(王陽明) 등이다.
주자(朱子)는 격(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고, 왕양명은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格)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朱子學)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陽明學)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은 유교(儒敎)의 교의(敎義)를 간결하게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으로서 그 내용은 삼강령(三綱領) 즉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과 팔조목(八條目) 즉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으로 요약된다.
팔조목 중 여섯 조목에 대해서는 대학(大學)에 해설이 나와 있으나 격물, 치지의 두 조목에 대해서는 해설이 없다. 그래서 송대(宋代) 이후 유학자들 사이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설이 나와 유교사상의 근본 문제 중의 하나로 논쟁의 표적이 되어 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宋나라 주자(朱子:朱熹)의 과 明나라 왕양명(王陽明:王守仁)의 설을 들을 수 있다.
(1) 주자(朱子)의 설(說)
만물은 모두 한 그루의 나무와 한 포기의 풀에 이르기까지 각각 理를 갖추고 있다. 理를 하나 하나 속속들이 깊이 연구해 나가면 어느 땐가는 환하게 터진 모양의 만물의 겉과 속, 그리고 세밀함과 거침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
(2) 왕양명(王陽明)의 설(說)
격물의 물(物)이란 사(事)이다. 事란 어버이를 섬긴다던가 임금을 섬긴다던가 하는 마음의 움직임, 곧 뜻이 있는 곳을 말한다. 事라고 한 이상에는 거기에 마음이 있고, 마음밖에는 物도 없고 理도 없다.
그러므로 격물의 格이란 '바로 잡는다' 라고 읽어야 하며 事를 바로잡고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격물이다. 악을 떠나 마음을 바로잡음으로써 사람은 마음 속에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마음의 본체를 명확히 할 수가 있다. 이것이 知를 이루는 致이며 치지(致知)이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은 어떤 일이고 골몰히 생각해서 해결해 내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모르는 사안이 있으면 벽이나 천장에 붙여 놓고는 두문불출하며 며칠이고 생각에 잠겨 해결하곤 하였다. 이런 성정은 어릴 적 부터 갖고 있었다.
유년시절 어느 화창한 봄날, 그는 밭둑에 앉아 나물을 캐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아지랑이 사이로 종달새가 우짖으며 날고 있었다. 종달새를 지켜보던 화담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종달새의 나는 위치가 어제와 달랐던 것이다. 어제는 땅에서 한 자쯤 떨어져 날더니, 오늘은 두 자쯤 위에 떠있었다.
화담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나물 바구니를 던져두고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해 질 무렵에서야 봄이 되면 겨우내 땅속 깊이 간직돼 있던 따스한 기운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고, 그 기운이 점차 위로 올라감에 따라 종달새가 올라가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물에 있어서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근거로 더욱 궁리하여 새로운 이치를 터득하게 되고, 다시 이것을 토대로 다른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는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개개 사물의 이치가 사물 전체의 이치와 상통함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희가 주장한 격물치지 이론의 요지이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는 말을 누구나 아는 말이다. 사실은 사서삼경 중에 하나인 대학(大學)에 보면 그 앞에 4개의 조목이 더 있습니다. 그것이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이다. 워낙 오묘한 말이 되어 격물에 대한 생각도 여러 가지가 있다.
주자학파(朱子學派) 사람들은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결국 그 이치를 알게 된다[致知]고 해석을 한다. 한편, 양명학파(陽明學派) 사람들은 치지(致知)에 이르려면 물욕을 물리쳐야 하는 것[格物]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을 중시하는 주자학(朱子學)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도덕을 중시하는 양명학(陽明學)을 심학(心學)이라 하는 모양이다.
주자학에 따르나 양명학에 따르나 격물치지의 조건은 사물을 주체로 하느냐, 나를 주체로 하느냐만 다를 뿐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잘 익은 사과를 두고 한 사람은 사과 자체가 빨간색이라고 주장하고, 또 한 사람은 우리 눈에 빨갛게 보이니까 사과는 빨간색 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하튼 수신, 제가 이전에 갖추어야 할 리더의 조건이 바로 격물치지 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리더는 격물치지를 통하여 첫째 팀원을 알아야 하고, 둘째 팀원을 받아들여야 하고, 셋째는 팀원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정의
중국 남송대, 주희가 '대학장구'에서 '대학'의 '치지재격물'로 구성한 유학의 도덕적 인식을 함축하는 개념으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극진히 한다'는 것을 뜻하는 유학 용어이다.
내용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의 수기와 치인을 포괄하는 도덕적 수양을 기초로, 유가적 도덕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출발점이 되는 개념틀이다.
'대학'에서 '격물치지'가 논의되는 맥락은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는[明明德] 선결 과정을 단계적으로 소급할 때, 맨 첫 단계에서 실행해야 하는 사물에 대한 인식 과정이다. 곧 치국(治國)으로부터 제가(齊家) 수신(修身) 정심(正心) 성의(誠意) 치지(致知)가 단계적으로 명덕을 천하에 밝히는 토대가 되고, 이 치지(致知)는 격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도덕적 노력의 결과는 물격(物格)으로부터 차례로 지지(知至) 의성(意誠) 심정(心正) 신수(身修) 가제(家齊) 국치(國治) 천하평(天下平)이라는 결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대학의 경전 원문에는 격물치지에 관하여, "나의 지식을 완성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데 있다(致知在格物)", "사물의 이치가 궁극에 이른 다음에 지식이 극진한 데 이른다(物格而後知至)", "이것을 나의 지식이 극진한 데 이르렀다고 말한다(此謂知之至也)"라고 하는 세 구절이 있다.
그런데 주희는 마지막 구절인 '此謂知之至也' 여섯 글자 앞앞에 빠진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격물치지의 뜻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정자(程子)의 뜻에 따라 '보망장(補亡章)'을 지어 '격물치지의 뜻'을 보충하였다.
주희가 보충한 이 부분을 '격물치지보망장(格物致知補亡章)' 또는 '주자보망장'이라고 일컬는다. 이 부분은 128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문의 구절 6자와 합쳐 모두 134자이다. 격물치지보망장을 중심으로 한 주희의 격물치지설은 주자학에서 도덕적 인식론의 핵심적 논제로서 중시된다.
유학 및 성리학의 도덕적 표준에 대한 인식의 절차를 뜻하는 격물치지 문제는 중국 남송대 주희가 '대학장구'를 저술한 뒤로부터 유학의 이론 가운데, 특히 학문과 수양에서의 기초적인 문제로 매우 중시되었다. 격물치지에 관한 논변은 성리학적 인식론의 기본 체계를 구성하고 도덕적 인식의 근거를 밝혀 주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후 중국과 조선에서 격물치지에 관한 이론은 매우 정밀하게 연구되어 왔으며, 그 이론 체계를 격물치지론, 또는 줄여서 격치론이라 일컫는다.
중국 학자들의 격물치지 해석
격물치지에 대한 의미를 주희는 어떻게 해석했는가? 그는 격물치지를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지극히 하여 그 궁극적 경지가 이르지 않음이 없으며, 나의 지식을 극진하게 미루어 그 앎이 이르지 않는 곳에 없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특히 격물치지는 거경(居敬)과 함께 항상 붙어 다니는 인식론이자 수양론 개념이다.
정자(程子)는 "지식을 극진하게 하면서 경(敬)하지 않은 적은 없다(未有致知而不在敬者)"라고 하여, 경이 지식을 극진히 하는 근거라고 보았다. 경 공부는 육체적인 기질로 인한 개인적 욕망을 다스려서, 본성의 이치에 따르도록 선의지(善意志)를 기르고 의식을 수렴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주일무적(主一無適), 상성성(常惺惺), 기심수렴(其心收斂), 불용일물(不容一物) 등이 있다.
이렇게 마음과 태도의 안팎을 수렴하고 마음을 집중한 다음에 사물의 이치를 공부해 나가는 것이 격물치지이다. 격물치지는 주희의 이론 정립 이전에도 정현(鄭玄)과 장재(張載) 등에 의해 여러 시각에서 논의되었다.
먼저, 중국에서 격물치지론의 논쟁점과 주장을 살펴보면 몇 가지 대표적인 경우를 들 수 있다. 격물의 '격'에 대한 해석은 학자와 학파적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한나라의 정현은 "격은 오는 것이다(格來也)"라고 하여, 대상의 사물이 주체에 다가올 때 지각(知覺)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장재는 "격은 제거하는 것이다(格去也, 物外物也)"라고 하여,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제거할 때 마음이 평정하게 사물을 지각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정이(程頤)와 주희는 "격은 이르는 것이다(格至也)"라고 하여, 인식의 주체가 대상인 사물에 나아감으로써 사물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호안국(胡安國)은 "격은 헤아리는 것이다(格度也, 猶曰品式也)"라고 하여, 대상적 사물에서 법칙적 요소를 헤아림으로써 지식을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이어서 왕수인은 "격은 바로잡는 것이다(格正也, 正其不正, 以歸於正也)"라고 하여, 주체인 마음의 작용이 바르지 못하므로 이를 바로잡아 앎[知]을 이루는데, 앎을 이루는 방법을 본심(本心)에 갖추어진 양지(良知)에서 찾는다.
격물에 대한 주희와 왕수인의 연속적 해석
이처럼 '격'의 의미에 대한 이해는 객관적 입장과 주관적 입장의 차이가 있고, 주체인 마음을 능동적 또는 수동적 역할로 구별하는 차이를 드러낸다. 반면 격물에서 '물'의 의미에 대한 이해에서는 정현 이후 주희나 왕수인의 입장에 공통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대체로 '물'은 '사(事)'와 같은 뜻으로 이해되었다.
대학의 8조목에서 본다면, 의(意) 심(心) 신(身) 가(家) 국(國) 천하(天下)의 대상적 존재를 '물'이라 하고, 성(誠) 정(正) 수(修) 제(齊) 치(治) 평(平)의 행위적 사실을 '사'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물'이 '사'와 같다고 하면,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등을 격물의 물이라고 보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주희나 왕수인의 격물론은 사물의 객관적 사실에 관한 과학적인 탐구와 인간의 정당한 행위 법칙을 찾는 도덕적인 탐구를 통합하는 입장을 보여 준다. 송대 이후의 이학적(理學的) 격물론에 대하여, 근세의 실학 또는 기학(氣學)의 격물론에서는 객관적 과학적 격물론이 제시되었다.
치지에 대한 주희와 왕수인의 대립적 해석
반면 치지(致知) 문제에서 주희와 왕수인의 학설은 상반된 의미를 갖는다. 주희에 따르면 ‘지’는 지식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희의 지식은 인간 마음의 지각 능력에 근거하지만, 이런 능력이 '사물에 나아가(卽物)' 그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窮理)'으로써 각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왕수인에서 '지'는 양지(良知)이다. '맹자'에서 양지는 태어나면서 타고난 선천적 능력으로서 '사려하지 않고 아는 것'이다. 왕수인은 "양지가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은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없으며, 천하와 고금에 일치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양지를 인간의 개체적인 경험적 지각을 넘어선 본심의 보편적 이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고, 양지를 천리(天理)라고 지적하였다.
주희는 격물치지보망장에서, "이치에 궁구하지 못함이 있어서 지식에 극진하지 못함이 있다"라고 하여 지식의 대상적 근거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에게서 지식은 체계적으로 축적되는 것으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기초로 점점 축적시켜 가고 노력을 지속해 가면 “하루아침에 활연관통(豁然貫通: 환하게 통하여 도를 깨달음)하여 모든 사물의 겉과 속이나 정밀한 세부와 거친 대강(衆物之表裏精粗)이 모두 이르고, 내 마음의 큰 본체와 작용이 모두 밝혀질 것이다"라고 하여 격물치지의 방법 내지 과정과 그 궁극의 경지를 밝혔다.
사물의 이치와 마음의 지식이 시원하게 뚫리는 '활연관통'의 경지는 길고 오랜 노력의 과정을 거쳐 단계적이고 축적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왕수인의 치양지(致良知)에서는 양지 자체가 환히 트여 지극히 공변된 확연대공(廓然大公)한 본체이므로, 이를 흐리게 하거나 은폐시키는 물욕을 제거하면 그 본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본체적이고 소거적(消去的)인 성격을 띤 것이다. 결국 왕수인은 주희의 보망장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대학장구'의 체제를 부정하여 '고본대학(古本大學)'을 드러냈다.
조선중기 학자들의 격물치지 해석
우리나라 학자들 사이에서도 격물치지 문제는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이황(李滉)은 격자의 의미를 ‘궁구하여 이른다’는 뜻으로 파악하여, 궁구하는 데에 비중을 두어 격물을 ‘사물을 격(궁구)한다’로 해석하고, 이르는 데에 비중을 두어 물격(物格)을 ‘사물에 격(이른다)한다’로 해석하였다. 여기서 격의 주체는 인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식(金湜) 등은 ‘사물이 이른다’로 해석하여, 격의 주체를 사물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황도 만년에는 ‘사물이 이른다’라는 해석을 받아들였다. 곧 ‘사물이 이른다’는 말은 사물의 이치가 인간에게 드러날 수 있는 능동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이(理)의 능동성에 근거한 이도설(理到說)과 연관된다.
이에 비하여 이이(李珥)는 물격을 ‘사물의 이치가 극처에 이르는 것’이라 하여, 사물의 이치가 인간의 마음에 이른다는 이의 능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격물설에 대한 해석의 입장은 성리설과 연결되어,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격물설이 하나의 학파적 전통을 형성해 왔다. 주희가 제시한 격물치지보망장에 대해 찬반론이 예리하게 대립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주희의 보망장을 찬성하는 인물들은 이른바 주자학의 정통을 잇는 학자들이다. 하지만 정통 도학파주9의 인물인 이언적(李彦迪)의 경우 '대학장구보유'를 저술하여, 주희의 보망장 없이도 격물치지장의 내용을 '대학'의 첫머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언적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황과 유성룡(柳成龍) 등은 주희의 입장을 지지하여 이를 비판하였다.
격물치지장의 내용에 대한 이해에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보망장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로는 이전(李銓)과 최수지(崔收之) 등이 있다. 이현일은 격물치지와 연관하여 보망장에서 말한 “오늘 하나의 물에 나아가고 내일 하나의 물에 나아가 축적된 것이 많은 뒤에 활연관통(豁然貫通)의 곳이 있다”라는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였으며, 이황의 이도설(理到說)을 긍정하였다.
이로써 인식의 주체가 물리(物理)를 궁구하여 활연관통하는 경지에 이르면, 인식의 대상인 물리가 자연히 인식 주체의 의식에 이른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조선중후기 학자들의 독창적 해석
윤휴는 주희와 달리 격물치지에서 격(格)을 감통(感通), 물(物)을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일이라고 파악하였다. 이것은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수기안인(修己安人)이 목적인 학(學)으로서, 자기(自己)를 완성하고 타인(他人)을 완성시켜 모든 타고난 생명을 순조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임을 드러내는 해석이다.
정제두(鄭齊斗)는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로서 '고본대학'을 결함이 없다고 존중하며 '대학장구' 자체를 거부하였다. 이것은 그가 주희의 '격물보전(格物補傳)'을 부정하고 양명학의 입장에서 격물치지를 해석함을 의미한다. 이에 정제두는 경문(經文)이 그 자체로 격물치지장(格物致知章)이라고 주장한다. 경문에서 이미 지선(至善)과 격물과 치지의 관계와 의미가 온전히 드러났으므로 따로 격물치지에 대한 전문(傳文)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적 인물인 정약용(丁若鏞)은 물의 대상을 사와 엄격히 구별한다. 그는 격의 의미로서 ‘온다’거나 ‘이른다’는 뜻이 적합하지 않고, 왕수인이 ‘바르게 한다’고 해석한 것이 옳다고 지지한다. 또한 그는 대학의 8조목에서 격물과 치지는 다른 6조목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격물의 ‘물’은 본말(本末)이 있는 것이고, 치지는 선후(先後)하는 바를 아는 것이라 하여, '의'와 '심'이 근본(根本)이고 '가'와 '국'이 지말(枝末)임을 알며, '성'과 '정'이 시작이고 '제'와 '치'가 마침임을 아는 것이 격물이요, ‘바르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뜻을 참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나, ‘뜻을 참되게 하고 난 뒤에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일의 선후를 아는 것을 치지라 분석하여 '격치도(格致圖)'를 만들고 있다.
심대윤은 격물치지의 효과를 강조하여, 충서를 통해 인간의 실정〔人情〕 및 천하의 각종 사태와 사물의 실정〔物情〕까지 두루 통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이로워지고[利] 편안해지도록[安] 만드는 것이 격물치지의 뜻이라고 보았다.
근대시기 격물치지에 대한 자연과학적 해석
서양 문명이 도래한 근대 개화기에 격물치지 개념은 ‘science’의 번역어로 정립되었다. 성리학에서 격물치지가 천리를 궁구하는 방법으로서 인간의 도덕 실천의 영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면, 서양 근대의 도구적 이성관과 연속성을 갖는 격물치지학(格物致知學)은 객관적인 사물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지향하는 매개로서 성리학의 실천적 인식을 해체하는 중요한 기제였다.
넓게는 자연과학을, 좁게는 물리학(物理學)의 의미로 사용된 격물치지학은 서구 근대의 자연과학 및 기술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이렇게 서양 문명이 도래한 이후, 격물치지는 유학이 과학적 탐구 방법이나 지식 체계와 연결될 수 있게 만드는 다양한 가능성과 과제를 지닌 개념이 되기도 하였다.
▶ 格(격식 격, 가지 각, 마을 락/낙, 별 이름 학)은 형성문자로 挌(격)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各(각)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各(각)은 곧장 다다르는 일, 格(격)은 똑바로 자란 높은 나무란 뜻에서 바르다, 바로잡다, 규칙, 뼈대 따위의 뜻으로 되었다. 또 各(각)과 같이 다다르다, 다하다란 뜻으로도 썼다. 그래서 格(격, 각, 락/낙, 학)은 (1)주위 환경이나 사정에 어울리는 분수(分數)나 품위(品位) (2)격식(格式) (3)문장에서의 다른 단어에 대한 관계를 표시하는 단어(명사(名詞), 대명사(代名詞), 수사 따위)의 형태. 주격, 목적격, 소유격 등 (4)삼단 논법에서 대전제와 소전제에 포함된 매개념(媒槪念)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는 형식 (5)화투의 끝수를 세는 말 (6)용언(用言)의 '-ㄴ(은)', '-는' 아래나 명사(名詞) 아래에 쓰여 '셈'이나 '식'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격식(格式), 법식(法式) ②자리, 지위(地位) ③인격(人格), 인품(人品) ④격자(格子) ⑤과녁 ⑥지주(支柱: 쓰러지지 아니하도록 버티어 괴는 기둥) ⑦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다다르다 ⑧감동(感動)시키다 ⑨연구(硏究)하다, 궁구(窮究)하다(파고들어 깊게 연구하다) ⑩바로잡다, 바르게 하다, 고치다 ⑪재다, 헤아리다 ⑫크다 ⑬치다, 때리다, 싸우다 ⑭겨루다 ⑮대적(對敵)하다, 맞서다 ⑯사납다 ⑰막다, 가로막다 ⑱그치다 ⑲포박(捕縛)하다 ⑳제한(制限)하다, 한정(限定)하다, 그리고 ⓐ가지, 나뭇가지(각) ⓑ주사위 놀이(각) 그리고 ㉠마을, 촌락(村落)(락) ㉡울타리(락) 그리고 ㉮별의 이름(학)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법식 례/예(例), 법 전(典), 법 식(式), 법 법(法), 법 규(規)이다. 용례로는 오랜 역사적 생활 체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인생에 대한 교훈이나 경계 따위를 간결하게 표현한 짧은 글을 격언(格言), 품위나 자격의 차를 격차(格差), 격에 어울리는 법식을 격식(格式), 격을 높임을 격상(格上), 사물의 이치를 연구함을 격물(格物), 스스로 정하여 스스로 지키는 준칙을 격률(格率), 사람의 품격과 인격을 격저(格調), 맨몸으로 맞붙어 치고 받고 하며 싸움을 격투(格鬪), 격에 어울리는 말을 격담(格談), 품격과 도량을 격도(格度),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음을 격비(格非), 물건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돈으로 나타낸 것을 가격(價格),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어떤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자격(資格), 매우 엄하여 잘못이나 속임수 따위를 허용하지 않음을 엄격(嚴格), 판단의 표준이 될 만한 일정한 약속을 규격(規格), 시험이나 조건에 맞아서 뽑힘을 합격(合格),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로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척추동물의 몸을 이루고 지탱하게 하는 여러 가지 뼈의 조직을 골격(骨格), 물건의 좋고 나쁨의 정도를 품격(品格), 사물의 이치를 구명하여 자기의 지식을 확고하게 함을 격물치지(格物致知), 행동의 자유를 구속함을 이르는 말을 형격세금(形格勢禁), 서로 매우 다름을 천지분격(天地分格),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격식을 응행격식(應行格式), 젊은 나이에 타고 난 높은 품격과 재주를 묘년재격(妙年才格) 등에 쓰인다.
▶ 物(물건 물)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소 우(牛=牜; 소)部와 음(音)을 나타내며勿(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만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소(牛)를 지목하여 만물을 뜻한다. 勿(물)은 旗(기), 천자(天子)나 대장의 기는 아니고 보통 무사(武士)가 세우는 색이 섞여 있는 것, 여기에서는 색이 섞여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物(물)은 얼룩소, 나중에 여러 가지 물건이란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옛 모양은 흙을 갈아 엎고 있는 쟁기의 모양과 牛(우; 소)로 이루어져 밭을 가는 소를 나타내었다. 나중에 모양이 닮은 勿(물)이란 자형(字形)을 쓰게 된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物자는 ‘물건’이나 ‘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物자는 牛(소 우)자와 勿(말 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勿자는 무언가를 칼로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物자는 소를 도축하여 상품화시키는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에는 다양한 색이 뒤섞여있던 ‘얼룩소’를 物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후에 다양한 가축의 종류나 등급과 관계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제품’이나 ‘상품’, ‘만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物(물)은 (1)넓은 뜻으로는, 단순한 사고(思考)의 대상이건,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건을 불문하고, 일반으로 어떠한 존재, 어떤 대상 또는 어떤 판단의 주어(主語)가 되는 일체의 것 (2)좁은 뜻으로는,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감각에 의해서 지각(知覺)할 수 있는 사물(事物), 시간(時間), 공간(空間) 가운데 있는 물체적, 물질적인 것 (3)사람이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구체적 물건. 민법 상, 유체물(有體物) 및 전기(電氣) 그 밖에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自然力). 사권(私權)의 객체(客體)가 될 수 있는 것 등의 뜻으로 ①물건(物件) ②만물(萬物) ③사물(事物) ④일, 사무(事務) ⑤재물(財物) ⑥종류(種類) ⑦색깔 ⑧기(旗) ⑨활 쏘는 자리 ⑩얼룩소 ⑪사람 ⑫보다 ⑬살피다, 변별하다 ⑭헤아리다, 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건(件), 물건 품(品), 몸 신(身), 몸 궁(躬), 몸 구(軀), 몸 체(體)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내거나 가공하여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는 들고 다닐 만한 크기의 일정한 형태를 가진 대상을 물건(物件), 물건의 본바탕으로 재산이나 재물을 물질(物質), 물건 값을 물가(物價), 쓸 만하고 값 있는 물건을 물품(物品), 물건의 형체를 물체(物體), 물건의 분량을 물량(物量), 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하는 데 쓰는 여러 가지 재료를 물자(物資), 어떤 사람의 좋지 않은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논란하는 상태를 물의(物議), 마음과 형체가 구별없이 하나로 일치된 상태를 물심일여(物心一如),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물외한인(物外閑人), 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는 물유본말(物有本末), 생물이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긴다는 물부충생(物腐蟲生),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의 양면을 물심양면(物心兩面),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물아일체(物我一體) 등에 쓰인다.
▶ 致(이를 치/빽빽할 치)는 ❶형성문자로 緻(치)의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이를 지(至; 이르다, 도달하다)部와 매질하여 빨리 이르도록 한다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의 뜻이 합(合)하여 이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致자는 '이르다'나 '보내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致자는 至(이를 지)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攵자가 아닌 夊(천천히 걸을 쇠)자가 쓰였었다. 夊자는 '발'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소전에서의 致자는 '이르다'는 뜻의 至자에 夊자를 결합해 발걸음이 어느 지점에 도달했음을 뜻했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夊자가 攵자로 잘못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알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致(치)는 ①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②다하다 ③이루다 ④부르다 ⑤보내다 ⑥그만두다 ⑦주다, 내주다 ⑧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을 꿰매다) ⑨꿰매다 ⑩빽빽하다 ⑪면밀(綿密)하다 ⑫촘촘하다 ⑬찬찬하다(성질이나 솜씨, 행동 따위가 꼼꼼하고 자상하다) ⑭곱다 ⑮배다 ⑯풍취(風趣) ⑰경치(景致) ⑱정취(情趣) ⑲흥미(興味) ⑳취미(趣味) ㉑헌옷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를 도(到), 이를 계(屆), 이를 지(至), 이를 진(臻), 이를 흘(訖)이다. 용례로는 죽을 지경에 이름을 치명(致命), 고맙다는 인사의 치사(致謝), 남이 한 일에 대하여 고마움이나 칭찬의 뜻을 표시하는 치하(致賀),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됨을 치부(致富), 사물의 도리를 알아서 깨닫는 지경에 이름을 치지(致知), 사례하는 뜻을 표함을 치사(致謝), 있는 정성을 다함을 치성(致誠), 공양이나 공궤를 함을 치공(致供), 온 정성을 다함을 치관(致款), 나라를 잘 다스리기에 이름을 치리(致理), 가업을 이룸을 치가(致家), 경의를 표함을 치경(致敬), 강제 수단을 써서 억지로 데리고 감을 납치(拉致), 꾀어서 데려옴을 유치(誘致),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경치(景致), 사물의 정당한 조리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를 이치(理致), 더 갈 수 없는 극단에 이름을 극치(極致), 서로 맞음을 합치(合致), 서류나 물건 등을 보냄을 송치(送致), 불러서 이르게 함을 초치(招致), 사물의 이치를 구명하여 자기의 지식을 확고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격물치지(格物致知),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침을 일컫는 말을 견위치명(見危致命), 회의장에 모인 사람의 뜻이 완전히 일치함을 일컫는 말을 만장일치(滿場一致), 보고 들은 바가 꼭 같음을 일컫는 말을 견문일치(見聞一致), 말과 행동이 같음을 일컫는 말을 언행일치(言行一致), 차별 없이 서로 합치함을 일컫는 말을 혼연일치(渾然一致), 여럿이 한 덩어리로 굳게 뭉침을 일컫는 말을 일치단결(一致團結) 등에 쓰인다.
▶ 知(알 지)는 ❶회의문자로 口(구; 말)와 矢(시;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矢)처럼 말(口)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合)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知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知자는 矢(화살 시)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知자는 소전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智자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知자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知(지)는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알리다, 알게 하다 ③나타내다, 드러내다 ④맡다, 주재하다 ⑤주관하다 ⑥대접하다 ⑦사귀다 ⑧병이 낫다 ⑨사귐 ⑩친한 친구 ⑪나를 알아주는 사람 ⑫짝, 배우자(配偶者) ⑬대접(待接), 대우(待遇) ⑭슬기, 지혜(智慧) ⑮지식(知識), 앎 ⑯지사(知事) ⑰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認), 살펴 알 량/양(諒), 알 식(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를 일컫는 말을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