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사성어

견물생심(見物生心)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1.15|조회수775 목록 댓글 0

 

견물생심(見物生心)

물건을 보면 마음이 생겨난다는 뜻으로,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의미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한 말이다.

見 : 볼 견(見/0)
物 : 만물 물(牛/4)
生 : 날 생(生/0)
心 : 마음 심(心/0)

(유의어)
이목지욕(耳目之慾)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귀하고 값진 보물을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동한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남의 것을 탐내는 마음을 경계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좋은 물건을 보면 누구나 그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욕심은 인간의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드러나는 자연적인 감정인 칠정(七情);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악(惡), 욕(欲) 가운데 하나이다.

물건을 보고 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동시에 이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자신의 물건이 아니거나,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물건이면 더 이상 탐내지 않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욕심을 경계한 말이다.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람만 같지 못하고(過猶不及), 달도 차면 기울게 마련이다(月盈則食). 욕심도 마찬가지다.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부르게 된다.

내 돈 서푼은 알고 남의 돈 칠푼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제것만 중하게 여기고 남의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사람으로선 차마 하지 못할 일이다.

치악산(雉岳山)의 으뜸 봉우리인 비로봉(飛蘆峰)에서 학곡리 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구룡사(九龍寺)는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의상(義湘)과 아홉용(九龍)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곳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은 그 연못 자리가 좋아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 시합을 했다. 용들이 먼저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치고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용들이 흐뭇해 하며 주변을 살피니 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은 의상이 움직였다. 부적(符籍)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넣었다. 그러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용들이 뜨거워 날뛰었다. 그때 놀란 용 여덟 마리가 절 앞산을 여덟조각 내면서 동해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계곡의 못에 머물렀다. 그래서 절 이름도 구룡사(九龍寺)라 했다. 본래 구룡사는 스님들의 수양도장으로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흥망성쇠에 따른 곡절이 많았다.

이조(李朝)에 들어서면서 치악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대부분 궁중에서 쓰게 되어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의 책임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좋거나 나쁘거나 구룡사 스님의 검사 하나로 통과 되는지라 인근 사람들안 나물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별도로 뇌물을 받치기도 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아무리 부처님 같은 스님이라 할지라도 여기엔 욕심이 나지 않을수 없었다. 이리하여 구룡사는 물질적으로 풍성하기는 하였으나 정신도장으로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럴즈음 한 스님이 찾아와 몰락한 이절을 보고 개탄하면서 이 절이 흥하지 못하는 것은 절에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거북 바위 때문이니 그 거북 바위를 쪼개 없애면 좋을 것이다 했다.

절에서는 그 스님의 말을 믿어 거북 바위를 쪼개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후부터 찾아오는 신도도 더욱 적어지고 거찰(巨刹)로서의 명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급기야는 절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럴때 어느 날 도승 한분이 찾아왔다. “이 절이 왜 이렇게 몰락하는가 하면 그 이름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하고 말했다. 주지 스님은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고 물었다. 도승이 “본시 이 절은 절 입구를 지키고 잇던 거북바위가 절운을 지켜왔는데 누가 그 바위를 두동강으로 내 혈맥은 끊어 버렸으니 운이 막힌 것이오” 하였다.

주지 스님은 재차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도승은 거북을 다시 살린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아홉구(九)에서 거북구(龜)자를 쓴 구룡사로 쓰기로 했다' 한다.

구룡사 계곡 안쪽으로 구룡폭포를 비롯하여 귀암, 호암, 용연 등의 경치 좋은 곳이 있다. 2003년 9월 30일 화재로 전소된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구룡사 대웅전이 원형 복원됐다. 대한불교 조계종(曹溪宗) 구룡사는 강원도가 제작한 실측보고서를 토대로 불교양식에 맞게 대웅전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공사를 벌여 2004년 10월 완공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물건을 보면 마음이 생겨난다는 뜻으로, 무엇인가를 보면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사자성어로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괜찮은 물건을 보면 반드시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이다. 좋은 물건을 보면서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물을 구분할 줄 모르거나 정신박약이거나 아무튼 정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원초적인 본능으로는 견물생심이 맞다. 그러나 견물의 그 물건 중에는 취할 것이 있고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으므로 그 물건의 성격과 상관없이 본능에 따라 무조건 견물생심(취득)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그 물건이 명백한 남의 것도 있고, 장물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상당한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취득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감정과 이성의 불균형을 초래할 때 견물생심으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있다. 눈앞에 이득(취득, 소유 등)이 있을 때는 먼저 옳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비록 눈앞에 큰 이득이나, 탐나거나 좋은 물건이 있다 하더라도 의롭지 못하거나 정당하지 않거나 도리에 어긋나면 결코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물의 소중함을 아는 것과 그것을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면 우연히 많은 돈이 든 가방을 발견했을 때 못 본 척 지나쳐 가거나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면 그만인데 견물생심의 본능에 따라 이를 탐내어 취득하게 되면 명백한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돈이 아니라도 소유자가 잃어버리거나 잠깐 잊어버린 귀중품을 몰래 취득하는 것은 법률적 용어로는 ‘점유이탈물횡령’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명백하게 소유자가 있는 돈이나 귀중품을 그 소유자 몰래 훔치는 경우는 ‘절도’가 되고 돈이나 귀중품을 그 소유자를 협박해 강제로 빼앗아 가로채는 것은 ‘강도’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견물생심은 사자성어이지만 고사성어는 아니므로 견물생심에 관련된 재미있는 옛이야기는 없다. 다만 비슷한 고사성어로 득롱망촉(得隴望蜀)이 있어 소개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득롱망촉은 농 나라를 얻고 나니 내킨 김에 촉나라를 뺏어서 갖고 싶다는 말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득롱망촉의 유래를 살펴보면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와 촉나라 유비가 싸울 때의 일이다. 조조는 촉나라 쪽으로 진격해 촉나라 북쪽에 붙어있는 농 나라 일대를 수중에 넣었다. 그러자 조조의 군사인 사마의가 말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촉나라의 본거지까지 뺏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조조는 “사람이 만족하기는 쉽지 않아. 이미 농 나라를 얻었으니 촉나라까지 바랄 것이야 없지.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야”라고 말했다.

당시 농 나라를 수중에 넣는 동안 군사들이 너무 지쳤고 또한 지친 원정군이 농성을 하는 유비의 토박이 군대를 쳐서 이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므로 자칫 욕심만 앞서서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다가는 오히려 패배라는 처참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음을 생각한 결정이었다.

조조 사후 왕권을 아들이 물려받았지만 군사이자 책사였던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황제를 겁박해 왕위를 찬탈하고 국호인 위(魏)를 진(晉)으로 바꾸고 나서 오나라를 굴복시키고 천하 통일하게 된다. 이것은 권력이나 재물, 나라 등이 주관적인 자기 욕심만 부린다고 다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에게 주어진 제반 주위 환경은 물론, 하늘과 인심의 도움이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지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어쩌면 불가사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욕심 없는 사람은 없다. 또한 사람이 가진 그 욕심이 원동력이 돼 사회나 개인이 계속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더 잘나고 싶고, 더 잘 살고 싶고, 더 편리하고 윤택하게 살고 싶고, 더 많이 가지고 싶고, 오래오래 살고 싶고, 더 건강해지고 싶고, 더 유명해지고 싶고…. 욕심이야말로 사람이 발전하는 원동력이고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 비움과 무소유 그리고 텅 빈 충만이라는 교훈을 남기고 입적하신 법정스님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욕심을 부리더라도 도리에 맞게, 분수에 맞게, 남의 원망을 듣지 않게, 부작용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남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면 반드시 내 눈에 피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래야만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더불어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

 

1. 견물생심의 뜻과 유래

견물생심(見物生心)은 한자로 풀면 '보면 마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이 사자성어의 의미는 실제로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상황을 표현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 쇼핑을 하거나 친구가 새로 산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이처럼 물건을 보면 마음에 욕망이 일어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유래는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전 중국에서 상인들이 거래할 때, 상점에서 물건을 본 손님들이 그것을 보고 싶어 하고, 결국 그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물건에 대한 욕망을 자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기에, 이 사자성어는 물질적인 욕망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 견물생심의 현대적 의미와 적용

현대 사회에서도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광고나 마케팅을 통해 끊임없이 물건을 보고, 그것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보고 나면 그 즉시 욕망을 느끼며,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를 하게 됩니다. 이는 물질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일상 속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전하는 교훈은 단순히 물질적인 욕망을 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런 욕망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물건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가지려는 욕구를 느끼지만, 결국 그런 소비가 불필요한 지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견물생심과 비슷한 사자성어

견물생심(見物生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로는 전화위복(轉禍爲福)과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있습니다. 전화위복은 불행한 일이 결국 복이 된다는 뜻으로, 원래의 불행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고진감래는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의미로,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주는 교훈과 비슷한 맥락에서, 물질적 욕망을 다스리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자성어입니다.

 

4. 견물생심을 삶에 적용하는 방법

견물생심(見物生心)을 삶에 적용하려면, 물질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건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욕망에 의해 구매하려는 것인지를 돌아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쇼핑을 하기 전에는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물건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통제하는 것 외에도, 자신이 물질에 의존하는 삶을 지양하고 더 중요한 가치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우리가 소비하는 삶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자성어입니다.

 

5. 견물생심의 결론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우리가 물건을 보면 욕망이 일어난다는 중요한 교훈을 주는 사자성어입니다. 물질적 욕망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어하고, 정말로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자성어가 전하는 교훈은 단지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넘어서, 삶의 가치를 제대로 추구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의 의미를 삶에 적용하여, 물질적 욕망을 잘 다스리며,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견물생심(見物生心)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나타내는 말로, 좋은 물건을 보면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동시에 절제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소비문화의 발달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見(볼 견), 物(물건 물), 生(날 생), 心(마음 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글자가 모여 ‘물건을 보고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욕망이 시각적 자극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현대적 해석: 오늘날에는 단순히 물건에 대한 욕심뿐만 아니라, SNS나 미디어를 통해 보게 되는 다양한 경험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욕구로도 확장되어 해석됩니다.

일상생활 속 견물생심
소비문화와의 관계: 대형마트나 쇼핑몰에서 물건을 보면 필요하지 않은 것도 구매하고 싶어지는 충동이 생깁니다. 이는 현대 소비사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견물생심의 예시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견물생심: 온라인 쇼핑,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더욱 쉽게 물건을 접하게 되면서 욕구가 더욱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견물생심의 극복 방법
욕구 조절: 물건을 보고 욕심이 생기더라도 실제 필요성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충동구매를 피하고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치 중심적 사고: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유가 아닌 경험과 관계에서 기쁨을 찾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현대사회에서의 의미
견물생심(見物生心)은 단순히 경계해야 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적절한 욕구는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나친 물욕은 삶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으므로 절제와 조절이 필요합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견물생심을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현대인의 중요한 과제라 하겠습니다.

Q: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A: 견물생심(見物生心)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나타내는 말로, 좋은 것을 보면 소유하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감정을 표현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소비문화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개념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누구나 한 번쯤 쇼핑을 하다가 예쁜 물건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건 꼭 사야 해!”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이러한 심리를 설명하는 사자성어가 바로 견물생심(見物生心)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뜻으로 우리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심리 현상입니다. 쇼핑몰에 가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갖고 싶어지고, 결국 충동구매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쉽게 물건에 끌릴까요?  

 

견물생심(見物生心)은 '보다(見)'와 '물건(物)', '생기다(生心)'가 합쳐진 말로,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물건을 보는 순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욕구에 휩쓸려 무분별한 소비를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단순히 물건이 예뻐서 생기는 감정만은 아닙니다. 먼저 심리적 보상으로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소속감으로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표현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물건으로 표현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단순히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면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은 충동구매로 이어져 경제적인 부담을 초래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소비를 유발하여 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을 극복하고 현명한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1)필요성 점검: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2)시간 두기: 충동적인 구매를 막기 위해 구매를 하루 이틀 미뤄봅니다. (3)대안 찾기: 비슷한 기능을 가진 더 저렴한 제품을 찾아봅니다. (4)목표 설정: 소비 목표를 설정하고 예산을 계획합니다. (5)미니멀 라이프: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정말 필요한 것만 소비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우리 삶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력을 발휘한다면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쇼핑을 할 때는 꼭 기억하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성리학의 인성론(人性論)에 사단칠정(四端七情)이 있습니다. 당(唐)나라 한유(韓愈)는 원성편(原性篇)에서 "칠정(七情)은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으로 인간의 본성이 사물에 접하면서 일곱 가지로 다르게 드러난다"라고 하였습니다. 칠정은 인간의 본성에 이미 내재되어 있던 것으로 외부의 사물이나 사건을 접하면서 발생하는 감정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어떤 물건을 보았을 때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니, 갖고 싶은 욕심은 칠정 중에 욕(欲)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불교와 성리학에서는 욕심을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할 것을 여겼습니다. 실제로 지나친 욕심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견물생심의 겉 의미는 글자 그대로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것인데, 그 속에는 소유욕을 경계하라는 뜻이 은근히 내포되어 있습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 / 김병연(金炳淵)

 

김병연(김삿갓 혹은 김립 金笠)은 문득 욕심이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자연계에는 욕심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러기에 어떤 시인은 골짜기에 흘러가는 물과 하늘에 떠도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런 시를 읊은 일이 있었다. 물은 흘러도 앞을 다투지 않고(水流心不競 수유심불경), 구름은 있어도 서로 뒤지려 한다(雲在意俱遲 운재의구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었으니. 어느날 객점에서 김삿갓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폭음을 하며 연거퍼 한숨을 쉬어대는 것이다. 사연을 들어본 즉 그 사람 이름은 현태덕이였는데 이 사람은 친구에게 천냥이란 빚을 빌렸다가 처음에 800냥을 갚고 그 다음에 친구 집에 가서 200냥을 갚은 뒤에 차용 증서를 달라고 하니. 친구가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나머지 800냥을 갚으면 그때 차용증서를 준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800냥을 받은 일이 없다고 잡아떼니 의리를 믿고 800냥을 갚을 때 아무 것도 받아두지 않은 현태덕이란 사람은 꼼짝없이 800냥을 도로 갚아야 될 상황이니, 가난한 농군에게 그게 죽으란 말과 똑같지 않은가!

 

이일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삿갓은 도와 주기로 결심하고 그 마을 사또에게 가서 암행어사인 척 하며 그 친구인 장형준이란 사람을 잡아들인다.

 

그리고 그 집에서 나온 금이랑 돈들을 앞에 놓고 "네놈은 산적이 틀림없구나. 이 돈과 패물은 양민들한테서 강탈해 온 장물임이 틀림 없으렷다?" "소인더러 산적이라니 그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을 하시옵니까?" "이놈아! 능청은 그만 떨고 사실대로 고백하거라. 너희 집에 현금 천 냥이란 대금이 어디서 생겨난 돈이냐 말이다. 지금 우리는 산적의 두목을 체포해 왔는데 그놈의 자백에 의하면 네 놈은 산적의 부하라는 것이다. 두목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너는 그래도 아니라고 우기겠느냐?"

 

이런식으로 계속 닥달을 하니 산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게 될 판인 장형준이 사실대로 이실직고 하게 되니. "그 돈은 친구에게 빚을 주었다가 돌려 받은 돈이옵니다." "친구에게 빚을 주었다가 돌려 받은 돈이라면 그 친구의 이름은 뭐라고 하느냐?" 장형준은 양심에 가책을 느꼈는지 "빚을 얻어 갔던 친구는 현태덕이라고 하옵니다"하고 조그맣게 대답한다.

 

김삿갓은 범죄 사실을 밝혀 놓고 나니 무척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에게 받은 천냥 돈임을 실토하게 되니 이로서 사건이 마무리지게 된 것이다. 사건이 잘 해결되어 기쁜 마음으로 다시 방랑길에 오른 김삿갓이 한참 산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현태덕이란 사람이 숨가쁘게 쫓아온다.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러 온 것이리라.

 

하지만 삿갓이 극구 거부를 하니 현태덕이란 사람이 오히려 민망해 하기에 옆전 한 잎만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려 하니 이미 날이 저물어 오고 산은 깊기에 잘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에 현태덕이란 사람이 자기 친구가 근처에 산다 하여 그 집으로 김삿갓을 데리고 갔다. 그곳은 한없이 초라한 움막이였으나 숯을 구어 살아가는 그 친구의 마음은 신선이 따로 없었다.

 

저녁의 쌀이 없어 감자로 끼니를 때우고 밤에 세 명이 잠을 자려 하니 도대체 방이 좁아 도저히 다리를 펼 수 없고 몸을 되돌리지도 못하겠는게 아닌가. 도무지 삿갓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편해하나 두 사람은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이 들어 버렸다. 삿갓은 아예 잠자기를 포기하고 뒷산에 올라 달구경을 하고 있는데 새벽이 가까워 오자 문득 배가 고파왔다. 그리하여 달을 우러르며 다음과 같은 지를 지었다.

 

天高萬里不擧頭(천고만리불거두)

地闊千里不宣足(지활천리불선족)

하늘은 만리로 높고 아득하건만 머리를 둘 곳 없고, 땅은 천리 넓건만 다리 를 쉴곳 없네.

 

五更登樓非翫月(오갱등누비완월)

三朝辟穀不求仙(삼조벽곡불구선)

깊은 밤 누각에 오른 것은 달경하려는 것 아니고, 삼일을 굶은 것도 신선되려 함 아닐세.

 

하늘은 만 리로 높건만 머리를 들 수 없고, 땅은 천 리로 넓건만 다리를 펼 수 없네. 오밤중에 다락에 오름은 달구경 아니오, 사흘을 굶은 것은 신선이 되려 함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 내 마음이 행복을 아는 마음이라면 그 상황이 불행의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유롭게 살아가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화가 나면 한발 물러서서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화가 나면 화를 낸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화를 냈을때는 반드시 후회가 따른다.



見(볼 견, 뵈올 현)은 ❶회의문자로 见(견)은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는 사람을, 目(목)은 눈을 뜻한다. 見(견)은 눈의 기능으로, 보는 일을 말하는데, 이쪽으로 부터 보는 것을 視(시), 저쪽으로 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을 見(견)으로 나누어 썼다. ❷회의문자로 見자는 ‘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見자는 目(눈 목)자와 儿(어진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다. 見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사람 인)자에 큰 눈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눈을 강조해 그린 것으로 ‘보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한자에서는 目자가 주로 ‘눈’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다면 見자는 ‘보다’와 같이 보는 행위에 주로 쓰이고 있으니 차이점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또 예전에는 見자가 現(나타날 현)자 대신 쓰인 적이 있기에 ‘나타나다’나 ‘보이다’와 같은 의미도 있다. 이때는 ‘현’으로 발음한다. 다만 見자의 기본 의미는 ‘보다’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見(견, 현)은 ①보다 ②보이다 ③당하다 ④견해 그리고 ⓐ뵙다(현) ⓑ나타나다(현) ⓒ드러나다(현) ⓓ보이다(현) ⓔ소개하다(현) ⓕ만나다(현) ⓖ현재(현) ⓗ지금(현)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뵐 근(覲), 볼 관(觀), 뵐 알(謁), 나타날 현(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은(隱)이다. 용례로는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남에게 거절을 당함을 견각(見却),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사물을 관찰하는 입장을 견지(見地), 남에게 미움을 받음을 견오(見忤), 얼른 스쳐 봄을 별견(瞥見), 분실이나 유실을 당함을 견실(見失), 책망을 당함을 견책(見責), 마음에 생각하는 점을 의견(意見),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찾아냄을 발견(發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편견(偏見), 서로 다른 의견을 이견(異見), 남의 일에 간섭함을 참견(參見), 사물을 식별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식견(識見), 무슨 일이 있기 전에 미리 짐작함을 예견(豫見), 보고 헤아리는 생각이나 올바로 인식하거나 올바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견(所見), 신분이 높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손님을 만남을 접견(接見), 지체 높은 사람을 찾아 뵙는 일을 알현(謁見), 임금께 나아가 뵈옴을 진현(進見),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뜻에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 또는 대의를 위해서 부귀영화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견금여석(見金如石),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운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견요어장(見堯於墻),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견물생심(見物生心),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친다는 견위치명(見危致命) 등에 쓰인다.

物(물건 물)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소 우(牛=牜; 소)部와 음(音)을 나타내며勿(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만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소(牛)를 지목하여 만물을 뜻한다. 勿(물)은 旗(기), 천자(天子)나 대장의 기는 아니고 보통 무사(武士)가 세우는 색이 섞여 있는 것, 여기에서는 색이 섞여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物(물)은 얼룩소, 나중에 여러 가지 물건이란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옛 모양은 흙을 갈아 엎고 있는 쟁기의 모양과 牛(우; 소)로 이루어져 밭을 가는 소를 나타내었다. 나중에 모양이 닮은 勿(물)이란 자형(字形)을 쓰게 된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物자는 ‘물건’이나 ‘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物자는 牛(소 우)자와 勿(말 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勿자는 무언가를 칼로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物자는 소를 도축하여 상품화시키는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에는 다양한 색이 뒤섞여있던 ‘얼룩소’를 物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후에 다양한 가축의 종류나 등급과 관계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제품’이나 ‘상품’, ‘만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物(물)은 (1)넓은 뜻으로는, 단순한 사고(思考)의 대상이건,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건을 불문하고, 일반으로 어떠한 존재, 어떤 대상 또는 어떤 판단의 주어(主語)가 되는 일체의 것 (2)좁은 뜻으로는,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감각에 의해서 지각(知覺)할 수 있는 사물(事物), 시간(時間), 공간(空間) 가운데 있는 물체적, 물질적인 것 (3)사람이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구체적 물건. 민법 상, 유체물(有體物) 및 전기(電氣) 그 밖에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自然力). 사권(私權)의 객체(客體)가 될 수 있는 것 등의 뜻으로 ①물건(物件) ②만물(萬物) ③사물(事物) ④일, 사무(事務) ⑤재물(財物) ⑥종류(種類) ⑦색깔 ⑧기(旗) ⑨활 쏘는 자리 ⑩얼룩소 ⑪사람 ⑫보다 ⑬살피다, 변별하다 ⑭헤아리다, 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건(件), 물건 품(品), 몸 신(身), 몸 궁(躬), 몸 구(軀), 몸 체(體)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내거나 가공하여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는 들고 다닐 만한 크기의 일정한 형태를 가진 대상을 물건(物件), 물건의 본바탕으로 재산이나 재물을 물질(物質), 물건 값을 물가(物價), 쓸 만하고 값 있는 물건을 물품(物品), 물건의 형체를 물체(物體), 물건의 분량을 물량(物量), 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하는 데 쓰는 여러 가지 재료를 물자(物資), 어떤 사람의 좋지 않은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논란하는 상태를 물의(物議), 마음과 형체가 구별없이 하나로 일치된 상태를 물심일여(物心一如),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물외한인(物外閑人), 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는 물유본말(物有本末), 생물이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긴다는 물부충생(物腐蟲生),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의 양면을 물심양면(物心兩面),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물아일체(物我一體) 등에 쓰인다.

生(날 생)은 ❶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生(생)은 (1)생명(生命) (2)삶 (3)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흔히 편지에 씀 등의 뜻으로 ①나다 ②낳다 ③살다 ④기르다 ⑤서투르다 ⑥싱싱하다 ⑦만들다 ⑧백성(百姓) ⑨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⑩자기의 겸칭 ⑪사람 ⑫날(익지 않음) ⑬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 어느 곳 또는 세상에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것을 발생(發生),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 사람이 태어남을 탄생(誕生),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일단 못 쓰게 된 것을 손질하여 다시 쓰게 됨 또는 죄를 뉘우치고 마음이 새로워짐을 갱생(更生), 다시 살아나는 것을 회생(回生),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날것과 찬 것을 생랭지물(生冷之物),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생구불망(生口不網),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생기사귀(生寄死歸),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생사고락(生死苦樂),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생살여탈(生殺與奪),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등에 쓰인다.

心(마음 심)은 ❶상형문자로 忄(심)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고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다. 말로서도 心(심)은 身(신; 몸)이나 神(신; 정신)과 관계가 깊다. 부수로 쓸 때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로 쓰이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心자는 ‘마음’이나 ‘생각’,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心자는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心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위치에 따라 忄자나 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心(심)은 (1)종기(腫氣) 구멍이나 수술한 구멍에 집어넣는 약을 바른 종이나 가제 조각 (2)나무 줄기 한 복판에 있는 연한 부분 (3)무, 배추 따위의 뿌리 속에 박인 질긴 부분 (4)양복(洋服)의 어깨나 깃 따위를 빳빳하게 하려고 받쳐 놓는 헝겊(천) (5)초의 심지 (6)팥죽에 섞인 새알심 (7)촉심(燭心) (8)심성(心星) (9)연필 따위의 한복판에 들어 있는 빛깔을 내는 부분 (10)어떤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마음, 뜻, 의지(意志) ②생각 ③염통, 심장(心臟) ④가슴 ⑤근본(根本), 본성(本性) ⑥가운데, 중앙(中央), 중심(中心) ⑦도(道)의 본원(本源) ⑧꽃술, 꽃수염 ⑨별자리의 이름 ⑩진수(眞修: 보살이 행하는 관법(觀法) 수행) ⑪고갱이, 알맹이 ⑫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물(物), 몸 신(身), 몸 체(體)이다. 용례로는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심정(心情), 마음의 상태를 심경(心境), 마음 속을 심중(心中),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심취(心醉), 마음에 관한 것을 심적(心的), 마음의 속을 심리(心裏), 가슴과 배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를 심성(心性), 마음의 본바탕을 심지(心地),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심심상인(心心相印),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을 심기일전(心機一轉), 충심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심열성복(心悅誠服),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을 심광체반(心廣體胖),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지인(心腹之人) 등에 쓰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