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뜻으로, 과거 전통과 역사가 바탕이 된 후에 새로운 지식이 습득되어야 제대로 된 앎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溫 : 따뜻할 온(氵/10)
故 : 연고 고(攵/5)
知 : 알지 지(矢/3)
新 : 새 신(斤/9)
(유의어)
박고지금(博古知今)
법고창신(法古創新)
부답복철(不踏覆轍)
이고위감(以古爲鑑)
전거가감(前車可鑑)
전거복후거계(前車覆後車戒)
전복후계(前覆後戒)
학우고훈(學于古訓)
출전 :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
논어(論語)를 읽지 않은 사람도 들은 풍월로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교단에서 강조하거나 학급에서 급훈으로 자주 등장했던 말이다.
溫故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지신 가이위사의.
옛것을 익혀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면 가히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가 원래 글이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온다.
지나간 과거로부터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되, 옛것이나 지금 것이나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남을 가르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과거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를 알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닥쳐올 미래의 사태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성어와 같은 문구는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먼저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저작이며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中庸)에 있다.
여기서는 온고(溫故)를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 정현(鄭玄)이 주석하며 고기를 뜨거운 물속에 넣어 따뜻하게 하듯이 옛것을 가슴 속에 품고 거듭 반복해서 익히는 것이라 했다. 주자(朱子)는 끌어와서 탐구하다는 뜻으로 풀고 있다.
반면 예기(禮記)에는 피상적인 학문으로는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며 그런 것을 기문지학(記問之學)이라 했다.
유가(儒家)가 중국의 다양한 사상 속에서도 우선적으로 존중받는 것은 공자의 후예들이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 정신을 이어받아 살렸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면서 역사를 중시하고 전통문화를 지켜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워지는 일에 관해서는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고, 날이면 날마다 새로워지며,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荀日新日日新 又日新)'는 대학(大學)에서의 표현 이상 강조한 것이 없다.
옛것을 낡았다고 무조건 배척할 수 있겠는가.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을 객관화하고 취사선택(取捨選擇)하여 새로운 문화 창조에 힘써야 한다.
눈부실 정도로 세계가 바뀌어 가는데 그 변화에 적응하고 응용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새 사실을 깨달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가르침에만 해당되진 않는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알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새 것' 타령을 한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냐?'라고 다그치고, 방송에서도 '새 아이템이 없느냐?'라고 달달 볶는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새것을 바라고 찾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근대에만 해도 '하늘 아래에 새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에 따라 새것은 기이하고 이상하여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다른 것을 찾는 호기심(好奇心)은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위험한 마음으로 간주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사람이 남과 다른 개성을 추구하면서 새것이 사람의 정체성이자 사물의 특성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새것이 화려하게 각광을 받게 되자, 지금까지 있었던 것은 금방 아무런 가치가 없고 낡은 헌것으로 여겨졌다.
이전에 있었던 것을 무시하거나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과연 새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공자는 몸을 앞으로 향하면서도 뒤를 둘러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과거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출발점이지만 송두리째 부정해야 할 허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1. 논어 위정(爲政)편 11장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공자 가라사대,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가히 써 스승이 되느니라.
溫 : 온(溫)은 데우다, 익히다, 따뜻하다, 원만하다의 뜻이다.
故 : 고(故)는 까닭, 이유, 옛, 옛날, 원래 등의 뜻으로 쓰인다. 고(古)가 단순히 시간상으로 오래된 것을 나타낸다면 고(故)는 까닭, 이유를 지닌 이야기를 나타낸다.
可以 : 가이(可以)는 능(能)과 함께 ~을 할 수 있다는 가능을 나타내는 보조동사이다. 영어의 can에 해당된다.
爲 : 위(爲)는 가장 일반적으로 하다의 뜻으로 돕다, 이루다 등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 되다의 뜻으로 쓰인다.
矣 : 의(矣)는 뜻이 없고 종결형 어미로 쓰인다. 보통 주관적 의사를 나타내는 평서문 등에 쓰인다.
溫 尋繹也.
온은 (이치를) 찾아내고 연역함이라.
故者 舊所聞.
고라는 것은 옛날에 들은 바요,
新者 今所得.
신이라는 것은 이제 얻은 것이라.
言學能時習舊聞 而每有新得 則所學 在我而其應 不窮.
학문은 능히 때로 예전에 들은 것을 익히고 매양 새로 얻음이 있으면 학문하는 바가 내게 있고 그 응함이 궁하지 않느니라.
故 可以爲人師 若夫記問之學 則無得於心 而所知有限.
그러므로 가히 써 남의 스승이 되거니와 만약에 무릇 기록하고 기록하는 학문이면 마음에 얻어짐이 없어 아는 바가 한도가 있느니라.
故 學記 譏其不足以爲人師 正如此意 互相發也.
그러므로 학기에 그 족히 써 남의 스승이 되지 못한다라고 기록한다 했으니 바로 이 뜻과 더불어 서로서로 발명되니라.
2. 과거의 두 얼굴
공자는 과거의 무게로부터 꽤나 자유로운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과거의 무게에 눌려 한 번 정해진 예를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합리적 관점에 따라 과거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사람은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간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과거는 현재를 낳은 어머니로서 현재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때 과거가 없다는 것은 현재가 그만큼 빈약하다는 뜻이 된다.
기존의 방식이 현실에 유효하지 않게 되면, 사람은 시간을 과거와 현재로 구분하게 된다. 과거에 통용되던 방식은 더 이상 현재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과거는 현재의 문제를 푸는 자원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문제의 자원은 긍정의 대상이 되지만 그 원인은 부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과거의 두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공자와 유교가 과거의 가치를 무조건 현재와 미래에 되살리려고 하는 복고주의(復古主義)로 보는 경향이 많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공자가 과거를 현재와 미래를 여는 자원으로 본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가 그 자체로서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찾을 수 있는 자원의 보고로 간주되고 있다. 즉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실례로 자한편 3장을 찾을 수 있다.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
삼베로 만든 관(모자)이 예에 맞다. 요즘 명주로 만든다. 요즘이 더 검소하므로 대중으로 따라가겠다.
拜下, 禮也. 今拜乎上, 泰也.
당 아래에서 인사하는게 예에 맞다. 요즘 당 위에서 인사를 한다.
雖違衆, 吾從下.
요즘이 거만하므로 대중과 다르더라도 나는 당 아래에서 인사하겠다.
공자 당시 관은 사람의 복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공자는 '검소하다'는 기준에서 관의 재료를 바꾸는 당시의 풍속에 동의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방문했을 때 인사하는 자리가 중요하다. 같은 인사라도 당 위에서 하느냐 당 아래에서 하느냐에 따라 호의를 나타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당 위에 인사했지만 공자는 당 아래에서 하는 인사법을 고수하려고 했다.
인사가 기본적으로 호의를 나타내는 절차인 만큼 상대방에게 '오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보다 '반긴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공자는 과거의 무게로부터 꽤나 자유로운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과거의 무게에 눌려 한 번 정해진 예를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합리적 관점에 따라 과거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공자와 유교는 시간으로 보면 분명 과거의 것이다. 그것의 가치를 덮어놓고 긍정하거나 부정한다면, 그 자체는 결코 바림직한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가치와 이념에서 미래의 사상 자원을 길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문제를 푸는 자원과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과거의 두 얼굴을 잘 갈라내려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3. 모든 것은 유교 탓이다
정도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선을 유교 국가로 만드는 기틀을 고안했다. 훗날 경국대전을 집필하는 밑그림이 되었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조선을 유교 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조선은 일본, 청과 잇달아 전쟁을 벌이며 망국의 위기에 이르렀지만 국가 개조를 통해 18세기에 영조와 정조의 치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조선과 대한제국이 서세동점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다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망국의 원인을 유교에서 찾았다. 그 이후에도 한국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원인을 유교로 돌렸다.
예컨대 정경유착으로 인해 대형 부패와 비리 사건이 터질 때도 유교가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또 최근 세월호 참사에서 많은 사망자가 생긴 원인을 유교로 보는 주장이 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현상의 원인을 유교로 돌리는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
한 사회의 부정적인 현상과 사건이 발생했었을 때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불행한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엉뚱한 원인을 찾아놓고 실컷 분풀이를 한다면, 감정의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도 이전의 실패가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념과 가치는 사람이 판단, 선택 그리고 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념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교가 조선과 대한제국의 망국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기존 이념과 가치를 충실하게 지킬 수도 있지만 새로운 상황이 나타나면 그에 따라 새로운 이념과 가치를 세울 수 있다.
새로운 이념을 세우는 것은 전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기존 이념의 노예가 되어 새로운 변화를 완강하게 거부할 수도 있지만 기존 가치를 부정하고 새 시대를 창조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유교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조선과 대한제국을 뛰어넘어 민주공화국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변화는 우리가 19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살려서 20세기 중반에 선택한 결과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일어난 사회적 부정과 비리 그리고 중대한 사건 사고의 원인을 과거의 이념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정확한 원인과 결과의 규명이라고 할 수 없다.
과거의 이념, 즉 유교가 오늘날 문제의 원인이라면 우리는 모두 이념의 노예라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히려 정책적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의 잘잘못을 가리지 못한 구체적인 사람이야말로 불행한 사건과 정책적 파국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교가 모든 원인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실책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지 못하고 엉뚱한 대상으로 떠넘기는 희생양 찾기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희생양 놀이는 사건과 실책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위안을 안겨줄 수 있겠지만, 원인을 잘 밝혀서 제대로 된 대책을 찾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4. 역사 허무주의를 피하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온(溫)은 기존에 있는 것을 데우는 것이다.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새 밥과 같이 먹기 좋은 밥이 되듯, 사고 활동에 견주면 온(溫)은 기존에 있던 생각을 화학적으로 재결합하여 달아오르게 만드는 작업이다.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펴내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국가 부도 사태를 당해서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김경일 교수의 책이 나오자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통이 모두 유교에서 왔다는 주장이 널리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가부장 문화를 심화시켜서 여성을 억압하고 기성의 권위를 강조하여 자유로운 상상력을 죽이고 중화의식을 내면화시켜서 속국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공자와 유교에서 찾았다.
이를 '공자 바이러스'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판단에 따르니 공자는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모든 원인의 원인이니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경일 교수의 책은 부분적으로 신선한 제안을 담고 있지만 그 도발적인 주장으로 인해 제안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특히 모든 부정적 현상의 원인을 공자에게 돌리는 단순한 환원론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다.
일시적으로 거대한 공자를 공격하는 시원한 느낌을 느낄 수 있지만 금방 잘못된 공격으로 인해 치명적인 반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날 공자는 조선시대에 누렸던 성인(聖人)과 만인의 스승이라는 절대적이며 독존적인 지위를 누릴 수 없다. 그의 말이 현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자와 유교로 인해 일구어온 역사와 그 자취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허무주의자의 자세를 취해서는 안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온(溫)은 기존에 있는 것을 데우는 것이다. 일상적인 예를 들자면 집에 돌아와 밥솥에는 밥이 없고 냉장고에 찬밥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새 밥과 같이 먹기 좋은 밥이 된다.
사고 활동에 견주면 온(溫)은 기존에 있던 생각을 화학적으로 재결합하여 달아오르게 만드는 작업이다.
기존의 사고 패턴에 따르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들을 새롭게 조합하고 조작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 없던 아이디어가 툭 튀어나온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자신에게 있던 것을 전부 내다버리거나 쳐다보지 않고 남의 것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사유의 조작을 통해 이미 나에게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재조합하여 사고의 새 길을 여는 과정이다.
요컨대 온고지신은 나를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낯선 방식으로 만나는 대화라고 할 수 있다.
▶️ 溫(따뜻할 온/쌓을 온)은 ❶형성문자로 温(온)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온(접시에 먹을 것을 담은 모양, 따뜻함)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따뜻한 물(水)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따뜻하다를 뜻한다. 물이 따뜻하다, 따뜻하다의 뜻으로, 나중에 囚(수; 죄수)와 皿(명; 접시)의 모양에서 죄수에게 먹을 것을 주듯 하는 따뜻한 마음이 글자의 기원(起源)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온수(溫水)라는 강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설(說)도 있다. ❷회의문자로 溫자는 '따뜻하다'나 '데우다', '온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溫자는 水(물 수)자와 囚(가둘 수)자, 皿(그릇 명)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溫자의 갑골문을 보면 수증기가 올라오는 큰 대야에서 몸을 씻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후에 글자가 바뀌면서 수증기는 水자가 되었고 대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囚자와 皿자로 표현되었다. 그러니 溫자는 글자의 조합만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그래서 溫(온)은 성(姓)의 하나로 ①따뜻하다 ②따뜻하게 하다 ③데우다 ④부드럽다 ⑤온화하다, 온순하다 ⑥단조롭다 ⑦훌륭하지 못하다 ⑧익히다, 학습하다 ⑨복습하다 ⑩족하다, 넉넉하다 ⑪쌓다, 축적하다 ⑫함유하다 ⑬온도(溫度) ⑭온천(溫泉) ⑮샘(=泉)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더울 서(暑), 따뜻할 난(暖), 불꽃 염(炎), 더울 난(煖), 더울 열(熱), 빚을 온(醞),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찰 랭(冷), 서늘할 량(涼)이다. 용례로는 덥고 찬 정도 또는 온도계가 나타내는 도수를 온도(溫度), 날씨가 따뜻함을 온난(溫暖), 난방 장치를 한 방을 온실(溫室), 인공적으로 다습게 해서 식물을 기르는 설비를 온상(溫床), 날씨가 맑고 따뜻하며 바람이 부드러움을 온화(溫和), 따뜻한 기운을 온기(溫氣), 온화하고 숫됨을 온순(溫純), 열대와 한대 사이의 남북 두 기후대를 온대(溫帶), 더운 물을 온수(溫水), 배운 것을 다시 익힘을 온습(溫習), 온화하고 유순함을 온유(溫柔), 옛 것을 익힘을 온고(溫故), 온화한 얼굴빛을 온용(溫容), 따뜻한 정이나 마음을 온정(溫情),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함을 온후(溫厚), 대기의 온도를 기온(氣溫),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온도를 체온(體溫), 높은 온도를 고온(高溫), 따뜻함과 차가움을 냉온(冷溫), 언제나 일정한 온도를 상온(常溫), 일정한 온도를 그대로 지킴을 보온(保溫), 물의 온도를 수온(水溫), 늘 일정한 온도를 항온(恒溫), 지면이나 또는 땅속의 온도를 지온(地溫),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을 일컫는 말을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살피고 생각하여 그리는 정을 일컫는 말을 온고지정(溫故之情), 부드럽고 온화하며 성실한 인품이나 시를 짓는 데 기묘하기 보다 마음에서 우러난 정취가 있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온유돈후(溫柔敦厚), 성격이 온화하고 착실함을 온후독실(溫厚篤實), 따뜻한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뜻으로 풍족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온의미반(溫衣美飯),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밤에는 잠자리를 정하고 아침에는 안부를 살핀다는 뜻으로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을 온정정성(溫凊定省),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씨를 이르는 말을 온언순사(溫言順辭),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한다는 뜻으로 자식된 자로서 부모를 잘 섬기어 효도함을 이르는 말을 동온하정(冬溫夏凊),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하다는 말을 삼한사온(三寒四溫),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이부자리를 보살펴 안부를 묻고 따뜻하고 서늘하게 한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을 정성온청(定省溫淸), 열대 해안 지대의 기후 특성으로 기온이 높고 매우 습함을 일컫는 말을 고온다습(高溫多濕), 일찍 일어나서 추우면 덥게 더우면 서늘케 하는 것이 부모 섬기는 절차임을 일컫는 말을 숙흥온청(夙興溫凊) 등에 쓰인다.
▶️ 故(연고 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古(고; 오래 되다)로 이루어졌다. 옛날로부터의 습관에 따라 일을 함을 나타낸다. 古(고)와 마찬가지로 오래 되었다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故자는 ‘옛날’이나 ‘옛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故자는 古(옛 고)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古자는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전쟁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에서 ‘옛날’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攵자가 더해진 故자는 본래 어떠한 일의 ‘원인’이나 ‘이유’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게 된 ‘이유’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이라는 뜻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古자나 故자가 큰 구분 없이 쓰일 때가 많다. 하지만 古자는 주로 ‘오래되다’를 뜻하지만 故자는 ‘옛날’이나 ‘옛일’을 뜻할 때가 많다. 그래서 故(고)는 (1)옛날의 (2)죽은 사람의 성명(姓名)이나 별호 위에 쓰이어 이미 옛 사람이 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된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연고(緣故), 사유(事由) ②까닭, 이유(理由) ③도리(道理), 사리(事理) ④친숙한 벗, 잘 아는 교우 ⑤관례(慣例), 관습(慣習), 선례(先例) ⑥사건(事件), 고의(故意)로 한 일, 일부러 한 일 ⑦예, 이미 지나간 때 ⑧옛날, 옛일 ⑨원래(原來), 본래(本來) ⑩죽은 사람 ⑪나이 많은 사람 ⑫거짓, 꾸민 계획(計劃) ⑬끝 ⑭훈고(訓詁), 주해(註解) ⑮고로, 까닭에 ⑯그러므로 ⑰일부러 ⑱반드시 ⑲참으로, 확실히 ⑳처음부터, 옛날부터 ㉑옛, 예전의, 옛날의 ㉒일부러, 짐짓, 고의로 ㉓써 ㉔오래되다 ㉕죽다 ㉖시키다, 하게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예로부터 전해 오는 유서 깊은 일을 고사(故事), 오래도록 사귄 벗을 고우(故友),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옛 집을 고거(故居), 사고로 말미암아 잃음을 고실(故失), 일부러나 억지로 하려는 뜻을 고의(故意), 전에 살던 땅을 고지(故址), 옛날 모습을 고태(故態), 고토의 폐허를 고허(故墟), 인습에 젖은 늙은이를 고로(故老), 도둑이 훔쳐 낸 물건인 줄 알면서 사는 것을 고매(故買), 고의로 저지른 죄를 고범(故犯), 고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고살(故殺), 옛날부터 내려오는 습관을 고습(故習), 일부러 어김을 고위(故違), 일부러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고투(故鬪),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을 고향(故鄕), 평시에 있지 아니하는 뜻밖의 사건을 사고(事故), 어떤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연고(緣故), 죽음의 높임말을 작고(作故), 사고가 있음을 유고(有故), 탈이 없이 잘 있음을 무고(無故), 옛 것을 익힘을 온고(溫故), 재변이나 사고를 변고(變故), 부모의 상사를 당함을 당고(當故), 병으로 말미암은 사고를 병고(病故), 아기를 낳는 일을 산고(産故), 옛날 있었던 일에서 만들어진 어구를 고사성어(故事成語),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사물에 관한 유래나 역사라는 말을 고사내력(故事來歷), 일부러 말썽이 될 일을 일으킨다는 말을 고심사단(故尋事端), 미리 뜻을 가지고 마음을 쓴다는 말을 고의주의(故意注意), 사귄 지 오랜 친구의 자식이라는 말을 고인지자(故人之子),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말을 온고지신(溫故知新),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옛 친구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내며 자란 친구를 이르는 말을 죽마고우(竹馬故友), 오래 살던 타향을 고향에 견주어 이르는 말을 병주고향(竝州故鄕), 사귀는 대상은 오래된 사이일수록 좋다는 말을 인막약고(人莫若故), 아무 사고가 없이 나올 자리에 나오지 아니한다는 말을 무고부진(無故不進) 등에 쓰인다.
▶️ 知(알 지)는 ❶회의문자로 口(구; 말)와 矢(시; 화살)의 합자(合字)이다. 화살이 활에서 나가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말한다. 많이 알고 있으면 화살(矢)처럼 말(口)이 빨리 나간다는 뜻을 합(合)하여 알다를 뜻한다. 또 화살이 꿰뚫듯이 마음속에 확실히 결정한 일이나, 말은 마음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알다, 알리다, 지식 등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知자는 '알다'나 '나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知자는 矢(화살 시)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知자는 소전에서야 등장한 글자로 금문에서는 智(지혜 지)자가 '알다'나 '지혜'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슬기로운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智자는 '지혜'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知자는 '알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智자는 아는 것이 많아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말을 빠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知자도 그러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知(지)는 (1)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정신의 작용하는 힘. 깨닫는 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알다 ②알리다, 알게 하다 ③나타내다, 드러내다 ④맡다, 주재하다 ⑤주관하다 ⑥대접하다 ⑦사귀다 ⑧병이 낫다 ⑨사귐 ⑩친한 친구 ⑪나를 알아주는 사람 ⑫짝, 배우자(配偶者) ⑬대접(待接), 대우(待遇) ⑭슬기, 지혜(智慧) ⑮지식(知識), 앎 ⑯지사(知事) ⑰어조사(語助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알 인(認), 살펴 알 량/양(諒), 알 식(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지식(知識),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혜(知慧),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지혜로운 성품을 지성(知性), 지식이 있는 것 또는 지식에 관한 것을 지적(知的), 알아서 깨달음 또는 그 능력을 지각(知覺), 지식과 도덕을 지덕(知德), 아는 사람 또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봄을 지인(知人),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은혜를 앎을 지은(知恩), 지식이 많고 사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자(知者),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을 지족(知足), 자기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앎을 지지(知止),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 여러 사람이 어떤 사실을 널리 아는 것을 주지(周知),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붕지(朋知), 기별하여 알림을 통지(通知), 인정하여 앎을 인지(認知), 아는 것이 없음을 무지(無知), 고하여 알림을 고지(告知), 더듬어 살펴 알아냄을 탐지(探知),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거나 알게 함을 공지(公知), 서로 잘 알고 친근하게 지내는 사람을 친지(親知),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를 일컫는 말을 지기지우(知己之友),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한다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등에 쓰인다.
▶️ 新(새 신)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날 근(斤; 도끼)部와 木(목)과, 음(音)을 나타내는 辛(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辛(신; 바늘)과 木(목; 나무)으로 이루어진 진(榛; 개암나무, 잡목숲)의 옛 글자에 斤(근; 나무를 베는 도끼)을 더한 글자이다. 나무를 베어 땔나무를 하는 일을 말한다. 나중에 나무를 하다가 되었다. 땔나무의 뜻은 초목(草木)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를 더하여 薪(신)이라 쓰고, 新(신)은 베다, 새롭다, 새롭게 하다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新자는 ‘새로운’이나 ‘새롭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新자는 辛(매울 신)자와 木(나무 목)자,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新자를 보면 辛자와 斤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만든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辛자는 발음요소이고 斤자가 ‘자르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木자가 더해지게 되면서 지금의 新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新자는 본래 나무를 잘라 ‘땔감’을 만든다는 뜻이었지만 후에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새로운 물건을 만든다.’라는 뜻이 확대되면서 ‘새로운’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新자가 ‘새롭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艹(풀 초)자를 더한 薪(섶나무 신)자가 ‘땔감’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新(신)은 (1)어떠한 명사(名詞) 뒤에 붙이어 새로운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중국(中國) 나라 이름의 하나. 왕 망(王莽)이 전한(前漢)을 쓰러뜨리고 세운 나라. 주례(周禮)에 따라 복고적인 개혁(改革)을 했으나, 적미(赤眉)의 난으로 망(亡)하여 광무제(光武帝)의 후한(後漢)으로 바뀜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새, 새로운 ②새로, 새롭게, 새롭게 다시 ③처음, 처음으로 ④새로움, 새것, 새로운 일 ⑤새해, 신년 ⑥새롭개 안 사람 ⑦새로 개간(開墾)한 땅 ⑧나라의 이름 ⑨새로워지다, 개선되다 ⑩새롭게 하다, 새롭게 고치다 ⑪친하다, 친하게 지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옛 고(古), 옛 구(舊)이다. 용례로는 새로운 세계를 신세계(新世界), 예술계나 체육계나 어떤 사회에 새로 등장한 신진의 사람을 신인(新人), 관직 같은 데에 새로 임명됨을 신임(新任), 새로 지어 만듦을 신작(新作), 새로 들어옴을 신입(新入), 출판물을 새로 인쇄하여 내놓음을 신간(新刊), 새로운 물품을 신품(新品), 새로운 형을 신형(新型), 새롭고 기이함을 신기(新奇), 새로운 소식이나 비판을 신속하게 보도하는 정기간행물을 신문(新聞), 완전히 새롭게 어떤 일을 하는 일을 신규(新規), 새롭고 산뜻함 또는 채소나 생선 따위가 싱싱함을 신선(新鮮), 새로 설치함을 신설(新設), 새로 건축함을 신축(新築), 늦은 봄이나 초여름의 초목에 돋은 새 잎의 푸른 빛을 신록(新綠), 갓 결혼한 남자 또는 결혼하여 새서방이 될 남자를 신랑(新郞), 갓 결혼한 색시 또는 결혼하여 새색시가 될 여자를 신부(新婦), 일체의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서 새롭게 함을 혁신(革新), 묵은 것을 없애고 새롭게 함을 쇄신(刷新), 모든 것이 개혁되어 새롭게 됨 또는 묵은 제도를 아주 새롭게 고침을 유신(維新), 취향이 매우 새로움을 참신(斬新), 옛 것을 고쳐 새롭게 함 또는 종전의 기록을 깨뜨림을 경신(更新), 가장 새로움을 최신(最新), 묵은 것을 새롭게 고침을 개신(改新),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새로운 것을 맞아 들임을 영신(迎新), 아주 새로워짐을 일신(一新),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대신 생기거나 들어서는 일을 이르는 말을 신진대사(新陳代謝), 새로 정이 들어 얼마 되지 아니할 때를 이르는 말을 신정지초(新情之初), 새 것과 헌 것이 교대한다는 말을 신구교대(新舊交代), 새 것이 들어오고 묵은 것이 나간다는 말을 신입구출(新入舊出), 새로 두각을 나타낸 신인으로서 의기가 날카롭다는 말을 신진기예(新進氣銳), 땔감을 동나서 불이 꺼진다는 말을 신진화멸(新盡火滅), 새봄 좋은 명절이라는 말을 신춘가절(新春佳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