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경지훈(一經之訓)
경서 한 권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자식을 위하여 황금을 남기느니보다 경서(經書) 한 권을 가르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이다.
一 : 한 일(一/0)
經 : 지날 경(糸/7)
之 : 갈 지(丿/3)
訓 : 가르칠 훈(言/3)
출전 : 한서(漢書) 卷073 위현전(韋賢傳)
부모는 모두 자기 아들딸 잘 되기를 바란다. 무엇을 물려줘야 고생을 않고 자신들보다 잘 살 수 있을까 고심한다.
큰 재산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많이 넘겨 주려해도 '부자 삼대 못 간다'는 속담이 가리키듯 멀리 못 가 걱정이다.
그래서 좋다는 것은 온갖 것을 다 가르치려 한다. 소질이 있든 없든, 자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가리지 않는다.
이럴 때 적합한 성어가 자손을 잘 가르쳐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지혜롭게 살게 하는 길이라고 한 경서 한 권(一經)의 가르침(之訓)이다.
한서(漢書)는 후한 초기 역사가 반고(班固)가 20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여기 위현전(韋賢傳)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위현(韋賢)은 전한(前漢) 때의 학자로 시경(詩經)과 상서(尙書)에 밝아 추로지방의 대유(鄒魯大儒)로 불렸다. 추로(鄒魯)는 맹자(孟子)와 공자(孔子)의 나라로 공맹(孔孟)을 함께 말할 때 쓴다.
위현은 무제(武帝) 때 경학박사에 임명되고 소제(昭帝)에 강의했다. 소제가 후사를 보지 못하고 죽자 대장군 곽광(霍光) 등과 함께 선제(宣帝)를 옹립했고, 정승에 올라 80세가 되는 고령까지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위현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잘 가르쳐 모두 이름을 날렸다. 특히 차남(次男)은 동해(東海)의 태수, 사남(四男)은 벼슬이 승상에 이르렀다.
그래서 고향에서는 '황금이 가득한 상자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보다는 경서 한 권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훨씬 낫다(故鄒魯諺曰, 遺子黃金滿籯, 不如一經)'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훈자편(訓子篇)에는 한서에서 한 구절을 더해 '황금이 상자에 가득해도 자식에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준다 해도 재주 한 가지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黃金滿籯, 不如敎子一經, 賜子千金, 不如敎子一藝)'로 되어 있다.
학원가마다 초등생부터 고교생까지 밤늦게 이동해 가며 공부에 열중이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한 달 반 정도 남은 고3생은 막바지 피치를 올리느라 눈코 뜰 새 없을 것이다.
경기 침체로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도 나아갈 길이 좁다. 대학 교육이 나라의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 지 오래다. 미래를 위한 가르침에 학부모에게만 맡기지 말고 교육당국을 비롯하여 모두들 고민해야 한다.
일경지훈(一經之訓)
경서(經書)한 권의 가르침이라는 말로, 자식(子息)을 위(爲)하여 황금(黃金)을 남기느니보다 경서(經書) 한 권을 가르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자손을 잘 가르쳐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지혜롭게 살게 하는 것이 후손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속담에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한(漢)나라 때 추로(鄒魯) 지방에 위현(韋賢)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위현(韋賢)은 경서에 매우 밝아 추로(鄒魯)지방의 대유(號稱鄒魯大儒)라고 일컬어졌다.
위현(韋賢)이 네 아들을 두었는데, 잘 가르쳐 모두 현달하게 하였는데, 특히 막내아들 현성(玄成)은 명경(明經)으로 벼슬이 승상(丞相)에 이르렀다.
그래서 추로(鄒魯)지방에서는, '황금이 가득한 상자를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경서 한 권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훨씬 낫다(遺子黃金滿籯 不如一經)'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賢四子, 長子方山為高寢令, 早終; 次子弘, 至東海太守; 次子舜, 留魯守墳墓; 少子玄成, 復以明經歷位至丞相. 故鄒魯諺曰: 遺子黃金滿籯, 不如一經.
(漢書/卷073)
'명심보감(明心寶鑑)' 훈자편(訓子篇)에는 한서에서 한 구절을 더해 '황금이 상자에 가득해도 자식에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준다 해도 재주 한 가지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黃金滿籯, 不如敎子一經; 賜子千金, 不如敎子一藝)'로 되어 있다.
일경지훈(一經之訓)
위현(韋賢)은 서한(西漢)시대 사람이다. 기원전 148년에 태어나 기원전 67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지는데 당대 학자이자 또 정치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의 고조부 때 맹자(孟子)가 태어난 추현(鄒縣)으로 이사를 왔으며 위현은 시경(詩經)과 예기(禮記), 상서(尙書) 등에 매우 능통해 '추로 지방의 큰 선비'라는 뜻인 추로대유(鄒魯大儒)라 불렸다.
명성이 자자해지자 궁궐로 부름을 받아 한(漢)나라 소제(昭帝)에게 시경을 가르치는 스승이 됐다.
소제가 사망한 후 그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선제(宣帝) 때엔 관리로서의 지위가 계속 올라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소리를 듣는 승상의 위치까지 오르게 됐다. 그러나 천성이 순박하고 이익을 탐하지 않는 바른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좋은 말을 들었다. 큰 아들 방산(方山)은 지방 현령을 지냈으며, 둘째 아들 홍(弘)은 동해(東海) 태수(太守)에 올랐다.
셋째 아들 순(舜)은 고향에 남아 조상의 묘를 지켰고 막내 아들 현성(玄成)은 훗날 아버지와 같은 승상의 자리에까지 오르니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 재상을 배출하는 진귀한 기록을 남겼다.
중요한 건 단지 이들이 벼슬길에 나섰다는 게 아니라 바른 행실을 견지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향인 추로(鄒魯)의 사람들로부터 '자식에게 황금을 광주리 가득 물려주는 것보다 경서(經書) 한 권을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遺子黃金滿籯 不如傳以一經)'는 말이 나오게 됐다.
여기서 일경지훈(一經之訓)이라는 말이 나왔다. 후손에게 재산을 물려주느니 공부를 제대로 시키는 게 낫다는 이야기다.
돈은 돌고 돈다. 천금(千金)의 재산을 남겨도 자손이 어리석으면 지킬 수 없을뿐더러 자칫 형제간 싸움의 씨앗이 되기 십상이다.
한국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형제의 난(亂) 또한 대개는 유산 상속 다툼이 아니던가. 따라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많은 재산 남기려 애쓰기 보다는 후손이 제대로 된 사람이 되도록 인성 공부에 더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겠다.
'평생 반 줄의 글도 읽지 않았으면서 오직 황금으로만 그 몸의 귀함을 산다(生來不讀半行書 只把黃金買身貴)'고 부(富)의 세습을 비난한 당대(唐代) 시인 이하(李賀)의 말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라는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일거양득(一擧兩得) 등에 쓰인다.
▶️ 經(날 경)은 ❶형성문자로 経(경)의 본자(本字), 经(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실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巠(경; 세로로 곧게 뻗은 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옷감 짜는 날실, 씨실인 緯(위)에 대하여 일컬음이다. ❷회의문자로 經자는 ‘'지나다'나 '다스리다', '날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經자는 糸(가는 실 사)자와 巠(물줄기 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巠자는 '물줄기'라는 뜻이 있지만, 본래는 베틀 사이로 날실이 지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날실이)지나다'는 뜻은 巠자가 먼저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巠자가 '물줄기'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여기에 糸자를 더한 經자가 '지나다'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經자는 후에 비단 실을 엮어 베를 짜듯이 기초를 닦고 일을 해나간다는 의미에서 '다스리다'나 '경영하다'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經(경)은 (1)경서(經書) (2)불경(佛經) (3)주기도문(主祈禱文) (4)판수가 외는 기도문(祈禱文)과 주문(呪文) (5)피륙에 세로 방향으로 놓여 있는 실인 날실 (6)경도(經度) (7)경선(經線) 등의 뜻으로 ①지나다 ②목매다 ③다스리다 ④글 ⑤경서(經書) ⑥날 ⑦날실 ⑧불경(佛經) ⑨길 ⑩법(法) ⑪도리(道理) ⑫지경(地境: 땅의 가장자리, 경계) ⑬경계(境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리/이(厘), 다스릴 발(撥), 다스릴 섭(攝), 다스릴 치(治), 지날 력/역(曆), 경영할 영(營), 다스릴 리/이(理), 지날 과(過),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씨 위(緯)이다. 용례로는 액운이 지나감을 경겁(經劫), 약이나 세균 따위가 입을 통하여 몸 안으로 들어감을 경구(經口), 종교의 교리를 적은 글 또는 성인의 말이나 행실을 적은 글을 경전(經典), 경전과 그것의 해석서를 경전(經傳), 나라를 다스림을 경국(經國), 계속하여 그치거나 변하지 않음을 경상(經常), 두 지점의 정도의 차이를 경차(經差), 경서를 연구하는 학문을 경학(經學), 현재까지 직업 상의 어떤 일을 해 오거나 어떤 직위나 직책을 맡아 온 경험을 경력(經歷), 경전을 실은 문장을 경문(經文), 인류가 재화를 획득하여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활동을 경제(經濟), 계획을 세워 사업을 해 나감을 경영(經營), 주로 회계 및 급여에 관한 사무의 처리를 경리(經理), 시비나 선악이 분간되는 한계를 경계(經界), 거치어 지나감을 경유(經由), 오장 육부에 생긴 병이 몸 거죽에 나타나는 자리를 경락(經絡), 경락에 있어서 침을 놓거나 뜸을 뜨기에 알맞은 곳을 경혈(經穴), 세사를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함을 일컫는 말을 경세제민(經世濟民), 나라 일을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함을 일컫는 말을 경국제세(經國濟世), 세상을 다스려 나갈 만한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세지재(經世之才), 온 세상을 다스림 또는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다스림을 일컫는 말을 경천위지(經天緯地), 학문은 실제 사회에 이바지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유학의 한 주장을 일컫는 말을 경세치용(經世致用), 국사를 경륜할 만한 능력 또는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을 경국지재(經國之才), 그때 그때의 처지나 형편에 따라 알맞은 수단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경달권변(經達權變), 세상을 다스려 나갈 만한 품성을 일컫는 말을 경세도량(經世度量), 스스로 목매어 도랑에 익사한다는 뜻으로 개죽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경어구독(經於溝瀆), 나라를 다스리는 큰 사업을 일컫는 말을 경국대업(經國大業), 경학에 밝고 행실이 착함을 일컫는 말을 경명행수(經明行修), 자식을 위하여 황금을 남기느니보다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을 일경지훈(一經之訓),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訓(가르칠 훈, 길 순)은 ❶형성문자로 训(훈)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川(천, 훈)으로 이루어졌다. 바른말(言)로 가르친다는 뜻을 합(合)하여 '가르치다'를 뜻한다. 순서 있게 가르치다, 알아듣게 이야기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訓자는 ‘가르치다’나 ‘타이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訓자는 言(말씀 언)자와 川(내 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川자는 시냇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그 흐름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니 訓자는 말(言)의 흐름(川)이 자연스럽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치에 맞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나 훈계라도 이치에 어긋나면 안 된다. 그래서 訓자는 마치 물이 흐르듯이 조리 있게 얘기한다는 의미에서 ‘가르치다’나 ‘타이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訓(훈, 순)은 (1)한자(漢字)의 뜻의 새김. 海를 바다 해라고 할 때의 바다를 가르킴.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르치다 ②타이르다 ③이끌다 ④인도(引導)하다 ⑤새기다 ⑥주내다 ⑦가르침 ⑧훈계(訓戒) ⑨모범(模範) ⑩표준(標準) ⑪준칙(準則) 그리고 ⓐ길(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導), 가르칠 교(敎), 가르칠 회(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배울 학(學), 익힐 련(練), 익힐 습(習)이다. 용례로는 무예나 기술 등을 실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되풀이하여 연습하는 일을 훈련(訓鍊), 타일러서 경계함을 훈계(訓戒), 남이 하는 일 특히 바둑이나 장기 따위에서 좋은 수나 방법을 알려 줌을 훈수(訓手), 글방의 스승으로 교사의 낮은 말을 훈장(訓長), 알아듣도록 깨우치고 타이름을 훈고(訓告), 가르치어 훈계하는 말을 훈언(訓言), 한자의 뜻을 새기어 읽음을 훈독(訓讀), 교훈 또는 훈시하는 말을 훈화(訓話), 가르치어 보임을 훈시(訓示), 가르치어 타이름 또는 그런 말을 훈유(訓諭), 가르치고 타일러 착하게 함을 훈화(訓化), 글방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침을 훈학(訓學), 가르쳐 길러냄을 훈육(訓育), 어린아이나 처음 배우는 이에게 글을 가르침을 훈몽(訓蒙), 가르치고 깨우치고 훈계함을 교훈(敎訓), 집안 어른이 그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을 가훈(家訓), 학교의 이념을 간명하게 표현한 표어를 교훈(校訓), 학급의 교육 목표를 나타낸 가르침을 급훈(級訓), 엄격한 가르침이나 교훈을 고훈(苦訓), 한자의 우리말 새김을 자훈(字訓), 뜻글자의 음과 뜻을 음훈(音訓), 자혜로 가르침 또는 자비로운 가르침을 혜훈(惠訓), 뜰에서 가르친다는 뜻으로 아버지가 자식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과정지훈(過庭之訓), 시와 예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아버지에게서 받는 교훈이라는 말을 시례지훈(詩禮之訓),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의방지훈(義方之訓),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산 위에서 그리스도 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에 관하여 행한 설교를 이르는 말을 산상수훈(山上垂訓), 세상을 깨우치고 사람들을 타이름을 이르는 말을 경세훈민(警世訓民), 자식을 위하여 황금을 남기느니보다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을 일경지훈(一經之訓)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