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궐의(多聞闕疑)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되 그 가운데 의심스러운 것은 빼놓으라는 말이다.
多 : 많을 다(夕/3)
聞 : 들을 문(耳/8)
闕 : 대궐 궐(門/10)
疑 : 의심할 의(疋/9)
조선일보사 사옥을 들어서면 입구 벽면 가득 1920년 3월 7일자 창간 기념호의 확대 사진이 붙어 있다. 정중앙에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 창간을 축하하며 써준 글씨가 보인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제외하고, 그 나머지도 살펴서 말한다(多聞闕疑, 愼言其餘)'란 여덟 자다. 쏟아져 들어오는 많은 소식 중에 믿을 만한 것만 가려서, 신중하고 책임 있는 말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본래는 '논어' "위정" 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장(子張)이 물었다. "선생님! 벼슬을 구하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우선 많이 들어라[多聞]. 그중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나거든 그것은 제외해야지[闕疑]. 나머지 믿을 만한 것도 조심조심 살펴서 말해야 한다. 그래야 허물이 적게 된다. 또 많이 보아야 한다[多見]. 그중 위태로운 것은 빼버려야지[闕殆]. 그 나머지도 삼가서 행해야 한다. 후회할 일이 적어질 게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함에 뉘우침이 없으면 녹(祿)은 절로 따라오는 법이지."
제자는 벼슬 얻는 노하우를 물었다. 스승은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않고 뜬금없이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자장이 겉보기에만 힘을 쏟고 내실을 다지는 신실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벼슬에 나가면, 언행을 삼가지 않아 금세 뉘우치고 후회할 일을 만든다. 벼슬에 나가는 것보다 잘 지켜 간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견(聞見)을 넓히려고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닌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간다(讀萬卷書, 行萬里路)'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요즘은 굳이 책을 읽을 일도, 여행을 갈 맛도 없다. 가만 앉아서도 모를 것이 없는 까닭이다. 정보는 넘치다 못해 범람한다.
문제는 정보의 신뢰도다. 이것이 믿을 만한 정보인지, 거짓 정보인지는 아무도 판정해주지 않는다. 정보가 아니라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경쟁력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까닭은 뭐가 의심스러운지, 어떤 것이 위험한지 구분해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다. 체를 쳐서 걸러낸 알짜배기라야 한다. 거름망이 없으면 안전망도 없다. 정보 장악력을 키워 녹을 구하려면 얄팍한 잔재주를 버리고 더 넓고 깊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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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궐의(多聞闕疑)
기자가 기사를 쓰다가 머뭇거리고 경찰이 수사를 하다가 주저하며 학자가 논문을 쓰다가 한참 글을 잇지 못할 때 공통점이 있다. 사실 관계가 확실하지 않으니 하던 일을 계속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확실성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부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주장을 펼치고 결정을 내린다면, 자신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
사실을 찾으려고 하면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두 사람이 사실을 두고 다툴 때 제3자가 이를 판정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자는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기다리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 기다림은 시간 안에 판정을 못하는 무능의 표현이 아니라 엄중한 사실의 권위를 세우는 작업이다.
1. 논어 위정(爲政)편 18장
子張이 學干祿한대 子曰 多聞闕疑요 愼言其餘則寡尤며 多見闕殆요 愼行其餘則寡悔니 言寡尤하며 行寡悔면 祿在其中矣니라.
자장이 봉록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서 의심스러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허물이 적어질 것이다.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한다면 후회가 적어질 것이다.말하는 데 허물이 적고 행하는 데 후회가 적으면 봉록은 바로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干 : 간(干)은 구하다, 찾다의 뜻이다.
• 祿 : 녹(祿)은 녹봉을 뜻하지만 오늘날 쓰이지 않는다. 월급, 연봉 등 급여의 뜻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좋다.
• 闕 : 궐(闕)은 보통 대궐, 문의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 빼다, 빠뜨리다의 타동사로 쓰인다.
• 愼 : 신(愼)은 삼가다, 이루다, 진실로의 뜻이다.
• 餘 : 여(餘)는 남다, 넉넉하다, 여유가 있다, 나머지의 뜻이다.
• 尤 : 우(尤)는 부사로 더욱, 특히의 뜻으로 쓰이고, 명사로 탓, 허물, 재앙의 뜻으로 쓰인다.
• 殆 : 태(殆)는 위태하다. 해치다의 뜻이다.
• 悔 : 회(悔)는 뉘우치다, 안타깝게, 뉘우침의 뜻이다.
• 寡 : 과(寡)는 적다는 뜻이다. 사극에서 왕이 스스로 ‘과인(寡人)’으로 부를 때 쓰이는데, 과인은 덕이 적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자신을 낮추는 뜻이다.
2. 합리적 의심
믿음 체계는 역사와 시대의 조건과 더불어 변화한다. 믿음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믿음은 자신의 전체 중 일부를 의심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의심으로 인해 믿음 체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새로운 믿음 체계가 싹이 틀 수 있다. 이 때 믿음과 의심은 원수가 아니라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과 의심이 같은 하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처럼 사이가 나쁠 것 같다. 의심은 믿음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믿음은 일말의 의심이 일어나지 않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하나의 믿음 체계만이 가능하다면 믿음과 의심의 원수 관계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믿음 체계는 역사와 시대의 조건과 더불어 변화한다. 믿음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믿음은 자신의 전체 중 일부를 의심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의심으로 인해 믿음 체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새로운 믿음 체계가 싹이 틀 수 있는 가능성과 영토를 가지게 된다. 이 때 믿음과 의심은 원수가 아니라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 체계가 확고하게 서 있을 때 믿음은 의심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만큼 자신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믿음 체계가 변화할 때 믿음은 의심을 단호하게 수용하는 만큼 새로운 틀을 갖출 수 있다.
따라서 의심은 불순한 동기와 결합되는 음모와 다르다. 의심은 믿음 체계에 묻어 있을지 모르는 얼룩을 떼어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독단을 파헤치기 위해 근거를 요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합리적 의심’이라 부를 만하다.
합리적 의심은 형사소송법에서 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백한 사실에 바탕을 둔 의심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경찰이 의심할 만한 징후가 있을 때 거리에서 사람의 신분증을 요구하고 자동차를 멈춰 트렁크를 열어 본다.
이 과정도 경찰의 합리적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공자의 합리적 의심은 어떤 주장을 사실로 믿게 할 수 있는 물질적 증거만이 아니라 언어적 논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로써 의심은 상대의 파멸을 의도하는 적대적 공격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합리적 의심이 남아 있는 한 믿음은 믿음일 수가 없고, 그 믿음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행위를 할 수가 없다.
공자는 자장으로부터 관직 생활을 하는 자세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 제일 먼저 합리적 의심을 강조했다. 공직은 한 번 결정이 내려지면 그에 따라 대민 업무가 시작된다.
특히 한 번의 정책적 결정으로 연관되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경우 합리적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일을 추진하면 엄청난 후과를 불러들이게 된다.
예컨대 연말정산, 공무원연금 등의 개정을 두고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계획을 발표했다가 후폭풍이 일어나 방침이 재론되기도 했다.
‘궐의(闕疑)’와 ‘궐태(闕殆)’의 합리적 의심을 한다면 하나의 정책이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3. 정명(正名)
공자가 위나라의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정명(正名)’을 제시하고, 논어 안연편 11장에서 정명을 한층 더 구체화시켜서 표현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가 바로 그것이다.
합리적 의심이 철저하게 해명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판단을 유보하는 문제를 결정하고 미루어두었던 일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공자는 합리적 의심, 즉 궐의(闕疑)와 궐태(闕殆) 이후에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명의 중요성을 밝히면서 공자는 제자 자로와 얼굴을 붉히는 설전을 벌이기까지 했다.
논쟁의 발단은 위(衛)나라의 정국을 어떻게 수습하느냐라는 방법에 있었다. 위나라 영공(靈公)은 남자(南子)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 남자는 자유연애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했다.
태자 괴외(蒯聵)는 평소 이런 어머니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는 기회를 엿봐 어머니를 죽이려고 하다가 오히려 발각되자 다른 나라로 망명을 떠났다.
영공이 죽자 위나라는 공자 영(郢)을 왕의 자리를 잇고자 했지만 그가 고사하여 영공의 손자 또는 괴외의 아들 출공 첩(輒)이 왕이 되었다.
괴외는 조국 위나라로 돌아와 왕위를 잇고자 했지만 이미 아들이 왕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왕의 자리를 둘러싼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춘추시대에는 위나라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나라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특히 공자 학교에서도 누가 영공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 옳은가를 두고 공자와 제자, 또 제자들끼리 날카로운 토론이 벌어졌다. 그 중 한 차례가 바로 공자와 자로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이다.
자로는 결과적으로 현재의 출공 첩이 정당하다고 보아 괴외의 위나라 진입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보았다. 공자는 현실적으로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보다 원론적으로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식으로 접근했다.
일단 아버지와 자식이 왕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나아가 누가 왕이 되는 것이 합당한지 논의할 수 있는데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상대를 제거하려고 나서는 것도 문제이다.
이렇게 위나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보니 서로 불만을 터뜨렸다. 공자가 위나라의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정명(正名)을 제시하자 자로는 공자더러 “세상 물정에 어둡다(迂)”라고 평했다.
자로가 현실의 두 세력 중 한 쪽의 편을 들자고 말하자 공자는 자로더러 무식하다(野)고 평했다.(논어 자로편 3장) 논어의 안연편 11장을 보면 공자는 정명을 한층 더 구체화시켜서 표현했다.
군주(지도자)는 군주답게,
신하(전문가)는 신하답게,
어버이는 어버이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굴어야 한다.
(君君臣臣父父子子)
군신부자(君臣父子)는 역할에 해당되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면서 그 역할에 맞게 처신해야 하는 기준을 가리킨다. 군주라면 군주의 자리에 어울리는 공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주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인물이 된다.
바로 여기서 맹자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의 논리가 나온다. 군주가 군주 자리에 어울리지 않으면 신하가 군주더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간언하고, 그래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군주를 바꾸는 역성혁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명과 역성혁명을 하려면 한 점의 궐의(闕疑)와 궐태(闕殆)가 있어서는 안 된다. 사태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역성혁명을 부르짖는다면, 그것은 개인의 권력욕일 뿐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공통의 명분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4. 끝까지 파헤쳐라.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한 사건이 일어났다. 다리를 건설할 때 만에 하나의 가능성까지 철저하게 따졌다면 이런 안타까운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의 일부가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출근과 등교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었다. 보통 사고는 다리가 무너지면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고는 다리를 지을 때부터 일어난 것이다. 다리 건설은 교통량과 하중 등을 고려하여 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다리가 무너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다리가 무너지리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바로 이때 누군가가 다문궐의(多聞闕疑)와 다문궐태(多聞闕殆)를 했더라면 성수대교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렇게 지으면 다리가 견딜 수 있을까?”라며 작업을 중단하고 하중을 다시 계산해보고, 미심쩍으면 설계회사 관계자를 불러서 확인하는 절차를 겪으며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냈더라면 다른 방식으로 다리를 지을 것이다.
그러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공사 기간과 예산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안전을 우선시하는 사고를 한다면 성수대교의 붕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며 “빨리빨리 하지 않고 뭐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문제의 가능성이 있다면 “잠시만요. 이것 한 번 더 따져보고 합시다!”라고 말하고, 그 “잠시만”이 존중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다문궐의(多聞闕疑)”와 “다문궐태(多聞闕殆)”의 합리적 의심을 인정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공자 이후에도 궐의(闕疑)와 궐태(闕殆)를 넘어설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했다.
묵자는 ‘삼표(三表)’를 거쳐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표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있었는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 “실행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구체화되었다.(묵자 비명(非命) 상)
순자도 이론이 이론으로서 성립하려면 하나의 조건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어떤 이론을 가지려면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하고, 어떤 주장을 펼치려면 반드시 이치에 닿아야 한다(持之有故, 言之成理)”라는 테제를 제시했다.
순자 비십이자(非十二子)편
묵자와 순자의 주장은 공자가 제기했던 궐의(闕疑)와 궐태(闕殆)의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즉 공자가 합리적 의심을 중시하고 묵자와 순자가 객관적 기준을 강조했다.
한 제국이 등장하면서 공자는 여러 선생들 중의 한 명이 아니라 선생 중의 선생이 되었다. 공자의 말은 모두 믿고 받들어야 하는 경전처럼 되었다. 후한의 왕충(王充)은 점점 학문의 권력화, 신비화의 대상이 되어가는 공자와 그의 말을 의심해야 한다고 보았다.
왕충은 시대의 “모든 논의를 저울질하겠다”는 뜻의 논형(論衡)이란 책을 짓고 그 안에 “공자에게 묻는다”라는 문공(問孔) 편을 썼다. 사실 왕충은 형식상 공자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자의 정신을 살리고자 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유학자들은 스승을 믿고 옛것을 옳게 여기길 좋아한다. 성현이 한 말은 모두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서 오로지 배우고 익히려고 할 뿐 따지고 물을 줄 모른다.
성현이 붓을 움직여서 글을 지을 때 마음 씀씀이가 아무리 세세해도 아직 모두 사실과 들어맞는다고 할 수 없다. 하물며 급하게 쏟아낸 말이 어찌 모두 옳다고 하겠는가? 모두 옳지 않은데도 당시 사람들은 따질 줄 몰랐다.
옳다고 하더라도 뜻이 분명하지 않는데도 당시 사람들은 물을 줄 몰랐다. 생각해보면 성현의 말에는 위아래가 서로 어긋난 곳이 많고, 문장도 앞뒤가 서로 모순되는 곳이 많은데도 세상의 학자들은 그걸 모른다.”
“배우고 묻는 길은 재능에 있지 않다. 어려움은 스승과 거리를 두고서 도의를 사실대로 밝히고 시비를 논증하는 데에 있다. 묻고 따지는 길은 반드시 성인과 마주하거나 살았을 적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성현의 이야기를 풀이해서 사람을 가르칠 때 반드시 성인의 가르침대로 일러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밝게 이해되지 않는 물음이 있으면 공자에게 따져 묻는다고 하더라도 어찌 도의를 다치게 하겠는가? 진실로 성현의 학업을 전할 지혜가 있다면 공자의 말을 비판하더라도 어찌 이치에 거슬리겠는가?”
왕충의 말은 공자의 다문궐의(多聞闕疑)와 다문궐태(多聞闕殆)를 가장 잘 풀이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의혹이 든다면, 그 대상이 경전일지라도 공자라고 할지라도 주눅들지 않고 근거와 이유를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왕충은 의심이 가는 모든 것에 대해 끝까지 근거를 밝혀야 한다는 자세를 가졌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세를 다음으로 표현했다. “바로 파악되지 않으면 마땅히 물어서 밝히고, 제대로 이해되지 않으면 마땅히 따져서 끝까지 파헤쳐라!”
(不能輒形, 宜問以發之. 不能盡解, 宜難以極之.)
우리는 정답을 외우는 교육에 너무 익숙해서 정답이 왜 정답인지 묻는 자세를 잊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사실 모든 앎은 물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가 “이게 뭐야?”에서 시작해서 주위를 조금씩 알아간다.
우리는 아이가 즐겨 던지던 “이게 뭐야?”라는 질문을 잊고 “지금 뭐해?”라며 질문을 생략하는 관행에 익숙해지고 있다. 공자와 왕충처럼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끝까지 파헤치는 정신을 가진다면, 성수대교의 붕괴 사건과 같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 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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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궐의(多聞闕疑)
子張이 學干祿한대 子曰 多聞闕疑요 愼言其餘則寡尤며 多見闕殆요 愼行其餘則寡悔니 言寡尤하며 行寡悔면 祿在其中矣니라.
자장이 봉록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서 의심스러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허물이 적어질 것이다.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한다면 후회가 적어질 것이다.말하는 데 허물이 적고 행하는 데 후회가 적으면 봉록은 바로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위정 18)
자장이 벼슬하는 사람의 자세를 묻자 공자가 다문궐의(多聞闕疑)라고 말했다. 즉,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되 그 가운데 의심스러운 것은 빼놓으라고 한 것이다.
다문(多聞)은 사람의 말을 넓게 듣는 의미도 있지만 넓게 배우는 것을 말한다. 궐(闕)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의(疑)는 아직 확신이 없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자장에게 한 충고는 견문을 넓히되 아직 정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말고 잠시 미뤄두라는 것이었다.
요즘과 같은 정보사회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를 정밀하게 선택할 수 없으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된다. 어떤 것이 믿을 만한 정보인지 어느 것이 거짓 정보인지 아무도 가려주지 않는다. 정보는 자신의 능력과 학문에 의해서만 선택할 수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과제물을 보면 가관이다. 여기저기 인터넷에 널린 자료를 모아서 레포트라고 제출한다. 그런데 이 과제물을 읽다보면 비슷한 내용이 여러 학생의 글에서 보인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여러 학생의 레포트를 잘 조합해서 제출하기도 한다. 아마 교수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행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몇 줄만 읽어도 쉽게 안다. 그것은 잘못된 정보가 들어 있거나 이미 교수들도 인터넷 정보를 읽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모아서 마치 자신의 글처럼 속이는 행위가 어찌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이겠는가.
창밖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소나무가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소나무와 비슷한 잣나무나 전나무일 뿐이다.
인간의 눈이 아무리 정확하다고 해도 먼 곳에 있는 사물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인간의 귀가 아무리 밝다고 해도 모든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는 없다.
따라서 가능하면 직접 경험하고 고찰해야 한다. 총명하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 밝은 귀와 밝은 눈으로 사물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공직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보다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기 때문에 사적인 마음으로 업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증명할 수 없고 검증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자장이 공자에게 질문한 것은 바로 공직자의 자세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의 직분을 이용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보다 다양한 경험과 신중한 태도로 업무의 선후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공직자의 모습일 것이다.
▶️ 多(많을 다)는 ❶회의문자로 多는 夕(석; 저녁)을 겹친 모양이 아니고 신에게 바치는 고기를 쌓은 모양으로 물건이 많음을 나타낸다. 뒷날에 와서 夕(석;밤)이 거듭 쌓여서 多(다)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多자는 '많다'나 '낫다', '겹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多자는 夕(저녁 석)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肉(고기 육)자를 겹쳐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肉자가 서로 겹쳐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금문에서는 夕자와 肉자가 매우 비슷하여 혼동이 있었다. 多자는 본래 고기가 쌓여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많다'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多(다)는 ①많다 ②낫다, 더 좋다, 뛰어나다 ③아름답게 여기다 ④많게 하다 ⑤두텁다 ⑥붇다, 늘어나다 ⑦겹치다, 포개지다 ⑧도량이 넓다 ⑨중(重)히 여기다 ⑩크다 ⑪남다 ⑫공훈(功勳), 전공(戰功) ⑬나머지 ⑭단지(但只), 다만, 겨우 ⑮두터이 ⑯많이 ⑰때 마침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적을 과(寡), 적을 소(少)이다. 용례로는 모양이나 양식이 여러 가지임을 다양(多樣), 운수가 좋음이나 일이 좋게 됨을 다행(多幸), 수효가 많음 또는 많은 수효를 다수(多數), 분량이나 정도의 많음과 적음을 다소(多少), 일이 바싹 닥쳐서 매우 급함을 다급(多急), 매우 바쁨이나 일이 매우 많음을 다망(多忙), 복이 많음 또는 많은 복을 다복(多福), 많은 분량을 다량(多量), 인정이 많음이나 교분이 두터움을 다정(多情),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다채(多彩), 많이 읽음을 다독(多讀), 많이 발생함을 다발(多發), 근원이 많음 또는 많은 근원을 다원(多元), 많이 알고 있음으로 학식이 많음을 다식(多識), 많은 사람이나 여러 사람을 다중(多衆), 가장 많음을 최다(最多), 너무 많음을 과다(過多), 소문 따위가 어느 곳에 널리 알려진 상태에 있음을 파다(播多), 매우 많음을 허다(許多),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잡다(雜多), 번거로울 정도로 많음을 번다(煩多),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 또는 방침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다기망양(多岐亡羊),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말을 다다익선(多多益善), 정이 많고 느낌이 많다는 뜻으로 생각과 느낌이 섬세하고 풍부함을 이르는 말을 다정다감(多情多感), 여러 가지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난(多事多難),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처리함을 이르는 말을 다다익판(多多益辦), 아들을 많이 두면 여러 가지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남다구(多男多懼), 유난히 잘 느끼고 또 원한도 잘 가짐 또는 애틋한 정도 많고 한스러운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정다한(多情多恨), 밑천이 많은 사람이 장사도 잘함을 이르는 말을 다전선고(多錢善賈), 수효나 양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다소불계(多少不計), 재주와 능력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재다능(多才多能), 재주가 많은 사람은 흔히 약하고 잔병이 많다는 말을 다재다병(多才多病), 보고 들은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을 이르는 말을 다문박식(多聞博識),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처지에 빠짐을 이르는 말을 다언삭궁(多言數窮), 일이 많은 데다가 까닭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단(多事多端), 일이 많아 몹시 바쁨이나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쁨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망(多事多忙), 일이 가장 많을 때나 가장 바쁠 때 또는 흔히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일이 가장 많이 벌어진 때를 이르는 말을 다사지추(多事之秋),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쩌다가 사리에 맞는 말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다언혹중(多言或中), 재능과 기예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재다예(多才多藝), 여러 가지로 일이 많고 몹시 바쁨을 이르는 말을 다사분주(多事奔走), 종류가 많고 그 양식이나 모양이 여러 가지임을 이르는 말을 다종다양(多種多樣), 좋은 일에는 방해가 되는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호사다마(好事多魔),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박학다식(博學多識), 준치는 맛은 좋으나 가시가 많다는 뜻으로 좋은 일의 한편에는 귀찮은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시어다골(鰣魚多骨), 일이 얽히고 설키다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복잡다단(複雜多端),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이르는 말을 건양다경(建陽多慶),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이익을 적게 보고 많이 팔아 이문을 올림을 일컫는 말을 박리다매(薄利多賣) 등에 쓰인다.
▶ 聞(들을 문)은 ❶형성문자로 闻(문)은 간자(簡字), 䎹(문), 䎽(문)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門(문; 입구)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聞자는 ‘듣다’나 ‘들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聞자는 門(문 문)자와 耳(귀 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聞자를 보면 사람의 귀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문밖에서 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에는 어둑해진 저녁에서야 결혼할 신랑이 신부의 집에 당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갑골문에서는 이렇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혼인하다’라는 뜻으로 썼었다. 후에 이러한 모습이 바뀌면서 사람은 女(여자 여)자와 昏(어두울 혼)자가 결합한 婚(혼인할 혼)자가 되었고 사람의 귀는 耳(귀 이)자에 門자를 더한 聞자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聞자는 문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에서 ‘듣다’나 ‘소식’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聞(문)은 소리가 귀로 들어가다라는 말로 듣다, 들리다의 뜻으로 ①듣다 ②소리가 들리다 ③알다, 깨우치다 ④소문나다, 알려지다 ⑤냄새를 맡다 ⑥방문하다, 소식을 전하다 ⑦묻다, 질문하다 ⑧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알리다 ⑨틈을 타다, 기회를 노리다 ⑩견문(見聞), 식견(識見) ⑪소식(消息), 소문(所聞) ⑫명성(名聲), 명망(名望) ⑬식견(識見) 있는 사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들을 령/영(聆), 들을 청(聽)이다. 용례로는 듣고 보는 것으로 깨달아 얻은 지식을 문견(聞見), 도를 들음 또는 도를 듣고 깨달음을 문도(聞道), 들어서 얻음을 문득(聞得), 이름이 널리 알려져 숭앙되는 일을 문망(聞望), 부고를 들음을 문부(聞訃), 소문으로 전하여 들음을 문소문(聞所聞), 들어서 손해 봄을 문손(聞損),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을 문인(聞人), 들어서 앎을 문지(聞知), 들어서 배움을 문학(聞學), 뜬 소문을 들음을 문풍(聞風), 향내를 맡음을 문향(聞香),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을 문달(聞達), 들려 오는 떠도는 말을 소문(所聞),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전하여 들음을 전문(傳聞), 퍼져 돌아다니는 소문 또는 설교나 연설 따위를 들음을 청문(聽聞), 아름답지 못한 소문을 추문(醜聞), 이전에 들은 소문을 구문(舊聞), 여러 번 들음을 천문(千聞),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으로 실상 없이 떠도는 말을 풍문(風聞), 들어서 앎 또는 듣고 앎을 문이지지(聞而知之),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미루어 안다는 문일지십(聞一知十) 등에 쓰인다.
▶️ 闕(대궐 궐)은 형성문자로 阙(궐)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문 문(門; 두 짝의 문, 문중, 일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모자라다, 비다의 뜻(缺; 결)을 나타내는 欮(궐)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闕(궐)은 (1)임금이 거처(居處)하는 곳의 통틀어 일컬음 (2)여러 차례 참여하거나 또는 하여야 할 일에서의 몇 차례가 빠짐 (3)많은 자리 중에서의 일부 자리가 빔. 결원(缺員) 등의 뜻으로 ①대궐(大闕) ②대궐문(大闕門) ③조정 ④흠 ⑤궐하다(마땅히 해야 할 일을 빠뜨리다) ⑥이지러지다(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없어지다) ⑦이지러뜨리다(이지러지게 하다) ⑧파다 ⑨뚫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궁(宮), 대궐 신(宸)이다. 용례로는 대궐의 안을 궐내(闕內), 대궐의 밖을 궐외(闕外), 대궐을 출입하는 문을 궐문(闕門), 임금이 거처하는 집을 궁궐(宮闕), 대궐 안으로 들어감을 입궐(入闕), 실수나 부주의 등으로 인한 잘못을 궐실(闕失), 끼니를 거름을 궐식(闕食),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지내지 못하여 빠뜨림을 궐사(闕祀), 글자의 획을 빠뜨리는 일을 궐획(闕劃), 참여해야 할 데에 빠짐을 궐도(闕到), 군사의 정원을 채우지 아니하여 부족이 생기게 함을 궐립(闕立), 차례가 되었는데도 번을 서지 않고 빠짐을 궐번(闕番), 종자가 부족함을 궐종(闕種),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거두어들이는 종이를 궐지(闕紙), 죄인에 대하여 추문하는 일을 하지 않음을 궐추(闕推),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모자람을 궐핍(闕乏), 일을 할 장정이 없는 집을 궐호(闕戶), 문장 중에서 빠진 글자나 또는 빠진 글귀를 궐문(闕文), 문장 가운데 빠진 글자를 궐자(闕字), 벼슬아치가 결근함을 궐사(闕仕), 지위가 빔 또는 그 지위를 궐위(闕位), 참여한 일에나 장소에 빠짐을 궐참(闕參), 가난하여 끼니를 거름을 궐취(闕炊), 한참 동안 빠지거나 궐함을 구궐(久闕), 빈 자리를 만듦을 작궐(作闕), 자기의 부족한 점을 시정하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는 일을 공궐(攻闕), 벼슬아치가 자리를 오랫 동안 비움을 광궐(曠闕), 일정한 수량이나 정도에 차지 못하고 모자람을 흠궐(欠闕), 반드시 하여야 할 일을 지체하여 빠뜨림을 계궐(稽闕), 벗어나거나 빠짐을 탈궐(脫闕), 문이 겹겹이 달린 깊은 대궐을 일컫는 말을 구중궁궐(九重宮闕), 의심이 나는 일은 억지로 자세히 캘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의자궐지(疑者闕之), 상소할 때에 도끼를 가지고 대궐문 밖에 나아가 엎드리던 일을 일컫는 말을 지부복궐(持斧伏闕) 등에 쓰인다.
▶️ 疑(의심할 의, 안정할 응)는 ❶회의문자로 어린아이가 비수(匕)와 화살(矢)을 들고 있어 위험하여 걱정하니 의심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疑자는 '의심하다'나 '헷갈리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疑자는 匕(비수 비)자와 矢(화살 시)자, 疋(발 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疑자는 이러한 글자의 조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疑자를 보면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돌린 사람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옆으로는 彳(조금 걸을 척)자가 있으니 이것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을 헤매고 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疑자는 이렇게 길 위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헷갈리다'나 '주저하다'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후에 '의심하다'나 '믿지 아니하다'와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疑(의, 응)는 경서 가운데서 의심이 날 만한 것의 글 뜻을 설명시키던, 과거(科擧)를 보일 때의 문제 종류의 한 가지의 뜻으로 ①의심하다 ②헛갈리다 ③믿지 아니하다 ④미혹되다, 미혹시키다 ⑤두려워하다 ⑥머뭇거리다, 주저하다 ⑦괴이하게 여기다 ⑧비기다(=擬) ⑨같다, 비슷하다 ⑩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⑪시샘하다 ⑫헤아리다, 짐작하다 ⑬의문(疑問) ⑭아마도 그리고 안정할 응의 경우는 ⓐ안정하다(응) ⓑ한데 뭉치다(응) ⓒ집결하다(응) ⓓ멈추다(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의심할 아(訝),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믿을 신(信)이다. 용례로는 의심하여 분별에 당혹함을 의혹(疑惑), 의심하여 물음을 의문(疑問), 마음에 미심하게 여기는 생각을 의심(疑心), 의심스러워 괴이쩍음을 의아(疑訝), 의심하여 두려워함을 의구(疑懼), 서로 의심하여 속 마음을 터 놓지 아니함을 의격(疑隔), 의심스러워 마음이 어지러움을 의란(疑亂), 의심하고 업신여김을 의모(疑侮), 반신반의 함을 의신(疑信), 의심하여 망설임을 의애(疑捱), 의심하여 어김을 의위(疑違), 의심하여 두려워함을 의파(疑怕), 의심하여 놀람을 의해(疑駭), 의심쩍고 명백하지 못함을 의회(疑晦), 의심하며 놀람을 의경(疑驚), 의심스러운 생각을 의념(疑念), 의심스러운 일의 실마리를 의단(疑端), 꺼리고 싫어함을 혐의(嫌疑), 의심나는 점을 물어서 밝힘을 질의(質疑), 마음속에 품은 의심을 회의(懷疑), 의심스러움이나 의심할 만함을 가의(可疑), 크게 의심함을 대의(大疑), 의혹을 풂을 결의(決疑), 어려워서 의문스러움을 난의(難疑), 의심이 많음을 다의(多疑), 괴상하고 의심스러움을 괴의(怪疑), 의심을 받음이나 혐의를 받음을 피의(被疑), 의심스러운 바를 환히 깨달음을 오의(悟疑), 시기하고 의심함을 제의(懠疑), 의심쩍은 생각을 가짐을 지의(持疑), 의심이 생기면 귀신이 생긴다는 뜻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대수롭지 않은 일까지 두려워서 불안해 함을 이르는 말을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을 품는 일을 행하여 성공하는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의사무공(疑事無功), 의심이 나는 일은 억지로 자세히 캘 필요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의자궐지(疑者闕之),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함 또는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함을 이르는 말을 반신반의(半信半疑), 많은 사람이 다 의심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군의만복(群疑滿腹), 믿음직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차신차의(且信且疑),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을 호의불결(狐疑不決), 어렵고 의심나는 것을 서로 묻고 대답함을 일컫는 말을 난의문답(難疑問答), 여름의 벌레는 얼음을 안 믿는다는 뜻으로 견식이 좁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충의빙(夏蟲疑氷),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을 호의미결(狐疑未決), 죄상이 분명하지 않아 경중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가볍게 처리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죄의유경(罪疑惟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