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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제이오(第二吾)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5.03|조회수597 목록 댓글 0

 

제이오(第二吾)

 

나 아닌 나, 2의 나를 의미하는데, 다시 말해서 절친한 친구를 말한다.

 

: 차례 제

: 두 이

: 나 오

 

 

18세기 지식인들의 우정론은 자못 호들갑스럽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벗을 한집에 살지 않는 아내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라고 했다. 제이오(第二吾), 즉 제2의 나라고도 했다.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예수회 신부로 1583년에 중국에 와서 1610년 북경에서 세상을 떴다. 놀라운 기억술을 발휘해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줄줄 외우고, 심지어 거꾸로 외우기까지 해서 중국인들을 경악시켰다.

 

그가 명()나라 건안왕(建安王)의 요청에 따라 유럽 신사들의 우도(友道), Friendship에 대해 쓴 교우론(交友論)이란 책에 이 말이 처음 나온다. 몇 구절만 소개하면 이렇다.

 

나의 벗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의 반쪽이니, 바로 두번 째의 나(第二吾)’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벗을 자기처럼 여겨야 한다. 때로는 평소에 아무 일 없을 경우 벗의 진위를 가려 내기 어렵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벗의 진실이 드러난다. 대체로 일이 급할 때 진실한 벗은 더욱 가까워지고, 거짓된 벗은 더욱 소원해진다.

 

벗을 사귀기 전에 마땅히 먼저 그 사람의 사람됨을 살펴야만 하고 사귄 후에는 마땅히 그를 믿어야 한다.

 

오늘의 벗이 나중에 변해서 원수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원수가 변해서 벗이 되기도 한다. 어찌 삼가고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벗과 사귀면서 만약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 알고 보탬에 재차 마음 쓰지 않는다면, 그 벗은 장사치일 뿐이지 벗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벗이 되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벗할 수 있겠는가?

 

벗은 가난한 자의 재물이요, 약한 자의 힘이며, 병자의 약이다.

 

원수의 음식은 벗의 몽둥이만 못하다.

 

일화도 소개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나라 창고(倉庫)가 없었다. 정복(征服)으로 얻은 재물을 모두에게 나눠 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그대의 창고는 어디 있는가?” 알렉산더가 대답했다. “벗의 마음 속에 있네.”

 

이런 짧은 글에서 중국 지식인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이전까지 오륜(五倫) 중에 붕우유신(朋友有信)은 다섯 번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을 읽은 뒤로 우정(友情)에 대한 예찬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덕무(李德懋)가 지기(知己)에 대해 쓴 글은 이렇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아내를 시켜 백 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으로 축을 달아 아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사이에 펼쳐놓고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살다가 막막해져서 부모(父母)도 아니고 처자(妻子)도 말고 단 한 사람 날 알아줄 지기(知己)가 필요한 날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 한 사람의 벗으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다시 건너갈 힘을 추스를 수 있다. 나 아닌 나, 2의 나(第二吾)가 없는 인생은 차고 시린 밤중이다.

 

 

(第二吾)

 

옛날에 붕우(朋友; )를 말하는 사람들은 붕우를 2의 나(第二吾)’라 일컫기도 했고,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컫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자를 만드는 자가 날개 우() 자를 빌려 벗 붕() 자를 만들었고, 손 수()자와 또 우()자를 합쳐서 벗 우()자를 만들었으니, 붕우란 마치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도 천고의 옛 사람을 벗 삼는다(尙友千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너무도 답답한 말이다. 천고의 옛사람은 이미 휘날리는 먼지와 싸늘한 바람으로 변해 버렸으니, 그 누가 장차 2의 나가 될 것이며, 누가 나를 위해 주선인(周旋人)이 되겠는가.

 

양자운(揚子雲; 양웅)은 당세의 지기(知己)를 얻지 못하자 개탄하면서 천년 뒤의 자운(子雲)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 조보여(趙寶汝)가 이를 비웃으며, “내가 지은 태현경(太玄經)을 내가 읽으면서, 눈으로 그 책을 보면 눈이 자운(子雲)이 되고, 귀로 들으면 귀가 자운이 되고, 손으로 춤추고 발로 구르면 각각 하나의 자운이 되는데, 어찌 굳이 천년의 먼 세월을 기다릴 게 있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런 말에 또다시 답답해져서, 곧바로 미칠 것만 같아 이렇게 말하였다. “눈도 때로는 못 볼 수가 있고 귀도 때로는 못 들을 수가 있을진대, 이른바 춤추고 발 구르는 자운(子雲)을 장차 누구로 하여금 듣게 하고 누구로 하여금 보게 한단 말인가. !, 귀와 눈과 손과 발은 나면서부터 한몸에 함께 붙어 있으니 나에게는 이보다 더 가까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오히려 믿지 못할 것이 이와 같은데, 누가 답답하게시리 천고의 앞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어리석게시리 천세의 뒤 시대를 굼뜨게 기다릴 수 있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벗이란 반드시 지금 이 세상에서 구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 나는 회성원집(청나라 문인 곽집환의 문집)을 읽고서 나도 몰래 속이 뜨겁게 달아 오르고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 속으로 이렇게 자문자답(自問自答)했다.

 

나는 봉규(곽집환)씨와 더불어 이미 이 세상에 같이 태어났으니, 이른바 나이도 서로 같고 도()도 서로 비슷하다 하겠는데, 어찌 서로 벗이 될 수 없단 말인가.

 

기필코 장차 서로 벗을 삼을진대 어찌 서로 만나볼 수 없단 말인가. 두 지역의 거리가 만리(萬里)인즉, 지역이 멀어서 그런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아, 이미 서로 만나 볼 수 없는 처지라면 그래도 벗이라 이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봉규씨의 키가 몇 자인지, 수염과 눈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용모도 알 수 없다면 한세상에 같이 사는 사람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장차 어찌해야 할 것인가? 나는 장차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는 식으로 벗을 삼을 것인가?”

 

봉규의 시()는 성대하도다! 장편의 시는 소호(韶頀) 풍악이 일어나듯 하고, 짧은 시들은 옥이 부딪치듯 맑게 울린다. 시가 차분하고 기품이 있으며 따뜻하고 우아함은 낙수(洛水)의 놀란 기러기를 보는 것 같고, 깊이 있고 쓸쓸함은 동정호(洞庭湖)의 낙엽 지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러니 나는 또 이 시를 지은 이가 자운(子雲)인지, 읽는 이가 자운인지 모르겠다.

 

, 언어는 비록 다르나 문자는 똑같으니, 그가 시에서 즐거워하고 웃고 슬퍼하고 우는 것은 통역을 안 해도 바로 통한다. 왜냐하면 감정을 겉으로 꾸미지 않고, 소리가 충심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장차 봉규씨와 더불어 한편으로는 후세의 자운을 기다리는 이를 비웃고, 한편으로는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는 이를 위문할 것이다.

 

 

친구는 제이오(第二吾)이다

 

오랠수록 좋은 것들이 있다. 영국의 작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 4가지를 오래 말린 땔나무, 오래 묵어 농익은 포도주, 읽을 만한 원로작가의 글,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했다. 옷은 신상일수록 좋지만 벗은 오랠수록 좋다.

 

우리는 친하게 사귀는 벗을 친구(親舊)라 한다. ()은 확고히 서다의 뜻을 지닌 입()과 나무 목()과 볼 견()이 합쳐진 단어로 가까이 서 있는 나무를 본다는 뜻이다. ()는 오래라는 뜻이다. 따라서 친구란 내 가까이 서 있는 오래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디언 속담에서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 한다.

 

가슴속 말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이러한 친구를 붕우(朋友)라 한다. ()은 새의 두 날개를 지칭하며, ()는 또 우()와 손 수()가 합쳐져 있다. 친구는 새의 두 날개와 같이 사람의 두 손과 같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를 말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이의 자신이다(第二吾)라 했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있다. 벗을 사귀는 참된 우정의 가치를 단적으로 표현한 우리 속담이다. 시인 도종환은 절친한 벗을 애닯게 노래하였다.

 

벗 하나 있었으면

 

마음 울적할 때

저녁 강물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같은 친구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애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속에서도

다시 먼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친구라고 다 친구가 아니다. 그럼 참된 친구와 거짓 친구의 구분은 무엇일까? 공자(孔子)는 이를 익자삼우(益者三友)와 손자삼우(損者三友)로 구분하였다.

 

유익함이 되는 세 친구는 정직한 벗(우직, 友直), 신의가 있는 벗(우량, 友諒), 견문이 넓은 벗(우다문, 友多聞)이라 하였다. 반면 해로움이 되는 세 친구는 편견에 치우쳐 올곧지 못한 벗(우편벽, 友便僻), 아첨을 잘하는 벗(우선유, 友善有), 허풍이 심한 벗(우편녕, 友便佞)이라고 했다.

 

항상 눈앞에서만 아는 척하고 이익을 우선하는 면우(面友)는 주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오락으로 사귄 친구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술과 음식과 같이 탐욕으로 사귄 친구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한다. 권력과 이익을 위해 사귄 친구는 한 해를 넘기기 어렵지만, 오직 정의와 정리로 사귄 친구만이 영원히 이어지게 된다.

 

자녀가 친구를 사귈 때, 가려서 사귀어야 하지만 세상에서 그럴 수는 없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사귀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긍휼함과 같은 이웃 사랑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조심성을 가르쳐 주고 인내심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도 사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독립심을 키워주고 조용히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交友論)

(Matteo Ricci)

 

형제보다 더 좋은 것이 벗이다.

벗의 직분은 의로움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

덕과 뜻이 서로 비슷해야 그 벗은 비로소 공고해진다.

세상에 벗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

좋은 벗과 서로 사귀는 맛은 그 벗을 잃은 후에야 더욱 뼈저리게 느낄수 있다.

자신이 벗이 되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벗할 수 있겠는가?

영원한 덕은 영원한 벗의 좋은 음식이다.

- 마테오 리치, 교우론 -

 

곧은 이(정직한 이)를 벗하고, 성실한 이를 벗하며, 견문이 많은 이를 벗하면 유익하다. 편벽된 이를 벗하고, 우유부단한 이(잘 굽히는 이)를 벗하며, 말 잘하는 이를 벗하면 해롭다.

- 공자, 논어 16-4 -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을 돕는다.

- 증자, 논어 15-9 -

 

나이가 많음과 귀함과 형제집안의 세력를 믿지의식하지않고 벗해야 하니, 벗한다는 것은 그 덕()을 벗하는 것이다.

- 맹자, 맹자 만장 3-1 -

 

() 신종(神宗) 황제 재위(在位)때의 중국 최초의 천주교회 창립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예수회 소속 이탈리아인 선교사로서 17세기 이래 동서 문명 교류를 촉발시킨 위대한 문화 매개와 융합의 사도이다.

 

그는 당시 로마의 교황령에 속한 중부 이탈리아의 마체라타(Macerata)에서 출생하여, 로마대학과 리스본의 코임브라대학에서 각각 수학하였으며, 1578년 봄에 리스본을 출항하여 당시 천주교 동방 전교의 중심지인 인도의 고아(Goa)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코친(Cochin)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마카오와 조경(肇慶), 소주(韶州), 남창(南昌)에서 각각 전교(傳敎)활동을 하였다.

 

중국 거주 19년 만에, 그의 나이 49세에 북경에 입성하여 신종 황제를 알현하였으며, 자명종(自鳴鐘)의 수선이나 클라비어코드의 교수(敎授) 또는 천문 역학에 관한 일로 인해 명 황궁 자금성(紫禁城)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북경에서의 거주를 허락받게 되었고, 당대 중국 최고의 지성인인 서광계(徐光啟)와 이지조(李之藻) 등을 천주교로 개종시켰다.

 

서양의 수학과 천문 지식뿐만 아니라 중국 문명에 이미 훈습된 필치로 서양의 그리스도 교리를 전파하다가 58세의 나이로 북경에서 사망 하였는데, 신종(神宗) 황제는 그에게 북경성 밖에 장지를 하사하고 그의 덕을 기렸다. 교우론(交友論), 변학유독(辨學遺牘), 이십오언(二十五言), 천주실의(天主實義), 기인십편(畸人十篇) 등은 그의 저술이다.

 

교우론(交友論)은 리치가 43세 때인 159510월에 중국 내륙의 요로(要路)인 전교지(傳敎地) 남창(南昌)에서 출간한 것이며, 중국 도착(1583) 이후 12년 만에 최초로 저술한 한문 저작으로, 친구를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의 지식인들에게 큰 호응과 반향을 일으켰다. 아래의 글은 교우론(交友論) 본문 중 그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 故當視友如己焉.

오우비타, 즉아지반. 내제이아야. 고당시우여기언.

나의 벗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의 반쪽이니, 바로 두 번째의 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벗을 자기처럼 여겨야 한다.

 

友之與我, 雖有二身. 二身之內, 其心一而已.

우지여아, 수유이신. 이신지내, 기심일이이.

벗과 나는 비록 두 개의 몸이지만, 두 몸 안의 그 마음은 하나일 따름이다.

 

相須相佑, 爲結友之由.

상수상우, 위결우지유.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돕는 것이 벗으로 맺어지는 이유이다.

 

時當平居無事, 難指友之眞僞, 臨亂之頃, 則友之情顯焉. 蓋事急之際, 友之眞者益近密, 僞者益踈散矣.

시당평거무사, 난지우지진위, 임난지경, 즉우지정현언. 개사급지제, 우지진자익근밀, 위자익소산의.

때로는 평소에 아무 일 없을 경우 벗의 진위를 가려 내기 어렵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벗의 진실이 드러난다. 대체로 일이 급할 때 진실한 벗은 더욱 가까워지고, 거짓된 벗은 더욱 소원해진다.

 

有爲之君子無異仇, 必有善友.

유위지군자무이구, 필유선우.

큰일을 할 수 있는 군자에겐 특별한 원수가 없고, 반드시 훌륭한 벗이 있다.

 

交友之先, 宜察 ; 交友之後, 宜信.

교우지선, 의찰 ; 교우지후, 의신.

벗을 사귀기 전에 마땅히 먼저 (그 사람의 사람됨을) 살펴야만 하고, 사귄 후에는 마땅히 그를 믿어햐 한다.

 

雖智者, 亦謬計己友多平實矣.

수지자, 역류계기우다평실의.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자신의 벗을 잘못 헤아리는 일이 실제보다 많다.

 

友之饋友, 而望報, 非饋也. 與市易者等耳.

우지궤우, 이망보, 비궤야. 여시역자등이.

벗이 벗에게 음식을 보내면서 보답을 바란다면 이는 진정으로 음식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

 

友與仇, 如樂與鬧. 皆以和否辯之耳. 故友以和爲本焉. 以和微業長大, 以爭大業消敗.

우여구, 여락여료. 개이화부변지이. 고우이화위본언. 이화미업장대, 이쟁대업소패.

벗과 원수는 음악이나 싸움(의 관계) 같아서 모두 화합여부에 의해 구별될 뿐이다. 그러므로 벗은 화합을 근본으로 한다. 화합하면 작은 일도 크게 키울 수 있고, 다투면 큰일도 없어져 버리거나 망치게 된다.

 

在患時, 吾惟喜看友之面. 然或患或幸. 何時友無有益? 憂時減憂, 欣時增欣.

재환시, 오유희간우지면. 연혹환혹행. 하시우무유익? 우시감우, 흔시증흔.

걱정이 있을 때 나는 즐겨 벗을 만날 뿐이다. 그러나 근심거리가 있을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벗이 유익하지 않은 때가 있겠는가? 근심스러울 때는 근심을 덜어 주고즐거울 때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徙試之友吾幸際, 其友不可恃也.

사시지우오행제, 기우불가시야.

다만 내게 기쁜 일이 있을 때만을 가지고 시험한다면 그 친구는 믿을 수가 없다.

 

可以與竭露發予心, 始爲知己之友也.

가이여갈로발여심, 시위지기지우야.

더불어 나의 마음을 다 드러내 (보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를 알아 주는 벗이 된 것이다.

 

德志相似, 其友始固.

덕지상사, 기우시고.

덕과 뜻이 서로 비슷해야 그 벗(의 사귐)은 비로소 공고해진다.

 

視財勢友人者, 其財勢亡, 卽退而離焉. : 旣不見其初友之所以然, 卽友之情遂渙也.

시재세우인자, 기재세망, 즉퇴이리언. : 기불견기초우지소이연, 즉우지정수환야.

재물이나 세력을 보고 사람을 사귀는 자는, 재물이나 세력이 없어지면 곧 물러나 헤어진다. (이는) 처음에 (사람을) 사귀었던 이유가 보이지 않게 되면 벗으로서의 마음도 드디어는 흩어져 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友於昆倫邇. 故友相呼謂兄. 而善於兄弟爲友.

우어곤륜이. 고우상호위형. 이선어형제위우.

벗은 형()처럼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벗들은 서로를 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형제보다 더 좋은 것이 벗이다.

 

如我恒幸無禍, 豈識友之眞否哉!

여아항행무화, 개지우지진부재!

만일 내게 항상 좋은 일만 있고 재앙이 없다면 어떻게 벗의 진실함 여부를 알 수 있겠는가!

 

故友爲美友, 不可棄之也. 無故以新易舊, 不久卽悔.

고우위미우, 불가기지야. 무고이신역구, 불구즉회.

옛 친구는 좋은 벗이니 버려서는 안 된다. 이유 없이 새 친구로 옛 친구를 갈아치운다면 오래지 않아 후회하게 될 것이다.

 

不扶友之急, 則臨急無助者.

불부우지급, 즉임급무조자.

위급한 벗을 도와 주지 않으면 급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줄 사람이 없게 된다.

 

天下無友, 則無樂焉.

천하무우, 즉무락언.

세상에 벗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

 

君子之交友難, 小人之交友易.

군자지교우난, 소인지교우역.

군자와 벗하기는 어렵고, 소인과 벗하기는 쉽다.

 

平時交好, 一旦臨小利害, 遂爲仇敵, 由其交之未出於正也. 交旣正, 則利可分, 害可共矣.

평시교호, 일단림소리해, 수위구적, 유기교지미출어정야. 교기정, 즉리가분, 해가공의.

평소엔 잘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사소한 이해 관계에 임해서 마침내 원수처럼 되어 버리는 것은, 그 사귐이 바른 데서 비롯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귐이 이미 바르다면 이익도 나눌 수 있고 해로움도 함께 할 수 있다.

 

良友相交之味, 失之後, 兪可知覺矣.

양우상교지미, 실지후, 유가지각의.

좋은 벗과 서로 사귀는 맛은 그 벗을 잃은 후에야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交友之旨, 無他, 在被善長於我, 則我效習之, 我善長於彼, 則我敎化之.

교우지지, 무타, 재피선장어아, 즉아효습지, 아선장어피, 즉아교화지.

벗을 사귀는 취지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의 선함이 나보다 나으면 내가 그 선함을 본받아 익히고, 나의 선함이 그보다 나으면 내가 그를 교화시키는 것이다.

 

臨當用之時, 俄識其非友也. 愍矣.

임당용지시, 아지기비우야. 민의.

필요할 때가 되었을 때 갑자기 그가 (진실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 가엾구나.

 

友也, 爲貧之財, 爲弱之力, 爲病之藥焉.

우야, 위빈지재, 위약지력, 위병지약언.

벗이란 가난한 자의 재산이요 약한 자의 힘이며 병자의 약이다.

 

不能友己, 何以友人?

불능우기, 하이우인?

자신을 벗이 되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벗할 수 있겠는가?

 

永德, 永友之美餌矣. 凡物無不以時久爲人所厭, 惟德彌久彌感人情也. 德在仇人, 猶可愛, 況在友者歟!

영덕, 영우지미이의. 범물무불이시구위인소염, 유덕미구미감인정야. 덕재구인, 유가애, 황재우자여!

영원한 덕은 영원한 벗의 좋은 음식이다. 모든 것은 오래 되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오로지 덕만은 오래 될수록 더욱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원수가 지닌 덕도 사랑할 만한데, 하물며 벗이 지닌 덕이야!

 

 

▶️ (차례 제)는 형성문자로 ()는 통자(通字), ()는 동자(同字)이다. ()을 나타내는 ()의 생략형과 대쪽()에 글을 써서 순서대로 엮은 것이라는 데서 순서, 차례를 뜻한다. 그래서 ()는 한자로 된 수사 앞에 쓰이어 차례(次例)를 나타내는 뜻으로 차례(次例), 순서(順序) , 저택(邸宅) 과거(科擧) 시험(試驗) 편차(編次), 배열(配列) 등급(等級), 서열(序列) 다만, 단지(但只) 만일, 가령(假令) 급제하다, 합격하다 품평하다, 평정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차례 서(), 차례 서(), 차례 번(), 차례 질(), 등급 급(),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뒤섞일 혼()이다. 용례로는 첫째나 가장 훌륭함을 제일(第一), 1 가는 등급을 제일류(第一流), 첫걸음을 제일보(第一步), 맨 앞의 자리나 으뜸이 되는 자리 또는 그 차례를 제일위(第一位), 일을 계획하여 실행하는 데 있어서의 맨 앞장을 제일선(第一線), 어떤 일에 가장 먼저 착수하거나 어떤 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함을 제일착(第一着), 제일 높은 봉우리를 제일봉(第一峯), 시험에 합격함을 탁제(擢第), 과거에서의 첫째 또는 첫째로 급제한 사람을 상제(上第), 과거에 합격함을 급제(及第), 시험에 떨어지는 것을 낙제(落第), 살림집을 제택(第宅), 집이나 주택을 거제(居第), 크고 너르게 아주 잘 지은 집을 갑제(甲第), 고향에 있는 집을 향제(鄕第), 나이가 가장 위인 동생으로 자기의 바로 아랫동생을 장제(長第), 한 어머니에게서 난 아우를 모제(母第),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을 제일강산(第一江山), 어느 방면에 있어서 그와 견줄 이가 없을 만큼 뛰어나서 첫째로 치는 사람을 제일인자(第一人者), 세상에서 견줄 만한 것이 없음을 천하제일(天下第一), 나중에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일을 제간하회(第看下回) 등에 쓰인다.

 

▶️ (두 이)는 지사문자로 ()는 고자(古字), ()는 동자(同字)이다. 두 개의 손가락을 펴거나 나무젓가락 두개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둘을 뜻한다. 수의 둘을 나타내는데 옛 글자 모양은 아래 위가 거의 같은 길이로 썼다. 위를 조금 짧에 쓰면 (; )이란 글자의 옛 모양이 된다. 그래서 ()는 수()의 이름. . () 등의 뜻으로 , 둘째 두 번 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두 가지 마음 둘로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두 겹이나 중복을 이중(二重), 검은 털과 흰 털을 이모(二毛), 벼슬의 둘째 품계를 이품(二品), 재물을 아껴 남에게 주지 못하는 것을 이간(二慳), 두 사람을 이인(二人), 두 층으로 지은 집을 이층(二層), 다시 없음이나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이중으로 하는 것을 이중적(二重的), 차원의 수가 둘인 것을 이차원(二次元), 기구나 조직 문제 따위를 둘로 함 또는 둘이 됨을 이원화(二元化), 한 가지 사물에 겹쳐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을 이중성(二重性), 군대의 가장 아래 계급의 사병을 이등병(二等兵), 한 경작지에 일 년에 두 가지 농작물을 차례로 심어 거두는 일을 이모작(二毛作), 두 가지 규율이 서로 반대된다는 이율배반(二律背反), 부부 사이의 정을 이성지락(二姓之樂), 성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하는 일을 이성지합(二姓之合), 열여섯 살 전후의 젊은이로 젊은 나이를 이팔청춘(二八靑春), 절친한 친구 사이를 이인동심(二人同心), 센 털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뜻으로 32살을 이르는 말을 이모지년(二毛之年), 때를 놓침으로 절망 등의 뜻으로 쓰이는 말을 이십오시(二十五時), 둘 중에서 하나를 가려 잡음을 이자택일(二者擇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서로 맞닿은 쪽의 발목을 묶어 세 발처럼 하여 함께 뛰는 경기를 이인삼각(二人三脚) 등에 쓰인다.

 

▶️ (나 오, 친하지 않을 어, 땅 이름 아)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 , 먹다, 말하다)와 음()을 나타내는 ()가 합()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 , )그대 우리 글 읽는 소리 짐승의 이름 막다, 멈추게 하다 그리고 친하지 않다() 친하려고 하지 않다() 소원(疏遠)한 모양() 땅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글 읽는 소리 오(), 나 아()이다. 용례로는 우리들을 오등(吾等), 우리네를 오제(吾儕), 나 또는 우리 인류를 오인(吾人), 우리의 무리를 오배(吾輩), 나의 집을 오가(吾家), 우리 임금을 오군(吾君), 우리 문중을 오문(吾門), 우리 당을 오당(吾黨), 옛날에 동쪽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일컫던 말을 오동(吾東), 나의 형이라는 뜻으로 정다운 벗 사이의 편지에서 쓰는 말을 오형(吾兄), 맞서 겨우 버티어 나감을 지오(枝吾), 참된 자기를 진오(眞吾),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아니함 또는 그런 태도를 오불관언(吾不關焉), 우리 집의 기린이라는 뜻으로 부모가 자기 자식의 준수함을 칭찬하는 말을 오가기린(吾家麒麟), 자기가 도와서 출세시켜 준 사람이라는 오가소립(吾家所立), 내 집의 걸출한 자식을 이르는 말을 오문표수(吾門標秀), 나도 또한 모른다는 오역부지(吾亦不知), 나의 혀는 아직 살아 있오? 라는 뜻으로 몸이 망가졌어도 혀만 살아 있으면 천하를 움질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오설상재(吾舌尙在), 맞부딪치기를 꺼리어 자기가 스스로 슬그머니 피함을 오근피지(吾謹避之)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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