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설(芭蕉說)
芭 : 파초 파(艹/4)
蕉 : 파초 초(艹/12)
說 : 말씀 설(言/7)
이태준(李泰俊)의 수필집(隨筆集) 무서록(無書錄)에 파초(芭蕉)란 글이 있다. 여름날 서재(書齋)에 누워 파초 잎에 후득이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때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을 아껴 파초를 가꾸노라며 신선(神仙) 놀음의 후기(後記)를 썼다.
없는 살림에도 소 선지기름에 생선(生鮮) 씻은 물, 깻묵 같은 것을 거름으로 주어 성북동(城北東)에서 제일 큰 파초로 길러낸 일을 자랑스러워 했다. 앞집에서 비싼 값에 사갈 테니 그 돈으로 새로 지은 서재에 창(窓)이나 해 다는 것이 어떻겠냐 해도, 창을 달면 파초에 비 젖는 소리를 못 듣는다며 들은 체도 않았다는 이분 과연 신선 놀음하는 조선 선비의 후예(後裔)답다.
당시(當時)까지만 해도 조선시대의 한량(閑良)들이 즐기던 정원에서 파초를 기르는 것이 매우 유행했던 모양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파초 사랑은 별나게도 유난했으나 파초란 놈은 우리 토종이 아니고 열대의 남국 식물이다.
요즘처럼 보온시설이 없어던 겨울을 얼지 않고 나려면 월동 마련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폭염 아래서 파초는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로 초록 하늘을 만들어 눈을 씻어준다. 그래서 파초의 별명이 녹천(綠天)이다.
이서구(李書九) 선생의 당호(堂號)는 녹천관(綠天館)인데, 집 마당의 파초를 자랑으로 여겨 지은 이름이다. 옛 선비들은 파초 잎에 시를 쓰며 여름을 나는 것을 운치 있는 일로 쳤다.
여린 파초 잎을 따서 그 위에 당(唐)나라 왕유(王維)의 망천집(輞川集)에 나오는 절구시(絶句詩; 식물에 관한 시)를 쓴다. 곁에서 먹 갈던 아이가 갖고 싶어한다. 냉큼 주면서 대신 호랑나비를 잡아오게 해 머리와 더듬이, 눈과 날개의 빛깔을 찬찬히 관찰하다가 꽃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향해 날려 보낸다.
간서치(看書癡;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李德懋) 선생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나오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런 운치 말고도 옛 선비들이 파초를 아껴 가꾼 것은 끊임없이 새 잎을 밀고 올라오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정신을 높이 산 까닭이리라.
송(宋)나라 때 학자 장재(張載)는 파초시(芭蕉詩)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芭蕉心盡展新枝(파초심진전신지)
新卷新心暗已隨(신권신심암이수)
願學新心養新德(원학심신양신덕)
旋隨新葉起新知(시수신엽기신지)
파초의 심이 다해 새 가지를 펼치니,
새로 말린 새 심이 어느새 뒤따른다.
새 심으로 새 덕 기름 배우길 원하노니,
문득 새 잎 따라서 새 지식이 생겨나리.
잎이 퍼져 옆으로 누우면 가운데 심지(芯枝)에서 어느새 새 잎이 밀고 나온다.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늘 이렇듯 중단 없는 노력과 정진을 통해 키가 쑥쑥 커 나가는 법이다.
파초(芭蕉)와 한시(漢詩)
1. 머리말
2. 파초의 생태 및 식재(植栽) 전통
3. 한시 제재(題材)로의 수용
4. 맺음말
1. 머리말
식물의 꽃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물 가운데 하나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식물은 꽃보다 잎 자체로 더욱 사람의 주목을 끌기도 하니, 방석보다 커다란 잎을 가진 파초가 바로 그러하다.
파초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에 못지않게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한시로 즐겨 표현되었다. 또한 소나무, 모란, 목련, 포도, 연꽃과 함께 십군자(十君子)의 하나로 문인화의 주요 제재가 되어 왔다.
파초는 우리나라 고유의 화훼가 아니고 원산지가 중국으로서, 남방의 정취를 상징하는 이국적인 식물이다. 하지만 고려 후기부터 문인들은 고상한 정취를 표현하는 화훼의 하나로 정원에 즐겨 식재(植栽)하였다.
꽃을 놓고 다각도의 규명을 진행하는 이 학술대회에서, 발표자는 파초가 한시와 맺었던 인연을 그 동안의 선행 연구 성과에 기초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파초의 식재 전통과 한시 제재로의 수용을 규명하는 이 작업은, 꽃에 대한 우리의 심미안을 확대시켜주는 데에 일정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2. 파초의 생태 및 식재(植栽) 전통
1) 파초의 생태
파초는 화훼의 일종으로 관상을 목적으로 재배하는 정원식물이다. 파초의 생태를 간략히 이해하여 파초 시를 감상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도록 한다. 아래는 백과사전에 실린 파초에 대한 기술이다.
파초(芭蕉)는 외떡잎식물의 파초과(芭蕉科)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키는 5m까지 자라기도 하지만 흔히 2~3m 자란다. 뿌리 줄기에서 잎들이 밑둥을 서로 감싸면서 나와 마치 줄기처럼 자라서 헛줄기를 이룬다. 잎은 길이가 2m, 너비가 50㎝로 가장자리는 약간 말리며, 잎맥은 다른 외떡잎식물과는 달리 중앙맥(中肋)에서 2차맥이 나란히 나온다.
바나나의 꽃처럼 생긴 연노란색의 꽃은 여름과 가을에 걸쳐 수상(穗狀) 꽃차례를 이루며 2줄로 나란히 핀다. 꽃차례 아래쪽에는 암꽃이 피지만 위쪽에는 수꽃이 핀다. 열매는 바나나처럼 익지만 새가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집안이나 온실에서는 열매를 잘 맺지 않는다. 잎을 보기 위해 널리 심고 있으며, 중국이 원산지이다.
한국에는 고려시대에 씌어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파초를 뜻하는 초(蕉)가 실려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1200년경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반그늘지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잘 자라는데, 꽃이 피고 나면 식물체가 죽고, 그 대신 옆에 조그만 식물체가 새로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월 평균 기온이 -2℃ 이상인 지역에서만 집 밖에서도 월동이 가능하다. 잎은 이뇨제, 뿌리는 해열제로 쓴다.
위의 설명은 파초의 잎, 꽃, 열매의 생김새 및 원산지, 전래 시기, 식생 지역, 약효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하여 비교적 자세하다.
고려시대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의 시문집을 인용하여 파초가 한반도에 전래된 시기를 설명한 부분은 한문학도인 필자의 눈에 특히 이채로웠으며, 한문문헌의 정리와 전산화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작업임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연노란색의 꽃이라는 설명은 빨간색의 꽃을 피우는 파초만 보아 왔던 필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내용이었다. 이에 몇몇 자료를 검색해서 파초에 대한 이해를 심화해 보았다.
우선 조선 후기 문인들이 남송 주희(朱熹)의 문집을 읽을 때 참고하였던 주석서 朱子大全箚疑라는 책에, “파초는 꽃이 빨간 것은 홍초(紅蕉)이고, 하얀 것은 수초(水蕉)이다. 민(閩)땅 사람들은 파초를 가지고 베를 짠다.”라는 내용이 보였다. 파초는 그 꽃의 색깔에 따라 명칭이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파초의 별명으로 녹천(綠天), 감초(甘蕉) 등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綠天이란 별명은 파초를 심어놓고 그 잎으로 글씨를 연습했던 당나라 때 초서의 대가 회소(懷素)가 자신의 거처에 붙였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크고 넓은 파초 잎으로 인하여 우러러보면 녹색 하늘(綠天)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였던 것이다.
강산(薑山) 이서구(李書九)가 집에 파초를 기르면서 당호를 녹천관(綠天館)이라 하였는데, 이는 회소의 고사를 가져다 사용한 것이었다.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가 “감초(甘蕉)는 소양(少陽)의 기운을 얻었으므로 우뢰 소리를 들으면 자라고 잎이 크며 일찍 시든다.”라고 하였는데, 이곳에서의 甘蕉도 역시 파초의 별명이다.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기록에 “세상 사람들은 파초가 화훼의 일종인 것만 알고 그것으로 실을 짜 베를 만드는 것은 알지 못한다. 광지(廣志)를 살펴보니, 파초는 일명 포저(苞苴)라고도 하고 또는 감초(甘蕉)라고도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파초의 약효로 이뇨제와 해열제를 제시한 백과사전의 설명을 보충할 만한 내용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유산일초(酉山日鈔)에서 파초는 우역(牛疫)을 치료할 수 있다. 잎을 따서 찧어 즙을 내어 마시게 하면 즉시 효과가 있다고 하였고, 또 외양간 옆에 파초 서너 뿌리를 심어 소를 항상 푸른 하늘의 외양간(綠天菴) 안에 있게 하면, 우역이 사방에서 치성해도 이곳의 소는 무사하다고 하였다. 농가에서는 힘써야 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중독된 물고기를 소생시키는 파초의 약효 등이 산림경제에 언급되어 있었다. 한 가지 보충할 내용은 파초가 지니는 식재료로서의 가치이다. 제주도에서는 파초를 방언으로 반치라고 부르는데, 반치지라는 장아찌와 반치냉국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파초를 식재료로 활용한 역사는 고려말기 문인 정추(鄭樞)의 시작품에서 반찬으로 부드러운 속잎이 마땅하다(侑餐宜心柔)라고 하여 이미 그 전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문헌상의 식재(植栽) 전통
앞에서 읽어본 백과사전에서는 파초에 대하여 -2℃ 이상인 지역에서만 집 밖에서도 월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하였는데,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 지역은 혹한기에 -2℃ 이하로 자주 내려간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는 파초의 식재가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반도 남부지방에서는 파초가 야생상태로 월동하고, 중부 이북지방에서도 뿌리를 적절히 관리해 주면 월동이 가능하다.
문인들이 파초를 창가에 즐겨 식재한 일은 고려 후기 문인들의 시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음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만성(謾成; 부질없이 짓다)이라는 작품이다.
老去功名念自輕(노거공명염자경)
且將幽事送餘生(차장유사송여생)
池邊剪葦看雲影(지변전위간운영)
窓下移蕉聽雨聲(창하이초청우성)
烏紗白葛午風輕(오사백갈오풍경)
石枕藤床雨氣生(석침등상우기생)
獨倚北窓尋夢境(독의북창심몽경)
綠陰何處一鶯聲(녹음하처일앵성)
늙을수록 공명에 대한 생각이 가벼우니,
이제 그윽한 일로 남은 삶을 보내련다.
구름 그림자 보기 위해 못가에 갈대를 베고,
빗소리 듣기 위해 창 밑에 파초를 옮기리.
검은 사모에 흰 갈포 입으면 한낮에 바람 일고,
등나무에 돌 베고 누우면 우기(雨氣)가 생겨나겠지.
홀로 북창에 기대어 꿈나라를 찾으면,
녹음 어디에서 꾀꼬리 소리 들리겠지.
이 작품은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閑暇)하게 보내는 노년(老年) 생활을 미리 그려보는 내용의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1, 2구에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왔던 벼슬길에서 물러나 이제 한가한 일로 노년을 보내겠다는 결심을 밝혔으며, 이하 여섯 구에서는 모두 본인이 생각하는 노년의 한가로운 일들을 하나하나 그려내고 있다.
노년의 한가한 일로 익재는 연못에 투영된 하늘의 구름을 내려다보는 것과 창가 파초 잎에서 나는 빗소리 듣는 것을 상상한 뒤, 이러한 아취를 누리기 위해 연못가에 멋대로 자라 시야를 가리는 갈대를 베어내고, 파초를 창가로 옮겨 심는 수고로움을 꺼리지 아니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빗소리를 듣기 위해 파초를 창가에 식재하는 익재의 행위는 고상한 풍취로 인식되어 이후 문인들에게 하나의 전통으로 전승된다.
다음은 원재(圓齋) 정추(鄭樞)의 담암의 파초시에 차운하다(次淡菴芭蕉詩韻)라는 작품이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파초에 대한 당시 문인들의 인식을 다각도로 살필 수 있는 내용이기에 전체를 옮겨본다.
淡菴常獨樂(담암상독락)
與世無厭求(여세무염구)
旣將錦堆肚(기장금퇴두)
肯敎雪渾頭(긍교설혼두)
담암은 항상 홀로 즐기어,
세상에 대해 싫거나 구함이 없다.
뱃속에 시 짓는 솜씨 쌓아 두고,
머리 새도록 고민하여 짓는다.
開軒相寒燠(개헌상한욱)
種卉得稀稠(종훼득희조)
洪纖以時競(홍섬이시경)
曲直非人楺(곡직비인유)
기후를 살펴 집을 지은 뒤,
간격을 조절하여 화훼를 심었다.
크고 작은 놈들이 때때로 경쟁하고,
굽고 곧음은 저절로 그러하다.
亭亭芭蕉叢(정정파초총)
矯矯欲上樓(교교욕상루)
此物用非一(차물용비일)
匪直傷筋瘳(비직상근추)
꼿꼿이 자라 있는 파초 떨기,
커다란 줄기가 누각을 넘을 정도.
이 식물의 쓰임새 한 둘이 아니어서,
다친 피부를 낫게 할 뿐만이 아니다.
題詩宜葉大(제시의엽대)
侑餐宜心柔(유찬의심유)
託蔭可逃暑(탁음가도서)
日中陰氣浮(일중음기부)
커다란 잎은 시를 쓰기에 알맞고,
부드러운 속잎은 반찬으로 어울린다.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를 피할 수 있고,
해가 가운데 있어도 서늘함이 감돈다.
奇姿月亭午(기자월정오)
淸響雨知秋(청향우지추)
先生坐相對(선생좌상대)
揚揚樂不休(양양락불휴)
달이 한 가운데 있으면 기이한 자태요,
가을을 알리는 빗소리 맑게 울린다.
선생은 인하여 서로 마주하고서,
좋아하며 즐기기를 그치지 않는다.
物各具大極(물각구대극)
大極太無儔(대극태무주)
寓懷用示我(우회용시아)
我敢癈賡酬(아감폐갱수)
식물들 각각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데,
파초의 크기는 짝할 식물이 없다.
회포를 담아서 나에게 보여주나니,
내가 감히 화답시를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은 파초(芭椒)가 문인들에게 애호되는 이유를 다방면으로 그려내고 있는 오언고시(五言古詩)이다.
1~4구는 작품을 차운하는 대상인 담암(淡菴) 백문보(白文寶)의 인생 태도와 아울러 작시 능력이 뛰어나고 또 표현에 골몰하는 인물임을 소개하였다.
5~8구는 담암의 화훼에 대한 취미가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그가 식재한 화훼들이 잘 자람을 표현하였다.
9~18구는 작품의 본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파초가 주는 갖가지 효용을 진술하고 있다.
파초는 누각 지붕을 덮을 만큼 크게 자라는 화훼로서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재로서의 효능, 시를 쓸 수 있는 종이로서의 효용, 반찬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로서의 효용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 주고, 한낮에는 녹색으로서 청량감을 제공해주며, 나아가 달빛 아래에서는 기이한 자태를 감상토록 해주고, 비오는 날에는 빗방울 소리를 증폭시켜 청아한 소리까지 들려준다고 하였다.
19~24구에서는 담암이 파초에서 일으킨 감흥을 표현하여 보내온 작품에 대해 자신이 이상과 같이 화답시를 지었다고 마무리 지었다.
위의 시를 지었던 원재 정추는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제자였으며, 원시를 보내주며 차운시를 요구했던 담암 백문보는 익재와 교유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14세기 중엽에는 익재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문인들이 파초를 식재하는 아취를 공유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파초를 식재하고 감상하며 시를 읊어 서로 주고받았음을 파악할 수 있는, 화훼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초를 창가에 식재하는 풍류는 익재 이후 하나의 전통으로 면면히 계승되었다.
조선 전기에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비해당사십팔영(匪懈堂四十八詠)의 제18경인 창외파초(窓外芭蕉)를 들 수 있다. 비해당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으로, 그는 인왕산 기슭에 비해당(匪懈堂)이라는 거처를 마련한 뒤 갖가지 기화요초를 식재하여 정원을 조성하였다.
그런 뒤 그 가운데 48가지의 아름다운 경치를 선정하여 칠언의 제화시(題畵詩)를 지은 다음 집현전의 학사인 최항, 신숙주, 성삼문, 김수온, 서거정 등 아홉 사람을 불러 이를 낱낱이 구경시켜준 뒤 화답시를 요구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창외파초였다. 이들 작품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분석하도록 한다.
조선 전기 파초의 식재 전통을 가장 전면적으로 설명해 주는 자료는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의 양초부(養蕉賦)이다. 이 작품의 서문만 읽어 보아도 당시 파초를 식재하는 일이 유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壯元判京兆李侯伯玉氏, 馳其胤渾, 請芭蕉幷蒔養法於雲松居士.
장원 급제한 한성 판윤 이백옥(李伯玉; 이개李塏) 씨가 맏아들 혼(渾)을 보내어 파초 및 식재법을 운송거사(雲松居士; 강희맹의 호)에게 청하였다.
居士問曰: “尊公養之何如?”
거사(居士)가 물었다. “그대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기르시던가?”
渾曰: “冬藏於陶室而遭凍, 春蒔於庭際而不榮, 如此者非一再矣. 曷爲則能冬不傷而夏不萎歟?”
혼(渾)이 말하였다. “겨울에는 질그릇 두는 곳에 간직하지만 번번이 얼고, 봄에는 뜰 가에 심되 꽃이 피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겨울에 상하지 않고 여름에 시들지 않습니까?”
居士笑曰: “噫! 天壤之間, ?紛??, 飛走動植之類, 待養而成遂者, ?能知其幾也?
苟失其養, 動者息, 植者?, 榮者枯, 敷者乏, 索然離其性矣.
奚?其然歟? 物旣如此, 心亦待乎養者, 功名事業之所引誘, 憂患榮辱之所拂攪, 能全其天而不爽者鮮矣.
蕉乃植物中之最軟脆者也, 太燥則焦, 太濕則敗, 法得則易榮, 法失則易枯, 善養之機, 妙在自得.
歸語老子, 當一?而默笑矣.”
거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아,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초목(草木), 금수(禽獸), 동물, 식물의 유(類)로서 잘 길러야 성취되는 것이 그 얼마나 되는 줄 알 수 있겠는가. 만약 기르기를 잘못하면 동물은 죽어 움직이지 아니하고, 식물은 넘어지고, 꽃과 잎은 마르고 시들어 맥없이 그 본성을 떠나니, 그것이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만물이 이미 이와 같으니, 마음도 또한 잘 길러야 하는 것이다. 공명과 사업에 유인되고, 우환과 영욕에 시달리면 자기 천성을 보전할 수 있는 자가 적은 법이다. 파초는 식물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것이다. 너무 건조하면 마르고 너무 습하면 문들어지며, 방법을 얻으면 쉽게 꽃피우고 방법을 잃으면 쉽게 고사한다. 잘 기르는 방법의 오묘함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돌아가 노친께 말씀드리라. 응당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웃으시리라.”
於是付以蕉根, 兼抒以賦曰.
이어 파초 뿌리를 싸보내며 겸하여 다음과 같이 부(賦)를 지었다.
위 작품을 쓴 강희맹은 바로 조선시대 화훼와 분재를 기술한 저술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양화소록(養花小錄)의 저자 강희안(姜希顔)의 아우이다. 서문의 내용은 한성 판윤 이개가 파초를 식재하기 위해 여러 해 노력했지만 잇따라 실패하였고, 드디어 사숙재 자신이 파초의 식재 방법을 가르쳐 주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사숙재는 당시 화훼의 최고 전문가였던 형 강희안으로 부터 화훼에 대한 비법을 전수받아 그 또한 상당한 파초 전문가가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서 파초를 직접 심은 뒤 이를 짤막한 시로 표현한 작품을 읽어 본다.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의 종파초(種芭蕉)이다.
斗粟買諸隣(두속매제인)
敎兒窓外種(교아창외종)
還愁夜雨聲(환수야우성)
驚我歸田夢(경아귀전몽)
한 말의 좁쌀로 이웃에서 바꿔와,
아이를 시켜 창밖에 심게 하였다.
외려 수심겹구나 밤비 소리,
고향에 돌아가는 내 꿈 깨울까.
이 작품은 파초를 창가에 심은 뒤 파초 잎에서 들리는 빗방울 소리를 상상하여 지은 것이다. 당시 파초 뿌리의 가격이 꽤 높았음을 알 수 있으며, 파초를 방금 식재하고는 어느새 그 잎에서 들리는 빗방울소리를 상상하고 있는 석천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파초에 대한 식재 전통은 조선 후기까지도 면면히 계승된다. 유박(柳璞)은 황해도 배천에 백화암(百花菴)을 짓고는 온갖 꽃을 기르면서 화훼에 관한 저술 화암수록(花菴隨錄)을 남겼다. 이 저술 속에 꽃의 등급을 나누어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는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題)란 내용이 있는데, 파초를 모란, 작약, 왜홍(倭紅), 해류(海榴)와 함께 부귀(富貴)를 상징하는 꽃의 그룹인 이등에 소속시켰다.
파초가 지붕을 덮을 정도의 큰 키와 넓고 큰 잎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귀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박은 자신이 조성한 백화암의 풍경을 소개하면서 芭蕉怪石 爲庭除名山(파초괴석 위정제명산), 파초와 괴석은 마당가에 두어 명산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혹한기 기후가 -20℃에 이를 수 있는 북한 황해도 배천에서도 파초가 정원에 식재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파초는 지붕을 덮을 정도의 큰 키로 여름날 햇살을 가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바람이 불면 녹색의 잎을 산들거리며 춤을 추어 청량감을 제공해 준다. 아울러 창가에 식재해 놓으면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음악처럼 들려주어 특별한 정취를 자아낸다. 이러한 심미적 효용을 가진 까닭에 한반도 남부 이외의 지역에서도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파초의 식재가 고상한 취미의 하나로 전승되었던 것이다.
3. 한시 제재(題材)로의 수용
1) 생육에서 터득한 철리(哲理)
조선조의 문인들은 뿌리줄기에서 순차적으로 피어나는 파초 잎의 생육 특징을 포착하였고 이를 관찰한 뒤 그 정서를 한시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우선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파초를 읊다(詠芭蕉)라는 작품을 읽어 본다.
前葉纔舒後葉抽(전엽재서후엽추)
旋抽旋暢不曾休(선추선창불증휴)
吾人進學須看此(오인진학수간차)
勉勉新功日日求(면면신공일일구)
앞 잎 펴지면 뒤 잎 나오는데,
나오자마자 바로 펴져 그치지를 않는구나.
학문에 나아감도 모름지기 이를 본받아,
부지런히 새로운 공부를 나날이 구하리라.
이 작품에는 시인이 직접 쓴 서문이 병기되어 있는데, 대청 앞에 파초를 심어놓고 파초 잎이 자라나는 생육 특징을 관찰한 뒤 쓴 것임을 밝히고 있다. 파초가 자랄 때는 뿌리줄기에서 먼저 하나의 잎이 자라나 펴지고 뒤이어 다른 새 잎이 돌돌 말려 뒤따라 피어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고 하였다. 시인은 파초의 잎을 피우는 이러한 특징을 직접 관찰하고는 자신이 과거에 읽었던 장재(張載)의 한시 작품이 이를 매우 적절히 표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북송(北宋)의 철학자 장재(張載)는 일찍이 파초 잎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한시(漢詩)를 읊은 일이 있다.
芭蕉心盡展新枝(파초심진전신지)
新卷新心暗已隨(신권신심암이수)
願學新心養新德(원학신심양신덕)
旋隨新葉起新知(선수신엽기신지)
파초 속잎이 다하면 새 가지를 뻗어,
돌돌 말린 새 속잎 슬며시 따라오누나.
새 속잎을 배워서 새로운 덕을 기르고,
이어 새 잎 따라서 새로운 지식을 길렀으면.
이 작품은 매구마다 新(신)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제2구에서는 두 개의 新자가 들어있다. 그리고 기구의 新枝(신지)와 결구의 新知(신지)는 읽을 때의 발음이 서로 어울리고 있다.
1, 2구에서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형상적인 묘사를 통해 파초의 생태를 그려 내었고, 3, 4구에서는 부단히 새롭게 피어나는 파초 잎처럼 새로운 덕성을 함양함과 아울러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터득할 것을 일깨우고 있다. 묘사가 간단명료하고 시상이 참신한 영물시라고 할 수 있다.
포저는 파초 잎들이 피어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한 뒤에야 장재의 파초에 대한 묘사와 발상이 매우 빼어났음을 깨달았으며, 자신도 파초를 본받아 새로운 공부(新功)에 부지런히 힘써서 日日新, 又日新할 것을 다짐하였던 것이다.
파초 잎의 생육 특징을 세밀하게 관찰한 데에서 촉발된 정서를 표현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작품으로 계곡(谿谷) 장유(張維)가 지은 혼자 쓸쓸히 지내면서 아무렇게나 읊어 본 시 열 수(索居放言十首) 가운데 제10수가 있다.
芭蕉葉重重(파초엽중중)
盡從中心出(진종중심출)
初卷旋自展(초권선자전)
展盡卷復茁(전진권복줄)
一脊布群肋(일척포군륵)
條理何微密(조리하미밀)
誰能刻雕此(수능각조차)
巧妙不容說(교묘불용설)
花卉非爲目(화훼비위목)
物理可玩閱(물리가완열)
三年作楮葉(삼년작저엽)
辛苦笑爾拙(신고소이졸)
겹겹이 붙어 있는 파초 잎사귀,
모두가 중심에서 나오는데,
말려 올라가다 스스로 펼쳐지고,
다 펼쳐지면 말린 새 잎 다시 돋아나네.
한 줄기에 펼쳐진 여러 잎사귀들,
그 조리 어쩌면 이토록 치밀한가.
누구라서 이 모습 조각할 수 있을까,
뛰어난 솜씨 말로 표현할 수가 없구나.
화훼는 보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담긴 이치 음미해야 하거니,
삼 년 만에 닥나무 잎 만들어 내다니,
고생은 했다마는 어쩜 그리도 졸렬한고.
이 작품은 순차적으로 잎을 피워내는 파초에서 터득한 사물의 이치를 표현한 것이다.
1~4구는 모든 파초 잎이 뿌리줄기 가운데로 부터 한 잎씩 차례대로 돌돌 말려 피어나다 활짝 펼쳐지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5~8구는 조리가 치밀하게 파초 잎을 생육해내는 조물주의 뛰어난 솜씨에 대한 감탄을 표현하였다.
9~12구는 3년 동안 공을 들여 옥(玉)으로 닥나무 잎사귀를 조각한 송(宋) 나라 사람을 예로 들어, 파초가 지닌 이치는 터득하지 못한 채 한갓 외관에만 주의하는 사람들을 졸렬하다고 비판하였다.
장유는 파초 잎의 생육 특징에서 터득한 사물의 이치에 대해서는 스스로 구체적으로 토로하지 않았다. 과연 장유는 어떤 철리(哲理)를 터득했던 것일까? 처음에는 말려 있다가 때가 되어서야 펴내는 파초 잎의 생육 특징에서 그는 곤궁을 이겨내야 하는 공부인의 자세 내지는 인생살이의 원리를 터득한 것은 아닐까?
포저와 계곡은 파초 잎 자체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하지 않고 파초 잎에 철리를 투영하는 관물론(觀物論)적 자세를 견지하여 이를 한시로 수용하고 있다. 18, 19세기의 문인들이 사물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였던 태도와는 구별되는 학자적 시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 빗소리로 인한 아취(雅趣)
파초 잎을 때리는 빗방울소리는 그 소리가 증폭되어 대단히 크게 울린다. 넓은 파초 잎에서 울리는 빗방울 소리는 독서에 전념하던 문인이라도 잠시 글 읽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하였고, 이로 인해 피어나는 시심(詩心)을 작품으로 표현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다음은 파초 잎에서 나는 빗방울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을 쏟는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의 즉사(卽事)라는 시이다.
小沼如盆水淺淸(소소여분수천청)
菰蒲新長荻芽生(고포신장적아생)
呼兒爲引連筒去(호아위인련통거)
養得芭蕉聽雨聲(양득파초청우성)
동이만한 작은 못에 물은 얕고 맑은데,
줄과 부들 새로 자라고 갈대 싹도 나왔다.
아이 불러 대통 이어 물 끌어가게 하노니,
파초 길러 빗소리 듣기 위해서라오.
이 작품은 시인 자신의 고상한 풍류를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정원에 동이만한 조그만 연못을 조성하였는데, 그곳에서 줄, 부들, 갈대 등이 자라 이미 자연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파초 잎에서 들리는 빗소리를 감상하기 위해 아이를 시켜 파초에 물을 댈 수 있는 관개(灌漑) 시설을 하도록 했다.
이렇게 식재한 파초에서 울리는 빗소리를 들은 뒤 그 정취를 표현한 사가의 작품을 읽어 보자. 즉사(卽事)라는 같은 제목의 작품이다.
紅塵車馬汗翻漿(홍진거마한번장)
水閣沈沈産午凉(수각심심산오량)
手種芭蕉高出屋(수종파초고출옥)
通宵留得雨聲長(통소유득우성장)
바깥 세상은 거마들이 땀 흘리며 오가는데,
이곳 물가 누각은 그윽해 한낮에도 서늘하다.
손수 심은 파초는 지붕 위로 높이 자라,
밤새도록 빗소리가 크게도 들리는구나.
이 작품은 파초 잎에서 밤새도록 빗소리를 듣는 아취를 표현한 것이다. 시인이 거처하는 곳은 땀을 흘리며 거마가 바삐 왕래하는 바깥세상과는 대조를 보이는 연못가 조용한 누각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손수 심은 파초 잎에서 밤새도록 들리는 커다란 빗소리를 듣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빗소리를 들으면서 갖게 된 정취를 직접적으로 토로하지 않고 표현을 생략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스스로 경험하여 느끼도록 맡겨 두고 있는 것이다.
파초 잎에서 듣는 빗소리의 정취를 표현하는 일은 하나의 문학적 전통으로 성립되었다.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순국한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우차미공칠절운(又次眉公七絶韻; 또 미공의 칠언절구에 차운하다)이라는 작품을 읽어 본다.
敞閣踈簾面面風(창각소염면면풍)
全身如坐碧紗籠(전신여좌벽사롱)
窓前淅瀝三更雨(창전석력삼경우)
半在芭蕉半在桐(반재파초반재동)
높은 누각 성긴 발 사방에서 바람 드니,
온몸이 벽사롱 속에 앉아 있는 것 같네
창 앞에 후드득 후드득 들리는 삼경의 빗소리,
절반은 파초잎에서 절반은 오동잎에서 나는구나.
이 작품도 역시 파초 잎과 오동나무 잎에서 빗소리를 듣는 정취를 표현한 것이다. 한여름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지어진 높은 집에서 문을 열고 발을 쳐놓자 사방으로 통풍이 되어 시원하다. 삼경이 되어 창밖에서 후드득 후드득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는 바로 잎이 크기로 이름난 파초와 오동나무 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한여름 견디기 힘든 열대야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비 소리, 얼마나 반가울까.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역할을 파초 잎이 하고 있는 것이다.
교산 허균은 일찍이 열 가지 운치있는 소리를 소개하면서 파초 잎에서 듣는 빗소리(芭蕉雨聲)를 꼽았다. 파초 잎에서 듣는 빗소리의 정취를 한시로 표현하는 일은 조선조의 문인들에게 하나의 문학적 전통으로 계승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중국 문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의 전통이었음에 대해서는 췌언이 필요 없을 것이다.
3) 녹색이 주는 청량감(淸凉感)
파초는 정원 또는 창가에 식재되어 커다란 잎으로 여름 햇살을 차단하여 그늘을 제공해 준다. 무더위를 앗아가는 산들바람이라도 불면 방석만한 커다란 녹색의 잎이 흔들흔들 춤을 추기도 한다. 한여름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녹색 파초의 청량감은 예민한 감성을 지닌 시인들의 눈에 자주 포착되었다.
다음은 사가 서거정(徐居正)이 비해당사십팔영(匪懈堂四十八詠)의 제18경인 창외파초(窓外芭蕉)를 표현한 작품이다.
養得靈苗扇影長(양득영묘선영장)
風吹微綠細生香(풍취미록세생향)
葉能舒卷何曾礙(엽능서권하증애)
心自通靈況有常(심자통영황유상)
已喜丁東留夜雨(이희정동유야우)
不堪零落顫秋霜(불감영락전추상)
十年無限江南興(십년무한강남흥)
寄與西窓一味涼(기여서창일미량)
신령한 싹 길러 내니 부채처럼 길어라,
푸른 잎에 바람 불자 향기 살살 풍긴다.
잎은 펴고 오므리는 일 언제 거리꼈던가,
속은 절로 텅 비어 더구나 상도가 있음에랴.
뚝뚝 밤비 소리 들림을 이미 기뻐하니,
가을 서리에 시드는 것 견디지 못하리라.
십년 동안 무한히 강남 흥취 일으켜 주고,
서창에서 한결같이 서늘함을 제공해 주누나.
이 작품은 파초에서 얻는 다양한 심미효과를 표현한 것이다.
1, 2구는 부채만큼 크게 자라란 잎의 모습, 산들바람에 녹색의 몸을 흔들며 은은히 풍겨주는 향기를 말하였다. 시각과 후각으로 포착한 파초의 청량감이다.
3, 4구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파초의 생육 특징을 통해서 느낀 철학적 이치의 표현이다.
5, 6구도 앞에서 살펴본 파초가 주는 청각적 아취(雅趣)를 말하였다.
7, 8구는 파초가 서창에 자리잡아 유발시켜주는 강남의 흥취와 녹색의 청량감을 표현하였다. 파초의 청량감을 공감각으로 포착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앞 1, 2구의 내용과 조응(照應)한다고 볼 수 있다.
사가의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발견되니, 바로 조선 시대 문인들은 파초를 가옥의 서쪽 창가에 식재했다는 것이다. 이는 북반구에 위치한 한반도의 지리적 환경을 감안한 것으로, 여름철 태양이 낮아져 오후 내내 따갑게 쏘아 대는 햇빛을 차단하는 녹색 파초의 청량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의 위치 선정이라 할 수 있다.
4) 잎이 재촉하는 시심(詩心)
파초를 표현 대상으로 하는 영물시(詠物詩)는 다른 꽃을 읊은 영물시와 구분되는 내용상의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다. 표현 대상으로서 파초는 시인들에게 시를 짓고 싶은 충동을 유발시켜 시를 짓도록 재촉한다는 점이다. 이는 파초만이 지닌 한시와의 깊은 인연이다.
다음은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고시(古詩) 27수(二十七首)의 제11수이다.
庭心綠芭蕉(정심록파초)
展葉何光絢(전엽하광현)
牛乳待秋摘(우유대추적)
鳳尾含風轉(봉미함풍전)
朝來吐一花(조래토일화)
陋姿不堪見(누자불감견)
萬物各一美(만물각일미)
齒角寧得擅(치각영득천)
達官好作詩(달관호작시)
何以待窮賤(하이대궁천)
뜰 가운데의 푸른 파초,
펴있는 잎 너무도 곱구나.
가을 되면 소젖만한 열매 따고,
바람 불면 봉황 꼬리 흔들대네.
아침에 토해낸 한 송이 꽃,
꼴불견이라 차마 볼 수 없구나.
만물이 좋은 점은 하나씩인 것,
이빨과 뿔을 어떻게 모두 가질 수 있는가.
고관은 시를 짓기에 좋겠지만,
궁천한 사람은 무엇을 취할거나.
이 작품은 파초를 마주하여 가지게 되는 착잡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1~4구는 파초가 주는 다양한 심미효과를 말하였다. 5~8구는 잎과는 대조적으로 볼품없는 파초 꽃에 대한 감회를 토로하였다. 9, 10구는 파초가 한시와 맺고 있는 각별한 인연을 말하였다.
파초는 시를 쓰는 것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회소(懷素)가 파초 잎에 글씨를 연습한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당(唐)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이 盡日高齋無一事(진일고재무일사), 芭蕉葉上獨題詩(파초엽상독제시) 즉, 종일토록 높은 집에 일이 없어, 파초 잎에 혼자서 시를 적어본다고 하였고,
백거이(白居易)는 閒拈蕉葉題詩詠(한념초엽제시영), 悶取藤枝引酒嘗(민취등지인주상) 즉, 한가할 땐 파초 잎 뜯어다가 시를 쓰고, 울적할 땐 등나무 가지 관으로 술을 마시노라 하였으며,
사공도(司空圖)는 雨洗芭蕉葉上詩(우세파초엽상시), 獨來憑檻晩晴時(독래빙함만청시) 즉, 빗물이 파초 잎 위의 시를 씻어내네, 홀로 와서 난간에 기대는 저물녘 맑은 때라고 하였다. 곧 초엽제시(蕉葉題詩)는 오엽제시(梧葉題詩)와 함께 문학적 전통의 하나였다.
이런 문학적 전통에 익숙했던 다산은, 한가한 고관들은 파초를 바라보면 시를 짓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겠지만, 곤궁한 처지에 있는 자신은 시를 짓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다산은 파초에서 유발된, 시를 짓고 싶지 않다는 그 정서를 결국 시로 표현하고마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파초와 한시의 인연을 나타내주는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다음은 앞에서 살펴본 비해당사십팔영(匪懈堂四十八詠)의 제18경 창외파초(窓外芭蕉)를 읊은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의 작품을 읽어본다.
漸覺吟哦慣(점각음아관)
無煩頃刻成(무번경각성)
滴滴窓外雨(적적창외우)
催詩不停聲(최시불정성)
시 읊는 일에 시나브로 익숙해져,
잠깐 사이 완성하는 일 걱정이 없겠구나.
똑 똑 똑 떨어지는 창밖의 빗소리,
쉬지 않는 저 소리가 시를 재촉해대니.
이 작품도 역시 파초와 한시의 각별한 인연을 표현하고 있다. 파초청우(芭蕉聽雨)와 초엽제시(蕉葉題詩)의 두 고사를 융해하여 절묘하게 표현한 파초 시의 명작이라고 하겠는데,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어 표현하였다. 곧 파초 잎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이를 듣는 대상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시로 표현해달라고 재촉하기 때문에 그 결과 이 재촉을 들어주는 그 사람은 작시에 익숙한 뛰어난 시인이 되고 말 것이라는 말이다.
매죽헌은 파초를 사랑하여 서쪽 창가에 식재하였고, 그렇게 식재된 파초는 시인을 더욱 뛰어난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파초와 시인은 상생의 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시를 쓰고 싶으면 창가에 파초 한 그루를 심자.
4. 맺음말
이상으로 파초에서 촉발된 정서를 몇 가지로 구분하여 한시 제재로의 수용 양상을 고찰해 보았다. 시인이 파초에서 느끼는 정서는 이전에 시인이 체득하였던 문학적 전통의 바탕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이에 파초를 표현한 한시를 감상할 때에는 작품의 어떠한 내용이 전통에 바탕한 정서이며, 어떠한 내용이 시인의 독특한 정서인지를 구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구분하지 않은 채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자칫하면 내용을 오해할 수 있다.
어떠한 사물을 시적 표현 대상으로 삼는 영물시(詠物詩)는 그 사물에 대한 시인만의 독특한 감수(感受)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파초를 표현한 한시들은 일정한 약점을 지닐 수 있다.
청의 원매(袁枚)는 “영물시가 기탁이 없으면 곧 이는 아이의 수수께끼이다(詠物詩無寄託, 便是兒童猜謎)”라고 하였다.
파초를 한시의 제재로 수용한 파초 시가 영물시로서 성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문학적 전통과 독특한 감수의 적절한 조화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 芭(파초 파)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巴(파)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芭(파)는 ①파초(芭蕉: 파초과의 여러해살이풀) ②풀의 이름 ③꽃 ④향초(香草)의 일종(一種)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파초 초(蕉)이다. 용례로는 파초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을 파초(芭蕉), 파초의 잎 모양처럼 만든 부채 또는 폭 넓은 파초 잎을 그대로 구부려 드리운 것을 파초선(芭蕉扇), 바나나를 파초실(芭蕉實) 등에 쓰인다.
▶ 蕉(파초 초)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焦(초)로 이루어졌다. 본래 생모시의 뜻이 나중에 파초(芭蕉)에 쓰였다. 그래서 蕉(초)는 ①파초(芭蕉: 파초과의 여러해살이풀) ②쓰레기 ③땔나무 ④야위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탈 초(焦), 파초 파(芭)이다. 용례로는 기둥이나 벽에 단여나 현반 등을 받치려고 하는 길쭉한 삼각형으로 된 널조각을 초엽(蕉葉), 파초의 한 가지인 초마의 섬유로 짠 천을 초포(蕉布), 파초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을 파초(芭蕉), 파초의 한 가지로 주초(酒蕉), 파초나 바나나 감초(甘蕉), 파초를 기름을 양초(養蕉), 파초의 잎 모양처럼 만든 부채 또는 폭 넓은 파초 잎을 그대로 구부려 드리운 것을 파초선(芭蕉扇), 머리를 그슬리고 이마를 데어 가며 위험을 무릅쓰고 불을 끈다는 뜻으로 사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어 이리저리 힘겹게 뛰어다님을 이르는 말을 초두난액(焦頭爛額) 등에 쓰인다.
▶ 說(말씀 설, 달랠 세, 기뻐할 열, 벗을 탈)은 형성문자로 説은 통자(通字), 说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兌(열)로 이루어졌다. 말(言)로 나타낸다는 뜻이 합(合)하여 말씀을 뜻한다. 八(팔)은 분산하는 일, 兄(형)은 입의 움직임을 일컬는다. 음(音)을 나타내는 兌(탈, 열)은 큰소리를 질러 화락함을 말하고, 나중에 기뻐함에는 悅(열)이라고 쓰고, 말로는 그것은 무엇, 이것은 무엇이라고 구별함을 說(설)이라고 쓴다. 그래서 說(설, 세, 열, 탈)은 (1)일부(一部) 명사(名詞) 뒤에 붙여 풍설(風說)의 뜻을 나타내는 말 (2)견해(見解). 주의(主義). 학설(學說) (3)풍설(風說) (4)중국에서의 문체(文體)의 하나. 구체적인 사물에 관하여 자기의 의견을 서술(敍述)하면서 사물의 도리를 설명하는 문장임. 당(唐)나라의 한유(韓愈)가 지은 사설(師說), 송(宋)나라의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애련설(愛蓮說) 따위. 문학 작품으로서의 형식을 갖춘 것은 당(唐)나라 이후임 등의 뜻으로 말씀 설의 경우는 ①말씀(설) ②문체(文體)의 이름(설) ③제사(祭祀)의 이름(설) ④말하다(설) ⑤이야기하다(설) ⑥서술하다, 진술하다(설) 그리고 달랠 세의 경우는 ⓐ달래다(세) ⓑ유세하다(세) 그리고 기뻐할 열의 경우는 ㉠기뻐하다, 기쁘다(열) ㉡즐거워하다(열) ㉢즐기다(열) ㉣공경하다(열) ㉤따르다, 복종하다(열) ㉥아첨하다(열) ㉦쉽다, 용이하다(열) ㉧헤아리다(열) ㉨기쁨, 희열(喜悅)(열) ㉩수(數)(열) 그리고 벗을 탈의 경우는 ㊀벗다(탈) ㊁놓아주다(탈) ㊂빼앗기다(탈) ㊃제거하다(탈) ㊄용서하다(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뻐할 희(憙), 기뻐할 환(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풀어 밝힘을 설명(說明), 여러 사람 앞에서 체계를 세워 자기의 주장을 말함을 연설(演說), 여러 모로 설명하여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함을 설득(說得), 남을 저주하는 말을 욕설(辱說), 달콤한 말과 이로운 이야기라는 감언이설(甘言利說),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기를 가담항설(街談巷說),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함을 설왕설래(說往說來),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을 어불성설(語不成說),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도청도설(道聽塗說),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불역열호(不亦說乎),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찾아 온다는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