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망어검(舌芒於劍)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
舌 : 혀 설(舌/0)
芒 : 까끄라기 망(艹/3)
於 : 어조사 어(方/4)
劍 : 칼 검(刂/13)
글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행위가 일부 지식층만 지닌 능력으로 인정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일상생활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런 인식은 옛말이 되었다.
기본적인 기능만 익히면 얼마든지 쉽게 글을 쓰고 지우고 편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사이버 공간인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만나게 되는 글들은 은근히 불안하다. 서로의 글에 대해 반대 의견을 덧붙이고 거기에 대한 또 다른 덧글이 붙다 보면 결국 극렬한 논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설망어검(舌芒於劍)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혀가 칼보다 날카로움이라는 뜻의 이 말은 유려(流麗)한 논리가 날카롭게 정곡을 찌름이란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말(글)의 날카로움이 칼보다 더 하다라고 푸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사람이 구사하는 말이 남을 찌르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품위있고 격조높은 글과 그런 글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舌(혀 설)은 혀를 그린 글자다. 아래의 네모는 사람의 입을 나타낸 것이다. 혀를 이용해 말을 하므로 혀라는 뜻 이외에 말하다란 의미도 함께 갖는다. 혀를 표현하기 위해 동물 중 가장 특이한 뱀의 혀를 그린 까닭에 끝이 두 갈래로 표현되었다. 사용 예로 설전(舌戰), 구설(口舌), 설화(舌禍) 같은 말에서 볼 수 있다.
芒(까끄라기 망)은 식물을 의미하는 艸(풀 초)와 없다란 뜻을 나타내는 亡(망할 망)을 합쳤다.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는, 즉 벼나 보리의 끝처럼 뾰족하게 자라난 부분을 가리킨다. 까끄라기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지만 옷 안에 들어가면 콕콕 찔러댄다. 그래서 찌르다란 의미도 갖고 있다. 사용 예로 망종(芒種)이 있다.
於(어조사 어)는 烏(까마귀 오)의 본래 글자다. 왼쪽의 方에서 입을 크게 벌린 새를 떠올렸던 것 같다.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사람들이 말 앞에 무심코 쓰는 '어~', '음~' 따위의 의미없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지 말을 하기에 앞서 사용하는 전치사로 쓰게 되었다. 비교할 때 쓰는 말인 '~에 비해'라는 뜻이나 '~에, ~에서'란 의미도 있다. 어중간, 심지어와 같이 쓴다.
劍(칼 검)은 첨(僉)은 공식적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즉 군인들을 의미한다. 거기에 刀(칼 도)가 변한 기호를 붙였으니 군인들이 지니고 있는 칼을 나타낸 것이다. 사용 예로 검도(劍道), 검무(劍舞), 목검(木劍) 따위에서 볼 수 있다.
말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잊어 버리지만 듣는 사람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돌을 던진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돌을 맞은 개구리는 절대로 잊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무심코 던진 말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것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부드러워진다. 글을 쓸 때는 최소 세 번을 생각한다. 그러나 말은 내뱉고 나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 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다듬어지지 않아서 날카롭다는 것이다. 강가의 조약돌이 부드러운 것은 이유가 있다.
미국의 저명한 수필가인 에머슨(Emerson)은 말의 품격을 上中下로 나눈바 있다.
인생을 논하고 철학을 이야기하면 上에 속한다. 생활속의 평범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中에 속하고, 남의 흉을 보거나 오만과 독선에 찬 자기 자랑 따위는 下에 속하니 이런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람은 누구나 그가 하는 말에 의해서 평가 받는다고 말했다.
말조심을 당부한 몇 가지만 추려본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입이 재앙을 불러 들이는 문이다.
망담피단(罔談彼短)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
설망어검(舌芒於劍)
혀가 칼보다 더 날카롭다.
수구여병(守口如甁)
비밀을 잘 지키며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다.
양약부지(佯若不知)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말하지 아니한다.
어불택발(語不擇發)
말을 삼가 하지 않고 함부로 지껄인다.
언무이가(言無二價)
말에는 두가지 값이 없어 에누리가 되지 않는다.
언비천리(言飛千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 세상의 참말
말(言)은 태초(太初)에 있었다. 본래 그 말은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옛말에 거울은 모양을 비추고 술(酒)은 본심에 말을 비춘다 하였다. 언비천리(言飛千里)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하여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모든 화근(禍根)은 혀가 칼보다 날카롭기 때문에 설망어검(舌芒於劍)이라 했다.
요즘 정치인들이 막말 발언으로 갈등에 파문이 일고 있다. 말도 난폭해지면 폭력이나 다를게 없다. 책임과 신분에 걸맞는 말을 해야 한다.
옛 선인들은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 하여 세 번 생각하고 말을 하라 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언어학자 알베르도자는 그의 언어철학에서 언어는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어 즉 말은 점진적이고 완만하게 사회성을 반영하지만 인간적인 인격과 품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거칠고 난폭하게 떠드는 사람과 우아하고 논리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서 품격의 현격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인간에게 말이 있다는 것이 축복과 저주라 했다. 인간에게 합리적인 사고(思考)와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개인의 일시적인 욕망이나 명예 때문에 무절제한 권력은 재앙을 초래한다.
복잡한 현대사회 지도층일수록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하면서 약자를 배려하고 포옹하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링컨은 동료들과 과격한 언쟁을 일삼는 젊은 장교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을 해 주었다.
높은 뜻을 가진 사람은 언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성격을 더럽히고 자제심을 잃는 일은 피하지. 만일 자네가 어떤 일에 절반 정도의 확신밖에 없다면 차라리 양보하는게 낫네.
확실한 진실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개(犬)에게 물리기 보다는 그 개에게 자네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야. 그 이유는 자네가 그 개를 죽인다해도 그 개에게 물린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
이 말에서처럼 사사로운 욕심의 논쟁 때문에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갈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저주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밴저민프랭클린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상대를 굴복시키고 승리를 쟁취한다면 한때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이 해왔던 벗을 잃게 됨으로 승리는 곧 공허할 것이다
이처럼 공허한 승리자가 될 것이가. 아니면 진정성있는 벗을 택할 것인가. 이처럼 뒷일은 생각지 않고 무의식적인 생각은 허영심을 나타내며 서로가 상처받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회지도층의 막말은 심도있게 생각해봐야 한다. 언어 폭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예쁜말을 가르치고 청소년기에는 학교에서 올바른 언어 순화 교육을 가르쳐야 어른이 되면서 사회를 지탱하는 참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침묵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언어의 선택은 그 사람의 교양과 인격을 나타내며 평가받기 때문에 반드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예로부터 말은 인류문명의 진화와 과학의 발달을 가져온 가장 큰 도구는 언어였다. 그만큼 언어의 화법은 정신의 지문(指紋)이며 영혼인 것이다.
⏹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
오늘도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지적과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질책과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미국 워싱턴대 심리학과 엘마 게이츠 교수는 분노의 침전물이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욕하고 화를 내는 사람의 침과 웃으면서 나오는 침을 모아서 실험용 쥐에게 투입하는 실험으로, 화를 낸 사람의 침을 주입받은 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습니다.
“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일종의 행동이다. 거친 말은 다른 사람에게 주먹을 날리는 행위이다.”라는 영국의 철학자 오스틴(J. L. Austin)의 말처럼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은유하는 실험입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횡행하는 곳은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가 넘쳐야 하는 곳이지만, 우리 교육현장의 언어 오염은 심각합니다.
학생들만 있는 2시간 동안 고등학교 교실을 관찰해 욕 사용 빈도를 기록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평균 26초에 한 번꼴로 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11초마다 욕을 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상대를 비하하거나 성적인 내용이 담긴 속어, 욕설뿐 아니라 자신들만의 은어와 유행어로 자신들만의 언어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말은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입니다. 오염되고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되면 관계가 훼손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말은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감정 섞인 말과 언어폭력이 범벅된 말은 그말을 뱉은 사람의 뇌를 공격합니다.
어휘력과 인지능력, 감정 조절에 문제가 생기며 다시 언어 폭력의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나쁜 말을 들으면 우리는 신체적 변화와 인지적 각성 상태가 나타나고 다시 감정적인 말을 하게 되는 악순환을 겪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에게 말을 할 때 감정 섞인 말은 아닌지, 내 중심의 언어는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글인 한국어와 한글은 과학적이며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이자 그 어떤 언어보다 우수한 과학적인 소통수단입니다.
소통의 시작은 나의 바른 말에서 이루어진다
소통의 시작은 나로부터 이루어집니다. 나를 향한 소통(자존감),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공감적 능력, 그리고 스피치 능력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소통이 가능합니다. 내가 건강할 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힘과 스피치 능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나를 긍정하는 자존감과 감정적 안정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중심에는 바른 말이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공감적 능력 역시 내 중심이 아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데 그 중심에도 역시 바른 말이 있습니다.
상대에게 나를 나타내는 스피치 능력의 중심에도 바른 말이 있습니다. 좋은 스피치는 일방적으로 내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도 바른 말이 필요하며, 상대와 공감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도 바른 말이 필수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상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말, 내 중심의 말, 감정 섞인 말, 은어와 속어 등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요?
설망어검(舌芒於劍),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말입니다. 원래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비판을 말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다른 뜻으로 되새겨볼 만합니다. 칼의 상처는 아물면 되지만, 말의 상처는 약도 닿을 수 없는 마음에 남습니다.
⏹ 말(言語)에도 령(靈)이 있으니
말과 글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필요한 수단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말과 문자를 통해서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김으로서 고도로 발달된 문화와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
인간 세상에 말과 글이 없었다면 현재의 발달된 세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 문화의 발달과 인간의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인 언어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에게나 듣는 사람에게 이기도 될 수 있고 무서운 흉기도 될 수 있다.
예로부터 말에는 신비스러운 령(靈)이나 기(氣)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언령(言靈)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언어를 사용할 때는 항상 신중하게 조심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은 세상과 역사를 바꾸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과거의 설화나 문헌에서 말의 중요성과 효과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좋은 예와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동부여에서 망명(亡命)할 때 엄체(淹滯)에 이르러 물을 건널 수 없었다. 그는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켜 탄식해 말하였다 “나는 천재(天宰)의 손자요 하백(河伯)의 외손자이오. 난(亂)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으니 황천후토(皇天后土)는 나를 어여삐 여겨 속히 다리나 배를 베풀어 주소서”라고 말하고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주어 무사히 물을 건넜다는 설화가 있다.
설화를 말하는 것은 설화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결같은 마음에는 기(氣)가 모이는 법이며 그 기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예화(例話)로 드는 것이다.
중국의 고전인 순자(荀子)에도 “좋은 말을 남에게 베풀음은 비단옷을 입히는 것보다 더 따뜻하다”고 하였다. 또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논봉(論鋒)의 날카로움을 설망어검(舌芒於劍)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도 다름아닌 함부로 말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智慧)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상적인 한 사람을 놓고 꾸준히 못난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면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자기 최면에 걸리게 되고 결국 그 스스로 못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반대로 약간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잘한다고 칭찬을 하면 그 사람은 주위 사람들이 바라고 염원한 것과 같이 아주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의사가 아주 작은 병에 걸린 환자에게 “당신은 한 달 후에 죽는 암에 걸렸다”고 선고하면 그 환자는 진짜로 생명을 마감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당신의 의지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면 기적같이 회복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가정에서는 가장의 따뜻한 한 마디 말이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회사에서 사장의 따뜻한 한 마디의 말이 사원들의 사기를 북돋우어 험난한 경쟁사회에서 회사를 성공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범주에서도 국가의 지도자들의 정화되고 단정한 말은 국민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좋은 말은 상대방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고 말하는 자신도 변화시킨다.
말과 글에는 사용하는 사람의 령(靈)과 기(氣)가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마음을 수양하고 단정히 하여 좋은 말을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야 하고 상대방의 단점을 들추어내기보다 장점을 칭찬해 주는 언어 습관을 갖도록 노력하여 자신의 즐거움을 얻고 상대방에게도 이롭게 하도록 하여야 한다.
⏹ 언어의 힘
몇 해 전 '말의 힘'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이 방송에서,언어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실험 하나가 소개가 되었습니다.
젊은 남녀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으로는 황혼의, 은퇴한, 외로운 등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 카드 30개를, 다른 그룹에게는 열정적인, 부지런한, 승진 등 젊은이를 연상시키는 단어 카드 30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 카드를 사용해 문장을 만들게 했습니다. 이후 제작진은 이들이 방송국에서 나갈때 실험 참가자들의 걸음 속도를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 카드로 문장을 만든 그룹은 처음 방송국에 들어올 때의 걸음보다 평균 2초가 늦어졌고, 젊은이를 연상시키는 단어 카드로 문장을 만든 그룹은 처음 방송국에 들어올 때의 걸음보다 평균 3초 정도가 빨라졌습니다.
즉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 카드로 문장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실제로 노인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고, 반대로 젊은이를 연상시키는 단어 카드로 문장을 만든 사람들은 젊은이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존 바그는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인간이 어떤 단어에 노출이 되면 뇌는 자극을 받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 따라 행동할 준비를 합니다. 그렇기에 언어가 갖는 힘은 굉장히 강력합니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지만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생각과 행동까지도 부정적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나쁜 점보다는 좋은점을 말하고 불만보다는 감사한 점을 말해봅시다. 그러다 보면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까지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은혜롭고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 舌(혀 설)은 ❶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입으로 내민 혀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혀의 뜻을 나타낸다. 또는 음(音)을 나타내는 干(간; 내미는 일, 실)과 口(구)의 합자(合字)이다. ❷상형문자로 舌자는 ‘혀’나 ‘말’을 뜻하는 글자이다. 舌자는 동물의 혓바닥을 본떠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舌자를 보면 길게 뻗은 혓바닥 주위로 침이 튄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뱀이나 도마뱀의 혓바닥을 그린 것이다. 사람보다는 파충류 혀가 인상이 강하기에 동물의 혀를 그려 ‘혓바닥’을 표현한 것이다. 舌자는 본래 ‘혓바닥’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로는 ‘말’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는 편이다. 게다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도 주로 모양자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舌(설)은 혀의 뜻으로 ①혀 ②말, 언어(言語) ③과녁의 부분(部分)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말다툼이나 입씨름을 설전(舌戰)말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다툼을 설론(舌論), 혀가 굳어서 뻣뻣함을 설강(舌强), 혀를 움직여서 내는 자음을 설음(舌音), 남을 해하려는 뜻이 담긴 말을 칼에 비유해서 일컫는 말을 설검(舌劍), 칼과 같은 혀라는 뜻에서 날카로운 말을 설도(舌刀), 말을 잘못한 때문에 받게 되는 해를 설화(舌禍), 서슬이 선 말로 날카롭고 매서운 변설을 설봉(舌鋒), 혀를 이루고 그 주질이 되는 근육을 설근(舌筋), 혀의 상태를 보아서 병이 있고 없음을 진단하는 일을 설진(舌診), 악독하게 혀를 놀려 남을 해치는 말을 독설(毒舌),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설(言舌), 붓과 혀 곧 글로 씀과 말로 말함을 이르는 말을 필설(筆舌), 나쁘게 욕하는 말을 악설(惡舌), 시비하고 비방하는 말을 구설(口舌), 쓸데없는 말을 자꾸 지껄임을 농설(弄舌), 재치 있게 하는 교묘한 말을 교설(巧舌)말이 많음이나 수다스러움을 장설(長舌),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변설(辯舌), 혀를 가두어 둔다는 뜻으로 말을 하지 아니함을 수설(囚舌), 말로 이러쿵 저러쿵 다투는 일을 각설(角舌), 혀 아래나 밑에 도끼 들었다는 설저유부(舌疽有斧),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논봉論鋒의 날카로움을 이르는 말을 설망어검(舌芒於劍), 혀가 꼬부라지고 불알이 오그라진다는 뜻으로 병세가 몹시 위급하다는 설권낭축(舌卷囊縮),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뜻으로 항상 말조심을 해야한다는 설참신도(舌斬身刀) 등에 쓰인다.
▶️ 芒(까끄라기 망, 황홀할 황)은 형성문자로 笀(망)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亡(망)이 합(合)하여 까끄라기(벼나 보리 등의 낟알 겉껍질에 붙어 있는 수염)를 뜻한다. 그래서 芒(망, 황)은 ①까끄라기(벼, 보리 따위의 깔끄러운 수염) ②가시, 비늘 ③빛, 빛살 ④억새 ⑤칼날, 봉망(鋒鋩: 창, 칼 따위의 뾰족한 끝) ⑥독초(毒草)의 이름 ⑦북망산(北邙山: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이르는 말) ⑧지친 모양 ⑨어둡다, 희미하다 ⑩광대하다, 멀다 ⑪어리석다 그리고 ⓐ황홀하다(황)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24절기의 하나로 보리가 익고 모를 심기 좋은 때를 망종(芒種), 피곤해 싫증이 난 모양을 망연(芒然), 까끄라기와 가시 따위를 망자(芒刺), 아주 작음을 망홀(芒忽), 가시나 까끄라기를 망각(芒角), 짚신을 달리 이르는 말을 망리(芒履), 도자기의 입 전두리에 있는 흠을 모망(茅芒), 광선의 끝을 광망(光芒), 가시를 등에 진 것 같다는 뜻으로 매우 고통스러움을 이르는 말을 배망(背芒), 송곳의 끝을 추망(錐芒), 보리나 밀 따위의 까끄라기를 맥망(麥芒), 벼의 까끄라기를 도망(稻芒), 가시를 등에 지고 있다는 뜻으로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편하지 않음을 망자재배(芒刺在背), 대지팡이와 짚신이라는 뜻으로 먼 길을 떠날 때의 간편한 차림을 이르는 말을 죽장망혜(竹杖芒鞋),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논봉論鋒의 날카로움을 이르는 말을 설망어검(舌芒於劍) 등에 쓰인다.
▶️ 於(어조사 어, 탄식할 오)는 ❶상형문자로 扵(어)의 본자(本字), 于(어)는 간자(簡字)이고, 烏(까마귀 오)의 옛 글자의 약자이다. 까마귀의 모양을 본떠, 음을 빌어 감탄사, 관계, 비교를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於자는 ‘~에’나 ‘~에서’와 같은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於자는 方(모 방)자와 仒(구결자 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仒자는 한문 문장에 구두점을 찍는 용도로 쓰이는 글자로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게다가 於자는 方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於자의 금문을 보면 烏(까마귀 오)자에 仒자가 결합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於자는 본래 까마귀가 내는 소리에 빗대어 ‘아아’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였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는 얼마 쓰이지 않은 채 지금은 다양한 ‘어조사’로만 쓰이고 있다. 烏자는 해서에서부터 方자로 바뀌었다. 그래서 於(어)는 (1)한문 투의 문장에서 장소를 표시하는 말이 얹히어에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조사(~에, ~에서) ②기대다, 의지하다 ③따르다 ④가다 ⑤있다, 존재하다 그리고 ⓐ탄식하다(오) ⓑ아아(감탄사)(오) ⓒ까마귀(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까마귀 오(烏)이다. 용례로는 이제야 또는 여기에 있어라는 어시호(於是乎), 마음속 또는 주로 ∼에 꼴로 쓰이는 어심(於心), 벌써나 어느새는 어언(於焉), 가운데가 되는 정도라는 어중(於中), 바둑판에서 배꼽점을 중심으로 한 부분을 어복(於腹), 거의 중간쯤 되는 데를 어중간(於中間), 부인이 예장할 때 머리에 얹는 다리로 만든 커다란 머리를 어유미(於由味), 알지 못하는 동안에 어느덧을 어언지간(於焉之間), 썩 흡족함의 뜻을 어량족의(於良足矣), 자기 분수에 만족함을 어분족의(於分足矣), 그때를 한창으로 함을 어사위성(於斯爲盛), 그것으로 만족함을 어사족의(於斯足矣),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에를 어사지간(於斯之間),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어쨌든을 어차어피(於此於彼), 온갖 일을 어천만사(於千萬事), 어 다르고 아 다르다라는 뜻으로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말하기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는 어이아이(於異阿異) 등에 쓰인다.
▶️ 劍(칼 검)은 ❶형성문자로 剣(검)의 본자(本字), 劔(검)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뾰족하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僉(첨, 검)으로 이루어졌다. 끝이 날카롭게 뾰족한 칼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劍자는 ‘칼’이나 ‘베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劍자는 僉(다 첨)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僉자는 많은 사람이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모두 다’나 ‘남김없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금문에서는 金(쇠 금)자가 들어간 鐱(가래 첨)자가 ‘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이것이 칼과 관계된 글자임을 뜻하기 위해 刀자로 바뀌면서 지금의 劍자가 만들어졌다. 사실 劍자는 칼 중에서도 ‘양날 검’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劍자에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僉자가 쓰인 것도 양쪽에 날이 있는 검을 뜻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漢)나라 때부터는 이 둘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지금은 큰 구분 없이 ‘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劍(검)은 (1)무기로서의 긴 칼 (2)군인들이 사용하던 긴 칼의 뜻으로 ①칼, ②검법(劍法; 칼을 쓰는 법), ③찌르다 ④베다 ⑤죽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칼 도(刀)이다. 용례로는 검술에 뛰어난 사람을 검선(劍仙), 검술이 있는 협객을 검협(劍俠), 검술에 조예가 뛰어난 사람을 검객(劍客), 검술을 닦은 사람을 검가(劍家), 칼을 잘 쓰는 수법을 검술(劍術), 검술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인격의 수양을 도모하는 일을 검도(劍道), 검술에 능통한 사람을 검사(劍士), 허리에 띠게 만든 긴 칼을 장검(長劍), 짧은 칼을 단검(短劍), 보배로운 칼을 보검(寶劍), 총 끝에 대검을 꽂음을 착검(着劍), 이름난 훌륭한 칼을 명검(名劍), 찌를 듯이 날카로운 말을 설검(舌劍), 오줌을 검사함을 요검(腰劍), 뱃속에 칼을 품는다는 뜻으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복검(腹劍), 불효하고 불경하고 무자비한 사람이 떨어진다고 하는 지옥을 검림지옥(劍林地獄), 바람이 칼자루 끝에 있는 작은 구멍을 스쳐가는 미세한 소리라는 검수일혈(劍首一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