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존사망(操存舍亡)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도망친다는 뜻으로, 사람의 양심은 이를 바르게 조정하면 존재하게 되지만 이를 버려 돌보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操 : 잡을 조(扌/13)
存 : 있을 존(子/3)
舍 : 집 사/버릴 사(舌/2)
亡 : 망할 망(亠/1)
출전 :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 8章
이 성어는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 8장에 나오는 말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우산(牛山; 齊나라 동쪽의 산)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답더니, 큰 나라(제나라)도성(都城) 밖(郊於大國)에 있어, 도끼와 자귀로 베어가니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그 낮과 밤으로 자라남과 비와 이슬이 적셔주어 새싹이 늘 돋아남이 없지 않건마는, 소와 양을 또 끌어다가 먹이는지라 이로서 저렇듯이 민둥산(山)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민둥산을 보고 일찍이 재목(材; 바탕)이 있지 않았다고 하니, 이 어찌 산의 본래 모습(山之性)이겠느냐?
모름지기 사람이 보존하고 있는 본성(本性)인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 양심(良心; 본래 사물의 시비.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마음)을 버리는 그 까닭이 또한 도끼와 자귀로 나무를 날마다 베어냄 같으니,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 낮과 밤에 쉬는 바와 새벽의 기운에 그 좋아하고 미워함이 사람과 서로 가까움이 거의 드물거늘, 낮에 하는 소행(所行)이 이를 어지럽혀 없어지게 하니, 어지럽히기를 거듭하면 밤사이에 길러지는 깨끗하고 조용한 기운(夜氣)을 보존되지 않는다.
밤사이에 길러졌던 깨끗하고 조용한 기운(夜氣)을 보존할 수 없게 되면 짐승과 다름이 없게 된다. 사람들이 그 짐승 같음을 보고서 일찍이 바탕(材)이 있지 않았다고 하나니, 이 어찌 사람의 정(情)이겠는가?
진실로 그 길러줌(養)을 얻으면 자라지 않을 것이 없고, 진실로 그 길러줌(養)을 잃으면 사라 없어지지 않을 것이 없으리라(山의 나무와 사람의 마음이 그 이치가 같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잡으면 보존하고 버리면 잃어서 출입에 때가 없어 그 향함을 알지 못함은 오직 마음을 이름이로다.’고 하셨느니라.”
孟子曰; 牛山之木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伐之, 可以為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蘗之生焉, 牛羊又從而牧之, 是以若彼濯濯也. 人見其濯濯也, 以為未嘗有材焉, 此豈山之性也哉?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為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為,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為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故茍得其養, 無物不長, 茍失其養, 無物不消.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鄉. 惟心之謂與.
조선 중기의 문신 조익(趙翼)은 포저집(浦渚集)제24권 도촌잡록(道村雜錄) 상(上)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맹자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은 심법(心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앞에 나오는 두 대목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본래 선한데 물욕에 해침을 당해서 잃게 됨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말하기를 “제대로 길러지기만 한다면 어느 것이든 자라나지 않는 것이 없고, 제대로 길러지지 못하면 어느 것이든 시들지 않는 것이 없다(苟得其養 無物不長 苟失其養 無物不消).”라고 하였는데,
이는 제대로 기르면 길러지고 제대로 기르지 못하면 시드는 것이야말로 만물이 모두 그러하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사람의 선한 마음이 물욕에 해침을 당해 잃게 되는 것 역시 제대로 기르지 못해서 시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도망친다(操則存 舍則亡)”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이것은 제대로 기르고 제대로 기르지 못하게 되는 이유를 말한 것이다.
무릇 방목(放牧)하고 벌채(伐採)하여 곡망(梏亡; 욕심 때문에 본래의 선한 마음을 잃음)하면서 제대로 길러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두 마음을 놓아서 도망치게 하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만약 항상 붙잡아 보존하면 물욕이 해칠 수 없게 되어 이 마음이 자연히 내면에 있게 될 것인데, 이처럼 물욕의 해침을 당하지 않고서 그 마음이 보존될 경우, 보존된 그 마음이 바로 양심(良心)이니, 이것은 양심을 제대로 길러서 자라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마음을 붙잡아 보존하는 공부야말로 양심을 기르는 방법이 된다고 할 것이다.
⏹ 다음은 정민 교수의 조존사망(操存舍亡)의 글이다.
마음이 늘 문제다.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이 죽 끓듯 한다. 맹자는 "붙들면 보존되고 놓아두면 달아난다(操則存 舍則亡)" 했다. 붙들어 간직해야지 방심해 놓아두면 마음이 밖에 나가 제멋대로 논다.
대학(大學)에서는 "마음이 나가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고 했다.
정자(程子)가 "마음은 내 안에 있어야만 한다(心要在腔子裏)"거나 "나가버린 마음을 붙들어 와서, 되풀이해 몸 안에 들여놓아야 한다(將已放之心, 反復入身來)"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음이 달아난 자리에는 잡된 생각이 들어와 논다. 쓸데없는 생각을 깨끗이 닦아내야 영대(靈臺)가 거울처럼 빛나, 사물이 그 참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옛 선비는 마음을 붙잡아 간직하는 조존(操存) 공부를 특별히 중시했다. 그것은 계신공구(戒愼恐懼), 즉 끊임없이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붙들면 잡념이 사라진다. 잡념이야 누구나 있지만, 중도에 이것을 걷어내느냐, 아니면 거기에 휘둘리느냐 하는 차이가 있다. 마음을 붙들어 두려면 응취수렴(凝聚收斂)해서 보수정정(保守靜定)해야 한다.
마음을 응집하여 한 지점으로 거두어 모은다. 그 상태를 잘 간수해 고요하게 안정된 상태로 잘 유지하는 것이 보수정정이다.
조존은 힘이 들고 사망은 편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좋은 일은 늘 힘들다. 애써서 이루는 일이라야 가치가 있다. 거저 얻어지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거(伍擧)가 말했다. "사사로운 욕심이 넘치면 덕의(德義)가 드물어진다. 덕의가 행해지지 않으면, 가깝던 사람은 근심하며 멀어지고, 멀던 사람은 어기며 항거한다(私欲弘侈, 則德義鮮少. 德義不行, 則邇者騷離, 而遠者拒違)."
가까운 사람이 등을 돌렸는가? 먼 사람이 대놓고 대드는가? 그것으로 사사로운 욕심이 지나쳐, 내게 덕의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통렬하게 반성할 일이지 원망하고 화낼 일이 아니다. 조익(趙翼)이 도촌잡록(道村雜錄)에서 쓴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 操(잡을 조)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喿(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喿(조, 소)는 많은 새들이 나무 위에 떼지어 시끄럽게 지저귀는 일, 여기에서는 많은 자잘한 일을 나타낸다. 재방변(扌)部는 손, 가지는 일, 이것저것을 솜씨 좋게 다루다, 손에 꽉 쥐다, 굳게 지키다, 지조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操자는 ‘잡다’나 '조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操자는 手(손 수)자와 喿(울 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喿자는 나무 위에 새들이 떼 지어 지저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새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喿자에 手자를 결합한 操자는 손으로 새를 잡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새들은 사람의 인기척에 쉽게 날아가곤 하니 잡을 때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操자는 '잡다'라는 뜻 외에도 '조심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操(조)는 깨끗이 가지는 몸과 굳게 잡은 마음의 뜻으로 ①잡다, 손에 쥐다 ②부리다, 다루다, 조종하다 ③장악하다 ④단련하다 ⑤운동하다 ⑥훈련하다 ⑦급박하다, 절박하다 ⑧지조(志操), 절조(節操), 절개(節槪) ⑨풍치(風致), 운치(韻致) ⑩곡조(曲調)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잡을 집(執), 잡을 액(扼), 잡을 파(把), 잡을 구(拘), 잡을 착(捉), 잡을 포(捕), 잡을 나(拏), 잡을 나(拿), 잡을 지(摯), 잡을 체(逮), 잡을 병(秉)이다. 용례로는 실수가 없도록 마음을 삼가서 경계함을 조심(操心), 마음대로 다루어 움직임을 조종(操縱), 기계 등을 움직이어 작업함을 조작(操作), 공장 등에서 기계를 움직이어 작업을 실시함을 조업(操業), 못되게 굴어 남을 몹시 괴롭힘을 조련(操鍊), 붓을 잡아 글을 씀을 조고(操觚), 물건을 싣고 다니는 배를 부림을 조선(操船), 태도나 행동이 침착하고 얌전함을 조신(操身), 지조가 깨끗함을 조결(操潔), 지조나 정조 따위를 굳건히 지킴을 조수(操守), 마음대로 다루면서 데리고 놂을 조롱(操弄), 안석을 잡는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이 어른을 가까이서 모심을 조궤(操几), 남을 조종하여 헤살을 부림을 조당(操搪), 일을 못하게 뒤에서 조종하여 가로막음을 조색(操塞), 군사를 조련하는 방식을 조식(操式), 마음을 다잡아 가짐을 조존(操存), 곧은 뜻과 절조를 지조(志操), 무엇을 잘하는 소질과 타고난 슬기를 재조(才操), 굳게 지키는 지조를 절조(節操), 정신의 활동에 따라 일어나는 복잡하고 고상한 감정을 정조(情操), 절조를 장려함을 여조(勵操), 여자의 깨끗하고 곧은 절개를 정조(貞操), 변함없는 굳은 절조를 덕조(德操), 선비의 절조를 사조(士操), 깨끗한 정조나 결백한 지조를 청조(淸操), 늘 변함이 없는 지조를 항조(恒操), 깨끗하지 못한 지조를 탁조(濁操), 전투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는 훈련을 연조(演操), 성을 중심으로 하여 군사를 조련하는 일을 성조(城操), 넓은 마당에서 하는 군사 조련을 장조(場操), 각처의 군영을 순회하며 행하는 조련을 순조(巡操), 몹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조심조심(操心操心), 백주라는 시를 지어 맹세하고 절개를 지킨다는 뜻으로 남편이 일찍 죽은 아내가 절개를 지키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백주지조(栢舟之操), 남의 방안에 들어가 창을 휘두른다는 뜻으로 그 사람의 학설을 가지고 그 사람을 공격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입실조과(入室操戈),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라는 뜻으로 굳은 절개를 이르는 말을 송백지조(松柏之操), 맑은 절조를 굳게 가지고 있으면 나의 도리를 극진히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견지아조(堅持雅操) 등에 쓰인다.
▶️ 存(있을 존)은 ❶회의문자로 侟(존)과 통자(通字)이다. 子(자; 약한 아이)와 在(재; 만물이 살고 있다)의 생략형(省略形)으로 이루어졌다. 아이가 살고 있음을 불쌍히 여겨 동정을 베푼다는 뜻이다. 전(轉)하여 오래 살다, 있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存자는 ‘있다’나 ‘존재하다’, ‘살아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存자는 才(재주 재)자와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才자는 땅속에서 올라오는 초목을 그린 것이다. 存자는 이렇게 어린 초목을 뜻하는 才자와 子자를 결합한 것으로 본래는 어린아이의 안부를 묻는다는 뜻으로 쓰였었다. 여기서 안부라고 하는 것은 생존 여부를 묻는다는 뜻이다. 조그만 병치레에도 쉽게 목숨을 잃었던 예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在자는 이렇게 ‘안부를 묻다’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후에 ‘있다’나 ‘존재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存(존)은 ①있다, 존재하다 ②살아 있다 ③안부를 묻다, 노고를 치하하고 위로하다 ④존문(存問)하다, 문안하다 ⑤보살피다, 살펴보다 ⑥보존하다, 보전하다 ⑦편안하다 ⑧관리하다, 관장하다 ⑨생각하다, 그리워하다 ⑩가엾게 여기다 ⑪마음이 향하다, 쏠리다 ⑫세우다, 설치하다 ⑬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다다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재(在), 있을 유(有), 날 생(生),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폐할 폐(廢), 빠질 몰(沒), 꺼질 멸(滅), 패할 패(敗), 죽을 사(死), 죽일 살(殺), 없을 무(無)이다. 용례로는 현존하여 있음 또는 있는 그것을 존재(存在), 보존과 폐지를 존폐(存廢), 생존하여 자립함을 존립(存立), 계속하여 존재함을 존속(存續), 제도나 설비 따위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둠을 존치(存置), 아직 살아서 목숨이 붙어 있음을 존명(存命),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 또는 생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존부(存否), 삶과 죽음 또는 존재와 멸망을 존망(存亡), 살려 주어 양육함을 존육(存育), 다른 지방에 임시로 머물러 삶을 존접(存接), 꿋꿋하게 주견을 가짐을 존주(存主), 잊지 않고 생각에 늘 지니어 둠을 존념(存念), 남아 있거나 남겨 둠을 존류(存留), 마음속의 생각을 존심(存心), 없애지 않고 보존하여 둔 원안의 문건이나 안건을 존안(存案), 본디의 양심을 잃지 않도록 그 착한 성품을 기름을 존양(存養), 셈에서 어떤 것을 넣거나 빼거나 함을 존발(存拔), 위로하여 안심하게 함을 존무(存撫), 이미 존재함 또는 이전부터 있음을 기존(旣存), 의지하고 있음을 의존(依存), 보호하여 남아 있게 함을 보존(保存),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 지금 생존함을 현존(現存), 함께 도우며 살아나감을 공존(共存), 실제로 존재함을 실존(實存), 남아 있음을 잔존(殘存), 엄연하게 존재함을 엄존(嚴存), 언제나 존재함을 상존(常存), 같이 있음이나 함께 생존함을 동존(同存), 쓰고 난 뒤에 남아 있는 돈이나 물건을 여존(餘存), 건강 따위를 소중히 보존함을 정중하게 하는 말을 온존(溫存), 양친이 모두 살아 계심을 구존(俱存), 제 힘으로 생존하는 것을 자존(自存), 존속하느냐 멸망하느냐의 매우 위급한 때를 존망지추(存亡之秋), 죽고 사는 중대한 시기를 존망지기(存亡之機), 어떤 존재는 인정하나 그 존재하는 까닭을 논하지 않음을 존이불론(存而不論), 몸을 편안하게 보존하는 길을 존신지도(存身之道), 낡은 예의나 허례를 버리지 못하고 그냥 남겨둠을 존양지의(存羊之義) 등에 쓰인다.
▶️ 舍(집 사/버릴 사, 벌여놓을 석)는 ❶형성문자로 捨(사)의 간자(簡字), 舎(사)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혀 설(舌; 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余(여, 사)의 생략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余(여, 사)는 여유(餘裕) 있음을, 口(위)는 건물의 모양으로 뜻이 합하여 舍(사)는 '나그네가 머무는 곳', 또 '쉬다', '내버려 두다' 따위의 뜻에도 쓴다. 또한 舍(사)는 나중에 亼(집)과 十(십), 口(구)를 합(合)한 글자, 또는 人(인)과 舌(설)을 합(合)한 모양으로 생각되었다. ❷상형문자로 舍자는 '집'이나 '가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舍자는 舌(혀 설)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舍자는 舌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지만 '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舍자의 금문을 보면 집을 받치는 토대 위에 기둥과 지붕이 얹어져 있었다. 이것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간이 쉼터를 그린 것이다. 舍자에 아직도 '휴식하다'나 '여관'이라는 뜻이 남아 있는 것도 본래는 간이 쉼터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일반적인 '집'이나 '가옥'을 뜻하고 있다. 그래서 舍(사, 석)는 ①집, 가옥(家屋) ②여관 ③버리다 ④포기하다 ⑤폐하다 ⑥내버려 두다 ⑦개의(介意)하지 않다 ⑧기부하다 ⑨희사하다 ⑩바치다 ⑪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⑫놓다 ⑬쉬다, 휴식하다 ⑭화살을 쏘다 그리고 벌여놓을 석의 경우는 ⓐ벌여놓다(석) ⓑ풀리다, 의심이 사라지다(석)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당(堂), 집 우(宇), 집 택(宅), 집 실(室), 집 가(家), 집 궁(宮), 집 옥(屋), 집 저(邸), 집 원(院), 집 호(戶), 집 헌(軒), 집 각(閣), 집 관(館)이다. 용례로는 집의 안채와 따로 떨어져 있어 바깥 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곳을 사랑(舍廊), 기숙사에서 기숙생들의 생활을 감독하는 사람을 사감(舍監), 정부 고관의 개인 소유의 저택을 사관(舍館), 남에게 자기 삼촌을 일컫는 말을 사숙(舍叔), 자기의 형을 남에게 겸손하게 일컫는 말을 사형(舍兄), 남에게 대하여 자기 아우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을 사제(舍弟), 집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사옥(舍屋), 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을 사음(舍音), 기숙사나 숙사 따위의 규칙을 사칙(舍則), 군영의 건물을 영사(營舍), 감옥으로 쓰이는 집을 옥사(獄舍), 풍치가 아름다운 곳에 지어 놓고 거처하는 정자 모양의 집을 정사(亭舍), 나아감과 머무름을 취사(趣舍), 관청의 건물을 청사(廳舍), 곳간으로 지은 집을 고사(庫舍), 정신을 수양하는 곳을 정사(精舍), 역으로 쓰는 건물을 역사(驛舍), 가축을 기르는 건물을 축사(畜舍), 승려가 불상을 모셔 놓고 불도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곳을 승사(僧舍), 관리가 살도록 관청에서 지은 집을 관사(官舍), 정당의 사무소로 쓰는 건물을 당사(黨舍), 객지에서 기거하는 집이나 딴 곳에서 온 관원을 대접하여 묵게 하는 집을 객사(客舍), 사람이 사는 집을 가사(家舍), 일정한 돈을 받고 여객을 치는 집을 전사(傳舍), 외국 사신을 머물러 묵게 하는 집을 관사(館舍), 학문을 닦는 곳 또는 그 건물을 학사(學舍), 집짐승을 기르려고 지은 우리를 목사(牧舍), 앓는 사람을 수용하는 집을 병사(病舍), 자기의 이전 행위를 버리고 타인의 선행을 본떠 행함을 일컫는 말을 사기종인(舍己從人), 의견이 서로 달라서 일을 결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작사도방(作舍道傍), 뜻하는 바가 천리에 어긋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불사명(志不舍命),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해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한데서 잠을 일컫는 말을 반수발사(反首拔舍), 논밭과 집을 구하고 문의하여 산다는 뜻으로 자기 일신 상의 이익에만 마음을 쓰고 국가의 대사를 돌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구전문사(求田問舍) 등에 쓰인다.
▶️ 亡(망할 망, 없을 무)은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兦(망)이 본자(本字),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망하고 도망해 와서 숨는다는 뜻이 합(合)하여 망하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亡자는 ‘망하다’나 ‘도망가다’, ‘잃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亡자는 亠(돼지해머리 두)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돼지머리와는 관계가 없다. 亡자의 갑골문을 보면 칼날 부분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는데, 이것은 칼날이 부러졌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칼날이 부러졌다는 것은 적과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亡자는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의미에서 ‘멸망하다’나 ‘도망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전쟁에서의 패배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亡자에는 ‘죽다’나 ‘잃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亡(망, 무)은 ①망하다, 멸망하다, 멸망시키다 ②도망하다, 달아나다 ③잃다, 없어지다 ④없애다 ⑤죽다 ⑥잊다 ⑦업신여기다, 경멸하다 ⑧죽은, 고인(故人)이 된 그리고 없을 무의 경우는 ⓐ없다(무) ⓑ가난하다(무)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이룰 성(成), 있을 유(有), 일 흥(興)이다. 용례로는 죽은 아버지를 망부(亡父), 망명해 온 사람을 망객(亡客), 아주 주책없는 사람의 낮은 말을 망골(亡骨), 패가망신할 못된 짓을 망덕(亡德), 죽은 며느리나 죽은 아내를 망부(亡婦), 망할 징조를 망조(亡兆), 죽은 뒤를 망후(亡後), 망할 조짐을 망괘(亡掛), 집안이 결딴남을 망가(亡家), 망하여 없어진 나라를 망국(亡國), 있는 것을 아주 없애 버림을 망살(亡殺), 사람의 목숨이 끊어져 죽는 때를 망종(亡終),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일을 망축(亡祝), 무례한 언동을 망상(亡狀), 죽은 사람의 혼을 망혼(亡魂), 장사葬事를 치르는 동안에 죽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망인(亡人), 손아래 사람의 죽은 날을 망일(亡日), 죽은 아이를 망아(亡兒), 체면이나 명망을 망침을 망신(亡身),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망령(亡靈), 자기 나라의 정치적 탄압 따위를 피하여 남의 나라로 몸을 옮김을 망명(亡命), 피하여 달아남이나 쫓기어 달아남을 도망(逃亡), 망하여 없어짐을 멸망(滅亡), 꺼져 없어짐을 소망(消亡), 잘 되어 일어남과 못 되어 없어짐을 흥망(興亡), 잃어 버림이나 망하여 없어짐을 상망(喪亡), 싸움에 져서 망함을 패망(敗亡), 쇠퇴하여 멸망함을 쇠망(衰亡), 위태로워 망하려 함을 위망(危亡), 사냥이나 주색의 즐거움에 빠짐을 황망(荒亡), 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함을 망양보뢰(亡羊補牢),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을 망양지탄(亡羊之歎),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김을 망자계치(亡子計齒), 죽을 죄를 저지른 사람이 몸을 감추어 멀리 도망함을 망명도주(亡命逃走)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