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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불한이율(不寒而慄)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8.06.17|조회수147 목록 댓글 0

 

불한이율(不寒而慄)

춥지 아니한데 공포에 떨린다는 뜻으로, 포악한 정치로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不 : 아닐 불(一/3)
寒 : 찰 한(宀/9)
而 : 말이을 이(而/0)
慄 : 두려워할 율(忄/10)

출전 : 사기(史記) 卷122 혹리열전(酷吏列傳)


이 성어는 춥지 않아도 벌벌 떨린다는 뜻으로, 포악한 정치로 공포에 떨며 두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 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 혹리열전(酷吏列傳)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이다.

한(漢)나라 때 도둑 출신의 의종(義縱)은, 그의 누이 의후(懿侯)가 황태후(皇太后)의 병을 고쳐주어 총애를 받음으로써 벼슬에 올라 현감(縣監)을 거쳐 남양태수(南陽太守)를 지낸 뒤 정양태수(定襄太守)가 되었다.

의종은 지방 호족들을 숙청하고 백성들을 탄압한 잔인한 관리였는데, 남양태수로 부임하여 악하기로 소문난 도위(都尉) 영성(寧成)을 잡아 가두고 그의 일가족을 모두 죽였다.

그뒤 정양태수로 임명되자 정양군의 호족 세력을 평정하고 2백여명을 감옥에 가두었으며, 감옥에 면회온 2백여명을 체포하여 모두 4백여명의 백성을 죽였다.

是曰 皆報殺四百餘人郡中 不寒而慄. 시왈 개보살사백여인군중 부한이율.
4백여명을 다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정양군의 백성들은 날씨가 춥지 않았는데도 벌벌 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성들을 잔혹하게 죽이고 탄압하여 무고한 백성들이 매우 두려워하며 공포에 떠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부한이율(不寒而慄) 은 몹시 두려운 상황을 형용한 말이다. 무더위 속에서 공포 영화를 즐기는 이들은 바로 이러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참고로 여랑목양(如狼牧羊)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늑대가 양을 기르는 격이라는 뜻으로, 탐관오리가 백성을 착취함을 비유한 말로, 사기(史記) 권122 혹리열전(酷吏列傳)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이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지방의 할거 세력들과 대상인들은 대대적으로 토지를 점령하여,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큰 힘을 가진 세력 집단이 되었다.

한무제는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호족과 대상인들의 세력을 억제하는 정책을 채용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지방 할거세력과 호족, 대상인들의 저항을 야기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정양태수를 지내는 의종(義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본시 도적 출신이었으나, 왕태후의 총애를 받은 누님의 덕택으로 현령이 되었다.

그는 법을 올바르게 적용하여 다스릴 뿐, 신분의 귀천은 따지지 않았다. 한번은 태후의 외손인 수성군(修成君)의 아들을 체포하여 심문한 적이 있었는데, 천자(天子)는 이를 알고 의종을 유능하다고 여겨, 하내(河內)의 도위(都尉)로 자리를 옮기게 하였다.

의종은 부임하자 곧 그 곳의 호족인 양씨(穰氏) 일가를 멸망시켰는데,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이곳 사람들은 두려워서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게 되었다(河內道不拾遺/ 하내도부습유).

한편, 제남(濟南)의 도위(都尉)를 지내며 종실과 호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영성(寧成)은 중형을 받고 고향에 머물고 있었다.

그 즈음 천자가 그를 태수로 임명하려고 하자, 어사대부(御史大夫) 공손홍(公孫弘)이 진언하였다. “신이 산동(山東)의 말단 관리로 있을 때, 영성은 제남(濟南)의 도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이리가 양을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其治如狼牧羊/ 기치여랑목양). 영성에게 백성을 다스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천자는 영성을 함곡관(函谷關)의 도위로 임명하였다. 영성이 도위로 근무한지 1년쯤 지나자, 관(關)을 출입하는 관리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돌았다. “어린 호랑이에게 젖을 먹이는 호랑이를 건드릴지언정 영성의 노여움을 사면 안 된다.”

의종은 하내에서 남양태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의종은 영성이 은퇴하여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종이 남양에 부임하기 위해 관에 도착하자, 영성은 그곳에 나와 겸손하게 그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의종은 거만하게 굴며 그에게 답례조차 하지 않았다.

의종은 남양태수로 부임하자, 제일 먼저 영성의 무고한 일가를 심문하고 그 일족을 모두 죽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관리들과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 틀어박혀 함부로 나돌아 다니지 않았다.

얼마 후, 흉노 원정으로 정양군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천자는 의종을 정양태수로 임명하고 혼란을 막도록 하였다.

의종은 정양군에 부임하자마자, 정양군내의 호족이나 할거 세력들의 반항을 평정한 후, 2백여명의 범죄자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아울러, 사적으로 감옥에 드나들며 죄인들을 면회한 사람들에게 죄수 탈옥을 도왔다는 죄를 적용하여 전원 체포하여 ‘이 자들은 사형에 해당하는 자를 탈옥시키려고 꾀하였다.’라고 논고하여 그 날 중으로 4백여명을 모조리 죽였다.

其後郡中不寒而慄, 猾民佐吏爲治.

(기후군중부한이율 활민좌리위치)
그 후 군내의 백성들은 춥지 않아도 벌벌 떨었으며, 교활한 자들은 관리에게 협력하여 이 일을 도왔다.

후에, 의종은 나랏일을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기시(棄市)의 형에 처하여졌다.

불한이율(不寒而慄)

이 성어는 사기(史記) 卷122 혹리열전 의종(義縱)단락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종(義縱)은 하동(河東) 사람이다(義縱者,河東人也). 소년 시절에 일찍이 장차공(張次公)과 더불어 강도짓을 하며 도적떼에 들어갔다. 의종에게는 의후(義姁)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의술이 좋아 왕태후(王太后)의 총애를 받았다(縱有姊姁, 以醫幸王太后).

왕태후가 의후에게 물었다. “너의 아들이나 형제 중 관리가 되려는 자가 있는가?”

그녀가 대답했다. “아우가 있는데, 품행이 단정하지 못해 관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왕태후는 황제에게 말해서 의후의 동생인 의종을 중랑(中郎)으로 임명했다가 상당군(上黨郡)에 있는 한 현(縣)의 현령으로 전임시켰다.

의종은 엄하고 가혹하게 다스렸고, 온정과 관용을 베푸는 일이 적었기 때문에 현 내에서 체납한 조세가 없었다. 이로 인해 그의 군내에서 제일가는 관리로 추천되었다.

뒤에 그는 장릉(長陵)과 장안(長安)의 현령으로 전임하였는데, 매사 법대로 처리하였으며 귀족과 황제의 인척이지라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심지어 태후의 외손인 수성군(修成君)의 아들 중(仲)까지도 체포해서 심문할 정도였다.
(省略)

이 때에 한나라 군대가 여러 차례 정양(定襄)으로 출병하여 흉노를 공격했는데, 현지의 관리와 백성들은 혼란스러워했고 관습 또한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의종을 정양군의 태수로 파견하였다.

의종은 부임한 후에 정양군의 감옥에서 목에 씌우는 형구(刑具)를 씌우지 않은 2백여 명의 죄수들과 그들을 면회한 빈객과 형제들을 비롯하여 사적으로 죄수들을 돌보았던 2백여 명 등을 모두 체포하여 심문했다.

그리고 의종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사형에 처할 자들을 위해 제멋대로 형구를 풀어준 중범죄를 지었다(為死罪解脫).” 그리고 이 날 바로 그 4백여 명을 사형에 처했다(是日皆報殺四百餘人).

이후부터 정양군의 사람들은 모두 춥지도 않은데 사시나무처럼 떨었고, 교활한 백성들도 관리에게 빌붙어 다스리는 것을 도왔다(其后郡中不寒而栗,猾民佐吏為治).
(省略)

의종은 청렴했고 그의 정무 방법은 질도(郅都; 문제 때 혹리; 원칙주의자)를 본받았다.

무제가 정호궁(鼎湖宮)으로 행차했다가 병이 걸려 오랫동안 앓았다. 그러던 중에 갑작스럽게 병석에서 일어나 감천궁(甘泉宮)으로 행차했는데, 가는 길이 대부분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황제는 격노하여 이렇게 말했다. “의종은 짐이 이 길을 다시 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단 말인가?(縱以我為不復行此道乎?)” 그리하여 내심 의종을 꽤심하게 여겼다.

겨울이 되자 양가(楊可)가 때마침 고민(告緡)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관장하고 있었다. 의종은 이 일에 대해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짓으로 여기고, 자신의 부서 관리들로 하여금 양가의 업무를 돕는 부하들을 체포하였다.

무제는 이 소식을 듣고 두식(杜式)을 파견하여 의종이 법령을 어기고 군주를 능멸한 죄로 의종을 거리에서 참수하게 했다(天子聞, 使杜式治. 以為廢格沮事, 棄縱市).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寒(찰 한)은 ❶회의문자로 집에서는 풀을 깔고 잘만큼이라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艸+艸(맹; 풀), 人(인)의 합자(合字), 춥고 밖에서는 얼음이라는 이수변(冫; 고드름, 얼음)部의 언다는 데서 춥다를 뜻한다. 집안에 풀을 깔고 사람이 누운 모양, 추위를 나타내며, 이수변(冫; 고드름, 얼음)部는 얼음으로 역시(亦是) 추위를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寒자는 ‘차다’나 ‘춥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寒자의 금문을 보면 宀자와 艹자, 人(사람 인)자, 冫(얼음 빙)자가 그려져 있었다. 특히 사람의 발이 크게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는 얼음이 있다. 발아래에 얼음을 그린 것은 집안이 매우 춥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불도 없이 풀(艹)을 깔고 있으니 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운 모습이다. 해서에서는 모습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寒자는 이렇게 변변한 이불도 없이 차가운 방 안에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차다’나 ‘춥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寒(한)은 ①차다, 춥다 ②떨다 ③오싹하다 ④어렵다 ⑤가난하다, 쓸쓸하다 ⑥식히다 ⑦얼다 ⑧불에 굽다, 삶다 ⑨중지하다, 그만두다 ⑩침묵하다, 울지 않다 ⑪천하다, 지체(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낮다 ⑫추위 ⑬절기(節氣)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찰 냉(冷), 서늘할 량(凉), 찰 름(凜)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더울 서(暑), 따뜻할 난(暖)이 있다. 용례로는 정도에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가엾고 딱함을 한심(寒心), 춥고 차가움을 한랭(寒冷), 겨울철에 기온이 급작스레 내려가는 현상을 한파(寒波), 추위를 느끼는 병을 한질(寒疾), 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함을 한미(寒微), 추위와 더위 또는 겨울과 여름을 한서(寒暑), 추위로 말미암아 받은 손해를 한해(寒害), 겨울철의 찬 기운을 한기(寒氣), 살갗에 느끼는 차가운 감각을 한각(寒覺), 찬 기운과 서늘한 기운을 한량(寒凉), 가난하나 깨끗함을 한소(寒素), 몸에 열이 나면서 오슬오슬 춥고 괴로운 증세를 오한(惡寒), 몹시 심한 추위를 혹한(酷寒), 추위를 막음을 방한(防寒), 지독한 심한 추위를 극한(極寒), 몹시 혹독한 추위를 열한(烈寒),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곳으로 옮김을 피한(避寒), 찬바람을 쐬어 생기는 오한을 객한(客寒), 모진 추위나 추위의 괴로움을 고한(苦寒), 배고픔과 추위를 기한(飢寒), 추위를 견딤을 내한(耐寒), 친족이 없이 고독하고 가난함을 단한(單寒),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감을 한래서왕(寒來暑往),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순망치한(脣亡齒寒), 빈한함이 뼈에까지 스민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일컫는 말을 빈한도골(貧寒到骨),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면 건강에 좋음을 이르는 말을 두한족열(頭寒足熱), 외로이 자는 방안의 쓸쓸한 등불이라는 뜻으로 외롭고 쓸쓸한 잠자리를 이르는 말을 고침한등(孤枕寒燈), 봄 추위와 노인의 건강이라는 뜻으로 모든 사물이 오래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춘한노건(春寒老健)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등에 쓰인다.

▶️ 慄(두려워할 률/율)은 형성문자로 栗(률)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栗(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慄(률)은 ①떨리다 ②떨다 ③두려워하다 ④슬퍼하다, 비통해 하다 ⑤오싹하다, 소름이 끼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떨릴 긍(兢)이다. 용례로는 두려워하여 떠는 모양을 율연(慄然), 몹시 두렵거나 큰 감동을 느끼거나 하여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을 전율(戰慄), 두려워하여 부들부들 떪을 췌율(惴慄), 두려워서 다리가 떨림을 고율(股慄), 무서워 벌벌 떪을 공율(恐慄), 부끄러워서 떨며 두려워함을 괴율(愧慄), 두렵거나 무서워서 몸을 떪을 진율(震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끔찍함을 참율(慘慄), 몸을 옹송그리고 벌벌 떪을 축율(縮慄), 부들부들 떨며 무서워함을 계율(悸慄), 추워서 벌벌 떪을 늠율(凜慄), 무서워서 떪을 순율(恂慄), 두려워서 떪을 포율(怖慄), 춥지 아니한데 공포에 떨린다는 뜻으로 포악한 정치로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불한이율(不寒而慄)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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