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구우후(鷄口牛後)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뜻으로, 큰 조직의 말석을 차지하기 보다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편이 낫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鷄 : 닭 계(鳥/10)
口 : 입 구(口/0)
牛 : 소 우(牛/0)
後 : 뒤 후(彳/6)
출전 :
전국책(戰國策) 한책(韓策)
사기(史記) 소진전(蘇秦傳)
전국시대 중기, 진(秦)나라의 세력이 점차로 커지면서 나머지 여섯 나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두려움을 느꼈던 나머지 여섯 나라는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외교적인 동맹 관계를 맺으려 했는데, 이를 주도한 것이 바로 합종책을 주장했던 소진(蘇秦)이었다.
소진은 진나라와 대적하고 있는 나머지 육국의 왕을 찾아다니며 육국이 연합하여 강한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소진의 유세에 육국의 왕들이 모두 설득을 당해 하나같이 “나라를 들어 선생의 말에 따르겠다”며 소진을 재상으로 초빙했다.
소진은 세 치 혀로 여섯 나라의 합종을 이끌어 내고, 일거에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소진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각 나라의 사정과 왕들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한 기초 위에 각국의 상황에 맞게 논리적으로 유세를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소진은 한(韓)나라에 가서는 다음과 같이 선혜왕(宣惠王)을 설득했다.
大王事秦, 秦必求宜陽, 成皐.
대왕께서 진을 섬긴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의양(宜陽)과 성고(成皐)를 요구할 것입니다.
大王事秦, 秦必求宜陽, 成皐.
금년에 땅을 떼어 주면 내년에 또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棄前功而受後禍.
떼어 주면 줄 땅이 없게 되고, 주지 않으면 전에 땅을 주었던 공은 없어지고 화를 입게 됩니다.
且大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 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結禍者也, 不戰而地已削矣.
또한 대왕의 땅은 국한되어 있는데 진의 요구는 끝이 없으니 국한된 땅을 가지고 무한한 요구를 거스르는 것을 가리켜 원한을 사고 화를 초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臣聞鄙語曰, 寧爲鷄口, 無爲牛後.
속담에 닭의 입(부리)이 될지언정 소의 뒤(항문)는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今大王西面交臂而臣事秦, 何以異於牛後乎.
지금 대왕께서 진을 섬긴다면 소의 뒤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夫以大王之賢, 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爲大王羞之.
대왕의 현명함과 한나라의 강대함을 가지고 소의 뒤가 되었다는 오명을 얻으면 신도 수치스럽다고 느끼게 됩니다.
於是韓王勃然作色, 攘臂瞋目, 按劍仰天太息曰,
한왕은 얼굴빛이 변하더니 팔을 걷어붙이고 두 눈을 부릅뜨며 칼을 꽉 잡고 하늘을 향해 탄식하며 말했다.
寡人雖不肖, 必不能事秦.
과인은 비록 불초하지만 반드시 진나라를 섬기기 않을 것이오.
今主君詔以趙王之敎, 敬奉社稷以從.
지금 그대가 조왕(趙王)의 가르침을 전해 주었으니(조왕도 그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니) 국가 사직을 들어 그대의 가르침에 따르겠소.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나온다.
당시 한나라는 진나라에 가장 인접해 있었고, 또 육국 중에서 제일 약한 나라였다. 그래서 진나라의 공격에 대한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육국 중에서 첫 번째로 멸망당했다.
소진은 한나라의 이런 상황에 맞게, ‘보잘것없이 작은 닭에 붙어 있지만 먹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입이 될 것인가, 아니면 덩치 큰 소에 붙어 있지만 입이 먹어 소화시키고 남은 것을 배설이나 해 주고 뒤치다꺼리나 하는 항문이 될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짐으로써 한나라 왕의 자존심을 적당히 건드려 가며 유세를 하여 한나라 왕을 합종에 참여하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소진이 한왕을 설득하며 말한 속담에서 유래하여 ‘계구우후’는 큰 조직의 말석을 차지하기보다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편이 낫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계구우후의 구(口)와 후(後)는 신체의 맨 앞부분과 맨 뒷부분을 상징하는 입과 꼬리가 아니라 먹는 것을 즐기는 입과 입이 먹은 것을 배설이나 해 주는 뒤(항문)라는 뜻이다.
계구우후에 대해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닭 입은 비록 작지만 음식을 들인다. 소 항문은 비록 크지만 분변을 내보낸다.
鷄口雖小, 猶進食.
牛後雖大, 乃出糞也.
일부 공무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계장이나 면장이나 직급은 같지만 광역자치단체에서 계장으로 있는 것보다는 시골에 면장으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어? 계구우후라고, 광역자치단체에 있으면 말단 간부로 갖은 궂은일을 다 뒤치다꺼리해야 되지만, 면장으로 가면 그 면에서 서열 1위의 기관장으로서 입만 가지고 다니면서 아랫사람들에게 지시만 내리면 되잖아.”
계구우후(鷄口牛後)
닭의 주둥이와 소의 꼬리라는 뜻으로, 큰 단체의 꼴찌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오히려 나음을 이르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의 한책(韓策)과 사기(史記)의 소진전(蘇秦傳)에 나오는 말이다. 계구(鷄口)는 닭의 주둥이, 즉 닭의 머리를 말하며 우후(牛後)는 소의 궁둥이를 말한다.
계(鷄)는 큰 배 해(奚)에 새 조(烏)를 짝지은 글자로, 유달리 배가 큰 새가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牛)는 정면(正面)에서 본 소의 머리 모양을 본 퍼 만든 글자이다. 주로 뿔 모양의 특징을 살려 상징적(象徵的)으로 표현한 글자이다.
계구우후(鷄口牛後)는 사기(史記)의 소진전(蘇秦傳)에 나오는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 勿爲牛後], 즉 ‘계구(鷄口)가 될지언정 우후(牛後)는 되지 말라.’ 에서 유래된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중엽(中葉), 동주(東周)의 도읍(都邑) 낙양(洛陽)에 소진(蘇秦: ?∼B.C.317)이란 종횡가(縱橫家:모사)가 있었다. 그는 동쪽 제(齊)나라로 와 귀곡자(鬼谷子)라는 스승 밑에서 배웠다.
그는 합종책(合縱策)으로 입신(立身)할 뜻을 품고, 당시 최강국(最强國)인 진(秦)나라의 동진(東進) 정책(政策)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6국(國)을 순방(巡訪)하던 중 한(漢)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알현(謁見)하고 설득(說得)하는 내용(內容)에 계구우후(鷄口牛後) 말이 있다.
“그렇습니다. 대왕(大王)께서 진(秦)을 섬긴다면 진(秦)나라는 반드시 한(韓)의 서쪽인 의양과 북쪽의 견고한 성(城) 성고를 요구(要求)할 것입니다. 이렇게 요구(要求)하는 대로 떼어주면 다음해에는 또 다른 땅을 할양(割讓)하도록 압력(壓力)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압력(壓力)에 굴복(屈伏)하다 보면 자꾸만 땅을 떼어줄 수밖에 없게 되고 나중에는 떼어줄 땅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땅을 떼어주지 못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상납(上納)은 허사(虛事)로 돌아가고 결국 진(秦)나라 군사가 쳐들어오고야 말 것입니다. 국한(局限)된 땅을 가지고 무한(無限)한 요구(要求)에 응하는 것을 가리켜 이른바 원한(怨恨)을 사고 화(禍)를 초래한다고 합니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저는 이런 속담(俗談;비언)을 들었습니다. 지금 대왕(大王)께서 진(秦)을 섬긴다면 소의 꼬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한(漢)의 강대(强大)함과 대왕(大王)의 현명(賢明)함을 생각할 때 소의 꼬리가 된다는 것은 몹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한(漢)의 선혜왕(宣惠王)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소리쳤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진(秦)의 계략(計略)에 넘어갈 뻔하였소. 이제 다시는 진(秦)을 섬길 생각을 품지 않겠소. 연(燕) 조(趙)나라도 그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하니 나도 그대의 뜻을 따르겠소.”
이런 식으로 6국(國)의 군왕(君王)을 설득(說得)하는 데 성공한 소진(蘇秦)은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宰相)을 겸임(兼任)하는 대정치가(大政治家)가 되었다. 이때부터 계구우후(鷄口牛後)는 집단(集團)의 말석(末席)보다는 작은 집단(集團)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의미(意味)로 쓰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큰 야망을 갖는다. 그러니 보니 작은 것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계획을 세우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할 일이다. 그것이 바로 계구우후(鷄口牛後)의 교훈일 것이다.
▶️ 鷄(닭 계)는 ❶형성문자로 鶏(계)는 통자(通字), 鸡(계)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조(鳥;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奚(해, 계)로 이루어졌다. 새벽을 알리는 새(鳥)의 뜻이 합하였으며 닭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鷄자는 ‘닭’을 뜻하는 글자이다. 鷄자는 奚(어찌 해)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奚자는 상투를 손으로 잡은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닭 볏으로 응용되었다. 사실 갑골문에 나온 鷄자는 좀 더 직관적이었다. 닭 볏과 다리, 꽁지까지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도 이것이 닭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소전으로 넘어오면서 닭의 볏은 奚자가 대신하게 되었고 隹(새 추)자가 더해지면서 볏이 있는 새를 뜻하는 雞(닭 계)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해서에서는 隹자가 鳥자가 바뀌면서 지금은 鷄자가 ‘닭’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鷄(계)는 ①닭(꿩과의 새) ②화계(花鷄: 되새. 되샛과의 겨울 철새) ③폐백(幣帛)의 하나 ④성(姓)의 하나 ⑤현(縣)의 이름 ⑥산(山)의 이름 ⑦물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닭의 알 달걀을 계란(鷄卵), 닭의 울음을 계명(鷄鳴), 닭고기를 계육(鷄肉), 닭을 가두어 두는 장을 계사(鷄舍), 닭과 개를 계구(鷄狗),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의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의 계구(鷄口),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계간(鷄姦), 밤눈이 어두워 밤에 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계맹(鷄盲), 닭을 잡아서 그 뼈나 눈을 보고 치는 점을 계복(鷄卜), 닭이 새벽을 알림을 계신(鷄晨),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으로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을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으로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을 계구(鷄口), 닭의 무리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의 무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계군(鷄群), 독서하는 방을 계창(鷄窓), 닭을 기르는 일을 양계(養鷄), 집에서 기르는 닭을 가계(家鷄), 닭을 잡아서 죽임을 도계(屠鷄), 싸움 닭을 투계(鬪鷄), 썩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장을 빼고 털을 뽑고 얼린 닭을 동계(凍鷄), 묵은 닭을 노계(老鷄), 때 아니게 낮에 우는 닭을 오계(午鷄), 어미 닭을 모계(母鷄), 털이 흰 닭을 백계(白鷄),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한 사람을 계군일학(鷄群一鶴), 닭의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계군고학(鷄群孤鶴),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으로 복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만나도 덕을 못 본다는 말을 계란유골(鷄卵有骨), 동쪽 닭과 서쪽 개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뜻으로 닭 우는 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하여 인가가 잇대어 있음을 계견상문(鷄犬相聞),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는 뜻으로 인가나 촌락이 잇대어 있다는 계명구폐(鷄鳴狗吠),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계명구도(鷄鳴狗盜), 닭 울음소리를 묘하게 잘 흉내 내는 식객을 계명지객(鷄鳴之客),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뜻으로 큰 단체의 말석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말을 계구우후(鷄口牛後), 닭 울음의 도움이란 뜻으로 어진 아내의 내조를 계명지조(鷄鳴之助), 살갗은 닭의 가죽처럼 야위고 머리칼은 학의 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늙은 사람을 계피학발(鷄皮鶴髮), 닭과 돼지가 한데 어울린다는 뜻으로 같은 고향 사람끼리 서로 친목을 도모함을 계돈동사(鷄豚同社), 닭과 집오리가 먹이를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다툰다는 뜻으로 여염의 사람들이 서로 다툼을 계목쟁식(鷄鶩爭食), 닭 대가리는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남의 위에 서야지 남의 꽁무니에 따라 다녀서는 안됨을 계시우종(鷄尸牛從), 몸이 쇠약해서 침상에 기대어 몸을 지탱함을 계골지상(鷄骨之床), 다른 사람의 권세에 빌붙어 승진하는 것을 계견승천(鷄犬昇天), 맨드라미 열매의 과육이라는 뜻으로 여성의 젖가슴을 계두지육(鷄頭之肉) 등에 쓰인다.
▶️ 口(입 구)는 ❶상형문자로 입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러나 다른 글자의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는 口(구)꼴의 자형(字形)은 입의 뜻인 경우 뿐만은 아니다. 品(품)과 같이 물품을 나타내거나 各(각)과 같이 장소를 나타내기도 하고, 石(석)과 같이 돌을 나타내기도 한다. ❷상형문자로 口자는 '입'이나 '입구',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口자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본떠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口자를 보면 ㅂ자 모양을 하고 있어 위아래의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네모난 모습으로 바뀌면서 더는 상하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口자는 입을 그린 것이니만큼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대부분이 '입'이나 '소리'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출입구'나 '구멍'과 같이 단순히 모양자로 응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口(구)는 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 (1)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의 뜻 (2)작은 구멍, 구멍이 나 있는 곳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입 ②어귀, 사람이 드나들게 만든 곳 ③인구(人口) ④주둥이, 부리, 아가리 ⑤입구(入口), 항구(港口), 관문(關門) 따위 ⑥구멍, 구멍이 난 곳 ⑦자루, 칼 등을 세는 단위 ⑧말하다, 입 밖에 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에는 연설이 끝이나 시위 행진 때 외치는 간결한 문구를 구호(口號), 구설을 듣게 되는 운수를 구설수(口舌數), 변명할 재료를 구실(口實), 음식을 대하거나 맛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먹고 싶은 충동을 구미(口味), 말로써 베풀어 아룀을 구술(口述), 마주 대해 입으로 하는 말을 구두(口頭), 흥정을 붙여 주고받는 돈을 구문(口文), 보통 회화로 쓰는 말을 구어(口語), 글을 읽을 때 다른 말을 아니하고 책에 집중하는 일을 구도(口到), 말로 전함을 구전(口傳), 입과 입술을 구순(口脣), 단체 행동의 동작을 일제히 하도록 부르는 호령을 구령(口令), 사람의 수효를 구수(口數), 집안 식구나 집안의 사람 수효를 가구(家口), 한 나라 또는 일정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입을 다물어서 봉함을 함구(緘口),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고 하는 항구(港口), 들어가는 어귀를 입구(入口),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함을 금구(噤口), 나가는 곳을 출구(出口), 강물이 큰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하구(河口),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을 이르는 말을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말과 하는 짓이 아직 유치함을 일컫는 말을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는 뜻으로 말조심을 하라고 경계하는 말을 구화지문(口禍之門),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으로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구약현하(口若懸河), 말과 마음으로 전하여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구전심수(口傳心授), 입과 귀의 간격이 가깝다는 뜻으로 남에게서 들은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남에게 옮김 곧 자기의 몸에 붙지 않은 학문을 이르는 말을 구이사촌(口耳四寸), 입이 관문과 같다는 뜻으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구자관야(口者關也), 살아 나갈 걱정 곧 먹고 살 근심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구복지루(口腹之累), 말로는 옳다 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르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구시심비(口是心非), 남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전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이르는 말을 구이지학(口耳之學), 그 입에 오르면 온전한 사람이 없음이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나 결점만을 들추어 좋게 말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구무완인(口無完人),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그린다는 뜻으로 열과 정성을 다하여 교육한다는 말을 구강지화(口講指畫) 등에 쓰인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
▶️ 後(뒤 후/임금 후)는 ❶회의문자로 后(후)는 간자(簡字)이다. 발걸음(彳; 걷다, 자축거리다)을 조금씩(문자의 오른쪽 윗부분) 내딛으며 뒤처져(夂; 머뭇거림, 뒤져 옴) 오니 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後자는 ‘뒤’나 ‘뒤떨어지다’, ‘뒤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後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幺(작을 요)자, 夂(뒤져서 올 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後자는 족쇄를 찬 노예가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後자를 보면 족쇄에 묶인 발과 彳자가 그려져 있었다.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으니 걸음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後자는 ‘뒤떨어지다’나 ‘뒤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後(후)는 (1)무슨 뒤, 또는 그 다음. 나중 (2)추후(追後) 등의 뜻으로 ①뒤 ②곁 ③딸림 ④아랫사람 ⑤뒤떨어지다 ⑥능력 따위가 뒤떨어지다 ⑦뒤지다 ⑧뒤서다 ⑨늦다 ⑩뒤로 미루다 ⑪뒤로 돌리다 ⑫뒤로 하다 ⑬임금 ⑭왕후(王后), 후비(后妃) ⑮신령(神靈)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앞 전(前),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뒤를 이어 계속 됨을 후속(後續), 이후에 태어나는 자손들을 후손(後孫), 뒤로 물러남을 후퇴(後退), 일이 지난 뒤에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을 후회(後悔), 같은 학교를 나중에 나온 사람을 후배(後輩),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뒷부분을 후반(後半), 핏줄을 이은 먼 후손을 후예(後裔), 뒷 세상이나 뒤의 자손을 후세(後世), 뒤에서 도와줌을 후원(後援), 뒤의 시기 또는 뒤의 기간을 후기(後期), 중심의 뒤쪽 또는 전선에서 뒤로 떨어져 있는 곳을 후방(後方),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맨 마지막을 최후(最後), 일이 끝난 뒤를 사후(事後),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후(午後), 바로 뒤나 그 후 곧 즉후를 직후(直後), 그 뒤에 곧 잇따라 오는 때나 자리를 향후(向後), 앞과 뒤나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후생가외(後生可畏), 때 늦은 한탄이라는 후시지탄(後時之嘆),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뛰어날 때 이르는 말을 후생각고(後生角高), 내세에서의 안락을 가장 소중히 여겨 믿는 마음으로 선행을 쌓음을 이르는 말을 후생대사(後生大事),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을 후회막급(後悔莫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