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맥직(一條驀直)
하나의 길로만 부지런히 똑바로 가라는 뜻으로, 좌고우면하지 말고 목표만 바라보면서 하나의 길로만 매진하는 말이다.
一 : 한 일(一/0)
條 : 가지 조(木/6)
驀 : 말탈 맥(馬/11)
直 : 곧을 직(目/3)
가장 빠른 지름길은 목표와 나 사이에 긋는 일직선이다. 그러나 그 길은 온갖 장애를 만나 꺾이고 휘어지게 마련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목표만 바라보면서 한 길로 매진해야 한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걸어서 이동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었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는 걸어서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자동차나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고, 점점 걷는 것에서 멀어졌다.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우리의 삶도 빨라졌다. 무엇이든 빨리 생산하고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자동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마을을 돌아다녀 보면 우리 동네가 얼마나 새롭고 놀라운 것으로 가득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작은 편의점부터 꽃집, 세탁소, 수선집, 애견용품점, 단팥빵 만드는 집, 철물점,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커피 가게, 그 사이를 오가며 웃음을 주고받는 사람들… 우리 동네의 진면목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런 가게들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사는 동네인데도 빠른 속도 속에서 잃어버린 아름다운 모습 아니었던가?
오직 자본이 가리키는 저 황금탑을 향해 앞만 보며 전속력으로 달려갔던 탓에 창밖으로 지나치는 우리의 이웃을 그저 배경화면으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길은 세상을 이어주는 핏줄 같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 삶의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道)’는 우리가 다니는 길을 의미하지만, 인간이 당연히 가야 할 윤리적 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길은 언제나 우리 앞에 핏줄처럼 촘촘히 펼쳐져 있지만, 우리는 그 길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오직 자본의 달콤함이 지시하는 대로 길을 가다 보니 촘촘한 길의 맥락을 잃어버리고 헤매게 되었다.
내가 길을 이용해 나를 포함한 사회 공동의 목표, 공동의 윤리를 향해 가야 했는데, 길이 나를 자본의 타락한 삶으로 인도하고 있다. 물론 자본의 속성이 타락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우리의 삶이 추악했으므로 타락한 자본이 되었을 것이다.
지름길에 대한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길을 오래 걷다 보면 목표에 좀 더 빨리 도달하기 위해 지름길을 찾게 마련이다. 가장 빠른 지름길은 누구나 안다.
나의 목표가 설정되면 그 목표와 나 사이를 일직선으로 긋는 것이다. 그 길이 가장 빠르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렇지만 그 직선은 언제나 수많은 변수에 의해 꺾인다. 그렇게 길은 작은 갈림길로 나뉘고, 우리는 그 앞에서 선택하면서 인생을 만들어간다. 그 변수 때문에 삶은 힘들어지기도 하고 즐거워지기도 한다.
희로애락의 길목에서 번민과 선택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목표를 향한 직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앞에 닥친 고비를 넘는 데 급급해 허덕인다.
삶의 황혼녘이나 돼야 비로소 돌아온 인생길을 살펴보지만, 이미 세월은 자신을 너무도 멀리까지 밀어놓았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스님이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어떤 할머니에게 물었다. “지름길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합니까?”
그러자 그 할머니가 대답했다. “똑바로만 걸어가세요.”
순간 그 스님은 깨우쳤다고 한다. 일조맥직(一條驀直)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하나의 길로만 부지런히 똑바로 가라는 뜻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목표만 바라보면서 하나의 길로만 매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조맥직의 자세다.
이 말은 명나라의 위대한 유학자 왕부지(王夫之)의 ‘독사서대전설(讀四書大全說)’에서 그 용례가 나온다.
왕부지는 자신의 목표가 가까운 곳에 있든 먼 곳에 있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지 말고 오직 자기 앞에 놓인 똑바른 길 하나만 바라보고 걸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또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지름길만 찾아서 오직 그 길을 열심히 걸어간다고 해서 ‘일조맥직’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자본이 우리 앞에 쌓아놓은 거대한 황금탑만 향하는 길만 보고 걸어간다든지 권력이 유혹하는 왕좌를 향해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어찌 일조맥직의 정신이라고 하겠는가. 하나의 길을 평생토록 걸어가기 위해서는 걷는 사람의 깊은 내공이 선결되어야 한다.
하나의 길만 바라보고 걸어가라는 충고는 참으로 조심스럽다. 그것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폭력적 길을 의미하기도 하고 강직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직한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연상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일조맥직(一條驀直)
하나의 길로만 부지런히 똑바로 가라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폭력적 방식의 길은 대체로 길을 걸어가는 사람 개인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배치돼 있다. 내 생각만 옳고 내 행동만 의로우니 다른 사람은 오직 자신이 가는 길만 따라오면 된다는 것이다.
강직한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길은 이와 전혀 다르다. 그 길은 개인의 욕망과 이익만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배치돼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얼굴을 보이는 것이 지름길이다.
똑같은 지름길인데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 자신의 수행과 관련 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나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족의 문제, 지역사회의 문제, 국가의 문제, 세계의 문제, 우주의 문제로 점점 의식이 확대돼가는 것을 경험한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하는 공부라면 그것을 어찌 공부라고 할 수 있으랴. 제대로 된 공부를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동안 우리는 세상의 복잡한 길이 만드는 표면적 지도를 넘어 목표를 향한 가장 빠른 하나의 길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어느 시대나 한 집단의 지도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 오직 하나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려 한다. 그렇게 걷는 자신의 발자국이 구성원들의 공동선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깊은 공부에서 우러나오는 명철한 눈이 지도자에게는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자칫 그가 걷는 길이 공동선을 빙자한 개인의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 되기 쉽다.
학급 반장이 걷는 하나의 길에도, 대통령이 걷는 하나의 길에도 그 지위만큼의 무게가 부여된다.
수시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혹은 뒤를 따라 걷는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수양을 위한 공부를 꾸준히 할 때 비로소 ‘일조맥직’의 삶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들어 둘을 얻음 또는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한결같은 참된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얻는다는 뜻으로 노력함이 없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확천금(一攫千金), 한 번 돌아보고도 성을 기울게 한다는 뜻으로 요염한 여자 곧 절세의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고경성(一顧傾城),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이나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일전쌍조(一箭雙鵰),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일일천추(一日千秋),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생각과 성질과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을 일컫는 말을 일척건곤(一擲乾坤),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또는 문장이나 글이 명쾌함을 일컫는 말을 일사천리(一瀉千里),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일컫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이나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을 일컫는 말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구이언(一口二言) 등에 쓰인다.
▶️ 條(가지 조)는 ❶형성문자로 条(조)는 통자(通字), 条(조)는 간자(簡字), 樤(조)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攸(유, 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攸(유)는 쭉쭉 뻗은 모양으로, 修(수; 가지런히 하다)와 뜻이 통한다. 條(조)는 쭉쭉 뻗은 새 가지, 줄기, 한 갈래 한 갈래로 나눈 물건이나 일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條자는 ‘나뭇가지’나 ‘맥락’, ‘조목’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條자는 木(나무 목)자와 攸(바 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攸자는 회초리로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회초리질 하는 모습을 그린 攸자에 木자를 결합한 條자는 회초리의 재질인 ‘나뭇가지’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이처럼 條자는 나무의 곁가지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지만, 나뭇가지가 나무에서 파생된 것처럼 조항도 법을 중심으로 파생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항목’나 ‘조항’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條(조)는 (1)몫을 뜻하는 말. 일부 명사(名詞)나 대명사(代名詞) 아래 쓰임 (2)조목(條目), 항목(項目)의 뜻을 나타내는 말 (3)어떤 단서(端緖)나 근거(根據)로 될 만한 것이라는 말 등의 뜻으로 ①가지 ②조리(條理) ③맥락(脈絡) ④조목(條目) ⑤끈, 줄 ⑥법규(法規) ⑦유자(柚子)나무 ⑧통(通)하다 ⑨길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이 성립되거나 발생하는 데 갖추어야 하는 요소를 조건(條件), 주로 법률이나 규정 등의 차례로 나누어 정해 놓은 낱낱의 조나 항목이나 조항을 조목(條目), 낱낱이 들어 벌인 일의 가닥을 조항(條項), 조목을 세워서 약정한 언약을 조약(條約), 일을 하여 가는 도리를 조리(條理), 조목으로 나누어 적은 글을 조문(條文), 밭에 고랑을 치고 줄이 지도록 씨앗을 뿌리는 일을 조파(條播), 분위기가 매우 쓸슬함을 소조(蕭條), 굳게 믿고 있는 생각을 신조(信條), 하나하나의 조목을 개조(個條), 무슨 일에 어떤 조건이 붙은 것을 조건부(條件附),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아무런 조건이 없음을 무조건(無條件), 도리에 어긋나거나 불합리한 일을 부조리(不條理), 아무 조건도 없는 것을 무조건적(無條件的), 어떠한 일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조건을 전제조건(前提條件), 금옥과 같은 법률이라는 뜻으로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규칙이나 교훈을 금과옥조(金科玉條), 썩 엄하게 규정을 세움을 엄립과조(嚴立科條), 나라와 나라 사이의 우의를 위하여 맺는 조약을 우호조약(友好條約), 동산의 풀은 땅속 양분으로 가지가 뻗고 크게 자란다는 말을 원망추조(園莽抽條) 등에 쓰인다.
▶️驀말 탈 맥(馬/11)
▶️ 直(곧을 직, 값 치)은 ❶회의문자로 十(십)과 目(목)과 乚(숨을 은; 隱의 옛자)의 합자(合字)이다. 十(십)과 目(목)을 합(合)하여 열개(여러 개)의 눈(많은 사람)으로 숨어 있는(乚) 것을 바르게 볼 수 있다는 뜻을 합(合)하여 바르다, 곧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直자는 ‘곧다’나 ‘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直자는 目(눈 목)자와 十(열 십)자, 乚(숨을 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直자의 갑골문을 보면 단순히 目(눈 목)자 위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눈이 기울어지지 않았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눈 위에 획을 하나 그려 넣었던 直자는 금문에서부터 눈을 감싼 형태의 획이 하나 더해져 ‘곧다’라는 뜻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直자는 때로는 ‘가격’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가격이란 정확해야 하기에 ‘바르다’라는 의미가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直(직, 치)은 (1)이직(理直)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곧다, 굳세다 ②바르다, 옳다③굽지 아니하다 ④기울지 아니하다 ⑤부정(不正)이 없다, 사(私)가 없다 ⑥펴다, 곧게 하다 ⑦꾸미지 아니하다 ⑧온순하다 ⑨억울함을 씻다 ⑩당하다, 대하다 ⑪대적하다 ⑫바루다, 고치다 ⑬모시다, 시중들다 ⑭곧, 즉시 ⑮바로 ⑯일부러 ⑰다만, 겨우 ⑱바른 도(道), 바른 행위(行爲) ⑲숙직(宿直)⑳세로 등의 뜻과 값 치의 경우는 ⓐ값, 물가(치) ⓑ품삯(치) ⓒ만나다, 당하다(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를 정(正), 곧을 정(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굽을 곡(曲)이다. 용례로는 중간에 매개나 거리 간격이 없이 바로 접함을 직접(直接), 두 점 사이를 가장 짧은 거리로 연결한 선을 직선(直線), 수평선과 수직선이 이루는 각을 직각(直角), 바로 눈에 보임을 직관(直觀), 바른 대로 알리거나 고해 바침을 직고(直告), 두 직선 또는 두 평면이 직각으로 만나는 일을 직교(直交), 다른 곳을 들르지 않고 곧장 목적지로 들어가거나 들어옴을 직입(直入), 일이 생기기 바로 전을 직전(直前), 바로 그 아래 곧장 그 밑을 직하(直下), 실정을 바른대로 말함을 직토(直吐), 있는 그대로 베껴 씀을 직사(直寫), 올바르고 착실함을 직실(直實), 원의 지름을 직경(直徑), 직접적로 예속됨을 직속(直屬), 거짓으로 꾸미거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음을 솔직(率直),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성품이 바르고 곧음을 정직(正直), 몸 따위가 굳어서 뻣뻣하게 되는 것을 경직(硬直), 똑바로 드리운 모양을 수직(垂直), 옳고 그름이나 굽음과 곧음을 곡직(曲直), 어리석고 고지식함을 우직(愚直), 그 날 그 날의 당직을 일직(日直), 마음이 굳세고 곧음을 강직(剛直), 곧게 바로 비치는 광선을 직사광선(直射光線), 직계에 속하는 가족을 직계가족(直系家族), 지나친 정직은 도리어 정직이 아니다는 직궁증부(直躬證父), 인정에 벗어난 신의를 직궁지신(直躬之信), 곧이 곧대로 재빨리 나아간다는 직왕매진(直往邁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