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유학의 심성론(心性論)에서 심(心)의 양면성에 관한 학설이다. 즉,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구별하여 설명한 이론이다.
人 : 사람 인(人/0)
心 : 마음 심(心/0)
道 : 길 도(辶/10)
心 : 마음 심(心/0)
說 : 말씀 설(言/7)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은 조선시대 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주창한 심성론(心性論) 중 핵심적인 개념으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구별하여 설명한 이론이다.
도심(道心)은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마음으로, 이(理)에 근거한 마음, 성선설의 이상적인 인간 마음, 선을 실현하려는 본성적 의지를 말한다. 인심(人心)은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작용하는 마음으로, 기(氣)에 영향을 받는 현실적 마음과, 좋고 나쁨이 뒤섞여 있고, 욕망(욕구, 감정 등)이 중심에 있는 마음이다.
중용 제1장에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세하니, 정밀히 살펴서 붙들어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고 하였다. 이황은 이 구절을 바탕으로, 인심과 도심은 각각 다른 근원과 작용을 가지며 도심이 인심을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주자(朱子)의 학설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더욱 엄격히 나누어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의 기반 위에서 전개했다.
이이(李珥)는 이황의 구분이 너무 엄격하게 둘을 나누었다고 보고, 인심과 도심은 하나의 마음에서 나오는 두 측면일 뿐, 본질적으로 같은 마음의 작용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심일원론(心一元論)이다. 이 개념은 퇴계학(退溪學)의 중요한 기반이 되며, 조선 성리학 논쟁에서 핵심 주제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성리 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은 원래 선한가?', '욕망은 나쁜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황은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면서, 마음에는 선한 본성을 따르려는 마음(道心)과 욕망과 감정이 섞인 마음(人心)이 함께 있다고 보았다.
인심(人心)은 인간의 마음, 즉 일반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욕망을 포함한 마음으로 기쁨, 분노, 슬픔, 욕망 등과 관련이 있으니 잘 다스리지 않으면 사욕(私欲)으로 흐를 수 있다. 도심(道心)은 도(道)의 마음, 즉 하늘의 이치, 도덕적 진리를 따르려는 마음으로 양심, 도덕적 판단,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작고 미세하여 쉽게 놓치기 쉬우나, 매우 중요하다.
사람 마음 속에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세하므로 정밀히 살펴서(惟精) 오로지 하나로 집중하고(惟一) 중용을 지켜야 한다(允執厥中). 즉, 욕망과 감정이 넘치는 인심에 끌리지 말고, 양심과 도리에 따르는 도심을 잘 살펴서 따르라는 것이다.
인심은 말(馬)이고, 도심은 마부(馬夫)이다. 말은 힘이 세고 어디로든 달릴 수 있지만, 방향을 잃으면 위험하다. 마부가 제대로 고삐를 쥐고 길을 인도해야 말도 바르게 달릴 수 있다.
인간은 감정도 있고 욕망도 있지만, 그 안에 양심과 도덕적 기준도 함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두 마음 중에서 어떤 것을 주인으로 세우느냐이다. 이황은 양심(도심)을 주체로 삼고, 감정이나 욕망(인심)은 잘 다스려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사람의 마음이란 매우 오묘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 대한 관심은 오랜 것으로 보이며, 인심도심설의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중국 철학사에서 인심도심설에 대한 문제가 처음 나타난 것은 기록상으로는 요순시대라고 본다. 이는 중국의 고전인 서경(書經)의 기록에 근거를 둔 것이다. 서경의 대우모편(大禹謨篇)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희미하니, 오직 정(精)하고 일(一)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리라(人心惟危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이 말은 중국 고대의 순(舜) 임금이 자신의 임금 자리를 우(禹)에게 넘겨주면서 마음을 조심하고 살피라는 뜻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열여섯 글자의 한자어에 담긴 뜻이 매우 함축적이어서 보다 상세한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
후대에 논어나 순자와 같은 책 인심도심과 관련된 구절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해석은 만족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2세기 송나라의 주희(朱熹)에 이르러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중용의 머릿글에서 인심도심의 문제에 의의를 부여하고,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 일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은 하나뿐이다. 하지만, 인심과 도심에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은 마음이 혹은 형기(形氣)의 사사로움(私)에서 나오기도 하고, 혹은 성명(性命)의 올바름(正)에서 근원하기도 해, 그 지각함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심은 위태해서 불안하고, 도심은 미묘해서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면 누구나 형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심, 도심이 한 마음 속에 섞여 있음에도 그것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위태로운 인심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미묘한 도심은 더욱 미묘해져서 천리(天理)의 공(公)이 마침내 인욕(人欲)의 사(私)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정(精)하면 인심과 도심의 사이를 살펴서 섞이지 않는 것이요, 일(一)하면 그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서 이로부터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주자의 글에 의하면, 인심이란 대체로 인간의 신체적 기운에서 나타나는 것이요, 도심이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볼 때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은 도심이요, 그 자체로서 부도덕한 것은 아니지만, 신체적인 기운에 따라서 부도덕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은 것은 인심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원래는 한 마음이지만, 그것이 작용할 때 의리를 따라서 나타나면 도심이요, 신체상의 어떤 욕구를 따라서 나타나면 인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심에 대해서는 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인심에 대해서는 선한 경우와 악한 경우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심이란 곧 도덕적인 마음이다. 이것이 순수하게 착한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타고날 때부터 착하다고 보는 것(性善說)에 근거를 둔다. 그리하여 도심은 인간에게 있는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마음은 일단 인간의 감각적인 욕구가 배제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양심에 따라서 행동한다면, 이것이 곧 도심이 나타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심은 성질상 매우 미묘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깊은 곳을 잘 살피지 않으면 도심을 깨달을 수 없고, 그러한 점에서 욕심에 흐르기 쉽다. 도심은 도덕적인 마음이지만, 사람은 욕심이 발동하기가 쉽기 때문에 '도심은 희미하다(道心惟微)'고 서경에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도심에 비해 인심이란 그 자체를 부도덕한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항상 부도덕으로 흘러 갈 위험성이 있는 마음이다. 즉, 인심의 성질은 위태로운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감각적인 욕구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그 만큼 맹목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배가 고플 때 먹고 싶은 것이나, 추울 때 따뜻하게 입고 싶은 것, 정기가 왕성해 이성(異性)을 생각하는 일 등은 도덕이 아주 높은 사람도 거절하기가 힘들다.
일상 생활에서 이러한 마음은 아주 자주 일어나며, 그 만큼 그 정도를 초과할 위험성이 높다. 주희의 표현대로 인심은 위태해서 불안한 것이다. 바로 서경에서 “인심은 위태하다(人心惟危)”고 표현한 까닭이다.
문제는 인심을 인욕 자체로 볼 수 있느냐에 있다. 인욕이란 부도덕한 측면이 매우 강한 경우를 말한다. 만일, 인욕이 부도덕성 그 자체라면, 인심이 발동해 인욕에 흐르면 악한 경우가 된다. 그리고 인심은 나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찾고, 정기가 왕성할 때 이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서는 나쁜 마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심 자체는 선악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봄이 옳다.
인심과 도심의 이와 같은 성격 때문에, 주자는 사람으로서 취할 수 있는 정일(精一)의 자세를 강조한다. 즉, 도심은 미묘하지만 이것을 잘 살펴서 키워 나가도록 권장되며, 인심은 위태로운 것이지만 역시 잘 살펴서 조화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한다(精一)는 것은 수양의 방법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하면 능히 그 중용(中庸)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상태가 인간 행위의 바람직한 경우다. 서경에서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라(允執厥中)”라고 말한 까닭도 이것이다.
그리하여 주희도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한 몸의 주장이 되고 인심이 언제나 명령을 듣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심도심설의 문제는 한국 철학에서도 매우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다.
이황은 그의 사상 전개에 있어서 도덕의 영역을 매우 귀중한 것으로 여겼고, 생전의 삶의 모습도 그 만큼 인심도심설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를 매우 높게 설정하였다.
그는 인심이 인욕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주희의 학설을 많이 인용하면서 인심과 도심의 문제를 전개한다. 그에게 있어서 인심도심설의 문제는 단순히 윤리 혹은 심리 현상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황은 “인심은 칠정(七情)이 되고, 도심은 사단(四端)이 된다”고 말함으로써,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이른바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의 문제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인심을 인욕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인심을 나쁜 측면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이황은 도덕 수양의 학문을 요약,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한다(遏人欲存天理)”라고 했는데, 이 경우에 ‘인심 일변(一邊)에 속하는 인욕을 막고, 도심 일변에 속하는 천리를 보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된다. 이황의 학문 체계에서 인심도심설이 지니는 의미는 이토록 매우 크다.
이이는 47세 되던 1582년에 '인심도심도설'이라는 글과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올리면서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정리하고 있다. 이 글은 매우 논리적이며 명석하게 인심과 도심의 초점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그는 심(心), 성(性), 정(情)의 관계를 요약해 “마음이 성, 정을 통섭한다(心統性情)”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의 정이 발동할 때 도의를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하며,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며,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측은하게 여기며, 의로운 것이 아님을 볼 때 부끄럽게 여기며, 종묘를 지날 때 공경하는 것 등이니, 이것을 도심이라 한다. 또, 정이 발동할 때 몸을 위해 나타나는 것이 있다. 배고플 때 먹으려 하며, 추울 때 입으려 하며, 힘들 때 쉬고자 하며, 정기가 성하면 이성을 생각하는 것 등이 이것이니, 이것을 인심이라 한다."
이상에서 본다면 인심과 도심이란 사람의 심리 작용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마음의 본체는 성(性)인데 이 경우는 마음이 아직 발동하지 아니한 것(未發)이요, 그 마음의 작용이 정이 되어 발동하는 경우(已發)에 이른바 인심 또는 도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양 철학의 개념을 빌려서 생각하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로의 마음의 본체(性)는 잠재적인 가능태(potentiality)로 있는 것이요, 발동의 상태로 전환한 마음의 작용(情)은 현실태(entelechy)로서 이것이 인심과 도심으로 불린다는 뜻이다.
이이는 또한 인심도심의 문제를 선악의 문제와 연결시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도심은 순수한 천리인 까닭에 착한 것만 있고 나쁜 것은 없다. 인심은 천리도 있고 인욕도 있는 까닭에 착한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마땅히 먹을 때 먹고 입을 때 입어야 하는 것은 성현도 면할 수 없는 바이니, 이는 곧 천리요, 음식과 성욕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악한 곳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인욕이다.”
이 말은 인심도심과 선악의 관계를 밝힌 것으로, 도심은 오로지 선이요, 인심은 선과 악이 모두 있다는 것이다. 인심과 도심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윤리적 수양면에서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
즉,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 의지(free will)를 인정하고 있는 점이다. 실제로 이이는 사람의 기질이란 고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도덕성은 함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황과 달리 이이는 사단이 도심인 것은 가능하지만, 칠정은 인심과 도심을 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이의 철학 체계에서 칠정이 사단을 포함하고 있다는 논리적인 구조에서 유래한다.
나아가 이이는 인심과 도심은 서로 시작과 끝의 관계가 있다는 이른바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주장한다. 인심과 도심은 서로 쌍립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인심이던 것이 나중에 도심이 되고, 처음에 도심이던 것이 나중에 인심이 된다는 설로서, 인심과 도심의 상호 작용을 밝혀 주는 의미가 있다. 인심도심종시설은 다른 유학자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주장이라 하겠다.
사람의 마음이란 본래 비어 있는(虛靈)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바깥세계와의 접촉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바, 그때의 지각(知覺)이 육체적 감각을 따라가면 인심이고, 의리를 따라가면 도심이 된다. 현대적인 용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인심은 감성적인 것이요 도심은 이성적인 것이다. 이 감성적인 욕구를 옛 사람들은 인욕이라고 불렀고, 이성적인 도의를 천리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욕구(인욕) 자체를 악한 것으로 생각했던 학자들은 이를 가능한 한 억제해 현실 생활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윤리적 이상으로 여겼다. 따라서 인욕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방향으로 이론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인 인간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이이는 인심의 유선유악(有善有惡)의 두 측면을 인식하면서, 선한 측면은 부도덕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으며, 주로 악한 측면을 잘 살피고 조절해 통섭(通涉)할 것을 주장하였다.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유학의 심성론(心性論)에서 심(心)의 양면성에 관한 학설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매우 오묘한 것이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 대한 관심은 오랜 것으로 보이며 인심도심설의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중국 철학사에서 인심도심설에 대한 문제가 나타난 것은 중국의 고전인 서경의 기록에 따르면 요순시대라고 본다. 그뒤 논어나 순자와 같은 책에서 인심도심에 관련된 구절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해석은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고, 11세기 송나라의 주자(朱子)에 이르러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중용의 머릿글에서 인심도심의 문제에 의의를 부여하고 그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주자에 의하면, 인심이란 대체로 인간의 신체적 기운에서 나타나는 것이요, 도심이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볼 때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은 도심이요, 그 자체로서는 부도덕한 것은 아니나 신체적인 기운에 따라 부도덕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은 것은 인심이다. 사람의 마음이 원래는 한마음이지만 그것이 작용할 때 의리를 따라서 나타나면 도심이요, 신체상의 어떤 욕구를 따라서 나타나면 인심인 것이다.
따라서 도심에 대해서는 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인심에 대해서는 선한 경우와 악한 경우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심이란 곧 도덕적인 마음이다. 이것이 순수하게 착한 마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타고날 때부터 착하다고 보는 것(性善說)에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인간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이 있는 이상, 도심은 이러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심은 성질상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마음의 깊은 곳을 잘 살피지 않으면 도심을 깨달을 수가 없고, 그러한 점에서 욕심에 흐르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도심에 비하여 인심이란 그 자체를 가리켜 부도덕한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항상 부도덕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는 마음이다. 즉, 인심의 성질은 위태로운 것인데, 그 이유는 인간에게 감각적인 욕구는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며, 그런 만큼 맹목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경에서는 ‘도심은 희미하다(道心惟微)’라 하고 ‘인심은 위태하다(人心惟危)’라 하였다.
한국철학에서 인심도심설의 대표적인 인물은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이다. 이황은 ‘인심은 칠정(七情)이 되고 도심은 사단(四端)이 된다’라고 말함으로써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문제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인심을 인욕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인심을 나쁜 측면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이이는 47세 되던 1582년 '인심도심도설'이라는 글과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올리면서 인심도심설의 문제를 논리적이고 명석하게 정리하였다. 이이는 사람의 기질이란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황과는 달리 이이는 사단이 도심인 것은 가능하지만 칠정은 인심과 도심을 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이는 인심과 도심은 서로 시작과 끝의 관계가 있다는 이른바 '인심도심종시설(人心道心終始說)'을 주장하고 있다. 즉 인심과 도심은 서로 쌍립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인심이던 것이 나중에 도심이 되고 처음에 도심이던 것이 나중에 인심이 된다는 것으로, 인심과 도심의 상호작용을 밝혀주는 의미가 된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인심은 감성적인 것이고 도심은 이성적인 것이다.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성리학(性理學)에 있어서 인성론(人性論)의 주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서경 대우모(大禹謨)편에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미묘하나니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고서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리라"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주희(朱熹)가 이것의 해설을 시도함으로써 인성론의 중요한 주제로 끌어들였다. 그는 마음(心)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은 하나뿐인데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다른 이유는 형기(形氣)의 사(私)에서 생겨나고, 혹은 성명(性命)의 정(正)에 근본함으로써 그 지각(知覺)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이 형기(形氣)가 없을 수 없어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인심(人心)이 있고, 또 성명(性命)이 없는 사람이 없는 까닭에 가장 우매한 사람도 도심(道心)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형기(形氣)는 감각이나 감성이요, 성명(性命)은 지성이나 이성이다. 또한 인심(人心)은 사욕(私欲), 인욕(人欲)으로서 개인적인 감각적 감성으로 선악(善惡)이 모두 있을 수 있다. 도심(道心)은 천리(天理)로서 보편적 공공적(公共的) 이성으로 승화된 것으로 순선(純善)으로 간주되었다.
이 인심도심(人心道心)의 문제는 후에 명나라 나흠순(羅欽順)에 이르러 형이상학적 해명을 거치고, 또한 조선 성리학의 주요 과제로 등장하였다. 특히 이황(李滉)은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사단칠정(四端七情)과이기설(理氣說)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인심(人心)은 칠정(七情)이요, 도심(道心)은 사단(四端)으로 보았고, 인심(人心)은 기(氣)에서 발(發)하는 것이요, 도심(道心)은 이(理)에서 발(發)한다고 했다. 이것은 그가 도심(道心)을 중히 여기고 인심(人心)을 폄천(貶賤)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이이(李珥)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비록 이름은 다르나 그 근원은 한마음(一心)이라고 설명했다. 도심(道心) 곧 의리의 마음은 성명(性命)의 정(正), 즉 이성에 근원하고, 인심(人心) 곧 식색(食色)을 위한 마음은 형기(形氣)의 사(私), 즉 감성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이황과 이이의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는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의 논변만이 아니라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이발(理發), 기발(氣發) 문제와 어울려 조선성리학의 양대 분파인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의 커다란 논쟁점이 되었다.
이황의 인심도심론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은 두 마음이 있는 것 같지만 두 마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홀로 가진다는 의미나 '다스리기 힘듦(危)'과 '드러내기 어려움(微)'의 두 글자를 판별함은 모두 선유(先儒)들의 뜻을 얻었습니다.
또 '인심과 도심은 체용으로 나눌 수 없다'거나, '인심은 결코 버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소론(所論)은 모두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른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도(道)입니다. 그러나 눈이 보는 것은 얻어서 감응하기 쉽습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도 도(道)입니다. 그러나 '귀가 듣는 것은 따라서 발하기 쉽다' 등의 말은 비록 산목(散木)을 바라보거나, 수금(收金)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은 류에 근본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측은(惻隱)과 목시(目視), 수오(羞惡)와 이청(耳聽)은 서로 접촉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부회하고 덤으로 끌어내는 병통이 있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대개 이 말은 옛 성인이 서로 이어서 전한 심법(心法) 입니다. 그 의리(義理)는 정밀하고 깊고 미묘하여 비록 하남(河南)의 심학(心學)으로써 도심(道心)을 천리(天理), 인심을 인욕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주희도 처음에 그 설을 따랐습니다. 만년에 의리가 정밀해지고 인(仁)이 익숙하게 되고, 본성을 극진히 하고(盡性), 천명에 이른(至命) 이후에 중용(中庸) 서(序)를 지어 형기성명(形氣性命)의 설로 천고에 의심을 해명하였습니다.
근세 나정암(羅整菴)의 곤지기(困知記)는 도심(道心)을 성(性)으로 인심(人心)을 정(情)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보내주신 글에서 구분한 체용(體用)의 설입니다. 이 설은 매우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노과회(盧寡悔)는 제일 먼저 그것을 믿었습니다. 여러 사람들 중에 미혹되어 따르는 사람이 많아 구두(口頭)와 이야기로 쟁론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그대가 체(體)와 용(用)으로 나눌 수 없음을 밝힌다면 저 성(性)과 정(情)을 나누는 잘못을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인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고요.
보내주신 서신의 마지막 두 조를 보면 실로 이렇게 힘 쓸 수 있다면 친구의 기대는 거의 잘못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약하고 폐단이 있는 학문도 잘 이끌어 주어 이익을 기대함이 있습니다. 천만 간절한 마음이 지극하나, 다 펴지 못하겠습니다.
(答金景純, 退溪集 卷34-9)
이 서신에서 이황은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에 관하여 논하면서, 사단(四端)으로서 도심(道心)을 도(道)로 보며 외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정암(羅整菴)의 곤지기(困知記)에서 도심(道心)을 성(性)으로 인심(人心)을 정(情)으로 보아 체용(體用)으로 구분한 것은 매우 잘못된 학설이라고 비판한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
▶️ 心(마음 심)은 ❶상형문자로 忄(심)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고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다. 말로서도 心(심)은 身(신; 몸)이나 神(신; 정신)과 관계가 깊다. 부수로 쓸 때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로 쓰이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心자는 '마음'이나 '생각',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心자는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心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위치에 따라 忄자나 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心(심)은 (1)종기(腫氣) 구멍이나 수술한 구멍에 집어넣는 약을 바른 종이나 가제 조각 (2)나무 줄기 한 복판에 있는 연한 부분 (3)무, 배추 따위의 뿌리 속에 박인 질긴 부분 (4)양복(洋服)의 어깨나 깃 따위를 빳빳하게 하려고 받쳐 놓는 헝겊(천) (5)초의 심지 (6)팥죽에 섞인 새알심 (7)촉심(燭心) (8)심성(心星) (9)연필 따위의 한복판에 들어 있는 빛깔을 내는 부분 (10)어떤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마음, 뜻, 의지(意志) ②생각 ③염통, 심장(心臟) ④가슴 ⑤근본(根本), 본성(本性) ⑥가운데, 중앙(中央), 중심(中心) ⑦도(道)의 본원(本源) ⑧꽃술, 꽃수염 ⑨별자리의 이름 ⑩진수(眞修: 보살이 행하는 관법(觀法) 수행) ⑪고갱이, 알맹이 ⑫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물(物), 몸 신(身), 몸 체(體)이다. 용례로는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심정(心情), 마음의 상태를 심경(心境), 마음 속을 심중(心中),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심취(心醉), 마음에 관한 것을 심적(心的), 마음의 속을 심리(心裏), 가슴과 배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를 심성(心性), 마음의 본바탕을 심지(心地),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묵묵한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심심상인(心心相印),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을 일컫는 말을 심기일전(心機一轉), 충심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일컫는 말을 심열성복(心悅誠服),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을 일컫는 말을 심광체반(心廣體胖), 바둑을 두면서 마음은 기러기나 고니가 날아오면 쏘아 맞출 것만 생각한다면 어찌 되겠느냐는 맹자의 언질에서 비롯된 말로 학업을 닦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씀을 일컫는 말을 심재홍곡(心在鴻鵠),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심복지인(心腹之人), 높은 산속의 깊은 골짜기를 일컫는 말을 심산계곡(心山溪谷), 심술꾸러기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심술거복(心術去福),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럽다는 뜻으로 의지가 뒤흔들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심번의란(心煩意亂), 마음에 줏대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심무소주(心無所主),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심심풀이로 어떤 일을 함 또는 그 일을 일컫는 말을 심심소일(心心消日),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니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함을 일컫는 말을 심동신피(心動神疲), 마음속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르는 말을 심중소회(心中所懷),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심행소멸(心行消滅), 마음속의 생각을 모두 털어놓음을 일컫는 말을 심복수사(心腹輸寫), 마음을 다하여 도를 구함을 일컫는 말을 심성구지(心誠求之), 심두 즉 마음을 멸각하면 불 또한 시원하다라는 뜻으로 잡념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불 속에서도 오히려 시원함을 느낀다는 말을 심두멸각(心頭滅却), 마음은 원숭이 같고 생각은 말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생각을 집중할 수 없다는 말을 심원의마(心猿意馬) 등에 쓰인다.
▶️ 道(길 도)는 ❶회의문자로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首(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首(수)는 사람 머리와 같이 사물의 끝에 있는 것, 처음, 근거란 뜻을 나타낸다. 道(도)는 한 줄로 통하는 큰 길이다. 사람을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도 길이지만 또 도덕적인 근거도 길이다. ❷회의문자로 道자는 ‘길’이나 ‘도리’, ‘이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道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首(머리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首자는 ‘머리’라는 뜻이 있다. 道자는 길을 뜻하는 辶자에 首자를 결합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인도하다’나 ‘이끌다’였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나 ‘이치’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寸(마디 촌)자를 더한 導(이끌 도)자가 ‘인도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道(도)는 (1)우리나라의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예전에 8도이던 것을 고종(高宗) 33(1896)년에 13도로 고쳤고, 다시 대한민국 수립 후에 14도로 정함 (2)우리나라의 최고 지방자치단체 (3)도청 (4)중국 당(唐) 대의 최고 행정 단위. 당초에는 10도로 나누어 각 도마다 안찰사(按察使)를 두었으며 734년에 15도로 늘려 관찰사(觀察使)를 장관(長官)으로 두었음 (5)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6)종교 상으로, 교의에 깊이 통하여 알게 되는 이치,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 (7)기예(技藝)나 방술(方術), 무술(武術) 등에서의 방법 (8)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 ②도리(道理), 이치(理致) ③재주 ④방법(方法), 술책(術策) ⑤근원(根源), 바탕 ⑥기능(機能), 작용(作用) ⑦주의(主義), 사상(思想) ⑧제도(制度) ⑨기예(技藝) ⑩불교(佛敎) ⑪승려(僧侶) ⑫도교(道敎) ⑬도사(道士) ⑭교설(敎說) ⑮~에서, ~부터 ⑯가다 ⑰가르치다 ⑱깨닫다 ⑲다스리다 ⑳따르다 ㉑말하다 ㉒완벽한 글 ㉓의존하다 ㉔이끌다, 인도하다 ㉕정통하다 ㉖통하다, 다니다 ㉗행정구역 단위 ㉘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길 도(塗), 거리 항(巷), 거리 가(街), 네거리 구(衢), 길 로/노(路), 길 도(途), 길거리 규(逵), 모퉁이 우(隅)이다. 용례로는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도로(道路),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도덕(道德), 일에 쓰이는 여러 가지 연장을 도구(道具), 도를 닦는 사람을 도사(道士),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궤도(軌道),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효도(孝道),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정도(正道), 차가 다니도록 마련한 길을 차도(車道),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왕도(王道), 바르지 못한 도리를 사도(邪道), 사람이 다니는 길을 보도(步道), 일에 대한 방법과 도리를 방도(方道),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의 풍속이 돈후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불습유(道不拾遺),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 또는 깊이 생각 않고 예사로 듣고 말함을 일컫는 말을 도청도설(道聽塗說),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방고리(道傍苦李), 먼 길을 달린 후에야 천리마의 재능을 안다는 뜻으로 난세를 당해서야 비로소 그 인물의 진가를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도원지기(道遠知驥), 길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다는 뜻으로 천도에는 크게 융성함과 쇠망함의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을 도유승강(道有升降) 등에 쓰인다.
▶️ 說(말씀 설, 달랠 세, 기뻐할 열, 벗을 탈)은 ❶형성문자로 説은 통자(通字), 说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兌(열)로 이루어졌다. 말(言)로 나타낸다는 뜻이 합(合)하여 말씀을 뜻한다. 八(팔)은 분산하는 일, 兄(형)은 입의 움직임을 일컬는다. 음(音)을 나타내는 兌(탈, 열)은 큰소리를 질러 화락함을 말하고, 나중에 기뻐함에는 悅(열)이라고 쓰고, 말로는 그것은 무엇, 이것은 무엇이라고 구별함을 說(설)이라고 쓴다. ❷회의문자로 說자는 ‘말씀’이나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說자는 ‘말’과 관련된 여러 글자 중에서도 ‘이야기하다’라는 뜻이 가장 두드러져 있다. 說자의 구성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說자는 言자와 兌(기쁠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兌자는 입을 벌려 웃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기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입을 벌린 모습을 그린 兌자에 言자가 결합한 說자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說자는 주로 ‘이야기하다’나 ‘서술하다’, ‘유세하다’와 같이 입을 벌려 크게 말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說(설, 세, 열, 탈)은 (1)일부(一部) 명사(名詞) 뒤에 붙여 풍설(風說)의 뜻을 나타내는 말 (2)견해(見解). 주의(主義). 학설(學說) (3)풍설(風說) (4)중국에서의 문체(文體)의 하나. 구체적인 사물에 관하여 자기의 의견을 서술(敍述)하면서 사물의 도리를 설명하는 문장임. 당(唐)나라의 한유(韓愈)가 지은 사설(師說), 송(宋)나라의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애련설(愛蓮說) 따위. 문학 작품으로서의 형식을 갖춘 것은 당(唐)나라 이후임 등의 뜻으로 말씀 설의 경우는①말씀(설) ②문체(文體)의 이름(설) ③제사(祭祀)의 이름(설) ④말하다(설) ⑤이야기하다(설) ⑥서술하다, 진술하다(설) 그리고 달랠 세의 경우는 ⓐ달래다(세) ⓑ유세하다(세) 그리고 기뻐할 열의 경우는 ㉠기뻐하다, 기쁘다(열) ㉡즐거워하다(열) ㉢즐기다(열) ㉣공경하다(열) ㉤따르다, 복종하다(열) ㉥아첨하다(열) ㉦쉽다, 용이하다(열) ㉧헤아리다(열) ㉨기쁨, 희열(喜悅)(열)㉩수(數)(열) 그리고 벗을 탈의 경우는 ㊀벗다(탈) ㊁놓아주다(탈) ㊂빼앗기다(탈) ㊃제거하다(탈) ㊄용서하다(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뻐할 희(憙), 기뻐할 환(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풀어 밝힘을 설명(說明), 여러 모로 설명하여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함을 설득(說得), 진리가 될 만한 것을 밝혀 듣는 사람의 납득하도록 궤뚫어 말함을 설파(說破), 사실대로 내 놓고 모두 이야기 함을 설토(說吐), 알아듣도록 타일러 그렇게 여기게 함을 설복(說伏),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을 설교(說敎), 문제나 물음을 냄을 설문(說問), 여러 사람 앞에서 체계를 세워 자기의 주장을 말함을 연설(演說), 남을 저주하는 말을 욕설(辱說), 예전부터 전하여 오는 이야기를 전설(傳說), 뜻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함 또는 그 책을 해설(解說),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을 역설(逆說), 자기의 의도를 힘주어 말함을 역설(力說), 학문적인 문제에 대해 학자가 내세우는 주장이나 이론을 학설(學說), 사물의 이치를 들어 의견이나 주장을 논하거나 설명함 또는 그 글을 논설(論說), 실상이 없이 떠돌아 다니는 말을 풍설(風說), 망령된 생각이나 주장을 망설(妄說),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를 담설(談說), 터무니없는 헛 소문을 낭설(浪說), 능란한 말솜씨로 각지를 유세하고 다니는 사람을 세객(說客),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여서 그것을 채택하여 주기를 바람을 유세(游說),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 함을 설왕설래(說往說來), 달콤한 말과 이로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남의 비위에 맞도록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남을 꾀하는 말을 감언이설(甘言利說),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를 이르는 말을 가담항설(街談巷說),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어불성설(語不成說),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말을 도청도설(道聽塗說),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하는 말을 불역열호(不亦說乎),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찾아 온다는 말을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