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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9.06.18|조회수2,986 목록 댓글 0

 

와신상담(臥薪嘗膽)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보다는 뜻으로, 복수나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가오는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낸다는 말이다.

 

臥 : 누울 와(臣/2)

薪 : 섶 신(艹/13)

嘗 : 맛볼 상(口/11)

膽 : 쓸개 담(月/13)

 

(유의어)

상담(嘗膽)

절치액완(切齒扼腕)

좌신현담(坐薪懸膽)

회계지치(會稽之恥)

 

(상대어)

불념구악(不念舊惡)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장작 위에 누워서 쓰디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복수나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가오는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낸다는 말이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춘추 말기에 연이어 패자로서 춘추 오패의 반열에 올라 춘추시대의 대미를 장식한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원수처럼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사이였다. 오나라의 왕 합려(闔閭)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저자인 손무(孫武)와 충신 오자서(伍子胥)의 보필을 받아 당시의 제후국들을 굴복시키고 춘추 오패의 반열에 올랐다.

 

합려 19년(BC496), 합려는 월나라를 쳤다가 월왕 구천(勾踐)에게 패하고, 손가락에 입은 상처가 원인이 되어 그만 죽고 말았다. 합려는 태자 부차(夫差)에게 '월나라를 절대로 잊지 말라(必毋忘越)'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2년 후 월왕 구천은 부차가 밤낮으로 병사들을 훈련시킨다는 말을 듣고 대부 범려(范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부차를 선제 공격했다가 도리어 대패하고 말았다. 부차는 승세를 몰아 월나라의 수도 회계(會稽)를 포위했다.

 

구천은 패잔병 5,000여 명을 데리고 회계산(會稽山) 꼭대기에 피신하여, 백비(伯嚭)에게 후한 예물을 바치고 강화를 요청했다. 나라를 바치고 오나라의 신하가 되겠다는 것이 강화의 조건이었다. 부차는 오자서의 반대를 묵살하고 백비의 계책에 따라 월나라와 강화한 후, 구천을 오나라에 불러 자기의 노예가 되도록 했다. 이를 '회계지치(會稽之恥)', 즉 회계의 치욕이라 한다.

 

구천은 나라의 정치를 대신들에게 맡기고 범려와 함께 오나라에 가서 3년 동안 부차의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는 일을 했으며, 부차가 병이 들자 부차의 변까지 맛보아 가면서 몸소 간호하기도 했다.(▶ 상분(嘗糞) 참조)

 

부차는 충신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구천을 석방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몸을 수고롭게 하고 속을 태우면서,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거나 누우면 쓸개를 바라보았으며 먹거나 마실 때 또한 쓸개를 맛보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설욕의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吳旣赦越, 越王句踐反國, 乃苦身焦思, 置膽於坐, 坐臥卽仰膽, 飮食亦嘗膽也. 曰, 汝忘會稽之耻邪).

 

구천은 손수 밭 갈고 부인은 길쌈을 하였으며, 고기를 먹지 않고 현인을 찾고 빈객을 우대하면서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했다. 문종(文種)에게는 나라 살림을 다스리게 하고, 범려에게는 군대 양성을 맡겼다.

 

구천은 10년 계획을 세워 생산을 장려하고 물자를 모으며 전쟁 준비를 했다. 오왕 부차가 제(齊)나라를 공격하면서 월나라에 참전을 요청하자, 군사를 파견하여 오왕을 도와 그의 환심을 사 두기도 했다(▶ 삼십육계(三十六計)연환계(連環計) 참조)

 

그런 후에 구천은 오나라의 내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뇌물을 좋아하는 오나라의 대부 백비를 매수했으며, 부차에게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동시효빈(東施效顰) 참조)

 

오나라에는 간신배가 득세하였으며, 자주 충간을 하던 오자서는 왕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결과로 왕의 의심을 사게 된 데다, 백비의 모함까지 받아 왕이 내린 칼을 받고 자결했다. 오자서가 죽은 다음 해, 부차는 제나라를 공격했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삼십육계(三十六計)연환계(連環計) 참조)

 

그 후 2년 뒤에 오왕 부차가 정예부대를 이끌고 북정을 하고, 황지(黃池)에서 제후들과 회맹하여 한창 그의 위엄을 보이고 있는 동안, 구천은 오나라가 비어 있는 틈을 타 오나라에 침입하여 태자를 잡아 죽였다. 제후들과 회맹하는 자리에서 급보를 전해 들은 오왕은 모든 사항을 극비에 부치고, 서둘러 회맹을 마친 다음(▶ 여화여도(如火如荼) 참조), 즉시 월나라에 사자를 보내 강화를 요청했다.

 

구천은 범려와 의논 끝에 강화를 수락하기로 했다. 북정을 하러 갔던 오나라의 정예부대가 돌아와 일전을 벌일 경우 승패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화를 맺은 후, 월나라는 계속 군비를 확충했다. 하지만 오나라는 잦은 북정으로 군사들이 피로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으며, 그동안 많은 전쟁을 겪느라 병력의 손실도 적지 않았다.

 

4년 후, 월나라는 다시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하여 도처에서 오나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3년에 걸쳐 오나라의 수도를 포위했다. 부차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구천에게 항복했다.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를 가엾게 여겨 항복을 받아들이려 했다. "회계의 일은 하늘이 오나라에게 월나라를 준 것인데 오나라가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오나라를 월나라에게 주는 것이니 하늘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범려가 반대하고 나섰다. 부차는 자살했다. 구천은 백비를 잡아 죽였다. 백비가 그 임금에게 충성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으며 내통하였기 때문이었다. 월나라는 오나라를 평정하고 그 여세를 몰아 북진하여 회하(淮河)를 건너 서주(徐州)에서 제후들과 회맹하고,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에 나온다.

 

일반적으로 사기 월왕구천세가에 나오는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복수를 위한 노력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유래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이 전적에는 구천이 쓸개를 맛보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는 '상담(嘗膽)'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부차가 땔나무 위에 누워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는 '와신(臥薪)'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와신(臥薪'에 대한 이야기는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차는 복수에 뜻을 품고 아침저녁으로 섶에 누워 출입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시켜 외치게 했다. "부차야, 너는 월나라 사람들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

夫差志復讐, 朝夕臥薪中, 出入使人呼曰, 夫差, 而忘越人之殺而父耶.

 

상담(嘗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구천은 자기 나라로 돌아와 자리에다 쓸개를 매달아 놓고 누우면 쓸개를 쳐다보고 맛을 보며 말했다.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는가?"

勾踐反國, 懸膽於坐, 臥卽仰膽嘗之曰, 女忘會稽之恥耶.

 

이를 보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출전(出典)은 십팔사략(十八史略)이고, 전고(典故)는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 될 것이다.

 

 

상담(嘗膽)은 있는데 와신(臥薪)은 없다

 

와신상담(臥薪嘗膽)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면 일반적으로 부차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편안한 잠자리를 마다하고 땔나무 위에서 기거하면서 복수의 칼을 간 데서 '와신(臥薪)'이 유래했고, 나중에 부차에게 패한 구천이 쓸개를 맛보면서 복수의 칼을 간 이야기에서 '상담(嘗膽)'이 유래한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구천이 땔나무 위에서 자면서 쓸개를 맛본 데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유래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어떤 자료에는 부차가 좌신상담(坐薪嘗膽)했다고 하기도 하고(여조겸 呂祖謙, 좌씨전설 左氏傳說), 부차가 와신상담(臥薪嘗膽)했다고 하기도 한다(장부 張溥, 춘추열국론 春秋列國論).

 

그런데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에 대한 당시와 가장 가까운 역사 기록에 '상담(嘗膽)'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와신(臥薪)'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먼저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를 보자.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몸을 수고롭게 하고 애를 태우면서,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거나 누우면 쓸개를 바라보았으며 먹거나 마실 때 또한 쓸개를 맛보며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吳旣赦越, 越王句踐反國, 乃苦身焦思, 置膽於坐, 坐臥卽仰膽, 飮食亦嘗膽也. 曰, 汝忘會稽之耻邪.

 

이 사료에는 '상담(嘗膽)'은 있지만, '와신(臥薪)'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오월 전쟁의 과정을 그린 국어(國語) 월어(越語), 오어(吳語)와 월절서(越絶書), 오월 전쟁을 시대 배경으로 하여 오자서의 복수를 그린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는 아예 '와신(臥薪)'이나 '상담(嘗膽)'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월왕 구천의 이야기를 대량으로 기록한 좌전(左傳) 정공(定公), 애공(哀公)에도 와신상담(臥薪嘗膽)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오월춘추(吳越春秋) 구천귀국외전(勾踐歸國外傳)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월왕이 오나라에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몸을 괴롭히고 마음을 수고롭게 하였다. 피곤하여 눈이 감기면 여뀌로 문질렀고, 발이 시리면 물에 적셨으며, 겨울에는 얼음을 안고, 여름에는 불을 잡았다.

越王念復吳讐非一旦也, 苦身勞心, 夜以接日. 目臥則攻之以蓼, 足寒則漬之以水. 冬常抱冰, 夏還握火.

 

마음에 근심하며 뜻을 괴롭게 하고, 문에 쓸개를 달아 놓고 들어갈 때 나갈 때에 맛을 보며 입에서 끊지 않았다. 한밤중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운 후에는 다시 울부짖었다.

愁心苦志, 懸膽於戶, 出入嘗之, 不絶於口. 中夜潸泣, 泣而復嘯.

 

그러자 신하들이 말했다. "왕은 어찌 그리 깊이 근심을 하십니까. 복수를 하고 옛일을 헤아리는 것은 왕의 근심할 바가 아니라 우리 신하들이 해야 할 급한 임무입니다."

於是群臣咸曰, 君王何愁心之甚. 夫復讐謀故, 非君王之憂, 自臣下急務也.

 

여기에도 '상담(嘗膽)'은 나오지만 '와신(臥薪)'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글에 目臥則攻之以蓼(목와즉공지이료), 즉 '(피곤하여) 눈이 감기면 여뀌로 눈을 문질렀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에서 '와신(臥薪)'이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목와(目臥)는 피곤하여 눈이 감긴다는 뜻이다. 蓼(어뀌 료)는 설문(說文)에 의하면 신채(辛菜)이다. 그래서 피곤하여 눈이 감길 때 매운 맛이 나는 여뀌로 눈을 문지르는 것을 '와신(臥辛)'이라 하게 되었고, 후에 辛이 음이 같은 薪으로 와전되어 '와신(臥薪)'이 나왔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원래는 매운 풀로 눈을 문질러 잠을 쫓고, 쓸개를 맛보면서 패배의 쓰라린 추억을 상기한다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식(蘇軾)인데, 소식이 어떤 근거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 이미 '여뀌로 눈을 문지르다'는 뜻이 아닌 '섶 위에 눕다'는 뜻의 '와신(臥薪)'이란 말이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저는 황제의 유명을 받은 이래로 와신상담(臥薪嘗膽) 했습니다(僕受遺以來, 臥薪嘗膽).

(소식(蘇軾) 동파속집(東坡續集) 의손권답조조서(擬孫權答曹操書)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 중에서 와신(臥薪)에 대한 이야기는 남송(南宋) 말에서 원(元)나라 초에 활동했던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를 근거로 한 것인데, 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원(伍員)의 자는 자서(子胥)로 초(楚)나라 사람 오사(伍奢)의 아들이다.

伍員字子胥, 楚人伍奢之子.

 

오사가 주벌을 당하자 오나라로 도망해 오나라의 병사가 되어 (초나라의 수도)영초으로 들어갔다.

奢誅而奔吳, 以吳兵入郢, 吳伐楚.

 

오나라가 월나라를 쳤으나 (오왕)합려가 부상을 당해 죽고 아들 부차가 즉위하니, 자서는 다시 그를 섬겼다.

闔廬傷而死, 子夫差立, 子胥復事之.

 

부차는 복수에 뜻을 품고 아침저녁으로 섶에 누워 출입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시켜 외치게 했다. '부차야, 너는 월나라 사람들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

夫差志復讐, 朝夕臥薪中, 出入使人呼曰, 夫差, 而忘越人之殺而父耶.

 

주나라 경왕 26년 부차는 월나라를 부초에서 깨뜨렸다.

周敬王二十六年, 夫差敗越於夫椒.

 

월왕 구천은 남은 병력을 가지고 회계산에 머물면서 자신은 신하가 되고 자기 부인은 첩이 되겠다고 청했다.

越王勾踐以餘兵, 棲會稽山, 請爲臣妻爲妾.

 

오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했으나 태재 백비는 월나라의 뇌물을 받고 부차를 설득하여 월나라를 용서하게 했다.

子胥言不可, 太宰伯嚭受越賂, 說夫差赦越.

 

구천은 자기 나라로 돌아와 자리에다 쓸개를 매달아 놓고 누우면 쓸개를 쳐다보고 맛을 보며 말했다.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는가?"

勾踐反國, 懸膽於坐, 臥卽仰膽嘗之曰, 女忘會稽之恥耶.

 

그리고 국정을 들어 대부 문종과 범려에게 맡기고 더불어 군사 업무를 다스리고 오나라를 도모하려 했다.

擧國政, 屬大夫種與范蠡, 共治兵事, 謀吳.

 

이처럼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당시와 가장 가까운 역사를 기록했던 전적에는 '와신(臥薪)'에 대한 기록이 없었고, 십팔사략의 기록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유래했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史實)의 취사선택이 부정확하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는 별로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臥(누울 와)는 ❶상형문자로 卧(와)의 본자(本字)이다. 人(인)과 臣(신)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내려와 보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내려와 본다는 뜻이 전(轉)하여, 눕는다는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臥자는 '엎드리다'나 '눕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臥자는 臣(신하 신)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臣자는 고개를 숙인 사람의 눈을 그린 것이다. 臥자의 금문을 보면 臣자와 人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人자가 마치 바닥에 누우려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 臣자가 결합한 臥자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바닥에 눕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臥(와)는 ①눕다, 엎드리다 ②누워 자다 ③쉬다, 휴식(休息)하다 ④넘어지다 ⑤엎다, 그만두다 ⑥숨어 살다 ⑦잠자리, 침실(寢室) ⑧잠, 휴식(休息)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앉을 좌(坐)이다. 용례로는 베개의 위를 와상(臥床), 병으로 누워 있음을 와석(臥席), 병으로 누워 있음을 와병(臥病), 누워서 봄을 와견(臥見), 잠자리에서 일어남을 와기(臥起), 침실 안을 와내(臥內), 일을 하지 아니하고 받는 급료를 와료(臥料), 잠을 자도록 마련된 방을 와방(臥房), 잠을 자도록 마련된 방을 와실(臥室), 놀고 먹음을 와식(臥食), 누울 때 쓰는 제구를 와구(臥具), 다달이 갚지 아니하고 본전과 함께 한꺼번에 갚는 변리를 와변(臥邊), 누워 있는 용이란 뜻으로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의 비유 또는 때를 만나지 못한 큰 인물을 이르는 말을 와룡(臥龍), 고단하여 드러누움 또는 깊이 든 잠을 곤와(困臥), 깊이 잠듦 또는 깊이 든 잠을 감와(酣臥), 한가로이 누워 있음 또는 속세의 뜻을 버리고 편안하게 묻혀서 삶을 한와(閑臥), 쓰러져 눕거나 잠을 부와(仆臥), 높이 누움 또는 벼슬을 하직하고 한가하게 지냄을 고와(高臥), 혼자서 누움을 독와(獨臥), 병으로 누워 있음을 병와(病臥), 술이 취해 누움을 취와(醉臥), 가로 또는 모로 누움을 횡와(橫臥),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을 와신상담(臥薪嘗膽), 누운 용과 봉황의 새끼라는 뜻으로 누운 용은 풍운을 만나 하늘로 올라 가는 힘을 가지고 있고 봉황의 새끼는 장차 자라서 반드시 봉황이 되므로 때를 기다리는 호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와룡봉추(臥龍鳳雛), 별 곤란 없이 편하게 천하를 다스림 곧 태평 시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와치천하(臥治天下), 이부자리 위에서 죽음을 뜻하여 제 수명에 죽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와석종신(臥席終身), 동산에 높이 누워 있다는 뜻으로 속세의 번잡함을 피하여 산중에 은거함을 일컫는 말을 동산고와(東山高臥),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원룡이 높은 침상에 눕는다는 뜻으로 손님을 업신여김을 이르는 말을 원룡고와(元龍高臥), 불을 안고 섶나무 위에 눕는다는 뜻으로 점점 더 위험한 짓을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포화와신(抱火臥薪) 등에 쓰인다.

 

▶️ 薪(섶 신)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베다의 뜻(剪; 전)을 나타내는 新(신)을 더하여 이루어졌다. 도끼(斤; 근)로 벤 나무, 곧 땔나무의 뜻이다. 그래서 薪(신)은 ①섶(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잡초(雜草), 풀 ③봉급(俸給) ④땔감으로 만들다 ⑤나무를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섶 시(柴), 나무할 초(樵)이다. 용례로는 땔나무와 숯을 신탄(薪炭), 땔나무를 신초(薪樵), 땔나무를 신목(薪木), 땔나무를 신채(薪採), 봉급을 신수(薪水), 와신상담을 줄여서 이르는 말을 신담(薪膽), 섶나무로 둘러 친 울타리를 신리(薪籬), 장작과 섶나무를 신시(薪柴), 땔나무를 시신(柴薪), 자기의 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채신(采薪), 나무를 많이 쌓아 올림을 적신(積薪), 땔나무를 등에 짐을 부신(負薪), 땔나무를 주워 모으고 먹을 물을 긷는 수고 곧 밥을 짓는 노고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신수지로(薪水之勞),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을 와신상담(臥薪嘗膽),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아궁이 근처의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뜻으로 화근을 미리 방지하라는 말을 곡돌사신(曲突徙薪), 한 잔의 물을 한 수레의 장작불에 끼얹는다는 뜻으로 아무 소용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배수거신(杯水車薪), 섶을 지고 불에 뛰어 듦 곧 자기가 짐짓 그릇된 짓을 하여 화를 더 얻음을 이르는 말을 부신입화(負薪入火), 병이 들어 나무를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자기의 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채신지우(採薪之憂),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씀을 이르는 말을 교자채신(敎子採薪), 쌀은 구슬 보다 비싸고 땔감은 계수나무 보다 비싸다는 뜻으로 물가가 치솟아 생활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미주신계(米珠薪桂), 땔나무를 안고 불을 끄러 간다는 뜻으로 재해를 방지하려다가 자기도 말려들어가 자멸하거나 도리어 크게 손해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포신구화(抱薪救火), 섶나무 위에 앉고 쓸개를 걸어 두고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함을 이르는 말을 좌신현담(坐薪懸膽), 불을 안고 섶나무 위에 눕는다는 뜻으로 점점 더 위험한 짓을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포화와신(抱火臥薪), 불타는 나무와 같이 정열로 도리를 닦으면 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지신수우(指薪修祐), 아주 천하고 보잘것없는 출신이나 자기의 타고난 자질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부신지자(負薪之資) 등에 쓰인다.

 

▶️ 嘗(맛볼 상)은 ❶형성문자로 甞(상)의 본자(本字), 嚐(상)과 동자(同字)이다. 맛있다는 뜻의 旨(지)와 음(音)을 나타내는 尙(상)으로 이루어졌다. 맛본다는 뜻이 전(轉)하여 시험하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嘗자는 '맛보다'나 '경험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嘗자는 尙(오히려 상)자와 旨(맛있을 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尙자는 집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그린 旨자가 결합한 嘗자는 집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嘗자는 음식을 '맛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嘗(상)은 ①맛보다 ②음식을 맛보다 ③경험(經驗)하다 ④시험(試驗)하다 ⑤체험(體驗)하다 ⑥겪다 ⑦가을의 제사(祭祀) ⑧일찍이 ⑨과거(過去)에 ⑩이전에 ⑪시험삼아 ⑫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시험하여 봄을 상시(嘗試), 적의 실력을 알기 위하여 적을 건드려서 조금 싸워 봄을 상적(嘗敵), 맛 보기 위하여 조금 먹어봄을 상미(嘗味), 약을 먹거나 마심을 상약(嘗藥), 그 해의 햇곡식으로 신에게 제사 지냄을 상화(嘗禾), 부모의 위중한 병세를 살피기 위하여 그 대변을 맛봄을 이르는 말을 상분(嘗糞), 두루 겪음을 비상(備嘗), 새 곡식을 올려 제사를 지냄을 봉상(奉嘗), 음식을 고루 맛봄을 품상(品嘗), 근본부터 따지고 보면이나 처음부터 캐어 본다면의 뜻으로 물음이나 부정을 나타내는 말 위에 쓰이는 말을 하상(何嘗), 똥도 핥을 놈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아첨하여 부끄러운 짓도 꺼려하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상분지도(嘗糞之徒), 남의 뜻을 시험하여 알아내려는 꾀를 이르는 말을 상시지계(嘗試之計),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을 와신상담(臥薪嘗膽), 사치하는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므로 항상 그 마음속은 허전하다는 말을 사자심상빈(奢者心嘗貧), 그렇지 않은 바가 아니라는 말을 미상불연(未嘗不然) 등에 쓰인다.

 

▶️ 膽(쓸개 담)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詹(담)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1)쓸개 (2)담력(膽力) 등의 뜻으로 ①쓸개, 담 ②담력(膽力: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 ③마음 ④배짱, 기백(氣魄: 씩씩하고 굳센 기상과 진취적인 정신) ⑤품은 뜻 ⑥담대(膽大)하다 ⑦씻다 ⑧닦다, 문지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쓸개를 담낭(膽囊), 사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력을 담력(膽力), 쓸개관이나 쓸개주머니에 생기는 결석을 담석(膽石), 담력과 지혜를 담지(膽智), 담력이 약함 또는 겁이 많음을 담약(膽弱), 담력이 큼으로 겁이 없이 용기가 많음을 담대(膽大), 담력이 작음으로 겁이 많고 배짱이 없음을 담소(膽小), 몹시 놀랍거나 불안하여 가슴이 두근거림을 담도(膽掉), 담과 용기로 대담하고 용감함을 담용(膽勇), 담이 써늘해지도록 몹시 두려움을 담한(膽寒), 담력과 지략으로 대담하고 꾀가 많음을 담략(膽略), 간과 쓸개를 간담(肝膽),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맥이 풀리는 것을 낙담(落膽), 무섭거나 두렵거나 부끄러운 일을 함에 있어 겁을 내지 않는 상태를 대담(大膽), 곰의 쓸개를 웅담(熊膽), 매우 큰 쓸개를 두담(斗膽),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두려움을 섭담(懾膽), 담력을 강하게 기르는 일을 연담(練膽), 큰마음을 먹고 대담하게 일을 하는 모양을 방담(放膽), 적의 쓸개라는 뜻으로 적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적담(敵膽), 담대하면서도 치밀한 주의력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문장을 지을 때의 마음가짐을 이르는 말을 담대심소(膽大心小),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을 와신상담(臥薪嘗膽),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을 이르는 말을 간담상조(肝膽相照), 몹시 놀라 얼이 빠지고 정신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낙담상혼(落膽喪魂), 보는 관점에 따라 비슷해 보이는 것이라도 전혀 다르고 가까운 것이라도 멀리 보인다는 말을 간담초월(肝膽楚越), 간을 토하고 쓸개를 뿌린다는 뜻으로 마음속에 품은 바를 숨김 없이 드러내 보임을 이르는 말을 토간역담(吐肝瀝膽), 노한 쓸개와 뻣뻣한 창자라는 뜻으로 몹시 성이 난 상태를 이르는 말을 노담탱장(怒膽撐腸), 뼈가 놀라고 담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람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골경담락(骨驚膽落), 눈을 크게 뜨고 담력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곧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용기를 내어 일을 한다는 말을 명목장담(明目張膽), 간과 쓸개를 모두 내뱉는다는 뜻으로 솔직한 심정을 속임없이 모두 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토진간담(吐盡肝膽), 섶나무 위에 앉고 쓸개를 걸어 두고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함을 이르는 말을 좌신현담(坐薪懸膽)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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