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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타락수구(打落水狗)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19.08.03|조회수987 목록 댓글 0

 

타락수구(打落水狗)

물에 빠진 개는 때려야 한다는 뜻으로, 악인에 대한 징치를 분명하게 해두지 않고 어설프게 용서하고 화해하는 페어플레이는 더 큰 해악을 불러올 뿐이라는 말이다.

打 : 칠 타(扌/2)
落 : 떨어질 락(艹/9)
水 : 물 수(水/0)
狗 : 개 구(犭/5)

출전 : 논(論) 비액발뢰(費厄潑賴) 응해완행(應該緩行)


우물에 빠진 놈 돌로 친다 또는 헤어나지 못할 궁지에 몰아넣다는 비유의 말로 악한 세력에 숨 돌릴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성어는 루쉰(魯迅)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費厄潑賴 應該緩行)의 글에 나오며,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임어당(林語堂) 선생이 '페어 플레이(Fair play)'를 이야기하며, 중국에서는 이 정신이 가장 부족하기에 적극 고취시켜야만 한다면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정신이라고 설명하였다.
(語絲) 五七期上語堂先生曾經講起'費厄潑賴'(fair play), 以為此種精神在中國最不易得, 我們只好努力鼓勵; 又謂不'打落水狗', 即足以補充'費厄潑賴'的意義.

나는 영어를 모르기에 이 단어의 뜻이 대관절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이 이 정신의 하나라면, 이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我不懂英文, 因此也不明這字的函義究竟怎樣, 如果不'打落水狗'也即這種精神之一體, 則我卻很想有所議論.

여기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자'고 제목을 달지 않은 것은, 너무 눈에 띠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즉 쓸데없이 머리에 가짜 뿔을 달고 환심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려는 요점은,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말아야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但題目上不直書'打落水狗'者, 乃為迴避觸目起見, 即並不一定要在頭上強裝'義角'之意. 總

그런 무리들은 먼저 물 속에 빠뜨리고 이어서 때려주어야 한다. 만일 스스로 물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뒤쫓아가 두들겨 패줘도 무방하다. 그들은 권세에 몹시 아첨하지만 아직도 늑대에 가까울 만큼 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공리론자들은 '보복하지 말라', '자비로워라', '악으로써 악에 대항하지 말라'라는 말들을 외쳐댄다. 그 때문에 악인은 구제된다.

그러나 구제된 뒤에도 감쪽같이 속였다고 생각할 뿐 회개 따위는 하지 않는다. 토끼처럼 굴을 파놓고 남에게 아첨도 잘하므로 얼마 안가 세력을 되찾아 전과 마찬가지로 나쁜 짓을 시작한다.

 

타락수구(打落水狗)

루쉰의 산문집 '투창과 비수'에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글이 있다.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권세를 믿고 날뛰며 횡포를 부리던 악인이 있다. 그런 그가 실족하게 되면 갑자기 대중을 향해 동정을 구걸한다. 상처를 입은 절름발이 시늉을 하며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유발한다.

그러면 그에게 직접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마저도 그를 불쌍히 보며, 정의가 이미 승리했으니 그를 용서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슬그머니 본성을 드러내 온갖 못된 짓을 되풀이한다.

원인은 어디에 있나? 물에 빠진 개를 때려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스스로 제 무덤을 판 셈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해서는 안 된다. 악인에 대한 징치를 분명하게 해두지 않고, 어설프게 용서하고 화해하는 페어플레이는 더 큰 해악을 불러올 뿐이다.

1937년 10월 19일 옌안에서 열린 루쉰 서거 1주년 기념 대회에서 마오쩌둥은 '루쉰을 논함'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마오는 루쉰의 위 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루쉰은 '물에 빠진 개는 패야 한다(打落水狗)'고 주장했다. 물에 빠진 개를 패지 않아 그놈이 뛰쳐나오면 당신을 물려 들 것이고, 최소한 당신에게 흙탕물을 튀길 것이다."

그는 운집한 대중에게 루쉰의 혁명 정신을 배워 발양할 것을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현재 일본 제국주의라는 미친개를 아직도 물속에 빠뜨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놈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중국 국경에서 퇴출될 때까지 계속해서 두들겨 패야 한다.'

다산은 '일본론'에서 '일본의 풍속은 불교를 좋아하고 무력을 숭상해서 연해(沿海)의 여러 나라를 노략질하여 그 보화와 양식과 비단을 약탈해 눈앞의 욕심을 채웠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우환거리가 되어 신라 이래로 수십 년 사이라도 일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산은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나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같은 학자들의 문채가 찬란한 것을 보고 '지금의 일본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낙관했다. 무려 다섯 가지 근거를 대며 일본을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이제 와 다시 읽어 보니 다산의 낙관론은 너무 순진했다.

 

다산시문집 제12권 / 논(論)
일본론(日本論) 1


지금은 일본(日本)에 대해 걱정할 것이 없다. 내가 이른바 고학 선생(古學先生; 고학은 이등유정의 시호) 이등유정(伊藤維楨)씨가 지은 글과 적 선생(荻先生; 이름이 쌍송(雙松)인 적생조래荻生徂徠), 태재 순(太宰純) 등이 논한 경의(經義)를 읽어보니 모두 찬란한 문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은 일본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음을 알겠다. 비록 그들의 의론이 간혹 오활한 점이 있기는 하나, 그 문채가 질(質)보다 나은 면은 대단한 바 있다.

대체로 오랑캐를 방어하기가 어려운 것은 문물(文物)이 없기 때문이다. 문물이 없으면, 예의염치로 사나운 마음 분발함을 부끄러워하게 할 수 없고, 원대한 계책으로 무턱대고 뺏으려는 욕심을 중지시킬 수 없다. 그리하여 표범과 시랑(豺狼) 같은 사나운 짐승처럼 성나면 물어뜯고 탐나면 먹어치우게 되니, 어떻게 옳고 그름을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이것이 방어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옛날 우리나라에 문물(文物)이 없을 적에는 수양제(隋煬帝)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었지만 한 치의 땅도 못 얻었고, 당태종(唐太宗)은 온 나라의 군사력을 총동원하였으나 한쪽 눈이 먼 채 되돌아갔고, 고려 때에는 여진(女眞)을 굴복시켰고 유구국(琉球國)을 위력으로 제재했었다. 문물이 점차 성해지고 예의(禮義)를 숭상함으로 부터는 외적(外敵)이 침입해오면 두 손을 마주잡고 공물을 바칠 줄만 알 뿐이었다. 이것이 명백한 증거다.

일본의 풍속은 불교(佛敎)를 좋아하고 무력(武力)을 숭상하기 때문에 연해(沿海)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여 보화(寶貨)와 식량과 포백(布帛)을 약탈, 눈앞의 욕심만 채웠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근심거리가 되어온 바 신라 때부터 일찍이 사고없이 몇 십 년을 지낸 적이 없었고, 중국은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 지방이 해마다 노략질 당하여온 바 명(明) 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도 노략질의 걱정이 그치지 않았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주현(州縣)이 일본과 싸우지 않은 지가 이미 2백여 년이나 되었고, 중국도 서로 물화(物貨)를 매매하는 배[舟航]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진실로 예의와 문물이 그들의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풍속을 대폭 혁신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수천백 년 동안 고칠 수 없었던 것을 이렇게 하루아침에 거부 반응도 없어 그치게 할 수 있었겠는가.

노략질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려는 자가 있으면 그 측근의 신하가 간하기를, "그 땅은 얻어도 지킬 수가 없고 재물을 노략질하면 도적이란 이름만 남을 뿐입니다" 하고, 싸우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 측근의 신하가 간하기를, "아무 때 군대를 동원하여 공격했다가 단 한 사람의 군졸도 돌아오지 못했고, 아무 때에는 군대를 동원하여 공격했다가 그 여파로 나라도 따라서 망했습니다" 하니, 이에 중지하게 되었다.

이는 모두 문채(文彩)가 실질(實質)보다 나은 효과이다. 문채가 실질보다 나아지면 무사(武事)를 힘쓰지 않기 때문에 망령되이 이익을 노려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위에 열거한 몇 사람들이 경의(經義)와 예의(禮義)를 말한 것이 이러니 그 나라는 반드시 예의를 숭상하고 나라의 원대한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은 일본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페어플레이는 응당 천천히 행해져야 한다(论费厄泼赖应该缓行)

페어플레이는 응당 천천히 행해져야 한다(论费厄泼赖应该缓行)는 루쉰(鲁迅)이 1925년 12월 29일에 창작했고, 1926년 1월 10일 망원(莽原) 반월간 제1기에 발표했다.

'어사' 57기에서 린위탕(林语堂)이 '페어플레이'에 대해 거론하였는데, 그에 대해 루쉰은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을 예로 들어 사람을 무는 개라면, 그 놈이 뭍에 있건 물 속에 있건 간에 모두 때려야 하고,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은 남의 자식을 망치는 일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남이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犯而不校)은 '관용의 도(恕道)'이고, 눈에는 눈으로 갚고 이에는 이로 갚는 것(以眼还眼以牙还牙)은 '곧음의 도(直道)'이라. 중국에 가장 많은 것이 '굽음의 도(枉道)'이며,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고도 도리어 개에게 물리니 실로 어리숙한 사람이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1. 해제

어사(語絲) 57기에서 위탕(語堂) 선생께서 '페어 플레이(Fair play)'를 말씀하셨는데, 이런 정신이 중국에는 몹시 희귀하므로 우리는 이를 북돋우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고, 또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것으로 페어플레이의 뜻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 말의 뜻이 대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만약에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이 그런 정신의 하나라면 나도 따지고 싶은 게 있다. 다만, 제목에 '물에 빠진 개를 때린다'고 직접적으로 쓰지 않은 것은 남의 눈에 띄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즉, 머리 위에 '가짜 뿔'을 달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요컨대, '물에 빠진 개'는 때려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야말로 때려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일 따름이다.

2. '물에 빠지 개'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모두 때려도 되는 부류에 속한다

오늘날의 논자들은 흔히 '죽은 호랑이를 때리는 것'과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을 함께 논하면서 둘 다 비겁한 일에 가깝다고 취급한다. 내 생각에는, 죽은 호랑이를 때리는 것은 겁장이가 용감한 척하는 것으로서 자못 익살스러운 점이 있으며, 비록 비겁하다는 혐의를 면할 수는 없지만 그 비겁은 귀여운 데가 있는 비겁이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으로 말하자면, 결코 그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 개는 어떤 개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물에 빠졌는가를 보고서 결정해야 한다. 물에 빠진 이유를 연구해보면, 대체로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⓵개가 스스로 실족하여 물에 빠진 경우, ⓶다른 사람이 빠뜨린 경우, ⓷내가 직접 빠뜨린 경우이다. 앞의 두 경우를 만나서 부화뇌동하여 때린다면 물론 너무 시시한 일이고 어쩌면 비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개와 함께 싸우다가 내 손으로 그 놈을 물에 빠뜨렸다면, 물 속에 있는 놈을 죽간으로 마구 때린다 해도 심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앞의 두 경우와 함께 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용감한 주먹은 이미 땅에 쓰러진 상태는 결코 더 이상 때려선 안된다고 하는데, 이는 실로 우리가 모범으로 받들 만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가지 조건을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상대 역시 용감한 투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패배한 뒤,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후회하여 다시 찾아오지 않거나, 아니면 당당하게 복수를 하러 와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안될 것이 없다.

그러나 개로 말하자면, 그런 예를 적용하여 정정당당한 적수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 개가 아무리 미친 듯이 짖어대도 사실상 무슨 '도의'를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는 헤엄을 칠 줄 알기 때문에 반드시 뭍으로 기어올라올 것이고, 주의하지 않으면 그 놈은 몸을 추켜세우고 한바탕 흔들어서 사람들의 몸과 얼굴에 온통 물방울을 튀기고서는 꼬리를 사리며 도망칠 것이다. 그 뒤로도 그런 성정은 여전히 변치 않을 것이다.

어리숙한 사람이 개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세계를 받은 것이라 여기고, 이미 참회했음이 분명하며 다시는 물에서 나와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착각치고는 대단한 착각이다. 요컨대, 사람을 무는 개라면, 전부 패도 되는 부류에 속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놈이 뭍에 있건 물 속에 있건.

3. 특히 발바리는 물 속에 처넣고, 그리고서 또 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발바리는 일명 하바꺼우(哈吧狗)라 하고 남방에서는 서양개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중국 특산이고 세계 개 경연대회에서 종종 금상을 타곤 한다. '대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의 개 사진에 몇 개가 있는데 바로 우리 중국의 발발이라고 한다.

이것도 일종의 국가적 영광이다. 그러나, 개와 고양이는 원수지간이지 않은가? 그 놈은 개이면서도 고양이를 몹시 닮았다.

절충적이고 공정하며 조화롭고 평정한 낯을 떠받들고 있고, 유유하게, 다른 놈들은 모두 과격한데 오직 제놈만 '중용의 도'를 터득한 것 같은 낯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부호, 환관, 귀부인, 숙녀들에게 총애를 받으며 그 씨가 면면히 이어져왔다.

그 놈의 일이란 뺀지르르한 털 덕분에 귀인의 손에 길러지거나, 국내외의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목에 가는 사슬을 맨 채 발뒤꿈치를 따라 다니는 것뿐이다.

그런 놈들은 먼저 물 속에 처넎어야 하고, 그리고 또 때려야 한다. 만약에 그 놈이 스스로 물에 빠졌다면, 실로 쫓아가서 때려도 무방하다. 다만, 자신이 지나치게 사람이 좋은 호인이라면 물론 때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나 그 놈을 위해 탄식할 필요는 없다.

발발이에게 그렇게 너그러울 수 있다면 다른 개들들 더더욱이 때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권세와 이익을 몹시 따르기는 하지만, 필경 아직은 어느 정도 늑대 같은 야성을 띠고 있고, 발발이처럼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상은 말이 나온 김에 한 말인지라, 본주제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4.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은 남의 자식을 망치는 일이다

요컨대, '물에 빠진 개를 때려야 하는가' 여부는, 우선 그 놈이 뭍으로 기어오른 뒤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 개의 성질은 대개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일만 년 뒤라면 혹시 지금과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이다.

만약에 물에 빠진 뒤의 처지가 몹시 불쌍하다고 여긴다고 한다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 중에 불쌍한 것들은 참으로 많다. 콜레라균만 하더라도, 생식이 빠르기는 하지만, 그 성격은 얼마나 미욱하리 만치 성실한가. 그러나 의사들은 그것들을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지금의 관료와 토착형 신사나 서양형 신사들은 자기 뜻에 어긋나기만 하면 즉시 빨갱이니 공산당이니 한다. 민국 원년 이전에는 좀 달랐다. 처음에는 캉당이라 했고, 나중에는 거당이라 했다.

심지어는 관에 밀고하기까지 했는데, 자신의 존엄과 영예를 보전하려는 면도 확실히 있었지만, 당시에 일컫던, '사람의 피로 관모의 장식을 붉게 물들인다'는 뜻도 없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결국 혁명은 일어났고, 거드름을 피우던 신사들은 금세 상가집 개처럼 불안에 떨며 변발을 머리 위로 틀어올렸다. 혁명당은 새로운 기풍. 신사들이 전에 이를 갈며 증오하던 새로운 기풍을 발휘하여 제법 '문명'스러워졌다. 말인즉슨 '함여유신'이네, 우리는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않네, 너희들 마음대로 기어 올라오든지 말든지 하네, 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그 놈들은 기어 올라왔고, 민국 2년 하반기까지 엎드려 있다가 2차 혁명 때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위엔스카이를 도와 수많은 혁명가들을 물어 죽였다.

중국은 또다시 하루하루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고, 지금까지도 유로는 말할 것도 없고 유소조차 우글거리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선열들이 착한 마음씨로 요귀들에게 베푼 자비가 그 놈들을 번식시켰기 때문이다. 뒷날 사태를 알게 된 청년들은 어둠에 반항하기 위해 기력과 생명을 한층 더 소모해야 했다.

츄진(秋瑾) 여사는 바로 그 밀고로 죽었다. 혁명 이후에 잠시 '여협'이라 불리웠지만 지금은 입에 올리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혁명이 일어나자, 그녀의 고향에 도독(지금의 이른바 독군과 같다)이 부임했는데, 그녀의 동지였던 왕진파(王金發)이었다. 그는 츄진을 살해한 주모자를 체포하고 밀고 문건을 조사, 수집하여 그녀의 복수를 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주모자를 석방하고 말았다. 이미 민국이 성립된 마당에 더 이상 묵은 원한을 들추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는 것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차 혁명이 실패하고 나자 왕진파는 위안스카이의 주구에서 총살되었다. 여기에 관련된 유력자는 그가 석방해준, 츄진 살해의 주모자였다.
그 사람도 이제는 이미 '천수를 다하고 죽은' 뒤다.

그러나 그곳에서 계속해서 발호하고 출몰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인간부류다. 그래서 치우진의 고향은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 이고, 해가 바뀌어도 조금도 진보가 없다. 그 점에서 볼 때, 가히 중국의 모범이라 할 이름난 도시에서 성장한 양인위(楊陰楡) 여사님과 천시잉(陳西瀅)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복도 많으시지.

5. 실각한 정객을 '물에 빠진 개'와 함께 논해서는 안 된다

남이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은 '관용의 도'이고, 눈에는 눈으로 갚고 이에는 이로 갚는 것은 '곧음의 도'이다.

중국에 가장 많은 것은 '굽음의 도'이어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고도 도리어 개에게 물린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어리숙한 사람이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속담에 '충후하다는 것은 무용하다는 것과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좀 각박할지는 모르겠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는 나쁜 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많은 쓰라린 경험을 그러모은 뒤의 경구인 것이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다는 설을 예로 보면, 그런 설이 나오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때릴 힘이 없는 것이고, 둘은 비유를 잘못 한 것이다.

하나는 실각한 정객을 물에 빠진 개와 잘못 동일시하는 것이고, 둘은 실각한 정객에도 좋은 자와 나쁜 자가 있음을 변별하지 않고서 일률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인 바, 그 결과 도리어 악을 방임하게 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정국의 불안정 때문에 실로 흥망의 교체가 수레바퀴 구르는 듯한데, 빙산에 의지하여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던 악인이 일단 실족하면 갑자기 동정을 애걸하고, 그러면, 그자가 무는 것을 직접 보았거나 직접 겪었던 어리숙한 사람들은 갑자기 그자를 '물에 빠진 개'로 여겨 때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측은한 생각까지 가지며, 공리가 이미 신장되었고 이제는 우리가 의협정신을 가질 때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자는 정말로 물에 빠진 적이 결코 없으며, 이미 소굴을 다 만들어 놓았고 양식도 충분히 쌓아놓았다는 것(그것도 조계지 안에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기껏해야, 유유히 도망쳐 숨을 수 있도록, 절름발이 시늉으로 사람들의 애오라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훗날 다시 들이닥쳐 전과 똑같이 먼저 어리숙한 사람들을 무는 것에서 시작하여 '우물에 빠뜨리고 돌을 던지는 짓'을 비롯,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그 원인을 추적해보면, 일부는 바로 어리숙한 사람들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았다는 데 원인이 있다. 그러므로 좀 가혹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파서 스스로를 묻는 노릇이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6. 아직은 애오라지 '페어' 만을 할 수는 없다

어진 사람들은,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페어플레이'가 필요 하지 않다는 거냐고 질문할 지도 모른다. 나는 즉각 대답할 수 있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라고. 이것이 바로 '자업자득'으로 터득한 것이다. 어진 사람들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르나, 나는 그 방법이 일리가 있다고 말하겠다.

토착형 신사나 서양형 신사들이 늘상 말하지 않았던가, 중국은 중국적 특수성이 있어서 외국의 평등, 자유 등등을 적용할 수 없다고. 그 페어플레이도 그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당신에게 '페어'하지 않는데 당신만 그에게 '페어' 하다가 결국 자신만 손해를 보게 되며, '페어' 하고자 해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페어' 하려면, 먼저 상대를 잘 살펴보는 게 좋다. '페어'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 같으면 굳이 대접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가 '페어' 한 다음에 다시 그와 '페어'를 논해도 늦지 않다.

여기에는 이중 도덕을 주장한다는 혐의가 다분히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부득이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에는 바람직한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지금 중국에는 허다한 이중 도덕이 있다. 주인과 노예, 남성과 여성이 모두 서로 도덕이 다르고, 통일되어 있지 않다.

만약 '물에 빠진 개'와 '물에 빠진 사람'의 경우만 유독 동일시한다면 그것은 실로 편파적이고 시기상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신사들이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편적으로 시행하려면 적어도 이른바 '물에 빠진 개'라는 자들이 인간다움을 띨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절대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즉,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상대를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등도 두어야 한다. 즉, '페어'는 반드시 상대가 누구인가를 보고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물에 빠졌든지 간에 사람이다 싶으면 돕고, 개다 싶으면 내버려두고, 나쁜 개다 싶으면 때린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 패거리는 돕고 다른 패거리는 토벌하는 것'일 따름이다.

마음속은 온통 '시어미 근성'이면서 입으로는 '공평한 도리'를 뇌까리는 신사들의 명언은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성실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공평한 도리 역시,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좋은 사람을 구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나쁜 사람을 보호해주기까지 한다.

나쁜 사람이 득세하여 좋은 사람을 학대할 때에는, 설사 공평한 도리를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 해도 나쁜 사람은 결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부르짖음은 단지 부르짖음으로 그치고 좋은 사람은 여전히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어쩌다가 좋은 사람이 조금씩 일어서게 되면, 나쁜 사람은 본래 물에 빠져야 마땅한 것인데도, 성실한 공리론자들은 '보복하지 말라'느니, '너그럽게 용서하라'느니, '악으로써 악에 대항하지 말라'느니 하며 떠들어댄다.

이번에는 실효가 나타나서 헛 부르짖음으로 그치지 않게 된다. 착한 사람은 그 말을 옳다 여기고, 그리하여 나쁜 사람은 구제 받는다. 그러나 구제 받은 뒤에 그는, 틀림없이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하지, 회개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더구나 진작 굴을 세 개쯤 파놓은 데다가 아부를 잘하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혁혁한 세력을 회복하고, 전과 똑같이 나쁜 짓을 한다.

이때, 공리론자들은 물론 또다시 큰소리로 부르짖지만, 이번에도 나쁜 사람은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악을 미워하기를 너무 엄하게' 하고 '개혁을 너무 조급하게' 한, 바로 그 때문에 한나라의 청류와 명나라의 동림이 실패했다고 하면서, 논자들은 항상 그들을 책망한다.

그러나 이 점은 전혀 모른다. 그 상대는 '선을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빛이 어둠과 철저하게 싸우지 못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이 악에 대한 방임을 관용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계속해서 대충 넘어간다면, 오늘날과 같은 혼란 상태는 끝없이 계속 될 것이다.

7. '상대방의 수법을 상대방에게 적용하라'

중국인은 한의를 믿는 사람도 있고 양의를 믿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 좀 큰 도시에는 으레 두 종류의 의사가 다 있어서 사람에 따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확실히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방법을 널리 확대 시킨다면 틀림없이 원성이 훨씬 줄어들 것이고, 의외로 천하가 태평해질는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민국의 보통 예절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만은 큰 절을 하게 한다. 민국의 법률에는 태형이 없지만, 체형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는 특별히 곤장을 때린다.

그릇과 젓가락, 밥과 반찬 등은 현대인을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수인씨 이전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는 날고기를 먹인다. 또 초가집을 수천 호 지어서, 대저택에 살면서 요순을 흠모하는 높은 선비들이 있으면 모두 끌어다가 거기에서 살게 한다.

물질문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원한을 품으면서까지 자동차에 타는 일은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참으로, 이른바 '그들은 인을 추구하다가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랴'가 될 것이며, 우리의 귀도 훨씬 더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 하지 않으면서 한사코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다스리려 한다. 그런 까닭에 천하가 복잡해진다. 페어플레이는 특히 그 유폐가 커서, 심지어는 약점으로까지 변하여 나쁜 세력에게 유리한 점을 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류바이자오(劉百昭)가 베이징여사대 학생들을 폭력으로 쫒아냈을 때 '현대평론'은 방귀조차 뀌지 못했는데, 일단 여사대가 회복되고자 천시잉이 여대 학생들에게 교사를 점거하라고 선동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그들이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강제로 그들의 짐을 들어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폭력으로 쫓아내고 짐을 들어낸 류바이짜오의 선례가 있는데, 어째서 유독 이번에만 '부끄럽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그가 베이징여사대 쪽에 '페어'의 기미가 있다는 것을 냄새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페어'는 도리어 약점으로 변하여, 거꾸로 이용당해서 장스쟈오 유택'의 보디가드가 되었다.

8. 결론

이상에서 말한 것들이 신과 구, 혹은 무슨 두 파벌 간의 싸움을 자극하여 악감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대립을 더욱 격화시키지 않을까, 하고 나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히 단언하거니와, 반개혁가가 개혁가에게 끼치는 해독은 이제껏 한 번도 늦춰진 적이 없고, 수단의 악랄함도 이미 그 극에 달했다.

단지 개혁가들만이 아직도 꿈속에 머물면서, 항상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아직도 개혁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태도와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 打(칠 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丁(정, 타)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옛날 나무를 자르는 소리, 비오는 소리, 악기(樂器)의 소리 등을 정정(丁丁)이라고 하였다. 정(朾)은 나무를 치는 소리를 나타낸다. 나중에 치는 것은 손의 동작이므로 재방변(扌=手; 손)部로 바꿔 쓰고 발음(發音)도 변하여 '타'라고 읽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打자는 '치다'나 '때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打자는 手(손 수)자와 丁(못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丁자는 나무에 못질할 때 사용하는 '못'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 打자는 마치 손으로 못을 내리치는 듯한 모습을 그린 것과도 같다. 다만 打자는 단순히 '때리다'라는 뜻 외에도 어떠한 동작을행하고 있음을 뜻하는 접두어로 쓰일 때도 있다. 그래서 打(타)는 ①치다, 때리다 ②말하다, 사다, 세다, 더하다 ③및, 와 ④타, 다스 ⑤어떤 동작(動作)을 함을 뜻하는 접두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벌(伐), 칠 고(拷), 칠 당(撞), 칠 박(撲), 칠 격(擊), 칠 토(討), 칠 력(轢), 칠 공(攻), 망치 퇴(槌), 때릴 구(毆), 두드릴 고(敲), 쇠몽치 추(椎),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던질 투(投)이다. 용례로는 때리어 침을 타격(打擊), 동물이나 사람을 때리어 침을 타박(打撲), 얽히고 막힌 일을 잘 처리하여 나아갈 길을 엶을 타개(打開), 쳐서 부수어 버림을 타도(打倒), 때려서 죽임을 타살(打殺), 종을 침을 타종(打鐘), 곡식의 알을 떨어서 그 알을 거두는 일을 타작(打作), 야구에서 배트로 공을 치는 공격진의 선수를 타자(打者), 이득과 손실을 헤아려 봄을 타산(打算), 모조리 잡음을 타진(打盡), 전보를 침을 타전(打電), 문지르거나 뭉개거나 하여 지움을 타말(打抹), 거래할 물건의 값이나 수량 등을 미리 헤아려서 벌여 적음을 타발(打發), 사람을 때리고 침을 구타(毆打), 몹시 세게 때리거나 침을 맹타(猛打), 마구 때림을 난타(亂打), 피의자를 고문하여 때림을 고타(拷打), 타자할 때에 잘못 찍는 일 또는 그 글자를 오타(誤打), 잇달아 때리거나 침을 연타(連打), 북 등을 가락에 변화를 주면서 두드림을 곡타(曲打), 통쾌하게 때림 또는 그 타격을 통타(痛打),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이해 관계를 이모저모 따져 헤아리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해타산(利害打算), 울려는 아이 뺨치기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불평을 품고 있는 사람을 선동함을 비유한 말을 욕곡봉타(欲哭逢打),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을을 징계하여 갑을 경계함을 이르는 말을 타초경사(打草驚蛇),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라는 뜻으로 일정한 주의나 주장이 없이 그저 대세에 따라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풍타낭타(風打浪打) 등에 쓰인다.

▶️ 落(떨어질 락/낙)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洛(락)으로 이루어졌다. 풀(艹)잎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떨어지다를 뜻한다. 各(각)은 목적지에 도착하다, 안정되는 일, 음(音)을 나타내는 洛(락)은 시내가 아래 쪽으로 흘러가는 일, 초두머리(艹)部는 식물을 나타낸다. ❷형성문자로 落자는 '떨어지다'나 '떨어뜨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落자의 생성 과정은 비교적 복잡하다. 落자의 갑골문을 보면 비를 뜻하는 雨(비 우)자와 '가다'라는 의미의 各(각각 각)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각(떨어질 각)자가 본래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각자는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다'를 표현한 것이다. 소전에서는 落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각자와 落자를 서로 혼용했지만 지금은 落자만 쓰이고 있다. 落자는 나뭇잎이나 비가 '떨어지다'를 표현한 것으로 각자에 艹(풀 초)자를 더해 의미를 확대한 글자이다. 그래서 落(락)은 풀이나 나무의 잎이 떨어지다, 떨어지다, 떨어뜨리는 일 등의 뜻으로 ①떨어지다 ②떨어뜨리다 ③이루다 ④준공하다 ⑤두르다 ⑥쓸쓸하다 ⑦죽다 ⑧낙엽(落葉) ⑨마을 ⑩빗방울 ⑪울타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떨어질 추(墜), 떨어질 타(墮), 떨어질 운(隕), 떨어질 령(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탈 승(乘), 들 입(入), 날 출(出), 더할 가(加), 미칠 급(及), 더할 증(增), 얻을 득(得), 회복할 복(復), 덜 손(損), 더할 첨(添), 오를 척(陟), 오를 등(登), 더할 익(益), 들일 납(納)이다. 용례로는 선거에서 떨어짐을 낙선(落選), 성적이 나빠서 상급 학교나 상급 학년에 진학 또는 진급을 못 하는 것을 낙제(落第), 떨어진 나뭇잎을 낙엽(落葉),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맥이 풀리는 것을 낙담(落膽), 세력이나 살림이 줄어들어 보잘것이 없음을 낙탁(落魄), 문화나 기술 또는 생활 등의 수준이 뒤떨어지는 것을 낙후(落後), 천거 또는 추천에 들지 못하고 떨어짐을 낙천(落薦), 경쟁 입찰 따위에서 입찰의 목적인 물품 매매나 공사 청부의 권리를 얻는 일을 낙찰(落札), 말에서 떨어짐을 낙마(落馬), 여럿이 줄을 지어 가는 무리에서 함께 가지 못하고 뒤로 처지는 것을 낙오(落伍), 과거에 떨어지는 것을 낙방(落榜), 높은 곳에서 떨어짐을 추락(墜落), 값이나 등급 따위가 떨어짐을 하락(下落), 죄를 범하여 불신의 생활에 빠짐을 타락(墮落), 기록에서 빠짐을 누락(漏落), 이리저리 굴러서 떨어짐을 전락(轉落), 당선과 낙선을 당락(當落), 성하던 것이 쇠하여 아주 형편없이 됨을 몰락(沒落), 빠져 버림을 탈락(脫落), 물가 따위가 갑자기 대폭 떨어짐을 폭락(暴落), 물가나 시세 등이 급히 떨어짐을 급락(急落), 지키는 곳을 쳐서 둘러 빼거나 빼앗김 또는 적의 성이나 요새 등을 공격하여 빼앗음을 함락(陷落),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가는 봄의 경치로 남녀 간 서로 그리워 하는 애틋한 정을 이르는 말을 낙화유수(落花流水),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진 키 큰 소나무를 낙락장송(落落長松),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기는 커녕 도리어 해롭게 함을 이르는 말을 낙정하석(落穽下石), 가을이 오면 낙엽이 펄펄 날리며 떨어짐을 일컫는 말을 낙엽표요(落葉飄颻), 몹시 놀라 얼이 빠지고 정신 없음을 일컫는 말을 낙담상혼(落膽喪魂), 끓는 물에 떨어진 방게가 허둥지둥한다는 뜻으로 몹시 당황함을 형용하는 말을 낙탕방해(落湯螃蟹), 낙화가 어지럽게 떨어지면서 흩어지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낙영빈분(落英繽粉), 지는 달이 지붕을 비춘다는 뜻으로 벗이나 고인에 대한 생각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낙월옥량(落月屋梁) 등에 쓰인다.

▶️ 水(물 수)는 ❶상형문자로 氵(수)는 동자(同字)이다.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물을 뜻한다. 본디 물 수(水)部는 시내의 뜻이었다. 부수로 쓸 때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水자는 '물'이나 '강물', '액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水자는 시냇물 위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水자의 갑골문을 보면 시냇물 주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물'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액체나 '헤엄치다', '범람하다'와 같이 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氵자나 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水(수)는 (1)오행(五行)의 하나. 방위(方位)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 빛깔로는 검정을 나타냄 (2)수요일(水曜日)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물 ②강물 ③액체(液體), 물과 관련된 일 ④홍수(洪水), 수재(水災),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불은 물) ⑤수성(水星: 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 ⑥별자리의 이름 ⑦물을 적시다, 축이다 ⑧물을 긷다, 푸다 ⑨헤엄치다 ⑩물로써 공격하다 ⑪평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시내 계(溪), 바다 명(溟),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메 산(山), 큰 산 악(岳), 뭍 륙/육(陸), 불 화(火),빌 공(空)이다. 용례로는 물 속에서 몸을 뜨게 하고 손발을 놀리며 다니는 짓을 수영(水泳), 축축한 물의 기운을 수분(水分), 물속에 잠김을 수몰(水沒), 물을 보내는 통로를 수로(水路), 물의 겉을 이루는 면을 수면(水面), 홍수로 인한 해를 수해(水害), 물에 의해 발생하는 힘을 수력(水力), 물의 깊이를 수심(水深), 저수지에 설치하여 수량을 조절하는 문을 수문(水門), 물의 양을 수량(水量), 물 속에서 자라는 풀을 수초(水草),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임금과 신하 또는 부부 사이처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이르는 말 또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한 사이를 일컫는 말을 수어지교(水魚之交) 또는 수어지친(水魚之親), 물이 모이면 내를 이룬다는 말을 수적성천(水積成川),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미미한 힘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적석천(水滴石穿), 산과 바다에서 나는 진귀하고 맛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륙진찬(水陸珍饌), 산과 바다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물을 일컫는 말을 수륙진미(水陸珍味), 물이 맑으면 큰 고기가 없다는 뜻으로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그 몸을 감출 곳이 없어 그곳에는 살지 않음과 같이 사람이 너무 똑똑하거나 엄하면 남이 꺼려하여 가까운 벗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물이 샐 틈이 없음으로 단속이 엄하여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수설불통(水泄不通), 깊고 넓은 물에는 큰 고기가 깃듦을 일컫는 말을 수관어대(水寬魚大), 물결이 일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수파불흥(水波不興), 물과 불은 서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서로 원수같이 대함을 일컫는 말을 수화상극(水火相剋), 흐르는 물과 하늘의 뜬구름이라는 뜻으로 과거사가 흔적이 없고 허무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 수류운공(水流雲空), 바다 멀리 수면과 하늘이 서로 맞닿아 그 한계를 지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수천방불(水天髣髴), 물 위에 뜬 기름이란 뜻으로 서로 잘 어울릴 수 없는 사이를 이르는 말을 수상유(水上油), 물은 그릇의 모남과 둥긂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사람은 상종하는 사람의 선악에 따라 달라지므로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말을 수임방원기(水任方圓器), 물이 깊고 넓으면 고기들이 모여 논다는 뜻으로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사람들이 따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광즉어유(水廣則魚遊), 물이 흐르면 고기가 다닌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나 때가 되면 이루어짐을 일컫는 말을 수도어행(水到魚行), 물이 빠져 밑바닥의 돌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물가의 겨울 경치를 일컫는 말 또는 나중에 사건의 진상이 명백하게 드러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수락석출(水落石出), 바다와 육지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음을 이르는 말을 수륙만리(水陸萬里), 물에 비친 달과 거울에 비친 꽃이라는 뜻으로 볼 수는 있어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월경화(水月鏡花), 바다 멀리 수면과 하늘이 하나로 이어져 그 경계를 알 수 없을 만큼 한 가지로 푸름을 일컫는 말을 수천일벽(水天一碧),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외로운 넋을 일컫는 말을 수중고혼(水中孤魂), 물이 흐르면 자연히 개천을 이룬다는 뜻으로 학문을 열심히 하면 스스로 도를 깨닫게 됨을 이르는 말을 수도거성(水到渠成), 오행에 수기가 왕성한 절기로 곧 겨울을 일컫는 말을 수왕지절(水旺之節), 시문을 짓는 데 재주가 샘솟듯 풍부하여 빨리 이루어 놓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수용산출(水湧山出), 물과 불은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친교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수화불통(水火不通) 등에 쓰인다.

▶️ 狗(개 구)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句(구)로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狗자는 '개'나 '강아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狗자는 犬(개 견)자와 句(글귀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句자는 말뚝에 줄이 엮여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개를 뜻하는 글자로는 이미 犬자가 있기 때문에 狗자가 따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다.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서는 이에 대해 큰 개는 犬으로 불렀고 작은 개는 狗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狗자는 이와는 관계없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개'나 '강아지'를 뜻하고 있다. 그래서 狗(구)는 ①개(작은 개) ②강아지 ③범의 새끼 ④곰의 새끼 ⑤개새끼(행동이 나쁜 사람 비유) ⑥별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개고기를 구육(狗肉), 개의 간을 구간(狗肝), 개장국을 구장(狗醬), 바닷 장어를 구어(狗魚), 너구리를 구환(狗獾), 개의 목에 다는 방울을 구황(狗鎤), 개의 가죽을 구피(狗皮), 개의 쓸개를 구담(狗膽), 개가 앓는 돌림병을 구역(狗疫), 개고기를 쪄서 만든 음식을 구증(狗蒸), 개와 돼지를 구체(狗彘), 개를 통째로 진하게 고아 낸 국물을 구고(狗膏), 개를 잡음을 구도(狗屠), 개가 짖음을 구폐(狗吠), 개와 말이라는 뜻으로 신하가 임금에게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을 구마(狗馬), 개와 쥐의 뜻으로 인격이 비천한 사람을 구서(狗鼠), 개나 말이 그 주인에게 다하는 충성심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진심을 낮추어 일컫는 말을 구마지심(狗馬之心),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뜻으로 한 나라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을 비유한 말을 구맹주산(狗猛酒酸),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로 잇는다는 뜻으로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 또는 쓸 만한 인격자가 없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고관에 등용함을 이르는 말을 구미속초(狗尾續貂), 개밥의 도토리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톨이가 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구반상실(狗飯橡實),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 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하게 버린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토사구팽(兎死狗烹),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 또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양두구육(羊頭狗肉),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한다는 뜻으로 무식쟁이라도 유식한 사람과 사귀면 견문이 넓어짐 또는 무슨 일 하는 것을 오래 오래 보고 듣고 하면 자연히 할 줄 알게 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당구풍월(堂狗風月),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계명구도(鷄鳴狗盜), 초상집의 개라는 뜻으로 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상가지구(喪家之狗), 진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강인한 성격의 함경도 사람을 평한 말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몰골 사납게 싸움을 일컫는 말을 이전투구(泥田鬪狗), 큰 일을 하려다가 그 일을 이루지 못할 때는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 한 가지의 작은 일도 이룰 수가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화룡유구(畫龍類狗), 토끼를 발견한 후에 사냥개를 놓아서 잡게 하여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사태의 진전을 관망한 후에 응하여도 좋다는 말을 견토방구(見兔放狗)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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