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물불수(官物不受)
관청의 물건을 받지 않는다, 또는 공공의 물건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는 뇌물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官 : 벼슬 관(宀/5)
物 : 물건 물(牛/4)
不 : 아닐 불(一/3)
受 : 받을 수(又/6)
벼슬 관(官) 글자는 높은 언덕에 위치하는 집을 의미한다고 한다. 집 면(宀) 안의 이(㠯)는 쓸 이(以)의 고자(古字)이지만 언덕 퇴(堆)의 옛 글자 퇴(垖)에서 획이 줄어든 한자다.
어디에서 나왔든 높은 집 관청(官廳)에서 백성을 보살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관리(官吏)이고 백성을 다스린다고 목민지관(牧民之官)이 됐다.
그런데 관태어환성(官怠於宦成)이란 말이 있듯이 이곳서 일하다 보면 백성이 눈 아래로 보이고, 출세함에 따라 태만한 마음이 생겨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고 예로부터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관청 소유의 물건이 관물(官物)이라 해도 모두 국가의 소유, 국민의 세금에서 나왔으니 절대 허투루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기 대해서는 다산(茶山)의 목민심서(牧民心書)가 먼저 떠오른다. 관리의 폐해를 없애고 행정의 쇄신을 위해 조목조목 설명한 명저로 오늘날까지 애독되는 명저다.
율기(律己)편 청심(淸心)조의 앞부분에 '청렴은 관리의 본무(廉者 牧之本務)'라 강조하고 그러지 못하면 민지위도(民指爲盜), 백성들이 도둑으로 손가락질할 것이라 했다.
그 지역서 나는 진귀한 물건은 하나도 가지고 돌아가지 않아야 청렴이라 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관청의 물건(官物)을 받지 않는다(不受)는 이 성어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여 공공의 물건을 사사로이 남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임종대 지음 '한국고사성어'에는 '고금청담(古今淸談)' 등에서 전하는 이야기라면서 조선 중종(中宗) 때의 청렴한 선비 홍순복(洪順福)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장조부(丈祖父; 부인의 할아버지)가 어느 고을의 원님으로 부임했을 때 인사를 드리러 갔다. 다른 사람들은 찾아와 부탁을 하는데도 홍순복은 관가의 물건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떠날 때 장조부가 개가죽과 벌꿀 다섯 홉을 억지로 선물하여 받아 왔는데 나중에 돌려보내면서 말했다. '개가죽으로 안장을 만들면 닳을 걱정을 해야 되고, 꿀을 먹고 먼 길을 떠나면 오히려 더 갈증이 납니다.'
이런 청렴의 나라, 청백리(淸白吏)의 전통은 어디로 갔는지 부끄러운 지경이다. 업무와 관련해서는 자그마한 대가도 받아서는 안 된다.
공직자 인사 청문회에서나 재산 공개 때에는 연봉 보다 더 많은 재산이 늘어난 경우가 부지기수다. 물론 불법이나 위법이 아니라 해도 전혀 관계없다면서 직에서 밀려나는 것을 보면 떳떳한 행위는 아닌 모양이다.
관물불수(官物不受)
관청의 물건을 받지 않는다, 또는 공공의 물건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는 뇌물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벼슬 관(官)이라는 글자는 높은 언덕에 위치하는 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높은 집 관청(官廳)에서 백성을 보살피는 사람이 관리(官吏)이고, 백성을 다스린다고 목민지관(牧民之官)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관청에서 일하다 보면 백성이 눈 아래로 보이고, 출세함에 따라 태만한 마음이 생겨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고 예로부터 주의를 기울이게 했지요.
그래서 관청 소유의 물건은 모두 국가의 소유, 국민의 세금에서 나왔으니 절대 허투루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산(茶山)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는 관리의 폐해를 없애고 행정의 쇄신을 위해 율기(律己)편 청심(淸心) 조의 앞부분에 ‘청렴은 관리의 본무(廉者 牧之本務)’라 강조했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민지위도(民指爲盜), 즉 백성들이 도둑으로 손가락질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관리가 그 지역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 지역서 나는 진귀한 물건은 하나도 가지고 돌아가지 않아야 하고 그래야 청렴(淸廉)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청의 물건을 받지 않는다는 이 성어(成語)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여 공공의 물건을 사사로이 남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조선 중종(中宗) 때의 청렴한 선비 홍순복(洪順福 )은 그의 장조부(丈祖父)가 어느 고을의 원님으로 부임했을 때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찾아와 부탁을 하는데도 홍순복은 관가의 물건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떠날 때 장조부가 개가죽과 벌꿀 다섯 홉을 억지로 선물하여 받아 왔는데 나중에 돌려보내면서 말합니다. "개가죽으로 안장을 만들면 닳을 걱정을 해야 되고, 꿀을 먹고 먼 길을 떠나면 오히려 더 갈증이 납니다."
이렇게 옛날의 청백리(淸白吏)는 자신에게 더욱 엄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청렴의 나라, 청백리의 전통은 어디로 갔는지 요즘 관리들은 부끄러운 지경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공직자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자그마한 대가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공직자 인사 청문회에서나 재산 공개 때에는 연봉 보다 더 많은 재산이 늘어난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 관리 중의 최고봉이 오늘날 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날 서울고법 형사1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국고손실, 조세포탈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 추징금 약 57억8천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각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책임을 다스의 직원, 함께 일한 공무원, 삼성그룹 직원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사람 허위진술 탓으로 돌렸다”며, “자신의 책임이 명백한 경우에도 반성하거나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항소심 유죄 뇌물액이 삼성 관련해 27억 원 정도 증가했고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관련 17억 감소해 모두 10억 원이 증가한 것을 감안했다”며, “공직 법에 의해 분리하게 된 형량 합계를 원심 형량보다 높이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양형사유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한,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내린 보석결정을 취소했습니다. 이에 따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이 전 대통령은 이날 법정구속이 된 것입니다. 재판부의 선고 직후 이 전 대통령은 판결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재판부를 응시하기만 했다합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이런 대통령을 모셨던 이 나라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쯤 되는 사람이 '관물불수'라는 말도 못 들어 본 모양입니다. 그럼 바람직한 대통령 상(像)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대통령은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과 지혜를 갖춰야 합니다. 둘째, 대통령은 국민에게 신용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대통령은 절대로 사리(私利)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대통령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되는가를 늘 대조해야 합니다.
제 한 평생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많은 대통령을 겪어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런 바람직한 덕목을 갖춘 대통령을 모셔 볼 때도 된 것 같습니다. 다시는 국민들이 대통령의 부정으로 부끄러운 일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선은 뇌물천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공직사회를 비롯하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뇌물수수 및 공여 등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근래에 발생한 부산 저축은행 사태, 대통령 친인측의 청탁비리,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스포츠계의 승부조작 등은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사실 이런 뇌물수수와 청탁비리 등으로 인한 정치사회의 부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만큼 부정한 청탁과 뇌물수수 및 뇌물제공이 공공연하게 만연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뇌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임금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 권력자부터 노비까지 뿌리박힌 뇌물수수 관행
조선 초기(태조~성종)에는 뇌물이 공공연했다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뇌물 풍조가 만연하였다. 위로는 중앙의 권력자들인 정승과 판서와 참판으로부터 아래로는 내시와 아전에 이르기까지 뇌물을 받아 챙겼다. 심지어는 노비조차도 뇌물을 받았다. 또한 지방에서는 관찰사나 수령들이 집중적으로 뇌물을 받았다. 관찰사는 수령들에게서 뇌물을 받았고, 수령들은 상인이나 백성들에게서 뇌물을 거둬들였다. 문관만이 아니라 무관들도 뇌물을 받았고, 중국에 파견되는 사신들이 상인들에게 뇌물을 요구했으며, 후궁이나 임금의 유모 중에도 이것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범죄자를 다스리는 포졸과 곤장을 치는 나장들까지도 뇌물을 받는 실정이었다. 중앙과 지방의 최하급관리라고 할 수 있는 아전들은 선상노비(選上奴婢) 선정, 공물 수납, 부역 부과 등과 관련하여 뇌물을 챙겼다. 그밖에 조선에 파견된 중국의 사신들이 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많다 보니 이와 관련된 무고나 탄핵이 난무하여 깨끗한 사람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이 뇌물을 바쳤을까?
당시에는 지방의 관찰사나 수령들이 집중적으로 뇌물을 바쳤다. 관찰사들은 중앙의 권세가들에게 줄을 대어 출셋길을 마련하기 위해 뇌물을 주었고, 수령들도 권세가들에게 뇌물을 주어 중앙으로 진출하려고 하였으며, 자신들의 고과성적을 매기는 관찰사들에게도 뇌물을 바쳤다. 그 밖에도 죄수와 상인 등이 뇌물을 제공했고, 특히 외교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본인들과 귀순하려는 여진족이 조선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도 있었다. 사회 전반이 이렇다 보니 당시에는 특이하게도 뇌물을 전달하는 뇌물 브로커나 소송이나 고소를 업으로 삼는 자들까지도 있었다.
그들은 왜 뇌물을 주었을까?
우선 인사청탁을 위해서 이조판서나 재상 등에게 뇌물을 바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요즈음처럼 군대 징집을 면제 받으려고 하거나, 세금 감면, 형벌 감형, 재판 승소 등을 위해서 뇌물을 제공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뇌물의 액수에 따라 뇌물을 받은 본인은 최고 사형, 중노동을 시키는 도형(徒刑), 곤장으로 볼기를 치던 장형(杖刑), 작은 매로 볼기를 치는 태형(笞刑)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죄인의 얼굴이나 팔뚝에 살을 따고 홈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자자형(刺字刑)을 가할 수도 있었다.
뇌물을 주거나 받은 본인만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도 연좌제를 적용하여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고, 요직으로 나갈 수 없도록 막았다. 또한 뇌물을 받은 자와 함께 뇌물을 준 자도 아울러 처벌하게 되어 있었고, 뇌물을 주거나 받은 자를 천거한 사람도 벌을 주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뇌물과 관련된 범죄에 대하여 엄중한 처벌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임금의 총애를 받는 대신이나 중신들의 경우 불문에 부쳐지거나 경미한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처벌이 미온적이다 보니 뇌물비리가 만연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조선을 뒤흔든 뇌물 사건들
○ 임금이 지시한 뇌물금지 및 처벌법을 우습게 안 대신들
세종 6년(1424) 7월에 임금은 대신이나 조정 관리 중에 뇌물을 받는 자가 많아 이를 엄하게 금지하는 법과 뇌물을 받은 자와 준 자를 처벌하는 법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영의정 유정현은 “나 같은 늙은 자가 음식물을 받는 것이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겠소.”라고 했으며, 대제학 변계량과 이조판서 허조도 이에 동조하여 “먹는 물건을 주고받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하필 금할 것이 있겠소.(세종실록 권25, 6년 7월 14일 정해)”라고 말했다. 이렇듯 당시에도 대신들은 뇌물에 대한 인식이 아주 흐릿했다.
○ 임금 세종의 조말생 뇌물 무마 사건
장원급제자로 태종과 세종의 총애를 받은 대제학 조말생. 하지만 그의 뇌물 연류는 조선 천하가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병조판서를 재직할 때에는 뇌물을 받고 소송 판결을 지연했고, 토지를 받고 관등을 올려준 부당한 인사 사건 등을 저질렀다. 충신들은 그를 죽어도 그의 죄가 남을 법하다며 상소를 올렸으나, 임금 세종은 그를 선왕 태종이 총애했던 인물로 공로가 있다하여 귀양을 보는 걸로 뇌물 사건을 무마했다.
○ 신숙주의 아들 신정, 뇌물 대가로 사약을 받은 사건
세조의 공신 훈구파의 신숙주. 그의 아들 신정은 탐욕스럽기가 끝이 없었다 한다. 신숙주는 입버릇처럼 “우리 집을 패망시킬 자는 반드시 이 자식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과거시험에서도 친구 양수사의 답안을 베껴 썼다. 하지만 세조는 그가 신숙주의 아들임을 알고 합격시켰다. 결국 그는 성종 13년(1482) 4월에 뇌물을 받고 관인을 위조하여 임금을 속인 죄로 사약을 마시고 비운을 맞게 된다.
○ 후궁의 부친이 뇌물을 받고 권력을 휘두르다
조선 초기 태종의 후궁인 숙공궁주의 아버지 김점은 평안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직접 자기 침실 안으로 드나들게 하여 뇌물을 받았으며, 벼슬을 돈을 받고 팔기도 하고 옥사도 봐주기도 했다. 심지어 죄수들까지 뇌물로 석방시키는 일이 허다했다. 그가 평안도 관찰사를 관둘 때, 뇌물을 운반하기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관직에서 물러나도 받은 뇌물은 변함없이 남아 있는 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는 뇌물로 퇴임 후를 준비한다.
○ 뇌물로 군역도 면제받다
장수나 만호 등 무관들의 뇌물수수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태조 7년(1398) 2월 경기도 관찰사 박경의 보고에 의하면, 각 도의 여러 진에 배치된 무관인 만호와 천호 들이 자기가 관할하는 수군들 가운데 부유한 자에게는 뇌물을 받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따라서 정작 국경을 지킨 자들은 가난한 사람과 아이, 그리고 늙은이들 뿐이었다고 한다.
○ 암행어사 출두도 미리 알려 피하게 했다
성종 20년(1489) 11월 사간원 헌납 윤긍 등이 암행어사를 보내어 수령들을 규찰할 것을 임금에게 청했다. 하지만 어사는 어느 지역에 들어가기도 전에 앞질러 소식이 전파되어 고을 수령에게 알려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사가 데리고 다니는 서리(아전)들이 암행어사의 위엄을 빌어 권세를 빙자하여 고을 수령을 위협하여 뇌물을 낚아채는 대신, 암행어사의 출두 시점을 미리 알려주었다고 한다. 요즘 경찰의 업소 단속 세태와 비슷하지 않은가!
○ 뇌물이 통하지 않았던 사람들
30여 년 동안 정승으로 있으면서 한결같이 청렴하기만 했던 정창손. 그는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을 고변한 김질의 장인으로서 세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성종 18년(1487) 1월 향년 86세로 정창손이 세상을 떠나자, 임금은 청빈한 재상이니 부의 물품을 넉넉히 주도록 명했다. 그의 시호가 충정(忠貞)인데, 그가 도를 곱게 지키고 굽히지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성종 때 이조와 병조 판서 등을 역임한 이숭원도 뇌물이 통하지 않았던 청백리였다. 그는 예조 참판 이보의 아들로서 문관에 장원급제하여, 사제감 주부에 임명되고, 바로 사간원 정언으로 전직되었다. 그후 사헌부 지평, 이조 정랑, 장례원 판결사, 좌승지, 평안도 관찰사, 이조 판서 등을 거쳤지만, 집안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좀처럼 끊이지 않는 비리의 문제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평범한 이들이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더라면 그나마 파급효과라도 낫지, 사회 고위층들이 행한 잘못은 엉뚱한 이들에게 괴로움을 선사한다. 게다가 그들은 법망은 교묘하게 피한다. 일단 아는 바가 많기 때문이고, 유죄를 무죄로 바꿀 만큼의 경제력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리를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바가 많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느 사회, 시대나 사정은 비슷한 것 같다. 개개인의 투철한 사명감과 양심 그리고 부정부패를 지탄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강렬한 국가들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수준에 오르는 게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타깝게도 갈 길이 먼 축에 속한다. 최근에는 더더욱, 언론이 쉬쉬하는 내용들까지 모조리 고려한다면 아마도 모든 걸 접어둔 채 이민이라도 떠나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비리가 현대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전통이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저자는 조선을 일컬어 ‘뇌물천하’였다고 말한다. 하나의 국가가 멸망으로 치달을 때 비리가 극에 달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 뇌물이 판을 치던 조선이 무려 600년이나 견디었다는 건 기적일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외부 세력의 공격이 뜸했기 때문에 비롯된 행운인 것일까.
다양한 뇌물 사건이 등장하는데, 대부분의 이름이 너무도 낯이 익어서 씁쓸했다.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들이 일단은 사회의 지배계층인 양반이라는 점 그리고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사례들은 지배계층의 비리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형조 판서, 명문가의 자손, 후궁의 부친, 관찰사 등등.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뇌물을 받고는 오리발을 내밀어대는데, 꼬장꼬장하고 체통 지키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시했던 선비 이미지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사례가 끊이지 않았던 것은 발각이 되더라도 처벌이 그리 강도 높지 못한 탓이었다.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의 경우 정이 너무도 많은 게 흠이었다. 자신이 신뢰하는 이가 부정적인 언사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 과감히 내칠 수 있는 단호함을 세종은 발휘치 못했다. 임금을 믿고 날뛴다는 말이 그래서 성립했던 모양이다.
뇌물의 경우 준 사람이 있으면 받은 사람도 있을 터인데, 양자가 명확할지라도 처벌에 있어서는 어느 한쪽만이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 받은 자가 어마어마한 권세가인 경우, 한 명이 아니라 도저히 벌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명인 경우 등이 바로 그랬다. 원칙을 중시하여 공명정대하게 처벌을 가했더라면 근절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뇌물 풍조는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풍조라고 말해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뇌물을 주고받았다. 관찰사들이 서로 뇌물을 주고받았고 재상이 후궁에가 뇌물을 주었으며 임금의 유모 역시 뇌물을 받았다. 제 주인의 꼬락서니를 보고 배운 노예가 뇌물을 주고 양인이 되고자 시도했으며, 성균관의 종은 뇌물을 받고 시험지를 빼돌리기도 하였다. 중국의 사신, 왜인, 대마도 도주 등도 뇌물을 우리나라 문화로 인식한 건지 알아서 뇌물을 청하고 또 바쳤다.
뇌물은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는 데에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가 뇌물 사건에 연루되었노라 무고하여 최소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혔다. 청렴함의 대가로 손꼽히는 황희 정승도 뇌물수수의 누명을 쓴 적이 있으니, 정말이지 머리 하나는 비상하게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몇몇은 끝까지 뇌물 따위와 상종을 하지 않았다. 정승으로 30여년을 있으면서도 청렴을 실천했던 정창손, 재산 한 푼 없이 생을 마감했다는 구치관 등의 삶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널리 칭송되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너도 나도 하는 부정행위로부터 거리를 두는 소수의 사람들은 칭송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이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 하여 조선이 마냥 부정적이기만 한 국가는 아니었을 것이다. 뇌물을 주제로 조선을 살펴보다 보니 지저분한 모습이 도드라져 보일 뿐, 어느 국가를 살펴보아도 정도는 비슷할 것이란 짐작이 든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였지만, 끊어야만 하는 역사라면 과감히 그 고리를 끊어보아야 할 것이다. 뇌물 따위에는 한 올의 아쉬움도 느끼지 말고 쿨하게 ‘안녕’을 고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 官(벼슬 관)은 ❶회의문자로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이; 많은 사람)의 합자(合字)이다. 官(관)은 많은 관리(官吏)가 사무를 보는 곳, 관리(官吏), 관청(官廳)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官자는 '벼슬'이나 '관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官자는 宀(집 면)자와 阜(언덕 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阜자는 흙이 쌓여있는 '언덕'이나 '구릉'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언덕을 뜻하는 阜자에 宀자가 결합한 官자는 '높은 곳에 지어진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전에는 官자가 나랏일을 하던 '관청'을 뜻했었다. 나랏일을 하는 관청을 높은 곳에 지어진 집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官자가 '벼슬아치'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食(밥 식)자를 더한 館(객사 관)자가 '관청'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官(관)은 (1)일정한 직책을 맡은 군인(軍人)이나 일정한 직위에서 일하는 공무원(公務員)임을 나타내는 말 (2)관청(官廳) (3)관청(官廳)의, 관청(官廳)에 딸린의 뜻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벼슬, 벼슬자리 ②벼슬아치 ③마을 ④관청(官廳), 공무(公務)를 집행(執行)하는 곳 ⑤기관(機關) ⑥일, 직무(職務) ⑦임금, 아버지, 시아버지 ⑧관능(官能), 이목구비 등 사람의 기관 ⑨본받다, 기준(基準)으로 삼아 따르다 ⑩직무(職務)로서 담당하다, 관리하다 ⑪벼슬을 주다, 임관하다 ⑫섬기다, 벼슬살이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벼슬 위(尉), 벼슬 작(爵),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백성 민(民)이다. 용례로는 국가공무원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을 관리(官吏), 관리들이나 특수한 권력을 가진 관리들을 관료(官僚), 관리들이 나랏일을 맡아보는 기관을 관청(官廳), 나라 일을 보던 집을 관가(官家), 관리의 직제나 직무나 벼슬을 관직(官職), 높은 관리가 살도록 정부에서 관리하는 집을 관저(官邸), 국가의 각 기관 또는 그 관리의 사회를 관계(官界), 관가의 계집종을 관비(官婢),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여 나랏일을 처리하던 곳을 관아(官衙), 나라의 관리가 맡아 다스리는 정치를 관치(官治), 정부에서 직접하는 경영을 관영(官營), 수령의 음식을 만들던 곳을 관주(官廚), 한 관청의 으뜸 벼슬을 장관(長官), 장관을 보좌하고 그를 대리할 수 있는 별정직 공무원을 차관(次官), 거세된 남자로 궁정에서 사역하는 내관을 환관(宦官), 법원에 소속되어 소송 사건을 심리하여 법률 상의 해석을 내릴 권한을 가진 사람을 법관(法官), 군인의 신분으로서 군사 관계를 맡아보는 관리를 무관(武官), 군인의 신분이 아니면서 군사에 관련된 행정 사무를 보는 관리를 문관(文官), 잘 다스려서 이름이 난 관리를 명관(名官), 먼젓번의 수령을 구관(舊官), 윗자리의 관원을 상관(上官), 통역하는 일을 맡은 관리를 역관(譯官), 관리는 높고 귀하며 백성은 낮고 천하다는 사고 방식을 이르는 말을 관존민비(官尊民卑), 관가 돼지 배 앓는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이르는 말을 관저복통(官猪腹痛), 벼슬자리에 오래 있으면 저절로 부자가 된다는 말을 관구자부(官久自富), 오랫동안 벼슬을 함을 이르는 말을 관불이신(官不移身), 관가에서 신문을 받는 사람이 관원에게 욕설을 하며 덤비는 행동을 이르는 말을 관정발악(官庭發惡), 관귀가 발동하여 이롭지 못하다는 말을 관귀발동(官鬼發動) 등에 쓰인다.
▶️ 物(물건 물)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소 우(牛=牜; 소)部와 음(音)을 나타내며勿(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만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소(牛)를 지목하여 만물을 뜻한다. 勿(물)은 旗(기), 천자(天子)나 대장의 기는 아니고 보통 무사(武士)가 세우는 색이 섞여 있는 것, 여기에서는 색이 섞여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物(물)은 얼룩소, 나중에 여러 가지 물건이란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옛 모양은 흙을 갈아 엎고 있는 쟁기의 모양과 牛(우; 소)로 이루어져 밭을 가는 소를 나타내었다. 나중에 모양이 닮은 勿(물)이란 자형(字形)을 쓰게 된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物자는 '물건'이나 '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物자는 牛(소 우)자와 勿(말 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勿자는 무언가를 칼로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物자는 소를 도축하여 상품화시키는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에는 다양한 색이 뒤섞여 있던 '얼룩소'를 物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후에 다양한 가축의 종류나 등급과 관계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제품'이나 '상품', '만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物(물)은 (1)넓은 뜻으로는, 단순한 사고(思考)의 대상이건,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건을 불문하고, 일반으로 어떠한 존재, 어떤 대상 또는 어떤 판단의 주어(主語)가 되는 일체의 것 (2)좁은 뜻으로는,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감각에 의해서 지각(知覺)할 수 있는 사물(事物), 시간(時間), 공간(空間) 가운데 있는 물체적, 물질적인 것 (3)사람이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구체적 물건. 민법 상, 유체물(有體物) 및 전기(電氣) 그 밖에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自然力). 사권(私權)의 객체(客體)가 될 수 있는 것 등의 뜻으로 ①물건(物件) ②만물(萬物) ③사물(事物) ④일, 사무(事務) ⑤재물(財物) ⑥종류(種類) ⑦색깔 ⑧기(旗) ⑨활 쏘는 자리 ⑩얼룩소 ⑪사람 ⑫보다 ⑬살피다, 변별하다 ⑭헤아리다, 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건(件), 물건 품(品), 몸 신(身), 몸 궁(躬), 몸 구(軀), 몸 체(體)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내거나 가공하여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는 들고 다닐 만한 크기의 일정한 형태를 가진 대상을 물건(物件), 물건의 본바탕으로 재산이나 재물을 물질(物質), 물건 값을 물가(物價), 쓸 만하고 값 있는 물건을 물품(物品), 물건의 형체를 물체(物體), 물건의 분량을 물량(物量), 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하는 데 쓰는 여러 가지 재료를 물자(物資), 어떤 사람의 좋지 않은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논란하는 상태를 물의(物議), 마음과 형체가 구별없이 하나로 일치된 상태를 일컫는 말을 물심일여(物心一如), 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는 뜻으로 사물의 질서를 일컫는 말을 물유본말(物有本末),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물외한인(物外閑人), 바깥 사물과 나 그리고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이르는 말을 물아일체(物我一體), 무엇이나 제각기 그 주인이 있다는 뜻으로 무슨 물건이나 그것을 가질 사람은 따로 있음을 이르는 말을 물각유주(物各有主), 생물이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긴다는 뜻으로 남을 의심한 뒤에 그를 두고 하는 비방이나 소문을 듣고 믿게 됨 또는 내부에 약점이 생기면 곧 외부의 침입이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을 물부충생(物腐蟲生), 나는 물건이 많고 지역이 또한 넓음을 일컫는 말을 물중지대(物衆地大), 만물이 한 번 성하면 한 번 쇠함을 이르는 말을 물성칙쇠(物盛則衰), 물건이 오래 묵으면 조화를 부린다는 말을 물구즉신(物久則神),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의 양면을 일컫는 말을 물심양면(物心兩面), 사람과 사귀는 데 선물이나 음식 대접은 다소 박하더라도 정만은 두터워야 함을 이르는 말을 물박정후(物薄情厚), 세상이 시끄러워 사람의 마음이 안정을 얻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물정소연(物情騷然), 사물은 바뀌고 세월은 흘러감을 이르는 말을 물환성이(物換星移)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受(받을 수)는 ❶회의문자로 또 우(又; 오른손, 또, 다시)部와 爪(조; 손), 민갓머리(冖; 덮개, 덮다)部의 합자(合字)이다. 손에서 손으로 물건을 주고 받는 모양으로, 주는 것도 받는 것도 受(수)였으나 나중에 授(주다)와 受(받다)로 나누어졌다. ❷회의문자로 受자는 '받다'나 '얻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受자는 爫(손톱 조)자와 冖(덮을 멱)자,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受자를 보면 舟(배 주)자 위아래로 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배에서 물건을 건네주거나 받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갑골문에서의 受자는 '받다'나 '주다'의 구별이 없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 受자는 '받다'라는 뜻으로 扌(손 수)자가 더해진 授(줄 수)자는 '주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受(수)는 ①받다 ②거두어 들이다, 회수하다 ③받아들이다, 받아들여 쓰다, 배우다 ④얻다, 이익을 누리다 ⑤주다, 내려 주다, 수여하다 ⑥담보하다 ⑦응하다, 들어주다 ⑧이루다 ⑨잇다, 이어받다 ⑩등용하다 ⑪12인연(因緣)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거느릴 령/영(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도울 필(拂), 줄 수(授), 보낼 송(送), 줄 급(給), 줄 여(與)이다. 용례로는 남의 문물이나 의견 등을 인정하거나 용납하여 받아 들이는 것을 수용(受容), 요구를 받아 들여 승낙함을 수락(受諾), 우편이나 전보 따위의 통신을 받음을 수신(受信),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음을 수령(受領), 상을 받음을 수상(受賞), 남으로부터 움직임을 받음이나 작용을 받음을 수동(受動), 강습이나 강의를 받음을 수강(受講), 남에게 모멸을 당함을 수모(受侮), 학업이나 기술의 가르침을 받음을 수업(受業), 은혜를 입음을 수혜(受惠), 암수의 생식 세포가 서로 하나로 합치는 현상을 수정(受精), 요구를 받아들여 승낙함을 수낙(受諾), 받음과 치름을 수불(受拂), 재난을 당함이나 어려운 일을 당함을 수난(受難), 정권을 이어받는 것을 수권(受權), 물건이나 권리를 넘기어 받음을 인수(引受), 받아 들임을 접수(接受), 군말 없이 달게 받음을 감수(甘受), 입은 은혜가 그지없음을 일컫는 말을 수은망극(受恩罔極), 왕위에 오름을 일컫는 말을 수명어천(受命於天),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가 받음을 일컫는 말을 자작자수(自作自受), 업무 따위를 넘겨받고 물려줌을 이르는 말을 인수인계(引受引繼), 남에게 재앙이 가게 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받음을 일컫는 말을 반수기앙(反受其殃), 본분의 임무를 어기고 부정한 청탁을 받으며 뇌물을 받아 재산 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죄를 일컫는 말을 배임수뢰(背任受賂), 장물을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둘 다 죄가 같다는 말을 여수동죄(與受同罪)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