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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감화만민(感和萬民)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20.03.17|조회수319 목록 댓글 0


감화만민(感和萬民)


온 국민이 모두 화목하다는 뜻이다.

感 : 느낄 감(心/9)
和 : 화할 화(口/5)
萬 : 일만 만(艹/9)
民 : 백성 민(氏/1)

출전 : 상서(尚書) 무일(無逸)


이 성어는 은(殷)나라의 폭군 주(紂)를 퇴진시키고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의 업적을 주공(周公)이 말하는 가운데 나온 말로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주공이 이렇게 말했다. '오호! 우리 주나라의 태왕과 왕계께서는 스스로 겸손하고 두려워하실 줄 아셨으며, 문왕께서는 허름한 옷을 입으시고 황량한 들일과 밭일을 하셨습니다.
周公曰 : 嗚呼! 厥亦惟我周太王王季, 克自抑畏, 文王卑服, 即康功田功.

그분은 인자하고 관후하시며 어질고 공손하시어, 낮은 백성들을 아끼고 보호하시고, 홀아비와 과부들도 사랑하고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徽柔懿恭, 懷保小民, 惠鮮鰥寡.

아침부터 한낮을 거쳐 해가 지기까지, 밥 먹을 틈도 없이, 나라 안 백성들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自朝至於日中昃, 不遑暇食, 用咸和萬民.

문왕께서는 감히 돌아다니며 사냥하기를 즐기지 않으시었으며, 만백성과 더불어 정사를 정성을 하여 돌보았습니다.
文王不敢盤於游田, 以庶邦惟正之供.

문왕께서 중년에 명을 받고 왕에 오르셨는데, 오십년이라는 재위 기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文王受命惟中身, 厥享國五十年.
(尚書/無逸)

(참고)
주공(周公)은 중국 주(周) 나라 때의 정치가로서, 주 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동생이었다. 본명은 단(旦)이고, 무왕과 무왕의 아들인 성왕(成王)을 도와서 주 왕조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하여 주 왕실 특유의 제도(制度)와 문물(文物)을 창시하였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유학자들에게는 성인(聖人)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주례(周禮)'를 지었다고도 하나, 원전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것은 한(漢) 대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감화만민(感和萬民)

권력자, 곧 높은 신분일수록 낮아져야 한다. 아랫사람을 보살피고 그들의 소리를 듣는 데 익숙해야 한다. 어쩌다 쇼맨십으로 하는 게 아니라 늘 서민과 함께 땀 흘리는 지도자, 그를 존경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은나라의 폭군 주(紂)를 퇴진시키고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의 업적은 최고지도자가 백성과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서경(書經)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부드러움과 따뜻한 마음으로 소시민들을 마음에 품어 보살핀다.
徽柔懿恭, 懷保小民.
(중략)

아침부터 점심, 저녁까지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니 만민이 모두 화목하다
自朝至于日中昃不遑暇食, 用感和萬民.

지도자는 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품고 실천해야 함을 뜻한다. 사실 '지도자이네' 라며 대접만 받을려고 할 게 아니라, 백성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물론 극빈자부터 중산층, 대기업주까지 두루 여론을 수렴해야겠지만, 아픔이 큰 서민의 삶이 펴지도록 힘쓰고 법적, 제도적 지원에도 노력해야 한다. 진정성 있게!

모(某) 의원이 정치세력화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하면서 정치권의 이목이 다시 모(某) 의원에게 쏠리고 있다. 모(某) 의원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에 따라 신당의 형태로 여의도에 재상륙한 모(某) 의원의 태풍의 진로도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민생을 뒷전으로 미뤄둔 채 기득권 지키기와 퇴행적인 이슈파이팅, 극단적인 정쟁(政爭)에 매몰된 정치권의 현주소를 비판하고 현재의 양당체제에서 비롯되는 폐해와 한계를 지적하면서 제3세력의 필요성을 제시, 국민 호응이 크면 한국정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굳이 모(某) 의원이 아니더라도 정치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위민(爲民)'을 생명시해야 한다. 그래야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

한비자의 충고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를 바르게 터득하면 나라가 비록 작더라도 부유해진다(明於治之數 則國雖小富).'

 

서경(書經) 편안함을 경계하다

無逸(무일)

逸者는 人君之大戒니 自古有國家者 未有不以勤而興하고 以逸而廢也라
편안함은 인군의 큰 경계이니, 예로부터 국가를 소유한 자가 부지런함으로써 일어나고 편안함으로써 폐하지 않은 자가 있지 않다.

益이 戒舜曰 罔遊于逸하며 罔淫于樂이라하니 舜은 大聖也로되 益이 猶以是戒之하니 則時君世主 其可忽哉아
익(益)이 순(舜)을 경계하기를 '편안함에 놀지 말며 즐거움에 빠지지 말라' 하였으니, 순(舜)은 큰 성인(聖人)인데도 익(益)이 오히려 이 말로 경계하였으니, 시군(時君)과 세주(世主)가 이것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成王初政에 周公이 懼其知逸而不知無逸也라 故로 作是書以訓之하시니라
성왕(成王)이 처음 정사를 다스리자, 주공(周公)은 성왕(成王)이 그 편안함만 알고 편안하지 말아야 함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므로 이 글을 지어 훈계한 것이다.

言則古昔하고 必稱商王者는 時之近也요 必稱先王者는 王之親也요 擧三宗者는 繼世之君也요 詳文祖者는 耳目之所逮也라
말할 때마다 옛것을 말하고 반드시 상(商)나라 왕(王)을 칭한 것은 시대가 가깝기 때문이요, 반드시 선왕(先王)을 칭한 것은 왕의 어버이이기 때문이며, 삼종(三宗; 殷의 中宗, 高宗, 祖甲을 가리킴)을 든 것은 대를 이은 임금이기 때문이요, 문조(文祖; 文王)를 자세히 말한 것은 이목(耳目)이 미친 바이기 때문이다.

上自天命精微로 下至畎畝艱難, 閭里怨詛히 無不具載하니 豈獨成王之所當知哉리오 實天下萬世人主之龜鑑也라
위로는 천명(天命)의 정미함으로부터 아래로는 밭두둑의 어려움과 여리(閭里)의 원망하고 꾸짖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재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어찌 홀로 성왕(成王)만이 알아야 할 것이겠는가. 실로 천하(天下) 만세(萬世)에 인주(人主)의 귀감이다.

是篇은 凡七更端에 周公이 皆以嗚呼發之하사 深嗟永歎하시니 其意深遠矣라 亦訓體也니 今文古文皆有하니라
이 편(篇)은 무릇 일곱 번 단서를 바꿨는데, 주공(周公)이 모두 ‘오호(嗚呼)’로써 발하여 깊이 슬퍼하고 길이 탄식하였으니, 그 뜻이 심원하다. 이 또한 훈체(訓體)이니,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1. 周公曰 嗚呼라 君子는 所其無逸이니라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군자는 무일(無逸; 안일하지 않음)을 처소로 삼습니다.

所는 猶處所也니 君子以無逸爲所하여 動靜食息이 無不在是焉하니 作輟則非所謂所矣라
소(所)는 처소와 같으니, 군자(君子)는 무일(無逸)을 처소로 삼아 동하고 고요하고 먹고 그침이 여기에 있지 않음이 없으니, 하던 것을 중지하면 이른바 소(所)가 아니다.

2. 先知稼穡之艱難이오사 乃逸하면 則知小人之依하리이다
먼저 가색(稼穡;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고 편안하면 소인(小人; 백성)들의 의지함을 알 것입니다.

先知稼穡之艱難乃逸者는 以勤居逸也라
먼저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알고 편안하다는 것은 부지런함으로써 편안함에 거하는 것이다.

依者는 指稼穡而言이니 小民이 所恃以爲生者也라
의(依)는 가색(稼穡)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소민(小民)들이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農之依田은 猶魚之依水, 木之依土하니 魚無水則死하고 木無土則枯하고 民非稼穡則無以生也라
농부가 밭에 의지함은 물고기가 물에 의지하고 나무가 흙에 의지함과 같으니,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죽고 나무는 흙이 없으면 마르며, 백성은 농사가 아니면 살 수 없다.

故로 舜은 自耕稼로 以至爲帝하시고 禹稷은 躬稼以有天下하시고 文武之基는 起於后稷하시며 四民之事는 莫勞於稼穡이요 生民之功은 莫盛於稼穡이라
그러므로 순(舜)은 밭갈고 심음으로부터 황제가 됨에 이르렀고, 우(禹)와 직(稷)은 몸소 농사지어 천하(天下)를 소유하였고,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기업은 후직(后稷)에게서 시작되었으며, 사민(四民; 士, 農, 工, 商)의 일은 농사보다 수고로운 것이 없고, 생민(生民)의 공은 농사보다 더 성대한 것이 없다.

周公發無逸之訓에 而首及乎此하시니 有以哉인저
주공(周公)이 무일(無逸)의 교훈을 말씀할 적에 먼저 이것을 언급하였으니, 이는 이런 까닭이 있을 것이다.

3. 相小人한대 厥父母勤勞稼穡이어든 厥子乃不知稼穡之艱難하고 乃逸하며 乃諺하며 旣誕하나니 否則侮厥父母曰 昔之人이 無聞知라하나니이다
소인(小人)들을 살펴보면 그 부모가 가색(稼穡)에 근로하거든 그 자식들은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안일하고 속된 말을 하며 허탄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그 부모를 업신여겨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들음도 없고 앎도 없다'고 합니다.'

不知稼穡之艱難乃逸者는 以逸爲逸也라 俚語曰諺이라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안일하다는 것은 편안함을 편안함으로 삼는 것이다. 상말을 언(諺)이라 한다.

言視小民컨대 其父母勤勞稼穡이어든 其子乃生於豢養하여 不知稼穡之艱難하고 乃縱逸自恣하며 乃習俚巷鄙語하며 旣又誕妄하여 無所不至라
소민(小民)들을 살펴보면 부모가 가색(稼穡)에 근로하거든 그 자식들은 환양(턣養; 편안히 길러줌)에 생장하여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마침내 방종하고 안일하여 스스로 방자하고, 시골의 비루한 말을 익히며, 이미 또 허탄하고 망령되어 이르지 않는 바가 없다.

不然이면 則又訕侮其父母曰 古老之人은 無聞無知하여 徒自勞苦하여 而不知所以自逸也라
그렇지 않으면 또 그 부모를 꾸짖고 업신여기기를 '옛날 늙은 사람들은 문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다만 스스로 노고하여 스스로 편안히 할 줄을 모른다'고 말한다.

昔에 劉裕奮農畝而取江左러니 一再傳後에 子孫이 見其服用하고 反笑曰 田舍翁은 得此亦過矣라하니 此正所謂昔之人無聞知也라
옛날에 유유(劉裕)가 농무(農畝)에서 분발하여 강좌(江左; 江東)를 취하였는데, 한두번 전한 뒤에는 자손들이 그 의복과 사용하는 물건을 보고는 도리어 비웃으며 말하기를 '전사옹(田舍翁; 늙은 농부)은 이것만 누려도 또한 과(過)하다' 하였으니, 이는 바로 이른바 '옛날 사람들은 문견도 없고 앎도 없다'는 것이다.

使成王非周公之訓이면 安知其不以公劉后稷爲田舍翁乎아
만일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공류(公劉)와 후직(后稷)을 전사옹(田舍翁)이라고 말하지 않을 줄을 어찌 알겠는가.

4. 周公曰 嗚呼라 我聞호니 曰 昔在殷王中宗하사 嚴恭寅畏하사 天命自度하시며 治民祗懼하사 不敢荒寧하시니 肆中宗之享國이 七十有五年이시니이다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제가 듣자오니, 옛날 은왕(殷王) 중종(中宗)에 있어 엄숙하고 공손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천명(天命)으로 스스로 다스리며, 백성을 다스림에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황녕(荒寧; 게으르고 편안함)하지 않으시니, 그러므로 중종의 향국(享國; 왕위를 누림)이 75년이었습니다.

中宗은 太戊也라
중종(中宗)은 태무(太戊)이다.

嚴則莊重하고 恭則謙抑하고 寅則欽肅하고 畏則戒懼라
엄하면 장중(莊重)하고 공손하면 겸억(謙抑)하고 공경하면 흠숙(欽肅)하고 두려워하면 계구(戒懼)한다.

天命은 卽天理也라
천명(天命)은 곧 천리(天理)이다.

中宗이 嚴恭寅畏하사 以天理而自檢律其身하시며 至於治民之際에도 亦祗敬恐懼而不敢怠荒安寧하시니 中宗無逸之實이 如此라
중종(中宗)이 엄공(嚴恭)하고 인외(寅畏)하여 천리(天理)로써 스스로 그 몸을 검속하고 다스렸으며, 백성을 다스리는 즈음에 이르러도 또한 공경하고 두려워 하여 감히 게으르고 편안하지 않으시니, 중종(中宗)의 무일(無逸)의 실제가 이와 같았다.

故로 能有享國永年之效也라 按書序에 太戊有原命, 咸乂等篇하니 意述其當時敬天治民之事나 今無所攷矣니라
그러므로 향국을 오래한 효험이 있었던 것이다. 살펴보건대 서서(書序)에 '태무(太戊)는 원명(原命), 함예(咸乂)〉 등의 편이 있다' 하였으니, 짐작컨대 그 당시에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린 일을 기술한 듯하나 지금은 상고할 수 없다.

5. 其在高宗時하사는 舊勞于外하사 爰曁小人이러시니 作其卽位하사 乃或亮陰(암)三年을 不言하시니 其惟不言하시나 言乃雍하시며 不敢荒寧하사 嘉靖殷邦하사 至于小大히 無時或怨하니 肆高宗之享國이 五十有九年이시니이다
고종(高宗) 때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밖에서 수고로워 이에 소인(小人)들과 함께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일어나 즉위하시어 곧 양암(亮陰)에서 3년 동안 말씀하지 않았으나 말씀하면 화(和) 하였으며, 감히 황녕(荒寧)하지 아니하여 은(殷)나라를 아름답게 하고 안정시켜 작고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에 혹시라도 원망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고종(高宗)의 향국(享國)이 59년이었습니다.

高宗은 武丁也니 未卽位之時에 其父小乙이 使久居民間하여 與小民出入同事라
고종(高宗)은 무정(武丁)이니, 즉위하지 않았을 때에 아버지 소을(小乙)이 오랫동안 민간에 거하여 소민(小民)들과 함께 출입하며 일을 같이 하게 하였다.

故로 於小民稼穡艱難에 備嘗知之也라
그러므로 소민(小民)들의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골고루 알게 되었다.

雍은 和也니 發言和順하여 當於理也라
옹(雍)은 화함이니, 말을 발함에 화순(和順)하여 이치에 마땅한 것이다.

嘉는 美요 靖은 安也니 嘉靖者는 禮樂敎化 蔚然於安居樂業之中也라
가(嘉)는 아름다움이요 정(靖)은 편안함이니, 가정(嘉靖)은 예악(禮樂)과 교화(敎化)가 편안히 살고 생업을 즐기는 가운데 성대한 것이다.

漢文帝與民休息하니 謂之靖則可커니와 謂之嘉則不可라
한(漢)나라 문제(文帝)는 백성들과 함께 휴식하였으니, 정(靖)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하나 가(嘉)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

小大無時或怨者는 萬民咸和也라
소대(小大)가 이에 혹시라도 원망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만민(萬民)이 모두 화합한 것이다.

乃雍者는 和之發於身이요 嘉靖者는 和之發於政이요 無怨者는 和之著於民也라 餘見說命하니라
내옹(乃雍)은 화함이 몸에 발한 것이요, 가정(嘉靖)은 화함이 정사에 발한 것이요, 원망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화함이 백성들에게 드러난 것이다. 나머지는 '설명(說命)'에 보인다.

高宗無逸之實이 如此라 故로 亦有享國永年之效也라
고종(高宗)의 무일(無逸)의 실제가 이와 같았기 때문에 또한 향국(享國)을 오래한 효험이 있었던 것이다.

6. 其在祖甲하사는 不義惟王이라하사 舊爲小人이러시니 作其卽位하사 爰知小人之依하사 能保惠于庶民하시며 不敢侮鰥寡하시니 肆祖甲之享國이 三十有三年이시니이다
조갑(祖甲)에 있어서는 왕 노릇하는 것이 의롭지 않다 하여 오랫동안 소인(小人; 庶民)이 되었었는데, 일어나 즉위하여서는 이에 소인들의 의지함을 알아 서민들을 보혜(保惠; 보호하고 은혜롭게 함)하였으며, 감히 환과(鰥寡)들을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조갑(祖甲)의 향국(享國)이 33년이었습니다.

史記에 高宗崩에 子祖庚立하고 祖庚崩에 弟祖甲立이라하니 則祖甲은 高宗之子요 祖庚之弟也라
사기(史記)에 '고종(高宗)이 죽음에 아들 조경(祖庚)이 즉위하고, 조경이 죽음에 동생 조갑(祖甲)이 즉위했다' 하였으니, 조갑은 고종의 아들이고 조경의 아우이다.

鄭玄曰 高宗이 欲廢祖庚하고 立祖甲한대 祖甲이 以爲不義라하여 逃於民間이라 故로 云不義惟王이라
정현(鄭玄)은 말하기를 '고종(高宗)이 조경(祖庚)을 폐위하고 조갑(祖甲)을 세우고자 하니, 조갑(祖甲)은 이것이 의롭지 않다 하여 민간으로 도망하였다. 그러므로 왕(王)노릇 하는 것이 의롭지 않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

按漢孔氏는 以祖甲爲太甲하니 蓋以國語稱帝甲亂之하여 七世而殞이라하니 孔氏見此等記載하고 意爲帝甲은 必非周公所稱者요 又以不義惟王이 與太甲玆乃不義文似라하여 遂以此稱祖甲者로 爲太甲이라
살펴보건대 한(漢)나라 공씨(孔氏)는 조갑(祖甲)을 태갑(太甲)이라 하였으니, 이는 '국어(國語)'에 '제갑(帝甲)이 혼란하여 7대에 죽었다' 하였는데, 공씨(孔氏)는 이러한 것들을 기재한 것을 보고는 생각하기를 '제갑은 반드시 주공(周公)이 칭한 자가 아닐 것이며, 또 불의유왕(不義惟王)이 '태갑'의 자내불의(玆乃不義)라는 글과 유사하다' 하여, 마침내 여기에 칭한 조갑을 태갑이라 하였다.

然詳此章舊爲小人作其卽位와 與上章爰曁小人作其卽位하면 文勢正類하니 所謂小人者는 皆指微賤而言이요 非謂憸小之人也며 作其卽位도 亦不見太甲復政思庸之意라
그러나 이 장(章)의 '오랫동안 소인이 되었었는데 일어나 즉위하였다'는 말과 상장(上章)에 '이에 소인들과 함께 행동하다가 일어나 즉위하였다'는 말을 살펴보면 문세(文勢)가 바로 유사하니, 이른바 '소인(小人)'은 모두 지위가 미천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마음이 험하고 작은 사람을 말한 것이 아니며, '작기즉위(作其卽位)'도 또한 태갑(太甲)이 정사를 되돌려받아 떳떳함을 생각한 뜻을 볼 수 없다.

又按邵子經世書에 高宗五十九年, 祖庚七年, 祖甲三十三年이라하여 世次歷年이 皆與書合이로되 亦不以太甲爲祖甲이라
또 살펴보건대, 소자(邵子; 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고종(高宗)은 59년, 조경(祖庚)은 7년, 조갑(祖甲)은 33년이다' 하여, 세차(世次)와 역년(歷年)이 모두 '서경(書經)'과 부합하는데, 또한 태갑(太甲)을 조갑(祖甲)이라 하지 않았다.

況殷世二十有九에 以甲名者五帝니 以太, 以小, 以沃, 以陽, 以祖別之하니 不應二人俱稱祖甲이라
더구나 은(殷)나라 왕(王) 29세(世) 중에 갑(甲)으로 이름한 자가 다섯 임금인데, 태(太), 소(小), 옥(沃), 양(陽), 조(祖)로 구별하였으니, 마땅히 두 사람을 모두 조갑(祖甲)이라 칭하지 않았을 것이다.

國語는 傳訛承謬하고 旁記曲說하여 不足盡信이니 要以周公之言爲正이라
국어(國語)는 잘못된 것을 그대로 전하고 오류를 계승하였으며 잘못된 말을 널리 기록하여 다 믿을 수 없으니, 요컨대 주공(周公)의 말씀을 바른 것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又下文에 周公言 自殷王中宗及高宗, 及祖甲, 及我周文王이라하시니 及云者는 因其先後次第而枚擧之辭也니 則祖甲之爲祖甲而非太甲이 明矣니라
또 하문(下文)에 주공(周公)이 '은왕(殷王) 중종(中宗)으로부터 고종(高宗)과 조갑(祖甲)과 우리 주문왕(周文王)에 이르기까지' 라고 말씀하였으니, 급(及)이란 말은 그 선후의 차례를 따라 낱낱이 열거하는 말이니, 조갑(祖甲)이 조갑(祖甲)이 되고 태갑(太甲)이
아님이 분명하다.

7. 自時厥後로 立王이 生則逸하니 生則逸이라 不知稼穡之艱難하며 不聞小人之勞하고 惟耽樂之從하니 自時厥後로 亦罔或克壽하여 或十年하며 或七八年하며 或五六年하며 或四三年하니이다
이로부터 그 뒤로 즉위하는 왕들이 태어나면 편안하였으니, 태어나면 편안하였기 때문에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며, 소인들의 수고로움을 듣지 못하고 오직 탐락(耽樂)을 따랐습니다. 이로부터 그 뒤로 또한 능히 장수한 이가 없어 혹은 10년, 혹은 7∼8년, 혹은 5∼6년, 혹은 3∼4년이었습니다.”

過樂을 謂之耽이라
지나치게 즐김을 탐(耽)이라 한다.

泛言 自三宗之後로 卽君位者 生則逸豫하여 不知稼穡之艱難하며 不聞小人之勞하고 惟耽樂之從하여 伐性喪生이라
범연히 말하기를 삼종(三宗; 中宗, 高宗, 祖甲)의 뒤로부터 군위(君位)에 오른 자들이 태어나면 편안하여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서민들의 수고로움을 듣지 못하고는 오직 탐락(耽樂)을 따라 성명(性命)을 해치고 생명을 상하게 하였다.

故로 自三宗之後로 亦無能壽考하여 遠者는 不過十年七八年이요 近者는 五六年三四年爾니 耽樂愈甚이면 則享年愈促也라
그러므로 삼종(三宗)의 뒤로는 또한 능히 수고(壽考)한 이가 없어서 오랜 자는 10년, 7~8년에 불과하고, 짧은 자는 5~6년, 3~4년일 뿐이었으니,
탐락(耽樂)이 심하면 심할수록 향년(享年)이 더욱 촉박한 것이다.

凡人이 莫不欲壽而惡夭하나니 此篇은 專以享年永不永爲言하니 所以開其所欲而禁其所當戒也니라
무릇 사람들이 장수하기를 바라고 요절함을 싫어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이 편(篇)은 오직 향년(享年)의 길고 길지 않음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이는 그 바라는 바를 열어주고 마땅히 경계하여야 할 바를 금한 것이다.

8. 周公曰 嗚呼라 厥亦惟我周에 太王王季 克自抑畏하시니이다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그 또한 우리 주(周)나라에서도 태왕(太王)과 왕계(王季)께서 능히 스스로 억제하고 두려워하셨습니다.

商은 猶異世也라 故로 又卽我周先王告之하시니라
상(商)나라는 오히려 딴 세대이므로 또 우리 주(周)나라의 선왕(先王)을 가지고 고한 것이다.

言太王王季 能自謙抑謹畏者는 蓋將論文王之無逸이라 故로 先述其源流之深長也라
태왕(太王)과 왕계(王季)가 능히 스스로 겸억(謙抑)하고 근외(謹畏)했다고 말한 것은 장차 문왕(文王)의 무일(無逸)을 논하려 하였으므로 먼저 그 원류(源流)의 깊고 긺을 서술한 것이다.

大抵抑畏者는 無逸之本이니 縱肆怠荒은 皆矜誇無忌憚者之爲라
대저 억외(抑畏)는 무일(無逸)의 근본이니, 종사(縱肆)하고 태황(怠荒)함은 모두 자랑하고 기탄함이 없는 자의 행위이다.

故로 下文言文王에 曰柔, 曰恭, 曰不敢하니 皆原太王王季抑畏之心發之耳니라
그러므로 하문(下文)에 문왕(文王)을 말할 때에 유(柔)라 하고 공(恭)이라 하고 불감(不敢)이라 말했으니, 이는 모두 태왕(太王)과 왕계(王季)의 억외(抑畏)하는 마음을 근원하여 말한 것이다.

9. 文王이 卑服으로 卽康功田功하시니이다
문왕(文王)께서 나쁜 의복으로 백성을 편안히 하는 일과 농사일에 나아가셨습니다.

卑服은 猶禹所謂惡衣服也라
비복(卑服)은 우왕(禹王)이 말씀한 '나쁜 의복'과 같은 것이다.

康功은 安民之功이요 田功은 養民之功이라 言文王이 於衣服之奉에 所性不存하고 而專意於安養斯民也라
강공(康功)은 백성을 편안히 하는 일이고, 전공(田功)은 백성을 기르는 일이다. 문왕(文王)이 의복을 받듦에 있어서는 생각하는 바가 있지 않고, 이 백성을 편안히 기름에 전념하였다.

卑服은 蓋擧一端而言이니 宮室飮食自奉之薄을 皆可類推니라
나쁜 의복은 한 가지를 들어 말한 것이니, 궁실과 음식에 있어서 스스로 받들기를 박하게 하였음을 모두 유추할 수 있다.

10. 徽柔懿恭하사 懷保小民하시며 惠鮮鰥寡하사 自朝로 至于日中昃히 不遑暇食하사 用咸化萬民하시니이다
아름답게 부드럽고 아름답게 공손하시어 소민(小民)들을 품어 보호하시며, 환과(鰥寡)들에게 은혜를 입혀서 생기가 나게 하시어, 아침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와 해가 기울 때에 이르도록 한가히 밥먹을 겨를도 없으시어 만민(萬民)들을 모두 화합하게 하셨습니다.

徽懿는 皆美也라 昃은 日昳也라
휘(徽)와 의(懿)는 모두 아름다움이다. 측(昃)은 해가 기우는 것이다.

柔謂之徽면 則非柔懦之柔요 恭謂之懿면 則非足恭之恭이라
부드러움을 아름답다고 일렀으면 유약(나약)함의 유(柔)가 아니요, 공손함을 아름답다고 일렀으면 주공(足恭; 지나친 공손)의 공(恭)이 아니다.

文王이 有柔恭之德而極其徽懿之盛하사 和易近民하여 於小民則懷保之하고 於鰥寡則惠鮮之하시니라
문왕(文王)은 부드럽고 공손한 덕(德)이 있었는데 그 아름다움의 성함을 지극히 하였다. 그리하여 화하고 평이하여 백성들을 가까이 해서 소민들은 품어 보호해주고 환과(鰥寡)들에게는 은혜를 입혀 생기가 나게 하였다.

惠鮮云者는 鰥寡之人이 垂首喪氣어늘 賚予賙給之하여 使之有生意也라
혜선(惠鮮)이라고 말한 것은 환과(鰥寡)의 사람들이 머리를 떨구고 기운을 잃고 있는데, 물건을 주고 구휼하여 살 뜻이 있게 한 것이다.

自朝至于日之中하고 自中至于日之昃히 一食之頃을 有不遑暇하사 欲咸和萬民하여 使無一不得其所也라
아침으로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에 이르고, 해가 중천에 있을 때로부터 해가 기울 때에 이르기까지 밥 한 끼 먹는 시간도 한가한 겨를이 없어 모두 만민을 화합하여 한 사람이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하는 이가 없게 하고자 한 것이다.

文王이 心在乎民하사 自不知其勤勞如此하시니 豈秦始皇衡石程書와 隋文帝衛士傳餐하여 代有司之任者之爲哉아
문왕(文王)은 마음이 백성들에게 있어 스스로 근로(노고)함을 알지 못함이 이와 같으셨으니, 어찌 진(秦)나라 시황(始皇)이 형석(衡石; 저울)으로 결재하는 문서를 달고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위사(衛士)들을 시켜 밥을 날라 오게 하여 유사(有司)들의 임무를 대신한 자의 행위이겠는가.

立政에 言罔攸兼于庶言庶獄庶愼이라하니 則文王은 又若無所事事者라
입정(立政)에 '여러 말과 여러 옥사와 여러 삼갈 바를 겸한 바가 없다' 하였으니, 문왕(文王)은 또 일을 일삼은 것이 없는 듯하다.

不讀無逸이면 則無以知文王之勤이요 不讀立政이면 則無以知文王之逸이니 合二書觀之하면 則文王之所從事를 可知矣리라
무일(無逸)을 잃지 않으면 문왕(文王)의 수고로움을 알 수 없고, '입정(立政)'을 읽지 않으면 문왕(文王)의 편안함을 알 수 없으니, 이 두 글을 합하여 보면 문왕(文王)이 종사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1. 文王이 不敢盤于遊田하사 以庶邦惟正之供하시니 文王受命이 惟中身이러시니 厥享國이 五十年이시니이다
문왕(文王)이 감히 유람과 사냥을 편안히 여기지 아니하여 여러 나라의 정부(正賦)로 바치는 것만을 받으시니, 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은 것이 중신(中身; 중년)이었는데 향국(享國)이 50년이었습니다.'

遊田은 國有常制하니 文王이 不敢盤遊無度하여 上不濫費라
유람과 사냥은 나라에 일정한 제도가 있으니, 문왕(文王)은 감히 편안히 놀고 법도가 없이 하지 않았다.

故로 下無過取하여 而能以庶邦惟正之供하여 於常貢正數之外에 無橫斂也라 言庶邦이면 則民可知라
그리하여 위로 함부로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아래로 지나치게 취함이 없어서 여러 나라에서 정부(正賦)로 바치는 것만을 받아 떳떳한 공물(貢物)의 정수(正數) 이외에 멋대로 걷음이 없었던 것이다. 서방(庶邦)이라고 말했으면 백성을 알 수 있다.

文王爲西伯하여 所統庶邦이 皆有常供하니 春秋에 貢於覇主者를 班班可見이요 至唐하여도 猶有送使之制하니 則諸侯之供方伯이 舊矣라
문왕(文王)은 서백(西伯)이 되어 거느리고 있는 여러 나라가 모두 떳떳한 바침이 있었으니, '춘추(春秋)'에서 패주(覇主)에게 물건을 바쳤던 것을 반반(班班)히 볼 수 있으며, 당(唐)나라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송사(送使)의 제도가 있었으니, 제후들이 방백(方伯)에게 물건을 바친 지가 오래되었다.

受命은 言爲諸侯也라
명을 받았다는 것은 제후가 됨을 말한 것이다.

中身者는 漢孔氏曰 文王九十七而終하시니 卽位時年이 四十七이라하니 言中身은 擧全數也라
중신(中身)은 한(漢)나라 공씨(孔氏)가 말하기를 '문왕(文王)이 97세에 별세하였으니, 즉위할 때의 나이가 47세였다' 하였으니, 중신(中身)이라고 말한 것은 완전한 수(數)를 든 것이다.

上文의 崇素儉, 恤孤獨, 勤政事, 戒遊佚이 皆文王無逸之實이라 故로 其享國이 有歷年之永이라
상문(上文)에 검소함을 숭상하고 고아와 외로운 자들을 구휼하고 정사를 부지런히 하고 유일(遊佚)을 경계한 것은 모두 문왕(文王)의 무일(無逸)의 실제였다. 그러므로 그 향국(享國)이 역년(歷年)의 오램이 있었던 것이다.

12. 周公曰 嗚呼라 繼自今으로 嗣王은 則(칙)其無淫于觀于逸于遊于田하사 以萬民惟正之供하소서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지금으로 부터 이어서 사왕(嗣王)께서는 그 구경과 편안함과 유람과 사냥을 지나치게 하지 않으신 것을 본받으시어 만민(萬民)의 올바른 바침만을 받으소서.

則은 法也라 其는 指文王而言이라 淫은 過也라
칙(則)은 본받음이다. 기(其)는 문왕(文王)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음(淫)은 지나침이다.

言自今日以往으로 嗣王은 其法文王의 無過于觀逸遊田하여 以萬民惟正賦之供이라
금일로부터 이왕(以往; 이후)으로 사왕(嗣王)은 문왕(文王)이 구경과 편안함과 유람과 사냥을 지나치게 하지 않으신 것을 본받아 만민(萬民)이 정부(正賦)로 바치는 것만을 받으라고 한 것이다.

上文에 言遊田而不言觀逸은 以大而包小也요 言庶邦而不言萬民은 以遠而見近也니라
상문(上文)에 유전(遊田)을 말하고 관일(觀逸)을 말하지 않은 것은 큰 것으로 작은 것을 포함한 것이며, 서방(庶邦)을 말하고 만민(萬民)을 말하지 않은 것은 먼 것으로 가까운 것을 나타낸 것이다.

13. 無皇(遑)曰今日에 耽樂이라하소서 乃非民의 攸訓이며 非天의 攸若이라 時人이 丕則(칙)有愆하리니 無若殷王受之迷亂하여 酗于酒德哉하소서
한가히 여겨 '오늘에만 탐락한다'고 말씀하지 마소서. 이는 백성들이 본받을 바가 아니며, 하늘이 순하게 여기는 바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임금의 잘못을 크게 본받을 것이니, 은왕(殷王) 수(受)가 미란(迷亂)했던 것과 같이 해서 주덕(酒德)에 빠지지 마소서.'

無는 與毋通이요 皇은 與遑通이라 訓은 法이요 若은 順이요 則은 法也라
무(無)는 무(毋)와 통하고 황(皇)은 황(遑)과 통한다. 훈(訓)은 본받음이요, 약(若)은 순함이요, 칙(則)은 본받음이다.

毋自寬暇하여 曰今日에 姑爲是耽樂也라 하소서
스스로 너그럽고 한가하게 말하기를 '오늘만 우선 이 탐락을 한다'고 하지 말라.

一日耽樂이 固若未害나 然下非民之所法이요 上非天之所順이라
하룻동안 탐락(耽樂)하는 것이 진실로 해롭지 않을 듯하나 아래로는 백성들이 본받을 바가 아니요 위로는 하늘이 순하게 여기는 바가 아니다.

時人이 大法其過逸之行하리니 猶商人化受而崇飮之類라
세상 사람들이 그 잘못된 행실을 크게 본받을 것이니, 상(商)나라 사람들이 수(受)에게 화(化)하여 술마시는 것을 숭상하는 유(類)와 같은 것이다.

故로 繼之曰 毋若商王受之沈迷하여 酗于酒德哉하소서 하니라
그러므로 뒤이어 말씀하기를 '상왕(商王) 수(受)가 침미(沈迷)한 것과 같이 하여 주덕(酒德)에 빠지지 말라'고 한 것이다.

酗酒를 謂之德者는 德은 有凶有吉하니 韓子所謂道與德爲虛位 是也라
술에 빠짐을 덕(德)이라고 말한 것은 덕(德)은 흉함이 있고 길함이 있으니, 한자(韓子; 韓愈)의 이른바 '도(道)와 덕(德)은 빈자리가 된다'는 것이 이것이다.

14. 周公曰 嗚呼라 我聞호니 曰 古之人이 猶胥訓告하며 胥保惠하며 胥敎誨일새(혼들로) 民이 無或胥譸張爲幻하니이다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내 듣자오니, 옛날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 훈계하고 고하며 서로 보호하고 순히 하며 서로 가르쳤으므로 백성들이 혹 서로 속이거나 과장하여 환(幻)을 하지 않았습니다.

胥는 相이요 訓은 誡요 惠는 順이요 譸는 誑이요 張은 誕也라
서(胥)는 서로이며, 훈(訓)은 경계함이며, 혜(惠)는 순함이며, 주(譸)는 속임이며, 장(張)은 허탄함이다.

變名易實하여 以眩觀者曰幻이라
명칭을 변하고 실제를 바꾸어 보는 자를 속이는 것을 환(幻)이라 한다.

歎息言 古人은 德業已盛이로되 其臣이 猶且相與誡告之하고 相與保惠之하고 相與敎誨之하니 保惠者는 保養而將順之니 非特誡告而已也며 敎誨則有規正成就之意하니 又非特保惠而已也라
탄식하여 말씀하기를 '옛사람들은 덕업(德業)이 이미 성하였으나 그 신하들이 오히려 서로 더불어 경계하고 고하며 서로 더불어 보호하고 순히 하며 서로 더불어 가르쳤으니, 보혜(保惠)라는 것은 보호하여 기르고 받들어 순종함이니 다만 경계하고 고할 뿐만이 아니며, 교회(敎誨)는 바로잡고 성취하는 뜻이 있으니 또 단지 보호하고 순히 할 뿐만이 아니다.

惟其若是라 是以로 視聽思慮가 無所蔽塞하고 好惡取予가 明而不悖라 故로 當時之民이 無或敢誑誕爲幻也라
이와 같았기 때문에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가리운 바가 없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취하고 주는 것이 분명하여 어그러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시의 백성들이 혹시라도 감히 속이고 허탄하여 환(幻)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15. 此厥不聽하시면 人乃訓之하여 乃變亂先王之正刑하여 至于小大하리니 民이 否則厥心違怨하며 否則厥口詛祝(저주)하리이다
(내가 위에서 말씀드린) 이러한 말씀을 듣지 않으시면 사람들이 이것을 본받아서 선왕(先王)의 올바른 법을 변란시켜 작은 일이나 큰 일에 이를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그렇지 않으면 그 마음이 어기고 원망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입으로 저주할 것입니다.'

 

正刑은 正法也라
정형(正刑)은 바른 법이다.

言成王이 於上文古人胥訓告, 保惠, 敎誨之事에 而不聽信이면 則人乃法則之하여 君臣上下 師師非度하여 必變亂先王之正法하여 無小無大히 莫不盡取而紛更之하리니
성왕(成王)이 상문(上文)의 고인(古人)들이 서로 훈고(訓告)하고 보혜(保惠)하고 교회(敎誨)한 일에 대하여 들어주어 믿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것을 본받아서 군신과 상하가 법도가 아닌 것을 스승으로 본받아 반드시 선왕(先王)의 바른 법을 변란시켜 작은 일이나 큰 일 할것 없이 모두 취하여 어지럽게 변경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蓋先王之法이 甚便於民이나 甚不便於縱侈之君하니 如省刑罰以重民命은 民之所便也로되 而君之殘酷者는 則必變亂之하며 如薄賦斂以厚民生은 民之所便也로되 而君之貪侈者는 則必變亂之라
선왕(先王)의 법은 백성들에게는 심히 편하나 방종하고 사치한 군주에게는 매우 불편하니, 예를 들면 형벌을 줄여 백성들의 목숨을 중히 함은 백성들이 편하게 여기는 바이나 잔혹한 군주는 반드시 이것을 변란시키며, 부역과 세금을 적게 거두어 민생을 후하게 함은 백성들이 편하게 여기는 바이나 탐욕스럽고 사치한 군주는 반드시 변란시킨다.

厥心違怨者는 怨之蓄于中也요 厥口詛祝者는 怨之形於外也니 爲人上而使民心口交怨이면 其國不危者 未之有也라 此는 蓋治亂存亡之機라 故로 周公이 懇懇言之하시니라
그 마음이 어기고 원망하는 것은 원망이 가슴속에 쌓이는 것이요, 그 입으로 저주하는 것은 원망이 밖에 나타나는 것이니,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서 백성들이 마음과 입으로 서로 원망하게 한다면 그 나라가 위태롭지 않은 경우가 있지 않다. 이는 치(治)와 난(亂), 존(存)과 망(亡)의 기틀이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간곡히 말씀한 것이다.

16. 周公曰 嗚呼라 自殷王中宗하여 及高宗과 及祖甲과 及我周文王玆四人이 迪哲하시니이다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은왕(殷王) 중종(中宗)으로부터 고종(高宗)과 조갑(祖甲)과 우리 주문왕(周文王)에 이르기까지 이 네 분이 명철한 지혜를 실천하였습니다.

迪은 蹈요 哲은 智也라
적(迪)은 밟음(실천)이요, 철(哲)은 지혜이다.

孟子以知而弗去로 爲智之實하시니 迪云者는 所謂弗去 是也라
맹자(孟子)는 알고 떠나가지 않음을 지(智)의 실제라고 하였으니, 적(迪)이란 말은 이른바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人主知小人之依로되 而或忿戾之者는 是不能蹈其知者也어늘 惟中宗, 高宗, 祖甲, 文王이 允蹈其知라 故로 周公이 以迪哲稱之하시니라
인주(人主)가 소인들의 의지함을 아나 혹 분려(忿戾)하는 것은 그 앎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인데, 오직 중종(中宗), 고종(高宗), 조갑(祖甲), 문왕(文王)은 진실로 그 앎을 실천하였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적철(迪哲)이란 말로 칭한 것이다.

17. 厥或告之曰 小人이 怨汝詈汝라커든 則皇自敬德하사 厥愆을 曰朕之愆이라하소서 允若時하시면 不啻不敢含怒리이다
그 혹시라도 고하기를 '소인들이 너를 원망하고 너를 꾸짖는다' 하거든 크게 스스로 덕(德)을 공경하여 원망하는 잘못을 짐의 잘못이라 하소서.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백성들이 감히 노여움을 감추지 않을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詈는 罵言也라
매(폷)는 꾸짖는 말이다.

其或有告之曰 小人이 怨汝詈汝어든 汝則皇自敬德하여 反諸其身하여 不尤其人하고 其所誣毁之愆을 安而受之하여 曰是我之愆이라 하라
그 혹시라도 고하기를 '소인들이 너를 원망하고 너를 꾸짖는다'고 하는 자가 있거든 너는 크게 스스로 덕(德)을 공경하여 자신에게 돌이켜 남을 원망하지 말고, 무훼(誣毁 무함하고 훼방함) 하는 허물을 편안히 받아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잘못이다'라고 하라.

允若時者는 誠實若是요 非止隱忍不敢藏怒也라
윤약시(允若時)는 진실로 이와 같이 할 것이요, 단지 은인(隱忍)하여 노여움을 감추지 않을 뿐만이 아닌 것이다.

蓋三宗文王이 於小民之依에 心誠知之라
삼종(三宗)과 문왕(文王)은 소민(小民)의 의지함에 대하여 마음에 진실로 알고 있었다.

故로 不暇責小人之過言하고 且因以察吾身之未至하여 怨詈之語를 乃所樂聞하니 是豈特止於隱忍含怒不發而已哉아
그러므로 소인들의 잘못된 말을 책할 겨를이 없었고, 우선 인하여 내 자신이 지극하지 못함을 살펴 원망하고 꾸짖는 말을 즐겁게 들은 것이니, 이 어찌 다만 은인(隱忍)하여 노여움을 감추고 발하지 않음에 그칠 뿐이겠는가.

18. 此厥不聽하시면 人乃或譸張爲幻하여 曰 小人이 怨汝詈汝라커든 則信之하리니 則若時하면 不永念厥辟이며 不寬綽厥心하여 亂罰無罪하며 殺無辜하리니 怨有同하여 是叢于厥身하리이다
이러한 말씀을 듣지 않으시면 사람들이 혹 속이고 과장하여 환(幻)을 하여 말하기를 '소인들이 너를 원망하고 너를 꾸짖는다' 하거든 그 말을 그대로 믿을 것이니, 이와 같으면 군주된 도리를 길이 생각하지 않고 그 마음을 너그럽게 하지 아니하여, 죄없는 사람들을 어지럽게 형벌하고 무고한 자들을 죽일 것이니, 이렇게 되면 원망이 함께 모여 그 몸에 총집(叢集)될 것입니다.'

綽은 大요 叢은 聚也라
작(綽)은 큼이요, 총(叢)은 모임이다.

言成王이 於上文三宗文王迪哲之事에 不肯聽信이면 則小人이 乃或誑誕하여 變置虛實하여 曰 小民이 怨汝詈汝라커든 汝則聽信之하리니 則如是면 不能永念其爲君之道며 不能寬大其心하여 以誑誕無實之言으로 羅織疑似하여 亂罰無罪하고 殺戮無辜하여 天下之人이 受禍不同이나 而同於怨하여 皆叢於人君之一身하리니 亦何便於此哉아
성왕(成王)이 상문(上文)의 삼종(三宗)과 문왕(文王)의 적철(迪哲)한 일에 대하여 즐겨 듣고 믿으려 하지 않으면 소인들이 혹 속이고 허탄하여 허실을 바꿔 말하기를 '소민(小民)들이 너를 원망하고 너를 꾸짖는다' 하거든 너는 그 말을 그대로 듣고 믿을 것이니, 이와 같으면 군주가 된 도리를 길이 생각하지 않고 그 마음을 관대하게 하지 아니하여, 광탄(誑誕)하여 실제가 없는 말로써 의심스럽고 유사한 것을 나직(羅織)하여 죄없는 사람들을 어지럽게 형벌하고 무고(無辜)한 자들을 살육하여,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화를 받음은 똑같지 않으나 똑같이 원망하여 모두 임금의 한 몸에 모일 것이니, 또한 어찌 이것을 편하게 여기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大抵無逸之書는 以知小人之依로 爲一篇綱領이요 而此章은 則申言旣知小人之依면 則當蹈其知也라
대저 '무일(無逸)'의 글은 소민(小民)의 의지함을 아는 것으로 한 편의 강령을 삼았고, 이 장(章)은 이미 소민(小民)의 의지함을 알았으면 마땅히 그 앎을 실천해야 함을 거듭 말하였다.
三宗, 文王은 能蹈其知라
삼종(三宗)과 문왕(文王)은 그 앎을 그대로 실천하였다.

故로 其胸次寬平하여 人之怨詈 不足以芥蔕其心하니 如天地之於萬物에 一於長育而已니 其悍疾憤戾를 天豈私怒於其間哉아
그러므로 그 흉차(胸次)[가슴속]가 너그럽고 화평하여, 사람들의 원망과 꾸짖음이 그 마음에 개체(芥蔕)되지 않은 것이니, 이는 마치 천지(天地)가 만물에 있어 한결같이 장육(長育)할 뿐이니, 미워하고 분해함을 하늘이 어찌 그 사이에 사사로이 노여워 하겠는가.

天地는 以萬物爲心하고 人君은 以萬民爲心이라
천지(天地)는 만물(萬物)로 마음을 삼고, 인군(人君)은 만민(萬民)으로 마음을 삼는다.

故로 君人者 要當以民之怨詈爲己責이요 不當以民之怨詈爲己怒라 以爲己責이면 則民安而君亦安이요 以爲己怒면 則民危而君亦危矣리니 吁라 可不戒哉아
그러므로 인군이 된 자는 요컨대 마땅히 백성들의 원망과 꾸짖음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을 것이요, 백성의 원망과 꾸짖음을 자기의 노여움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군주가 자기의 책임으로 삼으면 백성들이 편안하여 군주 또한 편안하고, 자기의 노여움으로 삼으면 백성들이 위태로워 군주 또한 위태로울 것이니, 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 周公曰 嗚呼라 嗣王은 其監于玆하소서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사왕(嗣王)은 이것을 잘 살펴보소서.'

玆者는 指上文而言也라
자(玆)는 상문(上文)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無逸一篇은 七章이니 章首에 皆先致其咨嗟詠歎之意하고 然後에 及其所言之事하고 至此章하여는 則於嗟歎之外에 更無他語하고 惟以嗣王其監于玆로 結之하니 所謂言有盡而意則無窮이니 成王이 得無深警於此哉아
무일(無逸) 한 편은 일곱 장(章)인데, 장(章) 첫머리에는 모두 먼저 자차영탄(咨嗟詠歎)하는 뜻을 지극히 하고 그런 뒤에야 말하려는 바의 일을 언급하였으며, 이 장(章)에 이르러서는 차탄(嗟歎)하는 것 외에 달리 딴 말이 없고 오직 사왕(嗣王)은 이것을 살펴보라는 말로 끝을 맺었으니, 이른바 '말은 다함이 있으나 뜻은 무궁하다'는 것이니, 성왕(成王)이 이에 깊이 경계함이 없겠는가.

 

▶️ 感(느낄 감/한할 감)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咸(함, 감)이 합(合)하여 이루어, 느끼는 마음이나 느낌의 뜻을 나타낸다. 戌(술; 무기, 통틀어 모두)과 口(구; 소리)로 이루어진 咸(함)은 많은 사람이 소리를 질러 적을 치다라는 뜻으로 전(轉)하여 '모두', '남김없이'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感자는 '느끼다'나 '감동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感자는 咸(다 함)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咸자는 '모두'나 '남김없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남김없이'라는 뜻을 가진 咸자에 心자를 결합한 感자는 '모조리 느끼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모조리 느끼다'라는 것은 오감(五感)을 통해 느낀다는 뜻이다. 그래서 感(감)은 (1)느끼는 마음, 느낌의 뜻을 나타냄 (2)감도(感度) 등의 뜻으로 ①느끼다 ②감응(感應)하다, 느낌이 통하다 ③감동(感動)하다, 마음이 움직이다 ④고맙게 여기다, 은혜(恩惠)를 새겨 두다 ⑤깨닫다 ⑥생각하다 ⑦한(恨)하다(몹시 억울하거나 원통하여 원망스럽게 생각하다), 원한(怨恨)을 품다(=憾) ⑧움직이다 ⑨흔들다 ⑩닿다, 부딪치다 ⑪감동(感動) ⑫감응(感應) ⑬느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잠깰 오(寤), 깨달을 오(悟), 깨달을 각(覺), 깨우칠 경(警)이다. 용례로는 깊이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을 감동(感動), 다른 사물의 영향을 받아 마음이 변함을 감화(感化), 사물에 느끼어 일어나는 심정을 감정(感情), 한탄하고 뉘우침을 감회(感悔), 고맙게 여기고 사례함을 감사(感謝), 다른 풍습이 옮아서 물이 듦 또는 병원체가 몸 안에 들어오는 일을 감염(感染), 추위에 상하여 일어나는 호흡기 계통의 염증성 질환을 감기(感氣), 감촉되어 깨달음으로 외부 또는 내부의 자극에 의하여 일어나는 느낌을 감각(感覺),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예민한 감각을 민감(敏感), 남의 의견이나 논설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똑같이 느낌을 공감(共感), 몸에 느끼는 감각을 체감(體感), 의견이나 견해에 있어 같이 생각함을 동감(同感), 절실하게 느낌을 절감(切感), 지나치게 고마움을 과감(過感),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심령의 미묘한 작용에 의한 느낌을 영감(靈感), 반대하거나 반항하여 품는 나쁜 감정을 반감(反感), 외부의 자극을 잘 받아들이는 성질을 일컫는 말을 감수성(感受性), 감정에 관하거나 바탕을 둔 것을 이르는 말을 감정적(感情的), 어떤 대상을 선선히 받아 들이거나 긍정하지 못하고 좋지 않게 여기는 감정을 일컫는 말을 거부감(拒否感), 마음이 조마조마한 느낌을 이르는 말을 불안감(不安感), 어떤 일에 대하여 뜻한 대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굳센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신감(自信感),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또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불안한 느낌을 일컫는 말을 위기감(危機感), 서로 공감하는 부분을 일컫는 말을 공감대(共感帶),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일컫는 말을 혐오감(嫌惡感),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하게 낮추어 평가하는 생각을 일컫는 말을 열등감(劣等感), 맡은 임무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책임감(責任感), 그지없도록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느낌을 일컫는 말을 감개무량(感慨無量), 감격스런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감격무지(感激無地), 지난 일을 생각하는 회포를 이르는 말을 감구지회(感舊之懷), 대단히 감사합니다를 일컫는 말을 감사만만(感謝萬萬), 무한히 감사함을 일컫는 말을 감사무지(感謝無地), 부처와 중생이 긴밀히 맺어지는 일을 이르는 말을 감응납수(感應納受), 점괘에 신이 감응되어 모든 일이 통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감이수통(感而遂通),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를 덕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감지덕지(感之德之) 등에 쓰인다.

▶️ 和(화할 화)는 ❶형성문자로 惒(화)는 통자(通字), 咊(화)는 고자(古字), 訸(화)와 龢(화)는 동자(同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禾(화)와 수확한 벼를 여럿이 나누어 먹는다는(口) 뜻을 합(合)하여 '화목하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和자는 '화목하다'나 '온화하다'하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和자는 禾(벼 화)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禾자가 '벼'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口자가 더해진 和자는 먹고살 만하니 '화목하다'와 같은 식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龠(피리 약)자가 들어간 龢(화할 화)자가 쓰였었다. 龢자는 피리를 그린 龠자를 응용한 글자로 피리 소리가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의미에서 '조화롭다'를 뜻했었다. 여기서 禾자는 발음역할만을 했었다. 하지만 금문에서 부터는 소리의 조화를 口자가 대신하게 되면서 지금의 和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和(화)는 (1)관악기(管樂器)의 한 가지. 모양의 생(笙)과 같이 생겼는데, 십삼관(十三管)으로 되었음 (2)합(合)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화하다(서로 뜻이 맞아 사이 좋은 상태가 되다) ②화목하다 ③온화하다 ④순하다 ⑤화해하다 ⑥같다 ⑦서로 응하다 ⑧합치다 ⑨허가하다 ⑩모이다 ⑪화답하다 ⑫양념하다 ⑬나라의 이름(일본) ⑭합계 ⑮악기(樂器)의 한 가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화합할 협(協), 화목할 목(睦),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싸움 전(戰)이다. 용례로는 다툼질을 서로 그치고 풂을 화해(和解),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을 화목(和睦), 화목하여 잘 합하여 짐을 화합(和合), 시나 노래에 서로 응하여 대답함을 화답(和答), 온화하고 순함을 화순(和順), 날씨가 바람이 온화하고 맑음을 화창(和暢), 마음이 기쁘고 평안함을 화평(和平), 급박하거나 긴장된 상태를 느슨하게 함을 완화(緩和), 평온하고 화목함을 평화(平和), 서로 잘 어울림을 조화(調和), 날씨가 맑고 따뜻하며 바람이 부드러움을 온화(溫和), 교전국끼리 싸움을 그만두고 서로 화해함을 강화(講和),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됨을 융화(融和), 성질이 부드럽고 온화함을 유화(柔和), 서로 친해 화합함을 친화(親和), 화창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란 뜻으로 따뜻한 봄날씨를 이르는 말을 화풍난양(和風暖陽), 남과 사이 좋게 지내되 義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화이부동(和而不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부드러운 기운이 넘쳐 흐름을 이르는 말을 화기애애(和氣靄靄),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단비가 내린다는 뜻으로 날씨가 고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화풍감우(和風甘雨), 음과 양이 서로 화합하면 그 기운이 서로 어우러져 상서를 냄을 일컫는 말을 화기치상(和氣致祥), 우레 소리에 맞춰 함께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여 일컫는 말을 부화뇌동(附和雷同),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부부 사이가 다정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을 금슬상화(琴瑟相和),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충돌 또는 둘 이상의 음이 같이 울릴 때 서로 어울리지 않고 탁하게 들리는 음을 일컫는 말을 불협화음(不協和音), 겉으로는 동의를 표시하면서 내심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동이불화(同而不和),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적어진다는 말을 곡고화과(曲高和寡), 국민의 화합과 나아가 인류의 화합을 지향한다는 뜻을 일컫는 말을 조민유화(兆民有和) 등에 쓰인다.

▶️ 萬(일만 만)은 ❶상형문자로 万(만)의 본자(本字)이다. 가위나 꼬리를 번쩍 든 전갈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전갈이 알을 많이 낳는다고 하여 일 만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萬자는 '일만(一萬)'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萬자는 艹(풀 초)자와 禺(긴꼬리원숭이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萬자의 갑골문을 보면 앞발을 든 전갈이 그려져 있었다. 萬자는 본래 '전갈'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후에 숫자 '일만'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있다. 萬자는 간혹 万(일만 만)자로 쓰일 때가 있는데, 이것은 중국 한나라 때 萬자를 생략해 사용했었기 때문이다. 간체자를 사용하는 중국에서는 万자를 '일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萬(만)은 (1)천(千)의 열 곱절. 9천999보다 1이 더 많은 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일 만(一萬) ②성(姓)의 하나 ③사천성에 있는 현(縣)의 이름 ④만무(萬無: 절대로 없음) ⑤대단히 ⑥매우 ⑦매우 많은 ⑧여럿 ⑨절대로 ⑩전혀 ⑪많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아주 멀고 오랜 세대를 만대(萬代), 온갖 일을 만사(萬事),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를 만일(萬一), 만일이나 혹시를 만약(萬若),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나 갖가지 수많은 물건을 만물(萬物), 온갖 물건의 형상을 만상(萬象), 썩 많은 돈을 만금(萬金), 매우 오래 삶을 만수(萬壽), 많은 복을 만복(萬福),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반(萬般), 온갖 것에 다 능통함을 만능(萬能), 경축하거나 환호하여 외치는 말을 만세(萬歲), 완전하여 조금도 빠진 것이 없는 것 또는 아주 안전한 것을 만전(萬全), 온갖 어려움을 만난(萬難), 썩 많은 돈을 만냥(萬兩), 썩 많은 햇수나 늘 한결같은 상태를 만년(萬年), 세계 각 나라의 국기를 만국기(萬國旗), 고금에 예가 없이 뛰어난 미색을 일컫는 말을 만고절색(萬古絶色), 한없이 목숨이 긺 또는 장수하기를 비는 말을 만수무강(萬壽無疆), 만 이랑의 푸른 물결이라는 뜻으로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일컫는 말을 만경창파(萬頃蒼波), 만 가지 일이 끝장이라는 뜻으로 모든 일이 전혀 가망이 없는 절망과 체념의 상태임을 이르는 말을 만사휴의(萬事休矣), 어리석어서 모든 일에 아무 걱정이 없이 지냄을 비웃는 말 또는 모든 일이 잘 되어서 험난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만사태평(萬事太平), 만세토록 변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만세불역(萬世不易), 오랜 세월을 두고 바뀌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만고불역(萬古不易), 오랜 세월을 두고 변함이 없는 산천을 일컫는 말을 만고강산(萬古江山), 울긋불긋한 여러 가지의 빛깔이라는 뜻으로 흔히 가지각색의 꽃이 만발한 것을 이르는 말을 만자천홍(萬紫千紅), 만년이나 오래도록 항상 푸르다는 뜻으로 언제나 변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만고상청(萬古常靑), 모든 일이 뜻한 바대로 잘 이루어짐을 일컫는 말을 만사형통(萬事亨通), 서로 넘나들 수 없도록 가로막은 크고 긴 장벽을 일컫는 말을 만리장성(萬里長城), 어떤 한 가지 약이 여러 가지 병에 다 효력이 있음 또는 어떤 한 가지 사물이 여러 가지 사물에 다 효력을 나타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만병통치(萬病通治), 아주 먼 훗날까지를 미리 내다본 계획을 일컫는 말을 만년지계(萬年之計), 아주 안전하거나 완전한 계책을 일컫는 말을 만전지책(萬全之策), 만 번 죽을 고비에서 한 번 살아난다는 뜻으로 목숨이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이르는 말을 만사일생(萬死一生), 만 필의 소로 끌어도 돌려 세울 수 없다는 뜻으로 도저히 설득하기 어려운 고집 센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만우난회(萬牛難回), 만리나 떨어진 먼 곳까지 같은 바람이 분다는 뜻으로 세상이 태평함을 이르는 말을 만리동풍(萬里同風), 만인의 입이 비를 이룬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칭찬하는 것이 송덕비를 세우는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만구성비(萬口成碑), 만물 가운데 가장 으뜸간다는 뜻으로 사람을 일컫는 말을 만물지령(萬物之靈), 산봉우리가 많다는 뜻으로 금강산의 절승한 산세를 이르는 말을 만이천봉(萬二千峰), 여러 사람의 의논이 모두 같음을 일컫는 말을 만구일담(萬口一談), 모든 현상이나 사물은 결국 하나로 된다는 말을 만법일여(萬法一如), 우주 간의 온갖 물건은 한몸이라는 말을 만유일체(萬有一體), 조국이나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지방을 일컫는 말을 만리타향(萬里他鄕), 황하가 수없이 꺾여 흘러가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결국은 본뜻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만절필동(萬折必東), 만 가지로 깨닫게 가르치다는 뜻으로 친절하게 가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만단개유(萬端改諭), 무슨 일에든지 정신을 쓰지 아니함 또는 근심 걱정으로 모든 일에 아무 경황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만사무심(萬事無心) 등에 쓰인다.

▶️ 民(백성 민)은 ❶상형문자로 백성은 천한 신분을 타고 나며 눈 먼 사람이라 생각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데서 '무지(無知)', '무교육인 사람', '일반 사람'이란 뜻이다. 먼 옛날에는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희생으로 하거나 신의 노예(奴隸)로 삼았다. 그것이 民(민)이었다고도 한다. ❷상형문자로 民자는 '백성'이나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民자는 氏(성씨 씨)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성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民자의 금문을 보면 사람의 눈에 열십자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송곳으로 사람의 눈을 찌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에는 노예의 왼쪽 눈을 멀게 하여 저항하거나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다. 民자는 그러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民자의 본래 의미는 '노예'였다. 물론 지금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을 뜻하고 있지만, 글자의 유래를 보면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民(민)은 '사람', '공민', '인민'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로, ①백성(百姓) ②사람 ③직업인 ④나(자신)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임금 주(主),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왕(王), 임금 황(皇), 임금 후(矦), 임금 벽(辟), 선비 사(士), 신하 신(臣), 벼슬 관(官), 벼슬아치 리(吏)이다. 용례로는 일반 백성의 사회를 민간(民間), 인종적으로나 지역적 기원이 같고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을 민족(民族), 백성의 마음을 민심(民心), 민간의 풍속을 민속(民俗), 백성이 주권을 가지고 주인 노릇함을 민주(民主), 국민이 청하여 바라는 바를 민원(民願), 백성이나 인민의 생활을 민생(民生), 다수의 백성을 민중(民衆), 민간에 관한 일을 민사(民事), 백성의 뜻을 민의(民意), 예로부터 민간에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흥미 위주의 허구적 이야기를 민담(民譚), 보통 살림집에 숙박함을 민박(民泊), 일반 국민의 집을 민가(民家), 백성의 바람이나 믿음을 민망(民望), 가난한 백성을 빈민(貧民), 한 나라의 통치권 아래에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인민을 국민(國民), 귀족 등에 대하여 사회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는 보통 사람을 서민(庶民), 그 땅에 사는 백성을 주민(住民), 국정에 참여할 지위에 있는 국민을 시민(市民), 농사 짓는 백성을 농민(農民),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를 교민(僑民), 전쟁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따위를 당하여 살아 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난민(難民), 벼슬이 없는 일반 백성을 평민(平民), 땅이 넓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백성을 옮기어 살게 함을 이민(移民), 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일컫는 말을 국리민복(國利民福), 같은 겨레끼리 서로 다투고 싸움을 일컫는 말을 민족상잔(民族相殘),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고 한 데서 유래한 성어를 이르는 말을 민귀군경(民貴君輕), 백성은 신의가 있을 때에 안정된다는 뜻으로 백성은 신의에 의해서만 잘 다스려 진다는 말을 민보어신(民保於信), 백성의 피와 땀이라는 뜻으로 백성에게서 과다하게 거두어들인 세금이나 재물을 이르는 말을 민고민지(民膏民脂), 부담을 가볍게 하여 백성의 힘을 펴게 함을 이르는 말을 민력휴양(民力休養), 어떤 민족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민족자결(民族自決), 백성은 구차하고 나라의 재물은 다 말라 없어짐을 일컫는 말을 민궁재갈(民窮財渴), 정치의 부패나 변동 따위로 말미암아 받는 백성의 괴로움을 일컫는 말을 민간질고(民間疾苦), 세상사를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함을 일컫는 말을 경세제민(經世濟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나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예로부터 흰 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 한민족을 이르는 말을 백의민족(白衣民族), 하느님을 받들고 백성을 통치하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경천근민(敬天勤民),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을 이르는 말을 혹세무민(惑世誣民), 가뭄 때 농민들이 비를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갈민대우(渴民待雨),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의 괴로움을 하소연할 수 없는 백성이라는 뜻으로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사람 또는 부모나 처자식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무고지민(無告之民), 백성을 생각하기를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백성을 소중히 여겨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음을 일컫는 말을 이민위천(以民爲天),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일컫는 말을 이국편민(利國便民), 세상을 구하고 민생을 구제함을 일컫는 말을 구세제민(救世濟民), 어리석고 미천한 백성이나 무지한 백성을 일컫는 말을 우하지민(愚下之民),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일컫는 말을 제세안민(濟世安民), 국민의 화합과 나아가 인류의 화합을 지향한다는 뜻을 나타냄을 이르는 말을 조민유화(兆民有和)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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