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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병길문우천(丙吉問牛喘)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20.04.01|조회수250 목록 댓글 0

병길문우천(丙吉問牛喘)

병길이 소가 헐떡거리는 것을 묻다는 뜻으로, 맡은 바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丙 : 남녘 병(一/4)
吉 : 길할 길(口/3)
問 : 알릴 문(口/8)
牛 : 소 우(牛/0)
喘 : 헐떡거릴 천(口/9)

(유의어)
문우천(問牛喘)
병길문우(丙吉問牛)
병길우천(丙吉牛喘)

출전 : 한서(漢書) 卷074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병길이 소가 헐떡이는 것을 보고 물었다는 뜻으로, 한(漢)의 명 재상인 병길이 소가 헐떡거리는 것을 보고 시절의 조화를 걱정했다는 고사이다.

이 성어는 직분에 따른 일의 선후를 말하고 있다. 한서(漢書) 卷074 병길전(丙吉傳)에 보인다.

병길문우(丙吉問牛)는 '한서(漢書)'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에 나오는 고사다. 전한(前漢) 병길의 자는 소경(少卿)이니, 노(魯)나라 사람이다. 선제(宣帝) 때 승상(丞相)이 되었다.

吉又嘗出, 逢清道群鬥者, 死傷橫道, 吉過之不問. 掾史獨怪之.
병길이 일찌기 길에 나갔더니 청소하는 무리로서 싸우던 자가 상해서 길에 널부러져 있는데, 병길은 그냥 지나치고 묻지도 않았다. 연리가 혼자 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吉前行, 逢人逐牛. 牛喘吐舌.
병길이 다시 앞에 가다가, 사람을 만났는데 소를 몰고 왔다. 그런데 그 소가 숨이 차서 혀를 내밀고 헐떡였다.

吉止駐, 使騎吏問: 逐牛行幾里矣?
병길은 수레를 멈추고, 말 부리는 관리로 하여금 묻기를, "소를 끌고 몇 리를 왔느냐?"라고 하자,

掾史獨謂丞相前後失問, 或以譏吉.
연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승상이 물어보는 것이 앞뒤를 잃었다고 하며, 혹 병길을 나무라기도 했다.

吉曰: 民斗相殺傷, 長安令京兆尹職所當禁備逐捕.
이에 병길은 말하기를, "백성들이 싸우다가 서로 죽이거나 다치는 것은, 장안령이나 경조윤의 책무로서 마땅히 금하여 대비하고 쫓고 체포할 것이다.

歲竟丞相課其殿最, 奏行賞罰而已, 宰相不親小事, 非所當於道路問也.
승상의 책무는 그 해가 다 가면 관리들의 성적을 조사하고, 그 위에 아뢰어 상을 주고 벌을 줄 뿐이니, 재상은 사소한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인즉, 마땅히 길에서 일어난 사건은 묻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方春少陽用事, 未可大熱, 恐牛近行, 用暑故喘, 此時氣失節, 恐有所傷害也.
이제 바야흐로 봄철이어서 소양의 기가 발동하는 계절이다. 아직 무덥지도 않고, 소는 그다지 먼 곳에서 온 것 같지도 않은데, 더워서 헐떡이고 있으니, 그것은 시후가 계절을 벗어난 일로서, 사람이 상하고 해로운 것이 있을까 두려운 것이다.

三公典調和陰陽, 職當憂, 是以問之.
삼공은 음양을 조화시키는 일을 맡았으니, 직책에 마땅히 근심해야 하느니라. 그런 까닭에 물었던 것이다" 라고 하였다.

掾史乃服, 以吉知大體.
이에 연리들은 병길이 대체를 아는 것에 탄복하였다.
(漢書/卷074 魏相丙吉傳)


⏹ 병길문우(丙吉問牛)

병길이 소에 대해 묻다,
직위에 맞게 일을 판단하다.

태종우(太宗雨)라는 말이 있다. 조선 태종(太宗)이 가뭄으로 백성이 애타할 때 비를 염원하며 승하한 음력 오월 열흘에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융성할 수 있다며 눈감을 순간까지 고심했다는 미담이다.

민심은 천심(天心)이라며 백성의 마음이 하늘의 뜻과 같다고 군주보다 귀하게 여긴 것이 맹자(孟子)가 말한 민귀군경(民貴君輕)이고 민위방본(民爲邦本)이다.

이렇듯 위정자들이 백성을 항상 먼저 생각할 때 나라는 번영할 수 있었다. 정승으로 있던 병길(丙吉)이 사람의 다툼보다 소가 헐떡이는 것을 걱정하여 물었다(問牛)는 고사도 농사와 날씨를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중국 전한(前漢)의 10대 황제 선제(宣帝, 재위 기원전 74~49)때 승상 병길은 큰 뜻으로 너그러운 정사를 펼쳐 모두의 우러름을 받았다.

한서(漢書)를 쓴 반고(班固)는 그를 고조(高祖)가 나라를 세울 때 기초를 튼튼히 한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에 비견될 정도로 선제의 중흥에 공적을 남겼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서기전 91년 무제(武帝)가 병들었을 때 무당 때문이라며 많은 사람을 옥사시킨 무고(巫蠱)의 난에서 강보의 선제를 보호한 것도 병길의 공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겸손하여 자신의 공적을 떠벌리지 않았고 부하 관원의 허물은 덮어주며 스스로 깨닫게 했다. 위아래의 직분을 명쾌하게 구분했던 일화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병길이 어느 때 외출하던 중 길가에서 사람들이 떼 지어 피투성이로 싸우는 것을 보고도 지나쳤다.

계속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소를 몰고 가는 사람을 만나 소가 혀를 빼물고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자(逢人逐牛 牛喘吐舌)' 몇 리나 몰고 왔는지 물었다.

부하 관원들이 사람보다 소가 더 중요한지 연유를 물었다. 사람들의 다툼은 지방관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고 더운 철이 멀었는데도 소가 헐떡인다면 날씨가 좋지 못한 것이라 농사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 했다. 백성을 위하여 더 큰 일을 걱정하는 것이 재상의 소임이란 이야기다.

나라나 사회의 조직생활에서 어떤 상사가 부하들에게 환영받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이야기가 나돈 적이 있다.

모든 일에 능숙하여 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를 일명 '똑부'라 하여 가장 점수를 받을 것 같았지만 이들은 부하의 업무를 잘 아는 만큼 간섭이 심하여 환영받지 못한다. 일을 다 파악하여 알 수 있어도 부하의 업무를 인정하고 재량을 주어 게으른 듯한 '똑게'가 최고란다.

분업화된 오늘날 사회에서 권한이 있다고 모든 것을 알고 처리하려 한다면 임금이 모든 정사를 보살폈던 만기친람(萬機親覽)이나 다를 바 없다.


◼ 병길(丙吉, ? ~ BC 55)

병길(丙吉)은 전한 중기 ~ 후기의 관료로, 자는 소경(少卿)이며 노국 사람이다. 법률을 익혀 옥사(獄史)를 지냈고, 공로를 쌓아 조정에 나아가 정위우감(廷尉右監)으로 승진하였으나 죄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가 주의 종사(從事)를 지냈다.

정화(征和) 2년(기원전 91년), 여태자(戾太子)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무고의 난). 병길은 예전의 정위의 밑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옥사를 관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여태자의 손자 유병이(劉病已)도 심문을 받게 되었다.

병길은 유병이가 아직 갓난아이임을 안타깝게 여겨 여자 죄수를 유모로 붙여주고, 사재를 털어 양육하였다.

무제(武帝 )가 장안에 하옥된 자들을 모두 죽이려 했을 때 병길은 자신이 담당한 감옥의 용의자들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병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보전하였다.

이후 사면령이 내려졌고, 병길은 유병이의 할머니의 친정인 사(史)씨 집안에 유병이를 맡겼다. 훗날 대장군 곽광(霍光)의 밑에서 일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대장군의 장사(長史; 관직 이름)를 지냈다가 광록대부(光祿大夫) 급사중(給事中)이 되어 조정에 나아갔다.

원평(元平) 원년(기원전 74년), 소제(昭帝)가 붕어하고 창읍왕(昌邑王)이 즉위하였으나 행실이 음란하여 폐위가 논의되었다.

병길은 곽광에게 유병이의 존재를 알려 그를 후사로 삼을 것을 권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곽광은 창읍왕을 쫓아내고 유병이를 옹립하였다(선제).

선제 즉위 후 병길은 공로를 인정받아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으나, 병길은 자신이 선제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따로 말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포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지절(地節) 3년(기원전 67년), 유석(劉奭)이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병길은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임명되었다가 몇 달 후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승진하였다.

이때, 액정(掖庭)의 여종 칙(則)이 자신에게 황제를 양육한 공이 있다고 남편을 통하여 고하였다. 선제(宣帝 )는 액정령(掖庭令)으로 하여금 칙(則)을 심문하게 하였고, 칙(則)은 병길이 사정을 알고 있다고 아뢰었다.

액정령은 칙을 병길에게 데리고 갔고, 칙을 알아본 병길은 그녀에게 말하였
다. "너는 황증손(선제)을 보살핀 몸이면서 근신하지 않아 벌로 매를 맞았는데, 어찌 공이 있다고 하겠느냐? 위성(渭城)의 호조(胡組)와 회양(淮陽)의 곽징경(郭徵卿)만이 공로가 있다고 하겠다."

곧 병길은 호조와 곽징경의 일을 선제에게 아뢰었고, 선제는 이들을 찾게 하였으나 둘 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자손들에게 포상을 내렸다.

또 조서를 내려 칙을 해방시키고 10만 전을 하사하였고, 칙에게서 그때 병길이 자신을 살려 주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놀라, 바로 병길을 박양후(博陽侯)에 봉하고 식읍 1,300호를 내려주었다.

신작(神爵) 3년(기원전 59년), 위상의 뒤를 이어 승상에 임명되었으나 4년 후 병으로 죽었다. 병길은 죽기 전에 선제에게 우정국(于定國), 두연년(杜延年), 진만년(陳萬年)을 추천하였고, 이들은 모두 요직에 임명되었다. 시호(諡號)를 정(定)이라 하였다.

아들 병현(丙顯)은 태복을, 병우(丙禹)는 수형도위(水衡都尉)를, 병고(丙高)는 중루교위(中壘校尉)를 지냈다.


◼ 漢書/卷074 丙吉傳

丙吉字少卿, 魯國人也。治律令, 為魯獄史。積功勞, 稍遷至廷尉右監。坐法失官, 歸為州從事。武帝末, 巫蠱事起, 吉以故廷尉監徵, 詔治巫蠱郡邸獄。時宣帝生數月, 以皇曾孫坐衛太子事繫, 吉見而憐之。又心知太子無事實, 重哀曾孫無辜, 吉擇謹厚女徒, 令保養曾孫, 置閒燥處。吉治巫蠱事, 連歲不決。後元二年, 武帝疾, 往來長楊五柞宮, 望氣者言長安獄中有天子氣, 於是上遣使者分條中都官詔獄繫者, 亡輕重一切皆殺之。內謁者令郭穰夜到郡邸獄, 吉閉門拒使者不納, 曰: 皇曾孫在。他人亡辜死者猶不可, 況親曾孫乎! 相守至天明不得入, 穰還以聞, 因劾奏吉。武帝亦寤, 曰: 天使之也。因赦天下。郡邸獄繫者獨賴吉得生, 恩及四海矣。曾孫病, 幾不全者數焉, 吉數敕保養乳母加致醫藥, 視遇甚有恩惠, 以私財物給其衣食。

後吉為車騎將軍軍市令, 遷大將軍長史, 霍光甚重之, 入為光祿大夫給事中。昭帝崩, 亡嗣, 大將軍光遣吉迎昌邑王賀。賀即位, 以行淫亂廢, 光與車騎將軍張安世諸大臣議所立, 未定。吉奏記光曰: 將軍事孝武皇帝, 受襁褓之屬, 任天下之寄, 孝昭皇帝早崩亡嗣, 海內憂懼, 欲亟聞嗣主, 發喪之日以大誼立後, 所立非其人, 復以大誼廢之, 天下莫不服焉。方今社稷宗廟群生之命在將軍之壹舉。竊伏聽於眾庶, 察其所言, 諸侯宗室在列位者, 未有所聞於民間也。而遺詔所養武帝曾孫名病已在掖庭外家者, 吉前使居郡邸時見其幼少, 至今十八九矣, 通經術, 有美材, 行安而節和。願將軍詳大議, 參以蓍龜, 豈宜褒顯, 先使入侍, 令天下昭然知之, 然後決定大策, 天下幸甚! 光覽其議, 遂尊立皇曾孫, 遣宗正劉德與吉迎曾孫於掖庭。宣帝初即位, 賜吉爵關內侯。

吉為人深厚, 不伐善。自曾孫遭遇, 吉絕口不道前恩, 故朝廷莫能明其功也。地節三年, 立皇太子, 吉為太子太傅, 數月, 遷御史大夫。及霍氏誅, 上躬親政, 省尚書事。是時, 掖庭宮婢則令民夫上書, 自陳嘗有阿保之功。章下掖庭令考問, 則辭引使者丙吉知狀。掖庭令將則詣御史府以視吉。吉識, 謂則曰: 汝嘗坐養皇曾孫不謹督笞, 汝安得有功? 獨渭城胡組, 淮陽郭徵卿有恩耳。分別奏組等共養勞苦狀。詔吉求組徵卿, 已死, 有子孫, 皆受厚賞。詔免則為庶人, 賜錢十萬。上親見問, 然後知吉有舊恩, 而終不言。上大賢之, 制詔丞相: 朕微眇時, 御史大夫吉與朕有舊恩, 厥德茂焉。詩不云虖? 亡德不報。其封吉為博陽侯, 邑千三百戶。臨當封, 吉疾病, 上將使人加紼而封之, 及其生存也。上憂吉疾不起, 太子太傅夏侯勝曰: 此未死也。臣聞有陰德者, 必饗其樂以及子孫。今吉未獲報而疾甚, 非其死疾也。後病果瘉。吉上書固辭, 自陳不宜以空名受賞。上報曰: 朕之封君, 非空名也, 而君上書歸侯印, 是顯朕之不德也。方今天下少事, 君其專精神, 省思慮, 近醫藥, 以自持。後五歲, 代魏相為丞相。

吉本起獄法小吏, 後學詩禮, 皆通大義。及居相位, 上寬大, 好禮讓。掾史有罪臧, 不稱職, 輒予長休告, 終無所案驗。客或謂吉曰: 君侯為漢相, 姦吏成其私, 然無所懲艾。吉曰: 夫以三公之府有案吏之名, 吾竊陋焉。後人代吉, 因以為故事, 公府不案吏, 自吉始。
於官屬掾史, 務掩過揚善。吉馭吏耆酒, 數逋蕩, 嘗從吉出, 醉歐丞相車上。西曹主吏白欲斥之, 吉曰: 以醉飽之失去士, 使此人將復何所容? 西曹地忍之, 此不過汙丞相車茵耳。遂不去也。此馭吏邊郡人, 習知邊塞發奔命警備事, 嘗出, 適見驛騎持赤白囊, 邊郡發奔命書馳來至。馭吏因隨驛騎至公車刺取, 知虜入雲中代郡, 遽歸府見吉白狀, 因曰: 恐虜所入邊郡, 二千石長吏有老病不任兵馬者, 宜可豫視。吉善其言, 召東曹案邊長吏, 瑣科條其人。未已, 詔召丞相御史, 問以虜所入郡吏, 吉具對。御史大夫卒遽不能詳知, 以得譴讓。而吉見謂憂邊思職, 馭吏力也。吉乃歎曰: 士亡不可容, 能各有所長。嚮使丞相不先聞馭吏言, 何見勞勉之有? 掾史繇是益賢吉。

吉又嘗出, 逢清道群鬥者, 死傷橫道, 吉過之不問, 掾史獨怪之。吉前行, 逢人逐牛, 牛喘吐舌。吉止駐, 使騎吏問: 逐牛行幾里矣? 掾史獨謂丞相前後失問, 或以譏吉, 吉曰: 民鬥相殺傷, 長安令京兆尹職所當禁備逐捕, 歲竟丞相課其殿最, 奏行賞罰而已。宰相不親小事, 非所當於道路問也。方春少陽用事, 未可大熱, 恐牛近行用暑故喘, 此時氣失節, 恐有所傷害也。三公典調和陰陽, 職所當憂, 是以問之。掾史乃服, 以吉知大體。

五鳳三年春, 吉病篤。上自臨問吉, 曰: 君即有不諱, 誰可以自代者? 吉辭謝曰: 群臣行能, 明主所知, 愚臣無所能識。上固問, 吉頓首曰: 西河太守杜延年明於法度, 曉國家故事, 前為九卿十餘年, 今在郡治有能名。廷尉于定國執憲詳平, 天下自以不冤。太僕陳萬年事後母孝, 惇厚備於行止。此三人能皆在臣右, 唯上察之。上以吉言皆是而許焉。及吉薨, 御史大夫黃霸為丞相, 徵西河太守杜延年為御史大夫, 會其年老, 乞骸骨, 病免。以廷尉于定國代為御史大夫。黃霸薨, 而定國為丞相, 太僕陳萬年代定國為御史大夫, 居位皆稱職, 上稱吉為知人。

吉薨, 諡曰定侯。子顯嗣, 甘露中有罪削爵為關內侯, 官至衛尉太僕。始顯少為諸曹, 嘗從祠高廟, 至夕牲日, 乃使出取齋衣。丞相吉大怒, 謂其夫人曰: 宗廟至重, 而顯不敬慎, 亡吾爵者必顯也。夫人為言, 然後乃已。吉中子禹為水衡都尉。少子高為中壘校尉。
元帝時, 長安士伍尊上書, 言: 臣少時為郡邸小吏, 竊見孝宣皇帝以皇曾孫在郡邸獄。是時治獄使者丙吉見皇曾孫遭離無辜, 吉仁心感動, 涕泣悽惻, 選擇復作胡組養視皇孫, 吉常從。臣尊日再侍臥庭上。後遭條獄之詔, 吉扞拒大難, 不避嚴刑峻法。既遭大赦, 吉謂守丞誰如, 皇孫不當在官, 使誰如移書京兆尹, 遣與胡組俱送京兆尹, 不受, 復還。及組日滿當去, 皇孫思慕, 吉以私錢顧組, 令留與郭徵卿並養數月, 乃遣組去。後少內嗇夫白吉曰: 食皇孫亡詔令。時吉得食米肉, 月月以給皇孫。吉即時病, 輒使臣尊朝夕請問皇孫, 視省席蓐燥濕。候伺組徵卿, 不得令晨夜去皇孫敖盪, 數奏甘毳食物。所以擁全神靈, 成育聖躬, 功德已亡量矣。時豈豫知天下之福, 而徼其報哉! 誠其仁恩內結於心也。雖介之推割肌以存君, 不足比也。孝宣皇帝時, 臣上書言狀, 幸得下吉, 吉謙讓不敢自伐, 刪去臣辭, 專歸美於組徵卿。組徵卿皆以受田宅賜錢, 吉封為博陽侯。臣尊不得比組徵卿。臣年老居貧, 死在旦暮, 欲終不言, 恐使有功不著。吉子顯坐微文奪爵為關內侯, 臣愚以為宜復其爵邑, 以報先人功德。先是顯為太僕十餘年, 與官屬大為姦利, 臧千餘萬, 司隸校尉昌案劾, 罪至不道, 奏請逮捕。上曰: 故丞相吉有舊恩, 朕不忍絕。免顯官, 奪邑四百戶。後復以為城門校尉。顯卒, 子昌嗣爵關內侯。

成帝時, 修廢功, 以吉舊恩尤重, 鴻嘉元年制詔丞相御史: 蓋聞褒功德, 繼絕統, 所以重宗廟, 廣賢聖之路也。故博陽侯吉以舊恩有功而封, 今其祀絕, 朕甚憐之。夫善善及子孫, 古今之通誼也, 其封吉孫中郎將關內侯昌為博陽侯,奉吉後。國絕三十二歲復續云。昌傳子至孫, 王莽時乃絕。


▶️ 丙(남녘 병/셋째 천간 병)은 ❶상형문자로 제사에 희생물을 얹는 큰 제상(祭床)을 본떴다. 음(音) 빌어 천간(天干)의 셋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丙자는 '남녘'이나 '셋째 천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丙자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탁자를 닮았기 때문에 고대 탁자를 본뜬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물고기의 꼬리만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서(字書)인 '이아(爾雅)'에는 '어미위지병(魚尾謂之丙)' 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는 '물고기 꼬리는 丙이라 한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볼 때 丙자는 물고기의 꼬리를 본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丙자는 일찍이 '셋째 천간'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후대에서도 유래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丙(병)은 (1)십간(十干)의 셋째 (2)사물의 등급(等級)을 매길 때나 차례(次例)에 있어서 제삼위(第三胃). 을(乙)의 다음, 정(丁)의 앞 (3)병방(丙方) (4)병시(丙時) 등의 뜻으로 ①남녘 ②병, 셋째 천간(天干) ③불 ④(사물의 등급을 매길 때나 차례에 있어서)제3위(第三位) ⑤묘막(墓幕: 무덤 가까이에 지은, 묘지기가 사는 작은 집) ⑥밝다, 빛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육십갑자의 셋째를 병인(丙寅), 육십갑자의 열 셋째를 병자(丙子), 육십갑자의 스물 셋째를 병술(丙戌), 육십갑자의 서른 셋째를 병신(丙申), 육십갑자의 마흔 셋째를 병오(丙午), 육십갑자의 쉰 셋째를 병진(丙辰),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셋째 부분을 병야(丙夜), 제왕이 침소에 드는 시각을 병침(丙枕), 24방위의 하나로 정남으로부터 동으로 15도의 방위를 중심한 15도 각도 안을 병방(丙方), 24시의 열두째 시로 오전 열 시 반부터 열한 시 반까지의 동안을 병시(丙時), 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남쪽을 등진 좌향을 병좌(丙坐), 불에 살라 버림을 병부(丙付), 차례나 등급을 갑을병으로 매길 때 그 셋째를 병종(丙種), 병방의 땅 곧 남쪽의 땅을 병지(丙地), 조선 세조 원년 곧 1455년에 성삼문과 박팽년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일어난 사화를 일컫는 말을 병자사화(丙子士禍), 조선 인조 14년 곧 1636년 병자년에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노한 난리를 일컫는 말을 병자호란(丙子胡亂), 흥선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으로 고종 3년 곧 1866년에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사건을 일컫는 말을 병인양요(丙寅洋擾), 조선 고종 3년 곧 1866년 병인년에 천주 교도를 박해한 사건을 일컫는 말을 병인사옥(丙寅邪獄), 조선 고종 13년 곧 1876년 병자년 2월에 일본과 처음으로 맺은 조약을 일컫는 말을 병자조약(丙子條約), 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병방을 등지고 임방을 향한 좌향을 일컫는 말을 병좌임향(丙坐壬向), 병자호란으로 말미암은 나라의 수치를 일컫는 말을 병자국치(丙子國恥),

▶️ 吉(길할 길)은 ❶회의문자로 士(사; 선비)와 口(구; 말)의 합자(合字)이다. 훌륭한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가 훌륭하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吉자는 '길하다'나 '상서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吉자는 士(선비 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吉자의 갑골문을 보면 무언가를 아래에 끼워 맞추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신전에 꽂아두는 위목(位目)을 그린 것이다. 위목은 신이나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놓던 '위패'를 말한다. 그러니까 吉자는 성스러운 신의 이름을 올린다는 의미에서 '상서롭다'나 '길하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吉자에 쓰인 士자는 위패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吉(길)은 ①길(吉)하다, 운이 좋다, 일이 상서(祥瑞)롭다 ②좋다, 아름답거나 착하거나 훌륭하다 ③착하다 ④복(福), 행복(幸福), 길한 일, 좋은 일 ⑤혼인(婚姻) ⑥제사(祭祀) ⑦음력(陰曆) 초하루 ⑧오례(五禮)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풍년 풍(豊),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흉할 흉(凶)이다. 용례로는 좋은 일과 언짢은 일을 길흉(吉凶), 아주 경사스러운 일을 길경(吉慶), 좋은 일이 있을 징조를 길조(吉兆), 좋은 운수를 길운(吉運), 좋은 소식을 길보(吉報), 경사가 날 조짐을 길상(吉祥), 좋은 날을 길일(吉日),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의 꿈을 길몽(吉夢), 길한 일이 생길 때 사람에게 미리 알려 준다고 하는 새를 길조(吉鳥), 복을 많이 받을 좋은 징조를 길상(吉相), 재수나 운수 따위가 길하지 못함을 불길(不吉), 좋은 일과 언짢은 일을 흉길(凶吉), 좋은 날을 가림을 연길(涓吉), 좋은 날을 가려서 고름을 택길(擇吉), 길흉과 화복이라는 뜻으로 즉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을 길흉화복(吉凶禍福), 매우 기쁘고 좋은 일을 일컫는 말을 길상선사(吉祥善事),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입춘대길(立春大吉), 한편 흉하기도 하고 한편 길하기도 하다는 말을 반흉반길(半凶半吉), 한 번 길조를 얻으면 다시 더 점을 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복불습길(卜不襲吉), 그리고 영구히 편안하고 길함이 높다는 말을 영수길소(永綏吉邵), 흉한 일을 피하고 길한 일로 나아간다는 말을 피흉추길(避凶趨吉) 등에 쓰인다.

▶️ 問(물을 문)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門(문; 출입구)으로 이루어졌다. 말이 나는 곳, 남의 안부를 묻거나 죄인에게 따져 묻는 일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問자는 '묻다'나 '방문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問자는 門(문 문)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門자는 양쪽으로 여닫는 문을 그린 것으로 '문'이나 '출입구'라는 뜻이 있다. 問자는 이렇게 문을 그린 門자에 口자를 더한 것으로 남의 집을 방문해 질문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외에도 외부소식은 문을 통해 들어온다 하여 '알리다', '소식'과 같은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問(문)은 (1)물음. 질문(質問) (2)옛날, 경서의 뜻 따위를 구술 시험(試驗)으로 묻는 문제(問題) 등의 뜻으로 ①묻다 ②문초(問招)하다 ③방문(訪問)하다 ④찾다 ⑤알리다 ⑥부르다 ⑦소식(消息) ⑧물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을 자(咨), 물을 신(訊), 물을 순(詢), 물을 추(諏), 물을 자(諮)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대답 답(畣), 대답 답(答)이다. 용례로는 남의 상사에 대하여 슬픈 뜻을 나타냄을 문상(問喪), 웃어른에게 안부를 여쭘을 문안(問安), 남에게서 글자를 배움을 문자(問字), 모르는 것을 알려고 물음을 문구(問求), 서로 묻고 대답하고 함을 문답(問答)예절을 물음을 문례(問禮), 앓는 사람을 찾아보고 위로함을 문병(問病),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 사실을 진술하도록 하는 심문을 문초(問招), 물어서 의논함을 문의(問議), 대답이나 해답 따위를 얻으려고 낸 물음을 문제(問題), 잘못을 캐묻고 꾸짖음을 문책(問責),묻는 항목을 문항(問項), 의심하여 물음을 의문(疑問), 남을 찾아가 봄을 방문(訪問), 의문이나 이유를 캐 물음을 질문(質問),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문(學問), 캐어 물음이나 따져서 물음을 신문(訊問), 일일이 따져 물음을 심문(審問), 상대방의 말을 되받아 묻는 것을 반문(反問), 문제나 물음을 냄 또는 그 문제를 설문(設問), 잘못된 점을 따져 물음을 힐문(詰問), 캐묻지 아니함을 불문(不問), 동쪽을 묻는 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뜻으로 묻는 말에 대하여 아주 딴판인 엉뚱한 대답을 일컫는 말을 문동답서(問東答西), 병든 데를 찔러 보는 침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험으로 미리 검사하여 봄을 이르는 말을 문안침(問安鍼), 정의 경중을 묻는다는 뜻으로 천하를 빼앗으려는 속셈이나 남의 실력을 의심하는 행위에 비유하는 말을 문정경중(問鼎輕重),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동쪽을 묻는 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뜻으로 묻는 말에 대하여 전혀 엉뚱한 대답을 일컫는 말을 동문서답(東問西答), 굽음과 곧음을 묻지 않는다는 뜻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일을 처리함 또는 잘잘못을 묻지 않고 함부로 행함을 일컫는 말을 불문곡직(不問曲直), 농사일은 머슴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은 항상 그 부문의 전문가와 상의하여 행해야 한다는 말을 경당문노(耕當問奴),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한다는 뜻으로 마음속으로 대화함을 이르는 말을 자문자답(自問自答), 어리석은 질문에 어리석은 대답 또는 우문은 자기의 질문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우문우답(愚問愚答) 등에 쓰인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

▶️ 喘(헐떡거릴 천)은 형성문자로 歂(천)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耑(전, 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喘(천)은 ①숨차다 ②헐떡이다 ③기침병 ④숨(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 ⑤호흡(呼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침 해(咳)이다. 용례로는 기관지에 경련이 일어나는 병을 천식(喘息), 숨이 차서 가슴이 몹시 벌떡거리는 것을 천만(喘滿), 가쁘게 숨을 쉬면서 헐떡거림 또는 몹시 숨이 차며 힘 없는 기침을 자꾸 하는 병증을 천촉(喘促), 아주 심한 천식을 천급(喘急), 가벼운 천식이나 천식인 듯한 증세를 천기(喘氣), 목에 가래가 끼어 나는 소리 또는 숨이 차서 헐떡이는 소리를 천명(喘鳴), 기침과 천식을 해천(咳喘), 흉악한 사람의 목숨을 흉천(兇喘), 흉측한 목숨이나 흉측한 사람의 목숨을 욕하여 이르는 말을 흉천(凶喘), 위태로운 목숨을 위천(危喘), 말을 할듯 말듯 하면서 머뭇거림을 섭천(聶喘), 죽지 않고 모질게 살아 숨 쉬는 목숨을 완천(頑喘), 오래도록 계속되는 숨이 가쁜 증세를 구천(久喘), 가슴이 불룩하여 몹시 답답하고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목구멍에서 가래 소리가 나는 증상을 기천(氣喘), 심장병이나 신장병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숨이 찬 병을 수천(水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나 아직 죽지 않고 겨우 부지하고 있는 목숨이나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여천(餘喘), 소가 더운 날씨에 숨이 차서 괴로워하는 모양을 우천(牛喘), 한 번 숨을 쉬는 것으로 매우 짧은 시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일천(一喘), 두려워서 헐떡이며 숨을 가쁘게 쉼을 구천(懼喘), 숨이 가쁨을 일컫는 말을 식천(息喘), 아주 끊어지지 아니하고 겨우 붙어 있는 숨 또는 오래 가지 못할 거의 죽게 된 목숨을 잔천(殘喘), 가래가 끓어서 숨이 참을 담천(痰喘), 입을 벌리고 숨을 쉼을 일컫는 말을 구거천식(口呿喘息), 역적과 흉도가 죽지 않고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역천흉식(逆喘兇息), 오나라의 소가 달을 보고 헐떡인다는 뜻으로 공연한 일에 지레 겁먹고 허둥거리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오우천월(吳牛喘月)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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