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유랑(前度劉郞)
지난번의 유랑이라는 뜻으로, 유랑이란 사람이 다시 왔다는 말이다.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을 의미하는 말이다.
前 : 앞 전(刂/7)
度 : 법도 도(广/6)
劉 : 묘금도 유(刂/13)
郞 : 사내 랑(阝/7)
지난 번의 유랑(劉郞)이라는 뜻으로, 한 번 떠났다가 다시 찾아온 사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당(唐)나라 때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유랑은 유우석 자신을 가리킨다. 유우석은 중당(中唐) 시기에 활동한 시인으로, 왕숙문(王叔文), 유종원(柳宗元) 등과 정치개혁을 꾀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낭주(郞州)의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10년 가까이 지내다가 다시 장안(長安)으로 불려 왔다. 당시 장안에는 현도관(玄都觀)이라는 도관(道觀)이 있었는데, 그곳의 복숭아꽃이 유명하였다.
유우석은 현도관을 유람하고 '유현도관(遊玄都觀)'이라는 시를 지어 '장안 거리에 뿌연 먼지 얼굴을 스치는데, 사람마다 꽃구경하고 돌아온다 말하네. 현도관에 심은 천 그루 복숭아나무는, 모두 유랑이 떠난 뒤에 심어진 것이라네'라며, 오랜 세월이 지나 돌아온 감회를 노래하였다.
紫陌紅塵拂面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그런데 권력자들이 이 시에 풍자의 뜻이 있다고 문제 삼아 유우석은 다시 파주(播州)의 자사(刺史)로 좌천되었고, 이어서 연주(連州)와 기주(夔州) 등지의 지방 관직을 전전하다가 14년이 흐른 뒤에 장안으로 불려 왔다.
유우석이 현도관을 다시 찾아가니 예전에 무성하였던 복숭아나무는 모두 없어지고 채소만 자라 있었다.
이에 유우석은 '재유현도관(再遊玄都觀)'이라는 시를 지어 '현도관 넓은 뜰엔 이끼가 태반, 복숭아꽃은 사라지고 채소만 자라 있구나. 복숭아 심던 도사는 어디로 갔는고, 지난 번의 유랑이 지금 또 왔는데'라고 감회를 읊었다.
百畝庭中半是苔
桃花淨盡菜花開
種桃道士歸何處
前度劉郞今又來
여기서 유래하여 전도유랑은 한 번 떠났다가 다시 찾아온 사람 또는 예전에 왔던 곳을 오랜만에 다시 찾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전도유랑(前度劉郞)
언뜻 이 성어를 들으면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있다는 전도유망(前途有望)을 연상하기 쉽다. 지난번(前度)의 유랑(劉郞)이라 해도 뜻은 막막하다. 유랑이란 사람이 다시 왔다, 오랜 시일이 지나서 옛 고장에 돌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유랑이란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은 대체로 둘이 등장하는데 중국 (後漢) 2대 명제(明帝) 때의 유신(劉晨)과 중당(中唐) 때의 유명시인 유우석(劉禹錫)이다.
먼저 유신은 친구와 함께 약초를 캐러간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두 미인을 만나 부부로 살았다. 반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하고 낯선 사람들도 자신들의 7대손이었단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 보니 미인들은 찾을 수 없고 그들이 선녀들이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유의경(劉義慶)이 쓴 '유명록(幽明錄)'에 실려 있다.
유우석은 조정의 미움을 받아 10년이나 지방으로 떠돌다 장안(長安)의 도관인 현도관(玄都觀)을 찾았다. 복숭아꽃으로 이름난 이 곳을 보고 시를 지었다.
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현도관에 심은 천 그루 복숭아 나무는, 모두 유랑이 떠난 뒤에 심은 것이로구나.
이 시가 고관대작을 풍자한 것이라는 혐의를 받은 유우석은 다시 지방으로 좌천됐다가 10여년이 지나 올라왔다.
현도관의 복숭아나무는 없어져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복숭아 심던 도사는 어디로 갔는가, 지난 번의 유랑이 지금 다시 왔는데(種桃道士歸何處 前度劉郞今又來).'
이런 유래가 이채로웠던지 우리의 고전에도 다수 인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 한수(韓脩)는 천수사(天壽寺)라는 절에서 연꽃을 구경하며 읊는다.
花開花落幾回新
前度劉郞今老人
꽃이 피며 꽃이 지고 몇 번이나 새로웠나, 전에 왔던 유랑이 지금은 노인 됐네.
조선 중기의 학자 최립(崔岦)은 '간이집(簡易集)'에서 노래한다.
仙人昔有去家千
前度劉郞亦十年
선인은 옛날에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돌아왔고, 유랑도 한번 떠났다가 십 년 만에야 돌아왔네.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추억을 되새기며 예전에 왔던 곳을 다시 찾는 것을 비유하는 이 말을 달리 재도유랑(再度劉郞)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옛 시조에서 읊었듯이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가요에 등장하는 '고향에 찾아 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닐' 경우가 대다수다.
뽕나무밭이 아파트촌으로 워낙 빨리 변하는 세태에다 삭막해진 사람들의 성정 탓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 아닐까.
游玄都觀 / 劉禹錫
(현도관을 돌아보다)
紫陌紅塵拂面來
장안의 큰길에서 먼지 맞으며 가노라니
無人不道看花回
꽃 구경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이 없네
玄都觀裏桃千樹
장안성 현도관에 수천 그루 복사나무
盡是劉郞去後栽
내가 장안 떠난 뒤에 심은 것들이라지
元和十一年自郞州召至京戱贈看花諸君子란 제목을 쓰기도 한다.
영정(永貞) 원년(805)은 정원(貞元) 21년이기도 한데 유우석은 이때 왕숙문(王叔文)의 정치개혁에 참여했다 실패한 후 낭주사마(郎州司馬)로 좌천되어 장안을 떠났다.
이 시는 원화(元和) 10년(815), 조정에서 그를 다시 기용하려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이듬해 낭주에서 장안으로 돌아온 뒤에 지은 작품이다.
봄날의 꽃놀이에 대한 감상을 노래한 것 같지만 '자맥홍진(紫陌紅塵)'과 '무인부도(無人不道)'란 표현에서 보듯이 장안에서 본 왁자한 분위기와 꽃놀이에 대한 감상을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는가 하면 현도관을 가득 채운 복사나무가 자신이 장안을 비운 사이에 심어졌다고 하면서 권력층에 줄을 대고 있는 바뀐 얼굴들을 풍자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지방에서 돌아온 유우석은 이 시로 인해 다시 연주자사(連州刺史)로 쫓겨가게 되는데 관직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중앙에서 밀려난 정치적 환경으로 보자면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셈이었다.
유우석은 이번에도 십 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뒤 두 번째 좌천에서 돌아와
아래와 같이 '다시 현도관을 돌아보며(再游玄都觀)'란 시를 지었다.
百畝庭中半是苔
널찍한 뜰 반 넘게 이끼로 덮여 있고
桃花淨盡菜花開
복사꽃 모두 진 뒤 유채꽃이 피어 있네
種桃道士歸何處
복사나무 심은 도사 어디로 가버렸나
前度劉郞今又來
전에 왔던 유랑이 지금 다시 왔는데
전도유랑(前度劉郞)은 원래 동한(東漢) 때 유신(劉晨)과 완조(阮肇)란 사람이 천태산으로 약을 캐러 갔다가 도원동(桃園洞)이란 곳에서 선녀를 만났는데, 반 년쯤 지내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7대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천태산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유우석이 이 시에 그 전고를 인용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유우석(劉禹錫, 772 ~ 842)
당조(唐朝)의 저명한 시인이다. 소주(蘇州) 가흥(嘉興; 지금의 저장성에 속함) 사람이고, 자는 몽득(夢得)이다. 선조가 북방에서 왔으며 스스로 중산(中山; 지금의 하북성 정주시) 출신이라 했다.
정원(貞元) 9년(793)에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진사가 되었다. 백거이는 그를 시호(詩豪)라고 칭했으며, 태자빈객(太子賓客)을 지낸 까닭에 사람들이 유빈객(劉賓客)이라고 불렀다.
만년에 검교예부상서, 비서감 등의 빈 직함을 가진 적도 있어서 비서유상서(秘書劉尙書)라고도 불렀다. 누실명(陋室銘 )과 죽지사(竹枝詞)가 특히 유명하다.
▶️ 前(앞 전/자를 전)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歬(전)으로 이루어졌다. 歬(전)은 舟(주; 배, 탈것)와 止(지; 발의 모양, 나아가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前자는 '앞'이나 '먼저', '앞서 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前자는 月(달 월)자와 刀(칼 도)자와 함께 상단에는 머리 모양이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前자의 금문을 보면 舟(배 주)자와 止(발 지)자가 결합한 歬(앞 전)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배가)앞으로 가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갑골문과 금문, 소전에서는 歬자가 '앞'이나 '앞서 나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舟자가 月자가 바뀌었고 止자는 ()로 변형되었다. 여기에 刀자까지 더해지면서 지금의 前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해서에서 刀자가 더해진 것은 '가위'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후에 '자르다'라는 뜻은 剪(자를 전)자로 따로 만들어지면서 뜻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前(전)은 (1)이전(以前) (2)막연하게 과거를 이를 적에 쓰는 말. 그건 (3)어떤 직함이나 자격 등을 나타내는 명사(名詞) 앞에 붙여 전날의 경력을 나타내는 말 (4)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전기(前期)의 뜻을 나타냄 (5)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앞부분의 뜻을 나타냄 (6)연대(年代), 연호(年號) 앞에 붙어 기원전(紀元前)의 뜻을 나타냄 등의 뜻으로 ①앞 ②먼저 ③미래(未來), 앞날 ④미리, 앞서서, 사전에 ⑤거무스름한 빛깔 ⑥가위 ⑦앞서다 ⑧나아가다 ⑨인도하다 ⑩뵙다, 찾아뵙다 ⑪소멸하다 ⑫자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뒤 후(後)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을 의논할 때 먼저 내세우는 기본이 되는 것을 전제(前提), 앞과 뒤와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전에 가졌던 직업 또는 벼슬을 전직(前職), 지난해나 작년을 전년(前年), 앞으로 나아감을 전진(前進), 이미 있었던 사례를 전례(前例), 앞쪽이나 일선을 전방(前方), 앞쪽에 친 진을 전진(前陣), 지나간 시대를 전대(前代), 앞서의 경력을 전력(前歷), 미리 나타나 보이는 조짐을 전조(前兆), 전번의 시기를 전기(前期), 직접 뛰어든 일정한 활동 분야를 전선(前線), 글이나 편지 전문을 생략함을 전략(前略), 전에 그 임무를 맡았던 사람을 전임(前任), 앞에서 이미 서술함을 전진(前陳), 앞의 부분을 전부(前部), 앞으로 갈 길을 전도(前途), 앞에 게재함 또는 지난해를 전재(前載),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전(以前), 자정으로부터 낮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전(午前),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실행하기 전을 사전(事前), 이전이나 이제까지를 종전(從前), 바로 앞이나 일이 생기기 바로 전을 진전(直前), 식을 거행하기 전을 식전(式前),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란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전거복철(前車覆轍), 앞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고 뒷수레가 경계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말로 전인의 실패를 보고 후인은 이를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전거가감(前車可鑑), 지난 시대에는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뜻으로 매우 놀랍거나 새로운 일을 이르는 말을 전대미문(前代未聞), 이전 세상에는 듣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지금까지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임의 비유하는 말을 전고미문(前古未聞),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손을 대거나 발을 디딘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전인미답(前人未踏),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려니까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는 뜻으로 재앙이 끊임 없이 닥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전호후랑(前虎後狼), 앞으로 갈 길이 아득히 멀다는 뜻으로 목적하는 바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남은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요원(前途遙遠),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있음 또는 장래가 유망함을 이르는 말을 전도유망(前途有望), 일에 부닥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앞뒤를 재며 머뭇거림을 이르는 말을 전첨후고(前瞻後顧),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전무후무(前無後無), 처음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는 공손하다는 뜻으로 상대의 입지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전거후공(前倨後恭), 앞길이나 앞날이 크게 열리어 희망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양양(前途洋洋), 앞길이나 앞날에 어려움이나 재난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다난(前途多難),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문전성시(門前成市),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화(風前燈火), 범에게 고기 달라기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어림도 없는 일을 하려고 함을 이르는 말을 호전걸육(虎前乞肉) 등에 쓰인다.
▶️ 度(법도 도, 헤아릴 탁, 살 택)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엄 호(广; 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庶(서, 도)의 생략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庶(서, 도)의 생략형은 많은 것, 여러 가지 사항(事項)을, 又(우)는 손, 손으로 헤아리는 일, 길이를 재는 여러 가지 단위(單位)의 총칭(總稱)의 뜻이 합(合)하여 법도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度자는 '법도'나 '헤아리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度자는 广(집 엄)자와 廿(스물 입)자,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廿자는 돌멩이를 표현한 모양자이다. 이렇게 돌멩이를 그린 廿자에 又자가 결합한 度자는 집 주위로 돌멩이를 던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度자는 본래 '헤아리다'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래서 큰 집을 뜻하는 广자에 돌멩이와 손을 함께 그려 돌멩이를 멀리 던져 길이를 잰다는 뜻을 표현했다. 度자에 아직도 '던지다'나 '재다'는 뜻이 남아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고대에도 길이나 무게는 국가가 정한 기준을 따라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길이를 헤아리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度자는 후에 '법도'나 '법'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度(도, 탁, 택)는 (1)한도(限度) 또는 정도(程度) (2)거듭되는 횟수 (3)제도(濟度) (4)득도(得道) (5)각도(角度)의 단위. 직각(直角)의 90분의 1 (6)경도(經度), 위도(緯度)의 단위. 곧 지구 둘레의 360분의 1 (7)온도의 단위. 온도계(溫度計)의 눈금의 하나 (8)문체(文體)에 쓰이어)번 (9)안경(眼鏡)의 강약(强弱)을 나타내는 단위 (10)경도(硬度), 비중(比重), 농도(濃度) 같은 것의 단위 (11)어떤 해를 나타내는 이름 밑에 붙어서)그 해의 연도(年度)를 가리키는 말 (12)한도(限度)나 정도(程度)를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법도(法度), 법제(法制), 법(法) ②자, 도구(道具) ③도수(度數: 거듭하는 횟수), 횟수(回數), 번 ④도(온도 등의 단위) ⑤기량(技倆), 국량(局量: 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일을 능히 처리하는 힘) ⑥가락, 율려(律呂) ⑦모양, 모습 ⑧정도 ⑨풍채(風采: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 ⑩태양(太陽), 하루의 해 ⑪천체(天體)의 속도 ⑫때, 기회 ⑬바루다, 바로잡다 ⑭가다, 떠나다, 통과(通過)하다 ⑮건너다, 건네다 ⑯나르다, 운반(運搬)하다 ⑰넘다, 넘어서다 ⑱기준(基準)으로 삼아 따르다 ⑲깨닫다, 번뇌(煩惱)에서 해탈(解脫)하다 ⑳승려(僧侶)가 되다, 그리고 ⓐ헤아리다, 추측하다(미루어 생각하여 헤아리다)(탁) ⓑ꾀하다, 생각하다(탁) ⓒ던지다(탁) ⓓ세다(탁) ⓔ재다(탁) ⓕ베다(탁) 그리고 ㉠살다, 자리잡고 살다(택) ㉡묻다(택)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너그러운 마음과 깊은 생각을 도량(度量), 세월을 보냄을 도일(度日), 가정이나 개인에게 닥칠 액을 미리 막는 일을 도액(度厄), 남보다 뛰어남을 도월(度越),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냄을 도구(度晷), 겨우 목숨을 이어감을 도명(度命), 알맞은 한도나 얼마 가량의 분량 또는 다른 것과 비교해서 우열의 어떠함을 정도(程度), 제정된 법규나 나라의 법칙을 제도(制度), 속의 뜻이 드러나 보이는 겉모양을 태도(態度), 움직이는 사물의 빠르기나 빠른 정도를 속도(速度), 정도에 넘침을 과도(過度), 덥고 찬 정도 또는 온도계가 나타내는 도수를 온도(溫度), 더할 수 없는 정도를 극도(極度), 혼합 기체나 액체의 진하고 묽은 정도를 농도(濃度), 똑같은 것이 되풀이 되는 도수나 어떤 일이 되풀이 되어 일어나는 정도를 빈도(頻度), 일정하게 정한 정도를 한도(限度), 빽빽이 들어선 정도를 밀도(密度), 병이 나아가는 일을 차도(差度), 일의 진행 속도나 진행된 정도를 진도(進度), 때를 헛되게 그저 보냄을 허도(虛度), 토지의 면적을 헤아림을 탁지(度地), 형편을 재어 헤아림을 탁량(度量),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을 촌탁(忖度), 따지어서 헤아림을 측탁(測度), 어떤 일을 도모하고 헤아림을 도탁(圖度), 먼 곳에서 미루어 헤아림을 현탁(懸度), 이리저리 따지고 헤아림을 마탁(摩度), 하는 일없이 한가롭게 세월을 보낸다는 말을 우유도일(優遊度日), 내버려 두고 상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치지도외(置之度外), 마음이 너그럽고 인자하며 도량이 넓다는 말을 관인대도(寬仁大度), 자신의 덕망과 능력을 헤아려 살핀다는 말을 탁덕양력(度德量力), 전쟁터에서의 용병에 관한 일은 먼곳에서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말을 병난요탁(兵難遙度), 낮에 생각하고 밤에 헤아린다는 뜻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깊이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주사야탁(晝思夜度) 등에 쓰인다.
▶️ 劉(죽일 류/유)는 형성문자로 刘(류)의 본자(本字), 刘(류)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묘금도(卯+金+刀) 류는 자의(字義)와는 상관없는 파자(破字)이다. 그래서 劉(류/유)는 ①죽이다, 살해하다(殺害--) ②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벌여 놓다 ③이겨내다, 승리하다 ④돌아다니다 ⑤예쁘다 ⑥도끼 ⑦칼 ⑧아름다운 모양 ⑨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전한의 고황제로 진시황이 죽은 다음 해 항우와 합세하여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뒤 해하의 싸움에서 항우를 대파하여 중국을 통일하고 제위에 오른 황제를 유방(劉邦), 유방이 건국한 전한을 유한(劉漢),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제1대 황제를 유비(劉備), 유손이 초립이라는 속담으로 일이 빠르기는 하지마는 해 놓은 솜씨가 거칠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유손초립(劉孫草笠), 지난번의 유랑이라는 뜻으로 유랑이란 사람이 다시 왔다는 말로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을 의미하는 말을 전도유랑(前度劉郞) 등에 쓰인다.
▶️ 郞(사내 랑/낭)은 ❶형성문자로 郎(랑)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우부방(阝=邑; 마을)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良(량, 랑)으로 이루어졌다. 본디 魯(로)로 나라의 지명, 사나이의 뜻으로 쓰인 것은 良(랑)의 음(音)이 같기 때문이다. ❷형성문자로 郞자는 '사내'나 '남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郞자는 良(어질 량)자와 邑(고을 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良자는 황제가 거주하던 궁궐의 복도를 그린 것으로 '좋다'나 '어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좋다'나 '어질다'는 뜻을 가진 良자에 邑자가 결합한 郞자는 '좋은 고을'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전에는 郞자가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한 지명이나 황제의 시종들이 머물던 궁을 뜻했었다. 다만 한위(韓魏) 시기부터는 郞자가 '사내'나 '남편'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젊은 남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郞(랑/낭)은 ①사내 ②남편(男便) ③낭군(郎君) ④아들 ⑤주인(主人) ⑥행랑(行廊: 대문 옆방) ⑦벼슬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내 남(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女), 아가씨 뉴(妞), 예쁜 여자 년(姩), 예쁠 왜(娃), 여자 낭(娘), 예쁜 여자 오(娪), 여자 원(媛), 아리따울 교(嬌), 여자 애(嬡), 아가씨 양(孃)이다. 용례로는 짐승을 잡는 데 쓰는 큰 그물을 낭고(郞罟), 혼인 때 신랑이 가지는 붉은 부채를 낭선(郞扇), 남의 집의 총각을 낭자(郞子), 신랑감을 낭재(郞材), 왕자를 높이어 이르는 말을 낭군(郞君), 갓 결혼한 남자를 신랑(新郞), 남의 사위를 높이어 일컫는 말을 서랑(壻郞), 사위를 달리 이르는 말을 탄랑(坦郞), 재질이 있는 훌륭한 신랑이나 얌전한 총각을 가랑(佳郞), 여인이 남편이나 애인을 친근하게 일컫는 애칭을 아랑(阿郞), 너르고 환함이나 밝고 명랑함을 통랑(通郞), 사내 같은 기질과 재주가 있는 여자를 여랑(女郞), 여자가 남편 외에 정을 둔 사내를 정랑(情郞), 남의 아들의 경칭을 영랑(令郞), 언니의 남편을 형랑(兄郞), 풍치가 있고 멋들어진 젊은 남자를 일컫는 말을 풍류랑(風流郞), 혼인 때 신랑이 색시집에 타고 가는 말을 일컫는 말을 낭기마(郞騎馬), 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노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야유랑(冶遊郞),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백면랑(白面郞), 아름답고 얌전한 신랑이나 젊은이를 일컫는 말을 옥인가랑(玉人佳郞), 강랑의 재주가 다했다는 말로 학문이 두각을 나타낸 후 퇴보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강랑재진(江郞才盡), 음악을 잘못 연주하면 주랑이 곧 알아차리고 돌아본다는 뜻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고곡주랑(顧曲周郞),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면서랑(白面書郞)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