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장보단(絶長補短)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는 뜻으로, 좋은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함을 이르는 말이다.
絶 : 끊을 절(糹/6)
長 : 긴 장(長/0)
補 : 도울 보(衤/7)
短 : 짧을 단(矢/7)
(유의어)
단장보단(斷長補短)
절장보단(截長補短)
억강부약(抑强扶弱)
출전 :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공적인 일을 우선하고, 개인적인 일을 뒤로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있다.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大臣; 지금의 장관)이 있었는데 하루는 초나라 군주인 양왕(襄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말했다. "대왕께서 궁(宮)안에서는 좌편에 주후(州候)를, 우편에 하후(夏候)를 데리고 계시고, 궁밖에 나가실 때에는 언릉군(?陵君)과 수릉군(壽陵君)이 대왕을 모시는데 이 네 사람은 모두 음탕(淫蕩)하고 방종(放縱)하며 절용(節用)이 없어 재정을 낭비하므로 국가 대소사는 물론이요 이렇게 나아가다가는 멀지 않은 시기에 갑자기 우리 영도(초나라의 수도)조차 보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초양왕은 화를 내며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나?" 하면서 장신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대는 망령이라도 들었나? 그런 엉뚱한 말은 이 나라의 민심을 혼란시킬 수작이 아닌가?"
그러나 장신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답을 했다. "신(臣)은 현재의 실정을 목격하고 새삼 그 중대함이 깊이 느껴져 더 이상 함구불언(緘口不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음)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나라는 백성들의 지독한 빈곤과 민심의 혼란이 극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제가 어찌 감히 나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황공하오나 대왕께서는 하루 속히 이 일을 시정(是正)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러시지 않고 계속 이 네 사람만을 총애(寵愛)하신다면 초나라의 존망(存亡)은 하루 아침에 결정이 날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충언을 드려도 초양왕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장신은, "대왕께서 기왕 저의 말씀을 믿지 않으시니 제게 잠깐 동안만이라도 조(趙)나라로 피하여 있으면서 초나라의 시국 돌아가는 형편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리하여 장신은 조나라로 떠나가고 초양왕은 여전히 사치하고 무도(無道)한 생활을 계속이어 나갔다. 그리고 불과 5개월이 지난 뒤 진(晉)나라가 과연 초나라를 침공하여 초양왕은 성양산(城陽山)으로 몸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 비로소 초양왕은 장신의 말을 깨닫고는 즉각 사람을 조나라에 보내어 장신을 불러오게 했다.
장신이 대왕의 부름을 받고 초나라로 돌아오니 초양왕은 친절히 그를 맞이하고는 "과인이 애당초 그대의 말을 들었다면 오늘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으련만, 지금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겠으나 그래도 이제 과인이 어찌해야 좋을지 알려줄 수 없겠소?"라고 하자
장신이 느긋이 대답을 했다. "신(臣)이 일찍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토끼를 발견하고 나서 사냥개를 돌아보아도 늦지 않고, 양을 잃은 후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습니다(見兎而顧犬未爲晩也 亡羊而補牢未爲遲也).' 옛날 탕,무(湯,武; 탕 임금과 무왕)가 사방 백 리(百里)되는 작은 땅에서도 나라를 크게 일으켜 천하의 주인이 되었고, 걸,주(桀,紂; 지극히 사치스런 왕)는 자기가 다스리는 땅이 사방천리(千里)의 큰 영토를 가지고도 또한 멸망했습니다. 현재 초나라가 비록 작더라도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기우면(絶長補短) 그래도 사방 수천 리는 되는지라 당연히 탕. 무왕의 백 리에 불과한 땅과 비교하면 굉장히 넓은 것이지요."
이처럼 절장보단(絶長補短)은 사람과 사물에 있어서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면 쓸모 있고,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어떤 사람, 어떤 사물이든지 각기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여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살려나가는 마음의 자세이다.
특히 사람은 젊어서는 힘과 열정이 넘쳐, 모든 일을 감당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 60대 후반이 지나면서부터 힘과 열정이 약해지면서 단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젊고 열정이 충만한 시기에 좀 힘들더라도 60대 후반의 노년기를 대비한 사람은 절장보단이 잘 되어서 노년에 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반면, 그 반대의 상황을 맞은 사람은 후반이 외롭고 또한 괴롭다.
사람들은 권력과 재물을 숭상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획득되면 오히려 오만과 사치와 방탕으로 세상을 살아가려한다. 곧 절장보단을 외면한 처사인 것이다. 오만과 사치와 방탕은 끝이 없고, 하면 할수록 더욱 요구되는 것은 욕망의 극치인 것이다. 지도자는 아부하는 신하만 총애하지 말고, 쓴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省心篇)의 한 구로 갈음하고자 한다.
大廈千間夜臥八尺,
良田萬頃日食二升.
큰(대궐 같은)집이 천 칸이라도 밤에 드러누워 잠자는 공간은 여덟 자(약 240평방)면 눕기에 족하고, 좋은 밭이 있어 만 이랑(약 3000만평)이 있더라도 하루 먹고 사는 양식은 두 되면 된다.
권세와 재물 있는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고 장점을 가지고 단점 보완에 힘쓰기를 기대해 본다.
절장보단(絶長補短)
자신의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한다
국가든 개인이든 장점을 잘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다면 실패가 없으리라. 이것이 절장보단(絶長補短)이다. 絶은 截(절)과 통하므로 截長補短이라고도 쓴다. 단장보단(斷長補短)도 같은 말이다.
'전국책' 중 초책(楚策)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초나라의 충신 장신(莊辛)이 양왕(襄王)에게 주후 하후와 언릉군 수근군은 간신이므로 멀리하라고 간언했다.
양왕이 모함이라며 외면하자 장신은 양왕의 허락하에 잠시 조나라로 피신했다. 그런데 양공은 곧 진(秦)의 침공을 받아 성양산(城陽山)으로 피신한 뒤 장신이 옳았음을 깨닫고 그를 불러 대책을 물었다.
장신은 "옛날에 탕(湯)의 무왕(武王)은 백리 땅에서 나라를 일으켰지만 걸(傑)과 주(紂)는 천하가 너무 넓어 멸망했습니다. 초나라가 비록 작지만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기우면[絶長補短] 수천 리가 되는 땅이라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맹자 등문공장구(藤文公章句) 상편에는 "지금 등나라의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에 보충하면 겨우 50리가 되는 소국이지만 오히려 선정을 펴는 나라가 될 수 있다(今藤 絶長補短 將五十里也 猶可以爲善國)"는 맹자의 말이 나온다.
승정원일기 고종 11년(1874) 5월 9일의 일강(日講) 기록에서도 '절장보단'을 볼 수 있다. 고종이 "우리나라는 지형이 불편해 정전(井田)제도를 행할 수 없는가?"고 묻자
강관 허전(許傳)이 이렇게 답했다. "산천이 험하고 막혀 일일이 정전을 구획할 수 없다 해도 지형에 따라 절장보단하여 계산하면 옛날 100묘(畝)의 수량에 맞추어 백성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하고 10분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지훈의 에세이 '돌의 미학'에는 '역사상의 세력 투쟁에 있어 양 극단이 서로 양보하여 절장보단으로 지양, 종합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는 대목이 있다.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지 마라
나는 왼발 엄지발톱이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 재떨이를 들고 동생과 장난치다 떨어뜨려 다쳐서다. 대포 탄피 밑동을 잘라 만든 재떨이는 무거웠다. 검붉은 피가 솟구쳐 나오더니 발톱이 빠진 자리에 새 발톱이 나오지 않았다. 인젠 익숙해졌는데도 발톱 없는 왼발을 볼 때마다 그날이 떠오른다.
상흔(傷痕)이란 게 그렇다. 잊히질 않는다. 양말 벗고 있을 땐 언제나 왼발 위에 오른발을 올려 감추는 건 그때부터 가진 버릇이다. 해수욕장에서는 왼발 위에 모래를 얹어 감추기도 했다. 날이 추우면 왼발 엄지가 유독 시리다. 아버지는 전란 중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고 왼쪽 발가락도 새끼발가락을 빼곤 모두 잃었다. 그 새끼발가락 발톱이 파고들어 아플 때면 상처를 입던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아버지는 더욱 못 견뎌 했다.
손발톱을 깎던 아버지가 내 손발톱을 깎아줬다. 발톱 없는 왼발 엄지를 한참이나 만져줬다. 그때 뭐라고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다. 몇 년 지나 우리집을 지을 때 똑똑히 알게 됐다. 사연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지시한 대로 하지 않자 공사감독인 대목장과 심하게 언쟁을 벌였다.
앉아있던 아버지가 지팡이를 거꾸로 들어 손잡이로 서 있는 대목장 목을 잡아당겨 고꾸라 뜨렸다. 그리고는 넘어진 이의 발목을 양손으로 잡아 몸을 뒤집어 무릎을 꿇렸다. 놀랄 틈도 주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대목장 지휘 아래 집이 완성되었으니 그날 일은 잘 마무리 지어진 듯했다. 그는 멍든 발목을 만지며 손아귀 힘이 무섭다고 엄살을 떨었다.
궁금증은 그날 밤에 아버지가 풀어줬다. "사람 발톱은 피부에서 돋아나는 부속기관이다. 뼈에서 돋아나는 동물 발톱에 비하면 형편없다. 그러나 발톱은 발가락을 보호하는 방탄복이다. 그 상흔은 오래 간다"라며 "다른 사람은 가졌는데 너는 없으니 단점인 건 분명하다"고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때 쓴 고사성어가 '절장보단(絶長補短)'이었다.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보탠다는 말이다.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등문공상편(滕文公上篇)에 나온다.
아버지는 재활훈련 중에 다리가 없어 부실한 하체를 보강하는 방법으로 상체를 단련했다고 했다. 서서 상대하지 않고 앉아서 서 있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호신술은 꾸준하게 연마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날을 기억하며 "지팡이 속에 예리한 칼을 숨겼으나, 너희들 태어나고부터는 무기를 버리고 나무를 손수 조각하듯 며칠이나 깎아 지팡이를 만드셨다"고 기억했다.
아버지는 "신체는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한쪽이 부실하면 그걸 극복하기 위해 특정한 기능에 치중한 특화된 운동과 방법으로 다른 쪽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신체는 조화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쪽이 부실하면 다른 쪽이 강해져 기능을 대신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절장보단과 다른 말씀을 했다. "장점을 세상 누구보다 더 뛰어나게 강점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단점이나 약점은 묻힌다. 상대가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하면 상대는 약점을 눈치채지 못한다"며 "맹자가 말씀하셨지만, 약점을 강점만큼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살아가며 포기한 약점이나 단점은 그걸 강점이나 장점으로 가진 이를 곁에 두면 된다"고 아버지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살아가며 수포자처럼 약점을 더는 감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가진 강점을 찾아 남들이 넘볼 수 없을 만큼 만드는데 진력했다. 지금까지는 그게 옳았다. 그런 마음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꿰뚫어 보는 분별력을 키워줬다. 손주에게도 물려줘야 할 인성이다. 세심한 관찰과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보스와 참모의 관계학
서로 '절장보단(絶長補短; 장점으로 단점을 보충함)' 해야 큰 뜻을 이룬다
김춘추와 김유신
촉한의 황제 유비는 자신의 수석참모인 제갈량을 두고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고사성어를 유래한 이 말은 보스와 참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물은 물고기 없이는 의미를 실현할 수 없듯이, 보스와 참모는 진정한 한 팀이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러면 어떻게 보스를 선택하고 참모를 선택하는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역사 속의 사례로 살펴본다.
김춘추가 말했다. "저와 공은 임금께서 믿고 아끼는 신하이자 한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제가 사신으로 가서 해를 입는다면 공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김유신이 말했다. "만약 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저의 말발굽이 고구려와 백제의 왕궁을 짓밟아 버릴 것입니다."
642년(선덕여왕 11년) 백제군은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시키면서 성주 김품석과 아내 고타소랑을 죽였다. 고타소랑은 훗날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딸로, 이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백제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나 군사력이 열세였던 신라의 힘만으로는 백제를 상대할 수 없었다. 이에 김춘추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기로 마음 먹었는데, 위의 대화는 그가 고구려로 떠나기 전 처남인 김유신과 나눈 말이다.
당시 고구려와 신라는 적대 관계였기 때문에 사신으로 가는 김춘추의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김춘추는 김유신에게 그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는 동시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춘추는 사신으로 가서 고초를 겪었다. 고구려는 파병의 대가로 신라가 차지한 죽령(竹嶺) 서북쪽 땅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는데, 김춘추가 이를 거절하자 연금시켜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첩보를 입수한 김유신이 1만 병력을 이끌고 남쪽 국경을 들이치니 그제야 고구려는 김춘추를 돌려보냈다.
김춘추와 김유신, 서로 필요했던 존재
이처럼 김춘추와 김유신은 굳건한 연대를 보여주었다. 매제와 처남으로서, 동지로서, 그리고 주군과 신하로서 평생 같은 길을 걸었다.
김유신은 진덕여왕 사후, 신라 귀족의 수장인 알천과 담판을 벌여 김춘추를 왕으로 옹립했고(654년), 김춘추의 칼이자 방패가 되어 삼국 통일전쟁의 최전선을 누볐다.
이러한 그의 충성은 조카인 문무왕에게까지 이어졌는데, 673년 7월 1일 79세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까지 김유신은 신라의 수석 재상이자 총사령관으로서 임금과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
그가 죽기 전 문무왕에게 남긴 유언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역사 속의 임금들을 보면 처음에는 누구나 잘하지만 끝까지 한결같은 이가 드물었습니다. 하여 여러 대에 걸쳐 쌓아 온 빛나는 공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곤 했으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성공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이루어 놓은 것을 지키는 일 또한 어렵다는 것을 유념하시옵소서. 소인배를 멀리하시고 군자를 가까이 하시며 위로는 조정을 화목하게 하시고 아래로는 백성과 만물을 편안케 하시옵소서. 나라의 기반이 무궁하게 된다면 신은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나이다."
실로 임금과 신하가 보여줄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믿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냉혹한 권력의 세계는 끊임없이 이들의 사이를 시험하게 된다. 권력 앞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처럼, 이해타산에 따라 사적인 감정쯤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김춘추와 김유신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상대방에게 호감과 신뢰를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거기에 더해진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최고의 한 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선, 김춘추와 김유신은 서로 필요를 채워주었다. 김춘추는 할아버지 진지왕과 외할아버지 진평왕이 모두 임금으로서 진골 중에서도 빼어난 출신 성분이었다. 다만, 할아버지가 폐위되었기 때문에 왕위 경쟁에 나서는데 핸디캡이 있었다. 따라서 김춘추는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김유신의 경우는 신라에 의해 멸망한 금관가야의 왕족으로서 비록 진골 신분을 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웃 사이더였다. 가야 출신이라는 이유로 멸시와 불이익을 받았던 김유신으로서는 자신의 배경이 되어 줄 권위가 필요했을 것이다.
성골 출신의 진골로서 왕위 계승의 가능성이 있었던 김춘추,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신라 군부의 중심이었던 김유신은 바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파트너였다.
절대적 충성과 파격적 대우
이에 두 사람은 혼인을 매개로 결속을 다진다. 김유신의 여동생인 문희가 김춘추의 아내가 되었고,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뒤인 655년에는 임금의 딸인 지소가 김유신에게 시집을 갔다.
처남과 매제가 사위와 장인이 되고, 조카가 아내가 되는 이상한 관계지만 근친혼이 일상적이었던 당시로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중으로 사돈을 맺고 한 가족이 됨으로써 유대를 강화했을 뿐 아니라 배신을 예방하는 효과도 거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뜻을 같이하고 이해가 일치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신분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면 그 관계는 변할 수밖에 없다. 김춘추가 왕이 되면서, 매제와 처남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두 사람의 사이는 주군과 신하로 달라졌다. 이전과는 다른 예의와 응대 방식이 요구된 것이다.
이것은 특히 김유신이 주의해야 할 부분이었는데, 즉위 과정의 일등공신인데다가 나라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신하는 임금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라 귀족들은 가야계인 김유신을 여전히 의심과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유신으로서는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고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김유신은 나라와 임금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보여준다. 전장에서의 백전불패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을 뿐 아니라, 무열왕(김춘추)과 문무왕을 대를 이어 충실히 보좌했다.
백제 멸망 후 백제의 땅을 나눠주겠다는 당나라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사심 없음을 보였다. 그는 항상 남들이 꺼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에 자원했는데, 일흔 가까운 나이에도 고구려의 영토 깊이 들어가 평양성까지 식량 수송을 책임지는 업무를 맡은 바 있다.
모든 신하들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던 일이었다. 이때 김유신은 "나라의 일이라면 비록 죽는다고 한들 피하지 않겠나이다"며 출정했는데, 모범과 헌신, 대체 불가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위상뿐 아니라 정치적 안정까지 확보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김유신에게 김춘추를 비롯한 왕들도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 김유신은 태대각간(太大角干)이라는 관직에 오르는데, 원래 신라의 최고 관위는 각간(角干)이지만 김유신의 공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그 앞에 대(大)와 태(太)를 붙여 권위와 존귀함을 부여해준 것이다.
심지어 김유신은 흥덕왕 때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된다. 신하로서 왕으로 높여진 우리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요컨대 보스와 참모의 관계에서 서로 필요를 채워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보스로 모시고 또 참모로 곁에 두는 것이다.
그런데 '필요한 사람'이라는 판단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서로의 성장에 맞춰 끊임없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관계가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맹자(孟子) 등문공상(滕文公上)
滕文公上 1章
滕文公爲世子, 將之楚, 過宋而見孟子.
등나라 문공이 세자 시절에 초나라로 가는 길에 송나라를 지나 맹자를 알현했다.
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
맹자는 본성이 선함을 가르쳤다. 말을 하면 반드시 요순을 언급했다.
世子自楚反, 復見孟子.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맹자를 알현했다.
孟子曰: 世子疑吾言乎. 夫道一而已矣.
맹자가 말했다. "세자는 나의 말을 의심합니까? 대체로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成覵謂齊景公曰: 彼丈夫也. 我丈夫也. 吾何畏彼哉.
제나라 용사 성간이 제경공에게 말했습니다. "성현들도 대장부입니다. 저도 대장부입니다. 제 어찌 성현들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顏淵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
안연이 말했습니다. "순임금이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도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역시 순임금 같이 될 수 있다."
公明儀曰: 文王我師也. 周公豈欺我哉 .
공명의가 말했습니다. "주공이 '문왕은 나의 스승이다'고 했습니다. 주공이 어찌 나에게 없는 말을 했겠습니까?
今滕, 絕長補短, 將五十里也. 猶可以爲善國.
지금 등나라는 토지의 긴 곳을 짧은 곳으로 붙여본다면 사방 50리는 됩니다. 어진 정치를 시행한다면 오히려 선한 나라를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書曰; 若藥不瞑眩, 厥疾不瘳.
서경에 말했습니다. '만약 약에 어지러움이 없다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滕文公上 2章
滕定公薨.
등나라 정공이 죽었다.
世子謂然友曰: 昔者孟子嘗與我言於宋, 於心終不忘.
세자가 연우에게 일러 말했다. "지난날 맹자가 일찍이 나와 함께 송나라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마음에 끝내 잊혀지지 않습니다.
今也不幸至於大故, 吾欲使子問於孟子, 然後行事.
지금에야 불행히 큰 변고에 이르러 내 그대를 시켜 맹자에게 묻고 그런 후에 일을 행하고자 합니다."
然友之鄒問於孟子.
연우가 추나라로 가서 맹자에게 물었다.
孟子曰: 不亦善乎. 親喪固所自盡也.
맹자 말했다. "선하도다. 친부모상은 진실로 스스로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曾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증자가 말하기를 "살아서는 예로써 부모를 섬기고, 죽으면 예로써 장례하고 예로써 제사한다면 가히 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諸侯之禮, 吾未之學也 雖然, 吾嘗聞之矣.
제후의 예법은 배우지 않았지만 일찍이 들었습니다.
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共之.
삼년상에 옷의 아랫단을 꿰맨 거친 삼베 상복을 입고 죽과 미음을 먹음은 천자에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삼대가 그렇게 했습니다.
然友反命, 定爲三年之喪.
연우가 돌아와 복명했다. 그러자 세자는 삼년상으로 정했다.
父兄百官皆不欲, 曰: 吾宗國魯先君莫之行, 吾先君亦莫之行也. 至於子之身而反之, 不可.
우리의 종주국인 노나라의 이전 왕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앞 임금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에 와서 그 전통을 돌리려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종친들과 백관들이 모두 이를 받아 들이려 하지 않고 말했다)
且志曰; 喪祭從先祖. 曰, 吾有所受之也.
또 옛 책에 '상례와 제례는 선조가 한 것을 따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원칙을 진작에 우리는 받아들였습니다."
謂然友曰: 吾他日未嘗學問, 好馳馬試劍.
등문공이 연우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예전에 학문을 하지 않고 말 타고 칼 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今也父兄百官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 子爲我問孟子.
그래서 지금 부형과 백관들이 나를 충분하다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부친상에 성의를 다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대는 나를 위해 다시 맹자에게 여쭈어봐 주십시오."
然友復之鄒問孟子. 孟子曰: 然. 不可以他求者也.
연우가 다시 추나라에 가서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예를 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孔子曰: 君薨, 聽於冢宰. 歠粥, 面深墨, 即位而哭,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공자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임금이 죽으면 사람들은 모든 업무를 총재에게 듣게 된다. 세자는 죽을 마시고 얼굴은 짙은 낯빛으로 슬퍼하면서 상주의 자리에서 곡을 하고 있으면 백관과 유사는 감히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솔선했기 때문입니다.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 중에는 반드시 심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尚之風必偃. 是在世子.
군자의 덕은 바람 같습니다. 소인의 덕은 풀 같습니다. 풀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됩니다. 장례의 예법은 세자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然友反命. 世子曰: 然. 是誠在我.
연우가 돌아와 복명했다. 세자가 말하기를 "그렇다. 장례 예법은 진실로 내가 하기에 달려있다."
五月居廬, 未有命戒. 百官族人可謂曰知.
그리고는 5개월 동안 초막에 거처하면서 일체의 업무명령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백관과 종친들이 세자가 예를 안다고 말했다.
及至葬, 四方來觀之, 顏色之戚, 哭泣之哀, 弔者大悅.
장례식에 이르러 사방에서 조문을 와서 세자를 보았는데 안색이 슬프고 곡읍이 애통했다. 그러자 조문객들은 세자를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다.
滕文公上 3章
滕文公問爲國.
등나라 문공이 나라를 위하는 방법을 물었다.
孟子曰: 民事不可緩也.
맹자 대답했다. "백성의 생업은 느긋할 수 없습니다.
詩云; 晝爾于茅, 宵爾索綯, 亟其乘屋, 其始播百穀.
시경에 말하기를, '낮에는 지붕 이을 띠를 베어 오고 밤에는 새끼 꼬아 어서 빨리 지붕에 올라 지붕을 이어라. 새해가 시작되면 바로 백가지 곡식을 파종하세.'
民之爲道也, 有恆產者有恆心. 無恆產者無恆心.
백성이 살아가는 방법에는 일정한 생산이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일정한 생산이 없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선한 마음이 없게 됩니다.
苟無恆心, 放辟邪侈, 無不爲已.
진실로 인간으로서의 항상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사악하고 사치스러워 못하는 짓이 없게 됩니다.
及陷乎罪, 然後從而刑之, 是罔民也.
그래서 죄에 빠지게 되면 그때가 되어서 그 죄에 따라 그 백성을 벌하게 됩니다. 이것은 백성을 함정에 빠뜨려 그물로 잡는 일입니다.
焉有仁人在位, 罔民而可爲也.
어찌 어진 군주의 지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이 가능 하겠습니까?
是故賢君必恭儉禮下, 取於民有制.
이런 이유로 현명한 임금은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고 아래에 예를 갖추고 백성에게 세금을 취할 때에도 제도에 따라 하게 됩니다."
陽虎曰: 爲富不仁矣, 爲仁不富矣.
양호가 말하기를 "부를 취하려 하는 사람은 어질지 않게 되며 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부유하지 않게 된다."
夏后氏五十而貢, 殷人七十而助, 周人百畝而徹, 其實皆什一也.
하나라에서는 한집에 50무의 땅을 주고 공(貢)이라는 5무의 세금을 받았고, 은나라는 각 가구가 70무씩 경작하게 하면서 조(助)라는 세금을 받았습니다. 주나라는 100무를 주고 철(徹)이라는 세법을 시행했습니다. 이 세 가지 세법은 모두 경작량의 10분의 1을 세금으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
徹者, 徹也; 助者, 藉也.
철이라는 것은 세금으로 곡식을 거둔다는 뜻이며 조라는 것은 노동력을 빌려 공전의 농사를 짓게 한다는 뜻입니다.
龍子曰: 治地莫善於助, 莫不善於貢.
용자가 말했습니다. "땅의 세금을 다스리는 것에는 조보다 선한 제도가 없으며 공보다 나쁜 제도가 없다."
貢者校數歲之中以爲常.
공이란 하나라에서 시행한 제도는 여러 해 수확량의 평균을 정해 매년 징수하는 것입니다.
樂歲, 粒米狼戾, 多取之而不爲虐, 則寡取之.
풍년에는 곡식이 널려있어 많이 받아간다고 해도 포학한 것이 되지 않는데 그때도 작게 세금을 받아갑니다.
凶年, 糞其田而不足, 則必取盈焉.
흉년에는 수확량이 밭에 거름하기에도 부족할 정도인데 반드시 정한 양을 받아 채우게 됩니다."
爲民父母, 使民盻盻然, 將終歲勤動, 不得以養其父母, 又稱貸而益之.
왕으로서 백성의 어버이 노릇을 하면서 백성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일년내내 부지런히 일하도록 시켰는데도 그 부모 봉양을 할 수 없고 돈을 빌려 보태어 살아갑니다.
使老稚轉乎溝壑, 惡在其爲民父母也.
노인과 아이가 굶주려 도랑에서 뒹굴도록 내버려둔다면 어찌 그 왕이 백성의 어버이 노릇한다고 하겠습니까?
夫世祿, 滕固行之矣.
벼슬하는 자에게 대대로 녹을 주는 일은 진실로 등나라가 잘하고 있습니다.
詩云; 雨我公田, 遂及我私.
시경에, '우리 공전에 비 내리네. 마침내 우리 사전에도 빗방울이 미치는구나'고 했습니다.
惟助爲有公田. 由此觀之, 雖周亦助也.
오직 조법을 시행하는 경우에만 정전법의 공전이 있고 운영합니다. 이 시를 통해 조세제도를 추측해보면 주나라도 역시 조법을 시행했던 것입니다.
設爲庠序學校以教之.
옛날에는 상과 서, 학과 교를 세우고 운영하여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庠者, 養也.
상이란 사람을 기르는 것을 말합니다.
校者, 教也.
교라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序者, 射也.
서라는 것은 활쏘기의 예법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
하나라는 가르치는 집을 교라고 불렀고, 은나라는 서라고 했고, 주나라는 상이라고 했습니다.
學則三代共之, 皆所以明人倫也.
학은 하, 은, 주 세 나라에 모두 있었습니다. 모두 그 곳을 통해 인륜을 밝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人倫明於上, 小民親於下.
인륜이 위에서 밝다면 반드시 아래 백성들은 반목하지 않고 친하게 됩니다.
有王者起, 必來取法. 是爲王者師也.
그렇게 되면 새로운 왕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찾아와서 배우고 그것을 법으로 삼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왕들의 스승이 되는 셈입니다.
詩云; 周雖舊邦, 其命維新.
시경에 '주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만은 새롭구나'고 했습니다.
文王之謂也.
이는 문왕 이전에도 주나라의 역사가 유구하지만 문왕대에 나라가 새로워졌다는 말입니다.
子力行之, 亦以新子之國.
등문공께서도 이런 일들을 힘써 행하시면 역시 등나라를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使畢戰問井地.
등문공이 신하 필전을 시켜 정전법에 대해 묻도록 했다.
孟子曰: 子之君將行仁政, 選擇而使子, 子必勉之.
맹자 대답했다. "그대의 임금이 장차 어진 정치를 행하려고 그대를 시켜 묻도록 했습니다. 그대는 반드시 힘을 써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夫仁政, 必自經界始.
대체로 어진 정치는 반드시 토지 경계를 잘 나누는데서 시작합니다.
經界不正, 井地不鈞, 穀祿不平.
토지 구획이 바르지 않으면 정전법의 토지가 고르지 않게 되고 곡식과 녹봉이 공평하지 않게 됩니다.
是故暴君汙吏必慢其經界.
이런 이유로 폭군과 탐관오리는 반드시 그 토지 경계를 다스리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經界既正, 分田制祿可坐而定也.
경계가 바르면 밭을 나누어주고 녹봉을 제정해 주는 일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다 정해집니다.
夫滕壤地褊小, 將爲君子焉, 將爲野人焉.
대체로 등나라 영토는 좁고 작지만 그 속에서 군자 노릇도 있어야 하고 야인 노릇도 있어야 합니다.
無君子莫治野人, 無野人莫養君子.
군자가 없으면 야인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야인이 없으면 군자를 먹여 살릴 수가 없습니다.
請野九一而助, 國中什一使自賦.
부디 들에는 조법을 사용하여 9분의 일을 세금으로 내게 하고, 성안에는 10분의 일을 세금으로 내도록 하십시오.
卿以下必有圭田, 圭田五十畝. 餘夫二十五畝.
경대부 이하 관리에게는 반드시 규전을 주어야 합니다. 규전은 50무입니다. 부양가족이 없는 남자에게도 25무를 주어야 합니다.
死徙無出鄉, 鄉田同井, 出入相友, 守望相助, 疾病相扶持, 則百姓親睦.
죽거나 이사해 고향을 벗어나지 않으면 고을 밭 정전을 경작하기 위해 함께 출입하고 서로 벗하고 함께 지키고 망보고 서로 도우며 병이 들면 서로 보살피게 되므로 백성들은 서로 친하고 화목하게 됩니다.
方里而井, 井九百畝, 其中爲公田.
사방 1리로써 땅을 우물정자 모양으로 아홉 구획으로 나누는데 정은 전체 900무 이고 그 중앙은 공동경작지로 합니다.
八家皆私百畝, 同養公田.
여덟 가구 모두 각각 100무씩 개인 밭을 경작하면서 공전을 함께 경작합니다.
公事畢, 然後敢治私事, 所以別野人也.
공전 농사를 마치면 그 후에 비로소 개인 토지의 농사를 짓습니다. 이는 군자를 야인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此其大略也. 若夫潤澤之, 則在君與子矣.
이것이 정전법의 대략입니다. 만약 그 제도를 윤택하게 하려하면 그것은 임금과 그대에게 달려 있습니다."
滕文公上 4章
有爲神農之言者許行.
신농씨의 말을 하는 사람 허행이 있었다.
自楚之滕, 踵門而告文公曰: 遠方之人聞君行仁政, 願受一廛而爲氓.
초나라로부터 등나라로 와서는 궁문에서 문공에게 아뢰어 말했다. "먼 곳의 사람이 등나라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한다고 듣고 왔습니다. 땅을 얻어 백성노릇을 하고 싶습니다."
文公與之處. 其徒數十人, 皆衣褐, 捆屨織席以爲食.
이에 등문공이 그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 무리가 수십이었는데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직접 신발을 삼고, 자리를 짜서 생계를 이었다.
陳良之徒陳相與其弟辛, 負耒耜而自宋之滕, 曰: 聞君行聖人之政, 是亦聖人也, 願爲聖人氓.
진량의 제자인 진상과 그 아우 신이 농기구를 메고 머물던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들어와 말했다. "임금께서 성인의 정치를 행한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임금께서는 성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들은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陳相見許行而大悅.
진상이 허행을 만나고는 매우 기뻐했다.
盡棄其學而學焉.
그들이 배운 유학을 모두 버리고 허행의 가르침을 배웠다.
陳相見孟子.
진상이 맹자를 만났다.
道許行之言曰: 滕君, 則誠賢君也. 雖然, 未聞道也. 賢者與民並耕而食, 饔飧而治. 今也滕有倉廩府庫. 則是厲民而以自養也, 惡得賢.
허행의 주장을 설파하려 말했다. "등나라 임금은 진실로 현명한 군주입니다. 그러나 그는 도를 듣지 못했습니다. 현자는 백성과 나란히 밭갈고 아침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다스려야 합니다. 지금에야 등나라에 곡식창고와 재물 창고가 있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갈취한 것인데 이것으로 자신이 봉양받고 있으니 어찌 어질 수 있겠습니까?"
孟子曰: 許子必種粟而後食乎.
맹자가 물었다. "허자는 반드시 곡식을 직접 파종하고 그 후에 음식을 먹나요?"
曰: 然.
진상(陳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許子必織布而後衣乎.
맹자가 물었다. "허자는 반드시 베를 직접 짠 이후에 옷을 입습니까?"
曰: 否. 許子衣褐.
진상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나 거친 베옷을 입습니다."
許子冠乎.
맹자가 물었다. "허자는 관을 쓰나요?"
曰: 冠.
진상이 말했다. "관을 합니다."
曰: 奚冠.
맹자가 물었다. "어떤 관인가요?"
曰: 冠素.
진상이 말했다. "그냥 흰 관입니다."
曰: 自織之與.
맹자가 물었다. "스스로 그 관을 짜나요?"
曰: 否. 以粟易之.
진상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곡식으로 그 관을 바꿉니다."
曰: 許子奚爲不自織.
맹자가 물었다. "허자는 왜 스스로 관을 짜지 않습니까?"
曰: 害於耕.
진상이 대답했다. "농사일에 방해가 되어 그렇습니다."
曰: 許子以釜甑爨. 以鐵耕乎.
맹자가 물었다. "허자는 솥과 시루로 밥을 짓습니까? 철제 농기구로 밭을 갑니까?"
曰: 然.
진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自爲之與.
맹자가 물었다. "직접 그 솥과 농기구를 만듭니까?
曰: 否. 以粟易之。
진상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농사지은 곡식으로 그것들을 바꿉니다."
以粟易械器者, 不爲厲陶冶.
맹자가 말했다. "곡식을 주고 농기구와 솥, 시루를 바꾸어와 사용하는 것이 옹기장이와 대장장이를 착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陶冶亦以其械器易粟者, 豈爲厲農夫哉.
옹기장이와 대장장이 역시 그들이 만든 그릇과 기구를 주고 곡식을 바꾸어 가는 것이 어찌 농부를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겠습니까?
且許子何不爲陶冶, 舍皆取諸其宮中而用之.
허행은 왜 옹기장이와 대장장이 일은 직접 하지 않고 버려놓고는 그 집안에서 그런 기구와 그릇을 모두 취해 사용하는 것입니까?
何爲紛紛然與百工交易, 何許子之不憚煩.
왜 직접 만들지 않고 바삐 백공들과 교역하면서 그 번거로움을 싫어하지 않는 것인가요?"
曰: 百工之事, 固不可耕且爲也.
진상이 대답했다. "백공의 일은 진실로 밭을 갈면서 동시에 해내기는 불가능 합니다."
然則治天下獨可耕且爲與.
맹자 말했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 홀로 밭을 갈면서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것입니까?"
有大人之事, 有小人之事.
맹자가 말했다. "대인의 일이 따로 있고 소인의 일이 따로 있습니다.
且一人之身, 而百工之所爲備.
또 한사람의 몸에는 백공의 일을 할 수 있는 소질이 다 갖추어져 있기도 합니다.
如必自爲而後用之, 是率天下而路也.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스스로 농사짓고 스스로 만들고 난 이후에만 그것을 이용하도록 한다면 이는 천하의 백성을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故曰;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고생하고, 어떤 사람은 힘으로 고생하는데, 마음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힘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다스림을 당한다고 합니다.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
다른 사람에게 다스림을 당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얻어먹게 되는 것이 천하 공통의 옳은 의리입니다."
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맹자 말했다. "요임금 때는 천하가 고르게 평정되지 못해 홍수가 멋대로 흘러 천하에 범람했습니다.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
초목이 가득 우거지고 금수가 번식해 오곡이 익지 못하고 금수가 사람을 위협했습니다. 짐승 발자국과 새발자국의 길만이 온 땅에 교차로 이어졌습니다.
堯獨憂之, 舉舜而敷治焉. 舜使益掌火, 益烈山澤而焚之, 禽獸逃匿.
요임금 홀로 이런 일을 염려해 순임금을 천거해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순임금은 신하 익에게 불을 장악하게 해 익은 산과 연못에 불을 질러 태우니 금수가 도망가 숨게 되었습니다.
禹疏九河, 瀹濟漯, 而注諸海 決汝漢, 排淮泗, 而注之江. 然後中國可得而食也.
우임금이 구하를 소통시키고 제수와 탑수의 물길을 터서 바다로 흐르도록 했고, 여수와 한수의 둑을 터고 회수와 사수는 양자강으로 물을 빼냈습니다. 그 이후 중국은 가히 땅을 얻고 곡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當是時也, 禹八年於外, 三過其門而不入. 雖欲耕, 得乎.
이때 우임금은 밖에서 8년을 지내면서 세 번 자기 집 앞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밭을 직접 경작하고자 해도 어찌 할 수 있었겠습니까?
后稷教民稼穡. 樹藝五穀, 五穀熟而民人育.
후직이 백성에게 곡식을 심고 추수하는 일을 가르쳤습니다. 오곡을 심고 기르니 오곡이 익어 백성들이 길러졌습니다.
人之有道也, 飽食煖衣逸居而無教, 則近於禽獸.
사람의 도가 있는데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히 거처하면서 가르침이 없다면 곧 금수와 비슷해집니다.
聖人有憂之, 使契爲司徒, 教以人倫.
성인이 이를 염려해 설을 사도로 삼아 인륜을 가르쳤습니다.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부자는 친해야 하며, 군신은 의리가 있어야 하고, 부부는 차별이 있어야 하고, 늙고 어린 사람에게는 순서가 있어야 하고, 벗에게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放勳曰: 勞之來之, 匡之直之, 輔之翼之, 使自得之, 又從而振德之.
요임금이 말했습니다. '수고로운 자는 위로하고, 찾아오려는 사람은 오게 하고, 사악한 사람은 바로잡고, 굽은 자는 곧게 해 그들을 도와주고 보조해주어 스스로 그 좋은 본성을 얻게 하라. 이에 따라서 백성을 구제하고 은혜를 베풀어라.'
聖人之憂民如此, 而暇耕乎.
성인의 백성을 염려함이 이와 같을 정도인데 어찌 한가히 밭갈고 있겠습니까?
堯以不得舜爲己憂, 舜以不得禹, 皋陶爲己憂.
요임금은 순임금을 얻지 못할까 근심했고, 순임금은 우임금과 고요를 얻지 못할까 근심했습니다.
夫以百畝之不易爲己憂者, 農夫也.
대체로 자신의 100무의 땅을 잘 관리하지 못할까 근심하는 사람은 농부입니다.
分人以財謂之惠, 教人以善謂之忠, 爲天下得人者謂之仁.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은혜라고 하고 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일을 충이라 합니다. 천하를 위해 사람을 구하려는 노력을 인이라고 합니다.
是故以天下與人易, 爲天下得人難.
이런 이유로 천하를 남에게 주는 일은 쉽지만 천하를 위해 인재를 얻는 것은 어렵습니다.
孔子曰; 大哉堯之爲君. 惟天爲大, 惟堯則之, 蕩蕩乎民無能名焉. 君哉舜也. 巍巍乎有天下而不與焉.
공자 말씀하셨습니다. '크도다 요임금의 임금 노릇이여, 오직 하늘이 큰데 요임금이 하늘을 본받았네. 넓고 아득해 백성들은 능히 그 덕을 무어라 말할 수도 없도다. 임금답도다 순임금이여. 높고 우뚝하게 천하를 소유하고도 관여하지 않았네.'
堯舜之治天下, 豈無所用其心哉. 亦不用於耕耳.
요임금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에 어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직접 밭가는 일에 그 마음을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吾聞用夏變夷者, 未聞變於夷者也.
나는 하나라의 문화로 오랑캐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었지만 오랑캐에 의해 중국의 문화가 변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陳良, 楚產也. 悅周公仲尼之道, 北學於中國. 北方之學者, 未能或之先也. 彼所謂豪傑之士也.
진량은 초나라 태생입니다. 그는 주공과 공자의 도를 좋아해 중국에서 그 도를 배웠는데 북쪽의 학자 누구도 그를 능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호걸의 선비라 하는 것입니다.
子之兄弟事之數十年, 師死而遂倍之.
그대 진상의 형제가 진량을 섬기기를 수십 년 했는데 스승이 돌아가시자 마침내 스승을 배신했습니다.
昔者孔子沒, 三年之外, 門人治任將歸. 入揖於子貢, 相向而哭, 皆失聲. 然後歸.
옛날 공자님께서 돌아가시고 삼년상을 지낸 후 문인들은 보따리를 꾸미고 각자 돌아가려 했습니다. 자공에게 읍하고 서로 마주보며 곡을 하는데 너무 울어 목이 쉬었습니다. 그 연후에 돌아갔습니다.
子貢反, 築室於場, 獨居三年, 然後歸.
자공은 모두들 돌아간 이후 마당에 집을 짓고 홀로 삼년을 더 머물렀다 돌아갔습니다.
他日, 子夏子張子游以有若似聖人, 欲以所事孔子事之. 彊曾子.
다른 날 자하와 자장, 자유가 유약이 공자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공자를 섬기듯이 그를 섬기자고 했습니다. 증자에게 이를 강권했습니다.
曾子曰: 不可.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尚已.
증자가 말했습니다. '불가합니다. 스승님의 덕은 양자강 물과 한강 물로 씻고 가을 햇볕으로 말린 것처럼 밝고 환하기 때문에 그 위에 무엇을 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今也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 子倍子之師而學之, 亦異於曾子矣.
지금 남만의 때까치 소리하는 허행이라는 사람은 선왕의 도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대는 그대의 스승 진량을 배반하고 허행을 배우니 역시 증자가 행한 바와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吾聞出於幽谷遷于喬木者, 未聞下喬木而入於幽谷者.
나는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간다는 말은 들었으나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魯頌曰; 戎狄是膺, 荊舒是懲.
시경 노송에서 말하기를, '융과 적을 치니 형과 서도 징계가 되었다.'
周公方且膺之, 子是之學, 亦爲不善變矣.
이처럼 주공도 드디어 이적을 쳤는데 그대는 이 이적을 배우니 역시 선하지 않은 쪽으로 변화 한 것입니다.
從許子之道, 則市賈不貳, 國中無僞. 雖使五尺之童適市, 莫之或欺.
진상(陣相)이 말했다. '허행 선생님의 도를 따르면 시장의 물건 가격이 하나로 통일되어 나라안에 거짓이 없게 됩니다. 비록 5척의 동자에게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오게 해도 누구도 그 아이를 속이지 않게 됩니다.'
布帛長短同, 則賈相若; 麻縷絲絮輕重同, 則賈相若; 五穀多寡同, 則賈相若. 屨大小同, 則賈相若.
천의 길이가 같다면 가격이 모두 같고, 삼실과 고치솜의 무게가 같다면 가격이 같고, 오곡의 양이 같다면 그 가격이 같습니다. 신발의 크기가 같다면 그 값도 같게 됩니다."
曰: 夫物之不齊, 物之情也. 或相倍蓰, 或相什伯, 或相千萬.
맹자 말하기를, "물건이 균일하지 않은 것은 물건 그 자체의 본성입니다. 물건이 비슷해도 가치가 배나 다섯배가 될 수가 있고 간혹 10배 100배, 또는 천배 만배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子比而同之, 是亂天下也. 巨屨小屨同賈, 人豈爲之哉.
그대가 이런 것을 나란히 놓고는 가격을 동일하도록 한다면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일입니다. 큰 신과 작은 신의 가격이 같다면 사람들이 어찌 큰 신을 만들겠습니까?
從許子之道, 相率而爲僞者也, 惡能治國家.
허행의 도를 따르게 되면 서로 서로 이끌면서 거짓을 행하게 될 것인데 어찌 그런 도로 능히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滕文公上 5章
墨者夷之, 因徐辟而求見孟子.
묵자를 추종하는 단체원 이지가 서벽에게 부탁해 맹자를 알현하려 했다.
孟子曰: "吾固願見. 今吾尚病, 病愈, 我且往見, 夷子不來.
맹자가 말했다. "나는 진실로 만나 보고 싶었소. 지금 나의 병이 있어 병이 나으면 가서 보려고 하니 이자는 오지 마시오."
他日又求見孟子.
다른 날 또 이지가 맹자를 만나 뵙기를 부탁했다.
孟子曰: 吾今則可以見矣. 不直, 則道不見, 我且直之.
맹자 말하기를, "지금은 만나 볼 수 있겠소. 숨김없이 곧게 하지 않으면 도는 나타나지 않기에 나 솔직히 말하겠소.
吾聞夷子墨者. 墨之治喪也, 以薄爲其道也.
나는 이자는 묵자를 신봉하는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묵가에서 상을 처리하는 법은 박장을 그 도로 합니다.
夷子思以易天下. 豈以爲非是而不貴也.
이자는 그런 도로써 천하를 바꾸려 생각하겠지요. 어찌 그런 생각을 옳지 않다고 여기고 귀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然而夷子葬其親厚. 則是以所賤事親也.
그런데 이자는 그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후하게 장사를 지냈소. 즉 이는 묵가에서 천하게 여기는 바인데 자신의 어버이 섬기는 일에는 그렇게 한 것이오."
徐子以告夷子. 夷子曰; 儒者之道, 古之人若保赤子. 此言何謂也.
서자 그 말을 이자에게 전했다. 이자 말하기를, '유가의 도에 옛사람이 갓난아이 보호하는 듯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무슨 뜻이오?
之則以爲愛無差等, 施由親始.
저는 사랑에 차등이 없다고 여깁니다만 사랑은 어버이가 자식에게 베푸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오.
徐子以告孟子.
맹자 제자 서벽이 이지의 말을 맹자에게 고했다.
孟子曰: 夫夷子, 信以爲人之親其兄之子, 爲若親其鄰之赤子乎. 彼有取爾也.
맹자 말하기를, "저 이자는 사람들이 형의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구나. 백성을 갓난 아이처럼 대하라는 말은 이런 뜻을 취함이 있는 것이다.
赤子匍匐將入井, 非赤子之罪也.
갓난아이가 기어 우물에 들어가려 하는 것은 갓난아이의 죄일 수가 없다.
且天之生物也, 使之一本, 而夷子二本故也.
또 하늘이 사물을 만들 때에 그 원칙은 하나의 근본인데 이자는 그 기준을 둘로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蓋上世嘗有不葬其親者, 其親死, 則舉而委之於壑.
생각하건대 옛날 일찍이 그 부모를 장사지내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부모가 죽자 도랑에 버렸다.
他日過之, 狐狸食之, 蠅蚋姑嘬之.
다른 날 그곳을 지나다 보니 여우와 삵이 부모의 시신을 파먹고 파리떼가 빨아먹고 있었다.
其顙有泚, 睨而不視.
그 사람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었다.
夫泚也, 非爲人泚, 中心達於面目.
그 땀 흘림은 사람들 보라고 흘린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얼굴로 나타나 그런 것이다.
蓋歸反虆梩而掩之.
그래서 돌아와 삼태기를 가져다 뒤집어 그 시신을 덮어 주었다.
掩之誠是也, 則孝子仁人之掩其親, 亦必有道矣.
그 부모의 시신을 가린 것이 진실로 옳다면 효자와 어진 사람이 그 어버이를 가리는 것에도 반드시 도가 있는 것이다.
徐子以告夷子. 夷子憮然爲閒曰: 命之矣.
서벽이 이 말을 이지에게 알렸다. 이지가 멍하게 뜸을 들이고 있다가 말했다. "저를 가르치시군요."
(終)
▶️ 絶(끊을 절)은 ❶회의문자로 绝(절)은 간자(簡字), 撧(절)과 絕(절)은 동자(同字)이다. 실 사(糸; 실타래)部와 卵의 오른쪽 부분, 刀(도; 날붙이, 자르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실이 끊어지다, 실을 끊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絶자는 '끊다'나 '단절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絶자는 糸(가는 실 사)자와 色(빛 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糸자와 色자의 조합만으론 '끊다'라는 뜻을 유추하기 어렵다. 그러나 絶자의 갑골문을 보면 본래는 絲(실 사)자 사이에 여러 개의 칼이 그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문에서도 위아래로 잘린 실과 刀(칼 도)자가 그려져 있어서 역시 칼로 실을 잘랐다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소전에서는 刀자가 色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絶(절)은 ①끊다 ②단절하다, 숨이 끊어지다, 죽다 ③다하다, 끝나다 ④막히다, 막다르다 ⑤뛰어나다, 비할 데 없다 ⑥건너다 ⑦기발하다, 색다르다 ⑧으뜸 ⑨매우, 몹시 ⑩심히, 극히 ⑪결코 ⑫절구(시의 한 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끊을 절(切), 끊을 초(剿), 끊을 절(截), 끊을 단(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이을 사(嗣), 이을 소(紹), 이을 계(繼)이다. 용례로는 상대하여 견줄 만한 다른 것이 없음을 절대(絶對),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체념함을 절망(絶望), 힘을 다하여 부르짖음을 절규(絶叫), 이것과 견줄 만한 이 뒤에는 다시없음을 절후(絶後), 더할 수 없이 훌륭한 경치를 절경(絶景), 멀리 떨어져 있는 땅을 절경(絶境), 산의 맨 꼭대기를 절정(絶頂), 아주 기묘함을 절묘(絶妙), 병 등으로 음식을 끊음을 절곡(絶穀), 더할 수 없이 좋음을 절호(絶好), 세상과 교제를 끊음을 절세(絶世), 먹을 것이 끊어져 없음을 절식(絶食), 출판하여 낸 책이 다 팔리어 없음을 절판(絶版), 매우 두드러지게 뛰어남을 절륜(絶倫), 기절하여 넘어짐을 절도(絶倒), 다시 생환할 수 없게 아주 뿌리째 끊어 없애 버림을 근절(根絶), 남의 제의나 요구 따위를 응낙하지 않고 물리침을 거절(拒絶), 참혹하리 만큼 구슬픔을 처절(悽絶), 막히고 끊어짐을 두절(杜絶), 유대나 연관 관계 등을 끊음을 단절(斷絶), 어떤 일 특히 임신을 인공적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함을 중절(中絶), 빼어나게 아름다움이나 매우 좋음을 가절(佳絶), 정신이 아찔하여 까무러침을 혼절(昏絶), 정신을 잃음을 기절(氣絶),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는 뜻으로 좋은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함을 이르는 말을 절장보단(絶長補短), 이 세상에서는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을 절세대미(絶世代美), 세상에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을 절세가인(絶世佳人), 배를 안고 넘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우스워서 배를 안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웃음을 일컫는 말을 봉복절도(捧腹絶倒), 궁지에 몰려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를 일컫는 말을 절체절명(絶體絶命) 등에 쓰인다.
▶️ 長(길 장/어른 장)은 ❶상형문자로 仧(장),兏(장)은 동자(同字), 长(장)은 약자(略字)이다. 長(장)은 머리털이 긴 노인이 단장을 짚고 서 있는 모양으로, 나중에 노인이 전(轉)하여 나이가 위인 사람으로 관리(官吏)의 長(장), 또한 성장하다, 길게 자라다, 길다 따위의 뜻에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長자는 '길다'나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長자는 머리칼이 긴 노인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길다’였다. 長자는 백발이 휘날리는 노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후에 '어른', '우두머리'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長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張(베풀 장)자나 帳(휘장 장)자에 長자가 쓰이기는 했지만, 長자가 부수로 지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長(장)은 (1)어떤 조직체(組織體)나 또는 부서 단위의 우두머리(책임자) (2)긴 기다란의 뜻을 나타내는 말 (3)오랜의 뜻을 나타내는 말 (4)길이 (5)늘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다 ②낫다 ③나아가다 ④자라다 ⑤맏 ⑥어른 ⑦길이 ⑧우두머리 ⑨처음 ⑩늘 ⑪항상(恒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랠 구(久),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릴 유(幼), 짧을 단(短), 늙을 노/로(老)이다. 용례로는 좋은 점을 장점(長點), 긴 것과 짧은 것을 장단(長短), 목숨이 긺을 장수(長壽), 맏 아들을 장남(長男), 한 관청의 으뜸 벼슬을 장관(長官), 오랜 기간을 장기(長期), 장편으로 된 노래를 장가(長歌), 길게 내는 소리를 장음(長音), 어른과 어린이를 장유(長幼), 나이가 많고 덕이 많은 사람의 존칭을 장로(長老), 통나무를 길쭉하게 잘라서 쪼갠 땔나무를 장작(長斫),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을 장고(長考), 아주 능한 재주를 장기(長技), 생물이 자라서 점점 커짐을 성장(成長), 모임을 대표하는 사람을 회장(會長), 집안의 어른을 가장(家長), 도와서 자라나게 한다는 조장(助長), 시간이나 물건의 길이 따위를 처음에 정한 것보다 늘이어 길게 함을 연장(延長), 위에 서서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 통솔하는 사람을 수장(首長), 특별히 뛰어난 장점을 특장(特長), 오륜의 하나로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유유서(長幼有序), 길다란 목에 까마귀 부리 같이 뾰족한 입이라는 뜻으로 관상에서 목이 길고 입이 뾰족한 상을 이르는 말을 장경오훼(長頸烏喙), 오래 서서 분부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권문세가에 빌붙어 이익을 얻고자하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장립대명(長立待命), 긴 눈과 날아다니는 귀라는 뜻으로 옛일이나 먼 곳의 일을 앉은 채로 보고들을 수 있는 눈이나 귀 곧 서적을 이름 또는 사물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널리 정보를 모아 잘 알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목비이(長目飛耳), 길고 짧음은 상대적 관계에서 비교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단상교(長短相較), 멀리 불어 가는 대풍을 타고 끝없는 바다 저쪽으로 배를 달린다는 뜻으로 대업을 이룬다는 말을 장풍파랑(長風波浪),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조건이 좋은 사람이 유리함을 일컫는 말을 장수선무(長袖善舞), 날이 새도 창을 가리고 불을 켜놓은 채 며칠이고 계속하는 술자리를 일컫는 말을 장야지음(長夜之飮), 길고도 긴 봄날을 일컫는 말을 장장춘일(長長春日), 사업의 오랜 계속을 도모하는 계획을 일컫는 말을 장구지계(長久之計), 길게 뻗친 숲의 깊은 곳을 일컫는 말을 장림심처(長林深處), 오랫동안 살아 죽지 아니함을 일컫는 말을 장생불사(長生不死), 늘 길거리에 모여 있으면서 뜬 벌이를 하는 막벌이꾼을 일컫는 말을 장석친구(長席親舊),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함을 일컥는 말을 장와불기(長臥不起), 먼 장래의 계책이라는 말을 장원지계(長遠之計), 긴 줄로 해를 붙들어 맨다는 뜻으로 시간의 흐름을 매어 멈추게 하려는 것 즉 불가능한 일을 이르는 말을 장승계일(長繩繫日), 장자의 일만 개의 등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부자가 신불에게 일만 개의 등을 올리는 반면에 가난한 여인은 단 하나의 등을 바치지만 그 참뜻만 있으면 가난한 여인의 한 등이 장자의 만등에 못지 않다는 말을 장자만등(長者萬燈), 부자는 3대까지 가기 어렵다는 말 곧 아버지가 고생해서 재산을 만들고 그것을 보고 자란 아들인 2대는 그것을 잘 지키지만 3대인 손자는 생활이 사치하여 마침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룩한 가산을 탕진하는 예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장자삼대(長者三代), 긴 베개와 큰 이불이라는 뜻으로 긴 베개와 큰 이불은 함께 누워자기에 편하므로 형제 간에 우애가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장침대금(長枕大衾) 등에 쓰인다.
▶️ 補(기울 보/도울 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옷의변(衤=衣; 옷)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甫(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甫(보)는 모종의 뿌리를 둘러 싼 모양, 衣(의)는 옷의 뜻으로, 옷이 해진 곳을 깁다, 모자라는 것을 보태는 일, 또한 돕다, 관직(官職)에 임명함에도 쓴다. ❷형성문자로 補자는 '깁다'나 '돕다', '고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補자는 衣(옷 의)자와 甫(클 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甫자는 밭에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補자는 본래 옷의 해지거나 떨어진 부분을 꿰맨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니 補자에서 말하는 '깁다'나 '고치다'는 것은 옷의 잘못된 부분을 수선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補자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보태다'나 '채우다', '고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補(보)는 (1)곤룡포(袞龍袍)의 양어깨와 앞뒤에 다는 네 개의 수놓은 물건 (2)관직에 임명함 등의 뜻으로 ①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을 꿰매다) ②돕다 ③꾸미다 ④고치다, 개선하다 ⑤보태다 ⑥맡기다 ⑦채우다 ⑧보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울 즙(葺), 기울 납(衲), 기울 선(繕)이다. 용례로는 보충하여 온전하게 함을 보완(補完), 남에게 끼친 손해를 갚는 것을 보상(補償), 부족한 것을 메워 보충함을 보전(補塡), 보충하여 돕는 것을 보조(補助), 모자람을 보태어 채움을 보충(補充),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도움을 보좌(補佐), 모자라는 인원을 채우려고 뽑음을 보선(補選), 모자라거나 떨어진 물자를 대어 줌을 보급(補給), 보태고 채워서 더 튼튼하게 함을 보강(補强), 낡은 것을 보충하여 수선함을 보수(補修), 모자람을 보태고 잘못을 바로잡음을 보정(補正), 어떤 직무의 담당을 명하는 것을 보직(補職), 빈 자리를 채움을 보결(補缺), 다른 직책을 본직 이외에 겸하여 보임함을 겸보(兼補), 어떤 지위나 신분에 오르기를 바람 또는 그 사람을 후보(候補), 글의 충실하지 못한 데를 더 보태고 기워서 채워 넣음을 증보(增補), 제 자리에 있는 것으로 제 자리를 때운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는 공것이나 또는 거저 생기는 이득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이공보공(以空補空), 이바지하여 돕고 부족함을 보태어 준다는 말을 기여보비(寄與補裨),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아 고치게 한다는 말을 보과습유(補過拾遺), 장점을 발전시키고 단점을 보완한다는 말을 조장보단(助長補短), 서투른 것을 보충하는 데에는 부지런함이 으뜸이라는 말을 근장보졸(勤將補拙), 얻은 것으로는 그 잃은 것을 메워 채우지 못한다는 말을 득불보실(得不補失) 등에 쓰인다.
▶️ 短(짧을 단)은 ❶회의문자로 예전에 짧은 것들의 치수를 잴 때에 화살(矢)과 콩(豆)으로 쟀다는 데서 '짧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短자는 '짧다'나 '가깝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短자는 矢(화살 시)자와 豆(콩 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短자는 '투호'라 불리는 화살 던지기 놀이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투호는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시작된 놀이로 화살을 손으로 던져 통에 넣는 놀이였기 때문에 短자에 쓰인 豆자는 투호 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투호 놀이로 화살을 던지는 것은 활로 쏘는 것보다 사정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短자는 '짧다'나 '가깝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短(단)은 화투놀이에서 띠를 석 장씩 갖추어 끗수를 더 얻을 수 있는 약(約) 곧 '청단, 홍단, 초단' 같은 것으로 ①짧다 ②키가 작다 ③가깝다 ④숨이 가쁘다(숨이 몹시 차다) ⑤오래되지 않다 ⑥적다, 부족하다 ⑦짧게 하다 ⑧뒤떨어지다 ⑨어리석다, 천박(淺薄)하다 ⑩헐뜯다 ⑪모자라다 ⑫흉보다 ⑬허물, 결점(缺點) ⑭요절(夭折; 젊은 나이에 죽음) ⑮짧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난쟁이 왜(矮),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늘일 연(挻), 길 장(長)이다. 용례로는 짧게 줄임을 단축(短縮), 짧은 기간을 단기(短期), 낮고 모자라는 점을 단점(短點), 짧은 시문이나 짤막하게 끝을 낸 글 또는 짤막한 영화를 단편(短篇), 일찍 부러짐으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단절(短折), 목숨이 짧음을 단명(短命), 짧은 칼을 단검(短劍), 짧은 칼을 단도(短刀), 좁은 소견으로 자기의 의견 또는 식견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을 단견(短見), 부족한 점이나 못한 점 또는 나쁜 점을 단처(短處), 글 아는 것이 넉넉하지 못함 또는 짧은 글을 단문(短文), 짧게 나는 소리로 짧은 소리를 단음(短音), 짧은 머리털을 단발(短髮), 짧고 작음으로 키가 작고 몸이 작음을 단소(短小),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천박함을 단천(短淺), 소견이 짧음 또는 짧은 생각을 단려(短慮), 긴 것과 짧은 것을 장단(長短), 오래 삶과 일찍 죽음을 수단(壽短), 가장 짧음을 최단(最短), 낮고 짧음을 저단(低短), 식견 등이 얕고 짧음을 천단(淺短), 남의 약점을 들어서 헐뜯어 말함을 훼단(毁短), 숨쉬는 사이가 짧음을 기단(氣短), 타고난 능력이 부족함을 재단(材短), 작은 것이 정밀하고 세차다는 뜻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다부지고 강한 면모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단소정한(短小精悍), 떨어지고 빠지고 하여서 완전하지 못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단편잔간(短篇殘簡), 사람이 빈궁해지면 웅지를 품지 못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지단(人窮志短), 긴 것이나 짧은 것이나 다 함께 사용함을 일컫는 말을 용장용단(用長用短), 긴 것은 자르고 짧은 것은 메워서 들쭉날쭉한 것을 곧게 함을 이르는 말을 단장보단(斷長補短), 긴 것을 잘라서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는 뜻으로 좋은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함을 이르는 말을 절장보단(絶長補短), 남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언장단(不言長短),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장일단(一長一短), 남의 장점으로 나의 단점을 고침을 일컫는 말을 이장보단(以長補短), 길고 짧음은 상대적 관계에서 비교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단상교(長短相較), 장단을 가려서 격식에 맞춘다는 뜻으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점은 취한다는 말을 사단취장(捨短取長), 자기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 동시에 남의 잘못을 욕하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을 망담피단(罔談彼短), 머리털은 빠져서 짧으나 마음은 길다는 뜻으로 몸은 늙었으나 일 처리는 잘한다는 말을 발단심장(髮短心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