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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강변식비(强辯飾非)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21.06.11|조회수265 목록 댓글 0

 

강변식비(强辯飾非)

억지로 말을 교묘하게 하여 거짓을 꾸미다는 말이다.


强 : 강할 강(弓/9)
辯 : 변명할 변(辛/14)
飾 : 꾸밀 식(飠/5)
非 : 잘못할 비(非/0)

맹자(孟子) 이루장구(離婁章句) 上

第24章

 

樂正子從於子敖하여 之齊러니

악정자(樂正子)가 자오(子敖)를 따라 제(齊)나라에 갔었다.

 

○ 子敖는 王驩의 字라

자오(子敖)는 왕환(王驩)의 자(字)이다.

 

樂正子見孟子한대 孟子曰 子亦來見我乎아

曰 先生은 何爲出此言也시니잇고

曰 子來幾日矣오

曰 昔者니이다

曰 昔者면 則我出此言也 不亦宜乎아

曰 舍館을 未定이러이다

曰 子聞之也아 舍館定然後에 求見長者乎아

악정자(樂正子)가 맹자(孟子)를 뵙자, 맹자(孟子)께서 “자네도 나를 찾아와 보는가?” 하시니, “선생(先生)은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였다. “자네가 이곳에 온 지가 며칠인가?”하고 물으시자, “며칠 전입니다.” “며칠이나 되었다면 내가 이와 같이 말을 하여도 또한 마땅하지 않는가?” 하시자, “머무를 관사(館舍)를 정하지 못해서였습니다.” 하였다. 맹자(孟子)께서 “자네는 들었는가? 관사(館舍)를 정한 뒤에 장자(長者)[어른]를 찾아본다 하던가?”

 

○ 昔者는 前日也라 館은 客舍也라 王驩은 孟子所不與言者니 則其人을 可知矣어늘 樂正子乃從之行하니 其失身之罪大矣요 又不早見長者하니 則其罪又有甚者焉이라 故로 孟子姑以此責之시니라

석자(昔者)는 전일(前日)이다. 관(館)은 객사(客舍)이다. 왕환(王驩)은 맹자(孟子)께서 더불어 말씀하시지 않은 자이니, 그렇다면 그의 인품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악정자(樂正子)가 그를 따라 왔으니, 몸의 지조를 잃은 죄가 크며, 또 일찍 장자(長者)를 찾아뵙지 않았으니, 그 죄가 또 심함이 있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 우선 이것으로 꾸짖으신 것이다.

 

曰 克이 有罪호이다

악정자(樂正子)가 말하였다. “제[극(克)]가 죄를 졌습니다.”

 

○ 陳氏曰 樂正子固不能無罪矣나 然이나 其勇於受責이 如此하니 非好善而篤信之면 其能若是乎아 世有强辯飾非하여 聞諫愈甚者하니 又樂正子之罪人 也니라

진씨(陳氏)가 말하였다. “악정자(樂正子)는 진실로 죄가 없지 못하다. 그러나 꾸짖음을 받음에 용맹함이 이와 같았으니, 선(善)을 좋아하고 독실히 믿는 자가 아니면 능히 이와 같겠는가. 세상에는 강변(强辯)하여 비행(非行)을 꾸미고, 간하는 말을 들으면 더욱 심하게 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또 악정자(樂正子)의 죄인(罪人)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있다.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바르게 결론이 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확실히 믿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되어 역사를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로, 진시황(秦始皇)을 이야기하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많이 죽인 폭군이라는 선입감이 든다. 진시황은 문자를 통일하고, 도량형기를 통일하고, 법을 제정하고, 도로를 내고, 수리시설을 정비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물론 진시황이 나쁜 점도 많지만,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漢)나라가 자기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진시황을 오랫동안 계속 매도해 온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폭군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고, 그것이 역사의 진실로 남게 됐다. 이런 식으로 실제와 다르게 매도 당한 지도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반면 실제 이상으로 잘 평가되어 대단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근대의 중국 문학가 노신(魯迅)이라는 사람이 그 경우다. 잘 모르는 모택동(毛澤東)이 극도로 높게 평가한 덕분에, 중국을 대표하는 대문호(大文豪) 대학자 대사상가가 되어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노신(魯迅)의 글의 특징은 신랄하게 비판 잘 하는 것인데, 모택동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연안(延安)의 지하동굴에서 투쟁하던 모택동이 상해에서 노신전집이 출판되었다는 정보를 듣고 곧 구입해서 탐독했다. 그 뒤 문화대혁명 동안에는 모택동 자신의 책과 노신(魯迅)의 책만 읽게 하고 나머지는 읽지 못하게 했다.

노신(魯迅)은 학자는 아니고, 사상적으로도 내세울 사상이 없다. 그의 문장은 옛날 한문 문장도 아니고 현대 백화문(白話文)도 아니다. 일본에 유학한 관계로 일본어의 영향이 많이 배어 있다. 배배 꼬인 그의 문장의 상당 부분은 어느 누구도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한다.

처신에도 문제가 많은데, 본처는 고향에 버려두고, 제자를 실제 부인으로 데리고 살았다. 장개석 정권을 비난하면서도, 장개석이 북경대학 총장을 통해서 주는 지원금은 받았다. 지금도 13억 중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노신(魯迅)을 노벨상 수상자급으로 존경하고 있고, 그의 작품은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있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사(志士)인 체하는 그의 날카로운 문장에 다 현혹된 것이다.

검찰조사 때는 재판에서 다 밝히겠다고 약속했던 조국(曺國) 전 법무부장관이 정작 재판에서는 300회 이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여 한 마디도 안 했다. 그러던 그가 억울하다며 근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내었다. 그 책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억지로 잘못을 변명하고, 지지세력에 감사를 표하여 규합하고,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비난하였다. 지지세력들이 불티나게 책을 사가 벌써 24쇄를 거듭했고, 13만권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자신이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거짓이 영원히 역사의 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 공자의 화법, 無言

 

우리가 일상에서 남과 대화하는 방법이나 요령은 천차만별이다. 결론을 나중에 끌어내는 귀납적인 방법도 있을 수 있고 그와 반대되는 연역적 화술도 있겠다.

 

이와 함께 서양의 소크라테스는 참된 원인을 분명하게 밝히는 산파술을 소피스트들은 그럴듯한 논법인 궤변술을 각 발전시켰다면, 공자도 누구에 뒤지지 않는 나름의 신중한 화법이 있었다.

 

그는 비록 말이란 전달만 되면 그 뿐이고,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미워했다고는 했지만, 실상 그는 무척이나 말에 능숙한 언어의 마술사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가 향당에서의 공손한 언행, 관직에 있으면서 행했던 상하간의 신중한 대화, 14년간이나 중원대륙을 주유사방하면서 군주들과 나눈 설득 유세, 말년 5년간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구사했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화법 등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말이란 내심의 의사를 밖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할 때, 그는 ‘진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말이란 상대방에게 믿음이라는 신용을 주기 때문에 진실성이 매우 소중하였다. 평소 궤변으로 거짓을 일삼아 군주를 자주 농락한 노나라의 간신 소정묘(少正卯)를 처벌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묘하게 꾸민 말은 덕을 어지럽힘으로 화려한 말이나 애매한 표현 등을 극히 경계하면서 ‘정확한 언어구사’를 강조하였다.

 

모난 술잔(?)이 모가 나지 않았으면 ‘모난 술잔’이 아니듯이, 자주색이 정색인 빨강을 퇴색시키며 음탕한 정나라 음악이 엄숙한 아악을 어지럽힌다고 질책한 것은 정확하고 바른 의미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뱉은 말에 대한 ‘실천성’이었다. 깊은 물은 잔잔하고 높은 산은 말이 없듯이 말을 바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그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 법이다.

 

언행일치는 너무나 당연한 도리임에도 오히려 큰소리치며 그가 한 말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자는 처음부터 실천할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이유는 행동이 뒤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였다”라고 가르친다.

 

이와 함께 자기가 한 말에 대하여 ‘책임’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책임은 말에 대한 담보임으로 신중하게 행동하게끔 한다.

 

제자 재여의 낮잠을 꾸짖으면서 난 처음에 그 사람의 말만 듣고서 그의 행동도 당연히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그의 행동을 살펴 확인하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논리적인 말에 넘어가 군자인 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말이 조리 있고 이치에 맞는다고 그를 좋아하지만 그 사람이 과연 군자다운 사람일까? 겉모습만 꾸민 사람일까? 공자는 이를 경계하고 있다.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그가 한 말에 대하여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맹자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또 대화를 통한 ‘반성’ 내지 ‘변화 가능성’을 중시하였다. 나의 과실을 고치는 상대의 바른 말이나 그 실마리를 찾아주는 완곡한 충고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것들은 나를 되돌아 반성하게 하여 고치고 바꾸며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을 받고도 따르지 않음은 나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공자는 언급한다. 물론 고향 마을에서는 공손하고 성실한 태도로 마치 아는 것이 없는 양 말을 잘 하지 못한 것 같이 하였고, 종묘와 조정과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는 맡은 역할 때문에 거침없이 분명하게 말하되 다만 신중하였다.

 

그리고 군주와의 대화 시에도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먼저 자기 말을 잘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했고 그 다음은 해야 할 말인지 여부도 가려서 행함으로써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았다.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그에게 말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게 되고, 그 반대의 경우에 굳이 그에게 말을 한다면 도리어 말만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때 윗사람이 말을 마치지 않았는데 먼저 말을 한다던가, 의견을 묻는데도 답하지 않는다던가, 그의 안색을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말함을 삼가 하도록 가르친다. 이와 함께 윗사람은 말만 듣고 그를 예쁘게 여겨 등용하지 말며, 밉다고 그의 말까지도 버리지 말 것도 주문한다.

 

이처럼 나름의 대화기준을 갖고 있었던 공자이지만 종국에는 ‘말하지 않고서 말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글은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니 결국은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계절이 바뀌고 만물이 자라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라고 반문한다.

 

자연의 운행질서가 모두 도 아님이 없는데 이 도를 몇 마디 말로써 표현함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가섭이 한 송이 연꽃으로써 부처의 설법을 이해했듯이 지극한 대화는 무언(無言)임을 가르치고 있다.

 

근본적 실체는 진부한 말로써 감히 다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말 없는 말이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데 더 적합하다는 뜻이 된다. 말들이 넘치고 넘쳐나는 요즘,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말없이 무언의 대화를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 强(강할 강)은 ❶형성문자로 強(강)은 본자(本字), 彊(강), 犟(강)은 동자(同字), 強(강)의 속자(俗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彊(강)의 생략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弘(홍, 강)은 활시윗 소리, 크다, 가운데가 넓다의 뜻이다. 强(강)은 본디 바구미의 뜻이었으나 힘이 세다는 뜻의 勍(경) 또는 활이 세다의 뜻의 彊(강) 따위와 섞여 후에 강하다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强자는 '굳세다'나 '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强자는 弓(활 궁)자와 口(입 구)자, 虫(벌레 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强자는 強(강할 강)자의 또 다른 글자로 이전에는 強자가 '강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強자는 弘(넓을 홍)자와 虫(벌레 충)자가 결합한 것이다. 強자는 이렇게 '크다'나 '넓다'라는 뜻을 가진 弘자에 虫자가 결합한 것으로 강한 생명력을 가졌던 쌀벌레를 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하다는 뜻만이 남아 '강하다'나 '굳건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强자는 強자의 속자(俗字)였으나 지금은 强자가 '강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强(강)은 (1)일부 명사 앞에 붙어서 썩 세거나 된을 뜻하는 말 (2)넉넉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강하다 ②강하게 하다 ③굳세다 ④힘쓰다 ⑤강제로 하다, 억지로 시키다 ⑥굳다, 단단하다 ⑦거스르다, 순종하지 아니하다 ⑧세차다,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⑨권하다 ⑩힘이 있는 자, 세력이 있는 자 ⑪강궁(強弓: 탄력이 센 활) ⑫포대기(襁) ⑬마흔 살 ⑭태세의 이름 ⑮억지로 ⑯나머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굳셀 강(剛),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약할 약(弱)이다. 용례로는 굳세게 버티어 굽히지 않는다는 강경(强硬), 남의 물건이나 권리를 강제로 빼앗는 강탈(强奪), 힘차게 외치어 의기를 돋움을 강조(强調), 강하게 함을 강화(强化), 억지로 시킴을 강제(强制), 강제로 주장하는 말을 강변(强辯), 강제로 간음함을 강간(强姦), 강제로 행함을 강행(强行), 강하여 어려움에 지지 않거나 잘 견디는 상태를 강인(强靭), 강렬한 정도를 강도(强度), 강제로 요구함을 강요(强要), 강함과 약함을 강약(强弱), 얼굴 가죽이 두껍다는 강안(强顔), 힘찬 활에서 튕겨나온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비단조차 구멍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강한 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하고 만다는 말을 강노지말(强弩之末), 아주 가까운 일가 친척을 이르는 말을 강근지친(强近之親), 도움을 줄 만한 아주 가까운 친척을 이르는 말을 강근지족(强近之族), 한편은 강하고 한편은 약하여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강약부동(强弱不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굳세고 튼튼함을 일컫는 말을 강고무비(强固無比), 원기왕성한 나이 즉 삼사십대를 이르는 말을 강장지년(强壯之年), 강철이 가는 데는 가을도 봄이라는 뜻으로 다되어 가는 일이 못된 방해자로 인하여 파탄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강철지추(强鐵之秋),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견강부회(牽强附會),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자강불식(自强不息),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힘이란 뜻으로 생존 경쟁의 살벌함을 일컫는 말을 약육강식(弱肉强食) 등에 쓰인다.

▶️ 辯(말씀 변, 두루 미칠 편)은 ❶회의문자로 弁(변)의 본자(本字), 辩(변)은 간자(簡字)이다. 言(언; 말)과 辡(변)으로 이루어졌다. 본디는 辨(변)과 마찬가지였으나, 辨(변)은 구별(區別)하여 정하는 것을, 辯(변)은 주로 말을 잘하는 것을 나타냈다. ❷회의문자로 辯자는 '말을 잘하다'나 '(말에)조리가 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辯자는 辡(따질 변)자와 言(말씀 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辡자는 죄인 둘이 서로 다투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따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투는 것을 뜻하는 辡자에 言자를 더한 辯자는 서로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변론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辯자는 누구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대변해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분쟁당사자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말솜씨가 뛰어나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辯자는 '말을 잘하다'나 '조리가 있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辯(변, 편)은 변(辨). 한문학(漢文學)에서의 문체(文體)의 한 가지. 분별(分別)한다는 뜻으로, 옳고 그름 또는 참되고 거짓됨을 가리기 위(爲)하여 씌어진 글에 붙임의 뜻으로 ①말씀 ②이리저리 둘러대는 말 ③문체(文體)의 이름 ④말을 잘하다 ⑤(말에)조리(條理)가 있다 ⑥교묘(巧妙)하게 말하다 ⑦말다툼하다, 논쟁하다 ⑧다투다, 변론하다 ⑨말하다, 이야기하다 ⑩송사(訟事)하다, 맞고소하다 ⑪분별하다, 변별(辨別)하다 ⑫슬기롭다, 민첩(敏捷)하다 ⑬명석(明晳)하다, 밝다 ⑭변하다, 변화하다 ⑮나누다 ⑯다스리다 ⑰바로잡다, 그리고 ⓐ두루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편) ⓑ두루(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말씀 언(言), 말씀 화(話), 말씀 설(說), 말씀 어(語), 말씀 담(談), 말씀 사(辭)이다. 용례로는 옳고 그른 것을 가려서 따짐을 변론(辯論), 말로 풀어 밝힘을 변명(辯明), 남의 이익을 위해 변명하고 도와 줌을 변호(辯護), 입담 좋게 말을 잘하는 재주를 변구(辯口), 옳고 그름을 따져 변론함을 변난(辯難), 말솜씨가 아주 능란한 사람을 변사(辯士),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변설(辯舌), 말을 잘하는 재주를 변재(辯才), 말로 풀어 자세히 밝힘을 변해(辯解), 옳고 그름을 가리어서 논박함을 변박(辯駁), 강제로 주장하는 말을 강변(强辯), 도리가 아닌 말을 도리에 맞는 것처럼 억지로 공교롭게 꾸며 대는 말을 궤변(詭辯), 재치 있는 말을 교변(巧辯), 사리를 논하여 옳고 그름을 갈라 밝힘을 논변(論辯), 능하게 잘 하는 말을 능변(能辯), 어떠한 물음에 밝히어 대답함 또는 그 대답을 답변(答辯), 남이나 어떤 기관을 대신하여 그의 의견이나 태도를 책임지고 말함을 대변(代辯), 대답하여 말함을 대변(對辯), 망령되이 하는 변론이나 변명을 망변(妄辯), 명백히 말함 또는 그런 변설을 명변(明辯),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변(言辯), 불을 뿜는 듯한 웅변이나 열렬한 변론을 열변(熱辯), 화술이 뛰어나며 설득력이 있는 말솜씨 또 그 모양을 웅변(雄辯), 뛰어난 구변을 준변(俊辯), 대드는 말 또는 대들면서 말함을 항변(抗辯), 더듬거리는 말씨를 눌변(訥辯), 도도히 흐르는 물과 같은 변설이라는 뜻으로 거침없고 유창한 말주변을 이르는 말을 현하지변(懸河之辯), 워낙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함부로 지껄이지 아니하므로 도리어 말더듬이 처럼 보임을 이르는 말을 대변여눌(大辯如訥) 등에 쓰인다.

▶️ 飾(꾸밀 식, 경계할 칙)은 ❶형성문자로 饰(식, 칙)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사람인(人=亻; 사람)部와巾(건; 헝겊)으로 이루어졌다. 사람이 헝겊으로 닦아서 깨끗이 하다의 뜻이, 전(轉)하여 꾸미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飾자는 '꾸미다'나 '단장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飾자는 食(밥 식)자와 人(사람 인)자, 巾(수건 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巾자는 '수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니 飾자는 사람(人)이 행주(巾)로 식기(食)를 닦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갑골문에 나온 飾자를 보면 큰 식기 앞에 빗자루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제사를 지내기 전에 식기 주변을 깨끗이 정돈한다는 뜻이다. 이후 소전에서는 사람이 더해지게 되면서 지금의 飾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飾자는 제사 전에 정돈한다는 뜻이 확대되어 지금은 '꾸미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飾(식, 칙)은 ①꾸미다 ②단장(丹粧)하다 ③위장(僞裝)하다, 거짓으로 꾸미다 ④씻다 ⑤꾸밈 ⑥장식(粧飾) ⑦보물(寶物) ⑧가선(의복의 가장자리를 딴 헝겊으로 가늘게 싸서 돌린 선) 그리고 경계할 칙의 경우는 ⓐ경계하다(칙) ⓑ신칙하다(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하다)(칙) ⓒ다스리다, 정돈하다(칙)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꾸밀 분(扮), 꾸밀 날(捏), 단장할 장(粧), 꾸밀 장(裝)이다. 용례로는 교묘하게 꾸며 속임을 식교(飾巧), 거짓을 꾸밈을 식위(飾僞), 품성을 고상하게 가꿈을 식성(飾性), 의리를 들어 그럴싸하게 꾸밈을 식의(飾義), 교묘한 말과 수단으로 잘못을 얼버무리는 일을 식비(飾非), 보석보다 품질이 낮으나 장식에 쓰이는 돌을 식석(飾石), 겉을 번드르르하게 꾸민 설을 식설(飾說), 말을 꾸밈 또는 거짓으로 꾸며서 하는 말을 식언(飾言), 죽은 사람의 최후를 장식함을 식종(飾終), 부모의 경사에 잔치를 베풂을 식희(飾喜), 이익을 늘림을 식리(飾履), 변설을 잘 꾸밈을 식변(飾辯), 남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을 꾸밈을 식사(飾詐), 듣기 좋게 꾸며서 하는 말을 식사(飾辭), 속마음과 달리 언행을 거짓으로 꾸밈을 가식(假飾), 겉모양을 아름답게 꾸밈 또는 그 꾸밈새나 장식물을 장식(裝飾), 옷과 몸차림의 꾸밈새를 복식(服飾), 겉모양을 꾸밈을 수식(修飾), 지나치게 꾸밈을 과식(過飾), 글을 아름답게 꾸밈을 문식(文飾), 겉으로만 보기 좋게 꾸미는 일을 허식(虛飾), 어떤 것을 꾸밈을 가식(加飾), 아름답게 꾸밈을 미식(美飾), 속은 비고 겉치레만 함을 이르는 말을 내허외식(內虛外飾),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꾸민다는 말을 문과식비(文過飾非), 간악한 꾀가 많아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꾸며 대어 상대방을 곧이 듣게 함을 이르는 말을 지족식비(知足飾非), 얼굴과 옷을 아름답게 단장하고 치장함을 이르는 말을 응장성식(凝粧盛飾) 등에 쓰인다.

▶️ 非(아닐 비, 비방할 비)는 ❶상형문자로 새의 좌우로 벌린 날개 모양으로, 나중에 배반하다, ~은 아니다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非자는 '아니다'나 '그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非자를 보면 새의 양 날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非자의 본래 의미는 '날다'였다. 하지만 후에 새의 날개가 서로 엇갈려 있는 모습에서 '등지다'라는 뜻이 파생되면서 지금은 '배반하다'나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飛(날 비)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非(비)는 (1)잘못, 그름 (2)한자로 된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잘못, 아님, 그름 따위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그르다 ③나쁘다, 옳지 않다 ④등지다, 배반하다 ⑤어긋나다 ⑥벌(罰)하다 ⑦나무라다, 꾸짖다 ⑧비방(誹謗)하다 ⑨헐뜯다 ⑩아닌가, 아니한가 ⑪없다 ⑫원망(怨望)하다 ⑬숨다 ⑭거짓 ⑮허물, 잘못 ⑯사악(邪惡)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옳은 이치에 어그러짐을 비리(非理), 예사롭지 않고 특별함을 비상(非常), 부정의 뜻을 가진 문맥 속에서 다만 또는 오직의 뜻을 나타냄을 비단(非但),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보통이 아니고 아주 뛰어남을 비범(非凡), 법이나 도리에 어긋남을 비법(非法), 번을 설 차례가 아님을 비번(非番), 사람답지 아니한 사람을 비인(非人), 잘못되거나 그릇된 행위를 비행(非行), 불편함 또는 거북함을 비편(非便), 결정하지 아니함을 비결(非決), 사람으로서의 따뜻한 정이 없음을 비정(非情),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을 시비(是非), 옳음과 그름을 이비(理非), 간사하고 나쁨을 간비(姦非), 아닌게 아니라를 막비(莫非), 그릇된 것을 뉘우침을 회비(悔非), 이전에 저지른 잘못을 선비(先非), 교묘한 말과 수단으로 잘못을 얼버무리는 일을 식비(飾非), 음란하고 바르지 아니함을 음비(淫非),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님이란 뜻으로 한둘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비일비재(非一非再),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라는 뜻으로 어중간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을 비승비속(非僧非俗), 꿈인지 생시인지 어렴풋한 상태를 일컫는 말을 비몽사몽(非夢似夢),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라는 말을 비례물시(非禮勿視), 모든 법의 실상은 있지도 없지도 아니함으로 유와 무의 중도를 일컫는 말을 비유비공(非有非空) 또는 비유비무(非有非無), 일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운수가 글러서 성공 못함을 탄식하는 말을 비전지죄(非戰之罪), 뜻밖의 재앙이나 사고 따위로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을 일컫는 말을 비명횡사(非命橫死),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의 도리를 일컫는 말을 비궁지절(非躬之節), 고기가 아니면 배가 부르지 않다는 뜻으로 나이가 든 노인의 쇠약해진 몸의 상태를 이르는 말을 비육불포(非肉不飽), 책잡아 나쁘게 말하여 공격함을 일컫는 말을 비난공격(非難攻擊), 비단옷을 입어야 따뜻하다는 뜻으로 노인의 쇠약해진 때를 이르는 말을 비백불난(非帛不煖),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늘 그러함을 일컫는 말을 비금비석(非今非昔),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을 일컫는 말을 비난지사(非難之事), 예가 아니면 행동으로 옮기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비례물동(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비례물언(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비례물청(非禮勿聽), 얼핏 보기에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 듯이 보이나 실제로는 예에 어긋나는 예의를 이르는 말을 비례지례(非禮之禮), 들어서 말할 거리가 못됨을 일컫는 말을 비소가론(非所可論), 아무런 까닭도 없이 하는 책망을 일컫는 말을 비정지책(非情之責), 아침이 아니면 곧 저녁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이르는 말을 비조즉석(非朝卽夕), 꼭 그것이라야만 될 것이라는 말을 비차막가(非此莫可), 제 분수에 넘치는 직책을 일컫는 말을 비분지직(非分之職), 아직 일에 숙달하지 못한 직공을 일컫는 말을 비숙련공(非熟練工), 제때가 아닌 때에 먹는 것을 금한 계율을 일컫는 말을 비시식계(非時食戒), 용이 때를 만나면 못을 벗어나 하늘로 오르듯이 영웅도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와 큰 뜻을 편다는 뜻으로 비범한 인물이나 장차 대성할 사람을 이르는 말을 비지중물(非池中物), 사물을 아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이를 행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을 비지지간(非知之艱)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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