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탄(風樹之嘆)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風 : 바람 풍(風/0)
樹 : 나무 수(木/12)
之 : 갈 지(丿/3)
嘆 : 한숨쉴 탄(口/11)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라 너무 생략되어 뜻이 모호하지만 속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를 생각하면 쉽게 풀린다. 나무에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면 미풍에도 가지가 흔들려서 잠시도 조용한 날이 없다. 여기서 자식을 많이 둔 어버이에게는 근심, 걱정이 끊일 날이 없다는 뜻이 됐다. 세월이 지나 바람이 조용하니 나무가 남아있지 않다.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의 걱정을 덜어드리려 하나 이미 세상을 떠 뒤늦게 한탄하는 말이 됐다.
공자(孔子)가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주유천하(周遊天下) 하던 중 하루는 난데없이 곡성이 들려왔다. 너무나 슬픔에 잠긴 울음소리라 지나치지 못하고 따라가 보니 고어(皐魚)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연유를 물어 보자 이렇게 답한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고향에 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했는데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 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려고 하지만 부모님은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떠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어버이인 것입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 말을 명심시키자 따르던 제자가 13명이나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한(漢)나라 사람 한영(韓嬰)이 쓴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실려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44편 중 치사(致思)편에는 같은 내용에 구오자(丘吾子)란 사람으로 되어 있다.
장남이 부모를 부양하는 비율이 15년여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통계가 있었다. 부모들은 자식이 자랄 때부터 잘 될 때까지 꾸준히 기다린다. 잘 되고 나서도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당부하는 시조 한 편을 보자.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 일란 다하여라/ 디나간 후면 애닯다 엇디하리/ 평생애 곳텨 못할 일이 잇뿐인가 하노라."
풍수지탄(風樹之嘆)
풍수지탄(風樹之嘆)에서 風은 바람 풍, 樹는 나무 수, 之는 갈 지, 嘆은 탄식할 탄으로 '바람 속에 있는 나무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한(漢)나라 사람 한영(韓嬰)이 쓴 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주유천하(周遊天下) 하던 중 하루는 난데없이 곡성이 들려왔다. 너무나 슬픔에 잠긴 울음소리라 지나치지 못하고 따라가 보니 고어(皐魚)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연유를 물어 보자 이렇게 답한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고향에 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했는데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 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려고 하지만 부모님은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떠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어버이인 것입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풍수지탄이란 말을 명심시키자 따르던 제자가 13명이나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를 자식은 받는 데 익숙해져 돌려 드리는 것에 약해진다. 사회 도리는 아는데, 부모님을 향한 도리는 모르는 불효자의 풍수지탄 유래처럼 세상은 나를 흔들며 고요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흔들릴지언정 뽑히거나 부러지지 않는 것은 부모님과 같은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나무에 부모는 뿌리요, 인간에게 부모는 나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신과 같은 존재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부모님은 그때까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이치이기 때문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어떤 관계보다 친밀(親密)하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무릇 미물(微物)일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귀여운 줄 알며 사자도 제 새끼는 해치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풍수지탄(風樹之嘆)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으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
매혹적인 장미가 유혹하는 5월의 마지막 주이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공자의 기일,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기념일들이 많다. 특히 어버이날은 살아 계실 때 효도를 하지 못했던 풍수지탄(風樹之歎)의 주인공 고어(皐魚)의 막심한 후회가 떠오른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의 유래는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효도를 하려 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셔 효도를 할 수 없어 슬퍼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이 말은 유교 경전인 시경(詩經)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말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공자가 길을 가고 있는데 몹시 슬피우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고어(皐魚)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다가가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 슬피 우는가?”하고 묻자, 고어가 대답하기를 “저에게는 세 가지 잃은 것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젊어서는 공부하고 제후들과 사귀느라 부모님을 뒤로했고, 두번째는 내 뜻이 고상하다 하여 임금을 섬기는 일을 등한히 했고, 세번째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다가 가벼이 여겨 멀어졌으니, 이대로 죽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고어는 서서 죽고 말았다.
그 중에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 것을 첫 번째로 꼽는데, 여기에서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고사가 유래되었고 원문은 이렇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往而不可追者年也 왕이불가추자년야), 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부모님이시네(去而不見者親也 거이불견자친야).'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 흘리는 자식의 모습은 수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 부모님은 조금 더 기다려 주실 것 같지만 결국 외로운 시간만 더욱 길어지는 것이다.
가정의 달에 풍수지탄의 고사를 떠올리며 효도하고 싶어도 그 대상이 없다면 얼마나 슬픈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 예로부터 효는 백 가지 행동의 근본이라 했다. 모든 윤리의 기초로 삼았던 선조들의 지혜들이 다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 공감이 간다.
그렇지만 현 세태는 어떠한가? 핵가족화로 인해 이기주의가 만연되면서 효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점점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일 년에 겨우 한두 차례 의례적으로 부모님을 찾는 게 전부일 것이다. 명절이나 생신, 춘하추동에 평소 부모님의 건강과 안부를 잘 살펴야 한다.
바람은 언제까지나 나무를 고요히 놔두질 않듯이 세월은 노쇠한 부모님의 건강을 언제까지 지켜주지 않는다. 구차스럽게 ‘조금만 더 형편이 풀리면 효도해야지!’ 하다가는 고어의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이런 변명을 하지 말고 자주 찾아뵙고 문안드리는 효행이 몸에 배어야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바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생전에 효도를 하라는 뜻이다. 옛 성인인 공자는 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인류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했다. 효는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드리는 것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편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이는 자그마한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부모님들은 이것에 감탄하여 마음의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실천하지 않거나 못한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지 않았는가. 효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단지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효를 실천하지 않아서 멀리 있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풍수지탄(風樹之嘆)
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侍)’는 말이 나온다. 즉, 부모에게 효도를 다 하려고 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의 고사성어인 풍수지탄(風樹之嘆)의 유래다.
효도는 부모를 섬기는 도리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돼 있다. 흔히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구나 효자가 된다고 한다. 이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그 도리를 다하지 않고 돌아가시고 나면 부모님에 대한 사랑, 고마움, 미안함, 부모님을 가슴 아프게 한 것들을 뉘우치지만 그땐 이미 부모님이 우리 곁을 떠난 뒤인 것이다.
부모를 섬기는 도리란 무엇일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그 도리 못함을 후회하는 것일까. 우리 가정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천년 동안 그렇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식이고 자식이면서 부모이기도 하다. 부모를 섬기는 도리란 바로 자식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 부모는 우리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한다. 그런 부모를 우리는 아프다고 구박하고 깔끔하지 못하다고 구박하고 말 많다고 구박한다. 공자께서는 부모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조용히 말씀드리고 그것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공손함과 공경을 잃지 말라고 했다. 항상 밝은 얼굴로 부모 대하는 것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라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라는 나무에 열린 열매라고 한다. 부모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되면 싹을 틔워서 꽃을 피우고 한여름 무더위와 힘겹게 싸우면서 자식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그러고 나면 청춘이었던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 이제 부모에게 남은 것은 주름살과 거친 손과 외로움 가득한 얼굴뿐이다. 부모는 원래부터 앙상한 나무가 아니었다. 부모는 자신의 인생과 시간, 그 아름답던 젊음을 자식에게 다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앞에 계시는 그 앙상하고 늙은 나무가 곧 있을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에게 부모는 어떤 의미이고 부모는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자식도리 못함을 후회하지 말고 마음만으로라도 그 그릇을 채워드리면 어떨까? 이제부터라도 항상 웃는 낮으로 부모를 대하고 멀리 계시다면 지금 전화 한통 하시는 건 어떨까? 지금의 늙고 병든 부모가 있어 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효도(孝道)
효도란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道理: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른 길)나 부모를 정성껏 잘 섬김의 의미로 유의어에 효친(孝親), 반포(反哺), 순효(順孝), 동온하청(冬溫夏凊: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부모를 잘 섬기어 효도함)이 있고, 효제(孝悌)란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애에 대한 우애를 통틀어 한 말이다.
한자(漢字)에 반의지희(班衣之戱)란 중국 초나라 때 효자(孝子)인 노래자(老萊子)가 일흔 살에 '늙은 부모님을 위로하려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어린이처럼 기어 다녀 보였다'는데서 유래(由來)한 것으로 늙어서 효도함을 의미한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 孝(효)는 아들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양의 글자이다. 효라는 개념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행동양식 중 대표적인 것이다. 동물들 중 부모가 죽을 때 까지 자식이 부모를 봉양(奉養)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唯一)하다고 한다.
다만 민간전승(民間傳承)에 의하면 까마귀가 대표적인 효의 아이콘(icon)이라고 하는데, 유교전승에 따르면 ‘까마귀 부모 새가 늙으면 자식 새가 벌레를 물어다가 부모에게 먹인다’는 유래에서 오조사정(烏鳥私情)이라는 사자성어가 탄생되어 ‘자식이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조상 대대로 효(孝)사상이 굳건한 나라로 가정마다 그 가르침을 많이 받아 왔다. 특히 동양철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사상에서 유래한 효에 관한 사자성어들에는, 사친이효(事親以孝: 화랑의 세속요계로 신라 화랑의 다섯 가지 계율중 하나로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김), 원걸종양(願乞終養: 부모가 돌아가실 때 까지 봉양하기를 원한다는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 반포지효(反哺之孝: 자식이 자라 부모를 봉양함), 혼정신성(昏定晨省: 해가 저물면 잠자리를 봐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려 살핀다는 의미로 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 살피는 것)와 비슷한 의미의 조석정성(朝夕精省)이 있고, 노래지희(老萊之戱: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의미로 변함없이 자식도 효도를 해야 함) 등이 있다.
그런데 가장 부모님 살아생전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식들의 마음을 저미게(칼로 도려내듯이 아프고 쓰라린) 하는 것은 풍수지탄(風樹之嘆: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란 의미로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생전의 효도하지 못함을 뉘우치고 한탄함)이고, 하나 더 중국 한(漢)나라 때 한영이 쓴 '한시외전'에서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것으로, 부모 살아생전 효도하지 않고 돌아가신 후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모님 살아생전 효도할 것에 대한 마음을 다짐하게 하는 성어(成語)의 글귀이다.
다음으로 동·서양의 철학자, 명사(名士)들의 효에 대한 명언들은 무엇이 있는가? '어버이께 효도하면 자식이 또한 효도하고, 이 몸이 이미 효도하지 못했으면 자식이 어찌 효도 하리오.' 중국 주(周)나라 정치가 강태공의 말이고, '부모에게 잘못이 있을 때는 공손히 간(諫)하라. 설사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시지 않아도 공경해야 한다. 속으로 애태우더라도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와 '5형(五刑: 죄인을 다스리는 형벌)이 3천 가지이지만, 그 죄가 불효보다 큰 것은 없다'는 공자님의 말씀이며,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다가 갚사오리.' 조선시대 문신이자 문인 송강(松江) 정철선생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내 자식들이 해 주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와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 벗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고, '어버이를 공경함은 으뜸가는 자연의 법칙이다.' 로마의 황제 발레리우스의 말이며, '저울의 한 복판에 세계를 싫어 놓고 다른 한쪽 편에 나의 어머니를 실어 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훨씬 가벼울 것이다.' 랑구랄의 말이다. 특히 '자식이 부친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경우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것이지만, 모친에게도 그렇다면 그 자식은 세상에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못된 괴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장자크 루소의 말이다.
유불(儒彿)사상에서의 효에 대한 가르침은, '어린 자식의 똥과 오줌 같은 더러운 것도 그대의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침이 떨어지면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는 뜻이 있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어버이를 공경하여 모셔라. 젊었을 때 그대를 위하여 힘줄과 뼈가 닳도록 애쓰셨노라.' 명심보감에 있는 말이며, 불경(佛經)에 '자식은 부모를 받들어 봉양함에 모자람이 없게 하고, 자기 할 일을 먼저 부모에게 여쭈며, 부모가 하시는 일에 순종하여 어기지 말며, 부모의 바른 말씀을 어기지 말며, 부모가 하시는 바른 일을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는 가족과 이웃 간의 생활윤리의 가르침인 선생경(善生經)에 있으며, '슬프도다! 부모님은 나를 낳았기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셨다.' 유고의 경전중 하나인 시경(詩經)에 있는 말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하고, 시공(時空)을 초월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가정과 가족을 잘 돌보는 것, 그 중에서도 으뜸인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늘과 조상님들의 은덕(恩德)을 입을 수 있는 제일의 보상이자 답례인 것이다.
독일 속담에 '부모는 10자식을 거느릴 수 있어도, 10자식이 한 부모 모시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요즘 세태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구순(九旬: 90세)의 부모가 외출하는 칠순(七旬: 70세)의 자식에게 '얘야! 차 조심해라!' 이것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오늘날은 100세 시대이니 젊은이나 중년들만이 아닌 노년에 노부모님을 모시고 효도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는 있는 것이다.
사실 딸자식은 대개 그렇지 않아도, 아들자식은 이성을 알게 되면 부모와는 멀어지는 법이며, 특히 오늘날은 결혼하고 나면 내 부모님보다는 내 자식, 아내, 처가에 비중을 둔다. 며느리 눈치 보느라 찾아오거나 안부라도 묻는 전화는 특별한 행사 아니면 없다. 매달 용돈을 보내주는 자식도 그렇게 흔치는 않는 듯싶다. 양대 고유 명절이나 어버이날, 생일날만이라도 챙겨 주면 고마운 일이다.
저희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세상이다. 고물가에 교육비, 남 하고 다니는 만큼은 하고 다녀야 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고 생활상이다. '내가 저희들 키울 때 어떻게 했는데?' 하며 노(怒)하거나 서러워 마라. 나도 어려서, 젊어서 내 부모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셨다. 오히려 '나는 내 자식에게 바라는 만큼 내 부모에게 했는가?' 반문해 보아라. 그러면 마음도 편안하고 십분 이해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식은 울타리이다. 노년에 자식들에게 바라지도 말고, 기대려하지도 말며, 내 인생 말년 행복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마음 하나 잘 먹으면 되는 것이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주들 무탈하고, 각자 제 위치에서 자기 할 일 하고 있으면 감사해 하라.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노년에 내게 와서 손 안 벌리고, 귀찮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효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진정한 효도란 무엇인가? 거창한 것 아니다. 간단하다. 제 몸 건강하고, 제 식구들 끼리 화목(和睦)하며, 자신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본인 잘 되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다.
끝으로 연로(年老)하신 부모님이 생전에 계신 이 글을 읽는 모든 자식들에게 불경(佛經)의 가정윤리 중 효(孝)에 관한 경전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늙어 기력이 약해지면 의지할 사람은 자식과 며느리 밖에 없다. 아침저녁으로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과 잠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즐겁게 말 상대를 해 드림으로써 노년의 쓸쓸함을 덜어 드리도록 하여라.'
▶️ 風(바람 풍)은 ❶회의문자로 风(풍)은 간자(簡字), 凨(풍), 凬(풍), 凮(풍)은 고자(古字)이다. 무릇(凡) 태풍이 지나간 다음에 병충(蟲)이 많이 번식한다는 뜻을 합(合)하여 바람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바람’을 뜻하는 風자는 본래 봉황새를 그린 것이었다. 갑골문에 나온 風자를 보면 큰 날개와 꼬리를 가진 봉황이 그려져 있었다. 봉황은 고대 중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로 갑골문에 나온 風자는 바로 그 상상의 새를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風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라는 뜻으로 혼용되기 시작했다. 바람의 생성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고대인들은 봉황의 날갯짓으로 바람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風자가 ‘봉황’과 ‘바람’으로 혼용되기도 했지만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凡(무릇 범)자에 鳥(새 조)자가 결합한 鳳자가 ‘봉황새’를 뜻하게 되었고 봉황이 몰고 왔던 바람은 凡자에 虫(벌레 충)자가 더해진 風자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風(풍)은 (1)허황하여 믿음성이 없 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 허풍 (2)바람을 막으려고 둘러 치는 천 (3)정신 작용, 근육 신축, 감각 등에 고장이 생긴 병. 전풍(顚風), 중풍(中風), 비풍(痺風) 따위 (4)원인을 알기 어려운 살갗의 질환(疾患). 두풍(頭風). 피풍(皮風). 아장풍(鵝掌風) 따위 등의 뜻으로 ①바람 ②가르침 ③풍속(風俗), 습속(習俗) ④경치(景致), 경관(景觀) ⑤모습 ⑥기질(氣質) ⑦병(病)의 이름, 감기(感氣), 중풍(中風: 뇌혈관의 장애로 인한 병) ⑧기세(氣勢: 기운차게 뻗치는 형세) ⑨절조(節操: 절개와 지조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⑩노래, 악곡(樂曲), 여러 나라 민요(民謠) ⑪뜻, 낌새 ⑫풍도(風度: 풍채와 태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⑬소식(消息), 풍문(風聞) ⑭멋대로, 꺼리낌 없이 ⑮바람을 쐬다 ⑯바람이 불다 ⑰풍간(諷諫)하다(완곡한 표현으로 잘못을 고치도록 말하다) ⑱감화시키다, 교육하다 ⑲외우다, 암송하다 ⑳유전(流轉)하다(이리저리 떠돌다), 떠돌다 ㉑암수가 서로 꾀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옛적부터 행하여 온 모든 생활에 관한 습관을 풍속(風俗), 바람의 세력을 풍력(風力), 음식의 고상한 맛을 풍미(風味), 기후와 토지의 상태를 풍토(風土), 바람이 부는 방향을 풍향(風向), 어떤 상황이나 형편이나 분위기 가운데에 있는 어느 곳의 모습을 풍경(風景),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을 풍파(風波), 속사를 떠나 풍치가 있고 멋들어지게 노는 일을 풍류(風流),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을 풍문(風聞), 뜨거운 바람을 열풍(熱風), 몹시 세게 부는 바람을 폭풍(暴風), 자기가 가는 방향에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역풍(逆風), 첫여름에 부는 훈훈한 바람을 훈풍(薰風), 갑자기 거세게 일어나는 바람을 돌풍(突風), 미친 듯이 사납게 부는 바람을 광풍(狂風), 산수의 경치가 너무나 맑고 아름다움을 풍광명미(風光明媚),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풍사재하(風斯在下), 맑은 바람과 밝은 달 등(等)의 자연(自然)을 즐기는 사람을 이르는 풍월주인(風月主人),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진다는 풍류운산(風流雲散), 바람에 불리면서 먹고, 이슬을 맞으면서 잔다는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풍전등화(風前燈火),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풍수지탄(風樹之歎) 등에 쓰인다.
▶️ 樹(나무 수)는 ❶형성문자로 树(수)의 본자(本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尌(주; 손으로 물건을 세운 모양; 수)와 살아서 서 있는 나무(木)의 뜻이 합(合)하여 나무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樹자는 ‘나무’나 ‘심다’, ‘세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樹자는 木(나무 목)자와 尌(세울 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尌자는 그릇 위에 묘목을 심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세우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尌자는 樹자 이전에 쓰였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나온 樹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가 없는 尌자가 그려져 있었다. 尌자는 손으로 묘목을 심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지만 소전에서는 여기에 木자가 더해지면서 이것이 나무와 관계된 글자임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樹(수)는 ①나무 ②심다 ③세우다 ④막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살아 있는 나무를 수목(樹木), 나무가 우거진 숲을 수림(樹林), 나무의 종류를 수종(樹種), 나무와 돌을 수석(樹石), 산수화나 수석화에 있어서의 나무를 그리는 법을 수법(樹法),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를 수상(樹霜), 나무의 잎을 수엽(樹葉), 나무의 가지를 수지(樹枝), 울창한 삼림의 광대함을 바다에 비유하여 일컫는 말을 수해(樹海), 땅속에서 빨아 올리어 나무 속에서 양분이 되는 액을 수액(樹液), 나무를 심음을 식수(植樹), 과실나무로 열매를 얻기 위하여 가꾸는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과수(果樹), 베풀어 세움을 건수(建樹), 어린나무로 한두 해쯤 자란 나무를 치수(稚樹), 매우 큰 나무를 거수(巨樹), 큰 나무를 대수(大樹), 종자나 꺽꽂이감 따위를 얻기 위하여 기르는 나무를 모수(母樹), 줄지어 선 나무를 열수(列樹), 꽃이 피는 나무를 화수(花樹), 여러 가지가 섞인 수목을 잡수(雜樹), 나무 아래와 돌의 위라는 뜻으로 한데에서 잔다는 말로서 출가한 몸 또는 불교에서 수행함을 이르는 말을 수하석상(樹下石上), 수목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하다는 말을 수목참천(樹木參天),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도 독이 있다는 뜻으로 고문이나 불법 도청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을 독수독과(毒樹毒果), 장군의 별칭으로 매사에 겸손하고 말 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대수장군(大樹將軍), 한 나무에서 백 배를 수확한다는 뜻으로 인물을 양성하는 보람을 이르는 말을 일수백확(一樹百穫), 봄철의 수목과 저녁 무렵의 구름과 벗에 대한 모정이 일어남의 비유한 말을 춘수모운(春樹暮雲),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철수개화(鐵樹開花),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심는다는 말을 적지적수(適地適樹)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嘆(탄식할 탄, 또 우)은 형성문자로 歎(탄)과 동자(同字), 叹(탄)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부수를 제외한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간, 탄)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嘆(탄, 우)은 ①탄식(嘆息)하다 ②한숨 쉬다 ③찬탄(贊嘆)하다(칭찬하며 감탄하다) ④읊다, 그리고 ⓐ또(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탄식할 차(嗟), 탄식할 억(噫)이다. 용례로는 매우 감탄하여 칭찬함을 탄칭(嘆稱), 한숨쉬며 한탄함이나 감탄함을 탄식(嘆息), 한탄하며 애석히 여김을 탄석(嘆惜), 탄식하는 소리를 탄성(嘆聲), 탄식하여 욺을 탄곡(嘆哭), 한탄하며 하소연함을 탄소(嘆訴), 탄복하여 크게 칭찬함을 탄미(嘆美), 탄식하여 마음이 상함을 탄상(嘆傷), 탄복하여 크게 칭찬함을 탄상(嘆賞),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도와주기를 몹시 바람을 탄원(嘆願), 탄식하여 하는 말을 탄사(嘆辭), 의분이 북받쳐 탄식함을 개탄(慨嘆), 슬퍼하며 탄식함을 비탄(悲嘆),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탄식함을 자탄(自嘆), 목소리를 길게 뽑아 심원한 정회를 읊음을 영탄(詠嘆), 몹시 탄식함 또는 그런 탄식을 통탄(痛嘆), 마음 아파하고 슬퍼함을 상탄(傷嘆), 원망하거나 또는 뉘우침이 있을 때에 한숨짓는 탄식을 한탄(恨嘆), 혀를 차며 탄식함을 돌탄(咄嘆), 근심하고 한탄함을 수탄(愁嘆), 탄복하여 크게 칭찬함을 상탄(賞嘆), 궁한 나머지 탄식함 또는 그 탄식을 궁탄(窮嘆), 원망하고 한탄함을 오탄(懊嘆), 넓적다리에 살이 붙음을 탄식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뜻을 펴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것을 한탄하다 성공할 기회를 잃고 공연히 허송세월만 보냄을 탄식하는 말을 비육지탄(髀肉之嘆), 식량 구하기가 계수나무 구하듯이 어렵고 땔감을 구하기가 옥을 구하기 만큼이나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계옥지탄(桂玉之嘆), 편파적이고 불공정함에 대한 한탄을 이르는 말을 반박지탄(斑駁之嘆),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불탄복(莫不嘆服)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