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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고하상경(高下相傾)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22.02.12|조회수408 목록 댓글 0

 

고하상경(高下相傾)

높고 낮음이 서로 기울기를 이룬다

高 : 높을 고(高/0)
下 : 아래 하(一/2)
相 : 서로 상(目/4)
傾 : 기울 경(亻/11)

출전 : 노자(老子) 회교판(匯校版) 2章


이 성어는 노자(老子) 회교판(匯校版) 2장에 나온다.

天下皆知美 之爲美 斯惡已
天下가 모두 美라고 알고 있는 그것만을 美로 만들면 그것은 아름답지 않다

皆知善 之爲善 斯不善已
모두가 善하다고 알고 있는 그것만을 善으로 만들면 그것은 善하지 않다

故有無相生
왜냐하면 있음과 없음은 상대적으로 생겨난 개념이기 때문이다.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어렵고 쉬움은 상대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고, 길고 짧음은 서로 모양을 비교해서 나온 형태이고, 높고 낮음은 서로를 경쟁해서 나온 상대적인 말이고, 조화된 음악(音)과 각 악기의 소리(聲)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 나온 것이고, 앞과 뒤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따르는 것이다.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教
이런 이유로 성인은 만듦이 없는 일에 머무르고, 말로 설명하는 것이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萬物作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成功不居
萬物을 만들었지만 그걸 말로 하지는 않는다. 낳았지만 그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만들었지만 자랑하지 않는다. 공을 이루지만 머물지 않는다.

夫唯不居 是以不去
오직 공에 머물지 않기에 떠나는 것도 없다.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아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도덕경 2장 도입부는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로 시작하는데 과연 어떤 어려움이 따르는지 天下皆知美之爲美에서부터 살펴보자.

이 문장에서 유난히 까다로운 부분은 美之爲美인데, 관련 학자들마다 이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르다.

먼저 美之爲美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이다. 그리고 지(知)란 단어가 앞에 첨가되면 '知美之爲美'인데, 이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고 아는(知)' 일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고 아는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를 잘 알아서 소리나 모양을 아름다운 것으로만 구성하는 일이다. 아티스트가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름다운 소리와 추한 소리를 구분하기에 아름다운 소리를 모아서 연주를 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그의 역량이 뛰어날수록 그의 연주에 추한 소리는 드물고, 아름다운 소리만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아티스트의 이런 연주를 두고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이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고 아는' 일이다.

그런데 노자는 이런 식의 소리 구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아티스트의 연주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긴다. 아름다운 소리와 추한 소리로 나누려는 구분 자체를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여겨서이다.

사실 소리를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구분하는 데 누구나 똑같이 받아들일 만한 객관적 기준이란 없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또 공간의 변화에 따라서 이런 기준은 늘 변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유행이란 것도 생겨나는 게 아닌가.

물론 서양은 이미 오래 전에 비너스 팔등신을 만들고 이를 아름다운 인체의 이데아로 설정한 바 있다. 그래서 비너스를 닮을수록 아름다운 반면 닮지 않을수록 추하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노자의 눈에 이런 구분은 인위적인 시도일 뿐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니 노자의 귀에는 모든 소리가 똑같이 들리므로 아름다운 소리와 추한 소리 따위로 구분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공자가 자신의 삶의 완성으로 파악한 이순(耳順), 즉 모든 소리가 똑같이 순하게 들리는 단계와 같지 않는가! 지금 노자도 공자가 말한 이순의 단계를 바람직하다고 설정한다.

반면 세상 사람들은 이순의 단계에 이르지 못해 소리를 일일이 구분하여 아름다운 소리로만 음악을 하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의 이런 인식에 대해 노자는 답답해 한 나머지 斯惡已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대부분의 해석들은 斯惡已의 惡을 아름다움(美)의 대칭개념으로 파악해서 곧잘 '추함'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추함으로 해석하면 내용상으로 앞뒤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실제로 惡은 개념상으로 美와 관련이 없다. 美와 관련을 맺으려면 惡 대신 醜(추함)란 단어를 사용하는 게 맞다. 미추(美醜)란 단어가 한 쌍의 조합을 이루어서이다.

그러니 이 문장에선 우연히 美와 惡으로 표면상 대칭을 이룰 뿐 내용상 대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美의 반대 개념으로 惡을 해석하려는 유혹을 많이 지닌 탓인지 惡을 추함으로 해석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斯惡已의 惡은 단순히 美의 대칭개념이 아니라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즉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아는 것'이란 내용에 대한 노자의 전반적인 평가에 해당한다. 그러니 惡을 '추함'보다는 나쁨이라는 의미를 지닌 '바람직하지 않다'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물론 이어지는 다음 문장, 즉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도 마찬가지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皆知善之爲善에 대한 노자의 전반적인 평가가 斯不善已이므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좋은 것을 좋다고 아는데 이는 좋지 못한(不善) 일이다'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해석들은 여기서 善之爲善의 善을 '좋음'보다는 '착함'으로 해석한다. 善을 '착함'으로 해석하면 도덕적 문제로 곧바로 직행한다.

노자는 도덕적 문제를 2장에서부터 서둘러 다루기보다는 오감을 통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강조하는 것을 우선이라고 여긴다.

앞 문장에서 美란 개념을 사용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보면 善도 '선함'보다는 '좋음'으로 해석해야만 앞뒤 문장의 내용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2장의 첫 번째 문장을 필자처럼 해석해야만 이어지는 두 번째 문장, 즉 '고로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겨나고(有無相生),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루어지고(難易相成), 긺과 짧음이 서로 견주어지고(長短相較), 높음과 낮음이 서로 기울어지고(高下相傾), 음과 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音聲相和), 앞과 뒤가 서로 따른다(前後相隨)'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아는 것에 대해 노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했다. 노자의 이런 태도는 세상 만물은 아름다움이나 추함으로 구분되지 않을뿐더러 구분되어서도 안 된다고 보아서이다. 오히려 아름다움이 있기에 추함도 존재한다는, 즉 아름다움과 추함이 상대편의 존재근거가 되어 공존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노자의 눈에는 있음과 없음, 어려움과 쉬움, 긺과 짧음, 높음과 낮음, 음과 성, 앞과 뒤가 우열로 비교되는 게 아니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동운명체이다.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자연이 바로 그러하다. 이런 자연을 아름다움과 추함, 좋음과 나쁨, 심지어 옳음과 그름 등으로 구분한다면 이는 도를 훼손시키는 일이다.

'장자' 제물론 4는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옳음/그름의 구분이 선명해지면 도(道)가 이지러져서 훼손되는 바다. 도가 이지러져서 훼손되면 그때부터 좋고 싫음의 편애가 생겨난다. 그러면 이루어져 완성되는 것과 이지러져 훼손되는 것의 구분이 정말로 있을까, 없을까? 그런데 소리의 완성됨과 훼손됨의 구분은 옛날에 소문이 거문고를 뜯어서이고, 완성됨과 훼손됨의 구분이 없는 건 소문이 거문고를 뜯지 않아서이다."
(제물론 4-4)

전설상의 연주자 소문(昭氏)은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소리를 구분해서 아름다운 소리로 이루어진 음악을 선보였다. 그 결과 소문은 소리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해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란 명예를 얻었다.

그렇지만 장자의 눈에 소문은 기교만 부릴 뿐 도(道)에 통하는 연주자가 아니다. 소문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와 싫어하는 소리를 구분해서 오로지 좋아하는 소리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루어지고, 긺과 짧음이 서로 견주어지고, 높음과 낮음이 서로 기울어지고, 음과 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가 서로 따른다는 자연의 원리, 즉 도를 훼손시키는 일이다.

처무위지사(處無爲之事)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


앞에서 언급된 '도덕경' 2장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세상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爲美) 것을 우리도 아름답다고 아는(知美) 것에 대해 추하다는 평가이다. 또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爲善) 것을 우리도 좋다고 아는(知善) 것에 대해 좋지 않다는 평가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아름다움(美)과 좋음(善)은 추함(醜)과 나쁨(惡)과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아름다움과 좋음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아름답거나 좋다고 '여기는(爲)' 것을 우리도 아름다움과 좋음으로 '알기에(知)' 노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둘째는 세상 사람들이 아름답거나 좋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도 그렇게 아는 것에 대해 이것이 어째서 바람직하지 않은지의 근거를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것은 우주자연 및 세상만물의 이치에서 비롯되는데 구체적으로 있음(有)과 없음(無)이 서로 생겨나고, 어려움(難)과 쉬움(易)이 서로 이루어지고, 긺(長)과 짧음(短)이 서로 견주어지고, 높음(高)과 낮음(下)이 서로 기울어지고, 인위적인 소리 음(音)과 자연적인 소리 성(聲)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前)과 뒤(後)가 서로 따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이런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성인(聖人)의 모습이 소개된다. 성인의 이런 모습은 우주자연 및 세상만물의 이치라는 천도(天道)에 따라 인도(人道)를 구현하는 일이다.

앞서 '도덕경'을 전반적으로 소개할 때 동아시아 사상의 특징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동아시아 사상은 크게 천도(天道), 인도(人道), 치도(治道)로 구성되는데 천도는 서양의 자연과학, 인도는 인문과학, 치도는 사회과학과 각각 비교된다.

그런데 서양의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은 서로 연관 없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천도, 인도, 치도는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천도에 입각해서 인도와 치도가 전개되므로 인도와 치도의 뿌리는 천도에 있다.

도덕경 2장 내용은 천도에 입각해 있는 인도를 소개하는데 이를 성인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處無爲之事)', '말없는 행동으로 가르침을 행하는(行不言之敎)' 일이다.

무위는 흔히 아는 것처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고자 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고자 함이 있는' 유위(有爲)와 비교된다.

성인은 어째서 무위로 일을 처리할까? 그것은 있음(有)과 없음(無)이 서로 생겨나고, 어려움(難)과 쉬움(易)이 서로 이루어지고, 긺(長)과 짧음(短)이 서로 견주어지고, 높음(高)과 낮음(低)이 서로 기울어지고, 인위적인 소리 음(音)과 자연적인 소리 성(聲)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前)과 뒤(後)가 서로 따르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위(有爲)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유(有)와 무(無), 어려움(難)과 쉬움(易), 긺(長)과 짧음(短) 등을 구분해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유위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움과 추함이 서로 연결되어서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채 이를 구분하여 아름다움을 파악하고 있어서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와 무, 어려움과 쉬움, 긺과 짧음 등을 구분할 뿐 이것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우주자연 및 세상만물의 이치를 우리보다 더 알지 못하는 부류들이 있다. 노자에 따르면 그 부류 중 하나가 유가(儒家)이다. 유가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인위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이에 입각해서 인도(人道)를 구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노자에 따르면 인의예지도 자연스러워야지 인위적이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위예지가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의예지일 뿐이다. 이 경우 형식이 실질을 지배하는 즉 인의예지를 위한 인의예지가 고착되게 마련이다.

성인은 무위로 일을 처리하기에 가르침도 말 없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에 반해 '말 없는' 행동이 아니라 '말 있는' 행동으로 가르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또한 유가이다.

논어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즉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힌다는 데서 이런 사실이 잘 나타난다. 배우거나 가르치려면 반드시 '말'이 매개되어야 한다.

그런데 말 자체는 유위적인 성격을 지닌다. 말이란 표현하는 '실제'가 반영된 게 아니라 사람들끼리의 '약속'에 의해 성립된 기제이기 때문이다. 표음문자는 표의문자에 비해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유위를 행하는 일이다.

도덕경 2장 마지막은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행동으로 가르침을 행하는 성인의 모습을 성인이 만물을 어떻게 다루느냐를 통해 보여준다.

먼저 만물을 자라나게 해도 성인은 이를 자랑하지 않고, 또 만물이 생겨나도 이를 소유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만물을 이루어도 이에 기대지 않는다.

이는 만물이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성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인데 첫째 자랑하지 않고, 둘째 소유하지 않고, 셋째 기대지 않음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공을 이루어도 공에 머물지 않는 태도이다. 이 글은 매우 체계적으로 구성되었기에 문장을 풀어서 보여주면 이해가 쉬어진다.

한 가지 재미난 표현이 있다. 성인은 단지 공에 ‘'머물지 아니함(不居)'으로써 그 공이 성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不去)'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에 성인은 그 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

'머물지 않다(不居)'와 '떠나지 않다(不去)'는 그 의미와 관련해서 겉으론 대립적이다. 머문다는 의미의 '거(居)'와 지나간다는 의미의 '거(去)'가 서로 반대적인 의미를 지녀서이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론 내용이 같다. 즉 머물지 아니해서(不居) 떠나지 않는다(不去)는 게 의미상 서로 통해서이다. 게다가 '머물다'의 '거(居)'와 '떠나다'의 '거(去)'가 발음상 같다는 것도 우리들의 흥미를 더한다.

끝으로 성인은 성스러운(聖) 사람으로 예수, 석가, 공자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노자와 공자는 물론이고, 노자와 장자 사이에도 성인관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노자와 공자에게 있어 성인관의 차이는 무엇인가? 공자는 성인을 군자로 일반화한다. 그래서 성스럽거나 하는 어떤 특정한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그를 군자(君子)라고 부른다. 이런 군자가 곧 유가에서 일컫는 성인이다.

노자는 공을 이루고도 머물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서 성인이라고 말한다. 장자는 공과 관련해선 성인보다 신인(神人) 쪽에 무게를 둔다.

장자는 '소요유'에서 성인을 무명(無名), 신인을 무공(無功), 지인(至人)을 무기(無己)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성인은 세상에 이름(名)을 내세우는 걸 피하고, 신인은 세상에 공(功)이 드러나는 걸 꺼리고, 지인은 자신을 드러내는 걸 피한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장자의 입장에선 신인에 가깝다. 그렇지만 성인, 신인, 지인이 모두 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자와 장자에게서 드러나는 성인관 내지 신인관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고하상경(高下相傾)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절대 진리는 높고 낮음이 없이 평등하다고 하였다. 모든 상대적인 가치를 초월하여 있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진리가 높은 곳에만 있고 낮은 곳에는 없다든지, 높은 곳에는 많이 있고 낮은 곳에는 적게 있다든지, 이런 차별성과 국한성을 초월하여 편재하여 있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이렇게만 믿고 보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신이 높다고 생각하든 낮다고 생각하든 상관없이 진리를 품고 있고 진리에 싸여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 비록 깨닫지 못했어도 진리가 평등하다는 믿음은 그 나름대로 희망과 위안을 준다. 그래서 무유고하(无有高下)라고 한다.

'노자(老子)'는 높은 것은 높고 낮은 것은 낮다는 보편적 인식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렇지만 높다는 것이 낮다는 것에 비해 우월하다는 우리의 인식을 무화시키려 한다.

높은 곳을 지향하고 큰 것을 지향하고 많은 소유를 지향하는 것이 치열하게 달려가는 우리네 인생살이인데 잠시 쉬고 그 상대적 보완성을 돌아보라고 한다.

기울기라는 개념은 막대기를 땅바닥에 눕혀놓거나 하늘을 향해 쳐들거나 이 둘 간의 사이에서 성립된다. 하늘을 향해 쳐들면 가장 가파른 경사이고 땅에 눕혀놓으면 경사가 없게 된다.

경사라는 개념은 이 둘이 없이는 한 편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개념이다. 이런 생각은 존재가치의 상대성을 강조하니 이것이 고하상경(高下相傾)이다.

그러나 아무리 '금강경'을 찾고 '노자'를 거론해도 사람의 생각에서 각성하여 절실하게 수용하지 못하면 그저 빛깔 좋은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높은 곳을 향해 치달려간다. 태산이 높다한들 하늘아래 산인데도 말이다.

주역에서도 너무 높이 올라가면 명승(冥升)으로 깜깜해진다고 하였다. 오르다가 힘들면 잠시 쉬면서 내게 높낮이의 의미가 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 高(높을 고)는 ❶상형문자로 髙(고)의 본자(本字)이다. 성의 망루의 모양으로 높은 건물의 뜻이다. 후에 단순히 높음의 뜻이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高자는 '높다'나 '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高자는 높게 지어진 누각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高자를 보면 위로는 지붕과 전망대가 그려져 있고 아래로는 출입구가 口(입 구)자로 표현되어있다. 이것은 성의 망루나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던 종각(鐘閣)을 그린 것이다. 高자는 이렇게 높은 건물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높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높은 것에 비유해 '뛰어나다'나 '고상하다', '크다'와 같은 뜻도 파생되어 있다. 高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그래서 高(고)는 (1)높은을 뜻함 (2)높이 또는 어떤 일을 한 결과 얻어진 양을 뜻함 (3)높이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높다 ②뛰어나다 ③크다, ④고상하다 ⑤존경하다 ⑥멀다 ⑦깊다 ⑧비싸다 ⑨뽐내다 ⑩높이, 고도(高度) ⑪위, 윗 ⑫높은 곳 ⑬높은 자리 ⑭위엄(威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항(亢), 높을 탁(卓), 높을 교(喬), 높을 준(埈), 높을 존(尊), 높을 아(峨), 높을 준(峻), 높을 숭(崇), 높을 외(嵬), 높을 요(嶢), 높을 륭/융(隆), 밝을 앙(昻), 귀할 귀(貴),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래 하(下), 낮을 저(低), 낮을 비(卑)이다. 용례로는 높은 지위를 고위(高位), 비싼 값을 고가(高價), 나이가 많음을 고령(高齡), 아주 빠른 속도를 고속(高速), 등급이 높음을 고급(高級), 뜻이 높고 아담함을 고아(高雅), 높고 낮음을 고저(高低), 몸가짐과 품은 뜻이 깨끗하고 높아 세속된 비천한 것에 굽히지 아니함을 고상(高尙), 상당히 높은 높이를 가지면서 비교적 연속된 넓은 벌판을 가진 지역을 고원(高原), 인품이나 지위가 높고 귀함을 고귀(高貴), 여러 층으로 높이 겹쳐 있는 것 또는 상공의 높은 곳을 고층(高層), 등급이 높음이나 정도가 높음을 고등(高等), 높은 산과 흐르는 물 또는 훌륭한 음악 특히 거문고 소리를 비유하는 말을 고산유수(高山流水),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히 잔다는 뜻으로 편안하게 누워서 근심 없이 지냄을 일컫는 말을 고침안면(高枕安眠),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된다는 뜻으로 산하의 변천이나 세상의 변천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고안심곡(高岸深谷),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고양주도(高陽酒徒), 학식과 품행이 우수한 제자를 일컫는 말을 고족제자(高足弟子), 지위가 높은 큰 벼슬자리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고관대작(高官大爵), 목소리를 높이어 크게 부르짖음을 일컫는 말을 고성대규(高聲大叫), 높다랗게 짓고 호화롭게 꾸민 집을 일컫는 말을 고당화각(高堂畫閣), 큰소리로 떠들고 마구 노래 부름을 일컫는 말을 고성방가(高聲放歌), 학문의 이치 따위가 고원하여 행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고원난행(高遠難行), 멀리 달아나서 종적을 감춤을 일컫는 말을 고비원주(高飛遠走), 사람이 우러러보는 산과 사람이 걸어가는 큰길이라는 뜻으로 만인에게 존경받는 사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고산경행(高山景行),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인물로 키는 크고 걸음이 빠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뛰어난 활동가를 이르는 말을 고재질족(高才疾足), 목청을 높이어 큰 소리로 글을 읽음을 일컫는 말을 고성대독(高聲大讀), 베개를 높이 베면 오래 자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고침단면(高枕短眠), 베개를 높이 베면 오래 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고침단명(高枕短命), 고귀한 벗들이 자리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마음이 맞는 고귀한 벗들이 많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모임을 가졌음을 비유하는 말을 고붕만좌(高朋滿座), 높은 갓과 넓은 띠라는 뜻으로 신분에 걸맞지 아니한 의관 차림을 이르는 말을 고관광대(高冠廣帶), 높은 누대와 넓은 집이라는 뜻으로 크고도 좋은 집을 이르는 말을 고대광실(高臺廣室) 등에 쓰인다.

▶️ 下(아래 하)는 ❶지사문자로 丅(하)는 고자(古字)이다. 밑의 것이 위의 것에 덮여 있는 모양이며, 上(상)에 대한 아래, 아래쪽, 낮은 쪽, 나중에 글자 모양을 꾸며 지금 글자체가 되었다. ❷지사문자로 下자는 '아래'나 '밑', '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下자는 아래를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下자의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은 오목하게 아랫부분은 짧은 획으로 그려져 있었다. 윗부분의 오목한 형태는 넓은 대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래의 짧은 획은 땅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下자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하여 '아래'나 '밑'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금문에서 숫자 二(두 이)자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에 소전에서는 아래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下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下(하)는 (1)아래. 밑 (2)품질(品質)이나 등급(等級)을 상(上)과 하(下), 또는 上, 中, 下로 나눌 때의 가장 아랫길(끝째). (3)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밑에서, ~아래서의 뜻으로, 그 명사가 조건이나 환경 따위로 됨. 나타냄. ~하에, ~하에서, ~하의 형으로 쓰임 등의 뜻으로 ①아래 ②밑(물체의 아래나 아래쪽) ③뒤, 끝 ④임금 ⑤귀인(貴人)의 거처(居處) ⑥아랫사람 ⑦천한 사람 ⑧하급(下級), 열등(劣等) ⑨조건(條件), 환경(環境) 등을 나타내는 말 ⑩내리다, 낮아지다 ⑪자기를 낮추다 ⑫못하다 ⑬없애다, 제거하다 ⑭물리치다 ⑮손대다, 착수하다 ⑯떨어지다 ⑰항복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낮을 저(低), 낮을 비(卑), 내릴 강(降), 항복할 항(降), 낮출 폄(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존(尊), 높을 고(高)이다. 용례로는 공중에서 아래쪽으로 내림을 하강(下降), 값이나 등급 따위가 떨어짐을 하락(下落), 어떤 사람의 도급 맡은 일을 다시 다른 사람이 도거리로 맡거나 맡기는 일을 하청(下請), 아래쪽 부분을 하부(下部), 강이나 내의 흘러가는 물의 아래편을 하류(下流),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낮은 자리를 하위(下位), 공부를 끝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옴을 하교(下校), 한 달 가운데서 스무 하룻날부터 그믐날까지의 동안을 하순(下旬),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하오(下午), 차에서 내림을 하차(下車), 위에서 아래로 향함을 하향(下向), 보호를 받는 어떤 세력의 그늘을 산하(傘下),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치적이 나쁜 원을 아래 등급으로 깎아 내림을 폄하(貶下),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을 귀하(貴下), 끌어 내림이나 떨어뜨림을 인하(引下), 원서나 소송 따위를 받지 않고 물리치는 것을 각하(却下), 낮아짐이나 내려감 또는 품질 따위가 떨어짐을 저하(低下),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라는 뜻으로 임기응변으로 어려운 일을 처리함을 일컫는 말을 하석상대(下石上臺), 붓만 대면 문장이 된다는 뜻으로 글을 짓는 것이 빠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필성장(下筆成章), 아랫사람의 사정이나 뜻 등이 막히지 않고 위에 잘 통함을 일컫는 말을 하정상통(下情上通),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하우불이(下愚不移), 아래로 아내와 자식을 기름을 일컫는 말을 하육처자(下育妻子), 아래를 배워서 위에 이른다는 말로 낮고 쉬운 것부터 배워 깊고 어려운 것을 깨달음을 이르는 말을 하학상달(下學上達), 아랫사람의 뜻을 윗사람에게 전달함을 일컫는 말을 하의상달(下意上達), 아랫사람에게 후하고 윗사람에게 박함을 일컫는 말을 하후상박(下厚上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가하여 윗사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세상이 어지러움을 이르는 말을 하릉상체(下陵上替),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든지 물어서 식견을 넓히라는 말을 하문불치(下問不恥) 등에 쓰인다.

▶️ 相(서로 상, 빌 양)은 ❶회의문자로 재목을 고르기 위해 나무(木)를 살펴본다는(目) 뜻이 합(合)하여 나무와 눈이 서로 마주본다는 데서 서로를 뜻한다. 나무에 올라 지세(地勢)를 멀리 넓게 보는 모습, 목표를 가만히 보다, 보고 정하는 일, 또 보는 상대, 상대의 모습 따위의 뜻으로도 쓴다. 지상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것은 나무이기 때문에 木과 目으로 합(合)하여 쓴다는 설도 있다. ❷회의문자로 相자는 '서로'나 '모양', '가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相자는 木(나무 목)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相자는 마치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相자의 본래 의미도 '자세히 보다'나 '관찰하다'였다. 相자는 나에게 필요한 목재인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자세히 보다'를 뜻했었지만, 후에 나무와 눈의 대치 관계에서 착안해 '서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相(상, 양)은 (1)얼굴의 생김새 (2)각 종류(種類)의 모양과 태도(態度) (3)그때그때 나타나는 얼굴의 모양새 (4)옛적 중국(中國)의 악기(樂器)의 한 가지. 흙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은 작은 북과 같음. 손에 들고 장단(長短)을 맞추어 두드림 (5)물리적(物理的), 화학적(化學的)으로 균질(均質)한 물질의 부분, 또는 그리한 상태. 기상(氣相), 액상(液相), 고상(固相)의 세 가지가 있음 (6)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그 직위(職位)가 각료(閣僚)임을 나타내는 말 (7)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서로 ②바탕 ③도움, 보조자(補助者) ④시중드는 사람, 접대원(接待員) ⑤담당자(擔當者) ⑥정승(政丞) ⑦모양, 형상 ⑧방아타령 ⑨악기(樂器)의 이름 ⑩자세히 보다 ⑪돕다 ⑫다스리다 ⑬가리다, 고르다 ⑭따르다 ⑮이끌다 ⑯점치다 ⑰생각하다 그리고 ⓐ빌다, 기원하다(양) ⓑ푸닥거리하다(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로 호(互)이다. 용례로는 서로 서로를 상호(相互), 서로 도움을 상조(相助),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 효과를 더하는 일을 상승(相乘), 서로 어울림이나 상호 간에 교제함을 상고(相交), 서로 짝짐이나 서로 함께 함을 상반(相伴), 서로 반대됨 또는 서로 어긋남을 상반(相反), 서로 믿음이나 서로 신용함을 상신(相信), 두 가지 일이 공교롭게 마주침을 상치(相値), 서로 같음을 상동(相同), 서로 고르게 어울림이나 서로 조화됨을 상화(相和), 남녀가 불의의 사통을 함을 상간(相姦), 서로 마주 보고 있음이나 마주 겨룸 또는 그 대상을 상대(相對), 생김새나 모습을 양상(樣相),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진상(眞相),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위치나 양상을 위상(位相), 실제의 모양을 실상(實相),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겉에 드러나는 추한 몰골을 흉상(凶相), 서로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부상조(相扶相助), 서로 돕는 일을 일컫는 말을 상호부조(相互扶助),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애상조(相愛相助),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해 잊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망(相思不忘), 뛰어난 선비도 지나치게 가난하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서 활동할 길이 열리기 어렵다는 말을 상사실지빈(相事失之貧), 서로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을 이르는 말을 상망지지(相望之地),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견(相思不見), 오직 생각하고 그리워함을 일컫는 말을 상사일념(相思一念), 서로 사랑하는 도리를 일컫는 말을 상애지도(相愛之道),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오행이 상생하는 이치를 일컫는 말을 상생지리(相生之理),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맑지 않다는 뜻으로 윗사람이 옳지 않으면 아랫사람도 이를 본받아서 행실이 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즉불리(相卽不離), 서로 욕하고 싸움을 일컫는 말을 상욕상투(相辱相鬪), 서로 높이고 중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상호존중(相互尊重),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이르는 말을 괄목상대(刮目相對),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을 일컫는 말을 간담상조(肝膽相照),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하고 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동병상련(同病相憐),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묵묵한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심심상인(心心相印), 부자나 형제 또는 같은 민족 간에 서로 싸움을 일컫는 말을 골육상잔(骨肉相殘), 사물은 같은 무리끼리 따르고 같은 사람은 서로 찾아 모인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유유상종(類類相從), 수레 덮개를 서로 바라본다는 뜻으로 앞뒤의 차가 서로 잇달아 왕래가 그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관개상망(冠蓋相望), 생각이나 성질이나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등에 쓰인다.

▶️ 傾(기울 경)은 ❶형성문자로 頃(경)이 본자(本字), 倾(경)은 간자(簡字), 顷(경)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머리를 기울이다의 뜻을 가지는 頃(경; 즈음, 기울어지다)으로 이루어져, 頃(경)과 구별하여 특히 기울어지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傾자는 ‘기울다’나 ‘바르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傾자는 人(사람 인)자와 頃(잠깐 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頃자는 匕(비수 비)자와 頁(머리 혈)자가 결합한 것으로 마치 수저로 얼굴을 내리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이전에는 頃자가 ‘머리가 삐뚤어지다’나 ‘기울어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후에 頃자가 ‘잠깐’이나 ‘잠시’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人자를 더한 傾자가 ‘기울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傾(경)은 ①기울다 ②기울어지다 ③마음을 기울이다 ④비스듬하다 ⑤바르지 않다 ⑥다투다 ⑦다치다 ⑧잠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울 측(仄), 기울 왜(歪)이다. 용례로는 마음이나 형세가 어느 한쪽으로 향하여 기울어짐을 경향(傾向), 비스듬히 기울어짐을 경사(傾斜),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들음을 경청(傾聽), 기울어진 각도를 경도(傾度), 늙어서 앞으로 살날이 적음을 경명(傾命), 을 기울임을 경건(傾虔), 성품이 비뚤어지고 교활함을 경교(傾狡), 한 나라를 기울어지게 한다는 경국(傾國),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욺을 사경(斜傾), 아래쪽으로 기울어 짐을 사경(下傾), 정치 사상 등이 좌익의 경향을 띰을 좌경(左傾), 우익으로 기울어짐 또는 그러한 경향을 우경(右傾), 한 성을 기울어 뜨릴 만한 미색을 일컫는 말을 경성지미(傾城之美), 경개는 수레를 멈추어 깁양산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한번 만나보고 친해진다는 말로 잠시 만났어도 구면처럼 친함을 이르는 말을 경개여구(傾蓋如舊), 광주리를 기울이고 상자를 엎는다는 뜻으로 가진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아 극진히 환대함을 이르는 말을 경광도협(傾筐倒篋), 창고에 쌓아 두었던 쌀을 전부 내놓는다는 뜻으로 자기 속마음을 하나도 숨김없이 털어 놓는다는 말을 경균도름(傾囷倒廩),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성도 무너뜨리고 나라도 무너뜨린다는 뜻으로 한번 보기만 하면 정신을 빼앗겨 성도 망치고 나라도 망치게 할 정도로 뛰어난 미인을 이르는 말을 경성경국(傾城傾國), 궤변을 농하여 국가를 위태로운 지경에 몰아넣는 인물을 일컫는 말을 경위지사(傾危之士), 한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운다는 뜻으로 뛰어난 미인을 이르는 말을 일고경국(一顧傾國)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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