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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조운모우(朝雲暮雨)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22.04.07|조회수937 목록 댓글 0

 
조운모우(朝雲暮雨)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된다는 뜻으로, 남녀의 언약이 굳은 것, 또는 남녀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이다.

朝 : 아침 조(月/8)
雲 : 구름 운(雨/4)
暮 : 저물 모(日/11)
雨 : 비 우(雨/0)

(유의어)
무산지몽(巫山之夢)
운우지정(雲雨之情)

출전 :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아침의 구름(朝雲)과 저녁때에 내리는 비(暮雨)라는 말은 정상적으로 날씨의 변화를 나타내겠지만 이 뜻보다는 달리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있다는 애틋한 정을 전하고 구름과 비가 농사에 큰 도움을 주니 혜택을 입었을 때 비유하기도 한다.

보통 많이 이해하기로는 남녀의 육체적 관계를 구름과 비, 운우(雲雨)로 많이 표현하는데 여기에는 운우지락(雲雨之樂)에서 소개한대로 재미있는 고사가 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무산(巫山)이 나오고 신녀(神女)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시인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 실려 전한다.

송옥은 위아래가 모두 흐리다고 통탄한 거세개탁(擧世皆濁)의 충신 굴원(屈原)의 문인으로 굴송(屈宋)이라 병칭되는 미여송옥(美如宋玉)의 미남시인이었다. 그가 양왕(襄王)을 모시고 동정호(洞庭湖)에 나들이 갔을 때 운몽(雲夢)의 누대에서 고당관(高唐館)을 바라보니 그 위에서만 구름이 몰려 아래위로 솟구치고 모양이 바뀌는 등 변화가 끝이 없었다.

양왕이 송옥에게 물어보니 부왕 회왕(懷王)과 무산에 살았던 신녀 요희(瑤姬)가 사랑을 나누며 그 흔적으로 남은 조운(朝雲)이라 답했다. 조운이 어떤 구름인가 물어보니 자세히 설명한다.

옛날 선왕이 고당에 유람 왔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자게 됐을 때 꿈속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자신은 무산에 사는 신녀인데 "왕께서 고당에서 노니신다고 하기에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습니다(聞君遊高唐 願薦枕席)"라 말한다.

꿈속에서 정을 나눈 왕에게 여인은 떠나면서 말한다. "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아침에 보니 여인의 말대로 구름이 걸려 있어 그 곳에 묘당을 짓고 조운묘(朝雲廟)라 했다는 것이다. 한 번 인연을 맺고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는 그 이후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이란 말로 쓰게 됐다.

아침저녁 변한다는 조령모개(朝令暮改)나 조삼모사(朝三暮四) 등과 같이 조모(朝暮)에는 부정적인 말만 포함하지 않는다.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초목과 농사에 도움을 주는 비구름같이 남녀의 사랑 이전의 뜻은 숭고하다.

'님의 침묵'의 민족시인 한용운(韓龍雲)은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란 글에 묘사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 "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어지며 가늘게 떨리는 그대의 입술은 웃음의 조운이냐 울음의 모우이냐." 논개의 높은 애국심과 순국행위를 천추에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예찬했다는 시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순국한 의기(義妓) 논개의 충혼을 기리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절실하게 풀어 간 애도시다. 만해는 자신이 민족의 극한 상황에서 목숨을 바친 논개의 애인이라는 가정 아래, 논개의 애국적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제 강점하에서 조국의 독립에 대한 실천적 의지를 진솔하게 드러냈다.

한용운은 이 작품을 통하여 논개의 순국이 담고 있는 민족혼과 조국애의 부활로 일제 강점기의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고 잃어 버린 조국과 역사를 언젠가는 새롭게 되찾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 자신이 논개의 애인이라는 가정 아래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절절히 풀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시가문학의 찬란한 한시대를 열었던 조선의 대문호

정성이 지극하여 꿈에 임을 보니/ 옥 같은 얼굴이 반이나 늙었구나/ 마음에 먹은 말씀 싫도록 사뢰자니/ 눈물이 바로 나서 말인들 어이하며/ 깊은 정 다 못하여 목마저 메이는데/ 방정맞은 닭소리에 잠은 어찌 깨었던고

꿈에도 그리던 임을 꿈에서 만났다. 옥 같은 얼굴이 반이나 늙었다. 할 말은 많은데 눈물이 앞선다. 목이 메어 말 못하고 있는데 닭 울음소리에 잠이 깨고 만다.

아아 허사로다 이 임이 어딜 갔나/ 꿈결에 일어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가엽은 그림자만 날 좇을 뿐이로다/ 차라리 죽어가서 낙월(落月)이나 되어서/ 임 계신 창 안에 드러나게 비추리라

꿈 깨어 창을 열어보니 임은 사라지고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이대로 죽어 지는 달이 되어서 임 계신 창을 비추일까? 연모의 마음이 애절하다.

'사미인곡(思美人曲)'에서 시작하여 '속미인곡(續美人曲)'으로 넘어와 대단원의 끝을 앞두고 있다. 김만중이 '서포만필'에서 송강의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라 했고, 홍만종도 '순오지'에서 뛰어난 글이라 격찬했던 바로 그 대목이다. 속미인곡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각시님 달은 그만두고 궂은비나 되소서."

선녀로 상정되는 갑녀와 을녀, 두 여인의 대화체로 미인곡은 여기까지 왔다. 차라리 달이 되어서 임의 창을 비추고 싶다는 갑녀의 한탄에 을녀는 달은 그만 두고 궂은 비가 되라 한다. '궂은 비'는 무산지몽(巫山之夢)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초나라 회왕이 꿈에 무산 신녀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에 이르러 신녀가 말하기를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朝雲) 저녁에는 비가 되어(暮雨) 늘 곁을 지키리라 하였다. 달이 아니고 비가 되라는 말은 아침 구름에 저녁 비, 운우지정(雲雨之情)을 암시하는 정념의 표현이다.

고신연주지사(孤臣戀主之詞), 초야에 묻힌 신하가 임금을 향한 충정을 여인의 정한에 우의적(寓意的)으로 빗대어 고백한 작품이다. 송강은 달이 아닌 비로 사랑의 완성을 노래하며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조선 가사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작품이다.

송강 정철은 조선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정승의 벼슬에 오른 관료로, 서인의 영수를 지낸 정치가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으되 그리 복된 삶은 아니었다. 그는 서울 장의동(지금의 청운동)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맏누이는 인종을 모시는 내명부 숙의가 되었고, 막냇누이는 종실인 계림군에게 출가하여 왕실과 인연이 깊었다.

그의 나이 10세에 을사사화가 일어난다. 자형 계림군은 역모로 처형되고, 부친 정유침은 유배되고, 맏형 정자는 유배 도중 장살되고, 둘째형은 도피 은거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정철은 16세에 해배된 아버지를 따라 선산이 있던 전남 담양으로 내려온다. 거기서 대학자 김인후의 문하에 들어 기대승 김윤제 등을 좇아 학문을 익혔다. 한시는 임억령에게서 수학했고, 가사는 송순으로부터 배웠다.

성혼과 이이와는 친교를 두터이 하고, 김성원 고경명 등과 시적교유를 하였으니 유년은 불우하였으되 당대 최고의 석학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학맥을 쌓는 전화위복의 행운을 잡게 된다. 담양에서의 10년은 그가 훗날 조선의 대문호로 성장하는 자양분의 시간이었다.

정철은 1561년(명종 16) 26세에 진사시 1등을 하였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면서 관계로 나아간다. 사헌부지평, 좌랑 현감 등의 벼슬을 거쳐 함경도 암행어사를 지낸 뒤 32세에 율곡과 함께 사가독서하였다.

1580년 45세에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한다. 이때 지은 가사가 '관동별곡'이다. 이어 48세에 예조판서를 지냈고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으나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창평으로 귀향하여 4년간 은거한다. 침잠하는 시간들 속에서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 그의 걸작들이 탄생한다.

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 권력의 정점에 선다. 정여립 모반사건은 조선최대의 정치참사인 '기축옥사'로 이어진다. 그때 서인인 정철은 최고 심판관(委官)의 자리에 앉아 옥사를 혹독하게 다스리며 동인의 지도자급 인사들을 처형 또는 유배시키는 정적 제거의 악역을 맡게 된다. 피해자 가운데 이발은 형제와 노모와 자식까지도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그 뒤 약 3년여 정여립과 친교가 있거나, 동인이라는 이유로 처형된 학자와 호남의 선비가 무려 1천여 명에 달했다. 이후 전라도는 '반역향'으로 불리면서 약 200여년 동안 학맥이 끊기게 되며 반목과 대립이 후대까지 이어지는 후유증을 낳게 된다.

정철의 창평 낙향은 4차례 있었다. 40세 때 약 2년을 비롯하여 44세와 46세, 그리고 50세, 모두 정계에서 방축(放逐)됐을 때의 일이다. 네 번째 낙향에서 담양군 고서면, 멀리 무등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송강정을 짓고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 같은 산자락에 '성산별곡'의 무대가 된 식영정이 있다.

창평에서 네 번째 은거를 끝으로 그는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하였으나 56세 때 광해군의 왕세자 책립문제로 다시 북녘 땅 강계에서 혹독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이어 57세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종하고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끝내 동인에 의해 사직 당하고 강화의 송정촌에 우거하다가 58세로 생을 마치게 된다.

숯으로 바꾸어 먹고 소반에는 간장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송강집'은 그 무렵의 처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곤에 시달리다가 비참하게 끝을 맺는다. 작품으로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 4편의 가사와 시조 107수, 한시 740여 수가 전한다. 저서로는 시문집 '송강집'과 시가 작품집 '송강가사'가 있다.

조선 최고의 문인으로, 1천여 명의 선비를 도륙한 비정한 정치가로, 혹은 선조의 왕권강화를 위한 희생양으로, 한 생을 살면서 이처럼 파란만장하고 포폄(褒貶)의 극단에 서 있는 인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가사문학관 제1전시실에 송순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구사하면서 시가문학의 찬란한 한 시대를 열었던 조선의 대문호라는 것, 그것 하나로도 충분하다.

사랑의 여신들: 무산신녀(巫山神女)와 직녀(織女)

농업과 의약의 혜택을 인류에게 베풀었던 신농(神農), 너무 인자한 탓에 야심가 후배인 황제(黃帝)에게 주신(主神)의 자리를 빼앗겨야만 했던 이 비운의 신에게는 딸들이 많았다. 그 중 셋째 딸을 요희(瑤姬)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하면 '구슬 아가씨'라고나 할까. 보석처럼 예쁜 소녀였던 모양인데 불행히 시집도 가기 전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는 산기슭 양지 바른 곳에 고이 묻혔다.

그러나 신들의 세계에서 영원한 죽음이란 없다. 그녀는 요초(瑤草)라는 풀로 거듭났다. 이 풀은 잎이 겹으로 났고 꽃은 노란데 열매는 '토사'라는 약초의 씨앗과 비슷하였다. 신기한 것은 이 열매를 먹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일종의 사랑의 묘약(妙藥)이었던 셈인데 아마 사랑도 해보기 전에 죽은 요희의 간절한 소망이 그 풀에 깃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가 묻혔던 무산(巫山)이라는 곳은 양자강(揚子江) 중류에 위치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산이었다. 후일 그녀는 이 산에서 다시 한번 변신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국(戰國) 시대 어느 날 초(楚)나라의 회왕(懷王)이라는 임금이 무산에 놀러왔다. 회왕은 무산의 수려한 경치를 구경하다가 고당관(高唐觀)이라는 누대에 잠시 머물렀다. 그런데 회왕이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홀연히 한 예쁜 여인이 나타나지 않는가? 그녀는 자신이 신농의 딸로서 이곳 무산의 신녀(神女)라고 밝히고 요염한 자태로 회왕을 유혹하였다.

무산신녀의 모습에 반한 회왕은 그 자리에서 그녀와 사랑을 맺었다. 사랑의 행위가 끝나고 그녀가 수줍은 듯 떠나려 할 때 회왕은 아쉬워서 언제 또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침에는 산봉우리에 구름이 되어 걸려 있다가 저녁이면 산기슭에 비가 되어 내리는데 그게 바로 저랍니다."

문득 그녀가 사라지자 깨어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회왕은 한동안 무엇인가를 잃은 듯 멍한 상태로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과연 산기슭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회왕은 더욱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으나 더 이상 만날 기약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회왕은 그녀와의 짧은 추억을 기념하여 무산의 남쪽에 조운관(朝雲觀)이라는 누대를 지었다.

세월이 흘러갔다. 회왕이 죽고 아들 양왕(襄王)이 어느 날 무산에 놀러왔다. 선왕의 놀던 자취가 아직도 뚜렷한 고당관과 조운관을 양왕이 돌아보고 있을 때 궁정 시인 송옥(宋玉)이 과거에 선왕이 겪었던 무산 신녀와의 로맨스를 자세히 아뢰었다. 양왕은 선왕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에 감탄하면서 시인으로 하여금 그 일을 두고 읊을 것을 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송옥의 '고당부(高唐賦)'와 '신녀부(神女賦)'이다.

신농의 요절한 딸 요희, 그녀는 요초라는 사랑의 묘약으로 거듭났으나 남의 사랑을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결국은 스스로 사랑의 화신이 되어 무산신녀로 다시 태어났다. 아침에는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는 무산 신녀와의 사랑, 이로부터 사랑의 행위를 두고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맺는다'는 멋진 표현이 생겨났다.

송옥 이후 시인들은 이 신비롭지만 찰나적인, 그렇기에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랑에 대해 너도 나도 찬미의 노래를 바쳤다. 저명한 시인 소동파(蘇東坡)도 그들 중의 하나였는데 심지어 그는 어린 애첩을 '조운(朝雲)'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이한 로맨스가 지니는 종교적 함의(含意)를 간과할 수는 없다. 무산은 문자 그대로 무당의 산으로 샤머니즘과 관련이 깊은 산이다. 우리는 무산신녀와 초회왕과의 로맨스가 고대의 신전에서 여사제(女司祭)와 순례자 사이에 종교적 차원에서 행해지던 성적 결합을 문학화한 표현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여사제는 신을 대리하였고 그녀와 관계 맺음은 곧 신과의 깊은 교감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과의 사랑이야기는 평범한 인간이 신과의 합일을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된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의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른바 인신연애(人神戀愛) 유형의 이러한 이야기들은 중국의 경우 대개 여신과 인간 남성 사이에서 빚어지는데 서왕모(西王母)를 만났던 주목왕(周穆王)이나 무산 신녀를 만났던 초회왕처럼 인간 남성은 고귀한 신분인 경우가 많다.

후세에 이르러 여신과 평범한 인간 남성과의 연애 이야기가 증가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견우(牽牛), 직녀(織女) 신화이다. 기원전 5세기 경에 성립된,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詩經)'에서 이미 베짜는 직녀와 수레 끄는 견우, 그리고 은하수를 노래하고 있는 신화의 연원도 그리 얕지는 않다. 견우 직녀 신화가 문헌상 비교적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형태로 정착된 것은 한(漢) 나라 무렵에 와서이다. 이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은하수 동쪽 편에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바로 천제(天帝)의 딸인 직녀였다. 직녀는 솜씨가 뛰어나서 훌륭한 옷감을 잘 짰으나너무 일에만 열중하여 얼굴을 가꾸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천제는 직녀가 외롭게 지내는 것을 안쓰럽게 여겨 그녀를 은하수 서쪽의 견우라는 청년에게 시집보냈다.

그랬더니 부부간의 금슬이 너무 좋았던지 베짜는 일도 하지 않고 친정에도 한번 오질 않았다. 천제는 노하여 딸을 꾸짖고는 은하수 동쪽 편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리고 부부가 일년 중 칠월 칠석날 한번만 만나도록 하였다.

이때 은하수를 건너기 위해 직녀는 까치를 시켜 다리를 놓게 했다. 칠석무렵 까치 머리가 밋밋한 것은 다리 노릇을 하느라 털이 빠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칠석날 자정이 지난 후 흔히 비가 내렸는데 이것은 견우, 직녀가 이별을 슬퍼하여 흘린 눈물이라고 한다.

이 신화에서는 견우 직녀가 비록 신분상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천상에 사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민간에서 견우 직녀 신화는 보다 극적인 구성을 갖춘 이야기로 재탄생되어 널리 유행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그것이다.

근대 무렵 중국에서 수집된 선녀와 나무꾼형 견우 직녀 신화는 다음과 같다.

우랑(牛郞)이라는 청년이 계모 밑에서 소를 치며 고생스럽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홉 명의 선녀가 세상에 내려와 호수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는데 소가 그것을 알고 우랑에게 기슭에 벗어둔 옷 한 벌을 훔쳐 갖고 오게 하였다. 그래서 선녀 한 명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가 바로 직녀였다. 그들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천제가 이 사실을 알고 직녀를 하늘로 불러 올렸다. 우랑이 아이들을 데리고 뒤쫓아 올라 갔을 때 서왕모가 비녀를 공중에 한번 긋자 은하수가 생겨나서 우랑과 직녀는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서왕모는 그들에게 이후로 일년에 한 차례, 칠일 동안만 만나라고 못박았다. 그런데 그들은 매년 칠월 칠일에 한번 만나는 것으로 잘못 들어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선녀와 나무꾼형 견우 직녀 신화는 중국에 여러 이본(異本)이 있고 한국과 일본에도 기본 줄거리는 같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내용이 달라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만큼 이 신화는 동아시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덕흥리(德興里) 고구려 고분 벽화에 이미 견우 직녀가 출현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이 신화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고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견우 직녀 신화는 인류가 농경사회에 진입하면서 남자가 밭을 갈고 여자가 길쌈을 하던 직능 분화 현실을 반영하는 자연신화인 셈이기도 하다. 이들은 실제로 농사나 길쌈의 형편을 점치던 별자리였기 때문이다.

가령 직녀성은 10월달 새벽녘 동쪽 하늘에 나타날 때 그 빛이 붉고 밝으면 그해의 길쌈 결과가 좋고 어두우면 나쁠 것으로 점쳐졌다. 견우성의 경우는 여섯 개의 별 중 가운데의 한 별이 소와 관련되었는데 이별이 흔들리면 소에 문제가 생기고 어두우면 곡식이 익지 않을 것으로 점쳐졌다.

무산신녀와 직녀, 이들은 인간과의 사랑을 추구한 여신들이다. 그러나 중국신화에서 이러한 로맨스는 많지 않다. 중국신화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신화에서도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흔치 않은 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만 유독 사랑 이야기가 많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후세에 문학적으로 보다 각색되고 인간적인 관점이 깊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漢나라 '동영이야기'

한 나라 때 유향(劉向)이 쓴 '효자전(孝子傳)'에 실린 동영(董永)이야기 역시 견우 직녀 신화의 변형이다.

동영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를 따라 농사짓고 살았는데 그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으나 장례를 치를 돈조차 없었다. 그래서 동영은 부잣집에 몸을 팔아 그 돈으로 우선 삼년상을 치르고 약속대로 종살이를 하러 갔다. 길을 가는 도중에 그는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동영의 아내가 되기를 자청하였다.

둘은 부부가 되어 부잣집엘 갔다. 부자는 몸값 대신 옷감 백 필을 짜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랬더니 동영의 처가 열흘만에 그 일을 다 끝내고 자신이 천상의 직녀임을 밝혔다. 동영의 효성이 지극하여 천제가 그녀로 하여금 그를 도와 빚을 갚게해 준 것이라고 말한 직녀는 공중으로 올라가 사라졌다.

이 이야기에서 견우 직녀 신화는 한 나라 때의 국가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효 사상에 의해 적지 않게 변형되었다. 견우가 졸지에 효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당시 한 나라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모범적인 인물형이었다.

▶️ 朝(아침 조, 고을 이름 주)는 ❶회의문자로 晁(조, 주)는 고자(古字)이다. 달 월(月; 초승달)部와 𠦝(조)의 합자(合字)이다. 달(月)이 지며 날이 밝아 온다는 뜻이 합(合)하여 아침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朝자는 '아침'이나 '왕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朝자는 艹(풀 초)자와 日(해 일)자, 月(달 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朝자의 갑골문을 보면 초목 사이로 떠오르는 해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달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태양과 달이 함께 있다는 것은 이른 아침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소전에서는 月자 대신 舟(배 주)자가 잘못 그려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月자로 표기되었다. 그래서 朝(조, 주)는 한 계통(系統)의 왕이나 한 사람의 왕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의 뜻으로 ①아침 ②조정(朝廷) ③왕조(王朝) ④임금의 재위(在位) 기간(期間) ⑤정사(政事) ⑥하루 ⑦임금을 뵈다, 배알(拜謁)하다 ⑧문안(問安)하다 ⑨만나보다 ⑩부르다, 소견(召見)하다(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서 만나 보다) ⑪모이다, 회동(會同)하다 ⑫조하(朝賀)를 받다 ⑬정사를 펴다, 집행(執行)하다 ⑭흘러들다, 그리고 ⓐ고을의 이름(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침 단(旦),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저녁 석(夕), 저물 모(暮), 들 야(野)이다. 용례로는 아침과 저녁을 조석(朝夕), 나라의 정치를 의논이나 집행하던 곳을 조정(朝廷),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하는 아침 식사를 조찬(朝餐), 백관이 임금을 뵙기 위해 모이던 일 또는 학교나 관청 등에서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모여서 나누는 아침 인사를 조회(朝會), 학교 등에서 직원과 학생이 집합하여 시업전에 행하는 아침의 인사를 조례(朝禮), 아침에 마시는 술을 조주(朝酒), 아침 밥을 조반(朝飯), 아침 밥을 조식(朝食), 아침 때와 저녁 때를 조모(朝暮), 아침 해를 조일(朝日), 이른 아침에 올리는 제사 또는 조정에서 하는 일을 조사(朝事), 조정과 민간을 조야(朝野), 해를 보면 곧 스러지는 아침 이슬 또는 인생의 덧없음을 아침 이슬에 비유하는 말을 조로(朝露), 아침의 햇빛을 조휘(朝暉), 아침에 내리는 비를 조우(朝雨), 오늘 아침을 금조(今朝), 내일 아침을 명조(明朝), 다음날 아침을 익조(翌朝), 다음날 아침을 힐조(詰朝), 매일 아침을 매조(每朝), 이른 아침을 조조(早朝), 어제 아침을 작조(昨朝), 하루 아침이 마칠 동안을 종조(終朝), 자기 나라의 조정을 국조(國朝), 여러 대 임금의 시대를 열조(列朝), 조정을 임시 폐함을 철조(輟朝), 잘 다스려진 시대를 희조(熙朝), 사신이 본국으로 돌아옴을 귀조(歸朝), 벼슬에 오름을 입조(立朝), 전대의 왕조를 선조(先朝),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를 찾아 옴을 내조(來朝),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으로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차별만을 알고 그 결과가 같음을 모름의 비유 또는 간사한 꾀를 써서 남을 속임을 이르는 말을 조삼모사(朝三暮四),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법령의 개정이 너무 빈번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령모개(朝令暮改), 조정에서 명예를 저자에서 이익을 다투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알맞은 곳에서 하라는 말을 조명시리(朝名市利), 아침, 저녁으로 뜯어 고친다는 뜻으로 계획이나 결정 따위를 자주 바꾸는 것을 이르는 말을 조변석개(朝變夕改), 아침에 고치고 저녁에 또 바꾼다는 뜻으로 일정한 방침이 없이 항상 변하여 정하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조개모변(朝改暮變), 형세가 절박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곧 당장을 걱정할 뿐이고 앞일을 돌아볼 겨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불모석(朝不謀夕),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라는 뜻으로 남녀의 언약이 굳은 것 또는 남녀의 정교를 이르는 말을 조운모우(朝雲暮雨), 생명이나 지위가 아주 불확실하여 쉽사리 꺼져 버리는 상태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조로지위(朝露之危), 아침에는 파리 저녁에는 모기가 떼를 이룬다는 뜻으로 소인배가 발호함을 이르는 말을 조승모문(朝蠅暮蚊), 매일 아침과 매일 저녁이라는 뜻으로 아침 저녁으로 언제나 변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조모모(朝朝暮暮),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뜻으로 숨이 곧 끊어질 지경에 이름이나 거의 죽게 됨을 이르는 말을 명재조석(命在朝夕), 아침 이슬은 해가 뜨면 곧 사라지듯이 위기가 임박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위여조로(危如朝露),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등에 쓰인다.

▶️ 雲(구름 운)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비 우(雨; 비, 비가 오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云(운)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雨(우)는 천체(天體)에 관계가 있다. 云(운)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수증기가 하늘에 올라 자욱이 퍼지는 모양에서 구름을, 雲(운)이 생긴 후로는 云(운)을 말하다란 뜻으로 썼다. ❷회의문자로 雲자는 '구름'이나 '습기', '덩어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雲자는 雨(비 우)자와 云(이를 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云자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소전까지만 하더라도 '구름'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날씨와 관련된 글자임을 뜻하기 위해 雨자가 더해지게 되었다. 구름은 하늘 높은 곳에 떠 있으므로 雲자는 높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금세 사라지기도 하기에 속되고 덧없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간체자가 보급된 이후 다시 옛 글자인 云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雲(운)은 성(姓)의 하나로 ①구름 ②습기(濕氣) ③높음의 비유 ④많음의 비유 ⑤멂의 비유 ⑥덩이짐의 비유 ⑦성(盛)함의 비유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구름이 오고가는 길이라는 운로(雲路), 구름처럼 많이 모임을 운집(雲集),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임을 운둔(雲屯), 구름과 안개를 운무(雲霧), 구름과 진흙이란 뜻으로 차이가 썩 심함을 운니(雲泥), 구름이 덮인 바다를 운해(雲海), 기상이 달라짐에 따라 구름이 움직이는 모양을 운기(雲氣), 구름 낀 먼 산을 운산(雲山), 구림이 걸친 숲을 운림(雲林), 구름 밖이나 구름 위를 운표(雲表), 외로이 홀로 떠 있는 구름을 고운(孤雲), 이상한 모양의 구름을 기운(奇雲),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을 부운(浮雲), 저물녘의 구름을 모운(暮雲), 엷은 구름을 경운(輕雲), 머리털이나 새털 모양으로 보이는 구름을 권운(卷雲), 여름철의 구름을 하운(夏雲), 빛이 몹시 검은 구름을 흑운(黑雲), 구름과 진흙 차이란 뜻으로 사정이 크게 다르다는 경우에 쓰는 말을 운니지차(雲泥之差), 구름 같은 마음과 달 같은 성품이라는 뜻으로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운심월성(雲心月性), 남녀가 육체적으로 어울리는 즐거움을 일컫는 말을 운우지락(雲雨之樂), 구름처럼 합하고 안개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어느 때든지 많이 모임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운합무집(雲合霧集), 구름이나 안개가 걷힐 때처럼 산산이 흩어져 흔적도 없이 됨을 이르는 말로 의심이나 근심 걱정 등이 깨끗이 사라짐을 비유하는 말을 운소무산(雲消霧散), 구름처럼 어느덧 흩어지고 새처럼 자취 없이 사라짐을 일컫는 말을 운산조몰(雲散鳥沒), 구름이 열려 해를 본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구름처럼 꽉 막혔던 것이 비로소 열림을 이르는 말을 운개견일(雲開見日), 속됨을 벗어난 인간의 고상한 기질과 성품을 일컫는 말을 운상기품(雲上氣稟),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갠다는 뜻으로 병이나 근심이 씻은 듯이 없어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운권천청(雲捲天晴),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는 뜻으로 의기와 기질이 서로 맞음을 이르는 말을 운룡풍호(雲龍風虎), 탐스러운 귀 밑머리와 꽃 같은 얼굴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운빈화용(雲鬢花容), 구름이나 연기가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가고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때의 쾌락을 오래 마음에 두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운연과안(雲煙過眼), 구름이 아무 생각 없이 일고 흐르듯이 인생을 유유히 삶을 이르는 말을 운출무심(雲出無心),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란다는 뜻으로 희망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운예지망(雲霓之望), 구름 속을 나는 두루미라는 뜻으로 고상한 기품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을 운중백학(雲中白鶴), 구름이냐 산이냐는 뜻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산인지 구름인지 분별하지 못하여 의심함을 이르는 말을 운야산야(雲耶山耶) 등에 쓰인다.

▶️ 暮(저물 모)는 ❶회의문자로 莫(모)는 동자(同字)이다. 해가 풀숲에 숨은 모양을 나타내며 해질녘을 뜻하는 莫(막)이 없다의 뜻으로 빌어 쓰이게 되자 나중에 날 일(日; 해)部를 더하여 暮(모)를 해질녘의 전용(專用)글자로 하였다. ❷회의문자로 暮자는 '(날이) 저물다'나 '(시간에) 늦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暮자는 莫(없을 막)자와 日(해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莫자는 풀숲에 해가 잠긴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본래 '저물다'라는 뜻은 莫자가 먼저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날이 저물어 해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해서에서는 여기에 日(날 일)자를 더한 暮자가 '저물다'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暮(모)는 ①날이 저물다 ②시간에 늦다 ③늙다, 노쇠하다 ④밤 ⑤저물녘, 해질 무렵 ⑥끝, 마지막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저녁 석(夕),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침 단(旦), 아침 조(朝)이다. 용례로는 늦봄이나 음력 3월을 모춘(暮春), 늦여름으로 음력 6월을 모하(暮夏), 늦가을으로 음력 9월을 모추(暮秋), 이슥한 밤을 모야(暮夜), 늘그막을 모년(暮年), 날이 저물어 가는 어스레한 빛을 모색(暮色), 저물녘의 구름을 모운(暮雲), 저녁 때의 슬픈 생각을 모사(暮思), 저물게 오는 눈을 모설(暮雪), 늙바탕으로 늙어 버린 판을 모경(暮境), 저물녘에 내리는 비를 모우(暮雨), 절이나 교회 등에서 저녁 때에 치는 종을 모종(暮鐘), 해가 질 무렵의 경치를 모경(暮景), 늦 겨울을 모동(暮冬), 근래의 세상을 모세(暮世), 한 해의 마지막 때를 모세(暮歲), 저녁 무렵의 연기를 모연(暮煙), 저녁 때에 잠깐 하는 참선을 모참(暮參), 저물녘의 하늘을 모천(暮天), 그 해가 저무는 때를 세모(歲暮), 아침 저녁을 단모(旦暮), 한 해의 마지막 때를 연모(年暮), 아침 때와 저녁 때를 조모(朝暮), 저녁이나 늘그막을 만모(晩暮), 차차 나이가 많아지는 것을 지모(遲暮), 하루의 해 질 무렵을 일모(一暮), 해가 진 뒤로 껌껌하기 전까지의 어둑어둑하여 지는 어둠을 박모(薄暮),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묾을 행모(行暮), 해가 진 뒤로 껌껌하기 전까지의 어둑어둑 하여지는 어둠을 혼모(昏暮), 깊은 밤중에 하는 일이라서 아무도 보고 듣는 사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모야무지(暮夜無知), 저녁 빛이 짙어 어둑어둑함을 일컫는 말을 모색창연(暮色蒼然),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으로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차별만을 알고 그 결과가 같음을 모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조삼모사(朝三暮四),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법령의 개정이 너무 빈번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령모개(朝令暮改),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이미 늙어 앞으로 목적한 것을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을 일모도원(日暮途遠), 아침에는 동쪽에 있다가 저녁에는 서쪽에 머문다는 뜻으로 일정한 거처가 없이 여기저기 옮겨다님을 일컫는 말을 조동모서(朝東暮西),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라는 뜻으로 남녀의 언약이 굳은 것 또는 남녀의 정교를 이르는 말을 조운모우(朝雲暮雨), 아침에는 파리 저녁에는 모기가 떼를 이룬다는 뜻으로 소인배가 발호함을 이르는 말을 조승모문(朝蠅暮蚊), 매일 아침과 매일 저녁이라는 뜻으로 아침 저녁으로 언제나 변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조모모(朝朝暮暮), 아침에는 동쪽에 있다가 저녁에는 서쪽에 머문다는 뜻으로 일정한 거처가 없이 여기저기 옮겨다님을 이르는 말을 조동모서(朝東暮西), 아침에 모여들었다가 저녁에 흩어진다는 뜻으로 이합집산의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조취모산(朝聚暮散), 아침에는 고사리를 먹고 저녁에는 소금을 씹는다는 뜻으로 몹시 곤궁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조제모염(朝薺暮鹽), 아침에 얻어 저녁에 잃는다는 뜻으로 얻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곧 잃어 버린다를 일컫는 말을 조득모실(朝得暮失) 등에 쓰인다.

▶️ 雨(비 우)는 ❶상형문자로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우)란 음은 宇(우), 羽(우) 따위와 관계가 있고 위로부터 덮는다는 뜻이 닮았다. 부수(部首)로서는 비 또는 구름, 기타 기상(氣象)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고대 중국은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농업을 매우 중시했었다. 농업의 성공 여부는 날씨와도 직결된다. 그래서인지 한자에는 날씨와 관련된 글자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雨자는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한자가 생성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날씨와 관련된 글자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갑골문에 나온 雨자를 보면 하늘에 획이 하나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점이 찍혀있었다. 이것은 구름 아래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雨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날씨나 기상 현상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雨(우)는 ①비 ②많은 모양의 비유 ③흩어짐의 비유 ④가르침의 비유 ⑤벗의 비유 ⑥비가 오다 ⑦하늘에서 떨어지다 ⑧물을 대다 ⑨윤택하게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흐릴 담(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빛 광(光), 볕 양(陽), 갤 청(晴)이다. 용례로는 비가 온 분량을 우량(雨量), 비를 몸에 맞지 않도록 손에 들고 머리 위에 받쳐 쓰는 물건을 우산(雨傘), 1년 중에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기를 우기(雨期), 눈과 비를 우설(雨雪), 비와 이슬을 우로(雨露), 비가 올 듯한 기미를 우기(雨氣), 비가 오는 날을 우천(雨天), 비 맞지 않도록 차림 또는 그 복장을 우장(雨裝), 비가 내림 또는 내린 비를 강우(降雨), 밤에 내리는 비를 야우(夜雨), 줄기차게 많이 오는 비를 호우(豪雨), 오랫동안 계속해 내리는 음산한 비를 음우(陰雨), 오래 오는 궂은 비를 음우(霪雨), 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비를 폭우(暴雨), 식물이 자라나기에 알맞도록 내리는 비를 자우(滋雨), 장마 때에 오는 비를 장우(長雨), 몹시 퍼붓는 비를 능우(凌雨), 세차게 내리는 비를 강우(强雨), 알맞은 때에 내리는 비를 감우(甘雨), 보리가 익을 무렵에 오는 비를 맥우(麥雨),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를 풍우(風雨), 천둥소리가 나며 내리는 비를 뇌우(雷雨), 산골짜기에 내리는 비를 계우(溪雨), 비가 온 뒤에 솟는 죽순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 일시에 많이 일어남을 이르는 말을 우후죽순(雨後竹筍), 바람 불고 비오는 것이 때와 분량이 알맞음을 일컫는 말을 우순풍조(雨順風調), 비올 때의 경치도 매우 기이하고 갠 후의 경치도 좋다는 뜻으로 날씨에 따라 풍경이 변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우기청호(雨奇晴好), 비와 이슬이 만물을 기르는 것처럼 은혜가 골고루 미침을 이르는 말을 우로지은(雨露之恩), 회합 등을 미리 정한 날에 비가 오면 그 다음 날로 순차로 연기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우천순연(雨天順延), 비 온 뒤에 우산을 보낸다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일에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보태는 경우를 일컫는 말을 우후송산(雨後送傘), 떨어지는 빗방울이 돌을 뚫다라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적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면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우수천석(雨垂穿石)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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