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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석척약(夕惕若)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22.07.27|조회수616 목록 댓글 0

 

석척약(夕惕若)

밤에는 허물을 반성하며 삼가야 한다는 뜻으로 교만하지 않고 조심해서 살면 군자라는 주역 경구이다.

夕 : 저녁 석(夕/0)
惕 : 두려워할 척(忄/8)
若 : 같을 약(艹/5)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無.
군자는 온종일 부지런히 힘쓰고 저녁에도 (경계하는) 마음을 놓지 않으니, 위험한 때나 자리에 있더라도 허물이 없다.​

위 문장은 주역(周易) 상경(上經)에 있는 건괘(乾卦) 중천(重天) 구삼효사(九三爻辭)다. 여기서 건(乾)은 '아래위로 줄이 세 개씩 있는' 건하건상(乾下乾上)이다. 군자는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으며, 늘 부지런히 힘쓰고 조심한다면, 비록 위태로운 자리에 있다 해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九)는 양효(陽爻)이고 삼(三)은 양(陽)의 자리다. 굳세지만 가운데(中) 있지 못하고 하괘(下卦) 맨 위에 있어 위태로운 처지다. 강건하여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위치다.

'역(易)'은 은나라 때 갑골 복점(卜占)과 주나라 때 서죽(筮竹) 서점(筮占)에서 나왔다. 주역은 팔괘(八卦)를 근본으로 하는 64괘를 상경(上經)·하경(下經)으로 나누고, 여기에 십익(十翼), 즉 단전(彖傳) 상하(上下),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의 10편을 합해 책으로 만든 것이다.

주역은 음과 양의 상보적 원소들을 기초로 64괘 384효로 자연과 인간세계의 생성과 변화 원리를 펼쳐 보인다. 효(爻)는 만물의 모습인 상(象)을 본떴다는 뜻이다. 양효와 음효를 세 개씩 조합해 8개 부호를 만들어 자연과 인간사회의 현상을 상징하는 것이 팔괘다. 8괘만으로는 만물 변화를 충분히 상징할 수 없어, 3획괘인 8괘(소성괘)를 둘씩 중첩해 6획괘 64개(대성괘)를 만들었다. 64개는 각각 6효로 이뤄졌으므로, 64괘는 전부 384효이다.

엊그제 목압서사에서 강호의 고수 중의 고수로 불리는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가 주민을 대상으로 '내가 아는 지리산' 특강을 했다. 그는 풍수지리, 사주명리학, 주역점에 도가 튼 분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기운과 사주가 보인다. 지리산이라는 큰 산과 교접하려면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해야 한다. 주역에서 강조하는 것도 그것이라"고 했다.

■ 周易 重天乾卦

주역 첫 번째 괘로 중천건괘(重天乾卦)가 있다. 하늘 천(天) 건괘(乾卦)가 위 아래로 붙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상괘(上卦) 곧 외괘(外卦)가 건괘(乾卦)이고, 하괘(下卦) 곧 내괘(內卦)도 건괘(乾卦)라는 뜻이다.

건괘(乾卦)는, '양, 양, 양'으로, 음(陰) 하나 없이 양 셋으로만 되었다. 사실, 이것의 근원은, 태극(太極)에서 양의(兩儀) 곧 음(陰)과 양(陽)이 나오고, 이 음과 양은 큰 것과 작은 것으로 각각 나뉘어서 태양(太陽), 소양(少陽), 소음(少陰), 태음(太陰) 등 사상(四象)을 낳는데, '양, 양'으로 된 태양(太陽) 위로 양효 하나가 덧씌워져서 양효 셋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 태생이 태양이므로 양괘(陽卦)이고, 거기에다가 양효 하나가 올라와서 된 것이기에 더욱 강건(剛健)한 성품을 지닌다. 이런 강건함을 표징(表徵)할 수 있는 형상물로 옛사람은 하늘(天)을 떠올렸던 것이고, 그 하늘이 갖는 성정을 강건(剛健)으로 인식했다.

이런 건괘(乾卦)를 두고, 설괘전(說卦傳)에서는, 天이고(제10장), 君이자(제4장) 父이며(제10장), 首이고(제9장), 馬이며(제8장), 健이라고(제7장) 그 외연적 의미를 확대하여 부여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天地가 무엇보다 먼저 생기어서 서로의 자리를 결정짓고(제3장), 양(陽)은 음(陰)과 상박(相薄)하는, 다시 말해서, 서로 싸우는 관계(제15장)라고 인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西北 괘(제5장)라고 한다.

이러한 건괘가 위아래에 붙어서 ‘양, 양, 양, 양, 양, 양’으로 된 중천건괘를 이루었는데,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는 모양으로 하늘이 겹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하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사람의 기준에서 볼 때, 하늘(天)에는 해와 달과 별이 있고, 그들의 빛이 있으며, 사람은 그 빛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해의 빛은 열에너지와 함께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땅에 뿌리를 내린 모든 생명이 그 덕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강건한 양(陽)의 기운으로 인지된다.

그리고 하늘에는 구름이 있고, 그 구름을 바람이 움직이게 해서, 다시 말해, 이합집산(離合集散)하게 하며, 천둥 번개를 치고, 비를 내리고, 그 빗물로써 지상의 생명에게 갖가지 피해를 주기도 하고, 그 반대로 만물을 번성하게도 한다. 그러니 하늘이라면 그야말로 광대(廣大)하고, 막강한 능력이 있는 존재로서 대단히 중요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늘 천(天)은 그 형상으로 모양(象)이고, 그 하늘이 갖는 성정(性情)과 기능(機能)을 합쳐서 덕(德)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그 덕에 건(乾)이라고 이름을 부여했다. 그리고 건(乾)은, 강(剛)이요, 건(健)이라는 덕성(德性)을 부여했다. 그래서 잡괘전(雜卦傳)에서도 '乾剛'이라고 했다. 이런 강건한 중천건괘의 역문을 끌어와 우리말 번역과 함께 해석해 보고자 한다.

乾:元,亨,利,贞.
중천건괘는, 만물의 근원으로 광대하고, 그 기운의 작용이 형통하며, 만물에 이롭고, 정도를 견지한다.

○ 元亨利貞이란 주(周) 문왕(文王)이 붙인 네 글자를 하나씩 떼어서 읽음으로써 중천건괘의 성품(性品), 성정(性情), 자질(資質) 등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고, 오로지 다른 괘들처럼 중천건괘의 점사(占辭)로 이해하여 '元亨, 利貞'으로 읽는 이들도 있다.

전자로는 정이천(程伊川) 외 많은 사람이 있고, 후자로는 주자(朱子)를 비롯하여 적지 아니한 사람이 있다. 현재 중국 주역 전문 사이트에서는 주로 한 글자씩 떼어 표기해 놓고 정이천의 견해를 따르는 곳이 많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중천건괘의 성품, 성정으로 받아들이면, 하늘과 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서로 작용함으로써 만물이 생긴다고 했으니, 元을 만물의 근원(根源), 근본(根本)으로, 亨을 그 기운의 움직임이 형통함으로, 利를 만물에게 주는 이로움으로, 貞을 정도(正道)의 고수(固守) 혹은 견지(堅持)로 각각 해석해야 옳다. 물론, ‘正’자가 있는데 굳이 ‘貞’을 사용한 것은, 정(正)을 끝까지 지킨다는 고수(固守), 견지(堅持)의 의미가 내재해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만약, 주자처럼 元亨, 利貞으로 읽는다면, ‘크게 형통하고, 끝까지 정도를 지켜야 이롭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정이천의 견해를 따랐는데, 그 이유인즉 다음 괘인 중지곤괘(重地坤卦)의 괘사(卦辭)에서도 ‘元亨利貞’이 나오는데, 貞에만 ‘牝馬之’라는 조건이 붙어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한 자씩 떼어 읽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천건괘의 괘사는 건의 성정을 말한 것으로 끝내버렸고, 그에 뒤따르는 점사(占辭)가 붙었어야 했는데 그것이 생략되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중지곤괘는 원형이정(元亨利貞) 다음으로 이 괘를 얻은 사람에게 주는 점사(占辭)가 붙었다.

그리고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64괘의 괘사(卦辭; 斷辭)를 한눈에 보면, 대개는 ①元, ②亨, ③利, ④貞, ⑤吉, ⑥凶, ⑦无咎 등 일곱 가지가 그 핵심적 요소이며, 나머지는 이들 글자에 붙는 조건들이다. 이 일곱 가지 중에서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은 괘는 64괘 중 관괘(觀卦), 진괘(晉卦), 구괘(姤卦) 등 세 괘뿐이다.

그러니까, 괘사라는 것은, 위 일곱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판단한 것이며, 해당 괘의 상(象)과 점(占) 두 요소가 합쳐진 문장으로 극도로 압축된 것이다. 단, 여기서 상(象)이란 상, 하괘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자연의 기운이 어떠한가를 말하는 것이며(①∼④), 점(占)은 그 자연의 기운이 인간에게 미치어 어떠한 양태로 나타나는가를 설명한 내용을 말한다(⑤∼⑦).

彖曰:大哉乾元, 万物资始, 乃统天. 云行雨施, 品物流形. 大明终始, 六位时成,时乘六龙以御天. 乾道变化, 各正性命, 保合太和, 乃利贞. 首出庶物, 万国咸宁.
단에서 말했다. 만물의 근원으로서 건괘의 광대함이여, 만물이 시작되는 바탕이고, 이내 하늘을 다스린다. 구름을 움직이어 비를 내리고, 종자에 번져서 형태를 이루게 한다. 시작과 끝을 크게 밝히고, 여섯 자리가 때맞추어 완성되며, 때가 여섯 용을 타고서 하늘을 다스린다. 건도가 변화하여 각기 타고난 성품과 천명을 바르게 하고, 보호하고 합하여 크게 조화롭게 하니, 마침내 이롭고 정도를 견지한다. 여러 물체에서 우두머리가 나오고, 만국이 두루 평안하다.

○ 가시적인 하늘은 광대(廣大)하고, 그 하늘의 성품인 강건(剛健)을 곧 ‘건(乾)’이란 말로써 응축했다. 그런데 그 건의 기운이, 만물이 시작되는 바탕이 되고, 하늘을 다스리는 실체라고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 건(乾)이 하늘을 다스리는 결과로 나타난, 그 구체적인 모습이 바로 구름을 움직이게 하여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고, 그 빗물로써 만물을 성장하게 하고, 땅속의 종자에까지 싹이 돋게 함으로써 만물의 형태를 갖추게 하는 것으로써 예를 들었다.

나아가서, 만물에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도 건(乾)의 작용으로 보았는데, 그 시작과 끝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건괘(乾卦)의 육효(六爻)를 육용(六龍)으로 빗대었고, 그 육용의 움직임을 인간의 성장 발전 단계인 여섯 자리로 동일시했는데 이것을 ‘大明终始, 六位时成,时乘六龙以御天’이라고 어렵게 말했다.

그리고 건(乾)이, 만물을 낳고, 그 만물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면서, 스스로 변화하여 만물의 성정과 천명을 바르게 하고, 또 보호하고 합하여 크게 조화를 이루니 두루 이롭고 바름을 견지한다는 평가도 했다. 바로 이런 건의 작용을 ‘건도(乾道)’라고 했으며, 그 건도에 의해서 만물 속에서도 우두머리가 나오게 되듯이, 인간사로 치자면 우두머리가 나와서 여러 나라가 세워지며, 그로 인해서 만국이 평안해지듯이, 만물이 두루 평안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건(乾)은 형체가 없으므로, 이해하기 쉽게 그 형상을 부여한 것이 바로 ‘용(龍)’이고, 이 용이 건괘의 육효이다. 그러니까, 건괘(乾卦)의 육효를 여섯 마리의 용으로 빗대어서 그 용의 움직임 곧 작용을 설명한 것이 육효사(六爻辭)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쉽게 말해, 건(乾)은 용(龍)으로서 하늘을 다스리는데, 그 결과가 바로 구름을 움직이게 하고, 그것으로써 비를 내리게 하여, 만물을 적시고, 싹이 트고 자라게 하여 그 시작과 끝을 결정지으며, 그 가운데 우두머리가 나오게 한다. 바로 이런 작용, 이런 기능을 건도(乾道)라는 말로써 응축 표현했다.

이 건도가 작용함으로써 인간 세상에서는 우두머리가 나와서 만국(萬國)을 건설하고, 그것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이 말은 생략되었지만), 인간 세상이 두루 평안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乾=天=龍=君’으로 빗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건도(乾道)라는 말의 의미를 유추하여 그 개념을 정리할 수도 있다. 곧, ①광대하고 강건하며, ②하늘을 다스려(統天, 御天), ③만물의 시작과 끝을, 다시 말해, 흥망성쇠를 존재하게 하고, ④각각의 만물에 성정과 운명을 바르게 부여하여 큰 조화를 주관하는 주체로서 만물에 두루 이롭고 바른 ‘머리(首)’와 같은 것이 건도(乾道)라고 말이다.

象曰: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상에서 말했다. 하늘의 움직임이 굳세니, 군자는 이로써 보고 깨달아 스스로 강해지도록 쉬지 않고 노력하라.

○ 하늘의 성품은 乾이고, 乾은 健이다. 하늘이 剛健하게 움직이어 구름을 움직이어 비를 내리고, 그럼으로써 만물을 생육 성장하게 하듯이 군자는 그런 하늘을 본받아서 스스로 강해지도록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으로써 백성을 양육하고 잘 살게 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하늘은 군자로, 하늘의 강건함은 군자의 강건함 곧 능력으로 연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初九,潜龙勿用.
초구, 물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 초구는 자리가 바르고, 짝인 구사와 호응하지 못하며, 가깝게 지낼 이웃도 없다. 초구는 ‘잠룡(潛龍)’으로 빗대어졌는데 이 잠룡은 무슨 의미인가? 초구는 건괘의 가장 아래에 있는 양효로, 사람으로 치면 가장 미천한 자리에 있는 남자이다. 그래서 그 자리가 높아지도록 때를 기다리며 노력해야 한다.

건괘(乾卦)의 육효가 다 똑같은 양효이지만, 그 자리의 높낮이가 달라서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 여기서는 일단, 하늘을 다스리는 여섯 용 가운데 가장 미천한 자리에 있는, 미력한 능력을 지닌 용이다. 따라서 이 용은 쓰지 말라고 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너무 어리고 배우지 못해서 아직 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象曰:潜龙勿用, 阳在下也.
상에서 말했다. '물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함은, 양이 아래에 있음이다.

○ 양이 아래에 있다는 것은, 초구의 자리가 가장 아래에, 미천한 자리라는 뜻이고, 동시에 쓰일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약, 육효를 둘씩으로 나누어 보면, 상, 중, 하로 구분되는데, 상(上)은 상구와 구오가 해당하며 하늘이라고 말할 수 있고, 중(中)은 구사와 구삼이 해당하며 만물이 머무는 하늘과 땅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하(下)는 구이와 초구가 해당하며 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구는 땅 아래, 곧 땅속이거나 그 웅덩이의 물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잠룡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니까, 세상에 드러나 있지 않은, 미력한, 혹은 미미한 존재라는 뜻이다.

九二, 见龙在田, 利见大人.
구이, 밭에 나타난 용이니, 대인을 만나는 이로움이 있다.

○ 구이는 자리가 바르지 못하고, 짝인 구오와 호응하지 못하며, 가깝게 지낼 이웃도 없다. 그리고 중도를 얻었다. 그런 구이는 밭으로 나온 용, 곧 ‘현용(見龍)’으로 빗대어졌는데 이 현룡은 무슨 의미인가?

용은 근본적으로 점점 자라서 하늘로 날아올라야 하는데 구이는 초구처럼 땅속이나 물속에 숨어있는 어린 용은 아니고, 육지인 밭으로 걸어 나온 용이다. 조금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어미용을 만나서 도움을 받으면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 성숙할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대인의 도움을 받으면 이롭다는 뜻이다. 이처럼 효사(爻辭)는 앞부분이 자연의 형상물로 빗대어지고, 뒷부분은 사람의 일로 빗대어서 말해진다. 이런 이중구조로 되었기에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그 의미 판단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象曰:见龙在田, 德施普也.
상에서 말했다. '밭에 나타난 용이라' 함은, 널리 덕이 베풀어짐이다.

○ 덕이 널리 베풀어진다는 것은, 구이의 덕이 아랫사람에게 널리 베풀어진다는 뜻일까? 아니면, 대인(大人)의 덕이 구이에게 베풀어진다는 뜻일까?

모호한 면이 없지 않다. 구이가 아랫사람에게 덕을 베풀기에는 그리 높지 않은 신분이나 중도를 얻었기에 능력은 있다. 그런가 하면,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대인의 덕이 구이에게 베풀어지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물속에 머물러있던 용이 조금 자라서 육지인 밭으로 나왔기에 그 모습을 드러내 보였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서 어렵지 않게 타자의 도움을 받아서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스스로 노력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기에 대인을 찾아가 만나서 그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단계라는 뜻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자신의 덕을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대인의 덕이 구이에게 베풀어지는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혹자는 중천건괘의 육효를 순(舜)임금의 개인 성장사로 여겨서 양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九三, 君子终日乾乾, 夕惕若, 厉无咎.
구삼, 군자가 종일 건성건성 했으니 저녁에 걱정하나 위태롭지만 무구하다.

○ 구삼, 자리가 바르고, 짝인 상구와 호응하지 못하며, 가깝게 지낼 이웃도 없다. 그리고 중도를 지나쳐 있다. 이런 구삼을 용으로 빗대어 말하지 않았으나 굳이, 용으로 빗대어 말한다면, 게으름을 피운 태만한 용 곧 ‘怠龍’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공자, 정이천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사람이 ‘君子終日乾乾’을 ‘군자가 종일토록 그침이 없이 힘쓴다’라고 해석한다. 문제의 ‘乾乾’을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으로 풀이하면, 구삼은 부단히 힘쓰는 ‘勉龍’이나 ‘勵龍’이나 ‘邁龍’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래 상사(象辭)를 비롯하여 문언(文言)의 해석이 다 그렇게 되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의문이 해소되어야 한다. 그것은, ‘종일 쉬지 않고 노력했는데 왜, 저녁에 근심 걱정해야 하며, 위태롭기까지 한가?’이다.

구삼은 낮에 건성건성 했기에 저녁이 되어서야 근심 걱정이 몰려든 것이고, 그래서 위태로워졌으나 무구하다는 뜻으로 필자는 이해하였다. 이런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은 문언(文言)이나 상사(象辭) 등을 고려하지 않은, 효사 문맥으로 본 반사적인 판단에 기초한 해석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구삼 군자를 낮에 강건하게 노력하고, 저녁에도 걱정되어서 강건하게 노력하는 상으로 본다. 물론, 인간사적으로 이런 타입이 있긴 하다. 소위, 노력형(努力型)의 인간이다.

象曰:终日乾乾, 反复道也.
상에서 말했다. '종일 건성건성 했다' 함은 도를 반복함이다.

○ 도를 반복했다는 것은, 도를 복습(復習)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상사를 전제하면 ‘乾乾’을 쉼 없이 노력하는 강건한 태도로 해석해야 옳다. 만약, 필자처럼 건성건성 일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이 상사(象辭)의 反復道也가 未盡道也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九四, 或跃在渊, 无咎.
구사, 혹, 못에서 뛰어오름이니, 무구하다.

○ 구사는 자리가 바르지 못하고, 짝인 초구와 호응하지 못하며, 가깝게 지낼 이웃도 없다. 구사는 외괘(外卦)의 초구로서 날아오르기 위해서 연습하는 용이다. 거의 날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용이 성장하여 물속에서 혹은 땅 위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일이 단번에 이루어지겠는가? 부단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이렇게 본다면, 구사는 ‘躍龍’으로 도약을 시도하는 용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충분히 성장하고 노력해서 이제는 그야말로 크게 변신, 도약(跳躍)할 기회를 엿보는 자이다.

象曰:或跃在渊, 进无咎也.
상에서 말했다. ‘혹, 못에서 뛰어오른다’ 함은, 나아감이 무구하다.

○ 나아감이 무구하다는 것은, 나아갈 준비가 다 되어서 때에 맞게 행동한다는 뜻이고, 그런 나아감에는 화를 입지 않아 재해가 없다는 뜻이다.

九五, 飞龙在天, 利见大人.
구오, 하늘을 나는 용이니, 대인을 만남이 이롭다.

○ 구오는 자리가 바르고, 짝인 육이와 호응하지 못하며, 가깝게 지낼 이웃도 없다. 그리고 중도를 얻었다. 구오는 비로소 뛰어오르기가 성공하여 하늘을 나는 용이 되었다. 소위, ‘비룡(飛龍)’이 된 것이다. 용으로서 최종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여 이제부터 제구실할 수 있는 조건에 놓인 자이다.

목표를 달성하여 자기 자리를 차지했다면 제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인(大人)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늘의 용이 그러하듯이, 인간 세상의 군주 역시 대인의 자문이 필요하다. 군주로서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려면 말이다. 그래서 ‘利見大人’이라는 말이 붙었다.

象曰:飞龙在天, 大人造也.
상에서 말했다. ‘하늘을 나는 용이라’ 함은, 대인이 세움이다.

○ 대인이 세운다는 것은, 대인이 나라를 건립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구오 대인이 나라를 건립했으니 다른 대인의 도움을 받아서 나라를 통치함이 이롭다는 세운다는 뜻이다.

上九, 亢龙有悔.
상구, 높이 오른 용이니, 후회함이 있다.

○ 상구는 자리가 바르지 못하고, 짝인 구삼과 호응하지 못하며, 가깝게 지낼 이웃도 없다. 건괘(乾卦)의 끝자리로 그 도가 극한에 이르렀다. 상구는 ‘亢龍’으로 빗대어졌는데 이 항룡이라는 것은, 너무 높이 올라가서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이고, 그래서 스스로 안위(安危)를 걱정해야 하는 단계이다. 그래서 후회와 뉘우침이 수반된다.

象曰:亢龙有悔, 盈不可久也.
상에서 말했다. ‘높이 오른 용이니, 후회함이 있다.’ 함은, 가득 찬 것은 오래가지 못함이다.

○ 가득 찼다는 것은 극에 달해 있다는 뜻이고,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진다는 뜻이다. 가득 찼기에 곧 점점 줄어드는 상황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옛사람이 해와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가득 차면 비워지고 다 비워지면 다시 차오르는 ‘영허(盈虛)’라는 개념을 도출(導出)해 냈듯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는 ‘종시(終始)’라는 개념과 함께 만유(萬有) 만상(萬象)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 같은 상사가 붙여진 것이다.

用九, 见群龙无首, 吉.
용구, 용의 무리가 보이나 우두머리가 없으니 길하다.

○ 하늘에는 강건한 여섯 용이 있는데 그 용의 무리에는 우두머리가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길하다는 것이다. 우두머리가 없다는 것은, 여섯 마리의 용이, 한 마리 용과 같다는 뜻이고, 한 마리 용과 같다는 것은, 하는 일이 같다는 뜻이다.

이미, 육효사(六爻辭)에서 본 것처럼 용의 성장 과정이 있을 뿐 실은 여섯 마리의 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 효(爻)로써 말하자면, 육효가 모두 짝이 없고, 가깝게 지낼 이웃도 없다. 짝과 이웃이 없다는 것은 ‘관계(關係)’가 없다는 뜻이다.

관계가 없다는 것은, 오직 한 마리 용으로서 그 자리 곧 성장하는 과정, 곧 단계가 있을 뿐으로, 양으로만 구성되었기에 일(초), 삼, 오효만 자리가 바르고, 이, 사, 육(상)효는 자리가 바르지 못하다. 바로 이 자리와 성장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 때문에 다소의 길흉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한 마리의 용으로서 그 삶이 대체로 길한 것이다.

초효는 勿用이고, 이효는 利見大人이며, 삼효는 惕, 厲, 无咎이고, 사효는 无咎이며, 오효는 利見大人이고, 상효는 有悔이다. 이런 길흉을 판단한 효사가 ‘元亨利貞’이라는 괘사(卦辭)의 후반부에 붙지 않았을 뿐이다.

象曰:用九, 天德不可为首也.
상에서 말했다. ‘아홉 구를 쓴다’ 함은, 하늘의 덕이 머리가 될 수 없음이다.

○ 하늘의 덕이 머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하늘의 덕만으로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는 뜻이고, 이는 하늘의 덕만으로는 온전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든 덕은 관계에서 나오고, 그 관계에서 필요로 한다. 간단히 말해서, 하늘의 덕이 제구실하려면 반드시 이와 상대적인 자리에 있는 땅의 덕이 관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천도(天道)가 우두머리 구실을 하려면 지도(地道)가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用九’란 아홉이란 숫자 9를 쓴다는 뜻인데, 9를 쓴다는 것은 9가 부린다는 뜻이다. 이때 9는 양(陽)의 수(數)인 1, 3, 5, 7, 9 가운데에서 가장 큰 수이고, 양 가운데 가장 큰 양이라는 뜻이다. 가장 큰 양의 수 9가 양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숫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가? 9는 낙서(洛書)에서 ‘太陽之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用九란 태양지수 곧 양 가운데 가장 큰 양의 수를 쓴다는 뜻이다.

중천건괘와 짝인, 음(陰) 여섯으로만 된 중지곤괘(重地坤卦)에서는 음을 상징하는 수로 6을 선택했는데 그래서 ‘用六’이라는 말을 쓰는데 왜 그러한가? 음의 수(數)로는 2, 4, 6, 8, 10이 있는데 가장 작은 2를 쓴 것도 아니고, 가장 큰 수인 10을 쓴 것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6을 쓰고서 ‘用六’이란 말을 썼는데 그 이유인즉 역시 낙서(洛書)에서 太陰之數가 6이기 때문이다. 6을 음(陰)으로서 가장 큰 수로 본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한다. 곧, ‘태양지수가 왜 9이고, 태음지수가 왜 6인가?’라는 물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낙서(洛書)에 의하면, 태양지수는 9로, 태음지수는 6으로, 그리고 소양지수는 7로, 소음지수는 8로 각각 도식되었기 때문이다. 태양지수가 9라는 것은 태양이 양 9개로 이루어졌고, 태음지수가 6이라는 것은 음 6개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소양지수가 7이라는 것은 양 7개로 이루어졌고, 소음지수가 8이라는 것은 음 8개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사실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양은 숫자가 커질수록 그 세력도 커지는데, 음은 숫자가 작을수록 그 세력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필자가 낙서를 보고서 분별해 낸 내용이다. 누구한테 배웠다거나 들은 내용이 아니다.

양효 셋으로 구성된 건괘(乾卦)는, 만물을 낳는 근원적인 인자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根源)이자 근본(根本)이며, 그 활동 범위가 넓고 크다[元=①근본, 근원+②廣大]. 그리고 그 하는 일은 빈틈이 없이 완벽하고[亨], 모든 생명에게 이로우며[利], 일하는 자세와 마음은 끝까지 바르다[貞=正+固].

그런데 효사(爻辭)로 내려오면, 그 하늘의 작용을 ‘龍’으로 빗대어 놓았고, 용(龍)의 성장 발달과정이 육효에 적용하였다. 곧, ①물속에서 머물며 숨어있는 용[潛龍], ②땅 위로 나와 그 모습이 보이는 용[見龍=田龍], ③군자가 게으름을 피우듯이 하루를 건성건성 보내기도 하는 것과 같은 용[怠龍 ↔ 邁龍], ④또 연못에서 뛰어오르기를 시도하는 용[躍龍], ⑤마침내 하늘을 나는 용[飛龍], ⑥너무 높이 올라가서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용[亢龍] 등이 그것이다. 물론, 자연에서의 이 龍은 인간사회의 君子 곧 君主를 빗댄 말이다.

이렇게 여섯 마리의 용으로써 건괘의 양효를 빗대어 놓았는데 이들 용의 무리에는 우두머리가 없다. 결국, 한 마리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관계(關係)가 있을 수 없고, 오직, 성장 과정의 단계인 자리가 있을 뿐으로 육효의 길흉이 조금 다를 뿐이다. 구삼과 상구만 척(惕), 려(厲), 회(悔)가 있으나 그조차 다 무구(无咎)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길하다.

▶️ 夕(저녁 석, 한 움큼 사)은 ❶상형문자로 夕(석)은 달의 모양을 본떴다. 아주 옛날엔 月(월; 달)과夕(석)의 구별은 없었다. 나중에 달 자체는 月(월), 달이 뜨는 밤의 뜻으로는 夕(석)이 쓰였다. 다시 나중에 해질녘은 夕(석), 밤은 夜(야)로 구별해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夕자는 '저녁'이나 '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夕자는 달을 본떠 그린 것으로 갑골문에 나온 夕자를 보면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달'을 뜻하는 月(달 월)자와는 매우 비슷하지만 夕자는 가운데 점이 없는 모습으로 구별되었다. 夕자는 달빛이 구름에 가려진 모습이라 하여 '저녁'을 뜻하게 된 것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夕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저녁'이나 '밤'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夕(석, 사)은 ①저녁 ②밤 ③밤일 ④끝, 연말(年末), 월말(月末), 주기(週期)의 끝 ⑤서(西)쪽 ⑥쏠리다, 기울다, 비스듬하다 ⑦(날이)저물다 ⑧저녁에 뵙다, 그리고 ⓐ한 움큼(손으로 한 줌 움켜쥘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저물 모(暮),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침 단(旦), 아침 조(朝)이다. 용례로는 저녁 나절의 해를 석양(夕陽), 저녁에 발행된 신문을 석간(夕刊), 저녁 때의 경치를 석경(夕景), 해질 무렵의 안개를 석하(夕霞), 해가 질 무렵을 석각(夕刻), 저녁에 끼니로 먹는 밥을 석반(夕飯), 밥을 짓는 저녁 연기를 석연(夕煙), 저녁 때 뜨는 달을 석월(夕月), 해 진 뒤 어스레할 무렵 또는 흐린 저녁 때를 석음(夕陰), 저녁 밥을 먹고 난 뒤를 석후(夕後), 저녁놀이 타듯이 고운 모양을 석려(夕麗), 저녁에 끼는 안개를 석무(夕霧), 저녁 때 넘어가는 불그레한 햇빛을 석조(夕照), 해가 진 뒤에 어스레하게 남는 빛을 석훈(夕曛),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로 음력 8월 15일 한가위를 추석(秋夕), 섣달그믐날 밤으로 음력 12월 말일을 제석(除夕), 아침과 저녁을 조석(朝夕), 아침과 저녁 또는 위급한 시기나 상태가 절박한 모양을 단석(旦夕), 달 밝은 밤을 월석(月夕), 밤을 새움을 통석(通夕), 오늘 저녁을 금석(今夕), 매일 저녁을 매석(每夕), 내일 저녁을 명석(明夕), 어제 저녁을 작석(昨夕), 승려가 저녁밥을 먹을 때라는 뜻으로 이른 저녁 때를 일컫는 말을 승석(僧夕), 혼례를 올린 첫날밤을 길석(吉夕), 탄생한 날의 저녁을 탄석(誕夕), 하루 저녁 또는 얼마 안 되는 동안을 숙석(宿夕),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를 일석(日夕), 하룻밤 동안 밤새도록을 경석(竟夕), 아침에 베풀었다가 저녁에 폐하여 버린다는 말을 조설석패(朝設夕敗), 아침이 아니면 저녁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매우 임박함을 이르는 말을 비조즉석(非朝則夕),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뜻으로 숨이 곧 끊어질 지경에 이름을 이르는 말을 명재조석(命在朝夕), 형세가 절박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당장을 걱정할 뿐이고 앞일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는 말을 조불모석(朝不謀夕), 아침 저녁으로 뜯어 고친다는 뜻으로 계획이나 결정 따위를 자주 바꾸는 것을 이르는 말을 조변석개(朝變夕改), 꽃이 핀 아침과 달 밝은 저녁이란 뜻으로 경치가 가장 좋은 때를 이르는 말을 화조월석(花朝月夕), 하루 아침 하루 저녁이란 뜻으로 대단히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을 일조일석(一朝一夕), 하루 저녁에 천 가지 생각을 한다는 뜻으로 잠시 동안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일석천념(一夕千念),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이라는 뜻으로 가까스로 살아 가는 가난한 삶을 이르는 말을 조반석죽(朝飯夕粥) 등에 쓰인다.

▶️ 惕(두려워할 척)은 형성문자로 惖은 고자, 愓은 속자, 悐은 동자, 愓(척)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易(역→척)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惕(척)은 ①두려워하다 ②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걱정하다 ③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④빠르다, 신속하다 ⑤놀라다, 깜짝 놀라다 ⑥사랑하는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양을 척연(惕然), 두려워서 한숨을 짐을 척식(惕息), 경계하며 두려워함을 척구(惕懼), 경계하여 두려워하는 생각을 척념(惕念), 두려워하여 깨달음을 척오(惕悟), 경계하여 두려하고 힘씀을 척려(惕勵), 두려워서 조심함을 출척(怵惕),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조심함을 긍척(兢惕),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인척(寅惕), 몹시 두려워함을 위척(威惕), 자기의 과실을 반성하고 두려워함을 성척(省惕), 근육이 수축하여 바르르 떪 또는 그런 현상을 근척(筋惕), 날마다 부지런히 힘쓰고 삼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일건석척(日乾夕惕) 등에 쓰인다.

▶️ 若(같을 약, 반야 야)은 ❶회의문자로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右(우; 오른손, 손으로 물건을 잡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먹을 수 있는 나물을 캐는 일의 뜻으로 만약의 뜻으로 쓰임은 가차(假借)의 뜻이다. ❷상형문자로 若자는 '같다'나 '만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若자는 艹(풀 초)자와 右(오른쪽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若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갑골문에서는 양손으로 머리를 빗는 여인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갑골문에서의 若자는 '온순하다'나 '순종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금문에서부터는 여기에 口(입 구)자가 추가되면서 '허락하다'라는 뜻이 더해졌다. 하지만 소전에서는 若자가 '같다'나 '만약'과 같은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言(말씀 언)자를 더한 諾(허락할 낙)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若(약, 야)은 ①같다 ②어리다 ③이와같다 ④좇다 ⑤너 ⑥만약(萬若) ⑦및 ⑧이에(及) ⑨바닷귀신 ⑩어조사(語助辭) ⑪성(姓)의 하나 그리고 ⓐ반야(般若;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야) ⓑ난야(蘭若; 사찰)(야) ⓒ성(姓)의 하나(야)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정도나 양 따위가 얼마 되지 아니함을 약간(若干), 어떠함을 약하(若何),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를 약혹(若或), 바둑에서 아직 어리석은 경지에 있다는 약우(若愚), 무덤이 집 모양과 같음 또는 그런 무덤을 약당(若堂), 자기의 몸이나 뜻이 더럽혀질 것과 같이 생각함을 약매(若浼), 갓난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함을 약보(若保), 이와 같이를 약시(若是), 이렇게를 약차(若此), 만일이나 혹시를 만약(萬若), 과연이나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를 과약(果若), 분별이나 망상을 떠나 깨달음과 참모습을 환히 아는 지혜를 반야(般若), 늙은이와 젊은이를 노약(老若), 가정하여 말하자면을 기약(假若),큰 일을 당하여도 아무렇지 않고 침착함을 자약(自若),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가만히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란 뜻을 이르는 말을 약팽소선(若烹小鮮), 부절을 맞추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꼭 들어맞아 조금도 틀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약합부절(若合符節), 있는 둥 마는 둥을 일컫는 말을 약존약망(若存若亡), 이러 이러함을 일컫는 말을 약시약시(若是若是), 자기 나라와 힘이 대등한 나라를 얻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훌륭한 인재를 얻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약득일적국(若得一敵國),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방약무인(傍若無人),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는 뜻으로 더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함을 이르는 말을 명약관화(明若觀火), 마음에 충동을 받아도 동요하지 않고 천연스러운 것을 이르는 말을 태연자약(泰然自若), 대문 안 뜰이 저자와 같다는 뜻으로 집안에 모여드는 사람이 많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문정약시(門庭若市), 문 앞이 시장과 같다는 뜻으로 대문 앞에 시장이 선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다는 말을 문전약시(門前若市)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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