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사성어

유변소적(唯變所適)

작성자장경식|작성시간22.08.13|조회수1,301 목록 댓글 0

 

유변소적(唯變所適)

오직 변해갈 뿐이다

 


唯 : 오직 유(口/8)
變 : 변할 변(言/16)
所 : 바 소(戶/4)
適 : 맞을 적(辶/11)

출전 : 주역(周易) 계사하전(繫辭下傳)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 下)에 나오는 구절로 '변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계사전은 주역 '십익(十翼)' 중 하나로, 주역 사상의 난해안 내용을 체계적이고 철학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계사전은 구성상 '계사상전'과 계사하전'으로 나뉘는데, '계사상전'이 형이상적이고 본체론적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면, '계사하전'은 형이학적이며 인사적인 내용을 많이 포괄하고 있다.


易之爲書也, 不可遠.
(역지위서야, 불가원)
역이 책이 되니 멀리 할 수 없다.

爲道也屢遷, 變動不居,
(위도야루천, 변동불거)
도가 되니 자주 옮기고 바꿔 움직이니 머물지 않고

周流六虛, 上下无常,
(주류육허, 상하무상)
두루 흘러 여섯이 비며 위아래 늘 같음이 없고

剛柔相易, 不可爲曲要,
(강유상역, 불가위곡요)
굳셈 부드러움이 서로 바뀌어 꼽음을 구할 수 없어

唯變所適(유변소적).
오직 만나는바 바뀐다.

其出入以度, 外內使知懼.
(기출입이도, 외내사지구)
그 드나듦을 재니 안팎으로 두려움을 알게 한다

又明於憂患與故, 无有師保,
(우명어우환여고, 무유사보)
또 걱정함과 까닭에 밝아 스승과 보모 있음이 없으니

如臨父母(여림부모).
어버이에 다가감과 같다.

初率其辭, 而揆其方,
(초솔기사, 이규기방)
처음에 그 말을 따르고 그 방법을 헤아리니

旣有曲常(기유곡상).
이미 꼽는 법이 있다.

苟非其人, 道不虛行.
(구비기인, 도불허행)
참으로 그 사람이 아니면 道는 그냥 다님이 아니다


繫辭傳 下, 第八章

易之爲書也 不可遠 易之爲道也 屢遷 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无常 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
易의 글됨이 가히 멀지 아니함이요, 易의 도됨이 여러 번 옮김이라, 변하고 움직여서 거하지 아니하며 六虛 속에 두루해서 오르고 내림에 항상함이 없으며, 剛과 柔가 서로 바뀌어서 典要를 삼을 수 없음이요, 오직 변해서 가는 바니,

其出入以度 外內使知懼
그 나가고 들어가는 데 주역의 일정한 법도로써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外內에 두려운 것을 알게 하며,

又明於憂患與故 无有師保 如臨父母
그것 뿐만 아니라 우환과 연고에 밝힌다. 師保가 없으나 부모가 임하는 것과 같으니

初率其辭而揆其方 旣有典常 苟非其人 道不虛行
처음에 그 말(辭)를 거느려서 그 방법을 찾아 보건대 이미 일정한 법칙이 있고 항상함이 있거니와,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게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해설)
8장은 易의 구성 원리에 대한 것이다. 易은 易簡之道로 가까이 있다. 역은 易簡, 變易, 不易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간은 계사상편 1장에서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變易에 대하여 설명한다. 변해서 변동은 공간적 의미로 六爻에 오르고 내리는데 고정됨이 없다. 剛과 柔가 서로 바뀐다. 바꾸기 때문에 일정한 규범으로 삼을 수 없다. 변함만 있다.

그 다음은 不易에 대하여 설명한다. 나가고 들어오는데 법도가 있다. 外內는 上卦와 下卦를 말한다. 두려움을 알게 하고 또 우환과 연고를 밝힌다. 스승의 보호는 없으나 부모가 임한 것과 같다. 처음에는 그 말씀을 따라 그 방법을 헤아려 보건데 이미 항상된 법전이 있다. 곧 불역이다.

 

유변소적(唯變所適)

오직 변해갈 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 얼굴만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얼굴도 변해간다. 얼굴이 변한다는 것은 정기와 형태가 변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얼굴이 변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계를 구성하는 공통된 제1의 요소를 동양철학에서는 기(氣)라고 불러왔다. 이 기는 여러 다양한 각도에 따라 글자와 단어가 결합되면서 그 의미가 구체화된다.

그 가운데 기후(氣候)라는 표현이 있다. 후(候)란 글자는 제후의 후(侯)와 글자의 어원이 동일하다. 예전에 봉건국가에서 천자가 제후에게 각 지역을 분할하여 다스리기 위해 그 지역의 최고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리고는 제후에게 그 지역의 상황을 정기적으로 묻고 점검하였다.

일정한 분할을 하였다는 의미에서는 일종의 마디를 만든 것이기도 하니 절후란 표현이 그런 의미이다. 우리의 생활이나 감정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날씨도 큰 틀에서 모두 기후의 변화이다.

제후국이 천년동안 조직해 놓은 마디 그대로 있지 않듯이 절후에도 변화가 생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뚜렷했던 마디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봄 가을이 매우 짧아지며 1년 동안의 전체적인 기후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 천자가 순회를 하면서 각 제후국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제후들이 천자에게 찾아와 조공을 바치면서 각국의 정황을 보고하였다.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알려면 자주 물어보아야 하기 때문에 후(候)라는 글자에는 염탐이나 물어본다는 뜻이 들어있다.

나의 어릴 적 절후를 생각하면서 그저 그렇지 하면 달라지는 기후를 알아차릴 수 없다. 자주 물어보아야 한다. 기후 예측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는 계속해서 오직 변해갈 뿐이기 때문이다.

 

막힘에 이르면 변해야 한다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 이런 어구가 담겨 있다. "막힘에 이르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새 길이 열려 통하고, 통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다(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지금 대한민국 경제상황은 앞뒤, 전후좌우가 다 막혀 있는 형국이다. 6·25전쟁 직후 폐허에서 출발했던 한국 경제는 세계가 경이의 눈으로 봤던 발전의 역사가 마침내 벽에 부닥치면서 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다.

 

오랫동안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아온 우리 사회는 최근 들어 이전과 차원이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갖췄다고 자부해온 제조업은 중국과 일본의 협공에 의외로 취약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경제와 주력 산업을 위협하는 중국 기업의 도전이나 일본의 엔저 현상을 넘어 상당기간 지속될 구조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지난 수십년간 향유해온 '박정희 산업 모델'이 마침내 한계에 왔음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지금과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그대로 고집한다면 글로벌 경제의 작은 충격에도 한국 사회는 큰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 지 오래다. 계사전의 표현 그대로 '궁(窮)'의 단계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답답함과 초조함은 강도를 더해간다.

 

작금의 정부에 현상의 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꽉 막힌 현실을 뚫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노동, 공공,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과제는 어느것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다. 당장 국회 안에 똬리를 튼 기득권세력으로 인해 입법과정은 꼬일 대로 꼬인 처지고 포퓰리즘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시도도 기득권으로 무장한 이익집단에 봉쇄되는 구조다.

 

나라의 앞길이 막혀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음에도 많은 사람이 기존의 방법을 고수하고 기존의 방법으로만 벽을 뚫으려 한다. 변화의 길, 즉 새로운 방식을 택하지 않으니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질 리 없다. 바로 이것이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한국 경제가 지금의 폐색(閉塞) 상황에 주저앉고 만다면 우리에게는 결코 새로운 미래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 전 영역에서 혁신적 사고와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루빨리 국가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궁즉변(窮卽變)은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경제는 진화하는 생물과 같아서 기존의 틀만으로는 결코 지속적 성장을 꾀할 수 없다. 이제 우리 스스로 변화를 찾아 나서야 하고, 변화는 통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그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우리 앞에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변즉통(變卽通)의 가르침이다.

 

한국 경제에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소재와 부품산업이다. 이미 매년 1,0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재와 부품 수출시장 점유율이 머지않아 세계 4위로 올라서리라는 전망이다.

 

바이오 부문을 비롯해 국내 벤처기업들의 질적·양적 성장세도 눈부시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수는 이미 3만여개에 이른다. 평균 매출액 성장률도 일반기업보다 훨씬 빠르다. 일각에서는 '벤처 르네상스'의 도래로 평가할 정도다. 이들 벤처기업이 자라서 연간 매출 1조원을 올리는 2만개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경우 대한민국 경제는 탄탄한 기초 위에 올라서리라는 장밋빛 청사진도 나오고 있다.

 

경제 패러다임의 변혁을 추동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몫이다. 정부가 앞장서 각 부문에서 혁신과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기존의 부실기업을 솎아내고 고용제도를 유연화하며 국영기업과 공공 부문을 개혁하고 교육, 금융, 의료,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 연기금과 복지제도의 개혁으로 재정안정을 꾀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변해야만 통할 수 있고 통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발전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 통즉구(通卽久)에서 구(久)가 바로 이런 단계를 뜻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변화를 이해하는 자만이 세상의 주인으로 올라설 수 있는 법이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자연의 세계는 스스로 생존을 위해 변하고 있다. 만일 그렇게 변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죽었거나 죽게 될 것들일 것이다. 우리 사람도 기존에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새로운 변화가 가져다주는 위험과 고통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고 변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 삶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의 발달과 정보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스스로 변화해 간다. 부모와 자식, 신세대와 기성세대, 심지어는 젊은이 자신들 간에도 보이지 않는 세대 차이를 느끼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사회 현실에서 누가 누구를, 그리고 어떻게 고쳐 나가고 변화시킬 것인가? 정확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남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이겨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자기에게 가장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자는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새로워지며 변화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새로워지지 못하고 남들만이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오늘의 사회는 잘못된 생각, 잘못된 습관, 잘못된 관행 등 옳지 못한 모든 것들을 변화시켜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나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나이다. 내 생각이 변해야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해야 습관이 변하며, 습관이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외롭고 아프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매달고 살아간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그 아픔을 감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자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슬픔을 혼자서 삭여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더 성공하고 행복해지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나의 습관과 태도가 변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은 자꾸 나 아닌 타인에게 문제를 돌리고 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얘기해 농담이 아니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사람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의 핵심 교훈으로 '목위민유호(牧爲民有乎: 통치자는 백성을 위하는 일할 때만 존재 이유가 있다)'를 말했다. 또한 다산은 평소 '노즉수(怒則囚)' 세 글자를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노즉수란 화가 날지라도 분노를 드러내지 않고 억제하여 마음속에 가둬둔다는 뜻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이러한 모습이 변화된 삶이 아닐까.

 

영국의 웨스트민터 대성당 묘비에 있는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운 상상력의 날개를 끝없이 펼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나로 인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로 인해 달라지는 모습을 감지할 수 없었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그들이 변하기 전에 만일 나 자신이 먼저 변화했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내 나라가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또 누가 알겠는가? 온 세상까지 변화되었을지도” 

 

▶️ 唯(오직 유, 누구 수)는 ❶형성문자로 惟(유)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隹(추, 유)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唯자는 '오직'이나 '다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唯자는 口(입 구)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隹자는 꽁지가 짧은 새를 그린 것으로 '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새를 그린 隹자에 口자를 결합한 唯자는 본래 새들이 서로 지저귄다는 의미에서 '응답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唯자는 어조사나 '오직', '다만'이라는 뜻이 가차(假借)되어 있다. 그래서 唯(유, 수)는 ①오직, 다만 ②비록 ~하더라도 ③때문에 ④바라건대 ⑤이(어조사) ⑥예, 공손(恭遜)하게 대답하는 말 ⑦생각하다, 그리고 ⓐ누구(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만 단(但), 다만 지(只), 다만 지(祗)이다. 용례로는 오직 그것 하나 뿐임을 유일(唯一), 오직 홀로를 유독(唯獨), 오직 물질만이 존재한다고 하는 일을 유물(唯物), 오직 내가 제일이라는 말을 유아(唯我), 네 네 하고 공손히 대답하는 소리를 유유(唯唯),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 또는 자기만 잘 났다고 자부하는 독선적인 태도를 이르는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일이 선악이나 시비에 상관없이 남의 의견에 조금도 거스르지 않고 따름 곧 남의 말에 맹종함을 이르는 말을 유유낙낙(唯唯諾諾), 둘이 아니고 오직 하나 뿐이라는 뜻으로 오직 하나밖에 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일무이(唯一無二), 오직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 한다는 말을 유공불급(唯恐不及), 비전 등을 오직 한 사람에게만 전하는 일 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전수받은 것을 이르는 말을 유수일인(唯授一人), 혹시나 또 무슨 말을 듣게 될까 겁난다는 뜻으로 한가지 착한 일을 들으면 다음에 듣게 될 착한 것과 겹치기 전에 어서 다 배워 익히려는 열심인 태도를 이르는 말을 유공유문(唯恐有聞) 등에 쓰인다.

▶️ 變(변할 변)은 ❶형성문자로 変(변)의 본자(本字), 变(변)은 간자(簡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련, 변)과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가 뜻을 합(合)하여 마음을 고쳐 사람이 달라진다는 데서 '변하다'를 뜻한다. (련)은 실이나 말이 헝클어지듯이 사물이 뒤섞이는 일, 또 뒤섞인 것을 고치는 일,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는 치는 일, 무리로 무언가 시키는 일, 變(변)은 변하게 하는 일, 변하는 일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變자는 '변하다'나 '고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變자는 䜌(어지러울 련)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䜌자는 말이 실에 꼬여버린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어지럽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變자는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을 뜻하는 䜌자에 몽둥이를 든 모습을 그린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상황이 바뀐다는 뜻이다. 그래서 變자는 어지러운 상황이 바뀌었다는 의미에서 '변하다'나 '고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變(변)은 (1)갑자기 생긴 이상한 일이나 사고 (2)때 없이 생기는 재앙(災殃) (3)난리(亂離), 야단, 변스러움, 등의 뜻으로 ①변하다(變), 변화(變化)하다 ②고치다, 변경(變更)하다 ③변통(變通)하다 ④움직이다 ⑤(조정에)고변(告變)하다 ⑥놀라게 하다 ⑦다투다 ⑧속이다 ⑨어그러지다 ⑩좁다 ⑪변화(變化) ⑫변고(變故) ⑬재앙(災殃), 재난(災難) ⑭상(喪), 죽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될 화(化), 고칠 개(改), 바꿀 역(易), 고칠 경(更), 가죽 혁(革)이다. 용례로는 바꾸어 고침을 변경(變更), 재변이나 사고를 변고(變故), 이랬다저랬다 변하기를 잘하는 성질이나 태도를 변덕(變德), 움직여서 달라지거나 달라지게 함을 변동(變動), 사변으로 일어난 소란을 변란(變亂), 달라진 모양이나 모습을 변모(變貌), 성이 나서 얼굴빛이 달라짐을 변색(變色), 어떠한 대응 관계로 변화하는 수를 변수(變數), 몸의 모양을 바꿈을 변신(變身), 마음이 달라짐을 변심(變心), 기원을 같이하는 개체 사이에서 형질이 다른 것이 나타나는 현상을 변이(變異), 옷차림이나 모습을 다르게 꾸밈을 변장(變裝),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바꿈을 변절(變節), 고쳐 만듦을 변조(變造), 바뀌어 달라진 종류를 변종(變種), 질이 달라짐을 변질(變質), 변하여 바뀜을 변천(變遷), 어떤 원칙이나 법칙에서 벗어나 달라진 법칙을 변칙(變則), 변하여 달라진 상태를 변태(變態), 형편과 경우를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막힘 없어 잘 처리함을 변통(變通), 급격하게 바뀌어 아주 달라짐을 변혁(變革), 모양이나 형식 따위가 달라짐을 변형(變形),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어 달라짐을 변화(變化), 달라져서 바뀜을 변환(變換), 변화하거나 변경할 수 있음을 가변(可變), 갑자기 심하게 변하는 것을 격변(激變), 갑자기 달라짐을 급변(急變), 갑자기 변함을 돌변(突變), 남에게 모욕을 당함을 봉변(逢變), 변하지 아니하거나 변하게 하지 아니함을 불변(不變), 사람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천재나 그밖의 변고를 사변(事變), 괴이한 변고를 이변(異變), 변화가 심해 종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변화무상(變化無常), 갑자기 생긴 일을 우선 임시로 둘러 맞춰서 처리함을 일컫는 말을 임시변통(臨時變通), 그때그때 처한 뜻밖의 일을 재빨리 그 자리에서 알맞게 대처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임기응변(臨機應變),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 볼 정도로 바뀐 것을 이르는 말을 상해지변(桑海之變), 높은 언덕이 변하여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높은 언덕으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극심하게 뒤바뀜을 이르는 말을 능곡지변(陵谷之變), 병풍 사이의 변이라는 뜻으로 내부에서 일어난 변란 또는 형제간의 싸움을 이르는 말을 소장지변(蕭牆之變), 아침 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뜻으로 계획이나 결정 따위를 자주 바꾸는 것을 이르는 말을 조변석개(朝變夕改) 등에 쓰인다.

▶️ 所(바 소)는 ❶회의문자로 음(音)을 나타내는 戶(호; 집을 나타냄, 소)와 도끼(斤)로 찍은 그 곳이라는 뜻이 합(合)하여 '곳'을 뜻한다. 나무를 베는 소리를 일컬은 것이었으나 나중에 處(처; 곳)대신 쓴다. ❷형성문자로 所자는 '곳'이나 '지역', '지위', '위치', '얼마'와 같이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所자는 戶(지게 호)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所자는 본래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를 뜻했던 글자였다. B.C 470년경의 시가집인 시경(詩經)에는 '벌목소소(伐木所所)'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서 所所란 '나무를 찍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所자는 본래 나무를 찍는 소리를 뜻하기 위해 戶자는 발음요소로 斤자는 의미요소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 '장소'나 '자리'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所(소)는 ①바(일의 방법이나 방도) ②것 ③곳, 일정한 곳이나 지역 ④처소(處所) ⑤관아(官衙),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곳 ⑥지위(地位), 자리, 위치(位置) ⑦장소(場所)를 세는 단위(單位) ⑧기초(基礎) ⑨도리(道理), 사리(事理) ⑩경우(境遇) ⑪얼마 ⑫쯤, 정도(程度) ⑬만일(萬一) ⑭있다, 거처(居處)하다 ⑮~을 당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곳 처(處)이다. 용례로는 수입이 되는 이익을 소득(所得), 일정한 기관이나 단체에 속함을 소속(所屬), 들려 오는 떠도는 말을 소문(所聞), 가지고 있음 또는 그 물건을 소유(所有), 있는 곳이나 있는 바를 소재(所在), 매우 귀중함을 소중(所重), 어떤 일에 있어서 의미나 의의를 가지거나 쓸모가 되는 바를 소용(所用), 요구되거나 필요한 바를 소요(所要),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바를 소위(所謂), 바라는 바나 기대하는 바를 소망(所望), 원함 또는 원하는 바를 소원(所願), 몸에 지님 또는 지닌 것을 소지(所持),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옳다고 믿고 그에 따라 하려고 하는 생각을 소신(所信), 마음속에 품고 있는 회포를 소회(所懷),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을 장소(場所), 사는 곳을 주소(住所), 보초가 서 있는 곳을 초소(哨所), 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을 업소(業所), 사람이 살거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곳을 처소(處所), 몸 가운데에 목숨에 관계되는 중요한 곳을 급소(急所), 무덤이 있는 곳을 묘소(墓所), 머물러 묵는 곳 또는 숙박하는 곳을 숙소(宿所), 원하던 바를 이룬다는 말을 소원성취(所願成就), 나아가는 곳마다 적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소향무적(所向無敵),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을 무소불능(無所不能), 못 할 일이 없음 또는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말을 무소불위(無所不爲), 알지 못하는 바가 없다는 뜻으로 매우 박학다식 하다는 말을 무소부지(無所不知),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있다는 뜻으로 세상 사람을 속일 수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십목소시(十目所視), 어떤 일에 적당한 재능을 가진 자에게 적합한 지위나 임무를 맡김을 적재적소(適材適所), 훌륭한 소질을 가지고도 그에 알맞은 지위를 얻지 못한다는 말을 부득기소(不得其所),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리지 못할 생각이나 평범하지 않는 생각을 이르는 말을 비이소사(匪夷所思) 등에 쓰인다.

▶️ 適(맞을 적)은 ❶형성문자로 适(적)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啇(적)으로 이루어졌다. 適(적)은 상대방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일, 몇 개의 길이 있는 중에서 어느 것인가를 골라서 나아감, 또 '상대방을 향하다', '적중하다', '적당'이란 뜻에도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適자는 '맞다'나 '마땅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適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啇(밑동 적)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啇자는 화초 아래에 입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適자는 본래 '길을 골라가다'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여러 갈래의 길 중에 내가 가야 할 적합한 길을 고른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適자는 '맞다'나 '마땅하다'와 같이 '적합하다'라는 뜻만 남아있다. 그래서 適(적)은 ①맞다 ②마땅하다 ③가다 ④시집가다 ⑤즐기다 ⑥꾸짖다 ⑦전일하다(마음과 힘을 모아 오직 한 곳에만 쓰다) ⑧마침 ⑨맏아들 ⑩큰마누라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맞추어 씀이나 쓰기에 알맞음을 적용(適用), 꼭 맞음으로 어떤 기준이나 정도에 맞아 어울리는 상태를 적절(適切), 걸맞아서 서로 어울림을 적응(適應), 사물의 정도나 상태 등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또는 잘 어울려 마땅함을 적당(適當), 꼭 합당함을 적합(適合), 알맞고 바름을 적정(適正), 무엇에 알맞은 성질을 적성(適性), 법규나 법률에 맞음을 적법(適法), 마침 알맞은 때나 적당한 시기를 적시(適時), 적당함과 부적당함을 적부(適否), 알맞은 시기를 적기(適期),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이 똑 알맞음을 적중(適中), 어떤 격식이나 자격에 맞음을 적격(適格), 음식의 맛이 구미에 맞음을 적구(適口), 잘못을 나무람을 적과(適過), 눈여겨 봄이나 확실히 봄을 적관(適觀), 향하여 감이나 따라감을 적귀(適歸), 꼭 알맞은 정도를 적도(適度), 알맞은 분량을 적량(適量), 심신에 적합하여 기분이 썩 좋음을 쾌적(快適), 가장 적당하고 적합함을 최적(最適), 마음에 들어 매우 즐거움을 가적(佳適), 무엇에도 속박됨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함을 자적(自適), 한가하여 자적함을 한적(閑適), 어떤 일에 적당한 재능을 가진 자에게 적합한 지위나 임무를 맡김을 이르는 말을 적재적소(適材適所),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꾸미고 실상은 그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나아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적본주의(適本主義), 입에 맞는 떡이라는 뜻으로 제 마음에 꼭 드는 사물을 이르는 말을 적구지병(適口之餠),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심음을 이르는 말을 적지적수(適地適樹), 훌륭한 음식이 아니라도 입에 맞으면 배를 채움을 이르는 말을 적구충장(適口充腸), 여유가 있어 한가롭고 걱정이 없는 모양이라는 뜻으로 속세에 속박됨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냄을 이르는 말을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에 속박됨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마음 편히 지냄을 이르는 말을 유연자적(悠然自適), 나릇을 북쪽으로 향하게 해 놓고 남쪽인 초나라로 가려 한다는 뜻으로 의도하는 바와 행하는 바가 서로 어긋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북원적초(北轅適楚), 발꿈치를 잘라 신에 맞춘다는 뜻으로 본말이나 주객을 뒤집음 또는 좋게 하려다 도리어 더 나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월지적구(刖趾適屨),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친구를 좋아하면 먼 곳이라도 피로를 잊고 따라간다는 말을 수우적강남(隨友適江南), 활과 과녁이 서로 맞았다는 뜻으로 기회가 서로 들어맞는다는 말을 궁적상적(弓的相適), 세력이 서로 엇비슷하며 힘이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세균역적(細菌力適) 등에 쓰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